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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가고 청춘도 간다…젊은 산, 문수산

하나님아들 2025. 5. 19. 22:33

봄이 가고 청춘도 간다…젊은 산, 문수산 [경상도의 숨은 명산]

입력2025.05.19. 
정상의 쉼터, 산 아래 조망이 흐리다.
 
 
봄이다. 요즘 봄은 금방 왔다가 잠시 스쳐 간다. 마음만 흔들어놓고 떠나간 사람처럼 봄의 시작과 끝은 분명치 않다. 밤낮의 길이가 같을 무렵부터 낮이 길고 밤이 짧을 때까지, 그러나 봄의 길이는 저마다 느끼는 만큼 달라진다. 진달래, 개나리, 산수유, 생강나무는 시샘하는 바람에 오들오들 떨며 여린 꽃잎을 틔운다. 서툴고 어색한 첫사랑 같은 게 봄이다. 멧비둘기, 까치, 까마귀 소리도 달라졌다. 겨울을 헤치고 나와 누군가 애틋하게 부르는 듯. 청춘의 계절이다.

울산 문수산文殊山은 해발 600m,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읍·범서읍 등에 걸쳐 있고 문수보살이 머물렀다 해서 불린 이름이다. 원래 산세가 맑고 서늘해 청량산淸凉山이라 했다. 신라 때의 문수사 절집이 있고, 청량읍 지명도 문수산 옛 이름 청량산에서 따온 것이다. 도심에서 접근성이 좋아 큰 부담 없이 정상에 오르면 울산시가지, 동해와 영남알프스까지 바라볼 수 있다. 청량읍 율리농협 근처 영해마을 당집, 서낭당 앞이 등산로 입구다. 문수봉, 깔딱고개, 문수산 정상, 문수사를 거쳐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데 대략 8.9km, 4시간 안팎 걸린다.

문수산 정상.
연분홍 봄바람 따라 오르는 길

아침 7시 45분, 맑은 봄날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탐방 안내판을 바라보다 긴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른다. 사방오리·감태·신갈·리기다소나무·서어·상수리·산벚·소나무. 해맑은 새소리 들리는 기분 좋은 산길이다. 곳곳에 고개 숙이고 핀 진달래꽃이 봄볕을 받아 짙은 분홍이다. 도시 속의 숲이라 그런지 화장실도 깨끗하고 등산로 정비도 잘돼 있다. 불편한 데크가 아닌 나무 계단이어서 딛는 느낌도 좋다. 군데군데 어김없이 재선충에 당한 소나무 무덤, 잃어버린 옛길 같은 마사토 산길에 여린 초록 잎이 바람에 한들거린다.

아침 8시경 무덤 근처 오른쪽으로 망해사 절 지붕을 두고 간다. 조릿대·상수리·가시·소나무는 서로 섞여서 자라고 비석 같은 바위들이 우뚝우뚝 섰다. 부산울산고속도로 달리는 요란한 자동차 소리, 바로 옆에 울산 남구 무거동과 울주군 청량읍 율리를 연결하는 문수터널 구간이다. 5분 더 올라 쉼터 갈림길(문수산 정상 2.2·율리농협 0.8·안영축 0.3km)에 선다. 까마귀들이 목 놓아 운다. 시국이 어수선하니 더 처량하게 우는 것일까? 이곳에서 같이 소리쳐 보면 스트레스 확 달아나겠다. 어쨌든 호곡號哭하기 좋은 곳이다. 올라갈수록 연분홍 진달래꽃 흐드러졌다. 날리는 하얀 꽃이 산벚나무인 줄 알았는데 벚나무다. 산벚나무꽃은 늦게 핀다.

등산로 입구.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 봄날은 간다."

시절과 장소가 딱 맞는 노랫말,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뻐꾸기 소리에 산수유꽃은 노랗게 늘어졌고 찔레나무 새순은 초록빛이다. 8시 20분경 능선 갈림길 쉼터(정상 1.9·우신초교 1.8·신복초교 2.6km)에는 자줏빛 제비꽃, 노란 수선화꽃이 봄의 천사처럼 일행을 맞는다. 사람들 옷차림도 울긋불긋, 오르막 나무 계단 길에 서니 더워서 땀이 난다. 10분쯤 올라 송전철탑에서 잠시 멈춘다. 전기 보낼 송전 선로가 없어 발전소 가동을 멈추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코미디 같은 현실을 언제까지 봐줘야 하는지 참 딱하다.

깔딱고개 갈림길.
깔딱고개 오르면 생기발랄 청춘의 산

오르막길에 속옷은 다 젖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수풀 속에 노루귀 분홍 꽃 눈길을 끌지만 소나무 숲길 능선 올라와서 외투를 벗었다. 오전 8시 35분 해발 404m 문수봉을 지난다. 지금부터 내리막 인공구조물 데크 구간, 모두 옆길로 다닌다. 10분가량 지나서 깔딱고개 갈림길(정상 0.7·천상리 3.8·굴화리 4.2·약수터 0.3·안영축 1.0·신복초교 3.3km). 마사토 산길에 노린재·때죽·쪽동백·비목·산뽕·상수리·철쭉·진달래·신갈·산벚·병꽃·소나무.

긴 침목 오르막 계단, 바위와 밧줄로 체력을 시험하듯 제일 힘든 구간이어서 깔딱고개로 불린다. 반대편에 있는 문수산성도 험준하긴 마찬가지다. 삼국시대부터 울산·언양 일대를 방어할 요량으로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계단에 앉아 쉬는 이들과, 부딪쳐도 아랑곳없이 지나는 사람마다 지친 표정 역력하다. 산꼭대기 다 올라온 듯, 열매가 돌처럼 단단하다고 해서 이 지역에선 돌참나무라 부르는 신갈나무 군락지. 바위를 지나 드디어 문수산 정상(문수사 0.5·깔딱고개 0.6·범서·천상 4.4km)에 닿는다. 오전 9시 20분. 송신탑, 벤치, 표지석, 돌탑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

해발 600m 정상에 서면 조망이 뛰어나 울산시가지, 온산공단, 탁 트인 바다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주변 산을 볼 수 있으나 오늘은 안개 같은 미세 먼지가 자욱하게 덮여 부옇다. 햇살에 눈 부셔도 그나마 흐릿한 시가지와 동해, 이마에 손을 대고 바라본다. 북으로 범서읍 쪽은 아파트 단지, 태화강, 그 너머 국수봉, 치술령까지 볼 만하다. 울주군 서쪽에 고헌산·가지산·간월산·신불산 등 영남알프스 봉우리 유명해도 오롯이 문수산이 울산의 산이라고 한다. 부산의 금정산, 진주 월아산처럼 가깝고 편한 산으로 친다. 사과, 물, 커피 한 잔. 학생들과 어울려 서로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사랑과 우정을 위하여!"

봄은 생기발랄한 청춘이다. 햇살을 받아 파릇한 새싹들, 이곳에서 젊음을 본다. 유난히 이 산에 젊은이들이 많이 올라온다. 그래서 울산은 역동적인 도시라 여긴다. 문수산은 청춘의 산이다.

마을에서 바라본 문수산.
문수사와 봄날의 애상

9시 30분 문수사 계단 길로 내려선다. 나무껍질이 오돌토돌한 비목나무 군락지 옆으로 찻길이 이어진 갈림길(삼동·둔기 6.8·문수사 0.3·정상 0.2km) 지나서 곧장 문수사 경내까지 내려왔다. 바위에 비켜선 명부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무슨 연유인지 흐리기만 하다. 그나마 범종루 아래 빨갛게 핀 동백꽃이 보살의 자태처럼 곱다. 샘물을 떠 마시는데 물맛은 감로수, 공양 준비하는 절집의 손놀림만큼 봄풀은 성급하게 푸르러 바람에 눕는다.

문수사는 조계종 통도사의 말사다. 선덕여왕 때 당나라 다녀온 자장법사가 울산을 지나는데 하도 깨끗해서 산과 강이름을 짓고 문수사를 세웠다고 한다. 이 무렵 문수 신앙이 번성했는데 청량산과 태화강 이름이 여기서 비롯된 것. 원성왕 때라는 얘기도 있다. 자장은 황룡사 구층목탑과 오대산에 적멸보궁을 세워 문수 신앙의 성지로 만들었고, 공민왕 때는 신돈이 왕실 후원으로 문수 법회를 열기도 했다. 세조가 오대산 문수동자의 도움을 받아 병이 나았다 해서 문수 신앙은 더욱 성행하게 된다. 경순왕이 문수보살을 찾아 이곳에 왔는데 동자를 따라가다 갑자기 사라지니 신라를 왕건에게 바쳤다고 한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이다.

정상, 멀리 왼쪽 산자락이 치술령이다.
10시경 돌계단을 내려간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바위 전망대가 세상을 굽어보는 예사롭지 않은 곳, 맞은편 남암산南巖山(543m)이 눈앞이다. 바로 밑에 문수사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최단거리지만, 정상까지 1시간 30분쯤 급경사로 이어진다.

문수사까지는 30분가량 걸리므로 나들이 삼아 이쪽으로 많이 올라온다. 진달래꽃, 생강나무꽃, 소나무 고목 아래 돌무더기 소원 탑, 돌계단 옆으로 사방 오리나무 노란 꽃이 주렁주렁 달렸다. 근처 병풍바위에 암벽등반 가는지 몇몇은 등산밧줄을 메고 오른다.

10분쯤 내려오니 문수사주차장. 여기서부터 아스팔트 도로인데 저 멀리 서낭당 보이는 데까지 보도블록을 밟고 걸어야 한다. 10시 30분 버스 승강장을 지나자 온통 국숫집이다. '엄마국수, 올케국수, 할매국수, 새참국수….' 승강장 이름을 아예 국수마을로 하는 것이 낫겠다.

문수사.
"국숫집이 왜 이리 많아요? 본데 많다."

어귀에서 푸성귀 파는 할머니 대답을 생각하며 11시 15분 서낭당으로 되돌아왔다. 300살 곰솔, 팽나무가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섰다. "연못가 봄풀은 꿈도 깨지 않았는데 섬돌 앞의 오동잎은 벌써 가을 소리 낸다"더니 봄이 왔는데 어느덧 꽃잎은 떨어지고, 뒤돌아보면 걸어온 만큼 청춘도 멀어진다.

산행길잡이

울주군 청량읍 영해마을 제당(서낭당) ~ 망해사 갈림 ~ 철탑 ~ 문수봉 ~ 깔딱고개 ~ 문수산 정상 ~ 문수사 ~ 소나무 바위 전망대 ~ 문수사주차장 ~ 남암산 갈림길 ~ 안영축마을 ~ 영해마을 제당(서낭당) 원점회귀

※ 대략 8.9km 4시간 안팎 정도 걸림.

교통 고속도로 부산울산고속도로(문수 IC)

※ 내비게이션 →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읍 율리 산 30-1(영해마을 제당)

주변 공터, 도로변 주차, 등산로 입구에 먼지떨이기, 화장실 있음.

숙식 울산 시내 호텔·리조트·여관, 다양한 식당 많음, 하산길 근처 안영축마을 국수 유명

주변 볼거리 울산대공원, 태화강 대숲, 영남알프스, 대왕암공원, 간절곶, 울기등대,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반구대 암각화 등.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김재준 '한국유산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