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수호는 스마트폰 대신 스마트워치를 쓴다. 전화와 메시지가 가능하지만 수호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기능은 따로 있다. 열량과 심박수 등을 체크하는 헬스 기능이다. 1학년 때부터 하키를 배운 수호는 일주일에 네다섯 번 하키 연습을 하러 간다. 하키만이 아니라 줄넘기 학원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간다. 매일 땀 흘리는 중고강도 운동을 하는 건강한 생활이다. 마술과 바둑을 배우는 방과후학교가 없는 날이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한 시간 정도 놀다 집에 들어온다. 당연히 잠도 잘 잔다. 밤 9시 반에 누워 아침 8시쯤 일어난다. 초록우산이 2024년 조사한 초등학교 저학년 평균 수면 시간인 9시간39분보다 약 한 시간을 더 자는 셈이다.
스마트폰이 없는 수호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틈틈이 책을 읽는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알까기’나 ‘쎄쎄쎄’를 하며 논다. 수호의 반 친구들 중 절반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어린이 보호를 위한 키즈록이 걸려 있고, 그마저 학교에서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들도 딱히 ‘나도 폰 가지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지 않는 환경이다. 폰을 가지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수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로 안 가지고 싶어요. 폰이 생겨도 많이 안 할 거야. 재미없잖아요.” 수호의 부모는 언제 스마트폰을 사줘야 할지 고민이다. “4~5학년이 되면 사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대한 미루고 싶지만요. 폰을 사주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면 되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폰을 사주면 판단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지더라고요. ‘폰 검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부터 시작해서요.”
초록우산·〈시사IN〉의 ‘아동청소년 스마트폰 기반 생활 현황 조사(초록우산·〈시사IN〉 조사)’에 따르면 아동이 처음 스마트폰을 가지는 나이는 평균 9.4세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권장하는 스마트폰 사용 적정 연령인 중학교 1~2학년보다 훨씬 이르다. 지역별로도 차이를 보인다. 아동행복지수가 높은 세종·제주 지역 아동이 처음 스마트폰을 가지는 나이는 평균 9.5세인데, 행복지수가 낮은 인천·강원 지역은 8.8세다. 자녀에게 폰을 사준 보호자는 전체의 89.8%였다. 사준 이유로는 ‘연락하기 위해서(77.9%)’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필요할 것 같아서(7.0%)’가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스마트폰을 마련해주지 않은 보호자는 ‘중독 위험 때문에(39.6%)’ ‘유해 콘텐츠를 접할까 봐(28.1%)’를 그 이유로 꼽았다.
스마트폰을 사주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싶은 게 대다수 보호자들의 마음이지만,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이하연(가명)과 최시유(가명)는 단짝 친구로, 둘 다 아이폰을 쓴다. 하연이네 반 친구 20명 중 아직 폰이 없는 아이는 5명, 시유네 반은 18명 중 2명뿐이다. “폰이 없어도 다 잘 지내긴 해요. 걔네들은 보통 쉬는 시간에 책을 읽어요(시유).” “그래도 불쌍해. 폰 있는 애한테 가서 폰 가지고 놀아도 되냐고 물어보기도 해요(하연).”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서 볼 수 있었던 알까기와 쎄쎄쎄는 고학년부터 스마트폰으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대부분 폰을 마음껏 쓸 수는 없다. 시유는 앱마다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음악은 무제한이고 갤러리 40분, 카톡 10분, 구글 1분, 유튜브 1분 이렇게 해서 다 합치면 한 시간도 안 돼요. 부모님이 제한하기 전에는 하루에 다섯 시간 넘게 썼어요.”
하연은 카톡에 2시간 제한이 걸려 있다. 다만 밤 9시부터 휴대전화 전체가 잠금 모드로 바뀐다. “하루에 6시간 정도 써요. 노래 듣고 인스타그램 릴스 보고요. 카톡도 많이 해요.” 그나마 하연은 밤에 폰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적게 사용하는 편이다. “제 친구들은 9~10시간씩 써요. 제한 없는 애들은 진짜 밤새워 해요. 특히 남자애들이 심해요. 부모님들이 록 거는 법을 모르나 봐요. 저는 밤에 폰을 못하니까 침대에 누워서 인형이랑 대화하다가 자요.”
초록우산·〈시사IN〉 조사에 따르면 시간 제한을 둔 보호자는 53.7%였으나 이 중 42.2%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폰에 이용 제한 프로그램이 설치된 아동은 33.0%(초등 45.9%·중등 31.0%·고등 17.4%)였다. 콘텐츠 제한(45.2%)이 가장 많았고 뒤이어 키즈모드 설정(38.5%), 이용관리 앱 설치(37.5%), 비밀번호 설정(29.4%) 순이다. 아동의 스마트폰 이용을 제한하지 않는 보호자는 ‘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서(48.1%)’ 혹은 ‘내 자녀에게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31.6%)’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부모가 과의존이면 자녀도 과의존
물론 학교에서도 미디어 중독 예방 교육을 한다. 하지만 제대로 듣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연과 시유는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쌤이 폰 많이 쓰면 안 된다고 하거나TV로 영상 하나 보여주는데 아무도 안 들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몰래 폰 하지.”
2024 초록우산 아동행복지수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가진 아이 둘 중 한 명(58.8%)은 스스로도 미디어 사용이 과하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발표한 ‘2023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를 살펴봐도 지난해 기준 국내 청소년 10명 중 4명(40.1%)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다.
그러나 아이를 탓하기 이전에 성인 보호자 스스로를 먼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초록우산·〈시사IN〉 조사 결과를 보면 아이들은 폰 사용을 할 때 부모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만(47.9%) ‘부모님도 폰을 자주 사용한다(52.3%)’라거나 ‘부모님도 폰으로 게임을 자주 한다(13.0%)’라고 생각한다. “왜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라는 항변에도 어른들이 딱히 할 말이 없는 수치다. 2024년 7월 김소연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이 발표한 논문 ‘부모의 스마트폰 의존도와 자녀의 스마트폰 의존도의 전이관계’에 따르면, 부모가 스마트폰 고의존형일 경우 자녀의 78.6%가 고의존형이었다.
학교교육도 소용이 없고 성인 보호자도 스마트폰 의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남는 건 제도적 규제다. 아동 스마트폰 생활 조사에 의하면 보호자 83.4%가 스마트폰 관련 규제나 법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2023년 8월17일 교육부는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발표해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 원칙을 지키지 않는 학생에게 주의를 줄 수 있고, 계속 사용할 경우 압수할 수 있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조차 제대로 지켜지기가 쉽지 않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수업 시간에 걸리면 학교생활교육위원회(선도부)로 가는 게 원칙이지만 보통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걸릴 때마다 일일이 대응하면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 알면서도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거나 ‘폰 넣어라’ 경고를 주고 끝난다. 수업 끝나자마자 다들 코 박고 게임하는 모습을 보면 기이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잠을 자면 좋겠다. 인권도 인권이지만 솔직히 그것(학교 내 스마트폰 소지)이 아이들 정서나 건강에 도움이 될까?”라고 말했다.
2024년 10월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0년 동안 유지해왔던 입장을 뒤집고 ‘학교 내 휴대전화 일괄 수거는 인권침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초록우산·〈시사IN〉 조사에 따르면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소지할 수 없는 학생은 62.6%로, 그중 초등학생(49.1%)이나 고등학생(55.6%)보다 중학생(80.9%)이 훨씬 많았다. 의외로 중학교에서 금지 비율이 높은 이유를 한 중학교 교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초등학생은 아직 어려서 그래도 선생님 말을 듣는 편이고, 고등학생은 입시를 생각해서라도 스스로 조절하지만 중학생은 정말 아무런 고삐가 없다.”
제22대 국회에서도 스마트폰 규제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세 미만이SNS회원가입을 신청하는 경우 거부하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미성년자가 알고리즘 기반SNS에 가입하려면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도록 한 일명 ‘청소년 필터버블 방지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교내 스마트폰 사용 제한, 폰·SNS사용 시간 제한, 교육 실시 등을 담은 ‘우리 아이SNS안전지대 3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중 정부와 지자체가 스마트기기 사용에 필요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한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을 빼면, 모두 아직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부모도, 학교도, 정부도 적절한 스마트폰 사용 규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이 아이들은 여러 가지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초록우산·〈시사IN〉 조사에 따르면 성인용 콘텐츠를 본다는 학생은 평균 22.2%, 사행성 게임을 해봤다는 학생은 평균 29.6%에 달했다. 온라인 따돌림(6.7%), 딥페이크 피해(4.8%), 신체를 찍은 사진이나 영상물을 보내달라는 요구를 받음(4.5%), 동의 없는 음란물 수신(4.1%), 성관계 제안(4.0%), 동의 없는 촬영(3.4%), 대가를 미끼로 사진·영상·개인정보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는(3.1%) 경험이 이미 아이들에게 생겨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 고위험군인 아동일 경우 이 비율은 평균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까지 올라간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하는 이유는 ‘할 수 있는 게 폰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유와 하연은 친구와 놀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제일 재밌는 건 하연이랑 노는 건데 얘가 맨날 학원 가요.” “저는 학원을 다섯 개 다니거든요. 너무 힘들어요.” 한국은 공교육 시간이 짧고 사교육 시간이 길다. 2022년OECD국가의 평균 공공 의무교육 시간이 초등은 4830시간, 중등은 2748시간인데, 한국은 초등교육 3930시간, 중등 2526시간에 그친다. 주중에 학원에 다니는 학생은 78.1%, 주말에도 학원에 가는 학생은 57.2%다(2024 아동행복지수 조사).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가고 집에 돌아와서도 숙제를 해야 하는 쳇바퀴 생활 속에서 그나마 스스로에게 ‘보상’하고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 있는 건 스마트폰 세상 속에서다.
할 수 있는 ‘취미’가 스마트폰뿐이라
“폰 없는 애가 불쌍하다”라던 시유와 하연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행복 점수는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수호(80점)에 비해 확연히 낮다. “50점? 친구랑 놀고 싶은데 주말에 과외해야 해요(시유).” “60점이요. 친구랑 노는 시간이 적어서요. 그래도 주말에 몰아서 놀기는 해요. 금요일 저녁에 친구네 집에 가서 파자마 파티 하기로 했어요(하연).”
중학생이 되면 친구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가장 효율적으로 노는 방법이 스마트폰이다. 중학교 3학년인 김유진(가명)은 학교에서도 ‘진짜 폰’을 내지 않고 대신 공기계를 낸다.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틱톡으로 유챌(유행하는 챌린지) 영상을 찍어 올린다. 5분에서 7분 사이면 한 편을 뚝딱 만든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수업 시간이 지루하면 머리카락으로 이어폰을 덮고 몰래 노래를 듣기도 한다.
그렇다고 유진이 이른바 ‘노는’ 학생도 아니다. 오히려 성적도 상위권이다. “저는 평범한 편이에요. 저만 폰 안 내는 게 아니라, 한 절반은 안 내요.” ‘평범’한 범위에는 주말에 폰을 몰아 보는 것도 포함된다. “지난 일요일에도 점심 먹고 나서부터 계속 웹툰 봤어요. 자야지 자야지 하다가 시간을 놓쳐서 아침에 못 일어날까 봐 그냥 밤새우고 학교 갔어요.” 초록우산·〈시사IN〉 조사에 따르면 ‘밤을 새울 때 주로 하는 미디어 활동(복수 응답)’은 동영상 시청(유튜브·넷플릭스 등, 71.3%), 게임(52.9%),SNS(45.8%), 웹툰이나 웹소설(31.1%), 채팅(21.7%), 음악이나 라디오(17.6%), 포털사이트(12.2%) 순이었다.
학교에서 폰을 내지 않거나 밤새워 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걸 부모님이 알고 계시느냐고 묻자 유진은 “학교 일은 모르시고 집에서도 공부한다고 방문 닫으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초록우산·〈시사IN〉 조사 결과에서도 부모와 자녀 간 소통 단절을 짐작해볼 수 있는 항목이 있다. 부모가 생각하는 자녀의 이용 콘텐츠와, 자녀가 실제 이용하는 콘텐츠가 서로 다른 경우다. 뉴스(부모가 추측하는 것보다 자녀가 이용하는 비율이 10.1%p 높음), 성인용 콘텐츠(11.3%p 높음), 사행성 게임(13.6%p 높음), 학원 온라인 강의(8.7%p 낮음), 학교 온라인 강의(10.8%p 낮음) 등이 특히 그랬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정원영(가명)도 공부를 잘하는 편이다. 스마트폰 사용으로 부모님과 딱히 문제를 겪은 적도 없다. 다만 공부할 때 인스타그램 단뎀(카톡 단체 대화방 같은 단체DM방) 알림이 울려서 폰을 한번 들여다봤다가 계속 릴스를 보는 경우가 많다. “유튜브는 영상이 길어서 잘 못 보겠더라고요. 제 폰에는 주로 강아지, 고양이 같은 동물이나 귀여운 아기 모습을 담은 릴스가 떠요.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NCT의 마크 영상도 많이 뜨고요.”
인스타그램에 한번 빠지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 있다는 원영이도 일상 속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친구들과의 대화라고 답했다. “근데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보통 학교 끝나고 학원 가는 길에 친구들하고 통화해요. 예전에 일기도 써봤는데, 딱히 적을 만한 일도 없더라고요. 맨날 하루가 똑같으니까요. 그래서 일기 쓰기도 관뒀어요.” 스마트폰 현황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이 폰에 과의존하게 되는 원인 1위가 ‘폰보다 재미있는 게 없어서(평균 37.0%, 과의존 학생일 경우 48.9%)’였다. ‘친구 관계 때문(34.0%)’이라거나 ‘없으면 불안해서(15.%)’보다도 높은 비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