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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성중종주' 부럽잖은 팔공산 '소능종주'

하나님아들 2025. 1. 13. 23:46

지리산 '성중종주' 부럽잖은 팔공산 '소능종주' [소야고개~능성고개 32km]

입력2025.01.13. 
 

 

가산봉 정상을 지나 동쪽을 향해 가산산성길을 걷는다.
목마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물이라면, 산꾼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역시 종주할 산. 지도를 들여다보다 지난 2023년 12월 31일 23번째 국립공원으로 이름을 올린 팔공산이 눈에 들어왔다. 팔공지맥, 가팔환초, 신가팔환초 등 팔공산에 엮인 장거리 종주길의 이름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문득 주능선만 오롯이 걷는 코스는 없는지 궁금했다. 국립공원에서 제작한 지도를 보니 능선을 따라 끊기는 곳 없이 이어지는 등산로 선이 보였다. 마치 지리산 성중종주처럼. 소야고개에서 출발해 오계산~가산봉~한티재~비로봉~관봉(갓바위)~용주암~능성고개까지 가는 주능선 종주, 바로 소능종주다.

톱날바위 입구에서 바라본 서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소야고개~가산봉

피와 땀의 유해 발굴 현장 그리고 산성길

들머리인 소야고개는 백운산과 오계산 사이 안부에 위치하며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부산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가 통과하던 곳이다. 적당히 넓은 주차장과 김밥 어묵 등 먹거리 구매 가능한 다부원휴게소, 화장실 및 정자가 있다. 택시, 자차를 이용하면 편하게 접근 가능하다. 산행 들머리로는 이만하면 합격점을 줄 만하다.

어둑한 새벽 5시 표지석 뒤쪽으로 오른다. 해주최씨 제실, 묘 사이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 시작이다. 산길이 넓지 않아 자연스레 한 줄이 되어 어둠속에서 앞사람을 따라 걸어 오르게 된다.

첫 산인 오계산(466m),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지역 안내판과 태극기 앞에 다들 멈춰 선다. 이곳이 바로 다부동지구 466고지(오계산) 전투 지역이다. 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3일부터 27일간 국군1사단과 미군 2개 연대가 북한군과 격돌한 전투다. 병력 1만700명으로 2만7,000명에 맞서 싸웠는데 기적적으로 한미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사상자는 아군 1만여 명, 북한군은 1만7,500명. 살아남은 사람들은 승리의 기쁨과 생존의 기쁨 중 어느 것이 더 컸을까.

오계산 구간은 산길 옆으로 움푹 파인 곳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모두 유해 발굴 현장이다. 이곳이 마지막 보루라 생각하고 턱밑까지 밀고 내려온 북한군을 필사적으로 막았을 터. 그저 가볍게 지나칠 수만은 없는 곳이다.

"잠시만요." 앞서 걷던 분들 세워 가산산성의 아름다움을 찰나에 담아본다.
걸으며 등산로의 흙을 한 움큼 쥐어 코로 가져가 본다. 들숨 따라 퀴퀴한 여운이 밀려든다. 고단한 오랜 시간의 냄새가 있다면 이런 냄새가 아닐까 싶다. 손에 꼭 감아 쥔 흙을 한동안 내려놓지 못하고 꽉 쥐고 걷는다.

양옆으로 빼곡하던 나무들이 사라지며 하늘이 시원하게 쏟아져 들어온다. 가산산성 시작이다. 하늘과 땅, 나무와 그 곁을 걸어 지나는 사람까지 한 편의 액자가 된다. 눈에 와 담기는 모습, 마음이 동동 어찌할 바를 모르게 너무 예쁘다.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세워진 성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내성과 중성, 외성 3중으로 된 산성이다. 중요시설은 내성 안에 있으며, 중성에는 4개 고을의 비축미를 보관했다. 험한 자연 지세를 이용해 만들어진 영남 제일의 산성이다. 한양도성 다음으로 큰 조선시대 성이다.

햇살이 기지개를 켠다. 가산바위(가암) 옆으로 찬란하게 떠오른다. 계단을 따라 올라서니 넓다. 원래 이렇게 평평한 바위였을까, 아니면 누군가 다듬어 놓은 걸까? 270㎡ 규모다. 바위 상면 동단에 큰 구멍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고승인 도선이 산천을 편력하면서 지기를 잡기 위해 구멍에 쇠로 만든 소와 말 형상을 묻었다고 한다.

가산봉 정상에 올라서면 앞이 훤히 트이고 유선대와 용바위 조망이 좋다.
가산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은 쭉쭉 뻗은 울창한 숲길. 복수초 군락지다. 꽃이 가득 피면 노란빛으로 얼마나 사랑스러운 길이 될까. 가산봉 정상석과 전시 작전 지휘소 건물이 있었다는 장대 터를 지나, 유선대와 용바위 조망 터인 실질적인 가산봉 정상까지 완만한 오름이 이어진다. 그러자 드디어 막힘없는 조망이 뻥 터진다. 산행하느라 눌렸던 어깨며 가슴이 활짝 펴진다.

가산봉~비로봉

아슬아슬 톱날바위를 지나 보상처럼 만나게 되는 석불

해를 마주하며 동쪽을 향해 걷는 산성길, 온몸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진다. 곳곳에 키 작은 구절초 무리의 올망졸망한 모습이 이 행복한 걸음에 즐거움을 더한다.

한티재로 가는 길에는 몸집 큰 바위들이 곳곳에 서 있다. 득남을 기원한다면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려야겠다. 할매할배 바위를 넘어, 돌무더기를 지나는데 가산산성이 끝이 없다. 치키봉까지 계속 가산산성이다.

이제 다시 울창한 숲속 산책길이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져 조망은 없지만, 숲의 맑은 기운이 그대로 온몸으로 흡수된다.

한편 팔공산은 경주 남산 다음으로 불교 유적이 많은 곳이다. 한티재휴게소에서 북쪽 방향으로는 '제2석굴암'이라 불리는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이 있다. 제2석굴암이라 부르지만 사실 100여 년 이상 먼저 만들어졌다. 석굴암은 인공석굴이지만 이곳은 자연석굴을 최대한 활용했다.

할매할배바위에 치성 드리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아름다운 돌담마을로 유명한 대율리 한밤마을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담길로 여겨진다. 100% 자연석만을 활용해 쌓은 돌담 모습이 재밌다.

한티재휴게소 남서쪽으론 송림사가 있다. 나무와 어우러진 절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보물인 5층 전탑도 신비롭다.

한티재탐방지원센터 오른쪽 계단을 따라 오른다. 커다란 바위들이 많기도 하다. 보이는 것이 이 정도면 숨겨져 있는 바위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어떤 돌은 돌고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금방이라도 땅을 벗어나 하늘로 솟구칠 기세다.

대구 파계사 원당봉산표석은 파계재에서 한티재 방향으로 약 4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원당'은 왕실의 안녕이나 명복을 빌던 장소를 뜻하며, '봉산'은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금지한 산을 의미한다. 이 표석은 원당으로 지정된 사찰의 나무를 함부로 벌목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 산림을 보호하고자 세운 것이다. 조금 더 걷다 보면 파계사 갈림길인 삼거리를 지나게 된다.

가장 짜릿했던 톱날바위능선, 안전 바가 없었다면 감히 지날 수 있을까.
파계사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파계사를 만날 수 있다. 9갈래의 물줄기를 잡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지도를 보니 확실히 계곡이 많다. 그 물줄기들이 다 파계사로 모이는 것일 테다. 조선 영조와 인연이 깊으며 선대 임금의 위패도 모셨다.

파계봉(991m)을 지나 이름도 무시무시한 톱날바위다. 예전에는 날카로운 바위 구간을 직접 넘어서 다녔다는데 지금은 나무데크와 안전 바가 설치되어 있어 조금만 주의한다면 걸어 지나기에 위험하지 않다. 하늘을 찌를 듯한 송곳바위(촛대바위) 곁 계단을 지나 서봉 갈림길에서 잠시 옆으로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서봉(삼성봉).

서봉에서 비로봉으로 가다가 관음보살님같이 어여쁜 바위님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잠시 돌아 들어가 보는 것이 좋다. 커다란 바위에 돋을새김 기법으로 만든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이 나온다.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올 법한 모습이다. 석상 뒤편 바위에 산속 어딘가로 통하는 비밀 문이 있을 것만 같다.

철탑들이 솟아 있는 비로봉 아래 철쭉나무 한 그루. 바위 중앙에 어떻게 뿌리 내리고 살아 있는지 신비롭다. 자연의 경이로운 이런 모습이 진정 불상佛像이 아닐까. 바라보고 있자니 관세음보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서봉(삼성봉)에서 바라본 최고의 부처를 의미하는 비로봉과 동봉(미타봉)의 모습.
비로봉~관봉

좁은 등산로의 바위 능선길

팔공산 비로봉(1,193m), '비로毘盧'라는 말은 '두루 빛을 비추는 자'라는 의미로 최고의 부처를 의미한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오를 수 있는 팔공산 최고봉이다. 이 비로봉을 사이에 두고 서봉과 동봉이 자리한다. 비로봉 바로 아래에는 옛날 조상들이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성지인 제천단을 알리는 표시석이 자리한다.

아래 쉬어갈 수 있는 나무데크에 일행들이 있다. 지리산 장터목 같은 느낌이다. 먹거리 나눔이 한창이다. 잠시 쉬었다가 이제는 관봉(갓바위)을 지나 하산하는 길. 우선 곁 봉우리인 동봉으로 향한다.

등산로를 걷다 커다란 석상 하나를 딱 마주친다. 소녀다.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이다. 날개를 단 듯 보인다. 지긋하게 감고 있는 눈이며, 뭉뚝한 코, 앙 다문 입, 어떻게 이리 조각했을까. 이 모습이 내 눈에만 신기한 건가? 다들 쓱 보고 그냥 지나가는 게 의아하다. 의자 하나 있다면 그대로 앉아 한참을 바라보고 싶다.

북지장사 아담한 대웅전과 삼층석탑 2기, 북지장사는 한때 동화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의 규모였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금세 도착한 동봉. 팔공산 최고의 부처를 의미한다는 비로봉을 중심으로 서봉(삼성봉)과 동봉(미타봉) 그리고 서봉 곁에는 마애약사여래좌상이, 동봉 곁에는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어쩐지 일부러 균형을 맞춰 만들어 놓은 듯 자리하고 있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좌우로 날개를 펼친 봉황의 모습이다. 참 잘 생긴 산이다. 기가 막히다. 환상적이다. 동봉 남쪽 아래로는 동화사가 자리한다.

동화사는 통일신라시대의 절로 금산사, 법주사와 함께 법상종 3대 사찰이며 경북 5대 본산 중 하나로 대구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사찰이다. 어지간한 절은 동화사 말사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사찰 주변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해 동화사桐花寺라 칭했다고 한다.

100년쯤 양치 안 한 치아를 닮은 바위의 모습에 미소를 짓기도 하며 나무 데크와 계단이 설치된 바위 구간을 지난다. 조금은 지친 심신을 단풍으로 되살리고 삿갓봉을 지나 관봉 가는 길 바위 구간 능선을 견딘다.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위해 치성을 드렸다는 전설을 가진 명마산 장군바위.
노적봉 남서쪽 아래로는 북지장사라는 절이 자리한다. 둘러보는 데 30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은 절이다. 작고 아담한 동화 속 사찰 같다. 꼬물꼬물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매력적인 곳이다.

관봉 가는 길, 갓바위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1년 365일을 상징하는 1,365개의 계단이다. 잠시 사람들을 바라보다 갓바위에 닿는다. 정확히는 관봉 석조여래좌상이다.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고 해서 인기가 높다. 또 소원을 빌 때는 나를 위한 것 말고 남을 위한 것을 빌어야 잘 이루어진다고 한다.

관봉~능성고개

욕심을 비우며 걷는 길

석불 하나 새겨졌어도 아주 멋질 만한 장군바위는 3개의 바위가 마치 탑처럼 얹혀 있는 독특한 모양이다. 높이는 10여 m.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위해 이곳에서 치성 드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장군바위가 나를 보며 지긋이 미소 짓는 것 같다.

갓바위인 관봉 석조여래좌상.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단다.
소능종주의 마지막 산인 명마산 정상을 지나면 이제 진짜 내리막 하산이다. 묘지를 지나 도로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대구시 동구와 경산시 경계인 능성고개(능성재). 지친 몸 추스르며 맛있는 식사 한 끼 하고 흐뭇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다 걷고 나니 이 코스의 보증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걷는다면 가볍지 않고 조금은 무겁게, 느리게 걷기를 추천한다. 그래야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주말 이틀 여유가 된다면 그중 하루는 주위 사찰들을 찾아 만나보기를 권한다. 그래야 팔공산의 가치를 좀 더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진나라 사신이 명관대사와 함께 불서 2,700권과 불사리를 가져와 봉안하기 위해 세운 송림사.
산행길잡이

소야고개~가산봉 구간(6km)은 전사자 유해 발굴 지역으로 꾸준한 오르막이며, 가산봉~한티재 구간(6km)은 아름다운 산성길, 소나무와 참나무 등이 어우러진 숲속 산책로다. 한티재~비로봉 구간(7.7km)은 기묘한 바위와 아슬아슬 톱날바위능선을 지나 최고봉을 향한다. 비로봉~관봉 구간(7.8km)은 좁은 등로 바위 능선길이 이어지며, 관봉~능성고개 구간(4km)은 장군바위와 용주암을 거쳐 하산 마무리 길이다.

info

들머리 소야고개에는 매점이 하나 있다. FC편의점(010-3525-7258). 낮에는 한티재휴게소와 관봉(갓바위)에서 음료 및 먹거리 구매가 가능하다. 영업시간 외에는 자판기를 사용할 수 있다. 1,000원짜리 지폐가 필요하다. 날머리 능성고개에는 식당이 하나 있다. 우정식당(053-851-7762). 날머리에선 콜택시를 부르는 것이 가장 좋다. 운불련 호출택시(053-766-7777).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신은경(jiri-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