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을 가져라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구원의 확신을 점검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구원받은 확신 속에 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구원 받지 못했거나, 구원을 받았더라도 구원의 감사와 풍성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불안하고 기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에 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칼빈주의 신앙을 이어 받은 우리 장로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나 이걸 자꾸 생각하기 때문에 혼란이 많습니다. 그러나 선택의 교리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면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해 주심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지 택함 받았는지 알아내기 위한 말씀은 아닙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안다면 전도할 때도 택한 사람만 찾아가서 전도하면 얼마나 쉽겠습니까?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 구원의 확신여부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스스로라 했어요. 증거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인이 알 수 있어요.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방법은 열매로서 알리라 하신 것처럼 주로 인과론입니다. 즉 원인 없는 결과가 없기 때문에 결과를 보고 나를 택하셨는지, 구원을 받았는지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구원의 확신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1. 마음에 증거가 있는가?
살후1:10에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한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낱말은 없지만 마음이란 뜻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나의 구주이심을 믿는다면 구원 받은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살후3:2) 했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2:8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기 “인하여”란 원인을 말합니다. 믿음의 원인은 바로 은혜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은혜로 주어지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확신을 우리 마음의 증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 성령의 증거가 있는가?
성령의 은혜 중 중요한 한 가지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어지고 불러지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8:14-16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친구 집에 놀러가서 친구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때 아버지라는 실감이 나지 않더군요. 친구가 자기 아버지 부르는 아버지하고 내가 남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하고는 질이 다릅니다. 예절과 도덕 차원에서 친구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른 것이지 나에게는 전혀 실감지 않는 호칭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아버지라고 중심에서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과 먼 사람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라 한다면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은혜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신령한 일에 관심이란 죽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기도하라 해도 억지로 시늉하지 모르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교회 가는 것도 코 꿰어 도살장에 가는 것만큼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 믿지 않은 불신자가 자원하여 나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운 사람입니다.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 영혼에서 아주 풍성한 은혜와 생명을 누린다면 말할 것도 없지만 하나님이 내 아버지로 불러지는 것만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성령의 증거라는 말입니다.
3. 성경의 증거가 있는가?
길고 짧고 는 맞대어봐야 알죠. 자로 재보는 것보다 맞대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즉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요일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성경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고, 또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이 성경적인 믿음을 내가 가졌다면 나는 구원의 반열에 섰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즉 이것이 성경이 알려 주는 구원의 증거입니다.
4. 구원의 실재가 있는가?
벧전1:8-9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했습니다. 이런 마음의 천국이 있다면 두 말할 것 없는 구원의 증거입니다. 살아서 천국이라면 죽어도 천국입니다. 혹은 고후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을 체험한 자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구원은 추상이 아니라 실재입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 신앙에게는 실재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재는 증가하는 것이며 실재가 많을수록 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때 내 안에 예수가 계신다고 말할 수 있어요. 보혈을 믿고 양심에 평안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예수의 공로로 나도 모르게 죄가 이겨진다고 할 수 있어요. 혹은 성령의 열매가 맺혀져 변화되었다면 그것도 구원의 중요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라 하셨던 여러 은사적인 것도 구원 받은 간접적 증거가 됩니다.
5. 객관적 증거에 섰는가?
요19:30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엡2:5-6에도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랬습니다.
구원은 사실상 십자가에서 객관적으로는 다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확신할 수 없는 그런 성질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세요. 그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신 십자가입니다. 거기서 나를 구원하셨어요. 주님 손의 못 자국을 보세요. 주님 허리의 창자국을 보세요. 나를 위해서 흘리신 피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를 구원하신 증거입니다. 이 십자가를 보고도 나를 구원하신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더 이상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롬8:30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하셨습니다. 이처럼 내 구원은 예수 안에서 이루신 객관적 사실입니다.
나를 2000년 전에 이미 구원하셨다고 하는 복음의 객관적 사실에 선다면 주관적 구원이 다가옵니다. 객관에 서야 주관이 다가옵니다. 주관적으로 체험되는 구원은 점진적입니다. 구원하셨음에 대한 확신이 증가할수록 더 풍성한 구원을 누립니다. 그래서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얻었다고 한 것입니다. 나는 그 때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고 영화롭게 되어 하늘에 속한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의 사건을 나의 사건으로 받아 끝까지 견고히 서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구원의 객관적 증거입니다.
6. 역설적인 증거도 있습니다.
한가지 질문해 보겠습니다. 시42:1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이 기도를 한 시편 기자는 은혜 받은 심령일까요 은혜 받지 못한 심령일까요? 은혜 받은 심령입니다. 은혜 받지 못했다면 이런 갈급함조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역설적 증거란 구원에 대해서 고민하는 그 자체도 의미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사람일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런 사람이라면 이미 사람입니다. 사람이니까 고민하지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지능 있다는 동물이 고민합니까? 이런 고민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가 구원 받았는지 궁금해 하고 수없이 자기 구원을 점검하면서 구원 확신을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은 구원을 받은 자이거나 아니면 구원에 아주 가까운 사람입니다(막12:34). 구원에 가까운 사람도 있어요. 막 12장에 어느 서기관이 성경의 핵심을 파악해 진리에 근접했지만 선생이라 불러 예수님을 아직 메시아 곧 나의 구주로 확신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무나 신령한 일에 관심 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거나 성령의 인도가 없이는 영적인 일에 관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역설적인 증거입니다.
7. 신비적 증거도 있습니다.
마16:17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직접 요나의 아들 시몬 베드로가 구원 받은 자임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구원의 확신은 은사적 체험적으로 알게 되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 이야기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나를 피로서 사신 구주이심을 확실히 믿었지만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 지금 부르신다 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성경으로 점검하고 또 점검했지만 아직 말씀이 부족해서 믿는 자는 구원을 얻었나니 한 말씀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 때 어느 날 신령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이 이마에 성령의 인침이 보인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참고사항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도 확신을 주시기도 하시더군요.
엄마 잃은 자녀가 날마다 울고 있을 때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천사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나서 “너는 왜 그렇게 우느냐? 엄마는 여기보다 천 배나 만 배나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있단다. 하나님께서 네 곁에 계시니 다시는 울지 말고 예수 잘 믿고 충성하다가 나중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했다는 간증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각인의 영적 수준과 상태에 따라서 그렇게도 확신시켜 주실 수도 있습니다. 신비적 증거도 증거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나의 생명의 구주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이루신 일이 다 나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 진리가 믿어진 만큼 우리는 변화합니다. 성경 대로 믿었다면 틀림없이 구원 받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증거, 성령의 증거, 성경의 증거, 복음적 증거, 실재의 증거, 역설적 증거, 신비적 증거 등의 구원의 확신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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