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자연은 나를 변화시켰다" [파미르 오지탐사대]
입력2024.11.21.
타지키스탄 판산맥 침타르가봉(5,489m) 일원 22박 24일
해발 4,750m의 침타르가 고개를 넘고 있다
"타지키스탄? 거기가 어디야?"
대장님이 타지키스탄이 우리의 탐사지라고 말해 주셨을 때 절로 튀어나온 말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나라 이름이라 생소했다. 도대체 얼마나 오지일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감정의 항아리가 채워졌다.
좀더 정확한 탐사지는 타지키스탄의 파미르고원Pamir Mountains이란 곳이었다. 곧장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세계의 지붕'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평균 높이 6,100m 이상이며 중앙아시아의 텐산이나 카라코룸, 쿤룬, 티베트고원, 히말라야 등 명성이 자자한 산맥들과 어깨가 이어지는 산줄기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과 한데 어우러진 땅. 그중 우리는 파미르 서쪽 판산맥에 위치한 침타르가봉Chimtarga Peak(5,489m)과 세븐레이크7Lakes 트레일을 중점적으로 탐사했다.
먼저 시간을 되돌려보면, 2023년 그때만 해도 산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했다. 하지만 오로지 새로운 경험과 아름다운 대자연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2023 오지탐사대에 지원했었다. 아웃도어 테스트에서 그때 처음 산을 접했다. 결과는 당연했다. 부족한 아웃도어 지식과 체력이 발목을 잡아 결국 탈락의 쓴맛을 보았다.
하지만 그 경험은 스스로에게 큰 변화를 일으켰다. 산에서 느낀 벅찬 감정과 행복감이 오랜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이후 거의 매일이다시피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에 오르며 자연에 대한 매력에 사로잡히자 바다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다. 그래서 무작정 휴학을 하고 제주도로 내려가 100일 동안 다이버가 되기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평일에는 스킨스쿠버와 프리다이빙을 배우며 바다의 깊이를 경험했고, 주말이면 한라산에 올라 자연과 교감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고, 그 안에서 배우는 것과 만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1년이 흐른 후, 나는 2024년 오지탐사대에 다시 도전해 탐사대원이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전의 실패와 노력은 나를 성장시켰고, 이제는 자신감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준비가 되었다.
쿨리칼론 호수 앞에 선 탐사대원들.
미지의 산 침타르가봉
우리가 도전하는 침타르가봉은 타지키스탄 판자켄트Panjakent 지역의 판산맥에 위치하고 있다. 일대 산맥의 최고봉으로 해발 5,489m에 달한다. 이 산을 오르기 위해 베이스캠프인 알피니스트 캠프Alpinist Camp Artuch(2,200m)까지 차량으로 이동했다.
시내를 벗어나자 비포장도로가 펼쳐졌다. 멀미에 시달리는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어려움을 겪으며 도착한 캠프에서 우리는 빠르게 짐을 갈무리하고 곧장 배낭을 메고 쿨리칼론호수Kulicalon Lakes(2,900m)로 향했다.
간신히 멀미에서 벗어났나싶더니 또 곧바로 말로만 듣던 고산병에 걸렸다. 산행이 시작되면서 고도를 높여 가자 숨이 턱턱 막히고, 머리는 점점 멍해지며 힘이 빠졌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고산병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 쿨리칼론호수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대장님과 탐사대원들 모두가 걱정해 줬다. 그들의 배려에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탐사에 나서기 전에는 무거운 장비를 더 짊어지고, 몸이 아프거나 고산병에 걸린 대원이 있으면 내가 더 챙기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하지만 탐사를 시작하자마자 내가 가장 빨리 고산병에 걸리고 말았다. 정말 속상하고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어떻게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음 산행을 준비했다.
오지 중의 오지인 Dushoha 호수를 찾아간다.
탐사 4일차에는 알라우딘 패스Alaudin Pass(3,860m)를 지나 알라우딘호수Alaudin Lake(2,800m)로 향했다. 고도를 960m 올렸다가 다시 내려오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연신 파이팅을 외치며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알라우딘 패스에 올라오면서부터 내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고, 두통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스틱에 의지해도 힘이 빠져 주저앉았고, 그 순간 천둥과 폭우가 쏟아졌다. 비를 피할 곳이 없어 우리는 그저 빨리 목적지인 알라우딘호수까지 가야만 했다. 패스 위에서 후미 대원들을 기다리느라 비에 흠뻑 젖은 선두 대원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고, 눈물이 났다.
아! 지긋지긋한 고산병이여!
시간은 흘러 탐사 8일차. 지긋지긋한 고산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양한모 지도위원님의 지휘 아래 김원근 대원과 함께 우리만 다른 루트로 침타르가봉을 오르기로 결정했다. 이른 아침 대장님과 대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른 루트 시작점인 가자Gaza마을로 이동해 거기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그래서 같은 팀이지만,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됐다.
아름다운 7개의 호수를 이어 걷는 세븐레이크 트레킹.
탐사 10일차가 되어서야 드디어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했다. 복통과 두통이 사라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우리 목적은 말로예 알로스호수Maloye Allos Lake(1,860m)에서 라이트 진돈Right Zindon 협곡(4,200m)까지 가서 대원들과 합류하는 것이었다. 고도를 계속 올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자마을 팀 모두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어 문제는 없었다. 힘들 때마다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대원들을 생각하며 너덜지대를 올라가니 아름다운 빅 알로호수Big Allo Lake(3,150m)가 우리를 맞이했다. 그곳의 에메랄드빛 호수와 큰 바위는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호수까지 위험요소들이 많았다. 깨진 바위들 속 깊은 구멍들이 큰 난관이었다. 안전을 고려하며 조심스럽게 걸어갔지만 온몸은 땀으로 젖고 일사병 증상이 나타났다. 약을 먹고 휴식을 취했지만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지도위원장님은 깊은 고민 끝에 나와 김원근 대원에게 빅 알로호수에서 일단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올라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빅 알로호수에서 기다리며 대원들의 안전 산행을 기원했다.
이틀 후 어디선가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대장님이었다. 그 뒤로 지친 모습으로 하산하는 대원들을 한 명씩 안아주며 짧은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다음 일정을 위해 가자마을로 하산했다.
라이트 진돈에 설치한 베이스캠프.
몸이 아픈 건 하루 정도 지나면 낫는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다. 대원들과 재회하면서 그걸 더 깊게 느꼈다. 대원들과 함께하지 못한 죄책감과 미안함은 평생 남을 것 같다. 그래도 마냥 우울감에 빠져 있지 않기로 했다. 함께하지 못해 미안했으니 그만큼 남은 탐사 기간 동안 더욱 희생하고 솔선수범하겠다고 다짐했다.
쿨리칼론호수에서 현지 가이드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음은 나와 다른 루트로 탐사한 송민수 대원의 글이다.
'대원들과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우리가 떨어져 있는 동안 어떤 연락도 할 수 없었기에 더 보고 싶었고, 걱정되었다. 고산의 날씨가 점점 거칠어질수록 그들이 잘 지내고 있을지 걱정이 깊어지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포터들의 일정과 기상 여건으로 인해 힘든 운행이 계속되었지만, 약속 장소인 진돈Zindon 캠프에 도착했다. 하루만 기다리면 볼 수 있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과연 제대로 오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해가 저물 무렵, 저 멀리서 그을린 얼굴에 터덜터덜 걸어오는 위원장님이 보였다.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의 얼굴에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읽을 수 있었다. 위원장님은 배낭을 풀자마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셨다. 우리가 자랑스럽다며 울고 있는 용은 형의 영상과, 우리를 위해 콜라 하나 더 사자는 원근 형의 이야기를 들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대원들이 너무 고마웠고 든든했다.
다음날 빅 알로호수Big Allo Lake(3,150m)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맏형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창백하고 홀쭉해진 얼굴에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엿볼 수 있었다. 길을 잃지 않고, 아무 일 없이 다시 만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비록 4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파드루드마을.
일곱 빛깔 환상호수
침타르가봉 일원의 탐사를 마친 뒤 세븐레이크로 향했다. 타지키스탄의 세븐레이크는 다양한 크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7개의 호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호수는 타지키스탄 서부 판자켄트Panjakent 근처의 고산지대 싱 리버Shing River협곡의 판산맥에 위치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곳의 풍경은 정말 경이로워 깊은 감동을 느낄 정도다. 각각의 호수는 저마다 독특한 색깔과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사이를 걸으며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되었다. 푸른 호수의 물결, 장엄한 산들의 실루엣, 그리고 산속의 신선한 공기가 하나로 어우러져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그 속의 작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다.
알라우딘 패스를 올라가며 계곡을 건넌다.
세븐레이크 트레킹 중 5번째 호수인 쿠르닥호수Khurdak Lake에 위치한 파드루드Padrud마을에서 문화교류행사를 벌이기로 했다. 한국에서부터 많은 준비를 했던 행사라 기대가 됐다. 오전 9시부터 파드루드마을 아이들이 게스트하우스에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건물에 아이들로 만석을 이루었다.
나와 공기빈 대원이 한 팀을 맡아 8명의 타지키스탄 아이들과 준비한 에코백에 서로의 나라를 그리고 그림을 새겼다. 에코백에 내 이름을 새긴 '엔젤'과 내 얼굴을 그린 '가브리엘'도 있었다. 또 K-POP이 좋아서 한국어를 조금씩 배워 유학을 오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준비했던 에코백이 금방 동날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만큼 우리의 열정이 타지키스탄 아이들에게 닿길 바란다. 순수하고 표현에 진심인 아이들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세븐레이크 종주 마지막 날 플로깅을 진행한 후 정크아트로 산山을 표현했다.
쓰레기 더미에 깔려 죽어 있는 참새
세븐레이크를 걷는 마지막 날 우리는 길가와 호수 주변의 쓰레기를 수거하며 플로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인적이 드문 오지에 쓰레기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이러한 오지에서도 쓰레기는 발견되었다. 그 양도 상당했다. 그리고 쓰레기 더미 속에서 죽어 있는 참새 한 마리를 발견했을 때 우리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이 작은 생명체의 죽음은 인간의 무분별한 행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것 이상의 의미를 느꼈다.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깨닫고 우리의 작은 행동이 지구를 지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이해하게 된 하루였다. 세븐레이크에서의 마지막 걸음은 자연과의 소중한 연결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오지탐사대는 나에게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해 줬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내 안의 도전정신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혼자서는 결코 감당하기 힘들었을 무모하고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탐사대원들이 있어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힘을 모아 난관을 극복했고 그 과정에서 대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삶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다.
파드루드마을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에코백을 만들었다.
이번 오지탐사를 거치면서 꿈이 생겼다. 내가 사랑하는 자연과 전공지식을 융합해 아웃도어에 특화된 화장품 회사를 만들고 싶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동시에 환경 보호를 위한 활동도 꾸준히 참여하는 그런 회사 말이다. 자연과의 깊은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그 속에서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고자 한다.
고소 적응 차 오른 빅 알로 호수.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대장님이 타지키스탄이 우리의 탐사지라고 말해 주셨을 때 절로 튀어나온 말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나라 이름이라 생소했다. 도대체 얼마나 오지일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감정의 항아리가 채워졌다.
좀더 정확한 탐사지는 타지키스탄의 파미르고원Pamir Mountains이란 곳이었다. 곧장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세계의 지붕'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평균 높이 6,100m 이상이며 중앙아시아의 텐산이나 카라코룸, 쿤룬, 티베트고원, 히말라야 등 명성이 자자한 산맥들과 어깨가 이어지는 산줄기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과 한데 어우러진 땅. 그중 우리는 파미르 서쪽 판산맥에 위치한 침타르가봉Chimtarga Peak(5,489m)과 세븐레이크7Lakes 트레일을 중점적으로 탐사했다.
먼저 시간을 되돌려보면, 2023년 그때만 해도 산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했다. 하지만 오로지 새로운 경험과 아름다운 대자연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2023 오지탐사대에 지원했었다. 아웃도어 테스트에서 그때 처음 산을 접했다. 결과는 당연했다. 부족한 아웃도어 지식과 체력이 발목을 잡아 결국 탈락의 쓴맛을 보았다.
하지만 그 경험은 스스로에게 큰 변화를 일으켰다. 산에서 느낀 벅찬 감정과 행복감이 오랜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이후 거의 매일이다시피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에 오르며 자연에 대한 매력에 사로잡히자 바다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다. 그래서 무작정 휴학을 하고 제주도로 내려가 100일 동안 다이버가 되기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평일에는 스킨스쿠버와 프리다이빙을 배우며 바다의 깊이를 경험했고, 주말이면 한라산에 올라 자연과 교감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고, 그 안에서 배우는 것과 만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1년이 흐른 후, 나는 2024년 오지탐사대에 다시 도전해 탐사대원이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전의 실패와 노력은 나를 성장시켰고, 이제는 자신감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준비가 되었다.
우리가 도전하는 침타르가봉은 타지키스탄 판자켄트Panjakent 지역의 판산맥에 위치하고 있다. 일대 산맥의 최고봉으로 해발 5,489m에 달한다. 이 산을 오르기 위해 베이스캠프인 알피니스트 캠프Alpinist Camp Artuch(2,200m)까지 차량으로 이동했다.
시내를 벗어나자 비포장도로가 펼쳐졌다. 멀미에 시달리는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어려움을 겪으며 도착한 캠프에서 우리는 빠르게 짐을 갈무리하고 곧장 배낭을 메고 쿨리칼론호수Kulicalon Lakes(2,900m)로 향했다.
간신히 멀미에서 벗어났나싶더니 또 곧바로 말로만 듣던 고산병에 걸렸다. 산행이 시작되면서 고도를 높여 가자 숨이 턱턱 막히고, 머리는 점점 멍해지며 힘이 빠졌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고산병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 쿨리칼론호수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대장님과 탐사대원들 모두가 걱정해 줬다. 그들의 배려에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탐사에 나서기 전에는 무거운 장비를 더 짊어지고, 몸이 아프거나 고산병에 걸린 대원이 있으면 내가 더 챙기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하지만 탐사를 시작하자마자 내가 가장 빨리 고산병에 걸리고 말았다. 정말 속상하고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어떻게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음 산행을 준비했다.
아! 지긋지긋한 고산병이여!
시간은 흘러 탐사 8일차. 지긋지긋한 고산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양한모 지도위원님의 지휘 아래 김원근 대원과 함께 우리만 다른 루트로 침타르가봉을 오르기로 결정했다. 이른 아침 대장님과 대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른 루트 시작점인 가자Gaza마을로 이동해 거기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그래서 같은 팀이지만,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됐다.
그러나 호수까지 위험요소들이 많았다. 깨진 바위들 속 깊은 구멍들이 큰 난관이었다. 안전을 고려하며 조심스럽게 걸어갔지만 온몸은 땀으로 젖고 일사병 증상이 나타났다. 약을 먹고 휴식을 취했지만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지도위원장님은 깊은 고민 끝에 나와 김원근 대원에게 빅 알로호수에서 일단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올라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빅 알로호수에서 기다리며 대원들의 안전 산행을 기원했다.
이틀 후 어디선가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대장님이었다. 그 뒤로 지친 모습으로 하산하는 대원들을 한 명씩 안아주며 짧은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다음 일정을 위해 가자마을로 하산했다.
'대원들과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우리가 떨어져 있는 동안 어떤 연락도 할 수 없었기에 더 보고 싶었고, 걱정되었다. 고산의 날씨가 점점 거칠어질수록 그들이 잘 지내고 있을지 걱정이 깊어지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포터들의 일정과 기상 여건으로 인해 힘든 운행이 계속되었지만, 약속 장소인 진돈Zindon 캠프에 도착했다. 하루만 기다리면 볼 수 있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과연 제대로 오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해가 저물 무렵, 저 멀리서 그을린 얼굴에 터덜터덜 걸어오는 위원장님이 보였다.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의 얼굴에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읽을 수 있었다. 위원장님은 배낭을 풀자마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셨다. 우리가 자랑스럽다며 울고 있는 용은 형의 영상과, 우리를 위해 콜라 하나 더 사자는 원근 형의 이야기를 들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대원들이 너무 고마웠고 든든했다.
다음날 빅 알로호수Big Allo Lake(3,150m)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맏형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창백하고 홀쭉해진 얼굴에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엿볼 수 있었다. 길을 잃지 않고, 아무 일 없이 다시 만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비록 4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침타르가봉 일원의 탐사를 마친 뒤 세븐레이크로 향했다. 타지키스탄의 세븐레이크는 다양한 크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7개의 호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호수는 타지키스탄 서부 판자켄트Panjakent 근처의 고산지대 싱 리버Shing River협곡의 판산맥에 위치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곳의 풍경은 정말 경이로워 깊은 감동을 느낄 정도다. 각각의 호수는 저마다 독특한 색깔과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사이를 걸으며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되었다. 푸른 호수의 물결, 장엄한 산들의 실루엣, 그리고 산속의 신선한 공기가 하나로 어우러져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그 속의 작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다.
나와 공기빈 대원이 한 팀을 맡아 8명의 타지키스탄 아이들과 준비한 에코백에 서로의 나라를 그리고 그림을 새겼다. 에코백에 내 이름을 새긴 '엔젤'과 내 얼굴을 그린 '가브리엘'도 있었다. 또 K-POP이 좋아서 한국어를 조금씩 배워 유학을 오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준비했던 에코백이 금방 동날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만큼 우리의 열정이 타지키스탄 아이들에게 닿길 바란다. 순수하고 표현에 진심인 아이들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세븐레이크를 걷는 마지막 날 우리는 길가와 호수 주변의 쓰레기를 수거하며 플로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인적이 드문 오지에 쓰레기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이러한 오지에서도 쓰레기는 발견되었다. 그 양도 상당했다. 그리고 쓰레기 더미 속에서 죽어 있는 참새 한 마리를 발견했을 때 우리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이 작은 생명체의 죽음은 인간의 무분별한 행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것 이상의 의미를 느꼈다.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깨닫고 우리의 작은 행동이 지구를 지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이해하게 된 하루였다. 세븐레이크에서의 마지막 걸음은 자연과의 소중한 연결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오지탐사대는 나에게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해 줬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내 안의 도전정신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혼자서는 결코 감당하기 힘들었을 무모하고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탐사대원들이 있어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힘을 모아 난관을 극복했고 그 과정에서 대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삶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다.
강용은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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