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
▶百番 읽기 바라며, 日本人이 잘 사는 理由 <國民 精神文化의 比較>
⑴한국인은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평범한 근무 복이나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⑵한국인은 호의호식하는 것을 성공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공기 밥 1사발, 단무지 3개, 김 3장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⑶한국인은 크고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 수상이나 일본인은 20평정도 집에서 사는 것을 자족으로 알고 만족한다. 실제로 전직수상이나 각료들이 20평 규모의 집에 사는 것이 일반화된 나라다.
⑷한국인은 비싼 외제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한다.
⑸한국인은 탈세, 감세를 하려고 거짓신고가 다반사인데, 일본인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정직하게 살려고 한다.
⑹한국인은 아홉 번 잘하다 한번 잘못하면 손가락질하며 따돌리는데, 일본인은 한번 잘하고 9번 실수를 해도 한번 잘한 것을 칭찬격려 해 준다. 일본인은 전두환 노태우가 감방에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고 한다.
⑺한국인은 조금만 알면 더 이상 배우지 않으려는 꽉 찬 물병인데, 일본인은 아무리 알아도 또 공부하고 노력하는 빈 항아리이다.
⑻한국인은 자기를 높이고 과시하며 상대방을 깔보려 하는데, 일본인은 자기는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려 한다.
⑼한국인은 수단방법 불문하고 내가 출세해야 자손이 잘산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인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절약해야 자손이 잘 산다고 근검절약이 몸에 배여 있다.
⑽한국인은 나라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욕하는 것을 애국자 인양 여기는데, 일본인은 나라를 받들고, 총리 말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을 애국이라 생각한다.
⑾한국인은 모르는 것도 아는 체 하고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는데, 일본인은 아는 것도 동료와 협의 확인을 하며, 일을 처리함에 전문가의 조언을 경청한다.
⑿한국인은 말로만 애국애족을 떠들고 실천에는 소극적인데, 일본인은 애국애족을 말로 떠들지 않고 소리 없이 실천한다.
⒀한국인은 외국에 나갈 때 빈손으로 나가서 잔뜩 사들고 오는데, 일본인은 자국 상품을 들고 나가 실컷 홍보하고 자랑하고 돌아온다.
⒁한국인은 높은 자에겐 약하고 아랫사람에겐 강한 상약 하강형이 많은데, 일본인은 만나는 사람마다 깍듯이 대하며 예의가 지나칠 정도로 바르다.
⒂한국인은 안 먹어도 먹은 척, 책임이 있으면서 없는 척 오리발을 내미는데, 일본인은 잘못은 서로 책임지겠다고 하며, 그 책임자는 할부를 해버린다.
?한국인은 개개인이 사치하여 국가는 가난한데 비하여, 일본인은 한국보다 훨씬 어렵고 못사는 것 같지만 국가는 세계 초일류 부강 대국이다.
?한국인은 혼자서는 잘 하는 것 같지만 여럿이 하는 일엔 싸움이 일어나고, 일본인은 개개인을 보면 형편없이 보이지만, 뭉치면 뭉칠수록 단결이 되는 민족이다.
?한국(노조)은 회사가 2천억 이상의 손실이 나도 성과급 달라고 파업하는데, 일본(노조)은 흑자가 나도 회사의 앞날을 생각하여 임금동결을 자청한다.
※萬事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입니다. 있어서는 안될 사람입니다.' 국가에도 꼭 필요한 정치가가 있어야 하는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정치가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있어서는 안될 정치가도 있어서 정치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교회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남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반드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도 불행하지만, 더 불행한 사람은 있어서는 안될 사람입니다. 남을 비난하는 사람, 공연히 트집을 잡는 사람, 불평과 원망만 하는 사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가 혼란해집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이왕이면 더 크게 쓰임 받는 그릇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동 작가 정채봉씨가 쓴 '만남'이란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왜?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그렇습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리고 했습니다. 왜?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차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비참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왜?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닿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왜? 귀중한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그렇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왜?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까? 힘이 들 때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만남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한 소년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어머니, 사람은 몇 살에 죽어요?' 아들의 질문을 받은 어머니는 그 아들을 데리고 공동묘지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얘야, 무덤의 비석에 씌어진 사람들이 몇 살에 살다가 죽었는지 연수를 헤아려 보아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수많은 비석을 살펴보고 나서 '사람의 죽는 나이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복음을 주고 예수를 영접시키고 훌륭한 믿음의 아들로 키웠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는 것처럼 노인은 죽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도 죽습니다. 부자도 죽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죽습니다. 죽음은 동서양이 따로 없습니다. 남녀노소의 차별도 없습니다.
이 죽음의 길은 모든 사람이 다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죽음의 길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죽음은 우리들 앞에 놓여져 있건만 죽음과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같이 살아갑니다. 이건 아주 큰 착각이고 오해입니다.
성경을 한번 보세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기 '정한 것이다'라는 말은 '정해 놓은 것'이란 말로 '앞에 가로 놓여 있는 것, 피할 수 없는 것, 운명'이라는 말입니다.
'호라티우스'는 '이 세상의 부나 권력이 끝끝내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아니 갈 장사가 없습니다. 정든 집을 떠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아내를 두고 가야 합니다. 철부지 어린것들을 두고 가야 합니다. 붙잡아도 가야 합니다. 내 앞으로 등기된 땅도 집도 채권도 저금통장도 다 놓고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생명의 정지상태를 죽음이라고 합니다. 신학적으로는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죽음이라고 합니다. 육체적으로 죽음은 심장이 멈추어지고 호흡이 끊어지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상태입니다.
지금 우리 가슴속에 있는 심장은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뛰고 있습니다. 국경일도 없이, 휴일도 없이 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열심히 뛰는 심장이 멈추어 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죽음은 무자비합니다.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어느 누구도 이 죽음에서 예외인 인생은 없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종착역이 아닙니다. 종지부가 아닙니다. 전12:14절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두렵지 않습니까?
▶로마 '우르반' 대학의 정문에는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이라는 글이 기록되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 사연인즉, 이 대학에 법대를 다니며 장래가 촉망받는 한 청년이 있었는데 가난하여 한 부자를 찾아가 학비를 부탁하자 그 노인은 그 청년의 학비를 대어 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자네는 법대를 졸업하고 무엇을 하려는가?' '변호사가 되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좋은 집을 짓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좋은 차를 사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쁜 아가씨와 결혼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딸을 낳아 잘 기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점점 늙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청년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노인은 청년에게 '그 다음에는 죽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가리켜 주었답니다. 크게 깨달은 그 청년은 세상을 공들여 살다가 그 학교에 총장이 되어 젊은 청년들에게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가?'를 바로 알고 죽음을 준비하면서 사는 자가 되라는 묵시적인 교훈입니다.
▶헬라제국을 통치하던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필립' 왕에게는 이상한 신하하나가 있었는데 이 신하는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일만 합니다.
그 일이 무엇인가 하면 이른 아침에 이 신하는 왕의 침소 머리맡으로 나아갑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왕을 깨웁니다. '왕이시여. 오늘이 어쩌면 대왕마마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소리를 듣고 '필립' 왕은 깜짝 놀라면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 맞아. 안개 같은 인생,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지. 이 귀중한 날을 내가 헛되게 보낼 수 없지' 그리고는 부랴부랴 진지 상 앞에 왕이 앉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신하는 자기 몸 안에서 흉측하게 생긴 해골바가지를 끄집어내어 왕의 진지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왕은 밥을 먹으면서 연신 그 해골을 쳐다봅니다. '그래 맞아.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빌립 왕은 그 해골을 바라보면서 욕심 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백성들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이화대학의 최화숙 교수가 쓴 '아름다운 죽음의 안내서'에 보면, 사람이 죽을 때는, 장갑을 끼었다가 벗을 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 때에 현세와 내세를 동시에 보며 신비의 세계를 말해준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던 17세 난 소년은 죽기 직전에 '아! 베드로가 보인다. 그 옆에 빛나는 분은 누구냐?'고 엄마에게 묻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하니까, '큰일났다. 나는 천국 가는데 우리 엄마는 지옥 가겠다'고 걱정을 하다가 '엄마, 나는 먼저 천국에 갈 테니 엄마는 나중에 오세요'하며 천사 같은 얼굴로 세상을 떠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내일 일을 모릅니다. 그래서 복음 성가에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죽음은 만인이 필히 가야할 길입니다. 남자도 죽고, 여자도 죽습니다 할아버지도 죽고, 아버지도 죽고 손자도 죽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죽고 약한 사람도 죽습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사람도 죽습니다. 배운 사람도 죽고, 배우지 못한 사람도 죽습니다 노인도 죽고 어린 아기도 죽습니다. 임금도 죽고, 신하도 죽습니다. 검은 사람도 죽고, 흰 사람도 죽습니다.
스승도 죽고, 제자도 죽습니다. 진자도 죽고, 이긴 자도 죽습니다. 환자도 죽고, 의사도 죽습니다. 시인도 죽고, 백정도 죽습니다. 아내도 죽고 남편도 죽습니다. 죄수도 죽고, 판사도 죽습니다. 부모도 죽고, 자식도 죽습니다. 귀족도 죽고, 노비도 죽습니다. 미녀도 죽고 추녀도 죽습니다. 사병도 죽고, 장군도 죽습니다.
정복자들도 죽었습니다. 중국 대륙, 구라파 제국, 러시아 변방까지 손에 넣고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슴에 품은 징기스칸도 죽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무적의 황제 알렉산더도 일생 33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자신이 정복한 구라파의 광대한 땅을 어머니 앞에 자랑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도 죽었습니다.
세계의 절세 미인들도 죽었습니다. 애굽의 클레오파트라. 중국의 양귀비가 죽었습니다. 세계의 미스 유니버스들도 때가 되면 한 사람 한 사람 생명이 진하면 죽을 것입니다. 화려한 배우들도 죽었습니다. 은막의 여왕 마릴린 몬로, 잉그릿드 버그만, 오드리 햅번, 서부의 사나이 죤 웨인도 죽었습니다.
독재자들도 죽었습니다 히틀러, 호메니, 마르크스, 스탈린, 김일성도 죽었습니다. 예술가들도 죽었습니다. 베토벤, 바하, 슈베르트, 모차르트가 죽었습니다. 밀레, 고호, 미켈란젤로, 피카소가 죽었습니다.
과학자들도 죽었습니다. 뉴우톤, 갈릴레오, 아인슈타인이 죽었습니다. 유명한 정치인들도 죽었습니다. 처칠, 워싱턴, 케네디, 이승만씨가 죽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스승들도 죽었습니다. 조만식, 김구, 윤봉길씨가 죽었습니다.
갑부들도 죽었습니다. 오나시스, 록펠러, 이병철씨가 죽었습니다. 통일의 꿈을 앉고 1000마리 소 떼를 몰고 방북 했던 정주영씨도 통일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마호메트, 공자, 부처도 죽었습니다.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도 죽고 그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사들도 죽었습니다. 모두 죽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3;2절에 '죽을 때가 있나니' 욥34:15절에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로다' 히브리서 기자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은 밤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에도 있고, 낮에도 있습니다. 죽음에는 휴일이 없습니다. 죽음은 전쟁터나 병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도 있고, 산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고 거리에도 있습니다. 죽음은 전쟁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시에도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누군들 죽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을 가르쳐 주거나 배운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은 찾아옵니다. 죽음은 연습 한 적이 없는데도 죽게 됩니다.
▶일제시대 조선일보 사설에 <일금 천 원은 누구의 것이냐?>란 제목의 글이 기재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던 한 사람이 그 당시 인력거를 끌며 천 원만 예금하면 집을 사고, 가게를 내고, 알뜰한 부인을 만나 행복하게 살리라고 야무지게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새벽부터 밤중까지 뛰고 달리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저금통장의 액수는 점점 늘어가고 마침내 천 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희망찬 앞날을 생각하며 기뻐했지만 갑자기 큰 병에 걸려 앓다가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가족도 없던 그였기에 시청에서 그의 시신을 장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통장에 남아 있는 일금 천 원이 문제였습니다. 황천에 우체국이 있다면 부쳐주겠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사설은 말하고 있습니다.
잘 살기 위해 밤, 낮 없이 뛰고 달리며 사업을 확장하고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해도 죽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허무하게 됩니다. 재산이 많다고 죽은 다음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이 자기와 상관없다고 하는 생각도 계산 착오입니다. 그러므로 사업 때문에 신앙생활을 등한히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일본 도쿄에서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이봉주선수가 뒤에 우승 소감을 말하기를 '뛰는 도중에 고통을 견딜 수가 없어서 차라리 죽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죽고 싶도록 고통스러웠지만 왜 끝까지 뛰었습니까? 바로 상 때문입니다. 그 상이 그를 뛰게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는 그때 인내하지 못하고 그만 주저앉아 버렸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처럼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뛰어야 합니다.
예화 모음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불쌍한 소녀가 수용돼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외롭게 지냈습니다. '회복불능'이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에게 한 나이 많은 간호사가 매일 과자를 들고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얘,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결코 외톨이가 아니야. 내가 있잖니?'
6개월 동안 한결같이 찾아와서 소녀를 위로하고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소녀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밝은 웃음을 되찾고 정상이 되었습니다.
간호사의 사랑으로 회복이 된 이 소녀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신문에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어린 소녀를 돌볼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어린 소녀의 스승이 되어 그를 훌륭한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이 어린 소녀의 이름은 '헬렌 켈러'이고 그의 스승이 되었던 소녀의 이름은 바로 '앤 설리번'(Anne Sullivan Macy;1866-1936)입니다. 후에 사람들이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해 낼 수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설리번 선생은 '나도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줄 수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은혜를 주고, 사랑 받은 사람이 사랑을 주고, 축복 받은 사람이 축복을 주는 것입니다.
▶한 여행자가 어떤 도시에 이르러 길가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물어봅니다. '이 도시 사람들의 인심은 어떠합니까?' 그러자 노인이 되묻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들렀던 도시 사람들의 인심은 어땠소?' 여행자가 말합니다. '너무 천박했어요. 믿을 친구가 하나도 없었답니다.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말합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이 도시도 비슷할 겁니다.'
얼마 후에 다른 여행자가 이 도시에 와서 노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노인은 여행자가 이전에 들렀던 다른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물어봅니다. 여행자가 말합니다. '아주 좋았습니다. 친절하고 성실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인이 대답합니다. '아마 이 도시도 그럴 겁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통해서 남을 판단하게 됩니다. 자기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남도 존중 받아야 함을 알고 존중합니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정이 많다고 느끼면서 정중하게 상대방을 대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비하하고 자기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람은 남을 볼 때도 삐딱하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취임식 때 자기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택해 취임 선서를 한 후, 성경에 입을 맞춤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 심을 나타냅니다.
링컨 대통령은 마7:1절의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에 손을 얹고 취임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변호사 시절에 잘난 척을 잘하는 '제임스 쉴즈'라는 사람을 못 마땅히 여겨 익명으로 신문에 비난의 글을 올렸다가 쉴즈의 목숨 건 결투 신청을 받고, 결국 사과를 통해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답니다. 이 사건 이후로 링컨은 마7:1절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탈무드는 '남을 비방하는 것은 살인보다 더 위험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지만 비방은 세 사람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즉 '비방하는 사람,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 그리고 비방 당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많이 있습니다. '첫째, 남의 형편을 잘 알 수 없기 때문이요, 둘째,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며, 셋째는, 심판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관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사이에 있었던 대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서로 간에 흉허물없이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하루는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좀 놀리고 싶어서 무학대사에게 넌지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사, 이제 보니까 대사의 얼굴은 돼지 상이군요.' 그러자 무학대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폐하, 폐하의 얼굴은 부처님 상이시군요.' 그 소리를 듣고 이성계는 의아스럽게 여기면서 물었습니다. '아니, 대사. 나는 대사를 돼지같이 생겼다고 말했는데, 어떻게 대사는 나를 부처처럼 생겼다고 말하시오?'
그때 무학대사가 껄껄 웃으면서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야 뻔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생긴 대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돼지처럼 생겼으니까 다른 사람도 돼지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부처같이 생겼으면 다른 사람도 부처같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인간이 무지해도 한참 무지해서 남의 허물과 실수를 잘 보지만 정작 자기의 죄와 허물과 실수는 발견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영화 중에 하나가 벤허(Benhur)입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을 때에 이야기입니다. 그는 적군 로마에게 붙들려 졸지에 노예가 됩니다. 노예로 끌려 갈 때 갈증으로 죽게 되었을 때 한 사람이 물을 주어 마셨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었습니다.
그 후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너무나 고민하고 분에 못 이겨 하다가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둥병 자들만 모여 사는 곳을 추방당하였습니다. 가정이 쑥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벤허는 노예로 끌려가 배속에서 노를 젖는 일을 합니다. 죽기까지 이 일을 하여야 합니다. 배를 젖다가 체력을 잃으면 죽여 버렸습니다. 이제 인생이 끝장인 것 같았습니다. 그 때 배가 침몰하였습니다. 벤허는 로마 호민관의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그래서 호민관의 양아들이 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라는 청년이 사형 당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벤허는 구경을 나갔습니다. 그 청년을 보고 놀랐습니다. 자기가 노예로 끌려 갈 때 갈증으로 죽게 되었을 때, 물을 주어 살린 이였습니다.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였습니다.
미친 듯이 달려가 물을 떠 예수님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로마 병정이 채찍으로 치며 물을 주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로마인에게 노예로 끌려가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던 참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로마인을 향한 증오가 지글지글 타올랐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에 평화가 깃들었습니다. 로마 병정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에 벤허 마음은 왠지 모르는 기쁨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와 누이의 문둥병도 다 나았습니다. 십자가 그 순간 병도 다 나았고, 마음에 미움도 다 사라지고 가정도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뒷 이야기에 이런 사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벤허를 촬영한 영화 감독은 수 천명의 엑스트라 배우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 순간을 촬영할 때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마시고 십자가만 약 10분 동안 응시하여 주십시오. 그 장면을 찍어야 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였습니다. 돈을 받고 하는 배우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수 천명의 눈에서는 자기들도 모르게 눈시울이 적셔 지면서 모두가 감격 속에 주르르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두가 진실처럼 경건해 졌습니다. 그런 은혜의 순간은 없었다는 고백을 모두가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능력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나폴레옹 황제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러시아에 진주했을 때의 일입니다.
프랑스군이 러시아 장교 한 사람을 생포했는데 그 사람이 워낙 똑똑해 보여서 프랑스군으로 전향하도록 회유했습니다. 러시아 장교는 전향에 대한 회유를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프랑스 사령관의 명령으로 병사 하나가 불에 달군 인두를 끄집어내서 러시아 장교의 팔뚝에 영어로 N자를 새겼습니다. 러시아 장교가 자기 팔뚝에 새겨지는 글씨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요' 그때 프랑스 사령관이 웃으면서 '그 N자는 네가 오늘부터 나폴레옹 황제에게 속해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을 듣자마자 러시아 장교는 순간적으로 프랑스 병사가 들고 있던 칼을 빼앗아 가지고 N자가 새겨진 자기의 팔뚝을 짤라 버렸습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기의 팔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러시아군 이외에 다른 흔적을 가질 수가 없소. 나는 영원히 러시아 황제에게 속해 있을 뿐이요'
이것이 충성입니다. 충신은 한 임금만 섬깁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만 섬겨야 합니다.
▶유명한 무디 목사님이 미국 큰 도시에서 집회를 열었는데 그곳 신문 기자들이 그를 중상 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날 신문에 무디에 관한 온갖 허위선전과 악선전이 가득했습니다. 집회 담당자들이 펄쩍 뛰며 이 사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의논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억울한 일을 당한 무디를 빙긋 웃고 걱정이 없습니다. 스텝들이 '아니 화내지 않습니까? 사실도 아닌 것을 비방하고 욕하는 저 사람들한테 할 말이 없습니까?'라고 하자 그때 무디 목사님은 '내버려두게나 저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지 나는 신문에 난 것보다 훨씬 더 악한 놈이거든'
그 날 밤 무디 목사는 집회에서 '나는 죄인이기에 하나님 품에 왔노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그때 자기를 비방했던 기자들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며 '나도 당신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겠다'고 하면서 주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되었답니다.
▶어느 신앙인 부자간에 오랜 여행을 하던 중 하루는 외진 산골에서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해는 지고 하는 수 없이 민박을 해야 할 형편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에게는 많은 돈이 있었으므로 혹 자다가 집 주인에게 도난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과 의논 끝에 군대 불침번식으로 번갈아 가며 지키기로 했습니다. 먼저 아들이 짐을 지키게 되었고, 아버지는 금세 녹아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났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마구 흔들어 깨웁니다.
'아버지! 우리가 잠 안자고 짐을 지킬 필요가 없어요! 내가 앉아 있는 동안 주인집 아저씨가 성경 말씀을 부인에게 읽어 드리고 같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분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간절히 기도했으며, 또한 놀란 것은 생전 처음 보는 우리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어요! 아버지도 그 기도소리를 들으셨다면 아마 큰 감동을 받았을 겁니다.'
이 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한 동안 말이 없이 생각하다가 '같은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가 남을 의심하고 특히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지 않고 기도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간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곧 바로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교도소에 다니며 교목을 보신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의 결론은 '교도소에는 죄인이 한사람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사람마다 붙들고 그 사연을 들어보면 '모두가 다 억울하게 들어왔고, 재수 없어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죄수가 없이 모인 것이 교도소인데 그곳엔 진짜 죄가 없다고 항변하더랍니다.
사람들은 죄 이야기하면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죄는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절대로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외아들 독생자까지도 버려서 처절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죄를 용서받는 비결은 돈을 들여서 받는 것이 아니고 어떤 선이나 행위로 속죄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없다 함을 주시고 외로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한 교회에 두 권사가 칠십 해를 누리며 사시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그때 한 권사에게 천사장이 묻습니다. '네가 하나님 앞에 드릴 예물이 있느냐?' 그는 거침없이 '예! 나는 70평생 땅에 살면서 봉사를 많이 했고, 선행도 많이 했고, 상장도 많이 받았습니다'하고 장한 보따리를 내 놓고 자랑했습니다.
그 천사장이 보따리를 열어보니 웬일입니까? 다 썩어서 악취가 나므로 하나님께 드릴 예물은 하나도 없었답니다.
또 천사장이 다른 권사에게 '너는 70년을 땅에서 살았으니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있으면 내 놓으라' 그러자 그는 '아무 것도 없으나 다만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감사의 눈물만을 드릴 뿐'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기쁨을 감사했습니다.
천사가 그 성도를 향하여 옷을 벗어 보라고 했습니다. 옷을 벗어보니 놀랄만한 광채가 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못 자국이 몸에 인 쳐 있었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하늘나라의 귀한 면류관을 씌어 주는 줄 믿습니다.
▶오래 된 영화 중에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제2차 대전 때 '헤럴드 레셀'이라는 청년이 공수부대 원으로 전투에 참가했는데 어느 날 전투에서 그 청년은 폭탄을 맞아 두 팔을 다 잃어버리고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낙심하고 절망했습니다. 두 팔을 잃어버리고 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절망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쓸모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래도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이 많지 않느냐?'
레셀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에게는 잃은 것보다 남아 있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두 눈이 있었습니다. 아직 두 귀가 있고, 두 발이 있었습니다. 정말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나는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이 더 많다. 잃은 것은 겨우 두 팔뿐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다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의사에게 부탁하여 의수를 만들었습니다. 열심히 타이프 치는 것을 연습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지내온 생활을 잘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것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화되었습니다.
그 영화에서는 자기가 직접 주연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인기가 절정에 올랐습니다. 크게 성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이 영화가 바로 '우리 생애 최고의 해'입니다.
어느 기자가 그에게 '당신은 신체적 조건으로 인하여 절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태연하게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 얻은 것을 생각하며 살아보세요!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것을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잃은 것의 열매를 크게 보상해주시고 더 많은 가능성이 그 앞에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말하지 말고 미래를 말해야 합니다. 어제를 말하지 말고 내일을 말해야 합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축복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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