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에 관한 예화 모음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 초기의 지도자로 대통령만 못 되었을 뿐 자기가 원하는 모든 중요한 직위를 다 가져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학교를 다닌 기간은 고작해야 2년 남짓이었습니다.
그가 22살이었을 때에 스스로 반문하기를 "내 인생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런 자기 반성을 거쳐 12가지 덕목들을 뽑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첫째- 절제: 과음 과식을 하지 않는다.
둘째- 침묵: 자신과 타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하지 않는다.
셋째-질 서: 물건을 제자리에 놓고 일은 알맞는 시간에 한다.
넷째- 결단: 해야 하는 일은 꼭 완수한다.
다섯째- 절약: 비싼 것은 사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좋은 것이면 산다.
여섯째- 근면: 시간은 헛되이 쓰지 않는다.
일곱째- 성실: 남을 해치는 책략을 사용하지 않는다.
여덟째- 정의: 남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남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
아홉째- 중용: 극단은 피한다.
열째- 청결: 몸, 옷, 집이 불결한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열한번째- 평정: 사소한 일에 화를 내지 않는다.
열두째- 순결: 성을 남용하지 않고 건강과 생산을 위해서 사용한다.
프랭클린은 이상의 12가지를 적어서 목사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다 좋은데 한가지가 빠졌군요. 바로 '겸손'입니다. 이 12가지를 다 이루었다고 해도 '겸손'이 없으면 12가지를 다 잃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프랭클린은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가장 첫 번째 항목에 겸손을 넣고 '예수 그리스도와 소크라테스를 본받는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 단위를 13주 단위로 구분하여 매주 한 항목씩 묵상하고 자신에게 깊이 적용하려고 힘썼다고 합니다.
그는 78세 때 회고록을 쓰면서 말했습니다. "완벽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하였으나 노력하였던 덕택에 좀 더 선량하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최용우
2.겸손과 교만
하나님은 겸손의 문을 통해 들어오십니다.
사탄은 교만의 문을 통해 들어옵니다.
참 겸손은 '나는 겸손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겸손은 '나는 교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교만은 '나는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제불능의 교만은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진저 ⓒ최용우
3.슈바이처의 겸손
20세기의 예수라고 불리운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 검은 대륙의 랍바네대 병원에서 죽어 가는 생명들을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바치고도 부족 되어 모금하여서 병원유지비를 충당하였다. 한번은 모금을 하기 위하여 그의 고향에 돌아올 때 고향 역에 많은 친척친지와 동료들이 영접하러 나와 있었다.
열차가 도착했을 때 맞으러 나온 환영객들은 1등, 2등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맨 뒷간 3등 열차에서 걸어서 나오고 있었다. 영접 객들은 달려가서 박사에게 왜 3등간에 타고 오셨느냐고 원망스럽게 물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4등간이 있어야지요." 하고 더 낮은 자리가 없음을 아쉬워하는 태도였다. 겸손한 자가 존경을 받는다. 보화는 낮은데 묻여 있고 물은 낮은 골짜기를 흐른다.
4.예수님의 초상
정말나라에 코펜하겐 시에 제일 훌륭한 예술품인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이 있다. 그 초상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높아 구경하는 사람이 그치지 않았다. 어떤 유명한 예술가가 이 초상이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이 초상을 가서 자세히 보아도 자기 생각으로 별로 신통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실망한 듯이 나가서 어떤 친구에게 그 말을 한즉 그 친구가 말하기를 다시 와서 끓어 앉고 쳐다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예술가는 곧 가서 초상 앞에 무릎을 끓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쳐다보니 그때야 예수님의 위엄과 자애가 아울러 나타났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든지 겸손해야 한다.
5. 조만식 장로의 겸손
주기철 목사님과 사제지간 되고 주 목사님 교회에 장로님으로 시무 하시던 조만식 장로님이 있었다. 조장로님은 주 목사님을 오산학교에서 교장으로 있을 때 가르쳤다. 그런데 어느 주일 날 조장로님이 예배시간 늦게 손님과 이야기 하다가 교회에 들어오셨다. 주전도사는 설교를 하다가 "조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마시오." 하고 호령을 했다.
이때 되지 못한 장로 같으면 그냥 나가든가 그렇지 않으면 의자에 앉을 것이나 장로님은 그대로 서서 예배를 보았다고 한다. 나중에 "서 계시는 장로님 기도하십시오." 하니 기도하시는데 "하나님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 날 하나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시한 죄를 용서하옵소서." 하고 그 벌로 서서 예배를 드리신 장로님을 본 교우들은 큰 감동을 받고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주의 종의 마음을 상하게 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하고 회개하였다는 겸손하신 장로님이 있다.
6.불란서 포앙가리 대통령의 겸손
유명한 쏠비대학의 라비스 박사가 있었는데 몇 해 전에 그 대학 강단에서 박사 교역 50주년 기념식이 열렸을 때 많은 손님이 입추의 여지가 없이 모여 기념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던 것이다.
이때 라비스 박사는 답사를 하려고 강단에 올라보니 맨 말석 학생들이 앉은자리에 포앙가리 대통령이 학생들과 함께 앉은 것을 보고 너무 황송하여 단상으로 모시려고 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은 끝까지 거절하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배운 제자로서 이 영광스런 자리에 대통령 자격으로 온 것이 아니라, 제자로서 축하하러 왔다고 하였다. 그때에 라비스 박사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이렇게 겸손하신 대통령을 모시었으니 앞으로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7. 미모사
수년 전 무디 선생이 미모사라고 불리 우는 식물을 본 일이 있었다. 우연히 무디 선생이 그 식물을 숨을 내쉬었더니 그 숨쉬는 바람으로 그것이 갑자기 머리를 숙였다. 이상하여 무디 선생이 손을 대었는데 아주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겸손이란 마치 미모사와도 같은 것이다. 겸손은 남에게 선전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가 겸손히 주님과 동행한다고 자화자찬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8.예수탄생교회
베들레헴에 가면 그곳에 예수께서 나신 곳을 기념해서 주후 4세기에 큰 예배당을 지은 것이 지금까지 있다. 돌로 튼튼히 잘 지었고 그 안에 들어가 보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성화를 그렸고 강단 밑에는 바로 예수님께서 나신 곳이라고 대리석에 별표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한다.
그러나 예배당의 특색은 들어가는 문이 하나밖에 없고 그것도 매우 낮으며 작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내자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니까 "이 예배당에 들어오는 사람은 겸손해야 하는 까닭으로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낮고 작은 문으로 들어가려면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 들어 갈 수 있다. 겸손해야 들어 갈 수 있다. 예수님도 겸손한 자를 찾으셨다.
9.겸손의 다섯 가지 덕
① 자기의 죄를 알아 비천에 거하라.
② 내 죄를 통회하고 사실대로 고백하라.
③ 남이 내 결점을 알고 업신여김을 달게 받으라.
④ 사람의 모욕을 참을 뿐 아니라 달게 받으라.
⑤ 모든 전쟁과 공포를 하나님께 돌리고 내게 돌리지 말라(성 벨나드).
10.나이팅게일의 겸손
크리미아 전쟁에 종군하여 많은 호열자 환자를 치료해준 영국의 간호부 나이팅게일은 군인으로부터 광명의 부인이란 이름을 얻었다. 영국이 러시아를 이긴 후 영국 국민은 나이팅게일의 귀환을 고대하며 그 환영 준비에 바빴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은 명예를 즐거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공로를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그녀는 1856년 8월 15일 프랑스 기선을 타고 남 몰래 허스트에 도착했었다.
한 때 국민들은 크게 실망했으나 그의 겸손은 그로 하여금 크게 존경받게 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그녀에게 금강석을 박은 보석 훈장을 수여하고 터키 황제는 값비싼 팔 장식을 보냈다.
영국정부는 성 토마스 병원을 설립하고 25만 불을 주어 그 위대한 공로를 표창했으며 1907년 영국 황제 에드워드는 최고 훈장을 수여하여 그 평생의 공로를 표창했다. 그녀의 영광과 축복은 겸손과 봉사에서 이루어졌다.
11. 가장 보잘 것 없는 자
어떤 청년이 신학자 풀리처에게 묻기를 어떻게 하면 가장 유력한 전도사가 되겠느냐? 하니 그는 만일 그대가 영국에서 제일 보잘것없는 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대를 들어 큰 일을 시키실 것이라 했다.
12.윌리암 케리의 비문
인도에 전도한 영국 선교사 케리의 임종 때 곁에 있는 사람이 조용히 묻기를 "당신의 장례식 설교에 성경 어디를 택하는 것이 좋겠느냐" 하니 그는 말하기를 "나 같은 죄 많은 인간에게 무어라 말해 준다는 것부터 과분하게 생각되지만 꼭 말한다고 하면 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의 많으신 자비를 좇아 내 죄를 도말하소서."
한 구절을 보아 달라 하였다. 그의 유언을 따라 쓴 비문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월리암 캐리 1761년생 죄 많고 약하고 능력 없는 벌레인 나는 당신의 긍휼 하신 은혜에 기대하고 잠드나이다."
13.스윗든의 겸손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고 독신생활로 오직 진리 탐구에만 전념한 스윗든 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는 1774년 3월부터 10월까지의 일기에 신생 경험을 이렇게 썼다. 4월 7∼8일 "나는 남보다 특출한 증거를 가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성령이 내 마음을 바칠 때 이 교만이 누구보다 큰 죄임을 깨달았다."
14. 프랜시스의 겸손
프랜시스 회중 가운데 한 경건한 수도사가 영 안이 열려 천국 보좌 가운데 빛난 좌석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저 보좌를 차지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천사가 대답하기를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가 되어 쫓겨났는데 하나님께서 겸손한 프랜시스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너무나 신기하여 프랜시스를 시험하려고 하였다. 하루는 선생과 같이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신은 스스로 어떤 사람으로 생각합니까?"
"나는 세상 사람 중에 제일 악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말이 진실치 못합니다. 세상에 악한이 많은데 어찌 그런 자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악한이 적지 않지만 내가 받은 은혜를 저들이 받았다면 나보다 만 배나 주를 사랑하고 봉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어찌 그들에게 비교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을 들은 제자는 프랜시스의 겸손에 감탄하였다.
15. 육영수 여사의 겸손
1974. 8. 15 대통령 영부인 고 육 여사를 잃고 온 국민이 슬퍼했다.
붉은 마수 김일성의 지령으로 일본인 문세광의 흉탄에 맞아 쓰러지셨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빈소를 찾아 애도의 머리를 숙이고 영부인의 존귀한 자리이지만 그가 남긴 업적이 더욱 애석하게 하였다.
그 분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고생하는 백성들을 돌봐주고 사랑하여 주었다. 한번은 문둥병자의 손을 만져 주시며 위로하여 주었고 정신박약아와 저능아들을 돌봐주기도 하였다.
또 신체장애자와 양로원에서 외로운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을 찾아가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사치스러운 옷을 금하고 혼분식을 장려하시며 친히 밀가루 음식을 잡수시며 서민과 같이 살았다.
16. 겸손에 숨은 은혜
나의 아들이여, 경건의 은혜를 감추는 것이 그대를 위해서는 더 안전하고 나은 것이다. 그대의 경건을 자랑하지 말라. 그것을 항상 말하는 자가 되지 말라. 그 자랑 속에 그대가 영주하지 말라. 그대 자신을 겸손하게 가지는 것이 언제나 그대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대와 같이 불완전한 자에게 이 은혜가 임했다는 사실에 자랑보다 오히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경건하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지 말라. 이는 그 경건이 바로 다음 순간에는 변하여 딴 것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이런 경건의 은혜를 즐겨하거든 은혜가 이를 가지지 못했을 때가 얼마나 슬프고 곤궁했던가를 생각하라! 위로의 은혜를 즐기는 일에 그렇게 의존해 있지 아니하는 영적 생활의 진보를 도모할지어다. 경건의 은혜는 오히려 겸손에서 자라고 겸양과 인내에서 자라며, 기도에 피곤치 아니하며 경건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 다른 일에서 자란다.
17. 겸손으로 올라가 기쁨으로 내려올 강단
어느 젊은 목사가 큰 예배당에서 설교할 기회를 얻어 기쁘고 장한 마음과 교만한 태도를 갖고 강단에 올라가서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별안간 겁이 나며 말이 어눌하여져서 부득이 중지한 채 올라설 때와는 정반대로 부끄러운 모양과 겸손한 태도로 내려오고 말았다.
그러자 연로한 장로 한 사람이 목사를 찾아와 위로하며 이렇게 일러주었다.
"목사님께서 겸손한 마음으로 강단에 올라 가셨더라면 내려오실 때 기쁨으로 내려올 뻔하셨소."
18. 겸손은 은총의 보금자리
"겸손이란 마음의 고요함이다. 그것은 탐욕이 없는 상태이며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해로운 일에 과민 반응하기 않는 것이며 칭찬을 받거나 멸시를 받아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살아가는 일이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 써 침묵의 바다와도 같은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마음이다. 사람이 겸손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은총의 보금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앤드루 머레이
19. 겸손을 통한 평화
어느 나라에 정원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정원에 있는 모든 나무, 풀, 꽃 하나 하나를 정성으로 가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아침에 정원을 나가 보니 모든 나무들이 시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문 옆에 서 있는 떡갈나무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떡갈나무야, 무슨 일이 있었니? 도대체 왜 다들 시들어 있지?"
"나무들이 서로 자기가 다른 나무보다 못하다고 실망하고 있어요. 소나무는 자신이 포도나무처럼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포도나무는 복숭아나무처럼 똑바로 서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낙담하고 있습니다. 또 제라니움은 라일락처럼 날씬하지도 못하고, 향기도 없다고 불평입니다."
그런데 모두 시들어 있는 중에도 유독 생기 있고 아름다운 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꽃은 바로 팬지(Heart-peace)였습니다. 왕은 그 꽃에게 물었습니다. "팬지(마음의 평화)야, 다들 슬픔 속에서 시들어 가고 있는데 너는 작은 꽃이지만 꿋꿋하게 자라는 것을 보니 짐의 마음이 매우 기쁘구나!"
"네, 고맙습니다. 저는 원래 볼품이 없는 꽃이잖아요, 하지만 왕께서 떡갈나무나 소나무나 복숭아나무 혹은 라일락을 원하셨다면 저를 뽑아 버리고 그들을 심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왕께서 저를 심으신 것은 저를 보시면서 마음에 평화를 느끼기 위함이란 것도 알지요. 그래서 저는 왕께서 저를 보시면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시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왕은 이후로 더욱 팬지꽃을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이 우화의 교훈처럼 겸손한 사람은 어떤 외부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지켜갑니다. 또 이웃에게 평화의 마음을 전해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20. 겸손의 덕
성 어거스틴에게 기독교의 제일 되는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겸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그러면 두 번째로 큰 덕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시 겸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다시 세 번째로 기독교의 큰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세 번째도 역시 겸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겸손에 반대되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악덕 가운데 제일 근본되는 덕목입니다. 교만은 악덕의 어미입니다. 겸손은 모든 덕의 근원이 됩니다. 기독교의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비굴하거나 굽실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한 사람은 오히려 이 우주에서 가장 자유인의 사람이며 왕자이며 공주 같은 사람입니다. 진정한 신사도와 숙녀도는 기독교 신앙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특별한 영적인 왕족이고 귀족입니다. 참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지어 주신대로의 자기 자신을 알고 하나님이 지어 주신대로의 자기 자신에 머무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정가 그대로 하나님의 저울에 자기를 달아보고 하나님의 평가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그것이 겸손입니다.
21.겸손의 미덕
인도선교사로 유명한 윌리엄 캐리는 본래 구두수선공이었다. 그가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었을 때 일부 사람들이 "당신은 옛날에 구두짓는 사람이었다" 고 하면서 평가절하하려고 했으나 그는 "아닙니다. 저는 구두를 짓지 못하고 겨우 수선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철저히 주의 은혜를 의지해 살던 사람이었다. 그가 숨을 거둘 때 시편 51편1절을 읽어달라고 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22. 겸손의 종교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종지(종지)를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다고 했습니다. 일본의 내촌감삼 선생은 말하기를 "구원은 회개에서 시작되고, 회개는 겸손에서 시작된다." 라고 했습니다.
23. 겸손이 그린 '모나리자 미소'
1500년경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있었던 일.
어느 날 매우 신비스러운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이 도시에서 꽤 이름난 화가를 어렵게 만났다. "그림 값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제 초상화를 그려주시겠습니까?"
여인을 본 화가는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나는 너무 바빠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저기 길 건너 초라한 곳에 가면 일거리가 필요한 화가가 있소. 그 사람에게 가보시오."
'일거리가 필요한 화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였고, 여인은 모나리자였다.
24. 겸손이 낳은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은 겸손한 사람이었다. 상대성이론 발견으로 크게 성공한 다음에도 대자연 앞에서 자신은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아인슈타인에게 "선생님, 선생님의 그 많은 학문과 전문적인 지식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라고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실험기구에 있던 물에 손가락을 적신 뒤 한 방울의 물을 툭 떨어뜨리며 말했다.
"나의 학문은 바다에 비유한다면 이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25. 겸손이란
빌립 네리는 16세기의 아주 훌륭하고도 지혜로웠던 그리스도인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교황은 로마 부근 수도원에 있던 어느 수련 수녀가 갈수록 명성을 얻게 되자 네리를 시켜 그 이유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녀는 성녀로서 평판이 나 있었다. 네리는 노새를 타고 한겨울 진흙과 수렁 속 길을 달려 수도원에 다다랐다. 그는 사람을 시켜 그 수련 수녀를 오도록 하였다. 그녀가 방에 들어왔을 때, 그는 그녀에게 오랜 여행 때문에 진흙범벅이 된 그의 신발을 벗기라고 말했다. 그녀는 화가 나서 뒤로 물러나서는 그런 천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토록 명성을 얻고 있는 자신이 그런 일을 요구받다니, 그녀는 생각만 해도 화가 났다. 네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 수도원을 떠나 로마로 돌아왔다.
그는 교황에게 말했다. "이젠 놀라실 것 없습니다. 거기는 성녀가 없어요. 왜냐하면 겸손이 없기 때문입니다." 뜻밖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겸손을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 바라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겸손을 연약한 것으로 간주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실수를 인정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겸손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그러나 주위의 사람들이 주님과 같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겸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온전히 전적으로 의탁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겸손의 의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얻어진다. 그것은 친구로서, 용서와 자비의 유일한 공급처로서 그리고 인생의 모든 중요한 결정의 때마다 상담과 안내를 하시는 분으로서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26. 겸손하게 십자가를 지라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이 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게 만든다.
27. 겸손한 삶
저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장소에 가 본 일이 있습니다. 케네디가 죽고 나서 기독교의 어느 잡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었습니다. '그렇게도 젊고 그렇게도 멋있고 그렇게도 용기 있는 뉴 프론티어의 기수가 그렇게 갑자기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다니' 그리고는 그 잡지에 계속해서 하는 말이 'You may be the next (당신이 바로 그렇게 될지 모른다.)'라고 경고를 했습니다.
돈이 많아서 세계 지상에서 제일 영화를 누렸던 팔레비 왕도 이 지구상에서 몸둘 곳이 없었고, 페론이라든가 포카사라든가 아민이라든가 소머사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우리 눈앞에서 하나 둘씩 갑자기 사라져 갔고, 인류의 거성들과 한 때는 세계를 주름 잡던 사람들이, 그 중심에 전혀 하나님을 모르던 그 많은 사람들이 낮게 누워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히틀러의 무덤에도 가 보았습니다. 또 스탈린의 딸은 미국에 망명해서 스탈린이 죽는 최후의 모습에 대해서 증언하기를 '무엇을 본 것처럼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무엇을 잡아당기려고 하는 그런 모습으로 소리를 지르고 분노하며 미친 사람처럼 행동과 표정을 하고 죽어 갔다.'고 했습니다. 스탈린도 그렇게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권세에 대해서 겸손해야 하고 자기의 학문에 대해서 겸손해야 하고 자기의 부에 대해서 겸손해야 하고 젊음에 대해서 겸손해야 하고 미모에 대해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28.겸손한 생애
에든버러 대학의 제임스 심프슨 경은 진통제를 발견해서 고통 없이 수술을 받게 했습니다. 그것은 의학계의 노벨상감이고 대 발견이었습니다. 그의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노교수 심프슨 경에게 "선생님의 생에게 가장 뜻깊은 소중한 발견 한 가지를 들라고 하면 무엇을 들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한참 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천국 보화는 낮은 곳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발명도 독창은 없습니다. 전 인류의 공동 발명인 것입니다. 인류가 발견하고 발명하고 경험한 모든 것의 그 위에다 그것을 토대로 해서 조그마한 발견하나를 하는 것이 발명입니다. 노예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왕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왕을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왕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강도나 살인자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성자도 없습니다. 성자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살인자나 강도도 없습니다. 거지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부자도 없고, 부자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거지도 없습니다.
29. 겸손은 자아부정이다
겸손은 곧 십자가의 죽음, 곧 자아부정(自我否定 self-denial)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전부이기 위하 여 그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고백합니다(요5:19, 30,41,6:38,7:16,28,8:28,42,50,14:10,24). 그는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역사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의사와 능력은 물론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자신의 능력, 그 자신 의 뜻, 그 자신의 영광, 그의 모든 역사와 가르침과 더불어 그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그는 거듭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가 아니요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일하시기 위하여 나 자신을 아버지께 바쳤으니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아버지만이 전부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적인 자기 부인과 절대적인 복종 및 아버지에게만 의지한 그의 생활이 온전한 평안과 기쁨의 근원임을 그리스도는 아셨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침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고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하셨습니다. 마침내 그를 높여 그의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30. 겸손한 자를 기뻐하심
너희는 너희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기를 힘쓰며, 또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종의 자리 외에 다른 자리를 구하려 하지 말라. 종의 자리를 잡는 것이 네 유일한 목적이요 기도가 되게 하라! 하나님은 미쁘시다. 물이 낮은 골을 찾아 채워지듯이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비어 있고 스스로 낮은데 처해 있는 피조물을 끊임없이 찾으신다. 그를 찾아서 그의 영광과 그의 능력을 부어 그를 높이기도 하며 축복하기도 하신다. 자기 자신을 겸손케 하는 일, 이것은 우리의 갈급한 유일한 일이어야 하고, 겸손한 자를 높이는 일은 하나님이 항상 즐겨하시는 일이다. 그는 그의 전능하신 능력과 지극하신 사랑으로 스스로 낮추는 자를 영원히 높이실 것이다. 흔히 우리는 이런 말을 듣는다. "겸손과 온유는 씩씩하고 담대한 사나이다운 우리의 기개를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31.나는 미약합니다
당신은 현재 자신을 지배하는 생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과연 하나님 없이는 가장 작고 미약한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신을 지배합니까? 하나님이 없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남아 있는 사람은 아직 죄성의 노예로서 사는 것입니다. 아직 애굽 땅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다! 오직 주님의 은혜와 그 베푸시는 능력 안에서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가장 작은 일, 세상의 어리석은 자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나는 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 안에서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서부터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죄의 종 된 상태에서 벗어난 모습입니다.
32. 낮추는 자는 높이신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눅14:7)
이 말씀은 잔치집에 초대받았을 때의 예의에 대한 교훈의 결론이다. 윗자리에 앉은 자는 더 높은 사람에게 그 자리를 내어놓게 마련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잔치집의 아랫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윗자리는 잔치집 주인만이 정해 주는 자리이다. 초대받은 사람은 아랫자리에 앉을 자유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느님 나라를 잔치집이라 믿는다면 아랫자리, 낮은 자리에 앉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서 큰 자리에 옮겨지게 된다.
33. 네 마음이 어떠한지
신명기 8장 1절로 6절에 보면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고 하셨고 신명기 8장 14절로 16절에서는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4. 망상에 빠진다
아, 세상의 영광은 얼마나 속히 지나가 버리는가!(전도서 2:11) 진정 그들의 삶이 그들의 학식에 부응하는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그들의 연구와 독서가 훌륭한 성공을 거두는 것이었을 텐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관심이 없고 이 세상의 헛된 학문(디도서 1:10)만을 추구하다 멸망하고 마는가. 그들은 겸손하기보다는 위대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허망한 망상에 빠지고 만다(로마서 1:21).
사랑 안에서 위대한 자가 진정 위대한 자이다. 스스로 작다고 여기고 영예의 높낮이에 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자가 진정 위대한 자이다(마태복음 18:4, 23:11).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는 자가 진정 지혜로운 자이다(빌립보서 3:8).
그리고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진정 지식 있는 자이다.
35. 소유함을 자랑 말라
재물이 있다 하여 그 안에서 기뻐하지 말며, 권세 있는 친구를 두었다 하여 자랑하지 말라. 오직 만물을 주시며 무엇보다도 그분 자신을 그대에게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라.
그대가 키가 크고 용모가 아름답다 하여 기뻐하지 말라. 신장과 용모는 작은 병에도 크게 상할 수 있다.
그대의 천부적 재능이나 지성으로 인해 즐거워하지 말라. 혹시 이것으로 하나님을 노엽게 할 수도 있다. 그대가 본연적으로 지니고있는 모든 선한 것이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36. 알수록 고개를 숙이라
그대가 많이 알면 알수록, 잘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대의 삶이 그만큼 거룩해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이나 과학에 관해 어느 정도 안다고 해서 자긍하는 마음을 갖지 말고, 오히려 그 지식을 통해 스스로 더욱 겸허하고 조심스러워지도록 노력하라.
만약 그대가 무엇인가를 많이 알고 깨달았다고 여긴다면 이제 이것도 깨달아야 한다. 그대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휠씬 더 많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현명한 듯이 남에게 보이지 말고,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라(로마서 12:16).
왜 그대는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고자 하는가? 성경에는 그대보다 휠씬 더 박식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은가?
만약 그대가 유익한 어떤 것을 알거나 배우고자 한다면, 유명한 자가 되지 말고 사람들에게 작은 자로 여겨지기를 바라라.
37. 앎에 있어 신중하라
달려가는 데 너무 성급한 것이나(잠언 19:2) 자기 자신의 의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둘 다 지혜가 아니다.
또한 자신이 들은 바를 모두 믿거나, 자신이 듣고 믿는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금방 전하는 것도 지혜가 아니다(잠언 17:9).
그대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만 행동하지 말고, 지혜롭고 신중한 사람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며 그대보다 훌륭한 이의 가르침을 찾도록 하라(잠언 12:15).
선한 생활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하며(잠언 15:33) 많은 일에 있어서 경험을 부여한다(전도서 1:16).
스스로 더욱 겸손하고 하나님께 더욱 복종하라. 그리하면 만사에 더욱 신중해질 것이며 더 큰 평화와 마음의 안정을 누리게 되리라.
38. 위대한 지혜
가장 고상하고 유익한 독서는 자기 자신을 읽음으로써 참된 지식과 성찰을 얻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은 항상 고상하고 좋게 생각하는 것이 곧 위대한 지혜요 완전 힘이다.
다른 이들이 공공연히 죄를 짓고 흉악한 과오를 범하는 것을 목격할지라도 그대는 자신이 저들보다 훌륭하다고 여기지 말라. 왜냐하면 그대가 얼마나 오랫동안 선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다(창세기 8:21). 그러나 그대는 어느 누구도 그대 자신보다 더 연약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39. 의를 이루자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행동이었다. 세례는 죄인 이 죄를 씻는 의식이다. 그러므로 죄인에게만 필요한 의식이다. 속건제를 통해서만 사함 받는 죄를 요한은 물의 의식 을 통해 용서를 체험하는 길을 제시했다. 하나님의 의를 이
루자 고 하셨다 예수님의 모습은 겸손이다. 친히 요한을 찾아가셨고, 사양하는 요한을 설득하셨다. 그리고 죄인들에게나 필요한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님의 겸손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영광이다. 세례가 끝나고 올라오는 순간 하나님의 반응이 나타났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임을 증명하는 반응이었다.
겸손하다는 말은 자신을 낮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겸손한 사람은 남에게 양보할 줄 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양보하는 일이 없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지만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다.
40. 자신을 낮추라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훌륭하다고 여기지 말라(출애굽기 3:11). 인간 안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대가 저들보다 더 낮게 간주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잘 행한다 하여 자랑하지 말라(욥기 9:20). 하나님의 판단은 인간의 판단과 전혀 다르며, 사람을 즐겁게 하는 그것이 종종 하나님을 노엽게 하기도 한다.
그대 안에 어떤 선한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 안에는 더 많은 선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라.
그럼으로써 그대 안에 겸허함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자신을 모든 사람보다 낮춘다 하여 해롭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우월한 듯 과시할 때는 크게 해롭게 된다.
겸손한 자는 끊임없는 평화를 누리지만, 교만한 자의 마음에는 시기와 잦은 분노만이 있을 뿐이다.
41. 자아가 죽은 사람
자아가 완전히 죽은 사람을 겸손하다고 말합니다. 자아가 완전히 죽었다는 확실한 증표는 겸손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아가 죽지 않은 겸손은 위선에 불과합니다. 자아가 완전히 죽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겸손한 가정이 수준 높은 가정입니다. 겸손한 교회가 수준 높은 교회입니다. 겸손한 사회가 수준 높은 사회입니다. 서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가 수준 높으며 깨끗하고 평안하여 살기 좋은 곳입니다.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려면 자아(自我)가 죽어야만 합니다. 자기 교만, 자기 자랑, 자기 욕망, 자기 생각, 자기 주관, 자기 사랑 등이 완전히 십자가에 못박아 죽어야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고 참다운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자아가 죽지 않은 믿음은 신앙생활에 갈등이 많고 시끄럽고 복잡합니다. 자아가 죽지 않은 믿음은 교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자아가 죽지 않은 믿음은 원망과 불평이 많습니다.
자아가 죽지 않은 믿음은 비겁해지기 쉽습니다. 자아가 죽지 않은 믿음에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아가 죽지 않은 믿음에는 참다운 봉사와 헌신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아가 죽지 않은 봉사와 헌신에는 인간의 한계가 있습니다.
자아가 죽지 않은 믿음으로는 영안(靈眼)이 열리지 않습니다.
42. 지식에 사랑을
모든 인간은 본연적으로 지식을 추구한다(전도서 1:13).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 없이 지식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분명히 말하건대, 자기 자신에 대해 소홀하고 단지 천기의 운행만을 파악하고자 애쓰는 교만한 철학자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겸손한 농부가 휠씬 낫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자는 스스로 겸손해지며, 사람들의 칭찬을 기뻐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세상의 모든 것을 깨닫는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 행위에 따라 판단하실 하나님 앞에서 날 도와줄 것이 그 무엇이겠는가?
43.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
겸손이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만유의 통치자가 되신다는 지식과 그의 피조물 가운데 하나인 우리 인생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요,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우리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께만 의지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며 거기 서 겸손의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겸손을 생활을 통해 우리의 이웃에게 나타내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겸손은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맙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그리스도의 정신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가장 작은 자라도 높이는 일, 즉 다시 말하면 피차에 종이 되는 일을 하게 합니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섬김과 존경받을 때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른 사람은 칭찬을 받고 자기는 오히려 멸시 천대를 받고 무시를 당해도 참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평안하고자 하면 성도들이 겸손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비난과 말썽거리가 생기는 원인은 겸손의 결핍에 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역사하고 있는 성령의 능력과 은혜가 지속되지 못하는 것은 겸손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4. 회개의 겸손한 사람
겸손한 사람은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가장 거룩한 자처 럼 여겼으나 회개가 없는 가장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거룩한 사람은 가장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겸손은 성결의 근원이 됩니다.
겸손한 사람은 이처럼 구원받은 죄인임을 자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지극한 겸손은 일상적인 범죄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뇌리(腦裡)에서 떠날 수 없는 심각한 죄의식에서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가 과거에 어떠한 죄인이었나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죄의식에서 겸손이 나오는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죄의식은 죄가 아니라 오히려 은혜인 것입니다. 겸손은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겸손은 이처럼 죽음을 택하는 것입니다. 곧 죽음을 말합니다.
45. 겸손한 위인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튼은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우주에 관해 아는 지식은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이 바다의 신비에 대해 아는 지식보다 적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할 것이다.”
이런 겸손의 모습은 슈바이쩌 박사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선교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서 병원을 지을 때, 나무를 베고 운반하고 못질하는 일을 직접 했습니다. 그때 혼자 그 많은 일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슈바이쩌는 옆에 있던 한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저는 지식인이어서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막일은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슈바이쩌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도 자네만 할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네. 그러나 웬만큼 배웠다 싶으니까 이젠 아무 일이나 다 하겠더군.”
세계의 성자로 추앙 받고 있는 알버트 슈바이쩌 박사가 그 당시 지식인들이 꺼려하던 막일을 했다는 것은 그의 겸손을 보여주는 좋은 일례입니다. 일찍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렇듯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 같은 주님의 겸손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46. 휫필드와 웨슬리
감리교의 창시자는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 입니다. 두 사람은 목회의 방법이 같았고 구령의 열정도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신학에 대한 이해는 달랐습니다. 하루는 이 두 사람의 신학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던 한 사람이 휫필드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웨슬리 목사님과 신학과 진리에 대한 이해가 다른데, 목사님께서 천국에 가시면 웨슬리 목사님을 만나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휫필드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천국에서 웨슬리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을 것이고,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휫필드의 대답이었습니다. 비록 신학이 다르지만 웨슬리 목사의 능력과 영향력을 인정한 휫필드 목사의 태도는 매우 훌륭합니다. 우리는 조지 휫필드처럼 온유함과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47. 링컨의 구두
링컨 대통령이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보좌관이 말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구두를 직접 닦습니까?” 링컨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대통령이 되어 가지고 남의 구두도 닦아줍니까?”
지금 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선 자리에서 묵묵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생일 것입니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대접 받기만를 바라는 현대인들에게 링컨의 구두는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것은 자신을 낮추었을 때 빛나는 것이라고….”
우리 교인들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려고 노력하는지 늘 반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고 전도할 수 있습니다. /소강석 목사(분당새에덴교회)
48. 겸손이란
우리는 늘 겸손한 성품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왜냐하면 조금만 무관심하면 교만이라는 잡초가 자라기 때문입니다. 모든 잡초가 그러하듯, 잡초는 좋은 씨앗들을 쉽게 해쳐 버립니다. 겸손은 아주 피기 어려운 꽃이요, 아주 힘들게 맺는 열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의를 기울여 겸손이란 성품을 가꾸어야 합니다. /강준민의《성품 속에 담긴 축복의 법칙》
49. 겸손은
겸손은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므로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겸손은 우리들의 긴 인생 여정 속에서, 삶을 윤택하게 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나 겸손은 아주 피기 어려운 꽃이요, 힘들게 맺는 열매와 같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우리들의 마음속에 교만이란 잡초가 자라게 되어 마음의 정원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립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50. 겸손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세우는 것이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다. 겸손하게 행동하되 비굴하지 말라. 중요한 사람인 척하지 말고 중요한 사람이 되라. 자신은 행동으로 만족하고 그에 대한 얘기는 남들에게 맡겨라. /윤문원의《지혜와 평정》
51.첫마음
처음 시작했을 때의 첫자리로 돌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때의 첫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래서 늘 한결같으면서 새롭고, 늘 용기가 넘치면서도 거만함과 교만이라는 잡초가 자라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겸손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52. 낮아짐의 능력
낮아지면 두려울 것이 없다.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때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거지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홍수가 나서 온갖 물건들이 다 떠내려갔다. 가구 냉장고 텔레비전…. 이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우리는 참 행복해요. 홍수가 나도 잃을 것이 없으니!” 아버지가 말했다. “그게 다 아버지 잘 둔 덕이다.”
잃을 것이 없을 때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낀다. 개그맨 신상훈씨가 쓴 책에 보면 한 살부터 123세까지 나이별로 특징을 적어 놓았다. 86세에는 짠 음식 먹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미 그런 것을 걱정할 나이가 지났기 때문이다.
92세에는 야생버섯을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한다. 독버섯 먹어서 죽을 확률이나 자연사할 확률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이 드는 것은 두려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이 듦이 오히려 더 자유롭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내의 극심한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이 60이 되면 오토바이를 사려고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대륙을 횡단할 것이다. 그때는 위험을 즐겨도 될만한 자유로운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70세가 넘으면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것을 하고 싶다. 또 암벽 등반도 하고 싶다. 나이가 나에게 더 자유로움을 주게 될 것이다. 쥐고 있는 것을 다 내려놓으면 오히려 더 강력하고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더 가지려고 하는 것, 쥐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내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아닌가. 낮아지면 하나됨을 이룬다. 연합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툼과 경쟁심 때문이다. 헛된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에 분열이 일어난다. 분열이 있던 곳에 하나됨이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분명히 낮아지는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툼과 허영의 치료제는 무엇인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다툼과 허영을 깨는 힘은 오직 겸손한 마음에 있다. 겸손한 자는 다툼을 깬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겸손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낮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예수님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을 정직하게 보는 것’이다. 정직하게 자기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겸손한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섭섭해하지 않는다. 겸손한 자는 화를 내지 않는다. 이등병이 화내는 것 봤는가. 병장쯤 되어야 화도 나는 것이다. 분노 속에는 숨겨진 교만이 있다. 내 주변에 분열이 있는가. 스스로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겸손의 모습을 회복하라. 두려움도 사라지고 하나됨의 능력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전병욱 (삼일교회 목사)
53. 이웃을 위한 겸손
유명한 흑인 교육가 부커 워싱턴 박사가 앨라배마에 있는 터스키기 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후 그 지역의 부자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느 백인 부인이 그가 워싱턴 박사인줄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 흑인이려니 해서 멈춰 세우고 몇 달러 줄 테니 장작이나 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총장은 그때 특별한 일이 없었고 시간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웃으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장작을 패서 그녀의 벽난로 옆에 차곡차곡 쌓아주었습니다.
일이 다 끝나 그가 돌아간 후 그 집 흑인 하녀가 그를 알아보고 주인에게 알려 주었습니다.그 부인은 너무 부끄럽고 당황해서 다음날 아침에 총장실로 찾아가 백배 사죄했습니다.
그러자 부커 워싱턴 총장은, “부인, 괜찮습니다. 저는 가끔 가벼운 육체노동을 좋아합니다. 그 뿐입니까. 이웃을 위해 돕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지요” 하며 위로를 했다고 합니다.
정말 겸손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사람을 세워주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12)
54. 겸손은 더욱 존귀하게
영국의 간호원이었던 나이팅게일은 1853년 크리미아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하여 전쟁터로 나가 부상병을 간호하고 1만 3천명의 호열자 환자를 치료함으로 군인들로부터는 싸움터의 천사로, 또는 광명 부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찬사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도 참혹했던 크리미아 전쟁이 영국과 터어키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오고, 러시아의 패전으로 끝이 나게 되자 나이팅게일이 영국으로 귀국하려 했을 때에 전 영국 국민들은 그녀를 전쟁의 영웅보다도 더 존귀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환영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명예스런 훈장이나, 자기 영광받기를 즐겨하지 않은 나이팅게일은 영국으로 귀국하려던 예정을 바꾸고 1956년 8월 15일 아무도 모르게 프랑스로 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영국 국민들은 한때 크게 실망하였으나 나이팅케일의 겸손한 태도를 알고 더욱 그녀를 존중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권력이나 교만으로써가 아니라 겸손한 마음과 생활 태도로만 얻을 수 있음을 알게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위인전을 보면 김모재라는 사람이 자식들을 불러 앉히고 교훈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일찍이 내가 오만한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는 소리를 들어 보았느냐? 차라리 죽을지언정 나의 자식들 중에 그런 행실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 원치 않으니 너희들은 언제나 겸손함과 조심성을 가지라. 이것이 참사람의 위덕이니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의복을 입은 짐승으로 세상을 마칠 것이라."고 교훈했다. 그리고 유대교의 경전인 탈무드를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계시하실 때에 높은 산이나 큰 나무들 중에 거하지 않으시고 볼품없는 가시덤불 속에서 말씀하신 것은 교만한 자보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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