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마5:12, 빌4:4)

하나님아들 2024. 7. 13. 19:21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마5:12, 빌4:4) -  

 

저는 유익순 목사님을 오래 전부터 즉 강원도 정선 때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유익순 목사님은 1979년부터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를 시작했고 그 후 충청도 제천과 사지원에서 목회하다가 2000년도에 제주도 성도교회에 와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2008년 9월 21일 주일 여기 제주 성도교회에 와서 오전 예배 시간에는 “바울의 기쁨”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오후 예배 시간에는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간증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2011년 8월 7일 주일 여기 다시 와서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유익순 목사님이 “신앙 생활의 기쁨”에 대해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그 동안 기쁨과 즐거움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그 동안 기쁨과 즐거움이란 제목으로 한 설교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99년 2월 7일 주일 강변교회에서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00년 2월 29일 주일 강변교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기뻐하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03년 6월 18일 “인생은 기쁨” 이란 제목의 글을 써서 신문에 기고했습니다. 2004년 9월 12일 주일 강변교회에서 "나의 모든 즐거움이 성도에게"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08년 3월 10일 “인생은 즐거워” 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2010년3월21일 주일 성주계정교회에서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0년 5월 23일 주일 인천천성교회에서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1년 8월 「생명의 삶」에 “어떻게 살 것인가 기쁘게” 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한 설교들을 참고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예수님의 분부이시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팔 복에 대한 설교를 하신 다음 결론적인 말씀을 하시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1,12). 평안할 때뿐 아니라 핍박을 당할 때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부탁의 말씀을 하신 다음에도 제자들의 마음에 기쁨을 채워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후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면서도 제자들에게 주님 자신의 기쁨을 채워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3).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 때문에 능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사도 베드로는 환난과 순교의 길로 걸어가면서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불 시험을 당해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야고보는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도 기뻐하라고 권면했습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약1:1-3).
사도 바울의 기쁨의 고백은 보다 역설적이었고 보다 모순된 것이었습니다. 환경과는 상관 없이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즐거워하며 기뻐한다고 기쁨과 즐거움을 예찬했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롬5:3). 사도 바울은 환난도 기뻐하고 몸이 약한 것도 기뻐하고 가난과 궁핍도 기뻐하고 괴로움과 고난도 기뻐한다고 고백하며 기쁨을 예찬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고후12:10).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고 성도들을 위해서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사도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쓴 편지인 빌립보서에서만 기쁨이란 말을 16번이나 사용했습니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1,4).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빌4:10). 결국 빌립보서는 성경에 기쁨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오는 성경이 되었습니다(빌1:4,18,25, 2:4,17,18,28, 3:1,4:1,4,10). 기쁨과 즐거움이 얼마나 귀중한 축복임을 고백한 말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의 기쁨의 비결은 주님 안에 있었던 것이고 성도들의 사랑 안에 있었던 것이고 그리고 주님과 성도들을 위해서 수고와 고난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시도 바울은 옥 중에서도 스스로 기뻐하고 또 기뻐하면서 항상 기뻐하는 것이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한경직 목사님이 가장 좋아하시던 말씀이 바로 살전5:16-18이었고 가장 좋아하시던 찬송이 13장이었는데 거기에 깊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변함 없는 기쁨의 주 밝은 빛을 주시네.” 기쁨이 환경이나 소유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기쁨과 즐거움은 물론 주님으로부터 오지만 현실적으로 말하면 자기 자신의 태도에 달린다고 생각합니다. 원망 불평이 가득한 부정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은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감사하고 자족하는 법을 배워가는 사람은 어떤 형편에 처해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둘째로 구약의 성도들도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모세는 자기의 간절한 마지막 기도 중의 하나가 아침마다 주의 인자로 만족하며 평생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90:10,13,14).
솔로몬은 한 평생을 다 산 다음 세상의 부귀 영화는 모두 헛된 것이고 하나님의 선물과 인생의 본분은 먹고 마시며 낙(기쁨)을 누리는 것이고 자기 일에 수고함으로 낙(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2:24).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3:13).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전3:22).
다윗도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성도들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시5:11).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시9:2).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16:3).
선지자 하박국도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자기는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셋째로, 제가 한 평생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기쁘고 즐겁게 살아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한 평생 힘들고 외롭고 슬픈 과정도 걸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평생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기쁘고 즐겁게 살아왔습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모험적인 저의 기질과 함께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는 단순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제가 11살 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신앙 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부모님과 평양을 떠나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넘었지만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약간의 스릴을 느끼면서 신나게 넘었습니다. 군대생활도 기쁘고 즐겁게 했습니다. 논산 훈련소의 생활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했지만 타잔처럼 줄 타는 것과 총 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릅니다. 미국 유학생활 중 여러 종류의 노동을 했지만 모두 즐겁고 재미있게 했습니다. 여름에 구술 땀을 흘린 힘든 일이었지만 페인트 칠로 낡았던 집이 새 집으로 바꾸어지고 정원 가꿈으로 흐트러졌던 정원이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꾸어지는 것을 보면서 만족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저는 귀국 후 박정희 정권 때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하루 종일 그리고 밤새 협박과 심문을 받은 일도 있었지만 그것도 유익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어린 아들 철원이를 잃는 아픔과 슬픔을 경험했지만 그것도 영적인 차원에서는 아름다운 축복의 경험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저는 귀국한 후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얼마나 보람되고 즐겁고 기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를 방문해서 가뭄에 죽어가는 저들에게 우물 10개 이상을 파 주었고, 방글라데시를 방문해서 안과 진료소를 지어주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도와주었으며, 북한을 방문해서 가난하고 병든 북한 동포들을 도와주고 있는데 얼마나 보람되고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중국 연변 지역을 매년 방문하며 불쌍한 조선족 어른들과 어린이들 170여명을 도와주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해서 불쌍한 어린이들을 위해서 학교 하나를 지어주었는데 얼마나 보람되고 즐겁고 기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여러 선교지들을 방문하고 선교사들과 현지인들을 만나서 저들과 교제하면서 즐겁고 기쁘고 보람된 시간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운동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사실 저는 모든 종류의 운동을 좋아합니다. 수영도 좋아하고 등산도 좋아하고 탁구도 좋아하고 볼링도 좋아하고 스키도 좋아하고 족구도 좋아하고 축구도 좋아합니다. 꿈을 꾸면 언제나 날아가는 꿈을 꾸는데 꿈 속에서 날아가는 것도 재미 있고 즐겁습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붙잡혀 가서 협박을 당하는 황당한 일도 있고, 도둑 맞는 힘 든 일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픈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감사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일로 바꾸어지기도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보기에 따라서 어둡고 괴로운 것이 될 수도 있고 기쁘고 즐거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을 어둡고 괴로운 것으로 보면 인생이 어둡고 괴로운 것이 되고, 밝고 재미 있는 것으로 보면 인생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 됩니다. 우리의 삶을 불만스럽게 보면 우리의 삶이 불행하게 되고 우리의 삶을 만족하게 보면 우리의 삶이 행복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만족하게 생각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삶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사도 바울은 인생 학교에서 자족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주 안에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 안에서”가 사도 바울의 삶의 모토였고 삶의 비결이었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주 안에서 자족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빌4:10).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주 안에서” 기뻐하고 “주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삶의 고백은 대단한 삶의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보기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 안에 있고 성도들의 사랑 안에 있고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의 품 안에 있으면 인생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사랑하는 부모와 고향을 떠나는 일도, 38선을 넘는 일도, 외로운 삶을 사는 일도, 군대에 가서 훈련 받는 일도, 여러가지 힘든 노동을 하는 일도, 붙잡혀 가서 협박과 심문을 당하는 일도, 도둑 맞는 일도, 아니 심지어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일찍 잃는 일까지도 보기에 따라서 감사하고 유익하고 기쁘고 즐거운 일로 바꾸어 질 수가 있습니다.
사도들은 붙잡혀 가서 능욕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저는 2008년 1월 13일 29년 동안 개척해서 목회하던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 지난 3년 7개월 동안 주일마다 또는 주중에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설교하고 있는데 얼마나 보람되고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전에 가 보지 못한 전국의 아름다운 산과 들과 강과 바다를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 교단에 속한 다양한 교회의 성도들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반갑고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제가 대단한 설교자도 아닌데 제가 찾아갈 때마다 그렇게도 반가워하고 좋아하는 성도들과 어린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마음에 깊은 감사와 기쁨과 즐거움을 지닙니다. 모두가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주님 안에 있고 주님 앞에 있으면 모든 것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성도들의 사랑 안에 있으면 기쁘고 즐겁습니다. 주님과 성도들을 위해서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수고하면 더욱 더 기쁘고 더욱 더 즐겁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고 성도들을 위하여 받는 수고와 고난을 기뻐하면서 그 수고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운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고후12:10).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환경이나 소유와 상관 없이 건강이나 명예와 상관 없이 주님의 품 안에서 성도들의 품 안에서 그리고 자연의 품 안에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고난을 받으면서 감사하고 기쁘고 즐겁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순수한 기쁨을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 속에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모두 주님 안에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유익순 목사님 부부와 성도교회 성도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2).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