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하나님 말씀인 외적 증거
성경이 왜 하나님 말씀인가?
신자가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 목적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종교적 의무감을 완수하려는 것이어선 결코 안 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의 일생을 통해 이루실 영원한 계획을 깨달아 실제 그대로 헌신하기 위해서다. 요컨대 하나님이 죽으면 기꺼이 죽으리라고 언제 어디서든 고백하고 헌신할 수 있기 위해 성경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성경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적 확신이 먼저 있어야 한다. 역으로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확신이 있음에도 배워볼 소원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확신은 가짜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인간 이성과 과학의 발달을 과신하여 “앞으로 백년 내에 성경은 고문서 창고에서 골동품이 되어 먼지에 쌓여있게 될 것"이라고 감히 예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50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성경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 출판되어 가장 많이 보급되는 책이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그의 집은 백년 후에 오히려 성경을 인쇄하는 출판사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유사 이래로 수많은 독재자와 이교도들이 성경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성경 자체를 없애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온전하게 보관하려는 노력이 되살아났다. 또 이단들이 성경의 진리를 반박하는 논리를 개발할수록 오히려 그 진리 됨을 더 확고하게 변증할 수 있는 기회로 반전되었다. 나아가 기독교 반대 세력이 강성해질수록 영적으로는 도리어 불같은 부흥이 일어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항상 그 배경에는 경건한 신자들의 노력을 뛰어넘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놀랍고도 신비한 섭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용했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하나님 당신부터, 그것도 어떠한 분인지 둘째 치고 존재 유무(有無)부터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분은 인간 이성의 이해와 과학적 증명의 차원을 넘어선다. 성경이 그분 말씀인지 여부 또한 마찬가지다. 따라서 앞으로 제시할 내용들은 객관적 증거라기보다는 합리적 논거(論據) 내지 유추(類推에 해당된다. 쉽게 말해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기존의 믿음 위에 더 확정적이며 색다른 시각을 보탤 수는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지를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 보기로 하자. 우선 성경 외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경에 관한 증거를 살펴 본 후에, 성경 스스로는 성경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성경이 신자에게 실제로 하나님이 말씀한 것과 같은 영향을 끼치는지를 따져 보자.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 외적 증거
이상한 책, 성경
성경은 그야말로 특이한 책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전에 기록되기도 했지만 가장 오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가장 오래 동안 꾸준하게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다. 솔직히 팔린 것에 비하면 가장 적게 읽히긴 해도, 어쨌든 워낙 많이 보급되어 있기에 수치적으로 따져도 단일 책으로는 가장 많이 읽히는 것은 틀림없다. 나아가 한 사람이 가장 많이 되풀이해서 읽는 책으로도 단연 꼽을 수 있다. 나아가 앞으로도 그런 추세는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
두께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 이 한 권의 책을 두고 사람들이 없애려면 얼마든지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권력자나 저명인사가 기록한 것도 아니며 그 저자가 무명인들이 대부분인 그야말로 이름 없는 책이었지 않는가? 그럼에도 가장 오래 동안 끈질기게 보존되어 왔고 갈수록 더 생생하게 전파된다면 예사 책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우선 이름부터 너무 비상식적이다. 영어로 성경은 "the Bible"이라고 표현한다. 정관사를 붙이고 대문자로 표기한다. 그리고 bible이라는 단어의 뜻 자체가 ‘책’이다. 그 유래는 구약성경이 주로 papyrus로 만든 종이에 기록되었는데, 이 papyrus에서 종이를 뜻하는 paper라는 영어와 책이라는 라틴어 biblia 가 파생되었다. 따라서 the Bible의 뜻은 “바로 그 한 권의 책”이라는 의미다. 말하자면 세상의 어떤 다른 책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누구라도 반드시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 오시기 전의 구약성경과 오신 후의 신약성경으로 나뉜다. 마찬가지로 인류 역사도 예수님 탄생을 분기점으로 B. C. (Before Christ, 主前)과 A. D.(Anno Domino=in the year of the Lord, 主後)로 나뉘어졌다. 말하자면 인류 역사 전부를 아우르는 원리가 담긴 책이라는 간접적 증거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책, 성경
흔히 성경이 아주 오래 전에 인간이 기록했고 또 장기간에 걸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필사(筆寫)를 거친 책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그 내용의 진실성 여부에 관해 시비를 건다. 말하자면 저자가 분명하고 또 기록된 원고대로 기계가 인쇄하는 근대의 책과는 다르기에 성경의 전래 과정 가운데 왜곡, 수정, 변개, 첨가 등의 가능성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반발들이 성경을 부인하려는 본래 의도와는 달리 역으로 성경이 가장 신뢰할만한 책임을 밝혀주는 또 다른 증거로 작용되었을 뿐이다. 필사 과정상의 오류란 따지고 보면 고대의 모든 책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약점이다. 성경은 도리어 그럴 가능성이 가장 적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었기에 그 필사에 한 치의 실수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예컨대 거룩한 성호(聖號)인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옷깃을 여미고 붓을 새로 빨아서 적을 정도였다. 또 성경은 성전이나 회당에서 항상 낭송되고 암기되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필사에 오류가 있으면 청중이 금방 지적할 수 있었다. 특별히 계시록의 마지막 구절에 “누구든지 이 책에 예언의 말씀에 더하거나 제하면 하나님의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경고 때문에라도 각별하게 주의해서 필사했다.
실제로 프린스턴 대학교 신약학자 Bruce Metzger 에 따르면 2천 년간의 필사 과정 중에 신약성경의 2만여 구절(lines) 중에 40개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것도 사실은 “color"를 ”colour"식으로 철자 한두 개 잘못된 정도의 오류라고 한다. 또 대부분의 그런 식의 오류는 앞뒤 구절이나 다른 사본들과 비교하면 쉽게 그 잘못을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The Bible, Embracing God's Truth, by Max Anders 1995, Thomas Nelson Publishers)
상기에 인용한 책에 따르면 성경의 신뢰성을 결정짓는 두 가지 요소가 더 있다.
첫째는 현존하는 필사본 숫자로 성경은 고대에 기록된 어떤 책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많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필사본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또 그 많은 사본끼리 오차가 적다면 신뢰성은 더 제고된다는 뜻이다. 플라톤의 ‘Tetralogies'는 7개, 시저의 ’Gallic Wars'는 10개, 그 유명한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는 643개의 필사본이 현존하는데 반해 신약성경은 완본으로만 오천 개가 넘고 구약성경은 부분필사본까지 합쳐서 만개가 넘는다.
둘째는 필사본의 연대가 원전이 기록된 때와 근접할수록 당연히 사본의 신뢰성은 높아진다는 점이다. 예를 든 플라톤의 ‘Tetralogies’는 주전 400년에 쓰였는데 현존하는 필사본은 주후 900년 정도의 것으로 그 편차는 1300년이나 된다. 또 호머의 일리아드는 주전 900년 경에 저작 되었는데 현존하는 최고(最古) 사본은 주전 400년경으로 그 편차는 500년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주후 1세기 내에 다 완성되었고, 최고 사본은 주후 2세기 내의 것으로 그 편차는 백년에 불과하다. 심지어 최근 부분적으로 발견된 것 중에는 1세기의 것, 즉 원전과 동일한 연대의 것마저 있다.
성경이 기록상 오류가 많다고 주장하려면 모든 고대 책들부터 먼저 부인되어야만 합당하다. 그런데도 논리적인 판단을 해야 할 지식인들조차 소크라테스의 말은 믿어도 예수는 실존인물조차 아니라고 하니 이것만 보아도 성경이 진리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은 “듣기는 듣고 보기는 해도 깨닫지 못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예수님도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11:25,26)라고 지적하셨지 않는가?
고고학적 발견과 성경
성경 기록에는 당대까지의 세속역사에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 제법 있어서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비평이 내내 따라 다녔다. (세상 사람들은 세속 역사도 여전히 모르는 사실이 아무 많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알아도 짐짓 무시한다.) 필연적으로 그 진위 여부를 밝히고자 하는 노력이 꾸준히 경주되어 왔다. 특별히 과학이 발달되고 먼 지역으로 여행이 가능해진 19세기 중반 이후에 성행하게 된 고고학적 발굴이 그 진위여부를 가름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누지 문서(Nuzi Tablets)를 들 수 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족장시대 기사도 세속적 역사의 뒷받침이 없는 설화(legend)에 불과하다는 비평이 많았다. 아브라함은 유대교, 이슬람교뿐 아니라 기독교 믿음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그 실재(實在)가 입증되지 않으면 믿음의 뿌리부터 흔들릴 판이었지만 현 이라크 북부 Kirkuk 근처의 누지라는 고대 도시에서 수많은 점토판이 출토됨으로서 기우에 불과해졌다. 장자권, 양자입양, 불임 아내의 경우 첩을 통한 생산, 계대결혼 등등 성경에 기록된 족장시대의 여러 관습들이 실제로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수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예를 두 개만 더 들어보자. 다니엘서 5 장에 나오는 바벨론 최후의 왕 벨사살의 경우 바벨론의 기록에는 나보니두스 왕이 최후의 왕이었으므로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그러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로 나보니두스 왕이 10년간 바벨론을 떠나 아라비아로 원정 갔으며 다니엘이 봉직하고 있었던 그 기간 동안에 자기 아들 벨사살에게 통치를 위임했다는 비문의 기록이 발견되었다. (Know Why You believe, by Paul Little, 1995)
또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산발랏은 알렉산더 대왕 시대의 한 인물 말고는 세속 역사에 전혀 그 이름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당연히 비평가들은 성경의 역사적 허위성을 입증하는 좋은 예로 삼았다. 그러나 이 또한 호주 시드니 대학의 Clifford Wilson 교수의 발굴로 세 사람의 신발랏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느헤미야 시대에 살았다고 증명되었다. (The Bible: Fable, Fraud or Fact, Coral Ridge Video Ministry, January 4, 1994)
요점은 이것이다. 지금껏 수도 없이 많은 고고학 발굴이 행해졌지만, 그중에는 성경의 허위성을 고발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진 것도 상당했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성경의 진실성만 더 밝혀주었을 뿐이다. 그 중에서도 정말로 주목해야 할 발굴은 사해사본이다.
사해사본과 이사야서
사해의 북서부 사막 구릉지대 쿰란에서 1947년 봄 한 양치기 베두인 소년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사본들의 고고학적 의미는 아주 대단하다. 발굴 당시까지 현존하고 있던 구약성경 사본보다 무려 천년이나 앞섰던 것이다. 정확히 말해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보던 구약성경을 그대로 발견한 셈인데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대의 성경은 학문적 초점을 따로 모아야 할 만큼의 오류는 단 하나도 없이 원전 그대로 잘 보관되었다는 뜻이다. 또 함께 발견된 수많은 문서들은 당시 유대 사회의 생활상과 특별히 쿰란 공동체의 종교적 관습을 알아보는 결정적 자료가 되었다. 사해 사본에서 흔히 간과하는 진짜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1-6)
일부만 인용했지만 이사야서 53장은 예수님의 수난을 아주 정밀하게 예언하고 있으며 십자가 복음의 의미마저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넓게는 40장부터 마지막 66장까지가 구세주 예수에 관한 예언이다.) 이사야는 알다시피 예수님 오시기 600년 전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실제로 보지 않고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을 만큼 세밀하게 십자가를 예언했고 또 신약의 서신서들을 다 읽어보지 않고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구원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파했다. (참고로 십자가 사건 자체만 보면 주전 1000 년경의 사람, 다윗이 시편 22에서 더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래서 기독교 외부로부터 후대 기독교인들이 기록해서 첨가한 것이라는 반발을 상당히 불러 일으켰다. 도무지 인간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고는 그렇게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평이 절정에 달한 시점에 바로 현대의 성경과 동일한 내용의 이사야서가 완벽하게 보존된 두루마리로 사해에서 발견되었다. 하나님의 섭리가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그 발견 과정도 아주 흥미롭다. 한 이름 없는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다가 우연히 반 쯤 허물어진 벼랑의 동굴에 돌을 던졌더니 무엇인가가 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튿날 그 목동이 사촌 형제와 함께 그 동굴로 기어 올라가 보니 항아리 파편이 흩어져 있었으며 동굴 안쪽에 뚜껑이 덮인 항아리들이 줄지어 있고 그 속에 두루마리들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메시야에 대한 정확한 예언을 담고 있는 구약성경을 근 2처년 가까이 동굴 속에 세상 어느 누구도 만지지 못하도록 감춰두셨던 것이다. 그곳은 건조한 석회석 동굴로 성경 보관에 최적의 기후와 지리적 조건을 갖추었다. 다른 말로 하나님 당신께서 그 동굴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다 때가 차매, 즉 사람들이 고등비평이라는 학술적으로 정교한 이론을 동원해 성경의 진위성을 최고조로 매도하고 있을 때에 그 모드든 사람들의 입을 완전히 다물게 했다. 목동은, 아니 어느 누구도 그곳에 그런 사본이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사건의 발단은 오직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때문이었다.
이것이, 위에서 든 다른 예들도 함께,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 치부할 성질은 결코 아니다. 우연의 일치란 한두 번으로 그쳐야 한다. 그러나 주사위를 던졌는데 계속해서 한 가지 숫자만 나온다면 주사위에 어떤 기계적 장치, 즉 던지는 사람 말고 제 삼의 힘이 그 주사위에 가해졌다는 의미다. 우연의 일치들이 어떤 일관된 방향성을 드러낸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성경을 아무리 없애려 해도, 그 진실성을 부인하려 온갖 노력을 가해도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로 성경이 정말 그 한 권의 책에 틀림없다는 사실만 증명해 주었다. 또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작동된 제 삼의 힘이 바로 하나님이지 않겠는가? 성경은 기록부터 계승 보관까지 전부 하나님이 직접 계시하신 그분의 말씀이다.
지금도 선교사들이 기독교 선교활동이 금지된 나라에 성경을 반입해 들어가는 과정 중에 많은 기적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공항 검색대에 성경이 가득 든 가방을 열어 놓아도 입국관리들이 보지 못하고 통과시켰다는 간증을 심심찮게 듣고 있다. 성경과 연관되어,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임을 입증하는 외적 증거는 도무지 다 꼽을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일단 믿지 않으려 마음먹은, 그 자체도 또 다른 믿음임에 틀림없지만, 사람은 끝까지 믿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신자에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더 확증시켜 주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런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증거들을 지성적 이성적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신자라야 성경의 본문 말씀도 자신의 지정의를 동원하여 온전하게 믿을 수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간섭으로 인한 영혼의 일회적 변화로 인해 은혜의 선물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선물로 받은 구원은 그 포장을 뜯어 소지하고 누려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 위에 거해야 한다. 맹목적인 신앙이나 종교적 의무감에다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걸 수는 결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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