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말라 고린도후서 6: 1-8

하나님아들 2024. 6. 22. 21:55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말라

 

고린도후서 6: 1-8 


오늘 본문에 보면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를 지금, 오늘, 현재에 잘 간직하라는 말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매일 매일 그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고, 실 생활 속에서 큰 열매가 맺히는 삶을 살아라는 말이지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1. 매일 매일 은혜를 은혜로 깨닫는 옳바른 인식이 필요합니다.

은혜가 은혜 되려면 먼저 은혜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 지금 내가 이시간 존재하는 것, 얼마나 큰 은혜인지 그것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에 대한 옳바른 인식이 없기에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은혜를 모릅니다. 

어느 성도가 어려운 일을 만나 전화 합니다.
“목사님 내일 수술합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어떤 경우에는 전화를 통하여 기도를 하는데도 얼마나 감사해하고, 은혜를 받는지 모릅니다.”
“전화로 기도를 받으면서도 이렇게 감사하는 심령이 있는가 하면” 
그런데 정작 건강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건강하게 움직일수 있는 사실에 대하여 전혀 감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들이 너무나 많은데 오히려 불평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저 주신 은혜를 은혜로 수용할 수 있는 영적 안목,
그 인식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은혜입니다.  

본문에 “같으나” “같으나” 말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6:8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피상적으로 볼때에는, 예수믿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고, 한심한 것 같고, 미련한것 같고, 바보스럽게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아니하다는 말입니다. 실상은 만족하고, 감사하고, 지혜롭다는 말이지요.
실상은 참으로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판단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판단에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관의 차이이며, 삶의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영적 안목을 말합니다.
참된 성도들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것으로 판단하지 아니합니다.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선한 손길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진리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그것을 믿고 살아나갑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렇게 날씨가 좋은 데 예배당에 와서 예배 드리는 것 자체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시간 낭비요, 참으로 어리석게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교회에 수입의 십일조를드리고, 건축헌금 한다고 많은 돈을 바치고,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국의 가수 김장훈 씨라는 분이 자기는 월세집에 살면서 가난한 청소년,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하여 지난 9년간 30억이라는 돈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그와 그의 식구들이 매우 믿음이 좋은 가정이라고합니다.
얼마나 귀한 소식이지 모릅니다.
성도들은 주일 지키고, 하나님께 정성껏 예물 드리는것을 큰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만복의 근원이 하나님 이시고, 인간이 아무리 수고 해봤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아니하면 핫된다는 진리를 알기 ?문입니다.
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에수 그리스도 안에 살아나가는 일, 주의 말씀대로 사는것이 가장 복된 인생임을 압니다.
마 6:33,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믿는 자와믿지 아니하는 자의 삶의 가치관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이란 가치관의 차이요, 세계관의 차이입니다.

<여자의 일생>으로 유명한 19세기 프랑스 작가 모파상 (1850-1893)은 현대 단편 소설의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Maupassant is one of the fathers of the modern short story
그는 많은 인기와 돈을 소유했습니다.
모파상은 지중해에 화려한 요트를 가지고 있었고, 느르망디에 맨션을,  파리에는 호화스런 아파트를 소유하였고, 계속적으로 애인을 바꾸면서 인생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을 <레 미제라블> 이후 최고의 명작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42세 되던 해 칼을 가지고 자살을 기도해 정신 병원에 수용됐으며, 
다음 해에 43세에 그의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그가 평소가 말했던 “나는 모든것을 소유할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but I possess nothing” 이라고 적혔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볼때에 성공했고, 부자가 되었고, 세계적인 명예를 얻었지만 그러나 그는 실상은 영적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I possess nothing.
허무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사도 바울의 고백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빌 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가장 귀하고 복된 행복한 삶이기에, 자기가 가진 모든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합니다.
믿음의 가치관이 너무나 좋고 귀하기 때문에 세상의 가치관을 미련없이 다 버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은혜를 은혜로 깨닫는 옳바른 인식이 필요합니다.

2.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기 위해선는 복음을 위하여 인내해야합니다.

6: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6:5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6: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사도바울은 자기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하여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인내의 삶을 말합니다.
신앙 생활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사람은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하고 더욱 더 많은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얼마전 어느 경영전문가의 이야기중에서 이러한 말이 있었습니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 먹는 것이 시대는 지났고,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다." 
이 한마디는 이 시대의 한 면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기업에 잇어서도 '스피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스피드는 21세기 디지털경영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요소 중의 하나로 여깁니다.
신속한 의사결정, timing이 맞는 투자와 상품개발, 적시의 마케팅과 빠른 고객서비스 등을 이 시대의 성공적 요인으로 생각합니다.
현대의 최고의 경영자 가운데 한 사람인, MS 빌 게이츠는  
"80년대는 질(質)의 시대였고 90년대는 리엔지니어링의 시대였다. 2000년대는 속도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렇게 변화와 speed를 요구하는 시대에서 조용히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것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약 5:7-11,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성경은 신앙 생활을 농부의 농삿일에 비유합니다.
농부는 봄에 씨를 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싹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열매가 맺기를 기다랍니다. 씨를 심자마자 이튿날 열매가 나지 아니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가 없으면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참된 성도는 주님의 뜻을 바라면서 인내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내의 기초는 예수님의 인내입니다.
히 12:2-3,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잘 간직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에수님을 생각, 바라보고, 참고 견디어야합니다.

얼마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존 에드워드 부인이, 엘리자베스가 가슴 암이 재발하였다는 발표후에 많은 미국 사람들이 존 에드워드와 그의 부인에 대한 동정심이 많아 졌습니다.

지난April 9, 2007, Newsweek,에 엘리자베스 에드워드와 뉴스위크의 조나단 올터와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NEWSWEEK's Jonathan Alter at the Edwardses' new house in Chapel Hill, N.C. 
기자가 질문: 당신이 육신의 질병으로 믿음을 잃지 아니했나요? 혹은 믿음이 변해지지 아니했나요?
You didn't lose your faith, you changed your faith? Or did you lose it for a time?
엘리자베스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지금 암으로부터 저를 구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이 되면 저를 깨우쳐 주실 것입니다. 제가 바로 살았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저를 깨우쳐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참으로 믿고 있다면, 저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제 하나님이 제게 해 주신 약속의 전부입니다.”  
“I'm not praying for God to save me from cancer. I'm not. God will enlighten me when the time comes. And if I've done the right thing, I will be enlightened. And if I believe, I'll be saved. And that's all he promises me.” 

존과 엘리자베스 에드워드는 감리교회 교인으로서, 오래 전부터 교회 활동에 아주 active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10년전에는 자기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지금 자신은 암으로 투병하고 있습니다.

1996년 4월4일, 16세의 청년 웨이드 에드워즈 (Lucius Wade Edwards)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자기는 남편 존 에드워드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 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패배한 직 후, 엘리자베스에게서 유방암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2005년에 유방암을 완전히 나았다고 했는데, 
몇주전에 유방암이 재발되었고, 엉덩이 뼈에까지 전이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전혀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아니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그러한 역경속에서도 굳게 참고 인내해야합니다.
욥의 인내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면서 인내하면서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필코 모든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줄 분명히 믿습니다.
히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3.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합니다.

6:11 고린도 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6: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6: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넓으지기를 교훈합니다.
왜 우리가 마음을 넓히지 못하나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만 바르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해야 넓고 넉넉한 마음을 가질수 있습니다.  
은혜의 극치는 겸손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겸손합니까? 그만큼 은혜를 지킬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은혜와 관계없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은혜 받았다가도 쏟아버립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점점 더 겸손해집니다.  
겸손해야만 하나님의 은혜를 지킬수 있고, 더 많은 은혜를 받을수 있습니다.
겸손은 자기 위치를 아는 것입니다. 
자기 위치를 알고 끝까지 그 위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낮출 때 하나님은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하고 겸손함은 우유부단한 성품이 아닙니다.  
천성적인 부더러운 성품을 말하지 아니합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는 영적인 강인함이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란 언제나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조주 하나님를 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굳게 믿고, 사람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살아나가는 마음입니다.

15-16세기 이탈리아 사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유명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왕이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1)군주가 사랑와 덕으로 다스리는 방법

2) 폭력을 사용하여 백성들에게 공포를 주어 다스리는 방법.

마키아벨리는 이 두가지 방법중에서 둘째 방법이 좋다고 합니다.
우리가 볼?에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실제적으로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항상 맞았다고 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온유하고 겸손하게 살기가 쉽지 아니합니다.
마치 실패자가 될 가능이 많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생존경쟁에서 밀리게 됩니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이 말씀에 순종할수 있나요? 인간적으로 보면 불가능합니다.
어저께 참으로 어이없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와싱톤 DC 부근 버지니아에서 세탁소를 경여하는 한국 교포를 상대로 
미국의 한 판사가 자기의바지 한벌을 분실했다면서 6천 500만달러를 물어내라고 손해보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바지하나에 한국돈 약 600억원)
이 판사의 이름은 로이 피어슨이며, 워싱턴 D.C. 행정법원판사입니다.
피어슨 판사는 바지를 돌려받지 못하게 된 손실과 소송비용, 정신적인 고통과 불편, 소송을 위해 들인 시간에 대한 비용, 10년간 매주일 다른 세탁소에가는데 드는 렌터카 비용 등을 손해배상 청구금액 산정의 근거로 제시했다고 와싱톤 포스트는 전합니다. 
처음에는 피어슨 판사는 바지가 없어지는 바람에 새 양복을 못 입게 됐다며 1천150달러를 요구했다. 
그러다 실랑이가 계속되면서 감정싸움으로까지 이어졌고 변상 요구액도 점점 높아지게 됐다.  
사건이 악화되자 세탁소 주인이 배상금으로 중간에 3천 불, 4천600불, 그리고 마지막으로 1만2천 불을 주어 합의 할려고 했지만 그 판사가 거절했습니다.  
여러분 비지니스 하면서 얼마나 수고가 많나요?
저는 이 기사를 읽어면서 세상에는 참으로 악한 사람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그것도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판사라고하면 이 사회에서 가장 엘리트 그룹입니다.
한마디로 신사이며,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세상에서 온유하고 겸손하게 산다는 것 쉽지 아니합니다.
항상 손해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겸손하게 살아나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다 갚아 주십니다.

삼하 16장에보면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예루살렘을 버리고 도망할?에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합니다. 
“16: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그때에 다윗의 신하 아비새가 시므이를 당장 죽이자고 말합니다.
16: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그러나 다윗은 말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여러분 성도들은 이 악한 세상에서 끝까지 양으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영적인 은혜도 너무나 크고, 그리고 또한 육신적으로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지키며, 주어진 은혜가 헛되지 아니해야합니다.
-이미 주신 은혜를 옳바로 인식해야합니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오래참고 인내하면서 살아야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더욱 크신 은혜를 한없이 베풀어 주시기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계적인 성경강해 설교자였던 영국의 캠벨 모건 목사님이 은퇴석상에서 “설교하기 가장 힘든 회중은 잘 듣는 것 같지만 신앙생활에 변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고도 섬김과 봉사가 없는 성도들이 가장 힘든 사람들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목사님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설교와 교육을 통해서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아무리 설교를 해도 봉사가 없으면 설교자는 힘이 듭니다. 은혜를 알고 봉사하는 성도들이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원래 기독교의 박해자였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선택하셨고 사명도 맡기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알았던 바울은 생명을 바치며 헌신했습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생애는 한마디로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도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린도교회는 성령을 탄식케 하는 교회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열심히 봉사해야 하는데도 온갖 핑계를 대면서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고, 봉사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합니다. 
  교회마다 12월이 되면, 내년에는 봉사 못한다는 사람들로 넘칩니다. “내년에는 손주들 보아야 하고, 아이들 뒷바라지도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건강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못한다”는 등의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이렇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교회는 해마다 일꾼이 부족해서 아우성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는 교회는 일꾼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교회는 항상 “못합니다. 안합니다”라는 성도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은혜를 잘 받는 교회는 “하겠습니다. 시켜주세요”라는 교인들로 넘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습니까? 아니면 제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까? 
  바울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은혜를 제대로 받았던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지 보아야 합니다. 

  먼저, 사울이 어떻게 바울이 되었는지를 보겠습니다. 

  바울의 원래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있을 때에는 기독교의 무서운 박해자였습니다. 기독교인을 체포하고 구속하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스데반도 바울에 의해 죽었습니다. 그의 소행을 보면 하나님의 중벌을 받아 지옥의 맨 아랫목에 가야 할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이방의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전도합시다. 헌신하며 봉사합시다”라고 하면 때때로 귀챦아 합니다. 그래서 봉사 안해도 되는 교회를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교제도 봉사도 없이 예배만 달랑 드리고 오기 위해서 큰 교회를 찾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축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회 청소나 교사 혹은 성가대는 구약시대 같으면 레위인들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지파 사람들은 봉사하는 레위지파를 참 부러워했습니다. 이런 축복의 일들을 귀챦아 하고 기피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위한 봉사를 큰 축복으로 알았기에 생명을 걸고 충성했습니다. 어떻게 기독교 최대의 박해자 사울이 예수의 사도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 되었습니까? 그의 재능입니까? 지식입니까? 권력자들의 배경입니까? 다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되었고,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된 바울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안 바울은 일생 충성하고 헌신했습니다. 프랑스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요즘 많이 사용합니다. 원어의 뜻은 “귀족의 의무”입니다. 이 말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사회와 국민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나 신분에 맞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사도가 된 후에 그에 걸맞는 신앙과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우리도 은혜 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직분자로서 비방을 받지 않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기 위해 힘썼다”고 합니다. 사도에 걸맞게 헌신했다는 고백입니다. 4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그의 신앙은 더욱 빛납니다. 환란과 궁핍과 고난이 있고, 매를 맞고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오래 참고 성령을 의지하며 거짓없는 사랑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견디면서 봉사하고 헌신했습니다. 신앙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바울은 힘든 고난과 역경에서 주님을 위해 헌신함으로서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바울을 존경하고 신앙의 모범으로 삼는 것도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 있게 고린도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도 때때로 시련이 있고 아픔이 있고 실망스러운 일을 경험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신앙과 봉사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를 차단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 우리가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아야 합니까? 우리의 옛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에베소서 2장 11-13절에 보면, 바울이 이방인들의 옛날과 지금의 형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여러분이 이방인이요 무할례자라 비난받았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밖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구원의 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 합니다. 
  전에는 예수님과 관계가 없고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멸망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큰 축복이요, 큰 은혜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만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습니까? 이방인들만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안됩니다. 

 

은혜 받은 자로서 바울처럼 생명을 바치면서 신앙과 봉사의 길을 가야 합니다. 고난과 괴로움이 있어도 인내하면서 헌신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성도들의 삶입니다. “안한다. 못한다, 날 빼주세요”라고 하는 사람은 은혜를 헛되이 받는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나를 위해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세상에 죄인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나를 사랑하셨기에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앞으로는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영국 교회에 많은 감동을 주었던 프란시스 하버갈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1836년 영국의 성니콜라스 수도원장의 딸로 태어난 하버갈은 태어나면서부터 온 몸에 병을 달고 살다가 4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병 때문에 학교도 못다녔지만, 독학으로 히브리어, 헬라어, 불어, 독일어, 라틴어에 능통했습니다. 하버갈이 22세 때 병이 심해져서 친구의 집에서 휴양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집 벽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그 그림에 “나는 너를 위해 내 생명을 주었다. 너는 날 위해 무엇을 주겠느냐”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그 물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으면서도 돌이켜보면 몸에 병이 있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너무 죄송해서 남은 생애 주님 위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떠올린 영감으로 찬송시를 썼는데, 

 

그 찬송이 185장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 같은 세상에 만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죄중에 빠져서 영죽을 인생을 구하여 주려고 나 피를 흘렸다.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한없는 용서와 참 사랑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값없이 주었다.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 무엇하느냐” 


  연말이 되면 교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성도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교사도 못하고 성가대, 구역장, 기관의 일을 못한다고 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쉬어야겠다고 합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연말마다 하는 경험이라 ○○교회에서는 그런 성도들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도 은혜를 헛되이 받는 성도들이 가끔 있습니다. 은혜를 제대로 받는 성도들은 연말에 “내년에는 이것을 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꼭 시켜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봉사하고 헌신하십시오. 안할 이유를 찾고, 빠져 나갈 궁리만 하는 사람은 은혜를 헛되이 받은 성도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인들을 염려스럽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교회가면 어떻게 사나. 알뜰이 저축해도 힘든데,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드리고 어떻게 사나. 저렇게 교회일 하다가 병들면 어쩌나. 저러다가 회사 망하면 어쩌나”.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망하지 않습니다. 굶어죽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삶의 질이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더 어려워집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는 성도들의 것은 하나님께서 계속 빼앗아 가시지만, 은혜를 제대로 받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물 붓듯이 부어주십니다. 달란트 비유가 이것을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멈추지도 마시고 하시던 봉사 중단하지도 마십시오. 이것은 은혜를 헛되이 받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고린도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제 금년을 정리하고 내년을 계획하는 12월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계획 중에 “내년에는 교회 봉사를 줄이고 예배참석도 줄이고 하던 봉사도 쉬어야겠다. 목사님께 빼달라고 요구해야겠다”고 생각하신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성도들입니다. 
  바울처럼 힘들고 괴로워도 참고 인내하면서 봉사와 헌신의 길을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시고 갚아주시고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성도들이 되지 마십시오. 어떤 역경에서도 충성하고 헌신함으로써 은혜를 제대로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 6:1-2)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셨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이다. 

2절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 이 말씀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받을 때를 주셨으니 이 복음을 사람의 말로

헛되이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서 구원의 은혜를 받으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다같이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주셨다는 복음을 듣고도 사람의 말로 듣고 믿지 않 으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이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주셨다는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믿고 구원 받으 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지 않게 받는 것이 되는 것이다. 

 

*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가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 주 신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이 목적이 있어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것을 믿고 받아 들여야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목적은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여러분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셔서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것을 믿습니까?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대신 하라고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것을 믿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대신하라고 각각 다른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각각 다른 직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각각 다른 직분과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잘못  즉  바르지 못하게) 받지말라 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직분을 주신 것이 은혜라는 것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 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엡 3:9)

여러분 한 번 물어 봅시다.

여러분이 교회에 일꾼 된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인 것을 믿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믿을 때 우리를 일꾼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것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이 일상 생활에서 주신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값없이 햇빛과 공기와 물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자연을 주셔서 보며, 즐기며, 살게 해 주셨습니다.

이게 보통 은혜입니까?

우리가 극장에 가서 구경을 해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공짜로 얼마든지 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 고 즐기게 해 주셨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나무들, 꽃들, 풀들을 보고 즐기게 해 주시고 또 계절 따라 변화는 자연을 보며 즐기게 해 주시는데 이게 보통 은혜입니까?

그리고 우리를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미국에서 살게 해 주시고 좋은 집, 좋은 옷, 좋은 자동차, 좋은 음 식을 먹게 해주시는 이게 보통 은혜입니까?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가는 제일교회에서 하나님 섬기게 된 이것이 보통 은혜입니까?

저는 며칠 전 우리교인 한 분 한 분이 얼마나 고마운지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교인들은 대부분이 20-30 마일 북쪽에서 수십 교회를 지나서 오십니다.

이러한 교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없다면 그건 목사가 아니라 목석이지요. 

*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전천후적인 은혜입니다.

여러분 햇빛만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구름도, 비도 하나님의 은혜지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전천후적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요도 가난도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부요할 때는 부요할 때 필요한 은혜를 더 주시고 가난할 때는 가난할 때 필요한 은혜를 더 주십니 다.

이것이 바울사도가 고백한 은혜가 아닙니까?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가 비천에 처 할 줄 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 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여러분 아멘 입니까? 

한 독일인이 "나는 나의 운명을 불평하지 않겠다"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번은 자기의 구두가 다 떨어졌는데도 살 돈이 없어서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예배당에 들어 갔는데 두 발이 없는 사람이 의자 옆에 두 목발을 세워 놓고 앉아서 예배 드리는 것을 보고 자기는 신발은 없으나 두발이 있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형편에서 하나님 이루시는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 하나님은 평안도 고난도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평안할 때는 평안할 때 필요한 은혜를 더 주시고 고난에 때에는 고난에 때에 필요한 은혜를 더 주 십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는 평안할 때보다 고난 당할 때에 더 받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67,71) 하였다.

우리가 잘못 행하다가 고난 때문에 돌아서게 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바울사도는 환난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많이 받은 후에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로 다"(고후1:4) 

여러분이 환난 중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위로의 은혜를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의 운명이 하나님이 자기를 격동케 하셔서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게 하시고 그 약한 것 때문에 강하게 해 주시는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고생한 것을 말하면서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 혜로다" 하였다 (고전 15:10) 

여러분이 고난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폴 틸리히는 "고통은 진실로 하나님을 향하는 문" 이라 했다.

 

우리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게 된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 9:15) 

 

* 바울 사도는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 곧 선물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였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열매가 있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들에게는 적어도 세 가지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누려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삶을 살라고 주신 것이다.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은 구원받은 자녀로 살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자녀들이 기쁘게 사는 것을 볼 때 기쁨을 누리게 된다.

우리가 선물을 주었을 때 받은 자가 기뻐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즐거운가 더 나아가서 내가 준 선물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을 볼 때 내가 선물한 보람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뻐하며 누리는 것을 원하신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기념하는 절기를 주시고 지키게 하셨다.

하나님이 저들에게 주신 절기는 다 감사의 절기들이다. 

* 유월절은 양의 피 때문에 애굽에서 구원해 주시고 출애굽하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다.

 

* 초실절은 유월절 지나고 안식 후 다음날 주일에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날이다. 

* 오순절은 칠칠절, 맥추절이라고도 하는데 초실절 후 안식일을 7번 지난 후 다음날 곧 50일이 되는 날이요

역시 주일날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것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절기이다. 

* 장막절 곧 수장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먹여 주시고 마실 물을 주신 은혜 를 감사하며 기념하는 날이다.

가나안에 들어 와서는 이날은 추수를 마친 것을 감사하는 수장절로도 겸하여 지켰다. 

* 나팔절은 7월1일 신년을 시작하면서 앞을 내다보고 기쁨을 선포하여 나팔을 불었다. 

하나님은 이처럼 은혜 받은 자들에게 감사를 받으시기 원하시며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절기를 주시고 지키게 하셨다.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시50:23) 하셨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예배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게 될 줄 믿습니다. 

* 다음은 감사를 서로 나누며 살아야 한다.

바울 사도는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하므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 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후4:15) 하였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우리만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위한 것이고 다른 사람도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통해서 계속 흘러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들이 받은 은혜를 나누면 나눌수록 은혜는 더 풍성해 진다. 

영국 속담에 "감사는 높은 이자로 빌려주는 행위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고 서로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미국사람들이 얼마나 Thank You를 잘하는지 싫은 것도 "No Thank You" 한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도 전천후적으로 주시니 우리의 감사도 전천후적으로 해야 하겠다.

영어에 "pay a pilgrims thank"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감사는 기뻐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 우리가 더 많이 감사하며 산다면 더 많이 감사 할 수 있는 인생이 되어질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은혜란 어떤 것일까?

 

그의 첫 서신인 데살로니가는 은혜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시작하고
그의 마지막 말은 은혜가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이다.

 

자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로마서에서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은혜와 주권으로 대하신다고 설명했는데

정말 사도바울은 다른 모든 사도보다 수고도하고 참기도 하고 고난도 많았는데
다 하나님의 관대하심 덕분이라고 말한다. 

 

1. 그가 받은 은혜

 

1) 주 예수님의 찾아오심

 

예수님의 찾아오심이 은혜이다.
그가 찾은 것이 아니라 그분이 찾아오셨다.

살기가 등등하고 위협이 가득차 있을 때.

그냥 내버려 두셨다면 그는 그 살기와 위협으로 수많은 믿는 자들을 해치고 
자신도 양심에 자책이 심해 아주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둠 속에 해매일 때 빛으로 찾아오신 것
그래서 당신을 알게 하시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하심이 은혜이다.

 

2) 교회로 인도하심

 

교회로 인도하심이 은혜이다.

사도바울은 처음부터 혼자 생활하지 않고
다메섹 교회로 인도함을 받았다.

바울에게 형제라고 불러준 것은 다메섹 교회 성도인 아니니아였고 
그가 고난에 대해 열거할 때 다메섹에서 광주리에 달려 성밖으로 피신했다는 것이 나오는데 
이는 그가 처음 받은 고난과 이때 도움을 준 자들이 다메섹 제자들이었다.

 

안디옥 교회서는 가르칠 기회를 갖고
그 교회의 기도와 파송으로 이방인의 사도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가 남겨준 유산 
열 세편의 편지 
모두 교회와 그 교회의 성도인 개인에게 보낸 편지이며

그가 만난 사람 
모두 성도들이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 성도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 
브리스길리와 아굴라는 고린도 교회 
두루보나 두루보시, 버시 로마 교회 성도

교회로 인해 말씀도 나누고, 사역도 하며 동역자도 사람도 만났다.

 

그는 말한다. 
성도 안에서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3) 계시를 받은 것

 

계시를 받은 것이 은혜이다.

사도바울은 열 세편의 신약 성경을 적었지만 
그의 양은 전체의 1/4에 해당된다.

양으로 치면 1/3에 해당되는 누가 보다는 적다.

그러나 그 서신이 갖는 무게는 훨씬 무겁다.

 

그로부터 교회와 성도가 싸우고 지켜야 할 교리들 
부활, 은사, 교회, 성경, 복음, 이신칭의, 율법에 대한 진리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다음으로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이라고 말한다. 
성령 다음으로 우리가 빚진 자는 사도바울이라는 것이다.

이런 계시가 주어진 것이 은혜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것만 은혜가 아니다.

 

4) 가시.


가시 역시 은혜이다.

가시는 제거 불가능하고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어떤 것인데
끊임없이 그를 짜증나게 하는 것
에너지를 끊임없이 고갈시키는 것
그래서 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하는 것

그러나 이로 인해 그는 자고 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고 
그래서 이 약함으로 하나님의 강함을 의지하고 누리면서 살 수 있었다.

 

5) 수고와 고난이 은혜이다.

 

왜냐하면

고린도후서 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로마서 8장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래서 그는 고백한다.

나의 나 된 것
사도가 되고
성경을 열세권이나 적고
교회의 일꾼이며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 이것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관대하심으로 인한 것이라고.

 

2. 은혜를 헛되지 받지 말라.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라.

은혜를 헛되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때 
믿음이 없어 기다리지 못할 때 
수고를 불평하며 
남과 비교할 때
실증내고 조급해 할때

팟죽 한 그릇데 장자권을 팔은 에서처럼 
기다리지 못하고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한 가롯 유다처럼 
하나님은 모퉁이 돌을 주셨는데 우리는 건축자처럼 버려버릴수 있기에.

어떻게 하는 것이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일까?

 

1) 회심의 시간을 잊지 말라.

 

내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를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떻게 주님을 만났는지
그 때 내 모습이 어떠했는지

사도바울의 회심 기사가 세 번이나 나오는 것
그리고 자신을 늘 죄인 중 괴수라고 말한 것

언제나 이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불렀던 찬양

내 어찌 다른 삶 살리요
이 각오는 바로 내게 새 생명주신 주님의 사랑을 떠올릴 때 더 강해진다.

그의 사랑을 나를 강권하신다고 했는데 
다른 것을 선택할수 없다는 말이다. 
이로 인해 나는 제한적인 삶을 살수 밖에 없는 것

 

베드로는 말한다.

베드로후서 1:8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의 깨끗게 하심을 잊었느니라."

 

죄사함을 잊는 사람 
멀리 보지 못한다. 
과거도 보지 못하고 
앞으로 만나게 될 그 영광스러운 순간도 보지 못한다.

 

에스겔을 통해 말씀한다.

에스겔 16:22 “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마음대로 하는 이유
과거를 잊었기에.

구원이 열매 맺으려면 항상 어떻게 구원 얻었는지 감사하며 생생하게 기억고 있어야 한다.

 

 2) 기도에 헌신하라.

 

기도할수 있는 은혜를 헛되지 하지 밀아아 한다. 
사도바울은 은혜와 함께 모든 서신에서 강조한 것은 기도이다.

사도바울은 설교만 한 것이 아니다
설교 씨를 뿌린 다음 기도로 물을 주었다고 했다.

자기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개인을 위해서
세상 지도자들을 위해서

 

J. C 라일은 <기도를 잃은 당신에게>라는 소책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도의 장소를 탓하는 사람이라면 
베드로는 지붕에서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신 것을 기억해라.

기도를 잘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기도만큼 단순하게 해 놓은 것은 없음을 기억해라.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아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라. 
감사하는 순간 기도하라. 

 

기도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아 
더 기도할 때이다.

사도바울은 기도가 위무가 아니라 감사할 일임을 강조한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할 수 있기에
예수님의 기도가 합쳐져서 올라갈 것이기에
그리고 기도하는 중 평안으로 지켜주실 것이기에

 

3) 사명을 감당하라.

 

마지막으로 사명의 은헤를 헛되이 하지 않아야 한다.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사명은 은혜였다.

충성되이 여겨 맡겨 주신 것이기에.

면류관 주실려고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주님의 사역에 참여케 하시려고 주신 것

그러나 끝까지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다.

수고도 있고
열매가 없어 보일 때도 있고
알아주지 않을 때도 있으며 
자꾸 포기할 것이 생기기에. 

 

F.B 마이어는 사도 바울에 있었던 남성다움,  사명감당케 하는 세 덕목으로 결의, 인내, 용기를 든다.

 

결의는 
어떤 난관이 있어도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 
유대인의 미움이 그를 단념시키지 못했고
군중의 변덕도 그를 좌절시키지 뭇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려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이 그의 집요한 야망을 끊을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인내 
마가의 비겁함이 있어도, 
동족의 혹독한 미움이 있어도 불평 없이 감수함.

 

용기 
미친 듯이 날뛰는 광신자들로 가득한 원형 경기장 앞에서 
로마의 집정관과 행정관 앞에서 
돌에 맞았음에도.

결의가 있으면 포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인내가 있으면 다시 일어날 것이다. 
용기가 있으면 적에게 속지 않을 것이다.

 

페시메르가(peshmerga)는 아랍말로 죽음을 대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쿠르드 족의 군대를 말하는데 
지금 ISIS와 대치하는데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쿠르드 족은 이라크, 시리아, 이란 , 터키 에 걸쳐 살고 있는 국가 없는 민족 중에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이다. 3500만명. 
이들은 여러번 학살을 당하고 침약을 받아왔기에 자기를 지키는 정신이 투철하고, 특별히 종교에 상관없이 자기 지역에

오면 보호한다.

 

특별히 터키 국경에 위치하고 있고 시리아 북쪽에 있는 인구 5만명의 도시인 Kobani. 
10월 6일 ISIS의 검은 깃발이 이 도시 외곽에 세워지고 곧 무너질 것이라고 모두가 예견했다.

그런데 이 쿠루드 사람들이 용기 있게 싸우고 미국에 도움을 줌으로 이들의 검은 깃발은 사라졌다.

아무도 관심갖지 않던 작은 마을이 지금은 자부심의 상징, 의지의 승리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특별히 페시메르가 여성 군인들도 있는데 이 여성 군사들은  ISIS를 너무 힘들게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남자와 싸우다 죽으면 하늘로 가지만 여자와 싸우다 죽으면 지옥간다고 믿고 있기에. 
그래서 여성 전사를 만나면 막 흔들린다고 한다.

여성 군인은 말한다. "ISIS는 무기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의지를 갖고 있다."

사도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로. 
주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에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결의 용기 인내가 있으면 사명의 은혜가 열매 맺을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

 

이렇게 은혜를 헛되지 하지 않은 삶 
은혜를 은혜임을 알고 은혜가 열매 맺도록 하는 삶 
이런 삶을 한 마디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이다. 

사도바울에게 있어 은혜와 더블어 너무도 좋아하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
예수님 안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그 안에는 지혜와 자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골2:3)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시되(엡1:3)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아져 가느니라.(엡 2:22)

 

얼마나 복된 용어인가?
주님과 함께도 좋지만 
주님 안에는 거할수 있다는 것
안전하고 포근하고 하나되는 친밀함이 허락된 삶. 

 

사도바울은 그 분 안에 거했다.

감옥이 아니라 
근심이 아니라 
로마도 아니고 빌립보도 아니고 
사람의 칭찬이나 조롱도 아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의 소원은 무엇인가?

그 안에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생각하고 
그 안에 있는 믿음과 인내를 배우는 것

이것이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은 삶이며
어떤 것도 다 복된 열매로 변화시키는 삶이다.

 

결론: 사도 바울의 마지막 말

 

사도바울의 마지막 말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찌어다”

 

은혜가 우리와 함께한다.
은혜가 와 있다.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우리 역시 그분 안에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분 안에 온전히 거하는 것이다.

그분 안에서 안식하고 그분 안에서 기도하고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며 그분 안에서 견디는 것.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다 은혜임을 알게 되며 우리는 가시 앞에서나 약함 앞에서도 앞으로 나아가, 
은혜를 헛되지 하지 않는 자들이 다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