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기쁨을 얻는 3대 원천(합 3;16-19)

하나님아들 2024. 6. 2. 23:24

기쁨을 얻는 3대 원천(합 3;16-19)

< 절망 중에 만난 하나님 >

 어렸을 때 가난하게 자란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 겨울에도 따뜻한 물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커서 결혼을 잘했습니다. 남편이 인격적이고 가정적이고 돈도 잘 벌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큰 정원까지 꾸미고 살았고, 아이들도 잘 키웠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습니다. 여러 검사 후에 마침내 의사 선생님이 와서 말했습니다. ”손님! 정말 유감스럽지만 손님의 간이 기능을 멈췄습니다. 아무리 조치를 취해도 더 이상 기능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도 자기가 곧 죽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나간 후 그녀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병원 예배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예배실로 가면서 그녀는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사기꾼입니다. 당신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면서 누군가 행복하게 되는 것을 왜 그렇게 막으십니까? 제가 무슨 그리 큰 죄를 저질렀습니까? 세상은 너무 불공평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그녀는 예배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예배실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예배실의 중앙 통로로 들어서자 갑자기 현기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쓰러지듯이 통로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들자 제단 앞에 이런 현수막 글귀가 보였습니다. “주님! 부족한 저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그 글귀를 보면서 그녀는 전율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너는 이번 일의 의미를 아느냐? 나는 이번 일로 너의 전 존재를 받기를 원한다!” 그 음성을 듣고 그녀는 머리를 떨어뜨린 채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드립니다.” 그녀는 다른 기도는 거의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주님! 부족한 저에게 은혜를 베푸소서!”라는 기도만 계속 했습니다. 그리고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의사 선생님이 피검사와 소변검사와 기타 여러 검사를 한 후, 그녀에게 다시 와서 말했습니다. “손님! 신기합니다. 손님의 간이 다시 정상적으로 기능합니다. 왜 간이 기능을 멈췄다가 다시 제 기능을 하는지 저도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녀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몰라도 저는 압니다.” 그 일 이후로 그녀는 믿음으로 살면서 교회를 위해 누구보다 헌신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가끔 우리를 절망의 벼랑으로 이끌고 가십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희망이고, 그런 상황을 통해서 우리의 전 존재와 진실한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면 하나님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가장 최선의 길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은 하나님을 가장 깊이 만날 수 있는 순간입니다. 그때 하나님과 깊이 만나지 못하면 언제 만납니까? 결국 가장 절망적인 순간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품으로 우리를 초청하고 있는 가장 희망적인 순간입니다. 그때 예수님을 더욱 붙들고, 더욱 기도하고 감사하고 헌신하십시오. 그러면 절망은 곧 희망으로 바뀔 것입니다.  

< 질문하는 하박국 > 

 하박국 1장을 보면 하박국 선지자도 처음에는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합니까? 왜 의인은 망하고 악인은 형통합니까?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십니까?” 

 살면서 이런 질문이 없었던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허물을 알지만 하나님은 그 허물보다 더욱 가혹한 처사를 내리고 길과 퇴로를 막으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공로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생각하지 못하고, 어려움만 생기면 하나님이 자신에게만 못해주시는 것 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 눈으로 보면 세상도 불공평하고, 하나님도 불공평하신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이기에 하박국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그런 질문을 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백 살이 된 사람이 어떻게 아이를 낳습니까?” 동방의 의인 욥도 고난을 당하면서 많은 질문을 했고, 위대한 선지자인 예레미야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배척하자 “하나님! 왜 저를 태어나게 하셨습니까?”라고 자기 존재를 부인하는 질문까지 했습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믿음이 파산된 표시는 아닙니다. 끔직한 고난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되면 누구든지 그런 질문과 원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런 질문들은 이런 믿음의 고백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것도 주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제가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십니까? 이제 어떤 고난이 있어도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게 하시고, 헌신이 후퇴하지 않게 하소서!”

< 기도하는 하박국 > 

 하박국의 질문에 하나님은 하박국 2장 2-4절에서 그에게 3가지 음성을 주셨습니다. 첫째, 어려울 때일수록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믿음으로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과 함께 하박국 2장 5-20절까지 악인의 멸망에 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질문하는 하박국이 기도하는 하박국으로 변합니다. 

 하박국 3장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이 구절에서 ‘시기오놋’이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아마 음악과 관련된 어떤 부호나 악기로 추정됩니다. 쉽게 말하면 하박국은 찬송하면서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환경이 어렵고 믿음이 흔들릴 때는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박국처럼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기도를 잘하는 사람’으로 바뀔 때 그때부터 놀라운 변화의 역사는 시작될 것입니다. 그때 환경도 변하고 무엇보다 자기가 변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기도할 때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천국과 가까워질 때는 없습니다. 또한 사람이 기도할 때만큼 주님처럼 될 때도 없고, 그때만큼 주님과 깊고 진실한 교제를 할 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하박국이 어떤 기도를 합니까? 하박국 3장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여!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말씀의 참 뜻은 숫자적으로 부흥하게 해달라는 말이 아니라 “이 수년 내에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소서!”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하박국은 3장 3-15절까지 주님의 진노의 심판을 예언합니다. 

 그 기도가 끝나자 하박국에게 어떤 환상이 보였습니다. 그 환상은 말발굽 소리와 전쟁을 통해서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오는 환상이었습니다. 그 환상을 보고 그는 두려움과 떨림 속에 사로잡혔습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 기쁨을 얻는 3대 원천 > 

 그 환상을 보고 하박국은 잠시 두려움에 떨었지만 곧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두려운 일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이루어졌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참을 수 없는 기쁨이 생겨났고, 그 기쁨이 입술로 고백되었습니다. 

 본문 17-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 하박국의 기쁨의 노래는 절망 중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입니다. 어떻게 하박국이 절망 중에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까?

1. 하나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면 하박국은 2번이나 “하나님을 인하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쁨은 하나님 안에 있기에 생기는 기쁨이었습니다. 사람이 환경 안에 있으면 항상 기뻐할 수 없지만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성도는 환경의 온도를 따라 움직이는 온도계가 아니라 환경의 온도를 조절하는 온도 조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박국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대개 밤을 무서워합니다. 밤에는 혼자 공원에 가라고 하면 울면서 안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빠가 함께 가자고 하면 콧노래를 부르며 아빠를 따라갑니다. 똑같이 무서운 밤도 아빠가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움이 없어진 것입니다. 누구나 밤거리를 혼자 가야 하는 순간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면 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셨습니다. 그때 풍랑이 일자 제자들은 스스로 그 풍랑을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능숙한 어부도 있었기 때문에 잘 극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왔습니다. 결국 그들은 배 끝에서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않습니까?” 그때 주님이 일어나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시고 바람과 바다를 명령하여 잔잔케 했습니다. 

 예수님이 탄 배도 풍랑을 만납니다. 믿는다고 해서 만사가 다 형통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즉 성도도 환난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처럼 성도도 환난을 당하지만 언제나 환난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늠름하게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어려워도 늠름하게 살았고, 감옥에서도 싱싱하게 살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스스로 마귀를 이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만 성도들 중에 마귀를 못 이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2. 구원의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본문 18절 말씀에서 하박국은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처럼 성도에게 구원의 확신이 분명하면 어떤 시련에서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게 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넘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성도에게 시련과 고난은 오히려 자신의 신앙과 인격을 진보시키는 계기가 되고, 더욱 큰 축복과 최종 승리로 나아가는 통로가 됩니다. 

 몇 년 전에,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인내심에 관한 2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첫째 실험은 들쥐를 욕조에 집어놓고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를 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실험에 의하면 쥐들의 평균 생존시간은 7시간이었습니다. 둘째 실험은 첫째 실험과 똑같은 상황에서 쥐가 탈진되어 익사하기 직전에 몇 초간 쥐를 욕조에서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실험에서는 쥐들의 평균 생존시간이 20시간으로 늘어났습니다. 

 몇 초간의 차이가 생존기간의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을 보고 연구원들이 그 이유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 사이의 차이는 두 번째 그룹의 쥐들이 더 희망을 가졌다는 차이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두 번째 실험의 쥐들은 한 번의 구조를 경험했기 때문에 다시 구출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더 오래 수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한번 구출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은 영원한 경험입니다. 이제 구원받는 성도는 어쩔 수 없이 천국에 가야 합니다. 한번 하나님이 아들로 입적한 성도는 하나님이 영원히 그를 이끌어주실 것이고, 수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너 호적 파고 나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최종결론은 반드시 승리임을 확신하고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이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늘 힘을 주셔서 높은 곳으로 다닐 수 있게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과 지혜의 원천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하박국은 절망 중에도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성도의 구원은 천국 가는 구원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포괄적인 의미에서 이 세상을 살면서 주님의 빛이 나오고,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힘없는 패잔병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지금도 매일 매 순간 우리에게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시고, 필요하다면 높은 자리도 주실 것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왜 우리나라 사람이 이렇게 영어를 못할까?” 그 이유를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여러 면에서 탁월합니다. 그래서 세계를 이끌면서 섬길 충분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영적인 능력을 활용하고, 또한 역사적인 배경과 국제정치 역학을 잘 활용하면 총칼이 없어도 미국보다 더 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압니까? 사단이 제일 잘 압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의 잠재력을 사장시키고 국제화를 막기 위해서 일본식 영어교육을 통해 대못을 박은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 사람은 전 세계 어느 민족보다 지적 능력이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토플 평균점수는 전 세계 북한을 빼고 뒤에서 1-2등을 합니까? 공부를 안 하고 꼴찌라면 이해가 되지만 공부를 엄청나게 하고도 꼴찌입니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20세기의 기적입니다. 

 왜 그런 기적이 생겼습니까? 바로 영어를 공부할수록 더 못하게 되는 일본식 영어공부  방법 때문입니다. 이제 지난 100년 동안 박혔던 그 대못을 빼야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 대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어서 기도 중에 네트영어를 개발했는데 지금은 네트영어 전파가 하나의 사명처럼 느껴집니다. 네트영어가 우리민족이 웅비하고 세계를 잘 이끌면서 섬기게 할 하나의 좋은 도구가 된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유학 가기 전에 기존영어공부 방법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때와 비교할 때 네트영어만큼 탁월한 공부방법이 없다는 확신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영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네트영어에 탄복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방법이 좋다고 해도 널리 퍼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앞으로 네트영어가 빠르게 확산되려면 더 많은 노력, 더 많은 제자, 더 많은 물질, 더 많은 교재 등이 필요합니다. 

 이번 학기에 제가 만든 네트영어 어린이교재가 3권 처음 나오는데, 인력과 물질이 있다면 더 많은 교재를 빨리 만들면서 프랜차이즈 학원도 할 수 있고, 네트영어의 전파속도가 빨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투자처를 찾지 못해서 떠도는 몇 백 억, 몇 천 억대의 자본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 자본들과 연결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민족의 사명을 일깨우고,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선교도 많이 하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놀라운 가능성과 잠재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높은 곳’을 다닐 수 있고, ‘높은 곳’을 날 수 있습니다. 이사야 40장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나가면 우리는 하박국의 고백처럼 높은 곳을 다니면서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대개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그것만 보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 우리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마음에 딱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가 원하는 때에 그 비전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현재의 삶이 어려워도 비전을 잃지 마십시오. 비전을 가져야 고난도 극복할 수 있고, 위대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비전을 향해서 열심히 살았는데 생각한 만큼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앞으로 생각한 것 이상의 은혜를 받을 때가 옵니다. 그러므로 결코 낙심하지 말고 더욱 기도하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헌신하십시오. 그러면 환경을 초월한 신비한 기쁨이 우리에게도 나오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 조니 에렉슨 타다란 여성작가가 있습니다. 그녀는 1967년 다이빙 사고로 사지마비가 되었습니다. 그 뒤,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가 되었고,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지었습니다. 지금도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장애인의 인권과 복음사역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누군가 물었습니다. “조니! 당신은 항상 행복해 보이는데, 어떻게 저도 당신이 가진 기쁨을 가질 수 있나요?” 그때 조니가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거의 매일 일어날 때마다 탄식해요. ‘오늘도 늘 똑같은 날이구나!’ 그러면 매일이 너무 미칠 것만 같고 답답해요. 만약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저는 하루도 살 수 없었을 거예요.” 

 그녀는 아침마다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님! 이제 저를 돌봐주는 친구가 와서 저를 목욕시켜주고, 옷을 입히고, 의자에 앉히고, 머리를 빗질하고, 이를 닦아주고, 저를 문밖으로 보내줄 겁니다. 저는 오늘 한 번 더 이런 똑같은 일상을 마주할 힘도 없고 미소도 없어요. 제게 당신의 미소를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영혼에 힘과 미소를 주시고, 그날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줄 것이 없어서 그 미소를 주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하늘의 미소를 구하며 사십시오. 지금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힘든 현실 뒤에서 펼쳐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 은혜를 온전히 깨닫는다는 것은 마치 태평양 물을 양동이로 담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많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의 현실 속에서 힘과 용기를 내어 비전을 향해 달려가십시오.  


 지금 가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운 분들이 있습니까? 그 짐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저를 마음대로 사용하세요. 저를 사망의 골짜기로 밀어 넣으셔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저의 모든 문제를 맡깁니다.” 그런 고백과 함께 주님 때문에 기뻐하며 사십시오. 그리고 아무리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주님을 생각하면 다시 살맛이 나고 새 힘이 생기는 성도가 되십시오.

 지금 우리 앞에는 찬란한 축복의 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지만 그 땅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힘써 싸워서 차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살면서 때로 문제와 환난이 와도 결코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의지하고 비전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감으로 약속된 축복의 땅과 높은 곳을 차지하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한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