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서신

요한 계시록(총론)

하나님아들 2024. 5. 23. 14:17

요한 계시록(총론)

 

Ⅰ. 들어가는 말

 

종말에 대한 예언의 책으로 요한계시록을 첫째로 들 수 있다. 그러나 계시록은 대부분 상징적으로 쓰여졌다. 상징적인 기록들은 해석자에 따라 다른 견해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주석들이나 종말론의 책들이 서로 견해들이 일치하지 않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때로는 성경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께서 이러한 상징적인 언어로써 요한계시록을 쓰게하여서 이렇게 혼란을 일으키게 하는가라고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계시록 이전에 많은 성경구절들에서 종말에 대한 예언을 주셔서 계시록의 상징적인 언어들을 풀 수 있는 열쇠들을 이미 제시해 놓으시고 난 후에 계시록을 주신 것이다. 특히 다니엘서는 요한계시록과 같은 주제로 전개되며 또 같은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마태복음 24장도 다니엘과 계시록을 연결하는 고리역할을 하는 종말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필자는 지난 두달에 걸쳐 목회와 신학에서 다니엘서에 나타난 종말론을 살펴보았다. 앞으로 네번에 걸쳐서 필자는 요한 계시록과 마태복음 등을 해석하고자 한다. 본인은 특히 계시록이 다니엘서와 병행을 이루고 있음에 유의하면서 다니엘의 조명아래 요한계시록을 풀어나갈 것이다. 또한 마태복음은 다니엘과의 관계에서 풀어나가겠으며 다니엘과 마태복음의 조명하에 요한 계시록을 계속 풀이해 보고자 한다.

요한계시록 1장은 요한계시록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다. 1장에서는 이 책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으며 어떤 동기에서 쓰여지며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계시록의 종말론에 들어가기 전에 1장에서 계시록의 주제를 먼저 파악하도록 하겠다.

 

Ⅱ. 요한계시록 서론(계1장)

1. “속히 될 일”

요한은 이 책에서 “속히 될 일”을 기록하려고 한다. 그 일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셔서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종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이다.(1:1) 그리고 요한은 “때가 가깝다”고 거듭 말한다. 이 “때”는 언제를 말하는가 7절에 이 “때”는 명백하게 나타난다.“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모습이 분명하다. 따라서 요한이 쓰려고 하는 일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것이 분명하다.

요한은 재림의 때를 “속히 될” 그리고 “때가 가깝다”고 말함으로써 임박한 종말을 기대하고 있다. 교회는 항상 임박한 종말의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한다. 주님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며 항상 주님이오실 날이 가까운 줄로 인식할 때에 깨어서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2. 환난당하는 성도들

요한은 이 글을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형태로 쓰고 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요한은 “형제”라고 부른다(1:9) 우리는 예수 안에서 다 형제요 자매이다. 그러나 요한이 그들을 “형제”라고 부를 때에는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요한은 서로가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기” 때문에 형제라고 말한다. 그들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참여하였다. 그뿐 아니라 예수 때문에 그들은 환난을 당하고 있다. 요한도 지금 예수 때문에 밧모라 하는 섬에서 유배를 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환난중에서도 믿음을 지키면서 인내하고 있다.

그들이 환난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 때문이었다.(9절) 그들은 말씀을 중히 여겼으며, 이 말씀을 버릴 수 없었고 이 말씀을 지키는 것 때문에 환난을 당하였다. 또한 그들은 예수를 증거하는 것 때문에 환난에 처해지는 것을 주저하지 아니하였다. 이 “말씀”과 “증거”는 앞으로 계시록에 자주 나오며 성도들이 환난을 당하는 이유들로 계속 제시된다.

 

3. 승리의 예수 그리스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주의 날에 일곱 촛대와 그 사이에 있는 “인자같은 이”를 환상가운데 보았다.(1:12 이하) 일곱 촛대(등대)는 구약 성전의 성소에 있었던 기물이다. 요한이 본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요한이 주님을 “인자같은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님이 나타난 이 광경이 다니엘 7:13 이하의 묘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다니엘서에서는 “인자같은 이”가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로 나아가서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와 영광을 받았다. 계시록 1:4 이하에도 다니엘의 광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계시고 그 앞에 주님이 증인으로써 그를 보좌하고 계신다.

요한에게 보이는 주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다.(13절) 발에 끌리는 옷과 허리띠를 두른 것은 제사장의 모습이다. 일곱 촛대는 성소에 있는 기물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이 성소에서 봉사하는 것과 같이 땅위의 교회들을 봉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항상 밝히는 즉 교회를 보존하는 역할을 하고 계시는 모습이다.

교회는 이미 큰 환난을 당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크게 위협을 당할 것이다. 주님이 이 위협당하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교회를 보호하시는 제사장이신 주님은 다음의 모습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14하-26절)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은 강하다. 따라서 그 발이 내어 딛을 때에 부서지지 않을 것이 없을 것이다.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는 것은 그가 발하는 힘의 위력을 나타낸다. 폭포수 앞에서 사람들은 많은 물이 떨어질 때에 위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렇게 흐르는 많은 물은 대단하다. 그는 오른 손에 “일곱 별” 즉 자신의 사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교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그는 재빨리 사자들을 파송할 것이다. 그의 입술의 말은 세상을 심판할 만한 권위와 능력이 있다. 결국 그는 입의 말로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렇게 주님이 심판하시는 위엄찬 모습으로 나타난 것을 본 요한은 그 앞에서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17절) 주님은 요한에게 손을 얹으며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신다. 주님은 요한을 무찌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요한과 교회를 보호하시기 위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주님은 자신이 “전에 죽었었노라”고 말씀하신다.(18절) 이미 그도 환난을 겪어보셨다. 죽음의 고통도 겪으신 분이시다. 따라서 교회가 당할 환난을 그분은 너무도 잘 아시는 분이시다.

이제 주님은 선포하신다.“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8절) 전에는 사단의 음모에 죽음을 당하셨던 분이다. 그러나 그는 죽음에서 부활하시면서 사망을 깨뜨리셨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사망과 음부가 성도들을 점령하지 못하게 하실 것을 선언하신다.

계시록 1장에서의 메시지의 중심을 우리는 분명히 발견하게 된다. 교회가 환난에 처하게 되지만 주님께서는 승리의 모습으로 교회를 보호하시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계시록 전체의 주제를 “교회의 환난”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라고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주님은 어떤 비밀들을 요한에게 보여주시고자 한다. 그것은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촛대”의 비밀이다. 일곱 촛대는 교회를 말한다. 이 일곱교회는 마지막 때에 있을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는 교회들로 볼 수 있다. 교회의 비밀은 교회가 어떠한 위협을 받을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교회의 위협은 말씀에서부터 이탈되어 타락하고 변질되어 내적인 위협과 또 외부에서 오는 환난이다. 따라서 앞으로 요한은 계시록 전체를 통하여 어떻게 교회가 타락할 것인지 또 어떻게 환난에 처하게 될 것인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곱 별”은 일곱 사자들이다. “사자”를 간혹 목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말하는 자도 있으나 여기에 나타나는 “사자들”은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 부리시는 영물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계시록은 주님이 환난을 당하는 교회들을 자기의 사자들을 사용하여 어떻게 지킬것인지를 밝혀줄 것이다.

 

Ⅲ. 일곱 인의 비밀(계 4-8장)

필자는 몇개월 전에 다니엘 2장과 7장을 연구하였다. 이제 우리는 다니엘 7장과 매우 연관이 있게 보이는 계시록 4-7장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하늘의 광경(계 4-5장)

(1) 하늘 보좌

요한은 하늘 문이 열린 것을 보았고 하늘에서 “이리로 올라 오라”는 음성을 들었다. 혹자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공중휴거를 주장한다. 그들은 마치 앞으로 공중에서 “올라오라”는 소리가 발하면 성도들이 “세상아 잘있거라” 하면서 하늘로 올라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본문은 성도들의 휴거와 전혀 관계가 없는 구절이다. 본문은 요한 개인이 환상중에 올라가는 것이며 그 목적은 이후에 될 일을 환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러한 개인적인 환상을 예수님 재림에 있을 성도들의 공중휴거와 연관시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성경의 적용이다.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의 광경을 본다. 보좌가 있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다. 이분은 분명히 제1위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다니엘 7장 9절 이하의 장면과 유사하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과 같았다. 다니엘서에는 그분이 입은 옷이 흰 눈과 같이 희고 또 머리털은 깨끗한 양털같았다. 벽옥과 흰 눈의 표현은 서로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묘사라고 생각된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오고 있었다. 다니엘서에는 불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것도 보는 관점의 차이로 볼 수 있을 유사한 장면들이라고 생각된다.

보좌 앞에는 수정같은 유리바다가 있으며 일곱 등불켠 것이 놓여있다. 이때의 일곱등불의 헬라어는 1장 12절에 일곱교회를 뜻하는 룩크니아스(λυχνια)가 아닌 람파데스(λαμπαδε)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등불은 일곱교회로 볼 필요는 없겠다. 계시록 1장 4절은 보좌 앞에 일곱 성령이 있는 것이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도 일곱 등불은 교회들을 돌볼 준비하고 있는 성령님으로 생각된다(계시록 5장 6절은 성령님을 일곱 눈으로 말하고 있으며 이것 또한 땅의 사역과 관계한 적절한 묘사로 볼 수 있다).

본문에서 다니엘서와 유사한 가장 큰 특징은 큰 보좌 둘레에 24보좌들이 둘러있는 모습이다. 그 보좌들 위에 24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다. 24장로들은 구약(열두 지파)와 신약(열두 사도)을 대표하는 성도들로 볼 수 있다.(계22:12, 14; 헨드릭슨 1975:101 참조) 이들 24장로들이 하는 일은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리어 경배하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면류관을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던지며 찬양한다.:“하나님! 당신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24장로들이 왕으로서 보좌에 앉아 존귀함만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귀와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리며 그에 찬양드린다.

하나님 보좌 주위에는 24장로들 뿐만 아니라 네 생물들이 있다. 그들은 사자 송아지 독수리 사람의 모습을 가졌다. 이 네 생물은 에스겔 1장과 10장에 나타나는 그룹이라는 천사들이다. 그룹은 하나님 가장 가까이 모시고 있는 천사이다.(창 3:24 참조; 성막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 두 그룹을 참조하라) 이 그룹들이 하나님 가까이에서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린다(4:6-9).

이상의 광경은 다니엘 7장의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다니엘보다 좀더 첨가된 것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신약시대의 구속받은 성도들이 나타나며 또 교회를 위한 성령의 역할 등이 눈에 보이게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다니엘이 본 하늘의 광경은 재판이 열리는 법정(法庭)이었다. 요한이 본 광경도 크게 다름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2)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

요한이 또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었다.(1절) 다니엘 7장에서도 책이 나타난다.(10절) 그러나 서로가 다른 점은 다니서에서는 책이 펴져 있었고 계시록에서는 책이 인봉해져 있다. 다니엘서에서는 보좌 앞에 책이 펴놓였고 짐승이 심판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그 책은 심판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계시록에도 하나님 보좌 앞에 두가지 종류의 책들이 펴져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생명책이요 하나는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이 이루어지는 심판에 관한 책이다.(계20:12) 5장에 나타나는 책은 생명의 책이라고 보기 보다는 다니엘 7장의 것과 마찬가지로 심판에 관한 책으로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이 책의 인이 떼어질 때마다 재난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요한이 본 책의 인이 다 떼어져서 펴질 때에는 다니엘서와 같은 심판이 예상되어진다 따라서 요한의 하늘광경도 법정(法庭)으로 볼 수 있겠다.

 

(3) 인을 뗄 어린 양

요한이 본 책은 인으로 봉해져 있었다. 한 권세있는 천사가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고 외쳤다 요한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인을 뗄 권세를 가진 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늘에서도 없었고 땅에서도 없었따 요한은 당황하였고 크게 통곡했다.

그때에 장로 중에 하나가 한 분을 소개하였다. 그분은 어린 양이었고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았다.(6절)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 세상 왕들을 심판할 권세를 가진 분은 위엄차고 늠름한 모습이어야 할 것이나 힘없어 보이는 어린양이었다. 그나마도 죽임을 당한 경험이 있는 약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가 다윗의 뿌리로서 세상을 이기기에 합당한 분이다.

이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책을 취하니 그룹들과 24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리며 경배와 찬양을 드린다(9-10절). 특히 24장로들과 요한은 이 어린양이 책을 뗄 때에 더 기뻐하는 것이다. 이 책은 심판의 책이다. 책이 펴질 때에 세상이 심판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구속받는 성도들은 어린양의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가 이미 자기 피로 그들을 구속하여 하나님 앞에 바친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다. 세상이 심판을 당할 때에 구속받은 성도들은 기뻐 뛰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다.

24장로들이 향이 가득한 금향로를 가지고 어린양에게 바치는 모습도 나타난다.(9절)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고 설명한다. 계시록 6장 9-10절에는 짐승에게 고난받으며 죽임을 당한 성도들이 제단 옆에서 통곡으로 호소한다.(8:3-4 참조) 24장로들이 이 성도들의 원통한 호소를 어린양에게 바친다 어린 양은 이 성도들의 기도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책을 펼 것이다.

다니엘 7장에는 성도들이 어떤 정해진 기간동안 섬 반 작은 뿔에 의해 환난을 당하였고 예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고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다. 계시록에는 성도들이 어떻게 고난을 당하며 성도를 괴롭히는 왕들이 어떻게 심판을 당할 것이지를 기대하게 된다.

 

2. 여섯 인들의 비밀(계 6장)

(1) 첫째 인 : 흰 말의 환상 (6:1-2)

어린양이 일곱인을 하나씩 뗄 때에 각 말들의 환상들이 요한에게 보여졌다. 이 말들은 각기 다른 색깔을 띄고 있다. 만약 흰 말만 나타난다.면 흰 것에 특별한 상징적인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각기 다른 색의 말들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그 색깔은 분명히 상징적인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첫번째 환상에서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긴다 이것은 전쟁하는 모습이다. 흔히 첫번째 흰 말은 적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라면 왜 흰것으로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계시록에 흰옷을 입으신 분은 자주 주님으로 나타나고(1:14; 14:14; 19:11, 14), 성도들이 흰 옷을 입은 것으로 나타난다.(2:17, 3:4, 5, 18; 4:4; 6:11; 7:9, 13) 따라서 흰말은 적그리스도라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성도들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흰 말을 탄 자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이다. 계시록에서 성도들은 항상 고난을 받고 피해를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러한 승리의 모습은 주님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Ladd, 1972:98; 헨드릭슨 1975: 111f 참조) 1장의 주제에서 보았듯이 “승리의 주님”이 계시록의 주제이다.(1:13; 2:26, 27; 3:21; 5:5; 6:16; 11:15; 12:11; 14:1; 14:14; 17:14; 19:11 등 참조) 특히 6장의 첫번째 말의 모습은 19장 11절 이하의 예수님의 승리의 모습과 거의 같이 나타나는 데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9장 11절 이하에 주님이 흰말을 타고 면류관을 쓰고 전쟁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본문은 16장 아마겟돈 전쟁과 연관되어 있다. 그는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킨 용(사단)과 짐승(적그리스도)과 거짓 선지자들을 잡아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진다(19:19-21) 그는 맹렬한 진노로 세상을 쳐부수고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19:15-16) 계시록 6장의 첫부분과 19장의 묘사가 같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계시록은 7의 사이클로 구성되어 있다. 각 사이클은 모두 그리스도의 승리 혹은 세상에 대한 심판으로 시작하여 가운데는 재난과 대환난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리고는 다시 주님의 승리 혹은 세상에 대한 심판으로 마친다 특히 이러한 구조에서 첫 사이클의 첫번의 것과 마지막 사이클의 마지막의 것이 꼭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모습으로 시작하고 또 끝마친다. 이러한 구조는 계시록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압도적인 주제를 가지고 구성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사이클의 첫 시작에서 맨 마지막에 있을 그리스도의 승리의 모습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우리 주님은 성도들에게 어떠한 환난이 닥치더라도 안심할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둘째 인 : 붉은 말의 환상 (6:3-4)

어린양이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붉은 말이 나왔다. 이 말은 탄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는 큰 칼을 받았다. 이 붉은 말은 전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때의 징조로서 자주 전쟁의 재난이 주어진다(마24:7; 계9:13-21 등). 다니엘 7장은 성도들의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세상을 정복하고 성도들과도 싸워 이겼다.(단7:24, 21; 계13:7 참조)

 

(3) 셋째 인 : 검은 말의 환상 (6:5-6)

셋째 인을 뗄 때에 검은 말이 나왔다. 검은 말은 기근을 상징한다. 예레미야애가 5장 10절에 주린자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게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기근은 마지막 때의 징조중에 하나로서 나타나는 재난이다.(마24:7)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으며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6절)” 밀은 당시에 고급 음식이며 보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먹는 양식이다. 한 데나리온은 남자 장정의 하루 품삯이다. 밀 한되가 한 데나리온의 값은 당시의 시세로 보면 엄청나게 비싼 값이다. 한 되는 한사람의 하루 양식에 해당된다. 따라서 남자가 벌어서 한 가족이 멀고 살기에 힘든 상황이다.

또 하늘에서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외친다 감람유는 사치에 사용되고 포도주는 연회에 필요하다. 당시 부유한 사람들은 목욕한 후 기름을 몸에 바르고 연회에서 포두주를 즐기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연상할 수 있다. 즉 기근 중에서도 사치와 향락은 더욱 심할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때의 기근은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인위적인 것일 가능성이 더 많겠다. 곡식도 돈 있는 사람은 와서 사먹으라고 외치는 것을 보아서 부유한 사람들은 풍족한 음식과 사치 그리고 향락에 젖을 것이지만 가난한 사람은 굶주리는 상황을 연상할 수 있다.

특히 계시록 13장 17절 이하는 짐승(적그리스도)에게 절하는 표가 없으면 매매할 수 없어서 성도들의 굶주림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반면에 멸망의 도시 바벨론으로는 상인들이 온갖 보물을 들고 들어가서 치부하고 있는 묘사에서 마지막 때에 얼마나 사치와 향락이 극심할 것인지를 알 수 있겠다.(계19:11 이하)

 

(4) 넷째 인 : 청황색 말의 환상 (6:7-8)

넷째 인을 떼실 때에 청황색 말이 나왔는데 그 말 위에 사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타고 있었다. 본문에서만 볼 때에 청황색 말이 무엇을 상징하는 지를 쉽게 분별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다른 성경에서 마지막 때에 주어진 징조들을 참조하여 청황색 말은 질병 혹은 온역이라고 볼 수 있다. 주님이 감람산에서 주신 마지막 때에 대한 징조로 누가복음 21장 10절에 전쟁기근 온역이 나타난다. 특히 피부병이 청황색의 빛깔로 묘사되기가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5) 다섯째 인 : 짐승이 주는 성도의 환난 (6:8하-11)

전쟁, 기근, 온역은 인류 공동에게 주어지는 재난들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다음에 나타나는 짐승이 주는 재난은 특히 성도들이 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에 나타나는 짐승, 기근, 온역은 각각 땅위에 사람들 1/4을 죽이는 권세를 가졌다. 마지막 1/4은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다.(8절하)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9절 이하에 묘사된다.

누가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하고 있다. 계시록 1장 9절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환난을 당하는 자들을 “형제”라고 부르면서 편지를 쓰고 있었다. 요한 당시에만 그러한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시대마다 항상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말미암아 핍박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본문은 특히 마지막 때에 “짐승”이라고 불리는 자에게 대환난을 당하는 모습을 증언하고 있다.(계시록은 마지막 때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쓰고 있음을 상기하기 바람 : 계1:1-3, 7 참조). “짐승”은 다니엘 7장에서 넷째 왕국을 상징하기 위해 등장하였으며 계시록에서는 본문에서 시작하여 앞으로 자주 등장하게 된다. 특히 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의 활동상황이 자세히 기록되고 있으며 그때의 “짐승”은 적그리스도이다. 6장 본문에서 “짐승”을 적그리스도라고 단정하기는 조금 성급한 감은 있지만 여하튼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대환난을 당하는 모습은 분명하다.

죽임을 당한 성도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10절). 짐승에게 순교를 당한 사람들을 본문은 제단에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구약 제사에서 제단에 제물이 바쳐진 후 피는 성전 기물에 뿌리고 나머지는 제단 옆에 쏟았다. 이와같이 순교당한 자의 원한이 제단 아래에 있어서 계속 하나님에게 신원(伸寃)하고 있다. 그들이 신원하는 소리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갚아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왜 하나님께서 잠잠하고만 계시는지 항의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면서 순교의 숫자가 차기까지 잠깐 기다리라고 하신다. 흰 두루마기는 의와 거룩을 입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성도들이 어려운 중에 부르짖으나 환난은 잠시동안 계속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의 순서는 마지막 때에 있을 네가지 재난을 징조로 주어진다 전쟁 기근 온역 그리고 성도들의 환난이다. 이러한 네가지 재난은 구약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재난들로 계속 언급되었다.(레26:14-39; 신28:15 이하; 왕하 8:25-53 등) 하나님의 계시역사 중에 위의 네가지는 세상 혹은 이스라엘에게 주는 하나님의 채찍으로 계속 사용되어왔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이방인들에게 당하는 포로에서의 환난이 가장 큰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구약에서의 “포로”의 재앙이 신약에서는 “성도들의 환난”으로 대치되었으며 이것이 신약에서의 종말론에 궁극적인 관심을 일으키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6) 여섯째 인어린 양의 심판 (6:12-17)

다니엘 7장에서 세상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에 의해 대환난을 당하였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세상 왕국들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여 성도들에게 주셨다.(단7:21-22, 25-27) 계시록 6장에도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대환난 후에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짐”으로 시작된다. 혹자는 (특히 세대주의자들) “해가 어두워지는 것”은 은혜의 시대가 가고 환난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본문을 7년 대환난의 기간으로 본다. 그러나 구약에서부터 세상 마지막에 있을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이 해와 달이 어두워지는 것으로써 자주 묘사된다.(습1:15; 욜2:2, 31; 3:15; 암5:18; 학2:6) 이러한 주의 날은 하나님이 세상에 심판하는 날이다. 더욱 분명한 것은 마태복음 24:29-30의 예수님의 재림이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고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권속들이 애곡하며”로 묘사되고 있다. 주님께서 구름을 타시고 세상에 대한 심판주로 오시는 장면이다. 해가 어두워 지며 시작하는 것은 세상이 교회에 주는 환난날의 시작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과 관계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이것은 본문을 보아도 분명하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6:15-17)

 

천체의 변동 이것은 유대 묵시문학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언어들을 단순한 시적 혹은 상징적인 표현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많은 곳에서 세상 마지막 때에 하늘과 땅이 흔들리고 자연세계의 대변혁이 있을 것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사34:4; 마24:29; 벧후3:10, 12; 계21:1) 하나님의 삼판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세상 사람들에게 이루어지고 있다.(계8:6; 14:7; 16:2-9 참조) 하늘의 별들이 대풍에 흔들려 떨어지는 설익은 무화과처럼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간다. 땅에는 지진이 나며 산들이 옮기운다 지진은 마지막 날의 하나님의 심판을 위해서 자주 등장하는 요소이다.(암8:8; 겔38:19; 욜2:10 등) 바다에는 섬들이 옮기운다. 세상의 군왕들가 각종 사람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의 진노를 무서워 하여 굴과 바위틈에 숨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산과 바위가 자기들 위에 떨어져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어린 양의 심판이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다니엘 7장에서 책이 펴 놓였고 세상이 심판당하는 모습과 마찬가지로 계시록 6장에서도 책이 펴지며 세상이 심판을 당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2.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감(계 7장)

(1) 심판을 막으려는 악한 천사들(7:1-3)

요한은 마지막 하나의 인을 떼기 전에 잠시 인의 순서를 멈추고 다른 광경을 설명한다. 요한은 세상을 해 하려는 네 천사들과 성도들을 보호하려는 천사를 본다. 그리고 성도들이 환난에서 나와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모습을 본다.

요한은 땅 네 모퉁이에 선 네 천사를 보았다. 그들은 땅의 사방에서 바람을 붙잡아 바람이 땅과 바다의 각종 나무들에게 불어 과실을 떨어뜨리지 못하게 막고 있다. “땅의 네 모퉁이” 혹은 “사방의 바람” 등은 유대인들이 흔히 세상 끝들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여기에서 “천사”들이 나타나지만 이들은 선한 천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선한 천사는 2-3절에 나타나는 해돋는 데로부터 올라오는 “또다른 한 천사”이다. 이 한 천사는 땅과 바다를 해할 권세를 가진 네 천사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따라서 네 천사들은 악한 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네 천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6장과 연관시켜 생각해야 할 것이다. 6장에서 여러 재난들이 땅위에 있는 사람들을 죽였다. 특히 짐승이 성도들을 죽였다. 다니엘 7장에서도 “하늘의 네 바람”이 바다에 불어 바다에서 짐승들을 일으켰었다. 이 짐승들이 땅위의 사람들을 죽였으며 특히 네째 짐승의 작은 뿔이 성도들을 괴롭혔었다. 다니엘 7장에서도 악한 영이 세상에 재난을 주는 시각에서 쓰여졌었다.

계시록 7장에 나타난 네 천사들은 땅을 해하는 권세를 가졌고 특히 성도들을 죽이려고 할 때에 해돋는 데서부터 온 한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쳐서 보호한다.(7:3) 7장 1절에는 이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과 바다의 각종 나무를 떨어뜨리지 못하게 한다. 이것은 6장 12절 이하에 묘사된 보좌에 으신 이와 어린양의 심판을 막으려고 하는 행동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마치 바람이 선과실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6:13) 전에 세상을 괴롭히고 성도들을 죽였던 네 천사들의 세력이 이제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일으키는 바람을 막으려고 한다. 성도들을 괴롭힌 세상의 임금들과 권세자들은 아직 설익은 과실과 같이 싱싱하다. 네 천사들은 아직 싱싱한 이 과실나무들에 하나님의 심판이 불어닥치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력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심판을 막지 못하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2) 구속받는 성도들의 숫자 (7:4-9)

동쪽에서부터 올라온 한 천사에 의해 인맞은 숫자는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십사만 사천”이었다. 이 숫자는 오랫동안 논란이 많이 되어왔다. 이단자들이 종종 이 숫자를 자기 무리의 것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여호와의 증인은 자기교에 들어온 사람들의 숫자가 십사만 사천이 차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속받은 성도들의 숫자는 십사만 사천명만이 아니다. 9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이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즉 구속받은 성도은 이스라엘에서 십사만 사천이요 이방 나라들에서는 능히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너무 십사만 사천의 숫자에 집착할 필요가 없겠다.

십사만 사천의 숫자가 과연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지에 대하여 논쟁이 끊어지지 않는다. 헨드릭슨 등은 이 숫자는 “영적 이스라엘 즉 지상의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핸드릭슨, 1975; 131; cf. Hoeksema 1974: 251ff). 교회란 이방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① 본문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구분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에게서 십사만 사천이며 이방인들 중에서는 숫자를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말한다.

② 십사만 사천을 그냥 이스라엘의 숫자로만 말하지 아니하고 유다 르우벤 등의 열두 지파들의 이름들을 열거하고 있다. 이 숫자를 교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영적인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유다 르우벤 등의 열두 지파의 이름들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방인들을 영적인 유다 르우벤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③ 신양성경에서 이방인을 포함한 교회를 이스라엘이라고 부른 곳이 있는가 혹자는 갈라디아서 6장 16절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은 교회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본문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구절로서 꼭 교회라고 볼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한정건, 1987 참조)

④ 로마서 9-11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음을 변증하고 있다. 현재는 이스라엘이 넘어지고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흐름이 넘어갔지만 그러나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얻을 것을 바울은 증언한다.(롬11:26; “온 이스라엘”이라 할 때에 개개인의 모든 이스라엘을 의미하느냐의 문제는 따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 후에 구원의 흐름이 이스라엘로 넘어갈 것임은 확실하다. 이를 위한 자세한 논쟁은 한정건 1987을 참조할 것)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의 구원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로마서를 근거로 할 때에 본문도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Ladd, 1972: 113 참조) 그러나 묵시문학에서 숫자를 취급할 때에 우리는 너무 숫자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과연 각 지파들이 정확하게 일만 이천씩이며 전체는 꼭 십사만 사천명으로 보아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성경의 족보에서는 자주 숫자를 맞추는 습관이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 계보에서 아담에서 노아까지 10대이고 노아에서 데라까지 10대였다. 마태복음 1장의 계보에서는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14대요 다윗에서 바벨론 포로까지가 14대 그리고 바벨론 포로 이후 예수님까지가 14대였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계보들에서 여러 사람들이 빠져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숫자들이 정확한 대수를 증명하려는 의도보다 서로 대칭을 이루는 조화를 중요시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계시록 본문에서 각 지파들이 같은 숫자들로서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너무 숫자 그 자체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하튼 이스라엘에서 어떤 정해진 숫자들이 구원을 받으며 또 이방인들 중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천국에 참여할 것을 말하고 있다.

 

(3) 천국에 들어감 (7:13-17)

구속받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이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으로 나아간다. 장로 중 하나가 “이들이 누구며 어디에서온 사람인지 아느냐”고 요한에게 물었다. 그가 요한에서 설명한다.“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14절)

혹자는―대체로 세대주의자들―6장 12절 이하를 7년 대환난 기간으로 또 7장에 나타나는 성도들이 천국에 참여하는 장면은 7년 대환난 전에 성도들이 공중휴거되는 장면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성도들이 환난을 받지 않으며 환난 전에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시고 성도들은 휴거되어 올라간다고 말한다. 그것은 계시록의 일곱 사이클을 시간적인 순서로 보는데서 기인한다.(장두만, 1991(10월) : 64 참조). 그들은 만약 계시록 7장에서 성도들이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13장 등에서 또다시 세상의 환난이 나타나고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본인은 계시록의 사이클들이 시간적인 순서로 짜여져 있다고 보지 않는다. 계시록의 7의 사이클은 논리적인 구조라고 생각한다) 이 구조에 대하여는 뒤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환난전 공중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도들이 대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하나 7장 14절에는 천국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은 전혀 공중휴거에 대한 말을 하고 있지 않다. 여기에 묘사되는 천국은 공중에서 임시로 주님을 만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앞이며 이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분명하다.

천국에 참여하는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 위에 장막을 치셔서 그들을 보호해주실 것이다. 그곳에는 다시는 주리거나 목마름이 없을 것이며 해나 뜨거운 것으로 인한 상함도 없을 것이다.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성도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저희 눈에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7:17) 이들은 환난을 통하여 억울함을 많이 당한 사람들이며 그들은 눈물로써 하나님에게 억울한 사정들을 호소하였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잠시 동안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이제 그들의 눈에 눈물을 씻어주시고 그들의 원한을 갚아주실 것이다.

 

4. 일곱째 인의 비밀(계8장)

이제 마지막 남은 일곱째 인이 떼어진다 초두에서 말하였지만 만약 모든 인이 떼어지고 책들이 펴진다면 다니엘서 7장에 나타나는 세상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일곱째 인을 떼니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았다. 나팔은 전쟁에서 경고로 사용되어지는 것이다. 일곱 나팔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요 또한 대환난에 대한 경고로 사용되어질 것이다.

일곱나팔이 울리기 전에 한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와서 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간다. 구약 성전에서 성소에 있는 향로는 반드시 제단의 제물을 태운 불로 담아가야 한다. 계시록은 천사가 제단 곁에 서서 하나님에게 바쳐드릴 많은 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은 성도들의 기도들과 합하여 하나님에게 드리고자 함이라고 말한다.(8:3) 성도들의 기도가 어떻게 제단 곁에 있는가? 계시록 6장 9절 이하에 보면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성도들의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하나님에게 신원하고 있었다. 천사는 이 순교를 당한 성도들의 원한맺힌 하소연을 향로에 담아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또 다른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와서 이번에는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쏟는다.(4-5절) 불이 땅에 쏟아지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하여 7절부터 나팔이 불리워지는데 나팔이 불릴 때마다 땅에서는 엄청난 재난들이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땅을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제물로 바쳐진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 하나님께는 성도들을 태운 불로써 땅에 쏟아 세상을 심판하신다.

첫째 나팔이 울릴 때에 땅이 심판을 당한다.(7절) 둘째 나팔이 울릴 때에 바다가 심판을 받는다. 셋째는 물샘 근원(즉, 생명의 근원)이 심판을 당한다. 넷째는 하늘이 심판을 당한다. 이와같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사는 생물들이 심판을 당한다.

 

Ⅳ. 끝맺는 말

우리는 계시록 4-9장까지를 살펴볼 때에 다니엘서 7장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니엘과 계시록은 모두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세상을 심판하신다. 모두 보좌 앞에 펴놓인 책에 따라 세상을 심판한다. 다니엘서는 책이 펴져 있고 세상 왕국들과 적그리스도가 함께 멸망을 당하였다. 계시록은 책의 인이 하나씩 떼어지면서 세상에 일어날 재난들이 나타나고 있다. 책이 다 펴졌을 때는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왕들이 심판당하고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다.

다니엘과 계시록은 모두 성도들이 당하는 환난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세상을 심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실 이가 “인자와 같은 이(다니엘서)”와 “어린 양”으로서 표현되고 있다. 다니엘서는 메시야가 사람으로 태어날 신적인 존재를 내다보며 예언하고 있으며 계시록은 이미 사람으로 나셔서 죽임을 당하신 구속자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용어를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계시록은 다니엘서보다 세부적인 면에서 설명이 더 많이 부가되고 있음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재난에서 전쟁과 성도들의 환난 외에 기근과 질병의 재앙들이 더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가 심판당하는 모습 등이 첨가되어 있다. 또한 세밀하게 설명되는 부분들도 있다. 그리스도가 권세를 받고 세상을 심판하는 모습 성도들이 죽임당하는 모습 세상 왕들이 심판을 무서워하는 모습 등은 다니엘서에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 참고서적 -

Hoekseman, H. 1974, Behold He Cometh: An Exposition of the Book of Revelation (Grand Rapids: Reformed Free Pub)

Ladd, G. E. 1972,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 (Grand Rapids: Eerdmans)

장두만, 1991. 10월 “과연 교회는 환난을 통과할 것이가” 현대종교 1992년 10월, 59-67쪽

한정건, 1987, The Restoration of Israel in Covenant Perspective, A theis for Th D at Potchefstroom University

헨드릭슨 윌렴 1975 신약성경 주석요한계시록(김영익, 문영탁 공역, 서울:아가페출판사)

 

(주)

1. 많은 학자들이 이 때를 도미티안 황제(주후 81―91)의 시대로 본다. 도미티안 황제는 네로 이후에 가장 포악한 군주였고 자신을 신으로 지칭하면서 황제숭배사상을 강요하면서 기독교를 핍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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