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禮拜)란 무엇인가?
Ⅰ. 이끄는 말
Ⅱ. 예배란 말의 뜻
Ⅲ. 예배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Ⅳ. 구약시대의 예배
Ⅴ. 신약시대의 예배
Ⅵ. 맺는 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롬12:1 )
Ⅰ. 이끄는 말
성도들의 생활에 있어서 예배행위(禮拜行爲)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성도의 행동으로 나타나는 외적인 자세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므로 성도의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신자 스스로가 내면에 가지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信仰)의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예배는 신앙을 전제(前提)하고, 신앙은 예배를 수반(隋伴)한다. 그러므로 건전한 신앙은 건전한 예배 행위를 수반하며 불건전한 신앙은 불건전한 예배 행위를 수반하게 된다.
일반적인 무속종교들도 각각 제 나름대로의 예배 행위들을 가지고 있다. 섬기는 대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예배의 형태도 모두 각각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한 하나님을 신앙한다고 하는 기독교의 예배형태도 교파마다 또는 교회마다 다양함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형태 등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로 시종일관(始終一貫) 변조된 특유의 목소리를 가진 사회와 설교자의 진행에 의하여 예배가 진행되는가 하면,
이와는 정반대로 밤낮없이 산에서나 들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거의 광란에 가까운 자세로 코메디언과 비슷한 사회 및 설교자의 진행에 의하여 드려지는 예배도 있다.
그런가 하면 교회 예배모범에 의한 정규 예배시에는 전자와 같이 엄숙하고 경건하게 드리지만 정규 예배가 아닌 소위 집회시에는 후자와 같이 광란에 가까운 자세로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예배 형태의 혼란은 기독교 신앙의 혼란에서 왔으며, 신앙의 혼란은 신학의 혼란에서 기인(起因)된 것이다. 신학의 혼란은 신앙적 무지를 가져오고, 신앙적인 무지는 형식주의적 예배 행위를 낳게 된다.
그러므로 신앙적인 무지의 비례만큼 형식주의적(形式主義的) 예배 행위가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신자의 내면에 이루어진 신앙의 표현이기 때문에 형식주의적 예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형식화 되어져 간다는 것은 외식적인 예배가 되어져 간다는 말이다. 신앙은 외식(外飾)이 아니라 중심에 있는 실재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내적 의미의 중요성을 상실한 채 형식화 되어 외식적인 예배가 되어진다면, 이것은 신자 중심에 있는 신앙적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23:25-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긋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따라서, 예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는 아니다. 건전한 예배 행위가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과도 같은 것인데 그렇다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예배란 무엇일까?
Ⅱ. 예배란 말의 뜻
(정인찬 편, 성서대백과, 기독지혜사 발행.(참조)
구약이나 신약성경에서 예배(Worship)라는 말의 뜻은 매우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예배라는 말이 제사라는 의미로 이해되면서 히브리어로 ‘자바’( )라는 용어를 쓰고 있으며 그 뜻은 ‘제사 드렸다’ 또는 ‘도살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조금 의미를 달리 하면서 ‘아바드’( )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 뜻은 ‘일했다’, ‘봉사했다’, ‘경작했다’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로는 ‘샤라트’(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봉사했다’, ‘섬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외에도 표현상 여러 가지 용어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상에서 밝힌 것들은 비교적 예배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어들이라 할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배라는 말이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중에 헬라어로 ‘고누페테오’( )라는 뜻인데, 그 뜻은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나 (눅22: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끓고 기도하여) 주님께 복종할 때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끓게 하시고
롬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취하는 자세로 사용되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높은 자들 앞에서 낮은 자들이 취하는 자세를 나타낼 때에 사용된다. 다음은 헬라어로 ‘프로스쿠네인’( )이라는 말인데, 이 용어는 “부복하다, 경의를 표하다”라는 의미를 표현하는 것으로 ‘예배(worship)’라는 뜻과 가장 근접한 보편적 용어로 이해된다. 다른 하나는 헬라어로 ‘라트류오’( )라는 용어인데 이것은 조금 의미를 달리 해서 ‘봉사하다’(to serve)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봉사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신에게 봉사한다는 종교적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구약이나 신약성경에서 예배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들의 뜻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예배라는 말이 ‘희생(犧牲)과 봉사(奉仕)’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신약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희생과 봉사’라는 뜻을 나타내어 주고 있다. 물론, 표현상의 용어들은 다양하고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그 용어들이 담고 있는 깊은 뜻은 모두가 ‘희생과 봉사’라는 포괄적인 의미 속에 담겨져 있다.
Ⅲ. 예배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배에 대하여 비교적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주 단순하게는 예수를 믿는 신자가 주일 아침 11시에 예배당에 나아가 정해진 프로그램에 의하여 묵도하고 시편 교독을 한 후, 신앙고백(信仰告白)을 하고 찬송과 기도, 그리고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후에 목사님의 축복 기도를 받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예배라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조금은 구체적으로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비둘기나 양, 또는 송아지를 제물로 삼아 레위 지파에서 나온 인간 제사장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구약시대의 예배였다. 그런데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구약시대와는 달리 예배당을 성전으로 삼고 연보(捐補)를 제물로 삼아 목사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신약시대의 제사(예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예배에 대하여 생각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여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약의 의식법(儀式法), 즉 제사법을 다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신약시대 성도들은 새로운 방법의 예배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신약시대 교회는 예배의 4대 요소를 말씀, 기도, 찬송, 헌금이라고 하여 말씀을 중심으로 한 기도와 찬송 및 헌금 순서가 잘 갖추어진 의식이 예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여기에 성례 즉 세례와 성찬을 곁들여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혹자들은 예배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신자가 하나님께 정성을 드리는 의식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의 예배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을 종합해 본다면 대개가 예배를 의식이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생각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공통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예배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의식화 되고 형식화 된 예배들이 만들어 낸 결과일 것이다.
신비주의자들의 예배는 또 다른 면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예배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예배시간이라고 하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신자에게 특별히 임하여 깊은 교제를 가지는 소위 신령한 행위라고 하며 영적예배라고 하여 예언이나 방언 또는 계시와 환상 등을 강조하는 특이한 현상을 예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혹자들은 예배란 신자가 하나님께 문안을 드리는 의식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이같은 자들은 신비주의자들과 또는 이들과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는 인본주의자들이다.
이상에서 예배에 대한 여러 가지 형태의 일반적인 생각들을 살펴보았다. 결과는 예배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이 너무도 흐트러져 있다는 것이다. 예배가 하나님께 대한 신자의 신앙적 태도라고 한다면 예배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게 흐트러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일진대 신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하나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창세 이후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제사)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많은 변천 과정을 거쳐왔다. 그러나 비록 예배의 형태는 바뀌었다 할지라도 그 예배의 정신과 의미는 예나 오늘이나 전혀 변함없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드려질 것이고,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드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이나 신약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성경적인 예배란 도대체 무엇일까?
Ⅳ. 구약시대의 예배
구약시대에 있어서는 창조주 하나님께 누가, 어디서, 무엇으로 예배(제사)를 드렸을까? 그리고 그 예배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구약시대에는 예배의 형태가 시대에 따라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것은 성경신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계시의 점진성의 원리에 의한 결과이다.
그 시대를 분류하면, 고대 족장시대와 (창세기에는 고대 족장시대의 역사가 나타나 있다.) 국가 형성시대 (출애굽기에서 사사기까지의 내용은 이스라엘 국가 형성시대의 역사가 나타나 있다) 그리고 역대 왕정시대 (룻기에서 에스더까지의 내용은 이스라엘 역대 왕정시대의 역사가 나타나 있다.)등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시대마다 예배의 형태가 조금씩 달라진다.
첫째는 고대 족장시대의 예배이다
고대 족장시대(族長時代)는 창세 이후부터 모세 이전시대까지를 말하는데, 이 시대에 많은 족장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기록들이 구약 창세기에 주로 소개되어 있다. 예배를 드린 이 시대의 족장들은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족장들은 주로 돌로 제단을 쌓고 양이나 새와 같은 짐승을 잡아 제물로 드렸다. 특히 가인과 아벨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가인이 자기가 농사한 곡식으로 제물을 삼아 드린 제사는 열납(悅納)하지 아니하시고 아벨이 자신이 기르는 양을 잡아 드린 제사는 열납하셨다.
(창4:1-5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그 이유는 제사( )라는 것이 희생, 즉 도살(죽이는 것)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죽이는 것, 다시 말해서 피흘림이 없는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치 아니하시고 피흘림이 있는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신 것이다.
노아의 경우에 있어서도 홍수심판 후에 노아가 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이나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흠향(歆饗)하셨다.
(창8:20-22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의 열조인 아브라함도 하나님 여호와께서 언약을 세우실 때에 삼년 된 암소와 암염소 그리고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어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창15:8-11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獨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단을 쌓고 이삭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수양을 잡아 번제를 드리기도 했다.
(창22:1-13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로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자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을 때,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창26:23-25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시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삭의 아들 야곱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은 후,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부어 제사를 드리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다.
(창35:9-15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구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 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이름을 벧엘이라 부렀더라)
이들 족장들의 예배(제사)는 대부분 족장 자신들이 돌로 제단(祭壇)을 만들고 그 위에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둘째는 국가 형성시대의 예배이다
이스라엘 국가가 형성되는 시대는 모세시대로부터 다윗이 왕국을 세워 다스리던 시대까지를 말한다. 이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와 아론의 자손들을 세워 기름을 바르고 제사장을 삼아 제사하게 하였다.
(민3:1-4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와 말씀하실 때에 아론과 모세의 낳은 자가 이러하니라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은 장자는 나답이요 다음은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니 이는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이며 그들은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제사장들이라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다른 불을 여호와앞에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고 무자하였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 아비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기타 레위 자손들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대신하여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였다.
모세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성막과 회막을 세우고 증거궤(證據櫃)를 비롯한 모든 기구들을 거룩하게 한 후, 성막문 앞의 번제단에서 번제와 소제를 드렸다.
(출40:1-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정월 초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또 증거궤를 들여 놓고 또 장으로 그 궤를 가리우고 또 상을 들여 놓고 그 위에 물품을 진설하고 등대를 들여 놓고 불을 켜고 또 금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 문에 장을 달고 또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 또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장을 달고 또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에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너는 또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너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그 아비에게 기름을 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모세가 그 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 제 이년 정월 곧 그 달 초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모세가 성막을 세우되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띠우고 그 기둥들을 세우고 또 성막 위에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또 그 궤를 성막에 들여 놓고 장을 드리워서 그 증거궤를 가리우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북편으로 장 밖에 상을 놓고 또 여호와 앞 그 상위에 떡을 진설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하고 또 여호와 앞에 등잔에 불을 켜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금 향단을 회막 안 장 앞에 두고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성막문에 장을 달고 또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그 위에 드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고 자기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성막과 단 사면 뜰에 포장을 치고 뜰문의 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
모세가 드린 번제물은 소나 양이나 새이며 소제물은 고운 가루를 태워 드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국가 형성시대에 드린 예배(제사) 가운데 하나는 모세가 성막에서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였다.
물론 모세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제사장이 되어 성막에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자들이었다.
(출28:1-3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이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찌니 너는 무룻 마음에서 지혜 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대상23:13-14 이므람의 아들들은 아론과 모세니 아론은 그 자손들과 함께 구별되어 몸을 성결케 하여 영원토록 지극히 거룩한 자가 되어 여호와 앞에 분향하며 섬기며 영원토록 그 이름을 받들어 축복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아들들은 레위 지파 중에 기록 되었으니)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나 그 후 사사시대(師士時代)에도 마찬가지로 제사장들에 의하여 짐승을 잡아 성막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시대였다. 사사시대 말기에는 언약궤가 벧엘에 있을 때에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제사장이 되어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삿20:26-28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삼상1:3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 (참고)
엘리와 사무엘도 역시 제사장이 되어 성막에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게 되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제물을 먼저 억지로 취하므로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한 죄로 인하여 엘리 가문이 망했다.
(창35:9-15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마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가 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사무엘도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을 때에 젖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드렸는데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
(삼상7:7-9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그런가 하면 제사장도 아닌 사울왕이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에 급하다는 핑계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가 사무엘로부터 책망과 저주를 받았다.
(삼상13:5-15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서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의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좇는 모든 백성은 떨더라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기니라)
그것은 제사장도 아닌 사울왕이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 후, 다윗왕 시대 역시 하나님의 언약궤가 휘장(揮帳) 가운데 있었고
(삼하7:1-2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제사장들은 그 곳에서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이상과 같이 모세시대로부터 다윗이 왕국을 세워 다스리던 이스라엘 국가 형성시대의 예배(제사)는 아무나 어디서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만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막에서 드려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예배의 특징으로 나타난다.
셋째는 역대 왕정시대의 예배이다
이스라엘 역대 왕정시대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왕 시대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후 부활하시기 이전까지를 말한다. 이 시대 초기에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왕에게 약속하신 대로 솔로몬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게 해서
(왕상5:1-6:38까지 참조바람)
제사장들로 하여금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도록 하셨다. 솔로몬왕은 성전 공사를 마치고 언약궤를 옮긴 다음 많은 수의 소와 양을 제물로 삼아 제사장들로 하여금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하나님의 전의 낙성식을 행했다.
(대하7:1-7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있는 것을 보고 반석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이에 왕과 모든 방백이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리니 솔로몬왕이 드린 제물이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니라 때에 제사장들은 직분대로 모셔 서고 레위 사람도 여호와의 악기를 가지고 섰으니 이 악기는 전에 다윗왕이 레위 사람으로 여호와를 찬송하려고 만들어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감사케 하던 것이라 제사장은 무리 앞에서 나팔을 불고 온 이스라엘은 섰더라 솔로몬이 또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솔로몬의 지은 놋단이 능히 그 번제물과 소제물과 기름을 용납할 수 없음이더라)
그 후 이스라엘 국가가 갈라진 다음, 남쪽 유다 왕 아비야가 북쪽 이스라엘 여로보암왕으로 더불어 싸우려고 군사를 예비하고서 유다 왕 아비야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레위 사람을 쫒아내고 이방 풍속을 따라 제사장을 삼은 일을 책망했다.
그리고 남쪽 유다는 아론의 자손과 레위 사람이 제사장이 되어 조석(朝夕)으로 하나님 여호와께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것을 밝히면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남쪽 유다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북쪽 이스라엘이 형통치 못할 것을 예고했다.
(대하13:1-12 여로보암와 제 십팔년에 아비야가 유다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미가야라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더라 아비야가 여로보암으로 더불어 싸울쌔 아비야는 택한 바 싸움에 용맹한 군사 사십만으로 싸움을 예비하였고 여로보암은 택한 바 큰 용사 팔십만으로 대진한지라 아비야가 에브라임산 중 스마라임산 위에 서서 가로되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무리들아 다 들으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것이 아니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그 주를 배반하고 난봉과 비류가 모여 좇으므로 스스로 강하게 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대적하나 그 때에 르호보암이 어리고 마음이 연약하여 능히 막지 못하였였느니라 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가 너희와 함께 있도다 너희가 아론 자손 된 여호와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쫓아내고 이방백성의 풍속을 좇아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무릇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일곱을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그를 우리가 배반치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이 수종을 들어 조석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하며 또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놓고 또 금등대가 있어 그 등에 저녁마다 불을 켜나니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하여 경고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치 못하리라)
이 무렵 북쪽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백성이 남쪽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두도록 했다. 그리고 신당(神堂)을 짓고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아 금송아지에게 제사하도록 한 일이 있다.
(왕상12:25-33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기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수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기라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팔월 곧 그 달 십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이러한 행위의 제사는 합당하지 못한 제사 행위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책망과 진노를 산 것이다.
(왕상13:1-10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들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그 날에 저가 예조를 들어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예조라 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여로보암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벹엘에 있는 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단에서 손을 펴며 저를 잡으라 하더라 저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하나님의 사람의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예조대로 단이 가라지며 재가 단에서 쏟아진지라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되 청컨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 같이 되니라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몸을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으로 내게 준다 할찌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좇아 돌아가지 아니하니라)
결국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는데 그 무렵 남쪽 유다에는 히스기야왕이 즉위(卽位)하여 성전을 수리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자손들에게 명하여 제사를 회복하게 하였다. 그 결과 남쪽 유다 백성들은 히스기야왕과 더불어 기뻐했으며(대하29:1-36 참조바람) 나라도 번영하게 되었다.
그 후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 사로잡혀 70년간 포로 생활을 마치고 파사 왕 고레스에 의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에 유다 백성들이 온갖 방해 속에서도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에스라6:1-18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서적 곳간 곧 바벨론에서 보물을 쌓아둔 곳에서 조사하게 하였더니 메대도 악메다 궁에서 한 두루마리를 얻으니 거기 기록하였으되 고레스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전의 고는 육십 규빗으로, 광도 육십 규빗으로 하고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바벨론으로 옮겼던 하나님의 전 금 은 기명을 돌려 보내어 예루살렘 전에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 안 각기 본체에 둘찌니라 하였더라 이제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너희 동료 강 서편 아바삭 사람들은 그곳을 멀리하여 하나님의 전 역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로 하나님의 이 전을 본처에 건축하게 하라 내가 또 조서를 내려서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함에 대하여 너희가 유다 사람의 장로들에게 행할 것을 알게 하노니 왕의 재산 곧 강 서편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신속히 주어 저희로 지체치 않게 하라 또 그 수용물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소청대로 영락 없이 날마다 주어 저희로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내가 또 조서를 내리노니 무론 누구든지 이 명령을 변개하면 그 집에서 들보를 빼어내고 저를 그 위에 매어달게 하고 그 집은 이로 인하여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 만일 열왕이나 백성이 이 조서를 변개하고 손을 들어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헐찐대 그손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이 저희를 멸하시기를 원하노라 나 다리오가 조서를 내렸노니 신속히 행할찌어다 하였더라 다리오왕의 조서가 내리매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들이 신속히 준행한지라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 다리오왕 육 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전 봉헌식을 행하니 하나님의 전 봉헌식을 행할 때에 수소 일백과 수양 이백과 어린 양 사백을 드리고 또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수염소 열둘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고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반차대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니라)
제사장들과 레위 자손들이 귀환(歸還)해서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다.
(스8:1-36절 참고바람)
예수의 경우는 십자가에 죽으심을 고비로 예배(제사)에 대한 내용이 달라진다. 예수께서 처음 출생하여 결례의 날이 되었을 때, 율법에 쓴 바대로 아기 예수를 주께 드리고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들로 제사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눅2:22-24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
열 두살 되던 때에도 예수께서 부모를 따라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신 일이 있다.
(눅2:41-43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 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삼십세가 되어 공생애에 들어 섰을 때에도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에 가셔서 유월절을 잡수시기도 했다.
(눅22:14-23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거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마26:17-29 무교절의 첫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배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 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상과 같이 솔로몬왕 시대로부터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까지의 역대 왕정시대의 예배(제사)는 제사장들만이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서 짐승을 잡아 제물로 드려야 하는 것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구약시대의 예배를 결론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고대 족장시대의 예배는 짐승을 제물로 해서 족장들이 돌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으며,
다음, 국가 형성시대의 예배는 짐승을 제물로 해서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알고 보면, 짐승을 제물로 드린 것은 세 시대가 다 같으나 제사를 드리는 자는 고대 족장시대만 다르고 제사를 드리는 장소는 세 시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구약시대의 예배(제사) 형태는 시기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Ⅴ. 신약시대의 예배
신약시대에 있어서 누가, 어디서, 무엇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가? 그리고 그 예배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예배의 형태가 구약시대의 의식적인 예배와는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예수께서 드리신 예배(제사)와 사도들이 가르친 예배는 신약시대의 하나님께 드리는 대표적인 예배로 소개된다.
첫째는 예수께서 드리신 예배이다
구약시대의 예배는 예수께서 드리실 참되고 신령한 예배의 모형과 그림자였다. 구약시대에 드렸던 제사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필요했는데, 그것은 제물과 제사와 성전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드리실 참되고 신령한 예배에도 이 세 가지의 요소가 꼭 구비되어 드려져야 한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드리신 영원하고 참된 신령한 예배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다
(히9:11-12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가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자기 피로 영원한 예배(제사)를 드렸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드리신 예배(제사)에도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다 구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했다.
(마20: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세례요한도 예수께 대하여 증거하기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다.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께 드려질 제물임을 증거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신의 몸이 성전이 되심도 밝혀 주셨다.
(요1: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에 대하여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때, 어린양이 성전이 되심을 보고 증거하였다.
(계21:22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증거하였다.
(히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결국, 예수께서 하나님께 드리신 예배는 예수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제물이 되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성전이 되시며, 하늘로 승천하심으로 대제사장이 되셔서 영원한 제사 즉 예배로 드리신 것이다.
둘째는 사도 및 성도들의 예배이다
신약시대 사도 및 성도들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영원한 예배를 기초로 삼는다. 그것은 사도 및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지체를 이루는 교회가 예배의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를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 같이 사도 및 성도들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요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따라서 사도 및 성도들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예배를 믿음으로써 그 의미를 부여 받는다. 즉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따라 그의 지체가 되는 사도 및 성도들의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뜻이다.
바울은 일찍이 그가 쓴 로마서에서 신약교회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를 밝혀 준 바가 있다. 그는 신약교회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를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면서 이것을 영적 예배라고 하였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런데 사도 바울은 산 제사로서의 영적 예배의 전제를 그 앞서 밝혀 준다. 그것은 돌감람나무 가지를 참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임을 하듯이 예수께서 타락한 죄인을 구속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게 하신 일이다. 바울이 이러한 사도 및 성도들의 예배의 대 전제를 밝히고 나서 산 제사로서의 영적 예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였다.
사도 바울이 말한 영적 예배에 대한 구체적인 세 가지 원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이고,
다음은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는 일이며,
그 다음은 은혜대로 받은 은사를 따라 봉사하는 삶이다.
(롬12:1-13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즉 영적 예배 곧 산 제사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삶을 뜻하는데 여기에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삶은 그의 죽으심과 살으심에 동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로서 살아 간다는 뜻은 그와 함께 옛 사람 즉 육체의 소욕을 죽이고 새 사람, 즉 영의 소욕은 살리는 삶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예배 곧 제사는 옛 사람은 죽이고 새 사람은 살리는 삶, 즉 육체의 소욕은 죽이고 영의 소욕은 살리는 삶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약시대 사도 및 성도들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삶을 말한다. 이것은 물론 넓은 의미로서의 예배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울은 영적 예배인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사랑의 행위에 두라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하면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랑으로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용납하고 짐을 지며 덕을 세우라고 한다. 즉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서 건강한 지체가 연약한 지체를 사랑하는 것이 덕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이다.(롬12:9-15:4 참고바람)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영적 예배의 궁극적인 목적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둔다. 즉 영적 예배의 방법으로서 사랑의 덕을 세우는 일은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롬15:5-13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바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또 가로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니리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성도들의 하나님 사랑에 대한 표현이다. 따라서 영적 예배의 방법이 지체(이웃) 사랑이라면 목적은 하나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삶자체가 신약교회 사도 및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 즉 영적 예배이다.
그렇다면 신약교회가 매 주일 아침 성도들이 예배당에 모여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는 예배는 무엇인가? 그것은 좁은 의미의 예배로서 앞에서 말한 영적 예배의 세 가지 원리 가운데 하나인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는 원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강론하는 말씀 중심의 예배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일 아침에 드리는 좁은 의미의 예배를 통하여 넓은 의미의 예배인 영적 예배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즉 성도들이 목사의 성경강론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며 믿음이 약한자들의 짐을 담당하기 위하여 연보하는 순서 등으로 드려지는 좁은 의미의 주일 아침 예배를 통하여 넓은 의미의 영적 예배(산 제사)로서,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주일 아침 예배는 넓은 의미의 영적 예배에서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포함이 되는 것이며 영적 예배의 한 부분인 것이다.
Ⅵ. 맺는 말
결론적으로, 예배란 천국 생활의 모형(模型)이다. 구약시대의 예배(제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영원한 제사의 모형과 그림자였다면, 신약교회의 사도 및 성도들의 지상에서의 영적 예배는 장차 천국에 가서 만왕(萬王)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무궁토록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릴 천국 생활(영원한 예배)의 모습이다.
(계19:1-10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두 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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