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이사야 40 : 27 - 32
출처/허창수목사
제 2차 세계대전 때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전쟁 중에 직접적으로 총칼에 맞아 죽은 사람도 많았지만 자연 사망률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연구하던 한 한자는 많은 자연 사망자의 병명을 ‘낙심’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전쟁에 대한 염증,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인해 너무나 크게 낙심한 결과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로 낙심은 생의 의욕을 빼앗아 버리는 무서운 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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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파병한 군인들에게 연애인들이나 가수들이 찾아가서 만담과 노래로 위문공연을 해 주었습니다. 죽이고 죽어가는 위험한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들에게 위문공연을 해 주는 것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힘을 얻어 다시 적을 향해 싸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특히 성도들에게 있어서 낙심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게하는 무서운 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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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믿고 의지하는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도움의 손길은 와 닫지 않고 어려움은 계속하여 말려들 때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하다가 낙심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낙심한 성도에게 위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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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70년을 가까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곧 돌아갈 것이란 생각으로 어려움도 참고 견딜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계속되는 포로 생활에 지쳐 이제 돌아갈 생각조차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낙심만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낙심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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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27)고 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께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하시는구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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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포로 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원통함을 부르짖어도 ‘수리하심도 받지 못하는 구나’, 원통함을 접수도 하지 않으신다는 불평입니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신다고 불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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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내가 걷는 가시밭길은 아무도 몰라 누가 험난한 내 인생 길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내 억울한 사정을 누가 알아주나?’라는 자신의 고통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도 없다는 불평의 말입니다. 하나님도 내 억울함을 몰라주니 하나님이 과연 계시기나 하는가? 라고 의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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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계신다면 세상에 이런 비참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선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지요 거룩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런 억울한 일을 어떻게 묵인하시나요?’ ‘하나님이 있다면 우리가 이렇게 되었겠어요?’ 사람들은 비참한 현실 앞에 당혹해 합니다. 난감한 상황 속에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신앙인조차 한 가닥 남은 믿음의 끈마져 풀려버린듯이 ‘내 원통한 사정은 하나님께서 풀어주시지 않는구나’라고 불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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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에게도 좌우가 막이며 앞뒤가 캄캄한 것 같은 상황속에서 내 사정은 하나님께 숨겨졌다고 느껴지는 낙심을 해 본 적은 없습니까? 마치 가시밭길을 홀로 걷는 심정으로 낙심한 적은 없습니까? 아니 지금 그렇게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는 것은 듣지도 않으신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믿을까 말까 낙심하고는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잊으신 것도 아니며 버린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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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낙심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났다 하느냐”(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야곱아 ... 이스라엘아’라고 동일한 의미를 갖는 이름을 반복하여 불렀습니다. 이렇게 불렀다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을 알려주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구원하실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도들은 비록 고달픈 삶이 계속된다고 할지라도 불평하지 말고 자신의 구원과 하나님의 섭리를 소망하고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함을 깨닫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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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과 좌절 가운데 있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되물었습니다. 낙망중에 좌절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을 우상과 비교한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8절에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고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낙심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우상과 같은 존재로 여겼다는 것을 의미해 줍니다. 하나님을 우상처럼 알았기 때문에 낙심한 것입니다. 낙심의 원인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한데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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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한 마디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한 순간이라도 피곤하거나 지치시거나 능력의 제한을 받는 분이 아니심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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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힘을 우리에게 무한히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29)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기력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새 힘이 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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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약해져 낙심하고 있을 때 가장 강하게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나님은 내가 부르짖는 기도도 듣지 않으신다고 낙심하고 있을 때도 멀리 숨어 계시는 분이 아니시라 곁에 계셔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낙심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느끼지를 못하고 불신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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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나님은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받을 복을 강조하기 위해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30)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생의 가장 원기 왕성한 시기에 있는 소년과 장년조차도 자주 피곤하여 지쳐 쓰러지지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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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는 어려울 때 누가 나를 도와줄까? 사람을 찾습니다. 어느 의사가 더 잘 하냐? 명의를 찾습니다. 어느 약이 좋은가? 좋은 약을 먼저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의지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앙망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십니다. 낙심할 정도의 어려움을 당할수록 깨어 자신을 돌이켜 보며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십니다.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이 진리를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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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고 나약한 자’가 우리 주변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도 상실하고 영혼의 기쁨도 없고, 얼굴에 걱정으로 가득찬 모습으로 낙심한 자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러한 소망도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절망중에 있는 사람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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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라도 피곤하며’, 한창 젊었을 때에도 피곤을 느끼며 다른 사람에게까지 낙심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낙심이란 마음으로 느끼는 무서운 병입니다. 다른 사람들까지도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이렇게 낙심하여 목을 빼고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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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힘을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새 힘을 얻는 비결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앙망’이란 우러러 바라보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고 바라봄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를 믿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새 힘을 얻기 위해서 어려운 것을 하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사모하는 것처럼 성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기본 신앙자세입니다. 성도는 낙심하는 대신 여호와를 앙망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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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인간이지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영원히 피곤치 않는 새 힘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새 힘’은 순간적으로 주어지는 에너지와 같은 것이 아니고 축복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에게는 끊임없이 공급되는 성령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자동차에 밧데리가 떨어져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강한 밧데리를 통해 시동을 걸게 하는 것 같은 순간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응급조치로 싸매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덮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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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주시는 새 힘은 마치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3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실 때 낙심과 좌절에 빠졌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능력있는 사람으로 변화가 됩니다. 독수리가 땅을 차고 하늘로 비상할 때 그 날개의 힘은 어느 새보다도 강합니다. 독수리는 새 중에 왕이라 할 정도로 큰 몸이지만 하늘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 올라가는 날개를 가진 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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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을 독수리의 날개 정도로 비유한 것은 합당치 않지만 독수리가 새 중에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새로 높은 하늘을 비상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독수리의 날개보다 더 강한 능치 못하심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능치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게 되면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니”(31)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낙심하고 약한 사람도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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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분이십니다(29). 낙심할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게 되면 능치 못하심이 없는 믿음으로 강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능한자가 강한 자가 됩니다. 이러한 힘은 때로는 약해진 건강도 강해 질 수 있습니다. 병든 몸도 고침을 받아 건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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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나님은 낙심한 백성들을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1절 말씀에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70년을 포로 생활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돌아갈 소망도 잃어버리고 낙심에 빠져있는 백성들에게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웃 백성들의 아버지가 아닌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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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오랫동안 돌보지도 않으신 것처럼 버려진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의 하나님’, ‘내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낙심하고 절망중에 있는 자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한한 은혜와 축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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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낙심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큰 도움이 됩니다. 마치 화분에 물을 주지 않아 꽃이 시들었을 때 물을 주므로 다시 생기를 얻어 회복하는 것처럼 위로는 낙심한 사람을 일으켜 세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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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의지할 것 없어 소망없이 힘겹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에게 위로할 수 있어야 하여 그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피곤한 자에게 능력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독수리 날개치며 하늘을 향하여 올라감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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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어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며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낙심한 사람들에게 위로해서 하나님을 앙망하여 새 힘을 얻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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