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에베소서 6: 10-18, 영적인 전쟁에서의 승리

하나님아들 2024. 4. 27. 15:09

에베소서 6: 10-18, 영적인 전쟁에서의 승리

 

 

 
1967 6 5, 아랍연합군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아랍 인구는 3억이고, 이스라엘은 5백만입니다.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 애꾸눈으로 유명한 다이안입니다.
다이안이 국민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 군대는 최신 무기로 무장했으니, 이길 것입니다.”
이들은 나가 싸워서, 6일만에 골란 고원을 탈환하고 승리했습니다.
소위 6일 전쟁입니다(3차 중동전쟁).
전쟁이 끝나고 기자가 다이안에게 최신 무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다이안이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최신 무기는 애국심과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신앙심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물질 문명이 고도화되었습니다.

편하고 좋은 것도 있지만, 생각도 못한 새로운 것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세상의 움직임에 대해 어리둥절하면서도, 삶의 적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적절히 타협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물질적 축복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물질의 힘은 대단하며, 그 어느 시절보다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 보면, 이것이 어딘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착하게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화려하게 풍족하게 살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구약에서 한가지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 의식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나서, 가나안 족속을 멸절시킵니다.

 

여기에 기독교 신앙이 무엇을 추구하는 것인지에 대한 답이 보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가나안 족속은 영적인 면에서, 교류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마귀 에게 대항할 실력을 갖추었느냐에 있습니다.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시 에베소 교회에서 3년을 사역했습니다.

그후 바울이 유대인 핍박에 의해 로마로 잡혀 왔고,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는 위험한 이단 사상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서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본문 앞에서, 사도 바울은 여러 종류의 인간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상전과 종을 통해 삶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우리의 시선을 전쟁터로 끌고 갑니다.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고

 

전쟁터에서는 강건해져야 합니다.

어떻게 강건해 져야 합니까?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주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고

“그 힘의 능력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힘의 능력 안에서 입니다.

 

우리의 삶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이 믿음으로 사는 것에 대해 방해를 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속한 천국 군대에서 탈영하여 자기와 친해 주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정신과 의사의 99%는 사단이나 악한 영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미국의 많은 목회자들도 마귀를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사단의 존재를 설명하고, 사단의 활동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의미 있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미문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만납니다. 베드로가 그 앉은뱅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걸어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 나사렛 예수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앉은뱅이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여러분, 은과 금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중세 때 로마 교황청 사제가 성당 창고에 쌓여 있는 금을 보고 아주 흡족하니 말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은과 금은 없거니와 라고 한 것은, 이제 옛말이 되었어
그때 같이 있던 다른 사도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주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마귀란 우리에게 대적하는 세력의 우두머리입니다.

마귀는 단수이니 한 명이고, 영적인 존재입니다.

마귀는 구약에서 사단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누가복음 11장에서 강한 자”, 요한복음 8장에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8:44)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베도로 전서5장에서,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5:8)고 했습니다.

 

마귀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마귀는 유혹자 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유혹하고 속이기 위하여 다가옵니다.

 

 
기독교 영성학자 C.S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귀가 조정하기 쉬운 존재는, 마귀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마귀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마귀는 쉽게 공작을 합니다.
 

 

마귀의 궤계에서 궤계(간계)는 복수입니다. 간사한 꾀가 많다는 것입니다.

영어의 method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마귀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마귀의 꾐에 넘어간 사람은 그것이 마귀의 꾀인 줄 모릅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넘어갔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소위가 심히 악한 자’로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게 한 것도 마귀였습니다.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은 천하를 정복하고 호령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술을 많이 먹었습니다.
술이 지나쳐서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도 저항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간염에 걸려서 10일 만에 죽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천하를 얻은 것 같지만, 술에는 정복당한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자는 마귀입니다.

마귀와의 싸움의 성격은 어떤 것입니까?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씨름은 고대 경기에서 격투기입니다.

운동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싸웁니다.

그런데 씨름은 단수입니다. 영적 전쟁은 하나 라는 것입니다.

마귀와의 영적 전쟁은, 성도가 하나가 되어 치르는 전쟁입니다.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는 세상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에 관한 것인가요?

”정사와 권세,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 하늘에 있는 악한 영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사단의 졸개

 

마귀는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격대상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 바로 여러분들 입니다.

 

그러면, 마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마귀는 우리를 시험합니다( 8:123).

우리를 삼키려 합니다(벧전 5:8).

우리를 미혹케 합니다( 20;10).

우리를 범죄하게 합니다(요일 3:8).

 

이럴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전신갑주 모든 무기라는 의미입니다.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능동 형입니다. 

우리 스스로 온몸을 감싸는 갑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악한 날 이라 함은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하는 시대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가 물질이 풍요로워 졌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는 변화일 뿐이고, 본질은 동일합니다.

이천 년 전의 에베소 교회나, 오늘날 교회의 상황이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악한 날 입니다.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선다는 것은 전투에서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고대 전투에서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은 승리자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마귀와 대결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싸워야 하지만, 우리는 마귀보다 약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전투복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에서 로마군인의 감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자신을 지키는 로마군인의 무장을 보고, 이를 인용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6가지로 설명했습니다(14-17).

 

진리의 허리띠(진리는 진실이라는 의미입니다)

의의 흉배(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에 의롭다 함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평안의 복음(평안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방패(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구원의 확신으로 투구를 쓴 자는 공격을 막아낼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방어용 무기입니다

공격용 무기도 있어야 합니다. 공격용 무기는 어떤 것인가요?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17)

 

갑옷은 무겁습니다.

이를 입으려면 내적인 무장이 필요할 것입니다.

 

내적인 무장은 어떤 것으로 해야 할까요?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구약에 기도의 능력에 관해 아주 드라마틱한 장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아말렉 군대와 싸움을 벌일 때입니다.

모세는 아론과 함께 이 싸움을 위해 기도를 하러 산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여호수아는 병사들을 이끌고 계곡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모세의 팔이 내려가면 이스라엘 군대가 지고, 모세의 팔이 올라가면 이스라엘 군대가 이깁니다.

전투에서 모세가 팔을 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18절에서 어떻게 기도합니까?

무시로(항상) 기도하라/ 계속적으로 기도하라/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8:26).

 

우리가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가? 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의 힘으로는 사단을 이길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수석제자 베드로가 마귀에게 넘어간 것은 유명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에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14:27)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다른 제자는 다 주를 버려도 나만은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14:27)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닭 울기 전에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한다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급히 나와 막았습니다.

“주여, 이 일이 결단코 주께 일어 날수 없습니다.( 16:22)

 

이때 주님이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도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한 열심과 충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생각이 틀리자 “사단”이라고 야단치셨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흘린 땀이 피방울 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운명이나 삶의 모든 것이 걸린 절박한 것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없습니다.

 

“주가 가시는 길이라면 따라가겠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는 이 곤고한 심령, 연약한 육신을 붙들어 주옵소서”

이런 절절함이 없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하만 하시거든, 내게서 이 잔을 비켜 주시옵소서

주님은 십자가의 길에서 갈등을 겪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언제나 이것입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이 하신 것과 같은 그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 안에서, 성령과 함께, 성령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후, 세상은 하늘의 신령한 영적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땅의 백성은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았고, 앉은뱅이, 귀머거리, 소경이 치유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신 때로부터 말세로 접어든 것입니다.

주님의 구원사역을 방해하려는 악한 세력의 준동이 결렬해 졌습니다.

구원의 은총이 크게 나타날 수록 마귀의 영적 도전은 기승을 부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힘은 강력하므로, 사단은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에 그 증거가 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람(수리아)의 벤하닷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벤하닷이 함정을 놓을 때마다 이스라엘군이 미리 알아서 피했습니다.

벤하닷이 신하들을 모으고 내부에 배신자가 누구인지 찾아내려고 합니다.

벤하닷의 신하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말한 것일지라도 다 알아듣고, 이스라엘 왕에게 미리 알려주어서 그들이 피합니다”(왕하 6:12).

 

벤하닷이 엘리사를 먼저 잡기로 하고, 엘리사가 있는 도단을 공격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아람 군대를 보고, 엘리사에게 큰일 났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때 엘리사가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진술을 사환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 하지 마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들보다 많도다”(왕하 6:16)

 

그리고 엘리사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환의 눈을 열어, 수많은 불 말과 불 병거가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는 광경을 보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때 사울은 자기 갑옷을 주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갑옷을 입고 보니, 맞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갑옷을 벗고, 물맷돌 5개만 들고 싸우러 나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전신갑주를 입어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전신갑주는 잘 맞게 되어 있습니다.

맞춤 복입니다.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일로 인하여 우리를 정금같이 연단시키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이 졸음을 못이겨 자니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26:3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는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주의 이름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의 삶이 영적 전쟁 임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우리를 상치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때, 황폐하고 잡초가 무성한 우리의 삶은, 주님이 임재하는 은혜의 삶이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적 군사 입니다.

 

주 안에서, 주의 능력으로 강건해 지십시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우리 모두,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주님

주안에서, 주의 힘으로 강건해 져야 함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전쟁을 하겠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게 하옵소서

 

주의 힘으로 승리하게 하옵시고,

우리의 삶에서 주님이 임재하는 체험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