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리!! 교의신학!! 변증학!!

교리교육지침서(요약)

하나님아들 2024. 4. 18. 22:28

교리교육지침서(요약)

 

 

.   

계시론은 참된 신앙은 하나님과 그의 뜻, 그의 진리에 대한 이해를 다루는 것이다. 계시론의 이해와 논쟁에 대한 것은 2가지가 있는데, 먼저는 계시의 방법 혹은 매체에 관한 물음으로써 " 자연이 계시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계시 인식 능력에 관한 물음으로써 " 자연적 인간에게 하나님을 인식하거나 계시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1. 계시론 논쟁의 역사적 개관

 

1) 고대교회와 중세시대

고대교회 때부터 기독교 신앙과 철학 혹은 타종교 사이의 관계성에 관한 상반된 견해의 대립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반된 견해의 공존은 중세기 신학에 이르러까지 계속된다. 중세교회는 초자연적인 계시의 은총 없이도 인간의 자연적 이서의 능력으로 자연의 증거를 통해 하나님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자연 신학에로 보다 확고히 기울어져 갔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2) 종교개혁시대

종교개혁은 중세의 자연신학에 대한 전면적이고도 철저한 반대 입장에 섰다. 칼빈에게 있어서 자연을 통한 계시는 말씀을 통한 계시와의 연속성을 갖는 것임을 보게된다. 말씀의 계시는 자연의 계시보다 더 명백하며, 특히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구원자되심을 분명히 보여 줌으로써 더욱 친숙하고 더욱 유익한 계시라는 것이다.

 

3) 게몽주의 시대 이후

계몽주의 시대부터 신학에는 계시의 문제에 관하여 인간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사고가 대두하고 점차로 지배하게 되었다. 인간은 계시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계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세 인물은 칸트와 헤겔과 쉴라이에르마허이다.

 

4) 現代

자연이냐 오직 은총이냐, 자연신학이냐 말씀의 신학이냐, 종교 다원주의냐 기독교의 유일성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고대 교회로부터 이미 있어 왔던 두 상반된 입장은 오늘날 더욱 첨예한 대립 속에서 여전히 병존하고 있다.

 

2. 계시의 네가지 의미 구분

 

1)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는 행위로서의 계시

가리워져 있고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의 진리와 비밀의 베일을 벗기고 명백히 들어가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보고 깨달아 알게함이 성경에서 사용된 계시용어들의 일차적인 의미이다.

 

2)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는 데 사용하시는 방법으로서의 계시

하나님의 계시의 방법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창조와 섭리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이다.

창조와 섭리는 자연이라고 부르는 계시의 방법을 일컫는 것이다. 말씀은 말씀을 통하여 보다 분명히, 보다 구체적으로, 보다 친밀히 자신의 뜻과 계획과 진리을 알리신다. 이것은 족장, 지도자, 사사, 왕, 예언자들의 대예언자들을 통한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말씀과 성경을 통한 말씀으로 계시하신다.

 

3)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으로서의 계시

우리가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알리시는 바를 보고 알게 되는 사건으로서의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만남이라는 사건 자체이다.

 

4) 내용으로서의 계시

내용으로서의 계시를 의미한다면 계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종결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맺는 

계시는 하나님의 구원행위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신앙만이 참 신앙이며, 그 안에서만 진리와 구원이 있는것이다. 성령이나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자연으로부터 오는 그 어떤 철학이나 종교들 속에서 온전한 진리와 구원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   

 

1. 교회 역사에 있어서의 성경이해

교부시대에는 성경을 신적 계시와 동일시하였으며 성경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였다. 중세시대에는 올바른 성경개념이 손상을 입은 시대가 되었다. 그것은 전통에 고수한 사고의 발전 때문이다. 종교개혁시대에는 성경만이 계시성과 신언성, 영감성, 무오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의 출처요, 궁극적이고 규범적인 권위를 지니는 것이다. 이 '오직 성경으로'는 종교개혁사상의 3대 구호로 까지 일컫어질 만큼 종교개혁 신학의 방법과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근대에는 전통적인 확신이 합리주의의 영향에 의해서 도전받고 무너지는 시기로 특정 지워질 수 있다. 계시는 자연을 통해 주어질 뿐이고, 성경은 계시에 대한 인간의 증거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2. 성경에 대한 성경적 이해

 

1)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

성경이 말씀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고,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편이요, 우리가 실제로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할 때 성경을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2)영감된 말씀으로서의 성경

 

① 영감의 의미 혹은 성격에 관한 견해들

기계적 영감설은 성경의 기자들이 하나님께서 구술하시는 대로 받아 쓰는 기계에 불과 했고 말씀이 흘러간 통로일 뿐이었다는 이론이다. 동력적 영감설은 성경의 책들을 만들어 내는 일에 있어서 성령의 직접적인 활동 개념을 부인하고 그 개념을 저자들의 일반적인 영감으로 데치시키는 이론이다. 유기적 영감설은 성령의 역사는 성경 기자들의 인격성을 짓누르지 않았고, 기자들은 성경기록에 있어서 능동적이었으며, 성령은 그 기자들의 다양성과 그들의 사고와 언어의 제약과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사용하시면서도 그로 인해 성경이 단순히 인간적인 글이 되지 않고, 전적으로 인간의 손에 의한 글이면서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유기적으로 역사하셨다는 것이다.

 

② 영감의 정도 혹은 범위에 관한 견해들

부분 영감설은 성령의 인도가 저자들로 하여금 도덕적, 영적 문제들에 대히서만 믿을 만한 증인이 되게 하였다고 보는 이론이고, 사상 영감설은 성경의 사상과 언어를 구분하여 그중 사상만이 영감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완전 영감설은 성겨으이 어느 특정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도 기자들의 사상만이 아니라, 그들이 사용한 언어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감동이 작용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3) 무오한 말씀으로서의 성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절대무오한 것이나 그 무오성은 ' 진리에 대한 확고한 성실성,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에 대한 신뢰할 수 있고 지속적 증언'이라는 의미에서이다.

 

4) 성경의 완전성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기 위하여 친히 사람을 택하시고 그들을 특별히 성령으로 감동시키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가 원하신 것을 기록케 하신 책이라는 입장이다.

 

3. 정경의 문제

오늘날 개신교와 동방 정교회에서는 구약 39권, 신약 27권의 책으로 된 66권을 정경으로 갖고 있는 반면에 로마 천주교에서는 66권 외에도 9권의 다른 책들을 또한 정경으로 인정해 오고 있다. 정경으로 인정받게 된 그 기준은 그리스도를 즈언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도들이나 그 직제자들에 의해 쓰여졌어냐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교회의 역사 속에서 여러 회의를 거치며 정경으로서 확정되었으나 성경이 성된 것은 성경 자체의 권위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교회가 성경의 성경됨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이다.

 

4. 성경해석의 원리

성경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야 하고, 비평적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또한 성경은 성경 자체에 의해 해석 되어야 하고,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기도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쫓아 읽고 해석해야 한다.

 

5. 맺는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근원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진리에 관한 우리의 모든 사고와 논의를 판단하는 궁극적 권위를 지니는 책이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하고 ' 생명을 얻게'하려고 기록된 것이며, '믿어 순종케' 하시고, 우리를 '견고케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시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게 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애 온전케 하려는 목적으로 씌여진 것임을 성경 자체가 밝히고 있다.

 

 

.  

성경은 하나님의 존제를 증명하려 하지 않으며, 그 첫머리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엄숙히 선언할 뿐이다. 하나님을 말함에 있어서 전제는 그의 신비이다. 즉 그는 죄인인 우리 인간들에게 감추어져 있고, 보이지 않으며, 말로 형용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러나 또한 말씀과 성령의 내밀한 역사에 의하여 우리에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은 2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절대적 혹은 정체적 혹은 비공유적 속성이고, 다른 하나는 상관적 또는 긍정적 또는 공유적인 속성이다. 이 양면성을 바로 이해하는 것은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와 신앙을 참으로 기독교적이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

 

1) 삼위일체가 되시는 하나님

성경은 도처에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뿐임을 명확하게 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최대의 신비, 우리 기독교 신앙의 최대의 신비가 있다. 이 신비를 믿고 고백하는 것이 삼위일체 교리이다. 삼위로 일체되신 한 분 하나님의 교리야 말로 기독교를 기독교되게 하는 가장 특징적인 교리이요, 신앙고백이다.

칼빈이 이해하는 삼위간의 구별에서 성부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초요, 기초요, 원천이고, 성자는 모든 것의 지혜요, 계획이요, 배열이다. 성령은 모든 것의 능력이요, 효력이다.

이 삼위일체의 교리에 대하여 이단적인 사고에는 양자론적 단일신론과 양태론적 단일신론이 있다.

삼위일체의 정통 교리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시나 그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시고, 이 삼위는 영원 전부터 동시적으로 계셨으며 신성과 권능에 있어서도 동등하시고, 그러나 그 존재와 사역에 있어서 혼합되지 않고 구별되나 나뉘이지 않으며, 따라서 삼신론이나 사신론도 아니고 삼위로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2) 유일하신 절대 주권자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은 만유의 절대 주권자 이시며, 그가 지으신 모든 세게를 그의 뜻대로 친히 보존하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며 이끌어가시는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또한 지혜로우신 능력자이시고, 만물을 선하신 뜻으로 선한 목적에 쓰임 받도록 선하게 지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자존하시며 자유하신 하나님이시고, 지혜와 능력과 주권에 있어서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만유의 유일하신 심판주로서의 하나님이시다.

 

3)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

성경은 특별히 하나님을 사랑으로서 증거한다. 하나님의 최대의 자기 계시는 사랑이다. 하나님을 무엇보다도 사랑의 하나님, 아들까디 십자가에 내어 놓으시면서 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인식할 때 하나님의 주권과 창조와 섭리와 지헤와 능력과 자유와 불변성은 우리에게서 그 충만하고 진정한 의미를 얻는다.

 

4)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와 진노는 그의 사랑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한 형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은헤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와 죄에 대한 그의 진노와 심판의 표시이기도 하다.

 

5) 영이시고 인격이신 하나님

하나님이 영이시다는 것은 그와 우리 사이에 뛰어 넘을 수 없는 차이점을 말해 주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보는 그 어떤 혼합도 없으신 순수한 존재시고 어떤 시간적, 공간적, 물질적 제약 속에도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인격적인 분인데, 그는 의시과 의지와 감정을 지닌 개체적 존재로 알고, 느끼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하신다는 것이다.

 

 

.   

성경은 하나님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또한 말하고 있으며, 사실상 성경은 인간을 향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뜻과 인간을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일들을 증거한다. 신학적 인간론의 의미는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있는 인간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 나라의 삶을 향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여 하나님을 향해 등돌린 상태 속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아래 놓여 있지만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헤와 그 언약아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1. 인간의 기원: 하나님읜 창조로서의 인간

성경 창세기 2장 7절의 증거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피조물인데, 이는 인간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으며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인간은 인간일 뿐 결코 하나님과 같이 될 수도 없으며, 그 누구도 신격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관게 속에 있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하나님의 형상을 관계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때문에 인간이 죄인이면서 여전히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도 '에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안에서' 라는 전제하에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3. 죄인으로서 인간

성경은 한편으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라고 증거하고 있지만, 다른 하편으로는 인간을 죄인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죄의 본질적인 의미는 불순종으로서의 죄가 있는데 이는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를 의미하고, 교만으로서의 죄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아는 일 즉 하나님이 정해주신 대로 선과 악을 알고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가 좋은 대로 행동함으로써 선과 악의 유일신 입법자요, 기준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는 하나님과 같이 되鵸는 교만의 행위를 가르치고, 불신앙으로서의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지키지 못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사단의 거짓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죄의 문제에 대해 원죄를 말하는데 이는 아담으로 부터 온 인류에게 부패한 본성과 죄인됨이 모두 유전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펠라기우스는 반대하고 반 펠라기우스는 중립적인 위치를 말한다.

죄의 경중에 있어서 개신교는 은혜아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말한다.

이 죄의 결과로 인간에게는 영적인 죽음과 함께 육적인 죽음이 왔다.

 

4. 구원의 은혜 아래 있는 인간

기독교신앙의 인간 이해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죄인되기도 전에, 아니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기도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오 예정된 존재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계획을 갖고 계셨고 삼위 하나님 사이에서 일의 분담을 의논하셨으며 자발적인 동의와 언약을 맺고 계셨고 이 영원한 예정에 따라 아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으며,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우리의 구속사역을 수행하시어 그 영원한 게획을 이루어 놓으셨다. 이렇게 우리를 주권적 은혜의 대상으로 가르치는 것이 성경의 가장 큰 계시이다.

 

 

.   

 

1.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과  인간

신약성경은 단순한 역사적 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신앙의 시각에서 보여진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말한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부활하신 주님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셨던 분이시고, 낮아지셨던 예수께서 높아지셨다. 신약의 나머지 부분 역시 하나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다양한 기독론을 말한다. 신약성경의 기독론에 있어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에 있다. " 여자에게 나시고, 율법아래 나셨다"다는 것은 에수가 보통사람과 같은 한 인간이고, 하나님 앞에 선 대표적인 인간(기도하는 데표적 인 인간, 낮아지고 겸비해진 대표적 인간)이고, 위로부터의 대표적인 인간이라는 의미이다. 이 예수에 대하여 신약의 증인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린 분으로 선포했다. 이것은 성경대로 된것이고, 자발적인 사건이었고 유일회적인 사건이다.

이 예수는 단순히 아버지의 행위를 받아 수동적으로만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능동적 순조으로 부활하셨다. 죽은 자들로 부터의 부활은 이미 아들이신 분이시지만 아들의 자리에 앉게 되심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사건과 아버지 우편에 앉으심에서 심오한 의지의 행동으로서 자신을 비하시키신 분이 무한히 승귀되신 것이다.

 

2.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3중직

참 하나님이시요,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예언자직, 제사장직 및 왕직의 수행을 통해서 그의 중보 사역을 성취하셨다.

예언자직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시기에는 여호와의 천사로서, 신약시기에는 성육신 하신 여호와로서 그의 설교와 모범을 통하여 직접 그의 예언자적 직무를 수행하셨고, 구약과 신약에서 성령을 통하여 이 예언자적 직무를 수행하셨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은 에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필요 충분한 희생제사를 단번에 드리셨다는 것이다. 예수 자신이 제사장이시요, 제물이라는 것이다. 이일을 통해 속죄와 화해를 이루었고,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 위에 놓여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은 십자가 상에서의 그 자신의 희생제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천상적 중재 사역은 지상적 제사장사역의 연속이고 완성이다. 그리스도의 천상적인 사역은 우리의 법적인 상태에서 관련되고 성화에도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의 영적 왕권이란 은혜의 왕국 곧 그의 백성 혹은 교회에 대한 그의 왕적 통칭이다. 이것은 영적 영역에 관한 것이므로 영적 왕권이다. 이 은헤의 나라의 시민의 범위는 가시적 교회의 구성원의 범위를 넘어서 교회의 삶의 모든 표현들을 표현 하므로 교회의 영역보다 넓다. 이 왕국의 시간적인 범위는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에 중보적 왕으로 임명되셨고, 타락 직후부터 이 중보적 왕직을 수행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로 높아지셨기 때문에 이 같은 우주 통치권을 공식적으로 부여받으신 것이다.

이상에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자직, 제사장직, 왕직에 대해서 말했는데, 이 세가지는 서로 동떨어져 있을 수 없고 그 어느 하나로 축소되거나 그 어느 하나가 절대화될 수 없다.

 

 

.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화해를 거쳐 종말의 완성에 이르는 신학으 구원사적 구성에 있어서 성령론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성령의 사역이 창세기 1장 부터 요한 계록 22장에 이르기까지 전체에 걸쳐 나타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모든 면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1.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성령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에배에 있어서, 성령의 바른 능력을 알기 위해서, 인격자만이 인간의 사정을 알고 도와줄 수 있으므로 중요하다.

또한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성령의 신성은 처음부터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교리인데, 이것은 성령을 주라 부르심에서, 성령의 전지성에서, 성령의 편재성에서, 성령의 전지성에서, 성령의 영원한 신성에서, 성령의 하나님과 동등됨에서 살펴볼 수 있다.

 

2. 성령에 관한  설명

성령은 죄인된 우리를 거듭나게 하므로 새롭게 하시는 분이요,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분이다. 또한 성령은 보헤사로서 우리의 큰 위로이시며, 힘이시며, 삶의 능력이다. 그리고 성령은 생명의 창조자로서 생명의 주이시며, 생명의 원천이시다. 인간의 생명이란 인간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함께한 곳에는 참된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곳에는 생명이 없다. 그리고 진리의 성령으로 우리를 모든 진리 즉 온전한 진리와 전체의 진리로 인도하신다. 성령이 진리의 영이신 것은 바로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과 인간 사이의 사귐을 추구하고 형성한다. 이 사귐은 사랑의 영으로서 우리에게 오신 성령을 통해 그 목적하는 바를 성취한다. 사랑의 영이신 성령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다.

 

3. 성령과  관계

성령은 그리스도의 생과 사역에 있어서 결정적인 위치를 차질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탄생, 생애, 그리고 승천하신 이후의 사역에 이르기 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다.

또한 성령은 말씀안에서 믿음의 확신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바로 성령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되게 하는 능력이요, 힘이다.

성령과 교회와의 관계에서 성령은 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역사적 실존 형식인 교회를 세우고, 성령은 깨우치는 능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상적-역사적 존재 형식인 교회, 달리 말하면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인 교회를 계속적으로 새롭게 하신다. 또한 성령은 교회의 유기체를 이루게하고, 교회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시는 진리의 영이다. 그리고 성령은 교회에 은사를 주심으로 몸된 교회를 완전하게 하신다.

성령은 하나님 자신으로서 그의 주된 사역은 인간의 구속에 있다. 인간 구원의 시작인 유효한 부르심의 주체는 성령인 것이다. 성령의 주관적 사역의 성격은 첫째 선행적으로 구원과 관계되는 인간의 모든 영적 활동에 앞서고, 둘째는 단독적으로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만 성취되고, 세째로, 인간이 관찰하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적이고, 네째는 성령이 원하시는 그 때와 장소에서 일어난 주권적인 것이며, 다섯째는, 반드신 성령이 원하시는 결과가 나타나는 유효한 것이다.

 

4. 성령의 기능

성령은 세상의 죄를 책망하시는데, 죄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되를 말한다.

또한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하는데, 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령은 사람들에게 심판을 알게하는데,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5. 성령의 은사.

은사라는 것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 곧 은혜의 선물을 뜻한다. 이 은사의 표준은 절대적 규범이 되는 표준은 에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신앙이고,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세우고, 교회에 덕을 세우고 질서와 평화를 가져온다. 또한 이웃을 돕고 섬기게 하고, 성령의 은사는 서로 비교하지 않고 맡은 직분에 충실하게 하고, 모든 은사는 겸손해야 하고, 사랑에서 통합되고 통일된다.

성령 은사운동의 긍정적인 측면은 교회의 율법주의나 형식주의로 부터 벗어나게한다. 성령운동은 공동체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도록 한다. 기독교 신앙에 확신을 주며 활동적인 신앙이 되게 한다. 성령운동은 개인에게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며, 기쁨과 평안을 가져온다. 성령운동은 교회를 활성화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다.

성령은사 운동의 위험성은 우월성, 은사의 광범위한 개념을 협소화, 반지성적이며 반이성주의적 경향, 성경을 주관적으로 해석, 비기독교화이다.

 

6. 성령의 열매

성령의 열매는 우리의 행위라기보다는 성령에 의하여 새롭게 된 우리의 사람됨에 의해서 맺어지는 것이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경험의 영역(사랑, 희락, 화평) 과 행동의 영역( 오래참음, 자비, 양선)과 인격의 영역( 충성, 온유, 절제)으로 나눈다.

 

7. 성령과 악령

악령의 기원은 피조된 3대 천사 중 하나인 루시퍼가 타락함으로 되어진 것으로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인간을 미혹하고, 거짓과 사악 불의와 공포 죄와 죽음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하고, 사람을 괴롭힌다.

 

8. 성령세례에 관하여

성령세레는 주님을 증거하는 일과 주님의 사업에 봉사하는 일에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능력을 얻기 위함이다.

성령세례를 받는 방법은 회개하는 단계-죄와 인연을 끊고 죄사함을 얻는 단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단계- 순종하는 단계- 기도하는단계- 믿고 기다리는 단계이다

이 성령의 세례는 모든 중생한 그리스도인에게 보편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9. 성령 충만

성령충만이란 개인적인 삶, 교회,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순종하며 섬기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부여 받은 것이고, 모든 그리스도인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며,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정의와 사랑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성령충만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하며,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10. 개혁교회와 성령운동의 방향

한국교회는 성령은 교회의 주님이시고, 성령은 인격적 존재이시고, 성령은 은혜의 수단을 통해 역사하신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인정하되 은사의 다양성과 은사의 원리를 분명히 깨달아야 하고, 성령은 새 세게를 이루어 공동체를형성한다는 것을 알고 성령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   

 

1.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연합

벌코프가 제시하는 6가지 신비적인 연합의 특징은

1) 유기적인 연합이고

2) 생명적인 연합이며

3) 성령에 의해서 매개된 연합이며

4) 상호 행동을 함축하는 연합이다

5) 인격적 연합이고

6)인간을 개변 시키는 연합이다.

 

2. 은혜의 수단

성령께서는 설교된 말씀과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연합을 비롯한 온갖 은헤를 베푸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본성과 성령을 통하여 이것을 수용하는 인간의 주체에 대하여 생각하고 성령을 통하여 말씀을 신앙함으로써 칭의를 얻고 나아가소 이 말씀을 따라 기독교적 삶을 영위하는 성화에 이른다.

 

3. 말씀과 신앙과 순종

칼빈은 말씀의 3중성을 이야기 하는데, 설교와 성령을 연결시키면서 설교의 주된 주제가 복음이요, 설교를 통한 복음 신앙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끈다고 본다. 두번째는 성경의 저자를 성령으로 보고 이 성령께서 성서를 통해서 친히 말씀하신다고 본다. 세번째는 설교의 주제와 말씀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본다.

인간의 구원이란 성령을 통한 말씀에 대한 반응의 과정이라고 한다. 벌 코프는 신앙을 지식 및 신뢰라고 할때 우리는 신뢰의 차원으로 가야 구원의 신앙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4. 칭의와 성화

1) 칭의란 유죄를 제거하고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올려 놓고 영생을 확약하 다. 그러난 성화는 죄의 오염을 제거하고 죄인을 갱신 시켜 점증적으로 하나님의 형 상을 닮게한다.

 

2) 칭의는 죄인의 밖, 곧 하나님의 법정에서 일어난다. 반면에 성화는 인간의 내적 생에 서 일어나 그의 전존제를 점차적으로 개변시켜 나간다.

 

3) 칭의 란 유이회적으로 일어나나, 성화는 게속적인 과정이요, 이생 동안에 완성될 수 없다.

4) 경세적으로 보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이 칭의 받은 인간을 성화시키신다.

 

5. 예수 그리스도의 3중직과 성령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과 화해자로서 계시이신바,이 예수 그리스도는 이 제사장직과 예언자직의 성령을 통한 현재화로써 하나님 나라을 역사 속에서 이루어 나간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자직, 제사장직, 왕직으 삼위일체적 불가 분리성을 주장해야 하고 성령을 통하여 이 예수 그리스도의 3증직을 역사 속에 실현시키는 일에 응답해야 한다.

 

 

.   

 

1. 예수 그리스도, 성령, 구원 그리고 교회

성령께서 사도들과 원시 공동체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시켜 주시지 않으셨다념 기독 공동체가 기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도들의 복음 설교와 세례 및 성만찬을 통한 복음선포는 교회를 등장시켰다. 교회는 이처럼 성령을 통한 말씀의 피조물이다. 따라서 교회란 그 기원과 역사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 성령, 구원을 전제한다.

 

2. 세상속에 있는 교회

칼빈의 신학적인 문화관은 창조의 세계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극장'이라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부각시켰다. 칼빈에게 있어서 복음과 이신칭의는 결코 인간의 문화적 성취에 의해서 획들될 수 없다. 칼빈은 자율적으로 문화를 개변시키려는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반대함을 물론, 오직 복음, 오직 성경, 오직 은헤, 오직 믿음만을 주장하다가 문화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 은총과 그리스도인의 문화 창조에 대한 책임을 도외신한 루터적인 이분법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3. 교회의 역설적 실존

설교는 고대 교회에서는 세례와 성만찬을 말씀설교 이상으로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중세 때 소홀이 하다,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설교의 중요성이 역사상 가장 중요시 되었다.

루터와 칼빈에 있어서 세례와 성만찬의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말씀 그것이었다. 루테에 의하면 세례와 성만찬은 설교에 덧붙여진 것으로 우리의 신앙을 더욱 확고히 강화한다고 하여 성만찬을 소홀이 여겼으나, 오늘날 WCC차원에서 성만찬 예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례는 마태복음 28:19-29과 마가복음 16:15-16에 근거하여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레를 주는 것이 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어거스틴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 루토교와 개혁교회는 유아세례도 인정하였다.

 

4. 성만찬

성만찬은 예수님이 구약의 유월절을 근거로 제정하신 것으로 세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연합하고 그의 구속과 화해에 힘입어 칭의를 얻어 성화에로 향하며 이제 성만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龁 신비적인 연합 및 칭의와 성화를 더욱 강화시킨다. 루토와 칼빈과 쯔빙글리는 복음설교가 세레와 성만찬보다 우월한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도의 교제라는 의미에서 일치하나, 상이점은 성만찬에 결부된 기독론과 떡과 즙애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양태에 관한 것이다.

 

5. 교회와 교역과 교역자들

사도들은 12제자와 바울을 가르키나 바울의 동역자들과 사도적 은사와 은혜를 받는 자들까지 가르킨다. 그리고 예언자들, 전도자들, 치리 장로들, 교사, 집사들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하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동일한 교역이다.

이상의 교역자직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나, 만인 제사장직은 세례와 더불어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다.

 

6.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

A.D 381년 콘스탄틴노플에서 열린 제 2차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삼위일체론을 확인하고 성령론을 좀더 부연하고 나아가서 교회를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인 교회라고 얼의 하였다.

 

7. 교회와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적인 차원레 대하여 말한다면 예수님의 선포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고 동시에 임하고 있다. 부활 이후의 교회 공동체는 이 예수님의 메시지를 이어 받았다. 이 교회는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예표요, 미리 맞봄이요, 예언자적인 표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파송을 받은 교회는 전통적인 선교활동, 복음전파, 증거활동을 넘어서서 그의 모든 세계 참여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교'를 이룩해 나가야 한다.

 

.   

종말은 그리스도 신앙의 중심을 차질하고 있으며, 창조된 것은 반드시 종말이 있다는 즉 시작은 끝이 있다는 가르침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의 근본이고, 창조, 구속, 종말의 연속적 이해가 바로 그리스도교의 역사이해이다. 종말론이란 하나님의 피조물과 마지막 날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그리고 이 약속에서 비롯된 소망을 향하신 하나님의 최종적 행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활동은 종말론적 미래를 시사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이미' 그리고 '아직 아님'의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영광은 그분의 변화산 사건 속에서 계시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종말은 현실화된다. 종말론의 중심적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적이고 인격적 재림이다.

 

1.개인적 종말론

죽음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에는 육체적 죽음, 영적 죽음, 영원한 죽음의 세가지가 포함된다. 죽음의 원인은 하나님에 대하여 죄를 범한 결과나 그리스도를 통해 극복되었다.

죽음의 의의는 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의 시작을 의미하고, 신자들의 죽음은 의의 면류관을 받는 순간이며, 지상에서의 모든 싸음이 끝나는 날이다. 그리고 성화의 생활을 완성하고 그때부터 평안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죽은 이후에 대해 우리는 영혼은 게속 존속한다. 이것을 영혼 불멸이라고 한다.

의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존속하고, 낙원에 있고, 살아있고 의식을 지니고 있으나 불의한 자들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고, 고통을 의식하고 살아간다.

 

2. 일반적인 종말론

신약성경 중 4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고 있다. 이 재림의 시기는 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이 그때를 알고 게신다. 이것은 경성함을 위함이다.

마가복음 13장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재림의 징조들은 이방인들의 부르심, 이스라엘 전체의 회심, 대배교와 환란, 적그리스도의 출현, 표적들과 기적들이 있으리라고 말한다.

 

재림의 방식은 감람산에서 주의 승천을 본 그대로 지상에 강림하실 것이다. 재림의 목적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마지막에 미래에 시대를 여시고 만물에게 영원한 상태를 부여하시기 위해서 오실 것이다. 천년 왕국설에 대해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 있으나 종교 개혁자들은 무천년설을 주장한다. 그후 죽은 자들이 부활 할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친다. 이 부활은 모든 자들에게 해당한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반하는 또하나의 중요한 사건은 마지막 심판이다. 이 심판은 불가피한 것이고, 개인적이고, 보편적이고, 철저하다. 그후 불의한 자는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영벌을 받는다. 이것은 영원히 하나님으로 부터 추방된 처참함이다. 의인들은 새로운 창조물이 되어서 하나님이 계시는 영원한 천국에 거하게 된다.

 

'기독교 교리!! 교의신학!! 변증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 교리 요약  (0) 2024.04.18
예정 교리에 관한 진리  (0) 2024.04.18
신론 하나님의 본질  (0) 2024.04.17
기독교 교리 공부  (0) 2024.03.18
교리학  (0) 2024.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