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거하는 성령님 기름부음
27 그러나 너희가 그분께로부터 받은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 동일한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또 그것은 진리요 거짓말이 아니니, 그 기름부음이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너희는 그분 안에 거할지니라. (요일 2:27, 한글킹)
1. 기름부음의 시기
기름부음에 대한 본문의 내용을 보면 기름부음은 우리 안에 거한다. 기름부음은 별도로 구하는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있기 때문이다.(각주참조)
그렇다면,
기름부음은 어느 때 있게 되는가?
기름부음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는 시기에 대해서는 가르치는 인격으로서의 기름부음, 즉 성령님이 주체로서의 기름부음과 기름부음을 통하여 능력이 매개가 되는 매개체로서의 기름부음, 즉 객체로서의 기름부음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인격의 주체로서의 기름부음, 즉 성령님으로부터 인도함을 받는 것이나 직접 배우는 것과 같은 성령님의 고유 사역에서 기름부음이 임하는 시기는 성령의 인침시라고 해야 할 것이고, 사도나 선지자를 내세워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인간 중심의 사역에서는 기름부음을 통하여 능력을 부여받는 시점, 즉 성령 세례가 임할 때 기름부음이 임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제사장으로서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하고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선지자로서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그 능력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권능을 부여받는 매개 역할의 관점에서 본다면 능력을 부여받을 때 기름부음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사역을 중심으로 본다면 성령 세례가 있을 때 능력을 부여받기 때문에 이때 기름부음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기름부음의 사역 가운데 성령님의 고유 사역, 즉 가르치는 사역이나 성도들을 인도하는 사역 등 성령님의 고유 사역은 성령의 인침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실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는 시점은 성령의 인침이 있을 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령님의 가장 기본적인 사역인 가르치는 사역을 살펴보면 “기름부음이 너희를 가르치신다.”는 것은, 기름부음이 없이는 가르치시는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믿는 자들이 거듭날 때 죄에 대한 책망이나 심판에 대한 책망, 의에 대한 책망을 받는 것은 죄와 심판과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이다. 이러한 거듭남은 일반적으로 성령 세례보다 앞서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령 세례에 의해서 기름부음이 주어지는 인간 중심의 사역과는 다르게 성령의 고유 사역에서는 성령의 인침이 있을 때 기름부음이 우리 안에 거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름부음의 시기를 논하는 이유는 기름부음이 인격의 주체로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고 바울의 손수건 사건과 같이 객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기름부음의 개념에 대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기름부음이 인격을 중심으로 할 때에는 우리를 가르치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하시고, 객체를 중심으로 할 때에는 물건이나 장소에 능력이 남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영적인 일들의 신비이다.
이제 기름부음의 당위를 인식하였다면 내재된 기름부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관찰해야 한다. 즉 기름부음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생활 속에서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름부음이 무엇인지를 의식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이제는 기름부음의 실체를 어떻게 생활 속에서 감지하여 인식하고 살아갈 것인가, 즉 어떻게 생활 속에 기름부음을 끌어내고 구체화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2. 기름부음을 통한 가르침
기름부음을 통한 가르침은 참으로 놀랍다. 예수님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다.(요 7:15, 각추참조) 그러나 글을 아셨다.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 동일한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라는 말씀 내용대로 기름부음이 우리 안에 거하기 때문에 이 기름부음이 움직이면 아무도 우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 동일한 기름부음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서 알게 하신다. 필자가 책을 쓰는 것도 바로 이 기름부음의 가르침으로 인한 것이다. 신학에 대한 문외한이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세상은 이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요 14:17, 각주참조)
기름부음을 통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생활 속의 가르침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기름부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실제 사례 속에서 ‘그것이 기름부음이었구나’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름부음을 통한 가르침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성경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다. 어떤 일을 행할 때 스쳐 지나가듯이 읽었던 성경구절이 떠올라 그 말씀에 믿음을 두고 일이 이루어져 갈 때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기름부음이 가르치시고 믿게 하셔서 그 일을 행하신 것이다. 또한 성경 지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설교를 들을 때나 목회자들의 언행에서 ‘저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을 것이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는 그 분별 능력이 어디서 왔을까? 영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영적인 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그 내면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름부음이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기름부음이 우리 안에 있었고, 그 기름부음이 영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기름부음을 통한 가르침은 성령님의 고유 사역이다. 이 사역을 이해할 때 영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된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배웠다는 것을(갈 1:12, 각주참조) 이해할 수 있고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배웠을 진대’(엡 4:21, 각주참조)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3. 기름부음을 통한 사역
하나님은 능력으로 일하신다. 능력은 기름부음을 통해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은(고전 3:9, 각주참조) 성령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기름부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기름부음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기름부음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순종할 수 없어서였던 것이다.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기름부음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따를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을 하였던 것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은 기름부음을 받아야 하고 기름부음을 따라야 한다.
실제의 예로 필자의 경험을 사용하기로 한다. 필자가 함께하는 공동체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기름부음을 통하여 내면에서 ‘그 일은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이 음성을 듣고 생각한 것은(깨달은 것은) ‘내가 할 일이 없구나.’였다. 그리고 내면의 음성에 따라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었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교회들과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직도 하지 않았고, 십자가도 세우지 않았고, 간판도 걸지 않았고, 주보도 만들지 않았다. 전화도 없었다. 기름부음을 통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면서 묵묵히 기다렸다. 그러면서 주님을 만나기 전 기존의 신앙이 전부 종교적인 형식의 쓰레기들로 채워졌었다는 것을 알았다.
공동체의 사역에 형식적인 것은 없었다. 세상적인 어떤 방법도 쓰지 않았다. 간판이 없는데 홍보할 이유도 없었고 주보도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솔직히 지금은 영혼 구원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지만 그때는 영혼 구원에도 관심이 없었다. 단, 30년이 넘는 신앙생활이 껍데기 신앙이었다는 것에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공동체의 사역에는 기름부음의 능력이 넘쳤다. 귀신들린 자들이 자유함을 얻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어가던 사람들이 살아났다. 현대 의학으로 치유될 수 없는 색약과 같은 유전적인 장애들이 치유함을 받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들이 일어났지만 알리지도 않았다. 다만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사람들만 돌봤다.
“거저 받았으니 거주 주어라.”(마 10:8, 각주참조)는 말씀에 충실하였다. 가르치는 사역에 있어서 회비나 교육비 명목으로 어떠한 금원도 받지 않았다. 교육 과정에서 필수적인 점심도 자체적으로 해결하였다. 주시면 먹고 안 주시면 굶었다. 처음 온 사람들은 어디서 식권을 끊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영적인 일은 돈을 가지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성경의 태도였기에 성경대로 행하였다.
사역도 기름부음에 의해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행하였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 다시 말해서 성령의 언어에 대해서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것들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 성령님의 기름부음에 의해서 진행되었음이 그 결과에서 드러났다.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어렵다고 말하는 영적인 책들에 대해서 70세가 넘는 노인들이 그 내용들을 이해하고 믿음의 깊이를 더해갈 때 기름부음으로 인한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보게 되었다.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사역 현장에서는, 귀신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이 쫓겨났고 병든 사람들은 질병이 치유되었고, 새로운 방언들을 말하면서 믿는 자의 표적들이 나타났다. 기름부음을 통하여 성령님으로부터 배우는 현장에는 성경의 기록과 똑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을 공동체 모든 지체들이 경험하게 된 것이다.
공동체 사역은 어떤 것도 인위적으로 하지 않았다. 회복을 위한 사역을 할 때에도, 사역의 방법에 대해서도 기름부음에 따라 가르쳐주시는 대로 하였다. 또한 사역자들이 영적인 은사가 있는 척 하는 것들을 철저하게 막았고 용납하지 않았다. 주시는 대로, 영의 능력에 따라서 사역을 받는 사람들이 반응하는 그대로 드러냈을 뿐이다.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많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어떤 영의 실체가 사역하는 현장에 있다는 것을 외형적으로 나타내 보이려고 있는 척 하는 것을 많은 집회 현장에서 눈꼴사납게 보았기 때문에, 공동체에서는 사역자들이 사역을 하면서 가래를 뱉어낸다거나 인위적으로 있는 척 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시켰다. 그 결과, 성령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었다. 성령님의 일하심으로 속에 있는 귀신들이 드러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는 것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공동체 간증거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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