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언어
구약성경은 대부분 히브리어로 씌였고 극히 일부분만 아람어로 되어있습니다.
1.히브리어
BC1800년경 팔레스티나와 그 인근에 살던 셈족이 발명한 언어를 셈족어라 합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주요 셈족어는 히브리어, 아랍어등인데
모두 자음만 표기를 하고 모음은 별도의 부호로 표기합니다.
예를 들어 책에는 KKK만 쓰여 있어서 모음 부호가 없으면
KiKaKu로도 읽힐 수 있고 KaKuKi로도 읽을 수 있읍니다.
이와 같이 히브리어는 순전히 자음 22자로만 되어 있습니다.
기원후 7세기경유다학자들은 이러한 혼란을 없애기 위하여
자음의 위, 아래 그리고 안에 붙여 사용할 모음부호를 만듭니다.
이러한 학자들을 마소라 학자들이라하고 그들이 확정한 성경 본문을 마소라 본문이라 부릅니다.
이웃한 아랍어의 경우 초등학교 저학년 까지 모음 부호가 적힌 교과서를 봅니다.
히브리어와 아랍어는 유사한 말이 많습니다.
예언자(Prophet)는 꼭 같이 Nabi 이고 평화는 샬롬 과 살람 , 일(day)은 yom 과 yaum등 입니다.
2. 아람어
역시 셈족언어겠지요?
원래 시리아 유목민들의 언어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근처 어디에선가는 아직도 아람어로 말하고 미사를 보는 지역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나중에 동방과 서방의 아람어로 나뉘는데 성경에 쓰인 아람어는 서방에 속합니다.
히브리어는 아람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유배이후에 변형발전된 것입니다.
따라서 아람어는 히브리어와 자모가 같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쓰인 언어는 서방 아람어의 일부였다고 합니다.
3.희랍어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자발적으로 이주하여 생긴 디아스포라입니다)
번역되었읍니다. 72인의 율법학자가 각각 번역을 했음에도 결과물이 같아 '하느님의 감도'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를 70인역이라하고 합니다.
히랍어에는 두가지가 있었는데,
3-1) 고전희랍어
호머(Homer, BC800년경) 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BC330년 경) 까지 사용된 희랍어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등의 고대희랍문헌이 쓰입니다.
3-2) 코이네 (Koine) 희랍어
기원전 330년 부터 기원후 330년까지 희랍문화가 전파된 알렉산드리아, 로마 대제국에서 쓰입니다.
이 시기의 희랍어는 명실공히 세계적 언어였고
신약성경은 모두 이 코이네 희랍어로 쓰입니다.
코이네 희랍어는 대중적으로 이해되고 사용되어 사용과 전파가 쉬웠겠지요.
마치 우리들의 신앙선조들이 성경을 어려운 한문대신 언문(한글)으로 써서
중하류층의 백성들까지 쉽게 이해하고 퍼져가도록한 지혜에 비교하시면 좋을 것 같으네요.
비잔틴 시대 희랍어와 현대 희랍어도 있으나 성경희랍어와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성경의 언어(~의 言語):Languages of the Bible
[영] Languages of the Bible성경의 언어는 크게 구약성경의 언어와 신약성경의 언어로 나뉜다.
1. 구약성경의 언어Languages of the Bible-OT. (1) 히브리어 성경. 구약성경은 직접으로는, 그 대분이 히브리어이고, 그 일부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1) 히브리어는, 고대, 중기, 근대의 삼단계로 나눌수가 있다.
고대는 최고의 자료에서 구약성경까지, 중기는 성경이후의 유대교 제문서에 기록된 것, 근대는 현재의 이스라엘국의 공용어이다. 현재의 구약성경의 대부분은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일부가(창세기 중 31:47의 2어(二語), 스 4:8-6:18,7:12-26,렘10:11,단 2:4-7:28)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 중에는 보여지지 않는다. 본래 히브리어는 고대의 앗수르어, 바빌로니아어, 아라비아어, 에티오피아어 등과함께 셈어는 속하는 언어였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유다방언](왕하 18:26,28,사 36:11,13,느 13:24), 혹은 [가나안 방언[(사 19:18)으로 말해졌다. 즉 히브리인 자신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가나안어가 있었고, 그 가나안어를 그들은 가나안의 문화와 함께 흡수하여,차츰 자기의 것으로 하고, 종교 연합의 발달과 함께 히브리어를 성립케한 것이다. 그 시대는, 사사시대부터 사울, 다윗에 의한 왕국건설(전 1000년)과평행해있다.즉 가나안의 여러지방에 산재(散在)해 있던 히브리인이 신앙에 의해 단결하고, 가나안 말을 흡수하여, 종교 연합체를 형성해 간 때 생겨난 것이 히브리어이다. 이같이 하여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히브리어라는 명칭은, 랍비의 문헌에서 처음으로 나타나 있다. 후에 히브리인의 일상어는 차츰 아람어로 되는데(전 587년의 예루살렘함락이후), 히브리어는 문장어로서 존속했다. 히브리어는 우에서 좌로 쓴다. 알파벳은 22문자로서, 전부가 자음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어(死語)로 된 후, 올바르게 읽는 법을 보존하기 위해, 맛소라학파(Massorah 학파)의 노력에 의해, 자음의 상하에 음표를 기록하는 것이 발명되고, 그것이 씌어지게 되었다. 오늘의 구약성경에는 이 맛소라의 무음부호가 붙여져 있다.
2. 칠십인역 성경 Septuaginta-구약성경의 가장 오랜, 가장 중요한 그리스어역에 주어진 명칭인데, 일반적으로 칠십인역, 약기호 LXX, 또는 그리스어역 등으로 불리운다. 완명(完名)은interpretatio septuaginta virorum(70인의 번역)이다.
셈투아긴타는 [70]을 의미하는 라틴어인테, 이것은 정확하게는 72인(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6명씩 선출된 학자)에 의해 번역되었다는 전승에 기초하여 불리운 명칭이다. 이것은 여러 고대어역의 모체이기도 하고, 코이네 그리스어( →)문서의 일대 보고로서, 언어학상도 가치가 있고, 신약성경의 문체, 사상연구에 있어서도 귀한 자료이다.
3. 신약 성경의 언어 Languages of the Bible-NT. 신약성경은 코이네(koinhv, 공통이라는 뜻)로 불리우는 통속적인 그리스어(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이른바 고전 그리스어와는 다르고, 문법구조 등이 아주 단순하게 되어 있다. 그리스어는 원래 인구어(Indo-German 語族)로 불리우는 어군에 속하고, 라틴어나 산스크리스어와 깊은 관계를 가진 언어이다. 다른 모든 고전어가 소멸된 중에도, 다만 그리스어는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거치는 동안에, 그것은 여러가지 점에서 변화를 해왔다. 그것을 시대별로 크게 나누면, 다음과 같이 된다.
고전 그리스어 전 300년이전 헬레니즘시대 그리스어 전 300년-기원550년 비잔틴시대 그리스어 기원 550년-1453년 현대 그리스어 1453년 이후 물론 이것은, 편의상의 구분으로서, 반드시 모두의 일치된 의견은 아니다. 신약의 그리스어는, 이 구분에 의하면, 헬레니즘시대 그리스어에 속한다. 이것은 그 이름이 보여 주는대로,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에 의해 가져온 그리스 문화의 보편화로서의 헬레니즘의 부산물로서 생긴 언어 현상으로서, 지중해 연안 지방에서 인더스강에 이르기까지, 애굽, 시리아, 소아시아의 각지에 통용된 공통어이다. 신약성경의 그리스어는, 확실히 고전 그리스어의 미묘한 색조를 잃고, 단순화의 길을 걸은 서민의 말이다. 그러나, 이 그리스어는, 사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기능에 있어서, 조금도 변하는 바 없었다. 어떤 언어보다도 승하게, 당시의 세계공통의 언어인, 그리스어야말로, 복음이 전해지기에 적합한 언어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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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라는 뜻의 영어 번역인 [Bible:바이블]은 헬라어 βιβλο (비블로스=책)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구약성경 중 일부(스4:8∼6:18, 7:12∼26, 렘10:11, 단2:4∼7:28)는 바벨론에서 사용하던 아람어(갈대아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유대인들은 히브리어와 아람 방언을 함께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2)신약 성경은 당시 세계적으로 사용하던 헬라어를 사용하였는데 헬라어는 주후 1세기경에 로마 제국의 통용어가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을 기록할 때 히브리어나 아람 방언으로 기록하지 않고 헬라어로 기逑?이유는 이방 지역의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였습니다. (알렉산더의 동방 정복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지방이 헬라어를 사용하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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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기원전 천 년경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 주변의 이방 민족들을 제압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강력하게 발전시키고 남북 이스라엘을 통일시킵니다.
그 뒤를 이어 솔로몬이 왕이되어 황금시대를 엽니다.
이시기에(기원전 950년경) 구전으로 전하여오던 하나님의 역사가 저술됩니다.
이 문헌을 야훼스트계 문헌이라합니다.
솔로몬이 죽고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왕국으로 분열됩니다 (BC 922).
이때 북이스라엘에서 저술된 문헌이 엘로히스트문헌입니다.
앗시리아 왕에 의해 북이스라엘은 멸망(BC 722)되고, 북이스라엘인들은 남유다로 흘러들어가는데 이시기에 신명기계 문헌이 저술됩니다.
BC 586년 신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공으로 남유다 왕국도 멸망하면서 이스라엘은 바빌론 유배생활을 시작합니다.
유배생활중에 제관계문헌이 저술되고, 속속 자료가 수집되어 구약성서가 완성됩니다.
이렇게 구약은 유다인들이 저술하여 히브리어로 기록됩니다.
유다인들은 바빌론에서 60년 간의 유배 생활을 하다가 새롭게 중동의 강국으로 등장한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리면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해방 칙령을 내려 유다인들로 하여금 옛 유다땅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이때 모든 유다인이 다돌아간것이 아니라 일부는 남고 일부는 유다땅으로 돌아가게됩니다.
유다땅으로 돌아간 유다인을 팔레스티나 공동체라 하고, 바빌론에 남은 유다인들을 디아스뽀라 공동체라 합니다.
그후 이스라엘은 기원전 333년 새로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그리스 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은 대제국을 건설하고 곳곳에 그리스 문화와 언어를 유포시켜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시키게 됩니다.
대제국 그리스의 헬라어가 공용어가 되면서 추가로 구약이 저술되는데 천주교의 제2경전이라 하는 부분인데 헬라어로 저술됩니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63년경 로마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신후 신약이 저술되는데 일부 아람어와 헬라어로 저술됩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되면서 신구약 성서는 라틴어로 번역되게 됩니다.
현재 구약중 헬라어로 기록되었던 부분은 가톨릭에서는 경전(7권:공동번역 제2경전)으로 구약에 포함되나(구약성경전체 46권),
개신교에서는 성서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구약성경전체 39권).
성경의 언어
1. 구약 : 히브리어
(예수님 당시 히브리어는 구약 경전으로 사용되었고,
아람어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생활 언어로 사용되었고,
사도들이 예수님 승천 후에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는 70인역(셉투아진트)에서 사용된 헬라어가 사용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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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사항
기원전 5, 6세기경부터 페르시아 제국에서 아람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고,
팔레스타인 유대 사회와 디아스포라(여러 나라로 흩어진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아람어를 쓰게 되자, 유대인 회당에서는 예배 때에‘통역자(메투르게만, meturgeman)’가 등장하여 낭독되는 율법서와 예언서에 관련된 본문 등을 히브리어에서 아람어로 통역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구두로 통역되고 전승되던 것이, 후대에 이르러서는 통역 내용이 일정한 형식으로 굳어지게 되고 드디어 그것이 기록으로 정착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타르굼(히브리어로 씌어진 구약성서를 아람어로 번역한 것)이다.
신약에서 아람어의 사용 예 : 특히 마르코복음에서 나타난다. 마르코복음에서는 아람 어가 자주 나온다.
예를 들어 보아너게(3:17), 달리다굼(5:14), 에바다(7:34), 아바(14:3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5:34) 등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처음으로 번역된 칠십인역이란 기원전 3세기 중엽에 번역된 구약의 오경 곧 율법서 부분을 일컫는다.
히브리어 구약성서가 모두 그리스어로 번역되기까지는 그 후 한 세기 이상이 걸렸다고 본다. 기원전 1세기까지는 번역이 완료되었으리라고 본다. 이렇게 하여 칠십인역 성서는, 한편으로는 유대교를 이방 세계에 알리는 통로가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전파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리스어 사본은 편의상 파피루스(Papyrus) 사본, 대문자 사본(Capital letters : uncials), 필기체 소문자 사본(Cursive script : Minuscules)으로 나눈다. 파피루스 사본의 수는 수백 개에 이르고, 크기는 다양하며, 칠십인역이 형성되던 초기의 이른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늦은 것은 7세기 중엽의 것도 있다.
2. 신약 : 헬라어(예수님 당시 지중해 연안의 지역은 헬라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었음), 헬라어는 매우 복잡하면서도 과학적인 언어(성구분, 시제, 격, 단(복)수 등 매우 엄격하고 복잡함)
신약 성경의 원전(原典)
성경의 원전(原典)은 없다.
모두가 기원 4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생겨난, 5천 5백 종류 복사본이다.
이유는 손으로 베껴 쓸 때마다, 내용이 고쳐지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원전인 <시나이 사본>이 역시 바티칸 사본과 마찬가지로 기원후 4세기경에 씌어졌는데 1844년에 시나이의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시나이 사본>에는 수정된 곳이 1만 6천 군데나 된다.
초기 기독교는 2백여년 동안 구약성서 이외에는 성경을 갖고 있지 못했다. 모두 필사본일 뿐이다.
사도 바울의 편지도 모두 필사본입니다. 예를들어 「에베소서」가 생긴것은 바울이 전도여행 중 에베소 동네 가서 교회를 개척한후 그 동네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바울이 거기에 있을 당시에는 교회가 잘 운영되었지만, 바울이 떠나고 한참 지나니 교회내에 여러분란이 생기게 되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그 교인중 한사람이 바울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교통이 좋지 않은 당시에 바울이 다시 돌아가서 해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바울은 "사랑하는 형제들아 사탄의 꾀에 빠지지 마라........." 등의 내용을 써서 그 메신저에게 건네주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에베소서」가 된 것이다.
고린도 전서,고린도 후서, 로마서 전부 이런 식으로 성립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초기에는 사도들의 이름을 가장한 온갖 위조편지가 많았다. 그런 편지들의 온갖 사본들을 모아서 A.D. 4세기경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데에서 편찬한 것이 바로 『성경』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293∼373)가 만들었다.
성경은 원본자체가 번역본이다.
예수님은 희랍어를 전혀 몰랐다. 예수님은 지금은 死語가 되어 버린 아람어라는 토착말을 사용하셨다. 예수님 말씀에 대한 최초의 기록도 단지 예수님 말씀일 것이라고 말들을 예수님이 죽은지 4∼50년 경 후에, 그것도 아람어에서 희랍어로 번역하여 적어 놓은 것이다.
원본자체가 번역본이다. 정경(正經)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라는 조직의 "정통성"의 타당화를 위하여 정경(正經)을 성립시켰다.
초대교회의 신도의 사고를 지배한 것은 파루시아 즉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긴박한 기대였다. 사도바울 자신이 자기 생전에 예수가 호령을 치면서 천사들의 소리와 신의 나팔소리를 반주로 하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확신했고 그 때는 이미 죽은 자들은 다시 살아나고 자기를 포함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구름에 휩싸여 공중에서 예수를 맞이할 것이라고 믿었다(살전 5:16∼18).
예수의 재림이란 그러한 사실의 모습으로 이 시간 이 공간 속에서 현실화되어 일어난다고 확신했고, 후년에 그는 재림 전에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인간적 불안감을 표시하기도 했다(빌 1:20∼25).
대체적으로 초대교인들은 최저한 AD150년경까지는 긴박한 파루시아의 기대 속에서 살았다. 즉 자기들이 살고 있는 현세는 단순한 준비과정에 불과했으므로 현세 속에서, 즉 역사 속에서 자기 이름을 남긴다든지 역사 속에서 무엇을 성취해 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경전이 일차적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예수는 그들이 기다리던 모습으로 오지 않았다. 이러한 지연 속에서 초기 기독교는 파루시아를 비종말론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러한 비종말화는 점차적으로 역사의식속에서 교회론으로 가게되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라는 조직으로서 이 세계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선포이다. 교회야말로 천국의 지상에 있어서의 역사적 표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론의 사상적 물줄기의 완성을 바로 우리는 어거스틴의 카톨릭 교회론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초대기독교 문헌의 정경화는 이러한 교회론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정경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경을 성립시켰다는 것이다. 교회라는 조직의 "정통성"의 타당화를 위하여 "정통적" 경전을 구분해 내어야만 할 필요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A.D. 150년 경까지만 해도 사도나 기존경전의 인물이름을 빌어 무명으로 혹은 가명으로 성경을 쓰는 일은 전혀 위작의 나쁜 행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권장되었다.
우리는 케리그마, 즉 예수의 수난,죽음,부활,승천, 그리고 그의 행위와 말의 수집이 원래 구전의 전통(oral tradition)이었다. 그리고 그 구전은 예수의 언어였던 아람어가 주축이었고 이 구전 자체가 희랍어로 기록되기 이전에 이미 희랍어로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번역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를 직접 경험한 사도들이 다 죽고 난 후에는 이 구전을 기록해야 할 필요성이 있게되어 복음서의 제작은 이러한 구전의 보존을 위하여 이루어졌고, 또 구전간의 차이에서 오는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 각 파벌들이 자기들의 구전을 기록하게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예배와 의례(liturgy)를 위한 기록의 필요성 때문에 제1세기 말경에는 상당수의 복음서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어떤 복음서들은 사도의 이름을 빙자하지 않고 부활한 예수의 직언이라고 하여 그 권위의 우위성을 보장받으려고 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단에 대해서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여기는 복음서들의 정통성을 주장하게 되는데 그 정통성의 근거는 사도 저작성(apostolicity)이었다.
이 사도적 저작성이라는 기준자체가 애매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으로는 분쟁의 결정적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고 2세기에는 이미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와 알렉산드리아의 소아세아를 중심으로한 동방교회 사이에 정경의 기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심각히 대두되었다.
이러한 견해차이는
2세기 말엽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3세기의 오리겐(Origen),
4세기초의 유세비우스(Eusevius)등에 의한 신학적 논란을 거쳐 조정과정을 거치는데 당시에 널리 유행했던
히브리인 복음서(Gospel of the Hebrews),
애굽인 복음서(Gospel of the Egyptions),
바울행전(Acts of Paul),
바나바서(Letter of Barnabas),
요한행전(Acts of John),
베드로 복음서(Gospel of Peter),
베드로 묵시록(Apocalypse of Peter),
도마복음서
12사도 교의서(Didache),
헤르마스의 목자서(Shepherd of Hermas),
등등은 여러 분류방법에 의해 경전으로 탈락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오늘의 27서가 정경으로 규정된 것은 아리아니즘(Arianism)의 비판에 심혈을 기울였던
기독교 정통성의 옹호자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원래는 집사)에 의해서였다.
라틴교회는 제롬(Jerome)의 영향 하에 아타나시우스의 결정을 받아 들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성경의 27권 형태는 4세기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 후에도 계속해서 동서방교회에서는 기존의 성경을 썼다.
예를 들면 4세기 중엽의 시나이티쿠스 코우덱스판본(Codex Sinaiticlus)은 바나바서와 헤르마스서를 정경에 포함시켰다.
시리아의 교회에서는 타티안이 편집한 디아테사론(Diatessaron)이 5세기까지 쓰였고,.......
7세기에 내려와서야 비로소 시리아에서는 27권짜리 경전이 쓰여지게 되었다.
그 뒤로 1546년에 라틴 벌게이트(the Vulgate)가 인쇄되기까지 텍스트 그 자체는 계속 유동적었다.
마틴 루터는 경전성의 기준을 "사도성"과 "그리스도에게로 귀결되는 것"의 두 척도에 두었는데,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은 후자의 척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 네 편을 신약의 마지막에다가 포괄시켰다.
이러한 텍스트의 역사적 과정을 고찰해 볼 때 성경 그 자체의 일점일획의 절대적 권위에 포괄적 의미를 부여할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지 않을수없다. 심지어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지금까지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서에 그렇게 쓰여 있다는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인데도 성서 내용하고 틀리니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서가 일점일획도 안틀린다고 믿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인 것이다.
15세기 인쇄술이 개발되기 이전의 모든 성경의 판본은 하나도 동일 한 것이 없고,
1,200년경에나 장의 구분이 생겨나고
1,550년경에나 절의 구분이 생겨났다.
구약은 39권- 929장 -23214절- 592439단어- 2738100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신약은 27권- 270장 -7967절 - 132253단어- 933380글자로 이루어졌다.
신구약66권- 1199장- 31181절- 724692단어- 3471480글자가 있다.
성경은 각편의 제목이 있고, 세부적으로 나누어 장, 절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처음 기록할때 제목을 달아서 기록했거나 장, 절을 구분하여 기록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제목과 장, 절로 나누어 찾아보기 좋도록 한것이다.
신약성경의 절 구분은 1550년 프랑스의 인쇄업자 로버트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에 의해 표기 되기 시작했으며 현재 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우리말 개역성경의 장 절 구분은 MT나 LXX이 아닌 Latin Vulgata를 많이 따르고 있다.
오늘까지 존재하는 사본 중에서 신약 27권 전체를 보전하고 있는 판본은 50종에 불과하며, 15세기 인쇄술이 개발되기 이전의 모든 판본은 하나도 동일 한 것이 없다.
결론
성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과정을 거쳤다.
1) 구전:
예수의 육성음(아람어)은 예수의 죽음과 함께 증발했으며, 예수의 말씀이 구두로 전달되던 시대가 최소한 한 세대 (30년)이상 흐른 뒤 그 후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
2) 번역:
예수가 구사했던 언어(아람어)는 최초로 희랍어로 쓰여지기 시작했다. 영어 번역판만 해도 100여 종이 넘는다.
3) 필사:
이 희랍어로 쓰여진 것조차 원본은 없다. 모두 필사본일 뿐이다. 필사본들은 하나도 동일한 것이 없다. 사본에도 5,000종이상이 된다.
4) 기타:
고판본은 모두 액센트와 쉼표의 표기조차도 없고, 장과 절의 구분시 많은 오류 발생했고, 정경과 외경으로 분류하는 과정에서도 , 복음서의 수정, 가감, 삭제 편집 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심지어 삼위일체나 예수의 신성(神性)과 같은 중요한 교리조차도 몇 차례의 종교회의를 거쳐 찬반투표로 종교회의에 의해 결정되었던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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