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교리의 발전
1. 니케아 회의 이후의 논쟁
l 역사적 배경 (325-337 콘스탄틴 사망 / 337-361 세 아들의 통치기 / 371-381 줄리우스 통치)
- 니케아 회의에도 불구하고 아리우스주의는 계속 세력을 얻음
- 이유: 공권력에 의한 기독교 신앙 결정에 반발.
- 호시우스 후임으로 유배당한 유세비우스가 황실 감독이 됨
- 니케아주의자들을 축출하려는 시도
ex) 안디옥 감독 Eustace와 아다나시우스 파문 (335)
l 니케아 반대론자들의 생각
- 콘스탄틴노플의 유독시우스
니케아주의자들은 대답하여 보라.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그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계신 하나님, 즉 고난과 죽음을 초월하여 계신 하나님과 동질일 수 있는가? |
- 동방교회: 동일본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 – 오리겐의 종속설 영향
- 서방교회: 니케아에 대한 찬동 – 터툴리안의 영향
- Ancyra의 Marcellus: 새로운 서방교회의 니케아 신학의 패자였으나 성육신 이전과 이후의 로고스를 구별하는 옛 신학으로 돌아가 Son of God이라는 명칭을 성육신한 로고스에 국한시킴
l 아리우스파의 역전
- 세르디카 공의회 (342-3) 콘스탄스(서방)와 콘스탄시우스1세(동방)가 공동소집 – 모종의 화해안을 받아들임
- 콘스탄스 사망 후 아리우스의 승리: 357년 일리리아 시르미움 회의에서는 ‘본질’이라는 용어로 성부와 성자의 관계 설명 금지
- 반아리우스주의 내의 내적 갈등
2. 갑바도기아의 세 신학자
l 성령을 둘러싼 논쟁
- 모호한 상황이었음: 오리겐과 아리우스는 성령을 성자에 의해 창조된 최초의 피조물이라고 봄
- 아다나시우는 성령의 동일본질을 주장했으나 니케아에서는 ‘성령을 믿는다’라고만 불확실하게 언급함
- 콘스탄틴노플 감독 마케도니우스: 성령을 성자에게 예속되는 피조물이라고 주장 – 성령훼방론자(pneumatomachen)로 불려짐
l 갑바도기아 신학자들의 과업: 대 바실, 나지안주의 그레고리, 닛사의 그레고리
-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성령훼방론자들에 맞서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함
- 삼위의 구분에 주안점을 둠: 아리우스를 극복한 이후 양태론과 구별되는 삼위일체론의 제시가 필요해짐
- 삼위일체 교리의 출발을 하나님의 한 신적 본질에 두기 않고 신적 존재의 세 인격에 두고 삼 인격을 신적 본질 개념 아래 두려고 함.
- 아타나시우스가 구원론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갑바도기안들은 기독교의 근본 이론을 플라톤적 실재론에 근거해 형이상학적으로 확립하려 함.
- 구분 이후에는 “공동실체성, 공동본성”을 강조: perichoresis – 각 위격들이 서로 상호 관통하고 포용하며 함께 있음.
l 대 바실 (330-379): 가이사랴의 감독
a. ‘유노미우스 반박’: 유노미우스는 성부의 절대성과 성자의 상대성을 대조하며 성자가 존재하지 않은 시기가 있다고 주장
- 성자의 출생은 피조물의 출생과는 다르다고 주장 – ‘무감각적이며, 분리되지 않고, 구분되지 않고, 시간에 제약되지 않는 출생’
- 영원전의 출생하신 존재는 자존하시는 존재임: 인간 이성 너머의 지식
b. 세 위격 내의 한 본질(one ousia three hypostases
mia ousia en trisin upostasesin)의 확정: 개체와 종의 개념으로 설명 시도
- 삼위일체 규정 용어들에 정확한 의미 부여: ‘세 위격 (hypostasis=persona)안에 한 본체 (ousia=substantia)’: persona=persopon이 사벨리안주의적 오해가 있었으므로 더 강력한 hypostasis를 사용함.
- hypostasis는 150년 전 Origen이 이미 사용하였고 아리우스도 사용했으나 ‘실체(substantia)’라는 개념으로 사용됨
- hypostasis(실제)라는 용어가 ousia(본질) prosopon(인격)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하지 말고 이 말을 성부와 성자의 인격적 실체를 나타내는 데에만 쓰도록 제한함.
‘위’는 삼위일체 내의 존재 방식으로서 ‘실체의 고유한 존재방식 (subsistentia)이다. 세 구분되는 위격들 안에 단순하고 혼합되지 않은 한 실체가 존재하신다. 그렇다면 실체는 공통적인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되어져야 하고 반면에 위격이란 몇 가지의 구분적 표시이다. 그러므로 우시아와 휘포스타시느는 보편과 특수가 서로 다른 것처럼 다르다. |
- Ousia은 보편적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존속을 발견하지 못한다. = 본성을 지칭할 수 있으나 존재하는 것과 이름에 의해 특별하게 지시되는 것이 동시에 명백하지는 않다.
c. 성령의 신성에 대한 강조
- 성령훼방론자들의 등장에 맞서 바실은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과 본질공동체임을 밝힘: “성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호칭을 따라 언설하여 나는 성령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해야 한다.” (Ep. 236.6)
- 아리우스 논쟁이 삼위일체 논쟁이 됨.
l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330-390)
a. ‘신학적 웅변’ 5권: 유노미우스의 딜렘마 공격을 수사학적으로 반박함
b. 관계 개념의 삼위일체론
- 존재나 행위가 아닌 본질의 교류라는 관계 개념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내적 관계에 관심
‘우리에게는 한 분 하나님, 그로부터 (of whom) 만물이 기원한 바 아버지가 계신다. 그리고 한 분 주, 그에 의해서 (by Whom) 만물이 존재케 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리고 한 분, 그 안에 (in Whom) 만물이 존재하는 성령이 계신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본성의 상이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혼돈되지 않고 계신 본성의 개체적 위격들을 특징적으로 말한다.’ |
- 세 분의 특성 차이: 아버지는 낳아지지 않은 자 (agennhsia) / 아들은 낳아지신 자 (gennhsiV) / 성령은 발출되신 자 (ekporeusiV)
- 실체들의 동일성과 능력의 동일성에 근거한 실체의 단일성 = 일체성 논증
c. 성령에 대한 강조 – 성령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
l 니사의 그레고리 (335-394): 바질의 동생
a. 헬라 철학의 적극적 사용 – 오리겐과 유사하나 차이가 있음 (영혼선재설, 이데아 사상, 우의적 성경해석 + 역사성 중시)
b. ‘삼신을 부정하면서(Quod non sint tres Dii)’
- 활동의 단일성에 근거한 실체의 단일성 주장: 본성(nature)보다는 활동(operation)의 측면에서 접근
- “신격이라는 용어는 활동에서 의미가 있지 본성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QNTD.5: 333)
- 삼위의 일체이심은 인간과는 다르다: 사람들의 활동은 복수적이면서 개별적인데 반해 삼위의 활동은 항상 셋으로 공통적이다.
- Pericwrhsis: “각 위격들이 다른 위격들을 상호관통하고 서로 포용하며 언제든지 함께 있다.” 동적이 의미의 상호관통
Cf. 아다나시우스와 어거스틴: “분할 불가한 동일실체” - 상호관통보다는 공통내제로 삼위의 관계를 설명함 – 실체의 단일성에서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임.
- 아버지는 나시지 않은 신성의 근원 /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나신 사역을 행하시는 자 / 성령은 아들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사역을 완성시키시는 자
- 삼위의 차이는 존재가 아닌 오직 내적 관계를 통해서 구별될 수 있다.
- 외적 활동에서는 도리어 통일성이 강조됨: “아들이 아버지 없이 홀로 행하시거나 아들께서 성령과 별개로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는다”
c. 성령과 관련하여 – “per filium”이라는 용어를 사용
3.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381년 데오도시우스 황제 2년)
l 아리우스파의 종말: 니케아를 따르지 않으면 이단으로 처벌한다는 칙령 발표
l 니케아 신조의 확립
우리는 한 분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한님을 믿나이다.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하나님의 독생자, 모든 세대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신 자, 빛으로부터의 빛, 참 하나님으로부터의 참 하나님, 나셨으나 지음 받은 것을 아니며 아버지와 동일본질이시라. |
-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의 지도로 성령의 신성도 고백됨
우리는 주(to Kurion) 되시며 생명을 주는 자(to Zwopoioun)이신 성령을 믿으니, 그는 성부에게서 나오시고(ekporeuomenon)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영광을 받으실 분이며, 또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
- 신성의 일치를 동일영광, 동일경배 사상으로 표현함
- 한계: 동일본질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아 성령과 성부의 동일성이 직접 주장되지 않음
-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신비이므로 성령의 나오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함.
- “나오심”은 위격들의 구별의 관점에서 위격들의 특성으로부터 비롯된 개념
- 성경과 다른 두 위격과의 관계가 정의되지 않음 – 필리오케 논쟁의 실마리를 제공함.
- Filioque 논쟁: 성부에게서만 나오면 성자의 위상 약화 / 모두에게서 나오면 성령이 더 의존적이 됨:
Cf. 갑바도기안 – 필리오케를 부정하지는 않음 (닛사의 그레고리 “per filium”을 사용) / 에피파니우스와 마르켈루스는 적극적으로 반대
4.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
l 서방신학에서는 아리우스가 큰 위협이 되지 않음 – 터툴리안의 영향력 / 라틴 문화의 실천적인 경향 / 플라톤주의보다 스토아 사상이 득세
l 어거스틴의 ‘삼위일체에 관하여’
a. 배경
- 기본적으로 힐러리를 통해 얻은 갑바도기아의 삼위일체론에 기초함
- 위격의 구별은 외적 활동이 아닌 내적 관계성으로 가능하다고 주장: 갑바도기아의 perichoresis보다는 아다나시우스의 undivided substance에 근접.
b. 삼위의 구별
- 삼위일체에 대한 명제들은 ‘적응적 표현들’이지 사실 기술일 수 없음.
- 내제적 관계: 영혼의 세 가지 기능 (기억, 지성, 의지)의 관계와 유사함
- ‘이러한 유사성에 의해서 볼 때, 삼위일체는 불가분리적이지만 어느 정도 구별점이 있으며 가시적인 피조물에게는 외관상으로 개별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De Trinitate, IV.21.30)
c. 삼위의 통일성
- 갑바도기아는 개별성에서 통일성으로, 어거스틴은 통일성에서 개별성으로 설명을 이끌어 감.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부를 때 각자의 내적 관계 속에서 부를 수밖에 없음: 영원하고 불가변적인 관계이지 부수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
l 의의와 논쟁점
a. 성령의 위상과 위격
- 성령의 발출 사상: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의 결속
- 성령이 하나님과 신자들을 묶어 주듯이 삼위일체 안에서 위격들을 서로 묶어 줌: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살게 한다. 그것이 사랑의 효과이다. 따라서 성령은 사랑이신 하나님이다.’
- 하나님으로부터 발출된 사랑의 결속: 성령의 비인격성 논란을 일으킴
b. 삼위일체의 흔적: 심리학적 유비를 통한 삼위일체설의 설명
- 삼위일체의 흔적이 피조세계 (인간 영혼)에 나타나 있음 – ‘우리의 형상’ (창 1:26)
- 최고의 창조물이 영혼 안에 기억, 이해, 의지의 삼원성이 삼위일체의 흔적.
- 심리학적인 삼위일체 논증에 대한 논란을 일으킴: 인간 영혼이 삼분 되는가? / 양태론이 아닌가?
5. 필리오케 논쟁
l 논쟁의 핵심: 성령이 성부에게서만 나오는가 성부와 성자에게서만 나오는가?
l 논쟁의 진행
- 라틴 교회가 8세기 니케아 신조 ‘the Holy Spirit who proceedeth from the Father’에 ‘filioque’를 삽입하여 이후 예배 중에 고백하고 노래하게 됨.
- 로마 교회와 동방교회의 분열에 중요한 신학적 쟁점이 됨
- 현재까지도 Ecumenical 논의에 중요한 걸림돌
l 논쟁점:
a. 성부에게서만- 헬라교부들
- 신성의 유일한 근원인 성부의 독특성을 양보할 수는 없다.
- 나오심의 구별: 성자는 출생 (beget), 성령은 산출 (proceed)
- 말을 할 때 음성(성자)과 숨(성령)
- 만약 성자와 성령이 모두 출생이라면 아들이 둘이 됨으로
- 삼위의 구별을 강조하는 헬라 삼위일체론의 입장
- 성부와 성자에게서 – 라틴교부들
- 어거스틴: 요한복음 20:22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주심
- 성부의 독특성을 유지하려 함: ‘성부께서 성령을 성자에게 주신다. 양자의 성령이 공통적 은사가 되는 방향으로 낳은 것이다.’
- 성령을 성부와 성자 사이의 사랑의 끈으로 생각했기 때문
- 삼위의 연합을 강조하는 라틴 삼위일체의 입장
6. 중세의 삼위일체 교리
l 중세신학: 특별한 발전은 없으며 새로운 사상적 조류에 따른 여러 가지 설명 시도들이 있었음.
l 로셀리누스 (Roscelinus; -1125)
- 유명론의 입장에서 삼위의 실재성(res)과 일체의 명목성(voce) 주장
l 포이티얼스의 길버트 (Gilbert of Poitiers; 1080-1154)
- 아리스토텔레스의 온건한 실재론의 입장에서 삼위일체론을 설명
- 하나님을 질료(Material) 신적 본체를 형상(Form)이라고 설명함
l 아벨라르 (Abelard; 1079-1142)
- 사벨리우스주의에 가까운 삼위일체론: 성부는 능력, 성자는 지혜, 성령은 선
l Thomas Aquinas: 정통교리에 충실한 삼위일체론
7. 종교개혁 시대의 삼위일체 교리
l 종교개혁자: 나케아와 어거스틴에게 충실한 삼위일체 교리
l John Calvin (1509-1564)
a. 배경
- 1536년 Pierre Caroli의 공격/ 1546년 세르베투스와의 논쟁 / 1558년 이후 이탈리아 반삼위일체론자, 폴란드 단일신론자들과의 논쟁
b. 핵심:
- 성자의 신성을 증명하는 것
- ‘한 본질 (essence) 세 본체 (hypostasis/person)’이라는 정통 교리를 인정하는 것
- 삼위일체 목적: 우리를 끌어올리시는 은혜 (Accommodation - I.13.1)
c. 성경 외적인 용어 사용을 인정함
d. 성자의 신격
- 하나님의 말씀 = 창조주, 계시의 원천 (I.13.7) / 영원성 (I.13.8)
e. 성령의 신격
- 우주의 질서를 유지 / 영성과 중생의 창시자 (I.13.14)
f. 삼위의 구별과 일체성
- 일체성: 하나님 – 믿음 – 세례의 연결 (I.13.16): 아리우스 공격
- 삼위: Gregorius of Nazianzus 인용 - “나는 즉시 삼위의 광채에 둘러싸이지 않고는 단일성을 상상할 수도 없다. 또한 곧바로 단일성을 상기하지 않고서는 삼위를 분별할 수도 없다.” (I.13.17) – 분할이 아닌 사역을 통해 나타난 구별
- 삼위의 구별:
‘성부는 일의 시초가 되시고, 만물의 기초와 원천이 되시며 성자는 지혜요 계획이시며 만물을 질서 있게 배열하는 분이라고 하였으며,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그와 같은 모든 행동의 능력과 효력이 돌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I.13.18) |
- 삼위의 관계:
‘성자는 성부와 더불어 똑 같은 영을 소유하시기 때문에, 성자가 성부와 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따라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은 성부 성자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왜냐하면, 그 모든 신적 성품이 각 실재 안에서 이해되며 따라서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I.13.19) |
l 쏘시니안파와 알미니안파의 삼위일체 교리
a. 소시니안주의 (Socinians): 16세기 이탈리아 출신 두 신학자의 주장
- 이성적인 판단으로 삼위일체를 정의하려 함
- 아들의 신성과 영원 전 존재까지 부정: 아들은 탁월하게 성령을 받았으나 인간에 불과하다.
- 성령의 신성 부정: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에게 흘러 나오는 덕이나 힘’
- 현대 유티테리안과 현대신학의 선구자
b. 알미니안파 (Arminians): 17세기 화란 지역의 비주류 신학
- 삼위를 동등하게 보면 삼신론에 빠짐으로 다른 뒤 위를 성부다 뒤진 것으로 이해해 한다고 주장
8. 현대 신학에서의 삼위일체 교리
l 18-19세기 삼위일체 교리: 자유주의적 신학의 삼위일체 이해가 대두
a. Samuel Clarke (1675-1729)과 영국의 이신론자들
- 아리우스적인 종속론에 근접함, Unitarian적 성격의 삼위일체 이론
- 성부의 임의적 의지적 행동에 의해 성자가 모든 존재와 속성을 부여 받았다고 주장
b. 미국 초기 New England 합리주의자들
- 합리주의와 이신론의 영향으로 성자의 영원발생 교리를 거부함
- 에몬스: ‘영원한 넌센스’ / 모세 스튜어트 – ‘언어의 명백한 모순
- 토마스 제퍼슨:
‘우리는 지금 셋이 하나이고 하나가 셋이라고 하며 이해할 수 없고 조리 없는 말을 하는 삼위일체 신봉자의 논리를 배격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인위적인 교리를 없애버리고 그 배후에 있는 예수의 단순한 구조를 볼 수 있다… 순수하고 단순한 교리로 돌아갈 때 그는 바로 나타날 것이고, 우리는 진실하고 훌륭하게 그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c. 독일의 Friedrich Schleiermarcher (1768-1834)와 자유주의자들
- 삼위일체론을 기독교 신학의 부산물로 여김
- 사모사타 바울의 역동적 이해를 따름
- Ritschl, Hegel등도 유사한 입장
l 20세기 신학에서의 삼위일체 교리
a. Karl Barth (1886-1968)
- 삼위일체 교리의 출발점: 교리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그의 현존을 듣는 것
-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 계시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구별 =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계시한다.’
- 성령: 죄인인 인간이 아들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을 자기 계시로 인식하는 하는 신적인 계시
- 강점: 삼위일체론의 신학적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킴
- 약점: 양태론적 경향 - 계시의 세 가지 계기가 상이한 존재론적인 양태인가?
b. Karl Rahner (1904-1984)
- 경륜적 삼위일체론(Economic Trinity)와 내재적 삼위일체론(Immanent Trinity)의 구별하여 이 두 가지를 동일시하는 입장
경륜적: 하나님이 역사 안에서 계시를 통해 알려지신 방식 내재적: 하나님이 내적으로 존재하는 방식 내재적 삼위일체론은 경륜적 삼위일체의 경험을 조직 개념화 |
-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표현은 구원의 신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인간적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과 일치함: ‘삼위일체로 나타난 하나님은 삼위일체이다.’
- 강점: 종전까지의 로마 가톨릭 신학의 내재적 경향을 강하게 수정하는 입장
- 약점: 성경에 기반하기는 보다는 철학적 신학적 사유에 기반한 설명
c. 기타 중요한 현대 신학자들의 삼위일체론
- Jurgen Moltmann
- Robert Jenson
- John D. Zizioulas
- Colin E. Gunton
- T. F. Torrance
[출처] 삼위일체 교리의 발전|작성자 더로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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