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신학 자유주의 신학!

칼 바르트의 신학 사상

하나님아들 2023. 8. 28. 20:59

칼 바르트의 신학 사상              

 
Ⅰ. 서 론
칼 바르트는 (Karl Barth,1886-1968)는 자유주의 신학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으나 그는 자유주의 신학과 갈라지는 큰 계기를 창시한 사람이다. 쉴라이에르마허, 리츨, 하르낙, 트뢸취, 헤르만 등에 의해서 대표되는 19세기 독일 자유주의 신학은 18세기의 계몽주의, 19세기의 낭만주의를 유산으로하여 인간 중심의 신학 내지는 내재주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의 감정,인간의 가치, 인간의 역사, 인간의 종교철학, 인간의 현실성 속에 있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성과 자유성이 상실되었던 것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에 정면도전하여 반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저 유명한 "로마서 주석"이다. 그는 인간의 종교나 윤리 행위를 근거로 하는 인간 중심적인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 말씀의 신학을 수립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모든 진정한 의미의 신학은 인간을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A. 소년 시절과 신하교 입학 동기
바르트는 1886년 5월10일 스위스 바젤(Basel)에서 개혁교회 목사이며 신학자인 아버지와 어머니 안나 사르토르우스사이에 태어난 3남2녀 중의 장남이었다. 교회의 신앙고백은 단순히 무조건 긍정하며 인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체험'(Erlebnis)햐야 된다고 생각하여 신학교에 입학한 동기가 되었다.
B. 신학교 입학
스위스 베른 대하교 입학.- 칸트의 "실천이성비판"과 쉴라이에르마허의 "종교 강화"등의 '경험신학'에 더 관심. 베르린대학 3학기 신학공부.- 궁켈의 강의 심취. 튀빙겐대학교로 옮김-블룸하르트를 방문하는 것이 유일한 가치. 마르부르크 대학교로 옮김-세학기 동안 불트만과 나란히 헤르만의 강의를 들음. 그의 강의는 '체험신학'이었다. 그에 의하면 종교는 하나의 체험이므로 신은 인간의 현실 속에 체험된다고 했다.
C. 목회활동과 종교 사회주의 운동
스위스 아르가우주에 있는 자펜빌이라는 노동자 농민 마을에서 목회를 통해 '사회문제', '노동문제'로 도전받음. 그의 친구이며 목회자인 투르나이젠의 권유로 쿠터, 라기츠, 블룸하르트 등과 함께 '종교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듬. 그는 사회주의 노력 속에서 '하나님의 현실성' 즉 '하나님의 흔적을 봄. 이때 바르트는 "예수를 사회적 운동으로, 사회적 운동을 현대의 예수"로 파악.
D. "로마서 주석"과 새로운 신학 운동
로마서 주석 제 1판(1919)- 신학적 자유화의 투쟁으로 우주적 종말론, 제 2판(1922)- 이를 더욱 발전시켜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는 초월적 종말론을 잠적적으로 유도. 서술 방식은 변증법적. 그러나 그것은 변증법적 방법의 뿌리를 헤겔에서 찾지 않고,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는 종교개혁자들과 바울에게서 찾음. 특히 "시간과 영원의 무한한 질적인 차이", "하나님은 하늘에, 너 인간은 땅에"를 말하는 키에르케고르의 용어를 빌려 보다 강한 변증법적 서술로 이끌어 나감. "로마서 주석"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엄숙한 심판, 어둠 속을 꿰뚫고 들어오는 빛과 같이 전 역사에 대해 내려지는 심판자의 모습.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Nein), 그것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긍정(Ja), 곧 구원이 된다. 한마디로 "로마서 주석"은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했던 "오직 은총으로만", "오직 그리스도만"의 재현.
그러나 이 시기에 바르트에게 있어서 강조점은 초월, 간격, 부정(Nein)에 있었다. 그것이 그처럼 단호한 부정이었던 것은 19C 백년 동안 굳게 깔려 있는 낙관주의적인 신학의 이상주의 터전을 깨드려 부수기 위해서 였다."로마서 주석"은 바로 인간의 행위를 종말론적으로 심판하는 것이며, 에에 대한 부정이었다. 이 부정아래 인간의 전 실존과 역사는 뿌리 채 흔들리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위기'는 가장 깊은 곳에서 '심판'을 의미한다. 이러한 '위기 의식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신학을 '위기의 신학',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1932년 영역판)에 대한 서언에서 자신의 신학을 변증법적 신학, 위기의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학의 본질을 왜곡하기 쉽다고 경고한다.
E. 교수 생활과 "바르멘 고백 선언"
바르트는 다만 부닥쳐오는 상황에 압도되어 "로마서 주석"을 쓰게 되었고, 그책의 출판으로 무명의 시골 목사가 대학교수가 됨. 1921년 독일 괴팅겐 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됨. 1924년 3권의 책 출간.- '죽은자의 부활',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 투르나이젠과 공동설교집 '창조의 영이여 오소서'. 그리스도 교의학(1927), 신학과 교회(1928), 안셀무스 연구 '지성을 질문하는 신앙'(1931)출판.
바르트가 나치 정권에 항의하게 된 근본적 이유는 단순히 정치적 의미가 아니라, 거기서 이미 신학적 물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나치스 히틀러를 '제국주의'나 '인간의 자기 영광'의 범주에서가 아니고 이단과 우상의 범주로 간주. 1933년 친구 투르나이젠과 함께 "오늘의 신학적 실존"이라는 잡지 발간 - 나치스 히틀러 의 위험 경고,교회의 각성 요구. 그 항거 운동은 1934년 5월 27-31일에 바르멘에서 "바르멘 고백 선언"과 더불어 '고백 교회'의 탄생으로 이어짐. 바르멘 고백 선언은 독일 복음주의 교회의 지성적 승리요, 신학의 과시였다. 히틀러에 정면 도전을 위해 '독일 사민당'에 입당.1935년 독일에서 추방.
F. 독일에서 추방후 강연과 강의
1935년 10월 독일 바르멘에서 강연- "복음과 율법". 루터를 따르는 독일 교회를 생각하며 "율법과 복음"을 말한 루터의 논문을 "복음과 율법"으로 순서를 바꿈으로 루터와 루터교에대한 중요한 교정을 가함. "교회와 국가"문제에 대한 주석은 '루터의 두왕국론'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그는 루터의 두왕국론의 교리는 교회의 정치적 정숙주의의 뿌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혼동될 수 없다. 교회는 국가에 종속될 수 없고 오히려 능동적이며 책임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1937-1938년에 스코틀랜드 에버딘 대학교에서 "스콜틀랜드 신앙고백"에 대한 신학적 해설을 하면서 강연- 어떻게 이 신앙고백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계시의 빛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영광'이 연결될 수 있는지를 갈파했다.
G. 냉전 체제와 바르트의 체제 비판
바르트는 독일 교회를 향하여 여러 가지 충고와 경고를 하면서 갱생의 변화를 촉구.1946년부터 다시 독일 교단에 서서 전후 낙망과 절망에 헤매는 젊은 세대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쳤다. 바르트가 본 것은 반공주의 얼룩진 서구의 기독교가 동구의 무신론보다 휠씬 더 교활하고 독기가 서려 있다고 갈파. 바르트는 정치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 좌경 신학자 였다. 왜냐하면 그가 나치 국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는 달리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진지한 무신사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 그러나 그의 신학적 관점은 분명히 '하나님의 신학'이다.
Ⅱ. 하나님 말씀의 신학 으로서 교회 교의학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나타난 하나님 말씀을 출발점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혁신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신학이 오늘의 상황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의 난관을 극복해야만 했다.
첫째, 19세기 문화 개신교 및 그와 같은 인간학적 신학에 대한 극복이다. 즉 19세기 신학은 현대 정신과 타협한 나머지 기독교의 독자성 절대성이 제거되고 상대화되어 힘없는 인간의 종교로 전락한 것을 간파한다. 그래서 그는 내재 속에 가려진 하나님의 주권, 초월 , 하나님과 인간의 거리 등을 염두에 두는 신학을 생각했다. (계시의 신학)
둘째, 보수적 정통주의에 대한 극복이다.
성서의 축자영감설을 고집하는 교회주의자들을 극복하고 살아있는 오늘의 하나님, 즉 계시의 현실성을 선포하는 문제를 포착하는 신학을 생각했다. (선포의 신학)
셋째, 하나님의 교회와 교황의 권위로 대치된 교권주의와 자연신학적인 가톨릭 사상에 대한 비판이다. 바르트는 교회의 참된 의미, 즉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제자직을 말하는 교회관을
정립해야 했다. (교회의 신학)
바르트는 교회 교의학 제 1권 제1부와 2부에서 교의학의 대상 과제 방법을 취급하는 서론격으
로 하나님의 말씀론을 신학의 과제로서 제시하고 있다.
# 교회 교의학 전체 프로그램의 도식화(서론)
A.하나님 말씀론
1. 교의학의 표준으로서 하나님 말씀론
하나님 말씀의 세형태
1) 선포된 말씀 2) 기록된 말씀 3) 계시된 말씀
2. 하나님의 계시
1) 삼위일체 하나님
'창조자로서 하나님' '화해자로서 하나님' '구원자로서 하나님'
2) 말씀의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 계시의 객관적 현실성과 가능성
3) 성령의 부음
성령- 계시의 주관적 현실성과 가능성
3. 성서
성서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 이다. 교회의 권위는 '말씀의 권위'이지 결코 교회 자 체로서는 권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바르트는 교회 자체로부터 오는 구원론을 비판했다.
4. 교회의 선포
말씀의 최종 목표는 선포에 있다. 선포는 '교회의 위탁'이다. 교회의 선포가 있는 곳에 윤리가
있고 삶이 태동한다. 따라서 선포는 우리의 삶의 현장과 마주치는 현실이다.
* 바르트의 ' 하나님 말씀의 신학'의 독특성은 하나님 말씀이 그의 신학의 중심이고 그 하나 님 말씀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중심 속에서 더구체적으로는 삼위일체론적으로 취급했다 는 점이다. 방법론적으로 그의 신학은 변증론적 원칙 과 신앙의 유비위에서 케리그마적 관점으로 쓰여진 것이다.
* 그의 교의학은 어떤 체계나 사변적인 서술이었다기 보다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봉사와 충 성의 결과로서 ' 교회에 봉사하는 학문 '이었다.
* 교회 교의학 구조 (13권)
하나님의 말씀론 프롤레고메나 (2권), 신론 (2권), 창조론(4권), 화해론(5권)
B. ' 하나님의 인간성 ' 과 대화의 신학
" 하나님 말씀의 인간성 " 이라는 강연에서 바르트는 신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성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의 신성은 인간성으로 둘러 싸여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상대자로서 하나님이요, 언약을 수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인간 안에서 인간과 더불어 인간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인간의 하나님,즉 대화의 하나님이다. 이제 바르트는 " 로마서 주석 "에서 처럼 '하나님 자체 '나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 절대 타자'로서 하나님을 말하지도 않고 예수 그리스도 만을 말하는 '계시 실증주의자'로 오해 받지도 않는다. 이제 바르트는 하나님의 인간됨 속에서 "하나님은 인간이다. "라고 까지 말한다. 하나님의 인간성 강조는 그의 교의학 '화해론'에서 '그리스도의 모방' 과 '제자직에로의 부름' 등의 윤리 속에서 더욱 구체화 되어 종교 개혁자들의 오직 신앙으로 , 오직 은총만의 전통을 이으면서 보다 구체적인 현실적인 삶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종교개혁자들을 넘어선다.
1968 년 슐라이어 마허 탄생 200 주년을 기념하는 '슐라이어 마허 선집' 뒷자리 말의 형식 속 에서 19세기 신학의 아쉬운 점을 지적하면서 슐라이어 마허가 성령의 신학에 가능성을 두지 않 았음을 지적했다. 바르트는 슐라이어 마허를 신학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영웅이라고 말하지만 그를 추종하지는 않았다. 바르트는 18C 합리주의 , 슐라이어 마허 , 그리고 불트만의 비신화화 에 이르는 모든 신학들을 십계명 제 3계명의 정신에 위배되는 신학으로 규정했고 19세기 문화 개신교는 신앙고백의 제 3 조항 즉 성령의 조항을 소홀히 한 것으로 비판했다.그래서 그는 말년 에 교회 교의학 제4권 1200 페이지의 분량을 "성령론적으로 " 기술했다. 바르트는 생의 후반부에서 성령론적 관점에서 인간과 문화에 대해서 긍정에 긍정을 더하는 긍정적 신학을 말했다. 바르트는 그가 처한 종교적 정치적 상황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자신의 신학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은 상황 신학 이 아니라 텍스트 신학 으로서 상황에 민감한 신학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 바르트의 신학의 주제와 특색
C. 성서 이해
바르트는 성서는 전체로서 인간의 문서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면서 과거의 삶의 정 황을 넘어서 각 시대의 삶의 정황 에 선포된 사실 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 로 이해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중적 구조 즉 선포된 말씀 (설교) - 기록된 말씀 (성서) - 계시된 말씀 (예수 그리스도) 가지는 것으로 파악했다. 바르트는 정통주의의 성서 축자 영감과는 달리 성서 즉 하나님 말씀을 강조하는 ' 성서 축자 영감론 '을 말했다.
D. 계시 이해
바르트에게 있어서 계시는 성육신의 사건속에서 단 한 번에 구체화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계시에 대한 이해다. 즉 계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 자신 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은 파괴될 수 없는 통일성 이며 동시에 계시자 , 계시자 , 계시, 계 시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시의 삼위일체적 이해가 바르트 신학의 특징이다. 특히 바르트는 교회 교의학에서 초기 변증법적 신학의 계시의 초월적 의미 보다는 긍정과 하나님의 은총을 강 조한 '계시 중심의 신학' 으로의 새로운 전환이 있었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계시는 '하나님의 말 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되어진 한 사건 이며 지금도 그 안에서 사건이 되고 있는 선포로 이해된 것이다.
E. 예정론 : 은총의 선택
바르트는 바울이 강조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을 강조한다. 그는 예정이란 말 대신에 '은총의 선택'을 사용했다. 그에 의하면 이중 예정은 두부류의 인간 집단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 스도 의 선택과 관련해서 일어났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선택함으로써 인간을 위해서는 긍정 ,자신을 위해서는 부정을 결정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은 하나님의 자유와 은총의 승 리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에서 소홀히 한 은총과 예정을 다시 신학적으로 부활 시켰다.
F. 동정녀 탄생
바르트는 동정녀 탄생을 우리가 긍정할 수 있는 기쁨의 교리라고 본다.그는 동정녀 탄생을 부인 하는 것은 계시의 표적을 제거하는 자연신학적 시도로 보면서, 또한 가톨릭 교회의 마리아 숭배론을 비판했다.
G. 교회론과 윤리
바르트는 교회교의학에서 교회론을 '성령론적' , ' 윤리적'으로 다룬다. 교회는 '성령의 오심' 속 에서 1. 모이는 것 2.교화시키는 것 3.파견 시키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그는 "교회 밖에는 구 원이 없다."는 복음의 전통을 받으며 가톨릭의 교회 절대주의 나 자유주의의 교회와 세상과의 조화를 말한 것을 배격했다. 바르트에게서 '윤리'는 기독교인으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다고 하면서 복종 없는 신앙이나 신앙 없는 복종은 '싸구려 은혜' 나 착각적인 '행동주의'를 야기시킨 다고 경고했다.
H. 하나님의 정의 문제
바르트는 하나님의 정의문제를 다룰 때 '악'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다.그에 의하면 악 혹은 무 는 하나님도 아니고 피조물도 아니다 . 그것은 하나님과 피조물이 존재하는 방식이 아닌 제3의 방식으로 즉 무로서 ,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존재한다. 악은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은 세계로 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세계다. 십자가는 악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말하며 부활은 십자가에서 일어나 이 승리를 증명한다. 악은 피조물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등장하는데 그것은 두려워할 악 이 아니라 다만 위험하게 보이는 권세일 뿐이다.
Ⅲ. 정리를 위한 결론
칼 바르트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근본주의적 정통주의 신학을 뒤엎고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
적 신학에 기초하는 말씀의 신학을 수립하였다. 그의 신학은 선포와 설교를 위한 신학, 즉 교회에 봉사하는 신학이다. 그는 양차 세계대전의 위기와 사회주의 운동의 격류속에서 휘말리지 않고 성서안에 있는 신기한 세계와 그메세지를 발견하여 복음의 놀라움과 기적의 논리 속에서 열정을 가지고 신학적 해명을 착수했다.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로 인간을 인간의 자리로 돌 려 놓은 기수였다. 그는 자신의 신학을 신정통주의신학이라고 불리는 것까지도 꺼려했고 , '하나 님 말씀의 신학' 이라고 거듭 말했을 뿐이다.그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강조하는 '교 회의 신학'이기 때문에 상황신학이라 불리는 현실 참여 신학에 새로운 지평을 제공할 것이다.

  #. 칼 바르트의 신학사상의 강조점 변화 도표

19C 자유주의 '로마서주석'1919,1922 '교회교의학'1932 '하나님의 인간성'1956
문화개신교 변증법적 신학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 대화의 신학
쉴라이에르마허,리츨, 하르낙,헤르만 제1차세계대전 빌헬름2세의 전쟁
정책에 93명 서명
안셀무스 연구 "쉬라이에르마허선집" 의 뒷자리 말
신학 수업
목회
"하나님은 하늘에 인 간은 땅에" "그리스도 교의학"을
"교회교의학"으로
"대화"의 삶
하나님이 인간의 현실 성속에 Nein 하나님과 인간의 무한한 거리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접촉점
성령의 신학에서
인간 현실 강조
인간론적 신중심적 예수그리스도 중심적 성령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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