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
(remnant / shaar / sheerit / leimma / yatal / hypoleimma / palat /malat / sharid / aharit / loipos / kataloipos / hypoleipo)
I. 남은 자
무서운 재난에서 살아남은 공동체의 한 무리를 가리키거나 공동체의 가능한 미래의 생존이 거기에 달려 있는 한 무리를 가리킨다.
수 10:40, 대하 20:23-24, 렘 50:26과 같은 구절들은 세속적 영역에 있어서 남은 자조차 하나도 없게 하는 완전한 파멸의 원리를 설명한다. 그리고 창32:7-8, 삿 21:16-17과 같은 구절들은 공동체의 미래의 생존의 책임을 짊어진 자로서의 '남은 자' 의미를 설명한다.
이 용어의 신학적 용법은 죄악에 가득차고 비신앙적인 모든 것에 대한 거룩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언급이 있는 곳에서 발전된다. 하지만 이 용어의 신학적 용법은 그의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언제나 신실하시며 남은 자로 심판을 피하도록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동정적인 긍휼이 인식되고 있는 곳에서도 발견된다.
따라서 '남은 자'란 개념은 파괴적 뜻 뿐만 아니라 건설적 의미도 포함한다. 이 개념은 지나간 심판을 가리킨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총에 의한 동정적인 심판의 자세도 가리킨다.
그 개념은 환경에 따라 각각 다르게 강조될 수 있다. 사 17:6은 '남은 자'란 어휘를 위협이란 의미로서의 풍자적 사용을 보여주며 미 5:7-8은 구원의 선포 안에 있는, 역설적으로 과장된 그것의 약속적 특징을 보여준다. 남은 자에 대한 성서적 개념의 역사 안에는 초기의 설화 진술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예언자들과 묵시문학적 저술가들을 경유하여 롬 9:11에서의 바울에 이르기까지 구원신앙의 긴 발자취가 반영되고 있다. 심지어 J문서의 저자조차도 약속의 지참인들인 남은 자의 파괴적인 신적 심판으로부터의 자비로운 구출에 대해 말한다.
홍수 시에 노아가 그러했고(창 6:5-8, 7:1,23), 소돔 멸망 시에 롯이 그러했다(18:17-33, 19:1-29; 참조. 45:7).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는 이스라엘 안에서 야훼에게 신실한 7천명의 남은 자의 생존에의 신념을 드러내 준다(왕상 19:17-18).
아모스는 그의 적대자들이 종말론적 구원의 특징을 지닌 통속적인 남은 자 관념을 지니고 있다고 가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적대자들의 반대에 직면하여 모든 자기 신뢰적인 남은 자 희망을 풍자적으로 취급하거나 또는 맹렬하게 공격하는 데서 엿볼 수 있다(암 3:12, 5:3, 6:9, 9:1). 이스라엘은 단순하게 자신을 남은 자와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고 속에서 또한 야훼를 구하는 자들과 선한 자들에 대해서는 심판 가운데서도 남은 자로 생존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5:4,6,14-15). 물론 아모스의 모든 자기 확신은 '혹시'(5:15)라는 말에 의하여 특징지어진다. 이는 구원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총에 기인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남은 자 관념은 호세아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반면, 이사야(7:3)와 그의 제자들에게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4:2 이하, 10:22, 11:10-16,
28:5, 37:32). 아모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의 관념은 무엇보다도 먼저 심판의 선포에 속한다(10:19, 17:5-6, 30:17; 참조. 1:8).
하지만 이사야의 장남에게 주어진 이름인 스알야숩(Shear-jashub)은 "남은 자가 하나님께 돌아오리라는 사실에 대한 선포이며 보증이다. 이 돌아옴의 선행 조건은 회개와 믿음이다(7:9).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그러나 그 남은 자를 돌아오도록 허락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1:9).
이사야는 어느 곳에서도 그 남은 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 이사야 자신(6:7)과 그의 자녀들 및 제자들(8:18), 그리고 시온에서 피난처를 찾는 "그의 곤고한 백성"(14:32)이 포함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남은 자에 대한 기대는 스바냐에게서 충분히 발전되었다. 그는 남은 자를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과 동일시하였고, 그러한 사실은 그의 권고 내용(2:3), 즉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와 또한 그의 약속의 내용(3:12-13), 즉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희 중에 남겨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에 나타나 있다.
이사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바냐에게 있어서도 남은 자를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고, 이로써 의가 재건된다(습 3:13). 남은 자는 영적 이스라엘로서 정치적 이스라엘과 명백히 구별되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전체적 심판(모든 사람들이 남김없이 심판을 받아 죽으리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에스겔의 경우 그 자녀들 중 남은 자가 있음을 말한다)에 대한 그들의 선포에서 전통적인 남은 자 개념에 대한 주장을 포기한다(렘 8:3, 15:1-3, 겔 5:1-2, 15:7). 무화과 두 광주리의 환상에서(렘 24장)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에 대한 최종적 심판을 선포하고(8절), 한편 유다에서 잡혀간 자들이 이스라엘 땅에 다시 심겨져 새롭게 세워질 것이라고 선포한다(5절).
유다 백성의 역사 속에서 그 연속성을 여전히 매우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남은 자'라는 용어가, 예레미야에게서 유다 백성들엑 분명히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비록 남은 자와 관련된 사상들, 즉 유다의 멸망 후에야 비로소 성취되리라는 남은 자 사상들이 있긴 하지만)은 중요하다.
무자비한 심판의 선포를 하면서 스스로 괴로워하는 에스겔의 경우(겔 9:8, 11:13), 예루살렘의 재앙에서 도피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적합한 것이었음을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한다(14:21-23).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에스겔도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의 남은 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11:14-20). 그러나 사 46:3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
게 '남은 자'라는 용어를 적용하지는 않는다.
포로 후기의 공동체는 그 자체를 남겨진 남은 자라고 부르고 있다(학 1:12-14, 2:2, 슥 8:6,11-12, 스 9:8,14-15, 느 1:2-3). 더욱이 남은 자는 예루살렘 대재난 후의 시대로부터의 무수한 구원에 대한 약속들, 곧 이 이상은 정확하게 연대를 추정할 수 없는 약속들 속에서 미래의 강성함을 계승할 것으로 언급된다(이사야서에 첨가된 부분들-4:2, 10:20-22, 11:11-16, 28:5-6, 37:32; 예레미야서에 첨가된 부분들-23:3, 31:7; 오바댜서에 첨가된 부분-17절; 미가서에 첨가된 부분-2:12-13, 5:7-8, 7:18; 스바냐서에 첨가된 부분들-2:7,9; 첨가된 부분들이란 원래의 책에 포로 후기의 불확실한 시기들에 첨가된 요소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부분은 독립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슥 9:7, 14:16에서 약속은 이방민족과 그들으 남은 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후기 유대교 묵시문학에 나타난 남은 자 관념의 연속성에 관한 문제는 예를 들어 에녹 83:8,에드하 12:34, 13:48, 시바룩 40:2, 시빌 5:384 등을 참조하라. 신약에서 남은 자 관념은 롬 9-11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구원 과정에 대한 바울의 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참조. 9:27, 11:5).
II. 최근의 연구
남은 자는 종말론과 미래에 대한 희망에서 핵심적 동기이다. 히브리어.아람어.희랍어의 이 용어들은 남은 자 관념의 다양성을 나타내며, 이 주제는 또한 좀더 폭넓은 어의 영역에 속하는 말들에서도 나타난다.
1. 구약에서의 용어법
여섯 개의 히브리어 어근의 파생어들이 540번 사용되면서 구약의 남은 자의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1) shaar의 파생어들:
이 어근(히브리어로 266회, 아람어로 10회 사용됨)은 동족 언어들에서도 발견된다. 히브리어 동사형들은 '남아 있다'(칼), '남겨지다, 뒤에 남다'(니팔), 그리고 '남겨 두다, 떼어놓다'(히필) 등을 의미한다. 명사형 sheal과 sheerit는 '남은 자, 잔류자, 잔여, 잔재'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이 용어의 여러가지 형태들은, 남아 있는 부분을 뜻하거나(창 7:23, 사11:11, 단 10:8) , 또는 작은 부분이나 절반, 혹은 큰 부분을 뗴어낸 후의 나머지를 가리킨다(출 10:5, 사 4:3, 17:6).
그러나 sheerit(남은 자)는 어느 부분도 상실되지 않은 전체를 의미하는 것 같다(창 45:7). shaar은 구약에서 26회 사용된 가운데 이사야가 그의 남은 자 신학에서 12회에 걸쳐 즐겨 사용한 단어이다(10:19-21, 11:11,16). 어근 shaar의 파생어들은 때에 따라서 '무가치함'(신 3:11), '작음'(신 4:27, 렘 8:3), 그리고 '무의미함' 또는 나머지의 완전한 상실'(창 47:18, 출 8:31)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말은 강한 미래지향적인 면을 나타내는 말로서, 그 규모에 관계없이 남은 자의 갱생에 대한 본래적인 가능성을 강조한 말이다.
(2) palat의 파생어들:
이 히브리어 어근(80회 사용됨)도 역시 같은 어족의 여러가지 셈어들에 나타난다. 이 어근에서 파생된 히브리어 동사형들은 '도피하다, 도망하다'(칼), '구출하다, 안전하게 하다'(피엘, 히필) 등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명사형 palit 혹은 palet는 '도피자.도망자'를, peletah(가끔 shaar에서 파생된 명사들과 대동소이하다)는 '도피.구출'(창 45:7, 삼하 15:14)의 의미를 나타낸다. 실제 인간을 가리킬 때 palat의 파생어들은 주로 '도피한
남은 자'를 가리켰다(창 32:8, 삿 21:17, 사 4:2-3). 때때로 열 사람 중 한 사람 정도의 구출 또는 전체의 손실이라는 순전히 부정적인 면이 표현되기도 했다(암 9:1, 렘 42:17).
그러나 대체로 이스라엘의 '도피한 남은 자'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과 계속적인 생존에 대한 위협에서 구출받는 경험을 했다(사 37:31-32=왕하 19:30-31, 겔 6:8-10). 하나님의 백성들 중 일부는 야훼의 최후 심판을 면하게 될 것이며(사 4:2, 욜 2:32), 심지어 믿음있는 이방인들까지 이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사 66:19).
(3) malat의 파생어들:
이 어근은 palat에서 발전된 용어로서 89회 사용되었고, 오직 동사형으로만 사용되며 '도피하다, 몸의 안전을 도모하다, 안전을 구하다'(니팔)와 '구출하다, 구원하다, 도피하게 하다'(피엘)의 뜻을 나타내었다. 어떤 문맥들은 안전하게 도피하는 것이 불가능함(사 20:6)과, 따라서 전체가 멸망되었음(삿 3:29, 렘 32:3-4)을 보여 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맥들에서는 그 도피가 성공적이었고(창 19:17-22, 렘 51:6), 생명이 건져졌다(왕상 1:12 렘 51:45).
마지막 때에, 야훼께서는 도피한 자들(사 49:24-25)과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욜 2:32), 곧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모든 자들(단 12:1;참조. 사 4:2-3)을 구원하실 것이다.
(4) yatal의 파생어들:
이 어근(동족어에서도 발견됨)의 248 파생어 형태들 중에서 적어도 110번의 용법이 남은 자 관념을 내포했다. 이 중 동사형은'남겨지다, 처지다'(니팔), '(뒤에) 남겨 두다, 남게 하다, 남기다'(히필)의 의미를 지녔고, 명사형들은 '잔류자, 잔여, 남은 자' 등의 의미를 나타냈다. 여러가지 변화형들은 작은 한부분(삿 8:10, 삼하 8:4), 절반(출 28:10, 사 44:19) 혹은 보다 큰 부분(레 14:18, 대하 31:10, 삿 7:6, 삼상 15:15)을 의미한다.
'그 남은 백성'이란 구절(yetel haam=shear haam, 느 10:28; 11:1, 그리고 sheerit haam, 학 1:12; 느 7:72)은 예루살렘의 남은 자와 승리를 맛볼 미래의 남은 자를 가리켰다(습 2:9, 슥 14:2). '잔류자'는 장차 씨족(창 44:20), 왕조(삿 9:5) 또는 하나님께 신실한 자들(왕상 19:10,14)을 이어갈 수 있는 잠재력을 소유했고, 또한 재생과 지속적이고 풍성한 생을 위한 요소가 들어 있는 새로운 전체로 구성되어 있다.
(5) sharid와 aharit:
히브리어 명사 sharid(28회 사용됨)는 전쟁의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가리킨다(수 10:20, 신 3:3).
마지막으로 히브리어 명사 aharit는 민 24:20(한글 개역은 '종말', 공동번역은 '결국'으로 번역함), 암 4:2, 9:1, 겔 23:25에서 분명히 '남은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렘 31:17에서도 마찬가지의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신약에서의 용어법
loipos라는 형용사는 명사적 의미로 사용될 때 '다른 사람들'(눅 24:9, 롬 1:13)이라는 의미를 나타냈고, 좀더 엄밀한 의미에서는 마음이 굳어진 자들(눅 8:10), 믿지 않는 자들(막 16:13), 신실하지 못하게 행동하는 자들(갈 2:13), 그리고 회개치 않는 자들(계 9:20)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될 수 있다.
행 15:17(=칠십인 역의 암 9:12)에서 kataloipoi는 '남은 자들'을 가리켰고 롬 11:3(=왕상 19:10)에서 hypoleipo는 홀로 '남겨진'(남아 있
는) 사람을 가리켰다. 그리고 롬 9:27(=칠십인 역의 사 10:22)에서 hypoleimma란 명사는 '남은 자'를 지적했고, 롬 11:5의 명사 leimma도 '남은 자'를 의미했다.
3. 남은 자 사상의 기원
(1) 고대 근동의 기원
남은 자 관념은 수메르.아카드.히타이트.우가리트.이집트 문화에서의 신화.전설.서사시.예언.기도.찬송.서간문.연대기 등 매우 다양한 문학양식 가운데 나타나 있다. 이 관념은 개인.가족.씨족.부족.군대.국가.전인류와 같은 실재 인간들과 함께 나타났다. 자연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들에서의 매우 다양한 생명의 위협들은 각각의 남은 자 관념의 공동 분모, 즉 인간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 때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갖는 실존적 관심을 강조했다. 남은 자란 말은 갱생과 회복의 본래적 잠재성들을 통한 생명과 지속적인 생존을 의미했다.
남은 자라는 개념은 우주적인 홍수 이야기들에서 최초로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수메르와 바벨론 홍수 전승은 소수의 살아남은 생존자들 속에 인류의 모든 미래가 담겨져 있다고 증언하였다.
(2) 구약의 기원
남은 자에 대한 분명한 언급 중 가장 초기의 언급은 홍수 설화에서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이다(창 7:23). 창세기에 나타난 다른 초기 전승들은 불(18:17-33, 19:16-24), 가족간의 반목(32:8-12), 기근(요셉과 그의 형제들, 43:1-8)에 의한 생명의 위협에 대하
여 말해준다.
최초의 성서 전승들이 남은 자 사상을 생명의 위협들 가운데 배치하고, 따라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관심 속에서 남은 자 사상의 원천을 입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또한 그 전승들이 시초부터 남은 자 사상을 구속사적 입장에서 강력히 강조하여 신학적 구조 속에 삽입시키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구약은 남은 자의 구원과 하나님의 참 백성의 핵심 구성원 사이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나타내며, 또한 하나님의 주도권은 모든 위협과 장애물 및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남은 자라는 주제는 성서적 희망과 종말론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4. 남은 자 사상의 역사
(1) 구약에서의 역사
본 항목에 기록된 내용 참조.
(2) 후기 유대교에서의 역사
쿰란 종파의 계약자들은 그들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멸망시(CD 3.13; 참조. 1QM 13.8)에 하나님의 자비에 의하여 유일하게 진정한 남은 자로서 보호된(CD 2.11; 1QH 6.8; 1QM 14.9) '당신의 백성(이스라엘)의 남은 자'라고 믿었다. 그들은 계약에 의한 약속을 지닌 당시의 유일한 사람들이었고(1QM 14.9; CD 1.4), 그들만이 '새 계약 공동체'(CD 6.19; 19.33-34)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들'(CD 3.12)과 '전 율법'(4QFlor 2.2)을 준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은 남겨두셨다고 믿었다. 그리고 오직 그들의 자손들만이 이 세상에 충만케 될 것으로 생각했다(CD 2.12).
그들의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자들은 '생존하지 못하고'(CD 2.6-7; 참조.19.10; 1QS 5.13; 1QH 6.32), '어두움의 자녀'가 처하게 될 운명에 빠질 것이라고 믿었다(1QM 1.6; 4.2; 14.5; 1QS 4.14; 1QpHab 9.7; 참조. 1QM 2.11; 11.15)
외경의 유대 묵시록들은 독특한 남은 자 신학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위에서 언급된 내용 참조). 랍비사상에서 남은 자 사상은 퇴색되었고, 온 이스라엘이 미래의 세계에 관여하게 될 것으로 여겨졌다(M. Sanh. 10.1).
(3) 신약에서의 역사
1) 세례 요한
심판과 회개에 대한 세례 요한의 외침을 듣고 충실하고 회개한 남은 자들이 모여들었다(마 3: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설교는 보편주의적이었고, 세례에로의 초청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모든 사람에게 제시되었다(마 3:8).
2) 예수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마 1:15)이라는 예수의 메시지는 배타적이고 협소한 남은 자 집단의 형성을 의도한 것이 아니다.
그의 소명은 보편주의자로서의 소명이었으나, 그는 그가 '잃어버린 양'(마 10:6)을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는 것과 또한 오직 '소수'만이(마 7:14) 그의 초청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 '소수'의 무리는 '가난한 자들'(ptochoi, 마 11:5)과 '소자들'(mikroi, 마 10:42)로써 구성되었고, 그들이야말로 신앙의 남은 자로서 간주되어야 할 '택함을 입은'(eklektoi, 마 22:14) 자들이었다. 이 새 공동체를 '남은 자'라고 부른 곳은 복음서에 한 곳도 없다. 이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신학적인 논증에 의하여 악하게 행동한 '남은 자들'(loipoi)라고 불리어졌다(마 22:6, 눅 8:10).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신앙의 남은 자들로 간주되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추수하는 천사들이 이들을 가려낼 것이다(마 13:24-30).
3) 바울
바울은 롬 9-11장에서 남은 자의 문제에 대해 명백히 밝힌다.그는 구약의 구절들(사 10:22-23, 1:9=롬 9:27-29)을 인용함으로써 육신적 이스
라엘의 남은 자만이(롬 9:8, 11:13-24) 구원되고, 믿음을 지닌 이방인들은 새신앙공동체에 접붙여졌다고 가르쳤다. 이 '남은 자'(leimma, 롬 11:5)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현존하는 실재로서(롬 9:24),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롬 11:5) '택하심을 입은 자'(롬 11:7)였다.
따라서 바울에게 있어서의 남은 자는 약속의 이스라엘(롬 9:8), 즉 신앙상의 진정한 영적 이스라엘이었다.
4) 요한계시록
신약의 묵시록에서 형용사 loipos는 사랑과 믿음과 봉사하는 일에 굳게 선 두아디라 교회의 남은 자들에게 적용되었다(계 2:24). 사데
교회는 사실상 죽은 교회였다. 그러나 '남은 바 죽게 된 것'이 강력해질 것으로 기대되었는데(계 3:2), 그 이유는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몇명'이 있기 때문이었다(4절). 계 11:13은 큰 지진 중에서 살아 남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남은 자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결국 용은 여자의 자손 중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울 것이라고 한다(계 12:17). 이 최후의 충성스러운 남은 자는 양같이 생긴 짐승의 극렬한 박해에 저항하여(계 13:11-18) 말탄 자에 의하여 구원되는 한편, 다른 사람들은 묵시적인 전쟁에서 학살당한다(계 19:21).
승리는 결국 최후까지 충실한 남은 자들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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