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와 개혁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完) 종말론에 입각한 하나님나라 신학 이승구 교수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하나님 경륜의 ‘이미’와 ‘아직 아니’구조 계시 왕이신 하나님, 구속된 공동체 개념 제시 ◆ 복음주의적 패러다임 변혁의 주장 1. 스파이크맨의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개혁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요구 고오든 스파이크맨은 <종교개혁적 신학: 교의학을 함에 있어서의 하나의 새로운 범례>에서 아주 의도적으로 개혁파 교의학의 새로운 범례를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전통적 교의학의 분과들(loci)을 성경적 세계관의 창조, 타락, 구속, 극치의 주제에 근거하여 선하신 창조, 죄와 악, 구원의 길, 그리고 극치의 범주들로 대체하기를 제안했다. 스파이크맨의 이런 시도는 매우 신선하고 우리의 동감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는 “개혁파 교의학에 대해 가장 적절한 서론은 기독교 철학이다”는 입장을 너무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가 말하는 기독교 철학은 개혁파 세계관과 신카이퍼주의의 전통에서 발전된 철학이므로 성경에서 그리 크게 벗어났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철학에 근거하여 신학하는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많다 2. 리쳐드 린츠의 구속사에 근거한 신학의 새로운 틀 구성에의 요구 리쳐드 린츠는 구속사적 신학의 틀을 복음주의 신학이 앞으로 취해야 할 신학이라고 복음주의 신학의 서론을 제시한 적이 있다. 린츠는 소위 성경신학, 즉 “특별 계시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 근거한 신학의 틀을 구성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린츠는 신학의 본질을 구속사의 해석으로 본다. 구속의 성취가 하나님의 근본적 과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속사는 유기적으로 진전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구속사적 과거와 구속사적 미래의 빛에서 현재의 상황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린츠는 구약의 역사가 신학적으로 쓰여졌다고 말한다. 즉, 이 역사 기술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다시 언급하는 습관이 있고, 따라서 구약 선지자들에 의하면 역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복음주의자들도 이런 유목적적인 역사 읽기에 관여해야 한다고 린츠는 주장한다. 즉, 성경에 나타난 사건들의 역사성을 밝히는 일에만 노력할 뿐 아니라, 성경이 과거, 현재, 미래의 사건들을 해석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해석적인 틀을 이끌어 냄으로써 과거와 미래에 대한 우리 나름의 해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작업은 현대 독자들을 그 모든 풍성함을 지닌 성경의 플롯 속으로 돌아가게 하여 독자들이 현대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도전하게 되는 이점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린츠는 성경이 인류의 역사를 폭넓게 설명하는 해석적 틀(interpretive matrix)을 제공해 주며, 그 역사 안에서 우리의 역할을 보고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제공해 준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의 해석적 틀(interpretive matrix)도 성경의 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해석적인 틀은 성경 전체이다. 그 모든 유기적 관계를 지닌 정경 전체에 바르게 주목하지 않고서는 신학적 체계가 바르게 세워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발전시키고 있는 린츠는 전통적인 조직신학의 방법을 모두 다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신학의 전통적인 방법은 성경 자료에 대한 주제별 다룸인데 그것은 주해적이며 구속사적 관심을 계속해서 염두에 두고 있을 때에만 바른 것이 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제시하는 구속사적 신학만이 유일하게 바른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3. 종말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요구 1993년에 출판된 한 논문에서 필자는 “신약 성경적 의미의 종말 개념은 우리의 신학이 전체적으로 ‘종말론적인 신학’(eschatological theology)이 되게” 하고, “그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우리의 신학이 전체적으로 ‘하나님 나라 신학’(Kingdom Theology)이 된다”고 하면서 장차 나타날 종말 신학 또는 하나님 나라 신학을 제시한 적이 있다. 즉 종말 신학의 특성을 세 가지로 제시해 볼 수 있다. 첫째, “우리의 신학함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종말론적 사역 이후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의식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즉, “이 종말 신학은 그리스도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의 경륜(oikonomia)의 ‘이미’ 이루어진 것과 ‘아직 아니’ 이루어진 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그 긴장을 드러내면서, 그리스도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 성취를 바라면서 이 ‘이미’와 ‘아직 아니’의 숨은 구조를 드러내며 구약 계시의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신학”이며,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사역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신학”이라고 한다. 둘째, 이 종말 신학은 “상당히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보이나, 이 때의 그리스도 중심성은 루터파적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도 아니고, 바르트 류의 그리스도 일원론(Christo monism)도 아니고, 그런 문제를 극복한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 즉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사역을 전체적으로 드러내는” 삼위일체적 신학일 것이다. 이런 종말신학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날 때 과연 어떤 틀을 갖추고 나타날 것인가? 1) 왕이신 하나님 (God as the King of the Kingdom of God) 여기서는 종래의 신론, 기독론, 성령론에 해당하는 내용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잘 드러내 주는 내용을 진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가져다 주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논의하여 나가되, 이와 비슷한 접근이 가진 문제를 극복하는 식으로 진술됨으로써, 그리스도 사건으로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되, 삼위일체 하나님을 십자가 사건에 가두어 버리는 문제를 제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백성인 인간(Human Beings as the People of God) 이는 전통적 인간론과 구원론을 통합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려고 하셨는지 그 계획과 이에 대한 인간의 반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구원하셔서 그 나라 백성을 삼으시는 과정 전체를 살피게 될 것이다. 3) 왕의 공동체(The Community of the King) 이는 제2권이 아무래도 개인을 중심으로 한 것임에 비해서 그 개개인들이 어떻게 구속된 공동체를 이루어 그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며, 그 나라가 그 극치에 이르기까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아드리오 쾨니히(Adrio Koenig)는 <종말론에서의 그리스도의 가리워짐: 그리스도 중심적 접근을 지향하여>에서 과거의 종말론이 그저 마지막에 될 일들(the last things) 중심이 아니라, 신약성경이 말하는 종말(the last)로서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바라보지 않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어떻게 종말론이 그리스도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를 잘 드러내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종말론 자체가 신약 성경이 말하는 종말(Eschaton)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책이면서, 그 함의상 그리스도 이후에 있는 우리의 존재와 삶 전체를 마지막이신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할 것을 촉구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의 이 책은 종말, 끝이라는 단어를 너무 그리스도와만 연관시키고 있는 문제점도 가진다. 따라서 재림과 그 이후 상황에 대한 관심이 좀 모호하게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 기독론 분야, 특히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한 저술에서 데이비드 웰즈는 그의 결론의 첫 부분에서 “그 안에서 그리스도가 이해되어야만 하는 개념적인 틀은 종말론적 ‘오는 세대’의 개념 틀이다”고 단언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오는 세대’(the age to come)는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그 오는 세대, 즉 하나님 나라(즉 천국)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임하여 와서 그 극치를 향해 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 임하여 와서 진전해 가는 ‘오는 세대’는 “현세대와 연대기적으로는 겹쳐도, 그 성질에 있어서는 현 세대와 본질적으로 불연속적인 세대이다”. 또한 근자에 옥스포드 대학교의 레이디 마가렛 신학 교수(the Lady Margaret Professor of Divinity)로 취임하여 복음주의적 신학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죤 웹스터가 기독교 인간론과 관련해서 이런 주장을 하며, 그것이 신학 전반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시사를 주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는 ‘종말론, 인간론 그리고 후-현대성’이라는 논문에서 기독교 인간론은 두 가지 의미에서 종말론적이라고 한다. 그 하나의 의미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기독교 인간론의 설명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서 유효하게 되고 성령의 사역을 통해 실현되었으며, 기독교적 세례에서 인쳐진 하나님의 중생시키시는 사역이라는 의미에서이다. 이런 의미를 웹스터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한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되어 가는 그 존재이다.” 기독교 인간론이 종말론적이라고 하는 둘째 의미는 기독교 인간론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기독교 인간론의 설명이 명백한 목적론(teleology)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
출처 : 그리스도와 함께
글쓴이 : 나라일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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