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1, 알미니안 주의 자유의지론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더불어 인간의 결단 즉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로봇과 같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 나름대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결단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는 것이다. 요한 웨슬리의 가르침을 보면 하나님께서 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미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준비해 놓으셨다. 미리 정해 놓으신 것이다. 이것을 선행은총이라고 한다. ‘선행은총’이라는 사상은 사실 알미니우스(Arminius)의 주장이다. 그런데 미리 정해 놓은 이 길, 하나님의 은총을 인간이 의지적인 결단으로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직 인간이 부족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이 믿음을 보고 의롭다고 인정(칭의)해주시는 것이다. 1) 알미니안주의의 5 가지 요점 첫째, 예지 선택이다. 하나님은 예지의 능력으로 장차 누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지 아시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결코 지옥에 보낼 자를 미리 선택해 두지 는 않으셨다는 주장이다. 하나님은 신앙과 불신앙을 미리 보시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서 선택하시거나 책망하신다. 둘째, 무제한적 속죄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만인을 위한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선택된 일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적용된다. 비록 믿는 자들만 구원을 받지만,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개인을 위하여 죽으셨다. 셋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만큼만 타락하였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자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성령의 도우심을 떠나 스스로 어떠한 선이나 의를 추구할 수 없지만, 아담의 죄로 인해 결코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거나 영원한 정죄를 선고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넷째, 인간 안에 있는 모든 선과 행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다섯째,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믿음 안에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으며 어떠한 유혹과 시험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나 복음을 떠난 행위로 인해 그 구원을 잃을 수도 있으므로 성경공부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참으로 중생한 모든 사람이 확실하게 믿음 안에서 보호될 지의 여부는 더욱 살펴보아야 할 점이다. 이와 같은 알미니안들의 신앙고백서가 발간되자 여기저기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신학적 문제를 둘러 싼 공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란의 중산층들은 알미니안들을 지지했고, 남부 지역 변두리에 위치한 시민들은 고마우스와 그의 칼빈주의 동료들을 후원했다. 이와 같은 신학적 분립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 되어 화란 국교회(National Church)에 심한 분란을 가져 왔으며 여러 지방에 지역감정을 유발시켰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결국 1617년에는 국내전쟁의 위협을 불러 올 만큼 “알미니안 대 칼빈주의의 논쟁”은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1617년 11월, 국회는 문제 해결을 위해 회의를 소집하였다. 이로써 1618년 돌트회의가 소집 되었고 화란, 영국, 스코트랜드, 독일, 스위스에서 파견된 대표들이 참석하였으며, 알미니안들은 이 계기를 통해 최소한 자신들의 견해가 칼빈주의 신학과 동등한 대우를 받거나 각별한 관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돌트회의는 알미니안들의 이러한 기대와 달리 칼빈주의를 옹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선출된 13명의 알미니안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변호해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돌트회의는 알미니안파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벨직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지지를 보냈다. 신조가 작성되어 개혁교회 교리들의 주요 내용들이 93개 조항으로 천명되었다. 곧이어 300명이 넘는 알미니안파 목사들이 공직 박탈당했고 15명이 구속 수감되었으며 그 외 많은 사람들이 국외 추방을 당했다. 2. 칼빈 주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다 하실 수 있기 때문에 한 인간이 구원받고 저주받는 것조차 다 아시고 계신 것이다.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구원받을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을 미리 예정해 놓으셨다. 결국 구원 사역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칼빈주의 5대 강령 알미니안들의 5개 신학 조항에 대응하는 돌트의 규범(Canon of Dort)은 다음과 같은 칼빈주의의 5대 강령이다. 첫째, 전적 타락이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절대로 자력으로 구원 받지 못한다. 여기에서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전적 타락은 인간이 최고 악(evil)의 상태에 놓여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이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상태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첫 사람이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타락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인격이 손상을 입었고 그들의 죄가 인간의 지, 정, 의에까지 손상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 무조건적 선택이다. 이 교리는 전적 타락 설에 자연스럽게 부합하는 교리이다. 인간이 죽고, 포로가 되며, 눈이 멀었다면 그것을 치료할 방법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위대한 하나님 외에는 없다. 시편 8:3절의 말씀대로 구원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어떤 조건을 보고 선택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롬 9:15), 토기장이는 진흙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롬9:21),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를 예정하사 당신의 아들들로 삼으셨다(엡1:4-5). 하나님의 예지는 인간 자체와 관련이 있는 것이지 인간의 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미리 알고 계신다는 말은 선택하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아모스3: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행위와 선 또는 악을 내다보신 것이 아니라 오직 당신이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자녀로 선택했다는 입장에서 그들을 아신바(선택)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우리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선택 받은 것은 우리가 거룩한 행동을 했거나 우리 스스로가 그리스도를 영접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선택 되었기에 그리스도를 영접 할 수 있는 것이다(엡2;10).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 할 것을 미리 아시고 우리를 선택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 되었기에 믿음을 갖게 될 것을 아시는 것이다(행13:48; 빌1:29; 엡2:8-9). 셋째, 제한된 속죄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입장을 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느 누구 구분 없이 온 인류를 위해 죽은 죽음이라는 것 2) 그리스도는 어느 일부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 3) 그리스도는 일정한 숫자만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 만인 구원론자들은 1)의 견해를 취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만인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온 인류가 다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2)의 견해는 알미니안들의 견해이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잠재성을 가진 자들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주님이 죽으셨으나 그것을 인간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두를 위한 죽음이지만 오직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 한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3)의 견해는 칼빈주의의 입장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신 뜻에 따라 미리 선택하신 얼마간의 죄인들만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만족시키고 그의 의를 선택된 죄인들에게 부어주어 그들이 죄 사함을 받게 하기 위해 죽으심을 당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모든 인류를 위한 죽음이었으나 그 죽음의 효력은 오직 선택 받은 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넷째, 불가항력적 은혜이다. 선택받은 인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거부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 부름에 합당한 자세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것은 곧 복음을 들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거나 예수님에 대한 필요를 꼭 느끼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복음의 부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내적 부름과 외적 부름이다. 외적 부름의 약점은 그것 자체만으로 구원의 역사를 가져 올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곳엔 외적 부름과 동시에 성령님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내적 부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거부할 수 없고 인간에 의해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인간을 향한 거룩한 성령 하나님의 은혜의 부름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성도의 견인이다. 선택받고 중생하여 의로워진 자는 그 믿음에서 실패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끝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성령으로 성화 된 자는 결단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타락하는 일이 없다. 그들은 마지막 구원을 이루는 때까지 견디며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 3.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사이에 논쟁이 되는 성경 몇 구절 1) 요한복음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쫒지 아니하리라”. 2) 요한복음 6:44, 65-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에 다시 살리리라.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3)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함이라” 4) 사도행전 13:49-“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5) 로마서 9:16, 22, 23-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4. 그밖의 증거들 1)칼빈주의의 근거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1∼23)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9:11)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29∼30).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어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3∼6).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갈1:15∼16) 2)알미니안주의 근거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5:1)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 12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2:21) ○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전1:21, 롬10:13)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5. 협력설과 단독설 협력설 :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마련하시지만 그것을 취하느냐 마느냐는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 즉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의 합작이라는 알미니안주의이다. 단독설 : 구원은 하나님께만 달려 있다는 설로 칼빈주의이다. 6. 정리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전적 타락. 자유 의지 인정 안함 무조건 예정(선택) 예지하여 예정(조건적 선택) 제한된 선택 구원 무한 선택 구원 불가항적 은총 가항적 은총 성도의 견인(보호) 성도 보호 불확실 7.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반론 ①반론 : 선택자와 유기자를 미리 정해 놓으셨다는 것은 너무 불공평하다. 또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②반론에 대한 반론 : 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시다. 하나님은 공의를 실천하시기 위해 누군가는 유기자가 되어야 한다. ③반론 : 그렇다면 예수 십자가의 공로는 선택받은 사람만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 되어 유기자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한가? 요한복음 1:12에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다. 특히 절대 예정론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조화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든다. 또 예정의 교리는 인간들로 하여금 숙명론으로 가게 만든다. 8. 한 번 구원받으면 도중에 버림받은 일은 절대 없는가? 1)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음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8)(롬11:29 빌1:6 벧전1:5)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1 3:9)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롬8:33-34)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17:31) ○변역하지 않는 하나님 (말3:6)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어 있고, 한 번 은혜 안에 들어온 사람은 절대로 구원이 취소되거나 열망에 이르지 아니한다(칼빈주의)고 했다. 일단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는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고 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8-29)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지키기로 약속하신 것이다. 그밖에도 신자들에 대한 보증은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난다. “그의 영이 우리를 구속의 날까지 인(印)치셨다.”(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이런 말씀은 아무것도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를 그리스도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증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예수를 믿었다가 불신자로 돌아간 사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인이기를 중단하는 사람들이 참 그리스도인이었는가? 아니면 그들은 애당초부터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요한 1서 2장 19절을 보면 “그들이 우리에게서 떠나갔지만, 그들은 원래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었다면, 우리와 함께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침내, 다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라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은혜에 참여한 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가롯 유다는 처음부터 마귀였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은 일시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타락할 수 있지만 기필코 그들은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2)생명책에서 지움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도중에 상실 될 수도 있다고도 말한다.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시69:28) ○배교하지 말라.(히3:10 요일2: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6:4-6) ○“주여 주여 하는 이마다 천국에 들어갈 자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자라야 한다”고도 말한다. 9. 결론 1)예정론을 두고 하나님이 죄의 창시자가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죄가 예정론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 자신이 죄를 계획하시거나 창출하신 것은 아니라 인간의 죄를 허용하신 데에 불과하다. 오히려 하나님은 공의를 위해서는 죄인들을 심판하셔야 했다. 또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므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불평할 자격조차 없다. 2)가톨릭이나 알미니안파, 루터파 등은 그리스도인이 은총의 상황에서 탈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믿는 사람들도 그냥 놔 버리면 그들은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적극적인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계3:5-6) ○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22) ○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1:10-11) 3) 예정론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은혜를 깨닫게 하는 교리이다. 칼뱅은 절대주권을 말하고, 예지예정은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선택의 권리를 침해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 두 이론 모두 구원은 결국 인간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믿으면 받아주시는)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실케 하는 교리이다. 그러므로 어떤 주장이 되었든 예정론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내가 믿게 된 것이 내 스스로 믿어서 되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믿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신앙인의 겸손일 것이다. ‘예정론과 자유의지론, 둘 중에 어느 쪽이 맞느냐 틀리냐?’라는 질문을 성경의 한쪽만 받아들이고 다른 쪽은 버리겠다는 말과 같다. 성경에는 모두 들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로 시험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둘 다 받아들이는 입장되어야 한다. 인간이 어떻게 정답을 내릴 수가 있겠는가? ※참고 (1) 작정(作定)과 예정 : 예정(豫定)과 흔히 혼동되기 쉬우나, 작정은 만물과 만사(萬事)에 관계하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건들을 미리 정하시는 그의 영원하신 계획과 목적으로, 넓은 범위로는 하나님의 영원한 도모를 의미하는 것이고, 예정은 특별히 선택자와 유기자에 대한 곧 구원(救援)에 관계되는 좁은 범위로서 하나님의 작정을 뜻한다. (2) 타락 전후 선택의 문제에 대한 이론 ①타락 전의 선택 : 하나님께서는 선택자와 유기자를 창세전에 미리 정하시었다. 그리고 이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유기자는 타락해도 그냥 내버려두셨다. ②타락 후의 선택 : 먼저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시었다. 그 후 인간의 타락을 허용하시고, 유기자는 멸망하도록 하시었다. 인간의 타락을 허용하신 이유 :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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