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의 짜임새와 주제
1. 오경이란 이름
성서 66권 가운데 가장 앞에 있는 다섯 권을 가리켜 오경(五經)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것을 모세가 썼거나, 모세가 전한 하나님 뜻이 들어있다는 뜻으로 ‘모세 오경’이라고도 합니다. 사실 이 말은 그리이스 말 펜타테우크(pentateuch)에서 왔습니다. 이는 ‘다섯’을 가리키는 ‘펜타’(penta)와 ‘두루마리를 보관하는 상자’를 뜻하는 ‘테우코스’(teuchos)가 합쳐진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인의 오랜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것은 본디 ‘토라’(Torah)라는 이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토라’ 라는 말은 ‘야라’(yarah)에서 나온 명사인데, 이 말을 우리는 흔히 ‘율법서’라 옮기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뜻은 ‘바른 가르침, 지켜야 할 도리, 교훈, 지침, 방향 제시’(instruction, direction, guidance) 등을 뜻합니다. 동양에서 말하는 ‘도(道)’에 견줄 수 있지요. 그러므로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 오경, 곧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토라는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 가르침, 그리고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가르치는 책입니다. 구약성서의 후기 문헌들이 이 토라를 ‘모세의 율법’(대하 30:16; 스 3:2; 7:6) 또는 ‘율법책’(느 8:3; 참조, 스 10:3), ‘모세의 책’(대하 35:12; 스 6:18; 느 13:1; 참조, 막 12:26), ‘모세의 율법책’(수 23:6; 왕하 14:6; 대하 25:4) 등으로 부른 것도 이런 흐름을 보여줍니다.
주전 3-2세기경에 히브리 성서를 그리이스어로 번역한 70인역(LXX Septuagint 또는 Septuaginta)이 ‘토라’라는 단어를 ‘노모스’(Nomos= 법 또는 법조항)로 옮기면서, 이 토라가 서서히 ‘율법’ 또는 ‘율법서’로 일컬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70인역의 이런 번역은 아마 오경에 들어있는 법률적인 요소들을 강조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었거나, 오경의 주요 내용들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언약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번역은 그리이스어로 기록된 신약성서에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토라를 가리켜 신약성서는 ‘율법’(마 5:17; 7:12; 눅 16:16; 행 13:15; 24:14) 또는 ‘모세의 율법’(눅 24:44)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2 오경 - 다섯 권의 책인가, 한 권의 책인가?
성서를 연구하는 도구로 역사를 선택하였던 학자들은 오경(구약)의 중심을 출애굽으로, 신약성서의 중심을 십자가 사건으로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오경의 각 문서들을 분석하면서, 각 책을 따로 따로 살펴보았을 뿐만 아니라, 같은 책 안에서도 서로 다른 자료층(JEDP자료 등)을 찾아내, 각기 시대를 달리하는 이 자료들이 마치 모자이크처럼 편집되었다고 보았습니다. 흔히 역사비평적 방법이라 불리우는 이런 도구가 지난 200여년 동안 성서신학계를 주름잡아 왔습니다. 사실 출애굽사건과 십자가 사건이 기독교에는 물론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력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의 장점과 함께 단점을 간파한 학자들은 최근에는 각 책의 최종형태(현재 모습)를 그대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오경 전체를 꿰뚫는 하나의 신앙(사상)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그들은 역사 대신에 현재의 텍스트(최종형태)를 성서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성서 그 자체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방향이 달라지고 보니, 오경의 중심과 그 신앙적 핵심도 다르게 보였습니다. 곧 구약의 중심은 예배(레위기)요, 신약의 중심은 부활과 재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출애굽에 관해서는 오경 가운데에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책이 있지만, 예배 혹은 예배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책은 없습니다.
→ → → → → → → → 나그네길 가는 이스라엘 민족 → → → → → → →
창세기 | 출애굽기 | 레위기 | 민수기 | 신명기 |
이 세상의 창조와 땅을 약속받음 | 이집트를 나와 광야를 거쳐 시내산에 이름 | 시내산에서 맺은 계약(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 시내산을 떠나 광야를 거쳐 모압지방(약속받은 땅의 맞은 편)에 이름 | 약속대로 받은 땅에 살면서 지켜야 할 것들 |
베레쉬트 (תיא) |
베엘리 세모트 (תוֹמ ה) |
봐이크라 (א) |
봐예다베르 혹은 베미드바르 (ר 혹은 ר) |
엘레 하데바림 (םי ה) |
게네시스 (Γένεσις) |
엑소도스 (Ἔξοδος) |
레위티콘 (λευιτικόν) |
아리트모이 (Ἀριθμοι) |
도이테로노미온 (δευτερονόμιο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 - 이 다섯 권을 가리켜 오경(五經, Pentateuch)이라고 부릅니다. 이 책 다섯 권에는 모세의 선조(창세기)와 모세의 모습뿐만 아니라(출애굽기-출생; 신명기-죽음),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이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와 신명기는 이 오경 전체를 묶어주는 외적인 틀을 이루고 있습니다. 곧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특히 땅의 약속)이 실제로 실현된 것은 여호수아 시대에 이르러서이지만, 신명기 마지막 부분에서 모세는 그 약속이 이미 실현되고 있음을 눈으로 봅니다:
창 12:1. 7 | 신 34:1, 4 |
1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7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야훼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 4 야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
역사, 율법이 한데 어우러진 오경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 출애굽기 | 레위기 | 민수기 | 신명기 |
역사 → (약속) |
역사 → (심판 ⇌ 구원) |
율법 → (시내산) |
역사 → (심판 ⇌ 구원) |
율법 (약속) |
창세기 1-9장 | 레위기 16-17장 | 신명기 30-33장 | ||
오경의 기초: 창조 오경의 중심: 화해(속죄) 오경의 기준: 생명-죽음 |
이 오경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 1-11 | 원(原)역사 | |||
창 12-25 | 족장사 아브라함 이삭+야곱 요셉 12-25 25-36 37-50 |
|||
출 1-12 | 출애굽(위기) -12, 36 | |||
출 12-15 | 출애굽(구출) -15, 21 | |||
출 15-18 | 광야Ⅰ | |||
율법 십계명 계약법전 |
출 20:1-17; 20:18-23:33 |
|||
출 19-24 | 시내산 도착(출 19:1-민10:10) 계약준비(19장) 체결(24장) |
|||
성전건립지시 및 실행 | 출 25-31; 35-40 | |||
출 32-34 | 계약파괴 재체결 | |||
율법 제의규정 정결법 성결법전 |
레 1-7장 레 11-15 레 17-26 |
|||
민 1-10:10 | 시내산 체류 | |||
민 10-20 | 광야Ⅱ 4 반역사건 |
|||
민 21-32 | 동부요르단 정복 | |||
부족장들 | 민 33-36 | |||
신 1-11 | 모세의 연설(신명기 서론) | |||
신명기법전 | 신 12-26장 | |||
신 12-26 | 신명기 법전 | |||
신 27-28 | 축복과 저주 | |||
신 29-30 | 모세의 연설(훈계) | |||
신 31-34 | 모세의 마지막 행적들 |
이 오경에서 레위기는 위치로는 물론, 그 내용으로도 오경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곧 레위기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구원역사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거룩한 민족을 형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25-40장과 민수기 1-10장은 레위기의 이런 원대한 목표를 뒷받침하는 보조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5-40 | 레위기 | 민수기 1-10 |
이스라엘 민족공동체를 이루는 기초인 율법과 계약 | 거룩하게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과 계획 | 해방(구원)된 이스라엘 공동체를 조직화(체계화) 시키는 기초들. |
이렇게 볼 때, 오경은 한 권의 책이면서, 동시에 다섯권의 책입니다. 각 권의 책들은 나름대로 고유한 특성과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각각의 책입니다. 그러나 이 다섯 권에는 ① 일관된 신앙의 맥이 흐르고 있으며, ② 하나님을 향한 예배라는 주제 아래, 하나님이 인간과 역사의 생사화복의 주인임을 일관되게 밝혀준다는 점에서 한 권입니다.
3 오경의 주요 내용
창세기는 크게 1-11장과 12-50장으로 나누어집니다. 우리는 1-11장을 원역사, 12-50장을 족장사라고 부릅니다. 원역사에는 우주 만물과 인간이 만들어진 일,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진 인간의 죄와 타락, 그러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기록되는 한편, 그런 타락과 심판 가운데서도 면면히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의 흐름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족장사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아브라함 - 이삭- 야곱-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역사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출애굽 역사를 다루는 앞부분은 이집트로간 야곱 일가족의 후손이 노예생활하는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을 부르시어,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려고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십니다. 이렇게 하나님 은총으로 이집트의 압제를 벗어난 이스라엘은 홍해 바다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시내 광야에 머무는 동안에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이 세상에서 지켜야 할 온갖 규범들을 모세를 통해 전달하십니다(시내산 언약).
출애굽기의 뒷부분(출 19-40장)과 레위기 전체 및 민수기 앞부분(민 1장-10:10)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시내 광야에 머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각종 규범들 및 그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뒷부분에는 십계명과 언약 법전(20:22-23:33), 성막 건축에 관한 규정 등이 있으며, 이스라엘이 언약을 개드리고 죄를 짓는 모습과 하나님께서 언약을 다시 세우시는 과정, 성막이 건설되는 과정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에는 예배와 예물에 관계된 규정, 제사장 임직에 관한 규정, 성결 법전(레 17-26장) 등이 들어 있으며, 민수기 앞부분에는 인구 조사 및 광야 유랑을 위한 각종 준비 규정들이 나와 있습니다.
민수기 뒷부분(10:11-36장)에는 40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광야 유랑 생활에 대해서 기록하되, 19장까지는 광야 생활 초기의 모습을, 20장 이후에는 광야생활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묘사하면서, 그 중간에 있는 오랜 기간이 생략되었습니다.
그리고 오경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는 가나안 정착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함께 동고동락하였던 사람들에게 하나님 뜻을 설교하는 형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로써 시내산 언약이 갱신되었습니다. 이 신명기는 오경을 마감하는 책인 동시에 여호수아에서 열왕기까지 이어지는 전기 예언서(Former Prophets) 또는 신명기적 역사(Deuteronomistic History)의 서론 부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위 다섯 권에는 크게 원역사, 족장사, 출애굽 해방, 시내산 언약, 광야 유랑 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 내용 곳곳에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믿음이 단단한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다섯권을 역사적 주제에 무게를 두고 살펴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정착)을 향해 진행되는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에 무게를 두고 살펴보면, 그 약속과 성취로 가는 길목에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기본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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