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사!!

카타리나 수도원

하나님아들 2023. 1. 2. 17:55

성지이야기 – 성 카타리나 수도원

 

 
 

 

 

가장 오래된 수도원

 

카타리나 수도원 (St. Catherine’s Monastery)는 시나이 반도 시나이 산 발치의 북쪽 협곡에 있는 해발 1500미터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수도원은 처음에는 예루살렘 총대주교의 관할권 아래에 있다가 1575년 콘스탄티노플에 의해 독립을 승인받아 동방정교회에 속한 자치 교회들 가운데 가장 작은 교회이다. 수도자의 숫자는 36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은 시나이 파란 라이투의 대주교직을 겸임하고, 수사들에 의해 선출되며, 그리스정교회 예루살렘 총대주교에 의해 축성된다. 초기 대수도원장들 가운데는 ‘천국의 계단’을 쓴 성 요한 클리마코가 유명하다.

 

카타리나 수도원 전경

 

시나이 광야에서 수도생활은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교 은수자들은 3세기 중반부터 시나이 광야에 모이기 시작하였다. 은수자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성 안토니오(251-356)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완덕의 삶을 열망하게 했고, 사막을 찾아 나선 은수자들은 시나이 산 자락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3세기 중반 로마 황제 ‘데치오’(Decio, 249-251 재위)의 박해시기에 하느님께서 현현하신 시나이 산의 정상과 발치에 첫 은수자들이 도착하여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은수자들은 동굴이나 돌로 지은 암자 그리고 오두막과 같은 곳에서 침묵 중에 기도와 일을 하며 살았다. 이와 같이 시나이 산 주변, ‘불타는 떨기나무’(탈출 3,1-6)가 있는 장소와 파란 계곡에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작은 규모의 수도 공동체들이 형성되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거룩한 ‘불타는 떨기나무’ 자리에는 작은 성당을 지어 동정 성모께 봉헌하였다. 330년경에 전하는 기록에는 시나이 은수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비잔틴 제국의 황후인 헬레나 성녀는 불타는 가시덤불이 있는 장소에 동정 성모께 봉헌한 작은 성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거룩한 ‘불타는 떨기나무’

 

카타리나 수도원은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 수도원과 함께 그리스도교 수도원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수도원이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성녀 카타리나

 

성녀 카타리나 (St. Catherine)는 310년경에 활동한 알렉산드리아의 동정 순교자이며 축일은 11월 25일이다. 상류 가문에서 태어나 학식 있는 카타리나는 철학과 수사학, 시, 음악, 자연과학, 수학, 천문학과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학문 그리고 고귀한 성격은 그녀가 천상 신부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막지 못했고 그녀는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게 된다. 4세기 초에 막시미누스(Maximinus, 308-313 재위)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카타리나는 우상을 숭배하는 황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였다.

 

성녀 카타리나

 

황제는 카타리나를 설득하기 위하여 50명의 학자들을 보내 그녀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앙을 반박하였지만 오히려 이방인 철학자들은 황제의 많은 지인들과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황제는 이러한 노력들이 헛수고임을 깨닫고 카타리나에게 고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황제는 대못을 박은 바퀴를 만들어 카타리나를 고문하였지만 카타리나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구경꾼들이 바퀴에서 튕겨 나온 못에 의하여 죽었다고 한다. 온갖 고문으로도 카타리나의 신앙을 바꾸지는 못하자 마침내 참수하고 만다. 카타리나의 목에서는 하얀 피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카타리나의 시신은 천사들에 의하여 시나이 산의 최고봉으로 옮겨졌다.

 

5세기가 지난 9세기 초에 시나이 산에서 수행하던 어느 수도자가 환시에 빛에 싸인 채 천사에 의해 성녀의 시신이 시나이 산 정상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수도자는 다음 날 산 정상에서 성녀의 시신을 발견하였고 시신은 수도원에 안치되게 된다.

성녀의 시신이 발견된 산은 ‘카타리나 산’이라고 명명 되었고, 불타는 떨기나무 수도원 또는 거룩한 변모 수도원이라고 불리던 수도원은 9세기경부터 ‘성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교회의 보고(寶庫)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은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도서관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관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 희랍어로 쓰여 있지만 히브리어, 아랍어, 시리아어, 아르메니아어, 이집트어 등 4500편의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수도원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경이로운 발견은 4세기경에 쓰인 희랍어 성경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다. 전 세계에서 바티칸 사본 다음으로 중요한 필사본인 4세기경 희랍어로 쓰인 시나이 사본의 대부분은 유감스럽게도 현재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이 보유한 또 다른 보물은 이콘이다. 이콘 박물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작은 진귀한 대작에서부터 단순한 작품까지 2000여종의 이콘이 수도원 성당과 경당, 이콘 갤러리, 제의실과 수도자들의 독방 그리고 수도원의 여러 장소에 보관되어 있다. 이 이콘들은 6세기 비잔틴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장장 14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져 오고 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있는 전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콘

 

성 카타리나 수도원의 매력은 수도원이 가지고 있는 이콘들도, 최고의 필사본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도 아니다. 수도원이 가진 보물은 외적인 그 어느 것이 아니라 질그릇에 담긴 보물(2코린 4장 참조)처럼 한낮의 뙤약볕과 살 떨리는 어둔 밤의 장고의 세월을 견디어낸 그 힘에 있을 것이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낸 진주가 이콘들이고 도서관이지 않을까?

성지이야기 – 성 카타리나 수도원

입력일 2011. 03. 24.

검색어 : 김상원 신부, 성 카타리나 수도원, 시나이 산

 

 

 
 

김상원 신부(테오필로, 작은형제회, 예수님 무덤 성당 거주)

 

가장 오래된 수도원

 

카타리나 수도원 (St. Catherine’s Monastery)는 시나이 반도 시나이 산 발치의 북쪽 협곡에 있는 해발 1500미터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수도원은 처음에는 예루살렘 총대주교의 관할권 아래에 있다가 1575년 콘스탄티노플에 의해 독립을 승인받아 동방정교회에 속한 자치 교회들 가운데 가장 작은 교회이다. 수도자의 숫자는 36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은 시나이 파란 라이투의 대주교직을 겸임하고, 수사들에 의해 선출되며, 그리스정교회 예루살렘 총대주교에 의해 축성된다. 초기 대수도원장들 가운데는 ‘천국의 계단’을 쓴 성 요한 클리마코가 유명하다.

 

카타리나 수도원 전경

 

시나이 광야에서 수도생활은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교 은수자들은 3세기 중반부터 시나이 광야에 모이기 시작하였다. 은수자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성 안토니오(251-356)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완덕의 삶을 열망하게 했고, 사막을 찾아 나선 은수자들은 시나이 산 자락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3세기 중반 로마 황제 ‘데치오’(Decio, 249-251 재위)의 박해시기에 하느님께서 현현하신 시나이 산의 정상과 발치에 첫 은수자들이 도착하여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은수자들은 동굴이나 돌로 지은 암자 그리고 오두막과 같은 곳에서 침묵 중에 기도와 일을 하며 살았다. 이와 같이 시나이 산 주변, ‘불타는 떨기나무’(탈출 3,1-6)가 있는 장소와 파란 계곡에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작은 규모의 수도 공동체들이 형성되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거룩한 ‘불타는 떨기나무’ 자리에는 작은 성당을 지어 동정 성모께 봉헌하였다. 330년경에 전하는 기록에는 시나이 은수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비잔틴 제국의 황후인 헬레나 성녀는 불타는 가시덤불이 있는 장소에 동정 성모께 봉헌한 작은 성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거룩한 ‘불타는 떨기나무’

 

카타리나 수도원은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 수도원과 함께 그리스도교 수도원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수도원이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성녀 카타리나

 

성녀 카타리나 (St. Catherine)는 310년경에 활동한 알렉산드리아의 동정 순교자이며 축일은 11월 25일이다. 상류 가문에서 태어나 학식 있는 카타리나는 철학과 수사학, 시, 음악, 자연과학, 수학, 천문학과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학문 그리고 고귀한 성격은 그녀가 천상 신부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막지 못했고 그녀는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게 된다. 4세기 초에 막시미누스(Maximinus, 308-313 재위)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카타리나는 우상을 숭배하는 황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였다.

 

성녀 카타리나

 

황제는 카타리나를 설득하기 위하여 50명의 학자들을 보내 그녀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앙을 반박하였지만 오히려 이방인 철학자들은 황제의 많은 지인들과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황제는 이러한 노력들이 헛수고임을 깨닫고 카타리나에게 고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황제는 대못을 박은 바퀴를 만들어 카타리나를 고문하였지만 카타리나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구경꾼들이 바퀴에서 튕겨 나온 못에 의하여 죽었다고 한다. 온갖 고문으로도 카타리나의 신앙을 바꾸지는 못하자 마침내 참수하고 만다. 카타리나의 목에서는 하얀 피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카타리나의 시신은 천사들에 의하여 시나이 산의 최고봉으로 옮겨졌다.

 

5세기가 지난 9세기 초에 시나이 산에서 수행하던 어느 수도자가 환시에 빛에 싸인 채 천사에 의해 성녀의 시신이 시나이 산 정상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수도자는 다음 날 산 정상에서 성녀의 시신을 발견하였고 시신은 수도원에 안치되게 된다.

성녀의 시신이 발견된 산은 ‘카타리나 산’이라고 명명 되었고, 불타는 떨기나무 수도원 또는 거룩한 변모 수도원이라고 불리던 수도원은 9세기경부터 ‘성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교회의 보고(寶庫)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은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도서관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관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 희랍어로 쓰여 있지만 히브리어, 아랍어, 시리아어, 아르메니아어, 이집트어 등 4500편의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수도원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경이로운 발견은 4세기경에 쓰인 희랍어 성경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다. 전 세계에서 바티칸 사본 다음으로 중요한 필사본인 4세기경 희랍어로 쓰인 시나이 사본의 대부분은 유감스럽게도 현재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이 보유한 또 다른 보물은 이콘이다. 이콘 박물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작은 진귀한 대작에서부터 단순한 작품까지 2000여종의 이콘이 수도원 성당과 경당, 이콘 갤러리, 제의실과 수도자들의 독방 그리고 수도원의 여러 장소에 보관되어 있다. 이 이콘들은 6세기 비잔틴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장장 14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져 오고 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있는 전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콘

 

성 카타리나 수도원의 매력은 수도원이 가지고 있는 이콘들도, 최고의 필사본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도 아니다. 수도원이 가진 보물은 외적인 그 어느 것이 아니라 질그릇에 담긴 보물(2코린 4장 참조)처럼 한낮의 뙤약볕과 살 떨리는 어둔 밤의 장고의 세월을 견디어낸 그 힘에 있을 것이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낸 진주가 이콘들이고 도서관이지 않을까?

성지이야기 – 성 카타리나 수도원

입력일 2011. 03. 24.

검색어 : 김상원 신부, 성 카타리나 수도원, 시나이 산

 

 

 
 

김상원 신부(테오필로, 작은형제회, 예수님 무덤 성당 거주)

 

가장 오래된 수도원

 

카타리나 수도원 (St. Catherine’s Monastery)는 시나이 반도 시나이 산 발치의 북쪽 협곡에 있는 해발 1500미터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수도원은 처음에는 예루살렘 총대주교의 관할권 아래에 있다가 1575년 콘스탄티노플에 의해 독립을 승인받아 동방정교회에 속한 자치 교회들 가운데 가장 작은 교회이다. 수도자의 숫자는 36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은 시나이 파란 라이투의 대주교직을 겸임하고, 수사들에 의해 선출되며, 그리스정교회 예루살렘 총대주교에 의해 축성된다. 초기 대수도원장들 가운데는 ‘천국의 계단’을 쓴 성 요한 클리마코가 유명하다.

 

카타리나 수도원 전경

 

시나이 광야에서 수도생활은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교 은수자들은 3세기 중반부터 시나이 광야에 모이기 시작하였다. 은수자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성 안토니오(251-356)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완덕의 삶을 열망하게 했고, 사막을 찾아 나선 은수자들은 시나이 산 자락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3세기 중반 로마 황제 ‘데치오’(Decio, 249-251 재위)의 박해시기에 하느님께서 현현하신 시나이 산의 정상과 발치에 첫 은수자들이 도착하여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은수자들은 동굴이나 돌로 지은 암자 그리고 오두막과 같은 곳에서 침묵 중에 기도와 일을 하며 살았다. 이와 같이 시나이 산 주변, ‘불타는 떨기나무’(탈출 3,1-6)가 있는 장소와 파란 계곡에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작은 규모의 수도 공동체들이 형성되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거룩한 ‘불타는 떨기나무’ 자리에는 작은 성당을 지어 동정 성모께 봉헌하였다. 330년경에 전하는 기록에는 시나이 은수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비잔틴 제국의 황후인 헬레나 성녀는 불타는 가시덤불이 있는 장소에 동정 성모께 봉헌한 작은 성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거룩한 ‘불타는 떨기나무’

 

카타리나 수도원은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 수도원과 함께 그리스도교 수도원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수도원이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성녀 카타리나

 

성녀 카타리나 (St. Catherine)는 310년경에 활동한 알렉산드리아의 동정 순교자이며 축일은 11월 25일이다. 상류 가문에서 태어나 학식 있는 카타리나는 철학과 수사학, 시, 음악, 자연과학, 수학, 천문학과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학문 그리고 고귀한 성격은 그녀가 천상 신부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막지 못했고 그녀는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게 된다. 4세기 초에 막시미누스(Maximinus, 308-313 재위)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카타리나는 우상을 숭배하는 황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였다.

 

성녀 카타리나

 

황제는 카타리나를 설득하기 위하여 50명의 학자들을 보내 그녀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앙을 반박하였지만 오히려 이방인 철학자들은 황제의 많은 지인들과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황제는 이러한 노력들이 헛수고임을 깨닫고 카타리나에게 고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황제는 대못을 박은 바퀴를 만들어 카타리나를 고문하였지만 카타리나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구경꾼들이 바퀴에서 튕겨 나온 못에 의하여 죽었다고 한다. 온갖 고문으로도 카타리나의 신앙을 바꾸지는 못하자 마침내 참수하고 만다. 카타리나의 목에서는 하얀 피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카타리나의 시신은 천사들에 의하여 시나이 산의 최고봉으로 옮겨졌다.

 

5세기가 지난 9세기 초에 시나이 산에서 수행하던 어느 수도자가 환시에 빛에 싸인 채 천사에 의해 성녀의 시신이 시나이 산 정상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수도자는 다음 날 산 정상에서 성녀의 시신을 발견하였고 시신은 수도원에 안치되게 된다.

성녀의 시신이 발견된 산은 ‘카타리나 산’이라고 명명 되었고, 불타는 떨기나무 수도원 또는 거룩한 변모 수도원이라고 불리던 수도원은 9세기경부터 ‘성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교회의 보고(寶庫)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은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도서관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관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 희랍어로 쓰여 있지만 히브리어, 아랍어, 시리아어, 아르메니아어, 이집트어 등 4500편의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수도원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경이로운 발견은 4세기경에 쓰인 희랍어 성경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다. 전 세계에서 바티칸 사본 다음으로 중요한 필사본인 4세기경 희랍어로 쓰인 시나이 사본의 대부분은 유감스럽게도 현재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이 보유한 또 다른 보물은 이콘이다. 이콘 박물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작은 진귀한 대작에서부터 단순한 작품까지 2000여종의 이콘이 수도원 성당과 경당, 이콘 갤러리, 제의실과 수도자들의 독방 그리고 수도원의 여러 장소에 보관되어 있다. 이 이콘들은 6세기 비잔틴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장장 14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져 오고 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있는 전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콘

 

성 카타리나 수도원의 매력은 수도원이 가지고 있는 이콘들도, 최고의 필사본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도 아니다. 수도원이 가진 보물은 외적인 그 어느 것이 아니라 질그릇에 담긴 보물(2코린 4장 참조)처럼 한낮의 뙤약볕과 살 떨리는 어둔 밤의 장고의 세월을 견디어낸 그 힘에 있을 것이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낸 진주가 이콘들이고 도서관이지 않을까?

성지이야기 – 성 카타리나 수도원

입력일 2011. 03. 24.

검색어 : 김상원 신부, 성 카타리나 수도원, 시나이 산

 

 

 
 

김상원 신부(테오필로, 작은형제회, 예수님 무덤 성당 거주)

 

가장 오래된 수도원

 

카타리나 수도원 (St. Catherine’s Monastery)는 시나이 반도 시나이 산 발치의 북쪽 협곡에 있는 해발 1500미터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수도원은 처음에는 예루살렘 총대주교의 관할권 아래에 있다가 1575년 콘스탄티노플에 의해 독립을 승인받아 동방정교회에 속한 자치 교회들 가운데 가장 작은 교회이다. 수도자의 숫자는 36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은 시나이 파란 라이투의 대주교직을 겸임하고, 수사들에 의해 선출되며, 그리스정교회 예루살렘 총대주교에 의해 축성된다. 초기 대수도원장들 가운데는 ‘천국의 계단’을 쓴 성 요한 클리마코가 유명하다.

 

카타리나 수도원 전경

 

시나이 광야에서 수도생활은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교 은수자들은 3세기 중반부터 시나이 광야에 모이기 시작하였다. 은수자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성 안토니오(251-356)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완덕의 삶을 열망하게 했고, 사막을 찾아 나선 은수자들은 시나이 산 자락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3세기 중반 로마 황제 ‘데치오’(Decio, 249-251 재위)의 박해시기에 하느님께서 현현하신 시나이 산의 정상과 발치에 첫 은수자들이 도착하여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은수자들은 동굴이나 돌로 지은 암자 그리고 오두막과 같은 곳에서 침묵 중에 기도와 일을 하며 살았다. 이와 같이 시나이 산 주변, ‘불타는 떨기나무’(탈출 3,1-6)가 있는 장소와 파란 계곡에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작은 규모의 수도 공동체들이 형성되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거룩한 ‘불타는 떨기나무’ 자리에는 작은 성당을 지어 동정 성모께 봉헌하였다. 330년경에 전하는 기록에는 시나이 은수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비잔틴 제국의 황후인 헬레나 성녀는 불타는 가시덤불이 있는 장소에 동정 성모께 봉헌한 작은 성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거룩한 ‘불타는 떨기나무’

 

카타리나 수도원은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 수도원과 함께 그리스도교 수도원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수도원이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성녀 카타리나

 

성녀 카타리나 (St. Catherine)는 310년경에 활동한 알렉산드리아의 동정 순교자이며 축일은 11월 25일이다. 상류 가문에서 태어나 학식 있는 카타리나는 철학과 수사학, 시, 음악, 자연과학, 수학, 천문학과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학문 그리고 고귀한 성격은 그녀가 천상 신부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막지 못했고 그녀는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게 된다. 4세기 초에 막시미누스(Maximinus, 308-313 재위)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카타리나는 우상을 숭배하는 황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였다.

 

성녀 카타리나

 

황제는 카타리나를 설득하기 위하여 50명의 학자들을 보내 그녀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앙을 반박하였지만 오히려 이방인 철학자들은 황제의 많은 지인들과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황제는 이러한 노력들이 헛수고임을 깨닫고 카타리나에게 고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황제는 대못을 박은 바퀴를 만들어 카타리나를 고문하였지만 카타리나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구경꾼들이 바퀴에서 튕겨 나온 못에 의하여 죽었다고 한다. 온갖 고문으로도 카타리나의 신앙을 바꾸지는 못하자 마침내 참수하고 만다. 카타리나의 목에서는 하얀 피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카타리나의 시신은 천사들에 의하여 시나이 산의 최고봉으로 옮겨졌다.

 

5세기가 지난 9세기 초에 시나이 산에서 수행하던 어느 수도자가 환시에 빛에 싸인 채 천사에 의해 성녀의 시신이 시나이 산 정상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수도자는 다음 날 산 정상에서 성녀의 시신을 발견하였고 시신은 수도원에 안치되게 된다.

성녀의 시신이 발견된 산은 ‘카타리나 산’이라고 명명 되었고, 불타는 떨기나무 수도원 또는 거룩한 변모 수도원이라고 불리던 수도원은 9세기경부터 ‘성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교회의 보고(寶庫)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은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도서관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관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 희랍어로 쓰여 있지만 히브리어, 아랍어, 시리아어, 아르메니아어, 이집트어 등 4500편의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수도원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경이로운 발견은 4세기경에 쓰인 희랍어 성경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다. 전 세계에서 바티칸 사본 다음으로 중요한 필사본인 4세기경 희랍어로 쓰인 시나이 사본의 대부분은 유감스럽게도 현재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이 보유한 또 다른 보물은 이콘이다. 이콘 박물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작은 진귀한 대작에서부터 단순한 작품까지 2000여종의 이콘이 수도원 성당과 경당, 이콘 갤러리, 제의실과 수도자들의 독방 그리고 수도원의 여러 장소에 보관되어 있다. 이 이콘들은 6세기 비잔틴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장장 14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져 오고 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있는 전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콘

 

성 카타리나 수도원의 매력은 수도원이 가지고 있는 이콘들도, 최고의 필사본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도 아니다. 수도원이 가진 보물은 외적인 그 어느 것이 아니라 질그릇에 담긴 보물(2코린 4장 참조)처럼 한낮의 뙤약볕과 살 떨리는 어둔 밤의 장고의 세월을 견디어낸 그 힘에 있을 것이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낸 진주가 이콘들이고 도서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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