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이단성! 사이비성!

이 단

하나님아들 2022. 11. 8. 16:12

 

         이           단

 

 

 

. 서    론

 

   A . 문제제기

 

성서의 일관된 주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메시아의 오심과 부활, 재림, 휴거, 대환란, 그리고 천년왕국의 회복 및 신천지의 완성이라는 종말관이다.  일백년을 경과한 한국교회의 대 부흥은 예수님 오심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여 일어나기 시작한 종말론적 사건에 귀인된다.  이러한 과정은 성장 못지않게 갖가지 분파와 다양한 주의를 통해서 여러가지 신학적 문제가 제기되며 이단적 무리들이 자생하게 되었다.

 

신학적인 관심사 중에서도 미래적인 사건을 예언하는 종말론적 약속이 성서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무속신앙과 개인적인 계시와 체험적 신앙을 앞세운 교회라고 할 만큼 다양한 말세론적 교회라고 하겠다.  성서는 종말의 사건을 재림(再)은 부활승천(復活昇天)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던 그 몸대로 다시 오시는 일이니 친히 천년시대(千) 이전(以前)에 재림이 절박(切迫)함을 믿으며 생각지 않을 때에 주(主)께서 공중(中)에 오셔서 성도(聖)를 영접(迎接)하실 일과 그 성도들과 함께 지상(地上)에 재림하실 것을 구별(別)할 것이며 또는 지상에 재림하시므로 거짓 그리스도가 멸망(滅亡)하고 천년왕국(千)을 건설한다( 1:9 - 11, 살전 4: 14 - 17,  24:42, 25:13, 살후 2:3 - 8,  25:31,  14,  22:20  9:9 - 10,  2:18) 1)라고제시함에도 불구하고, 성서에 반(反)하는 종말을 주장하는 사람과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기독교 복음 침례회 - 구원파, 세계기독교 통일 신령협의회 - 통일교, 다미선교회 등)이 말세에 대한 공포심리를 유발하여 주로 기존의 신자들을 유혹하며 세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특히 오늘 한국의 교계는 극단적 시한부 재림과 휴거설이 급속히 전파되고 있는데 이는 성서를 초월한 계시(示)와 역사적 전통(傳統)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體驗)을 통한 미래사(未事)의 종말사건을 무분별하게 주장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과학과 문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신학에 근거하여 온전한 진리를 쫓아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태도이다.  그러나 현대의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에 대처하지 못하고 불안과 초조감으로 인하여 잘못된 종말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종말사건 즉,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의 사건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근자에 다양한 신학서 중에서도 종말에 관한 서적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심각한 문제의식은 일부의 신학자나 목회자들 까지도 이러한 주의(主義)에 이용되거나 휩쓸리게 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  따라서 본 究는 성서에 근거한 메시아 다시 오심의 사건을 통해 현재 제기되는 한국 이단성 종말론의 비판적 고찰을 하므로써, 다양한 종말론에 대한 바른 종말론적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B . 연구방법 및 범위

 

 

현재 한국의 교계와 신학계는 복음이 전파된지 100년이 넘어가면서 장족의 부흥과 발전을 거듭해오는 이면에 여러가지 신학적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미래사인 종말사건이야 말로 심각한 국면에 처해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성서를 근거로한 종말 교리인 전천년설에 입각한 환란전 휴거설을 토대로 하여 정통에 대한 이단성 2)을 증명하는 것이 선급한 신학적 과제라고 생각된다.  특히 이단을 논함에 있어서 어떤 기준이 전제되지 않고는 보편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일이므로, 그 전제를 기독론에 두고서 한분 하나님의 존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인격으로 구별되며 이는 모두 同 神的 本質에 참여하고 단지 技能에 있어서만 다르다는 삼위일체(三位一體)적 신성(神性),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인 동시에 참 인간인 신성 - 인성(神性 - 人性)을 겸비한 인격성(人性), 그리고 인간의 본래 상태는 하나님의 형상(形象)이었으나 타락하므로 죄(罪)를 짓고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는 존재이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인간론(人間論)을 믿느냐에 따라서 이단적 요소를 구분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기독론과 인간론적 입장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여러가지 조직신학적 주제들(聖書, , 終末,  )도 성서를 통한 기독교의 기본적인 정통성을 파괴하려고 하는 반정통적(反正統的)인 세력과 성향(性向)에 따라서도 이단성의 여부를 나눌 수 있다.3)

 

따라서 본론에서는 Ⅱ장에서 이단이라는 설정기준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 특히 한국에서 다양하게 이단적 교회들이 생성된 배경이 전통의 기성종교(기독교, 불교, 유교 등)의 영향과 기독교 내에서 성서의 예언서인 묵시문학의 그릇된 해석에서 오는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보고, 그 특징을 살펴보도록 한다.

Ⅲ장에서 Ⅴ장까지는 현대 한국 이단성 종말론자들의 대표적 사례들을 들어서 그들의 기원과 종말관, 그리고 그 결과를 성서에 근거하여 비판하고 변증하려고 한다.  Ⅲ장은 통일교의 교주인 문선명씨를 중심으로 하여 문이즘의 기원과 종말관,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고 문선명씨를 재림주로 교리화 하려는 의도를 비판하여 그리스도의 영과 육체적 완전한 인격적 부활을 변증하는 것을 중심으로 비판하고자 한다.

Ⅳ장에서는 최근에 교계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구원파의 교주인 권신찬과 배후의 실력자 유병언씨를 중심으로 하여 그들의 기원과 종말관을 살펴보고, 그리스도의 재림시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개인적 휴거와는 상관없이 구원파에만 속하여 있으면 무조건 휴거된다는 그릇된 주장을 비판하여, 그리스도인의 휴거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신자 개개인의 들림받는 휴거를 변증하는 것을 중심으로 비판하다.

 

Ⅴ장에서는 현대 한국 기독교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는 집단인 다미선교회 교주인 이장림씨를 중심으로한 기원과 시한부 종말관을 알아보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와 시간을 알 수 있다는 성경을 벗어난 계시관등을 중심으로한 재림관과 계시관을 비판 변증하려고 한다.

마지막 Ⅵ장 결론에서는 지금까지 논의된 현대 한국 이단성 종말관의 내용을 요약 비평하고, 건전한 종말관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교계의 올바른 종말관이 정립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한국의 이단 발생의 배경

 

   A . 이단의 설정기준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 신앙, 교리의 갈등이 첨예화될 때에는 언제나 성경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신조들을 기준으로 하여 이단 논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유대종파와 사변적인 헬라학파와의 대립 그리고 2 - 3세기 영지주의(노스티씨즘)와 동양인 신화와 결합하려고 한 신비주의,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 의인의 신과 악인의 신과의 이원론적인 신관(神)을 주장하는 마르키온주의, 그리스도를 완전한 인간으로 본 네스트리우스파 등 각양의 이단논쟁이 일어나면서 기독교 전통신학을 정립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기독론(基督論) 논쟁이며, 이때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인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와 본질상 동일하다 고 한 것이 정통(orthodoxy)으로 하고 아리우스의 주장인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와 비슷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 고 한 것이 이단(heterodoxy)으로 파문한 니케야 회의(325)를 주지할 수 있다.4) 이것이 다른 여러가지 사상의 침투나 이들과의 절충 가능성이 많은 가운데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 즉, 정통적 신학을 보위하려고 하는 고투의 노력이 교리의 엄밀한 검토, 내지는 전통을 바르게 계승하는 제도로서의 교회, 여기서 교권과 신조등의 확립을 필요로 하게됨으로써 정통적 신학이 중요시 되었다.5) 그러나 이러한 정통과 이단이라는 양면 사이에는 한마디로 단언할 수 없는 복합적인 것이다.  신학적으로 분파(schism)나 배교(背, apostasy)는 이단과 구별되며 특히 분파라는 것은 통일된 교회로부터 의도적으로 분립되려는 것이며, 배교는 기독교를 버리는 불신앙을 택하는 것으로써 이단(그릇된 교리를 주장하는 것)과는 연관이 없다.6) 따라서 정통성을 논할 때 전제해야 하는 것은 불신앙과, 비신앙, 혹은 의심하는 것, 즉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그 일부분을 오해하는 것은 이단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나 교단이 분열되었을 경우 서로 상대방을 지칭하여 이단으로 마음대로 정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초대교회에도 사두게파, 바리세파, 엣세네파등과 같이 일찌기 교회 분열이나 교파분열은 있어왔고, 그 신앙에 있어서도 모두 정통이면서도 제도나 행정의 조직에 있어서 견해와 주장을 달리할 뿐이다.  오늘에 와서 기독교계의 양대산맥인 칼빈주의와 알미니안 웨슬리안주의의 경우도 대표적인 경우이다.  따라서 이단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정통진리의 신학기준이 세워져야 한다.  그럼으로 정통의 기준에서 위배하는 것이 이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근환 교수는 정통의 기준을 언급하면서, 그 전제를 기독론(基督論)에 두고서 한분 하나님의 존재는 성부와 성령의 세 인격으로 구별되며 그들은 모두 동일한 신적(神的) 본질(本質)에 참여하고 단지 기능에 있어서만 다르다는 삼위일체(三位一體)적 신성(神性)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인 동시에 참 인간인 인성 - 신성(人性 - 神性)을 공유하는 인격성(人性)을 분명히 해야될 뿐 아니라 인간의 본래상태는 하나님의 형상이었으나 타락함으로 죄(罪)를 짓고 인간 스스로는 구원(援) 할 수 없는 존재이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인간론(人間論)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7)  서 강교수는 기독론과 인간론적 입장뿐만 아니라 그 이외도 여러가지 모양의 기준들(예컨데, 성경과, 교회관, 종말관 등)도 기독교의 기본적인 전통성을 세워야 한다고 한다.8) 탁명환 종교문제 소장은 정통적 신앙교리를 성경과, 신론, 메시아론, 성령론, 속죄관(구원관), 재림론, 교회론, 계시의 충족성, 복음의 배타성, 윤리 도덕성 등 10가지로 나누어 정통성의 기준을 제시한다.9)

 

 

   B . 이단의 의미

 

기독교에서 이단'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당파심, 교회의 통일을 파괴하는 것, 불신앙, 그리스도를 사칭하는 자, 전통적 기독교의 교리와 다른 이설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이며,10)  사적으로는 고대 공교회(Catholic Church)가 진리로 정하고 선포한 정통교리에 대하여 고의적으로 반대하는 종교적인 과오, 혹은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하겠다.11)   이단이란 말은 영어로 hersy이며 헬라어로는 하이레시스'( s)라고 쓰이고 있다.  이렇게 사용되는 이단이라는 단어는 고대 헬라어에 있어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동사 하이레오'( )라는 뜻은 점령, 선택, 선출, 결단, 혹은 묵시적인 노력'등으로 쓰이는 복합어이다.12) 바로 이것은 당시 헬라 시대와 그리스도교적 용법으로 곧 교회, 학파, 수용된 의견' 등을 뜻하게 되어 교리나 교회적 권위의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므로써 기독교적 용법으로 이 단어가 쓰이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는 헬라뿐만 아니라 유대교에서도 통용되었는데, 이들을 일명 바리세파나 사두개파, 엣세네파등을 지칭하기도 했다.  신약성서에도 이단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 5:17), 바리세파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 15:5)에서 사두개인이나 바리세인을 지칭할 때 쓰였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 24:5),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오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줄 우리가 앎이라 ( 28:22)에서 반그리스도적 입장에 있는 그리스도교를 지칭하여 쓰였다.   또한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 3:10)의 교리적 이론(異)에 가까운 것으로 쓰였다.  이상에서 일부는 교파 내지는 분파를 의미하는 것으로 견해상의 차이에서 오늘 당시의 교회내의 분파 내지는 교파로써 이단이라 보기는 어려우며, 다만 디도서 3 10절의 경우는 교리적인 각도에서 보는 이단으로 규정할 수가 있다.13) 따라서 이단이란 말은 교회 일반의 교리와 다른 주장이나 교리를 내세우는 개인이나 집단을 말하며, 단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거짓으로 거부된 신학적 교리와 신앙체제를 말한다.

 

 

   C . 한국이단의 발생배경

 

      1 . 배경

 

            a. 전통의 기성종교에 영향

한국의 이단성 종교의 배경은 이미 뿌리박고 있는 기성의 종교세력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단의 배경은 거의가 세계적 기성 종교인 기독교, 불교, 유교같은 기성 종교에서 파생되었고, 또는 민간신앙을 조직화하거나 윤리적 수양운동이나 치병활동이 종교화한 것으로 본다.14) 따라서 이단성 종교의 형태는 기성종교의 외양과 민속신앙인 샤마니즘적 내용을 갖추고 있으며 결국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한국 문화와 사회의 터전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준 것은 무교(無)이다.  이러한 무교는 민속신앙이란 형태로 전래되어 한국 이단성 종교의 발생과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쳐왔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이 한국의 전통적인 재래 종교사상이 복음의 이해에 도움을 주어서 선교에 승공적인 점보다는 오히려 왜곡시켜서 기독교를 한국적으로 변질시켜 이단성의 종교화시킨 단점을 볼 수 있다.  창조의 신앙인 기독교와 무속에서 출발한 재래종교간의 만남에서 복음은 한국적 풍토에서 너무나 異質的인 것이었기 때문에 토착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로인해 복음의 핵심마저 잃어버리고 변질되지는 않았는가를 주시해야 한다.15)

 

정대위 박사는 한국 정통종교 개념이 기독교 이해의 바탕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유교적인 천(天)과 상제(上帝)신앙이 한국적인 기독교 신관과 병합하였고 도덕적인 신비와 무속신앙의 신령(神)사상은 기독교의 성신(聖神)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어왔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륵신앙 내지는 장수신앙은 기독교의 메시아관과 속죄관의 이해를 도왔고, 풍수지리설 사상은 종말론적 이해의 준비를 갖게 했다.  주장했다.16)  럼 한국의 이단성 종교사상은 전통적인 무교를 근거로한 무속신앙과 기독교를 병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b . 기독교내의 기성교회의 영향

한국 이단성 종교의 발생 배경은 한국 기독교내의 기성교회를 들 수 있다.  , 기독교안에서 성서의 예언서인 묵시문학의 그릇된 해석으로 이단성 종교가 깊이 뿌리 내린 배경이 되었다.  안병무 박사는 한국 기독교는 성서의 묵시문학을 잘못 해석하여 샤마니즘화 되어가고 있다고 그 신앙상태를 비판했다.17) 묵시문학의 특징은 무엇보다 계시적 성격을 가지므로 미래를 계시한다.  성서의 예언적 계시의 중심 내용을 하나님의 의지요, 계시의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때때로 선지자들은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행하심을 미리 밝혀 주었으나 그러한 미래적 예언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미래의 심판과 구원에 비추어 하나님의 뜻이 요구하는 바를 현재에 집행하려는 때에 있었다.  그러나 묵시 기자들의 등장과 더불어 관심의 촛점이 여호와의 말씀에서 이제는 전적으로 계시적 입장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체로 묵시자들은 꿈과 환상과 천상적 여행을 통하여 악(惡)의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과 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알게 되었고 숨겨진 세계의 비밀, 이 땅위에서 의(義)로운 자의 고통받는 이유와 그 國이 언제 어떻게 오리라는 것을 종말로 알게 되었다.

 

또한 묵시문학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미래의 사태를 예시하는데 있어서 상징적 방법을 사용한다.18)  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다니엘이 다른 선지자들 보다 앞서 있었고, 그 뒤에 나타나는 묵시문학 작품이 그것을 모방하는 용법을 사용했다.  다니엘서 7장에 언급된 네마리의 짐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금, , 놋쇠, 철로 된 거대한 신상(神像)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 이전에 역사(史)에 계속적으로 등장할 4개 국가를 표현하고 있다.  그 뒤에 나오는 묵시서에서는 보다 더 정교하게 나타나고 요한계시록 13장에 언급된 짐승의 상징을 다니엘서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상과 같은 계시와 상징적 묵시문학을 통하여 선지자들은 가까운 歷史的 미래와 한층 거리가 먼 終末 미래 사이에까지도 예언하고 있다.19) 그러나 현세에 와서는 하나님은 교회와 공적 계시로는 이미 신구약 66권의 성경 말씀을 통하여 성서적 징조와 계시를 완성하셨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 2:20)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 3:5)라고 성서는 말씀하고 있으므로 묵시문학의 사도인 계시와 징조를 곡해하므로, 지극히 주관적 꿈과 환상을 가지고 성서를 추월한 탈계시적 사건들이 현대 한국의 이단성 종교의 배경이 되어 왔다.  정통신학에서 계시와 영감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에게서 완료되었으며, 다만 주어진 계시의 완성인 성서를 통해서 보다더 잘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은 지금도 계속된다.20) 성경의 조명은 기록된 계시와 영감을 깨닫게 하는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의 은사이므로, 성경을  읽고 미래를 깨닫게 된다.21) 따라서 꿈, 환상, 음성, 환각을 통해서 주관적 계시를 받을 수 있으나 그것은 완전 계시인 성서로 돌아가서 바른 것인지를 주지해야 한다.22) 그러나 오늘 한국의 대부분의 이단성 종파들은 성서를 무시한 탈계시적인 일들을 통해서 교계는 물론이요 기독교 밖에서도 충격과 실망을 던져주고 있다.

 

 

      2 . 이단적 종교의 특징

 

한국 기독교 이단성 종파를 엄밀하게 비교 분석하면 백인 백색의 특수한 언어와 체계를 가지고 자기 종파의 교리사상을 표현하고 있으나, 사실은 표면상의 차이나 독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교리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문상희 교수는 한국 기독교 이단종파들이 서로 공통되는 교리를 갖게 된 근거를 다음과 같이 규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신흥종교는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신흥종교의 시초가 된 동학을 원형으로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며, 종파사이에 신도가 상호 이동하므로써 피차 영향을 주며, 종교에 대한 민중의 욕구와 반응이 동일했다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이단종파는 동일한 한국의 문화와 종교적 유산을 상속했고 동일한 역사와 사회적 환경을 기반으로 했다고 말하고 있다.23)  렬 교수는 한국 기독교 이단성 종파의 공통적 교리적 특징을 여섯 가지로 열거하는 바, 역사의 종말이 임박하였다는 종말사상과 현실교회의 타락비판, 새 메시야 시대의 중심은 한국이라는 주장, 자기종파에만 구원이 있다는 주장, 영적인 특수체험 강조, 그리고 성서의 문자적 해석 등으로 지적하고 있다.24)  환씨는 이단의 공통점을 일곱가지로 열거하는바, 이들은 세계의 終末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말하면서 숨가쁜 세상 멸망의 카운트다운을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절박한 위기의식에 빠지도록 하며,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고 계시를 받는다고 함으로써 교주를 신격화하고, 자기들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고 환란때에 구원할 수 있고, 사후의 천국보다 가시적인 생전에 이땅에 천국이 이루어 지는 지상천국을 주장하고, 되도록 이면 외부와 단절을 하고자하는 폐쇄지향적이고, 비윤리적익 비도덕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특정이 있다고 한다.25) 이것을 종합한 한국 기독교 이단 종교의 교리적 공통성을 지원용 박사는 세가지로 크게 구별하여 혼합주의적 교리, 주관주의적 교리, 도피주의적 교리로 분류될 수 있다고 했다.26)

 

첫째로, 혼합주의적 교리의 특성을 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 이단성 종교의 공통성이 혼합주의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음을 볼 때, 이는 모든 종교가 서로의 상호관계를 통하여 종교적 교섭이나 절충을 떠난 종교가 없으나 그 독자성을 상실하는 교리적 혼합이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기독교 계통의 이단성 종교의 교리는 대부분이 샤마니즘의 혼합을 대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샤마니즘은 한국 일반인들의 심성에 현재도 살아있는 현실 종교(무속신앙)이며, 이것은 정신적 불안해소, 생활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막연한 희망의 부여, 역사의식과 심적 유대강화등의 카타르시스의 작용에 심취되어 있다.27)

김광수 목사는 이단 종파중에서 통일교에 대해 비판하면서 결론부분에서 통일교의 원리속에는 옛날의 노스틱(Gnosticism)교와 같은 영지주의가 있고 윤회설을 풍기는 듯한 불교냄새가 있고 음양설을 내세우는 동양철학적인 사상도 포함되어 있는 혼합주의적 교리의 대표적 예라고 했다.28) 따라서 김의환 교수의 통일교 교리비판에서 언급했듯이, 통일교에서 주장하고 있는 통일운동은 하나의 기독교의 분파운동 보다는 성약(成約)을 내세워 성경을 폐지시키는 운동이며, (Sex)을 내세워 기독교 윤리를 무너뜨리는 운동이며, 반공을 내세워 정종분리원칙을 뒤엎는 운동이며, 문선명씨를 내세워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운동인 혼합주의적 교리를 단적으로 볼 수 있다.29)

 

둘째로, 주관주의적(Self - Centered theory)교리의 특성을 볼 수 있다.  한국 기독교 이단성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 중에서 혼합형태의 교리 못지않게 주관주의적 성격이 다분이 있다.  ,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잘못 인도하는 광신적 요소를 말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성격으로 감정(feeling)과 교회적인 독단(dogma)을 갖게 하는 주관주의라 하겠다.30) 이를 주로 시민의식의 강조, 한국중심의 구세주 사상이나 국가의식, 그리고 자기들의 교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기관이라는 독단성에서 주로 발견되어 진다.  이와같은 이단적 기독교의 교리적 공통성은 주관주의적 성격은 서로 차이는 있으나 상호간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째로, 도피주의적 교리의 특성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이단적 기독교 교리에는 후천개벽 사상을 비롯하여 역사의 종말사상을 말하는 교리들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다미선교회를 중심으로 한 시한부 종말심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같은 종말사상은 건전한 신앙생활을 파괴하며 세상의 현세성을 정죄하거나 거부하고 신비적이고 사후의 내세적인 의미를 궁극적으로 고조하는 도피주의적인 성격을 대표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교리의 교주들은 대부분의 샤마니즘적 퍼스내리티(Personality)의 소유자들로서 그들의 종교적 체험이나 인격형성의 기반이 샤마니즘에 접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문선명씨는 고조의 종교체험이나 인격의 형성과정이 그 종교의 체질형성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것이 널리 지적되고 있다.31)  명씨는 1936 4 17일 그의 나이 16세때 하늘의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부터 철저한 소명감에 불타올랐다고 한며, 그 계시를 기록한 것이 성약(成約)이라 부르는 원리강론이다.32)

구원파의 권신찬씨는 61 11 18, 유병언씨는 62 4 7일에 정확히 날짜까지 열거하면서 복음을 깨달았다 고 주장하며, 그 깨달은 복음을 10가지 질문을 형식을 가지고 기성교인에게 접근하여 유혹하므로 두 교주의 체험을 교리화하여 전하고 있다. 특히 이 교리는 기성교회의 제도와 여러가지 모순을 만들어 기존의 신자들이 불만을 품고 자신들에게 오도록 유도하며, 예수의 재림시 그들(구원파=그리스도의 몸)만이 휴거된다는 미명하에 불만을 조성하여 세상과 교회를 떠나 집단생활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본다.

 

. 통 일 교

 

 

   A . 기원

 

통일교회의 공식 명칭은 세계기독교 통일 신령협회'이며, 그 회의 교주는 문선명이다.  그는 1920년 음력 정월 초 엿새날 평북 정주군 덕인면 상사리 2221번지에서 부친 문경유와 모친 김경계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기독교와 관계는 첫째 형인 문용수가 문교주 나이 열여섯때 정신병으로 사망하고 둘째 누이도 미쳐버려 그 일가가 기독교에 귀인하게 되었다.  문교주의 원명은 용명'이었으나 1955년 혼음파동이후 1964 8 11일 서울민사지방법원 판결을 통해서 선명'으로 개명했다.  문교주는 1945 4 28일 최선길 여인과 결혼하여 첫아들 성진'을 낳고 1957 1 8일 최여인과 이혼하고, 1960 3 1일 현재의 부인 한학자 여인과 어린양 혼인자치'를 베풀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문선명은 소년시절 부터 환상을 많이 보았고 일찍부터 백남주의 후계자의 주변을 맴돌면서 신비주의의 분위기에서 살았고, 자칭 메시아로 자처하면서 1954 5 1일 범교단적으로 사회적으로 숱안 무리와 이단시비를 받아 오면서 창설된 통일교가 약 37년 후인 1991 8 29일 세계일보 강단에서 문교주의 통일교 해체선언으로 그들 내부는 물론이요 기독교내에서도 충격을 가져온 바 있다.

 

문교주는 17세때인 1936 4 17일 부활절 아침에 예수를 직접 만나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중보자로 세웠다고 주장하며, 그 계시를 받고 재림하는 예수로 오게 되었다고 통일교 교리서인 원리강론'에서 말하고 있다.33) 문교주는 10대 학생시절 신비주의 부흥사 이용도 목사파의 교회와 오순절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비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그 후에 당시 교회가 이단으로 간주했던 김백문의 이스라엘 수도원에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해방후 1946 4월에 평양에 광해교회를 세우고 김병문으로 부터 배운 원리강론'을 전파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통일교의 시작이라고 하겠다.  문씨의 모든 주의(主義), 사상(思想) 및 종교(宗)까지도 하나로 천하 통일시킨다는 뜻으로 통일교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것이 1970년대 미국과 일본에서 갖가지 물의를 일으키며, 마침내는 미국에서 1984년 말에 탈세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구속되기도 하는 등등 초창기 부터 혼음시비, 청소년 가출, 이화여대 교수사건, 사상논쟁, 정치, 경제, 사회관여 등 수차례 국내에서도 구속되기도 했다.

 

   B . 통일교의 종말론

 

 

통일교회의 기본교리는 성약(成約)이라는 원리강론(原理講論)에 있다.  강론은 유효원의 원작으로 전편 7장과 후편 6장으로된 책이다.  그 내용은 창조원리, 타락론, 종말론, 재림론, 부활론, 예정론, 기독론, 복귀론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중요한 교리는 창조원리, 타락원리, 종말원리, 복귀원리이다.  이러한 원리사상은 원래 이스라엘 수도원의 김병문의 것으로,34)  원이 부연하여 제작한 것에 불과하다.  문교주는 이러한 원리강론을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 그대로 통일교 교리서가 되었다.  그 책의 제 6 장의 재림론에서 종말관을 잘 알 수 있다.  통일교는 재림론에 있어서 기독교 성경관에 나타난 것과 전혀 다르다.  통일교의 원리강론에 의하면 영계의 실재들과 지상의 사람들 사이에 연락이 있다는 것인데, 지상인은 영계의 실재들의 개인적 협조를 받고, 또 완성되지 못한 영인(靈人)들은 지상인들을 협조하므로서 자신을 완성시킨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구원역사의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는 오늘의 현시대에는 많은 영인들이 지상인을 협조하기 위해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며, 즉 이것은 오늘의 성령의 현상(:방언, 예언, 신유, 입신, 환상, 몽시(夢示))이 많은 사람들에게 체험되어지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35) 통일교에서는 이같은 영인들의 지상 강림을 재림 이라고 말한다.  통일교에 의하면 영계(靈)에는 각급 계층이 있고, 또 서로 단계를 달리하는 영인들 사이에도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 보다도 높은 단계에 있는 단체의 영인들은 보다 낮은 단계로 하강(再)하여 하급의 영인들을 협조함으로써 자신들도 향상되어 보다 높은 단계의 영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36) 문교주는 원리강론총서 17쪽에서 친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큰사명'을 주셨다고 하면서, 자신을 간접적으로 재림주라는 것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은 참으로 이 땅위에 인생과 우주의 모든 근본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문선생을 보내셨으니 이 분은 수십성상을 두고 역사이래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황망한 무형세계를 헤매시면서 혈혈단신으로 영계와 육계의 억만 사탄과 싸워 승리하신 분이며, 따라서 그는 예수님을 비롯한 낙원의 수 많은 성현들과 자유로이 접촉하시며 은밀히 하나님과 영교하는 가운데 모든 천계의 비밀을 밝혀낸 것이다. 37) 라고 하면서 자신을 재림주로써 교묘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따라서 통일교의 종말론은 재림론이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문씨를 재림주로 합리화 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  통일교의 재림론에 있어서 예수의 재림은 인류의 구원사업에 대한 실패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대해 자신이 재림주라고 이론화 한 것은 인류의 역사가 탕감복귀의 역사라는 것에서 나타난다.  탕감복귀의 역사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감는다는 것이다( 21:22참조).  타락한 인류구원의 역사를 놓고 볼때, 탕감복귀 역사는 노아때에 방주를 통해서, 아브라함때에 소.양과 같은 제물을 통해서, 모세때는 호렙산의 반석을 지팡이로 쳐서 물이 나오게 했고, 예수는 십자가를 통해서 영적 구속사업은 완성했으나 육적 구속사업에 실패했으므로 문씨 자신이 재림주가 되어 영과 육이 완성된 구속사업을 한다는 것이다.38) 따라서 그리스도가 지상으로 재림한다고 일단은 말하고 있으나 이는 구약의 엘리야가 부활하므로 다시금 공중재림 하리라고 믿었으나 세례요한이 지상재림했던 것처럼 예수는 초림의 주로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간의 육적구원은 실패했으므로 다시금 구름타고 재림하는 그리스도의 영이 대표적 인간에게 임하므로 영과 육의 양면구원을 완성하여 본래의 인간으로 복귀하여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사람이 실질적 재림주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듯 예수께서 부활, 승천 하실 때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영체(영과 육)를 가지고 볼 수 있게 재림하신다는 것을 부인하고 영으로만(육으로는 초림때 실패하므로) 재림하여 한 사람에게 임재된 그를 먼저 알고 모시는 성도들은 구원받고 그들을 중심으로 개인이 점점 많아져서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면 그것이 곧 볼 수 있는 천국이라는 것이다.39) 한사람, 곧 실질적인 재림주의 장소는 예수를 살해한 악한 포도원 농부인 유대가 아니라 동방의 제 3 의 이스라엘인 한국이라고 주장하고,40) 그의재림주가 이미 1920년에(문씨 태어난해) 한국에 재림했다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졸지에 문씨로 대체된 것을 볼 수 있다.41) 그래서 문씨는 자신이 공식적으로 재림예수로 공언하거나 통일교가 그렇게 단언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재림론을 통해 암시하고 합리화하고 있으며, 특히 그의 문이즘(문선명관)에 있어서 더욱 잘 나타나 있다.  즉 그것은 문씨를 예수가 못다한 사명을 완수할 이 시대의 예언자요 메시야로, 하나님의 전 섭리목적과 인류의 과거, 현재 및 미래와 복음서에 기록되지 아니한 내용까지도 철저히 아는 유일한 사람으로 믿고 있으며, 하나님이 그에게 예수조차도 알 수 없었던 하늘의 메세지를 준다는 것이다.42)

 

통일교는 그들이 만든 교리에 입각한 인간관과 죽음관을 근거로해서 육체적 부활을 부정하며, 그리스도의 부활 역시 육신의 부활이 아니고 그의 영인체(靈人體)가 그의 나라로 간 것 뿐이라고 주장하므로서, 그들은 인간이란 육신과 영인체로 구성되어 육신은 사멸하는 반면에 영인체는 불멸한다는 것이다.43)  인간은 노쇠하면 그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도록 창조되어 한 번 흙으로 분해된 육신은 다시 원상태로 부활될 수 없으며 한 번 영계에 들어가 살게된 영인체는 다시 육신을 입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44)

통일교는 역사적 시대구분도 문씨 재림과 연계하여 보는데, 아담과 아브라함까지(2,000) 하나님이 책임지는 행의시대(行義時),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2,000) 예수가 책임지는 신의시대(信義時), 예수에서 재림주(2,000)까지 성도책임 분담인 대의시대(義時)로 나누면서, 재림주는 이땅에 와서 복귀역사를 완성하는데, 이는 성약(成約)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며 성약은 그들이 원리강론' 을 지칭한다.45) 그다은 아담 - 예수 - 재림주로 이어지는 종적인 6천년 역사를 횡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아담에서 노아까지 1,600, 노아부터 야곱까지 400, 야곱에서 모세까지 400, 모세에서 예수때까지 1,600, 예수때부터 재림주까지 2,000년의 역사적 과정을 설정해놓고 1960년도 부터는 재림주의 생애로 이어지는 것이다.46) 따라서 1920 1 6일인 문씨의 출생에서 1960년까지 40년간은 종적인 탕감역사의 기간으로 보고 문씨 41세때 그의 현재 처인 한학자와 결혼한 1960 3 1일의 결혼(이를 어린양 혼인잔치라 부름)을 기점으로 횡적인 탕감역사 기간이 전개된다는 것이다.47) 이처럼 탕감복귀 역사를 통해 통일교는 문씨를 재림주로 부각시키고, 문씨가 재림주로 거하는 이 땅위에 종국적으로 지상천국을 이룩하여 천하를 통일하는 하나님의 왕정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상천국에는 단계적 실현을 강조하는바, 개성완성, 가정완성 및 주관완성으로 나누고 있다. 1단계인 개성완성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에 따라 생활하는 단계이고, 2단계인 가정완성은 1단계의 사람들이 선의 자녀를 번식하여 죄 없는 가정을 만들어 우주의 부모인 재림주 내외를 중심한 대가족을 이루는 것이며(합동결혼식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3단계인 주관완성은 과학과 경제발전에 근거하여 지상에 안락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단계로써, 이는 하나님의 3대 축복이며 인간창조의 목적이라 한다.48)

 

이들이 주장하는 천국관은 이상과 같이 이 땅위에서 영원히 이룩될 것을 믿음으로 말세를 죄악세계의 청산기인 동시에 하나님의 세계가 이룩되는 선의 세계로서의 전환기로 생각하고 있다.

 

   C . 통일교 종말론 비판

 

이상과 같은 통일교의 주장은 기독교의 재림론과는 아주 다르다.  문교주를 중심으로한 통일교는 김백문씨의 기독교근본원리'의 표제한 내용을 좀더 구체화 시킨 원리강론'을 기본교리로하여 성경보다 우선으로 하며, 모든 것을 문교주를 재림주로 합리화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통일교는 그리스도의 영의 부활은 인정하지만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은 십자가 사건으로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문씨는 이미 1920년에 자신의 태어나는 해를 기점으로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가 재림했다고하며, 종말의 완성은 이 땅위에 통일교의 대가족에 의해서 이룩된다는 그들의 이단성을 기독교와 비교 분석하여 보면

 

첫째로, 무엇보다 그들은 문씨를 재림주로 만들기 위해서 초림 예수의 부활에 대한 실패를 중점적으로 교리와 하고 있다.  바꾸어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원인은 초림예수의 구원사역에 대한 실패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예수의 육체적 부활의 실패는 육신적으로 유전되어 오는 인간의 원죄가 그대로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죄를 제거하기 위하여 실패한 예수대신에 이미 재림한 예수의 영을 입은 새로운 재림주를 통해 죄를 씻고 원상복귀(이를 탕감복귀'라고도 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재림주는 영과 육, 양성이 완전한 자로써 직접적으로 문선명이다 라고 하지는 않지만은, 그들의 세계 속에서는 1920년에 예수의 영이 문선명에게 임했고, 1960년에 부인 한학자와 어린양 혼인잔치를 하므로써 탕감복귀의 역사가 전개된다고 하였다.49) 이런 자격은 하나님께서 친히 큰 사명을 주어 영계와 육계의 억만사탄과 싸워 이기고, 예수와 더불어 수많의 성인들과 자유로이 접촉하며, 예수를 뛰어넘어 은밀히 하나님과 영교하는 가운데 모든 천계의 비밀을 직통으로 밝혀 낸다는 것이다.50)  에서는 분명하게 재림에 대해 언급하면서 통일교회의 비성경성을 분명히 하고 있는바, 재림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신 그 몸대로 다시 오시는 일이니, 주께서 공중에 오셔서 성도들을 영접하실 것이요 그 신도들과 함께 지상에 재림한다. 51)(  4:16, 17,  1:7) 특히 기독교에서 재림이라는 헬라어 파루시아'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해서 설명할 때 사용되는 말로써 위엄있는 그리스도의 출현이나 현존의 뜻으로 쓰이고,52) 신약성서에서 파루시아' 주의 날, 인자의 날, 그리스도의 날 등으로 쓰인다.53) 또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태에 대해서, 사도행전 1 6 - 11절에서, 많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체가 부활하여 승천하셨으며, 또 우리의 인생들을 위해서 바라본 그 모습 그대로 재림하신다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부활하시면서 성삼위 한 인격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2:1 - 4)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의 심령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 가운데 성전을 삼으시고(고전 3:16 - 17), 그것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는( 12:1) 놀라운 자격을 갖출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의 영과 육을 완전히 구속하시는 구세주 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를 뛰어넘는 초월적 계시를 통해 엄밀히 하나님과 영교를 한다는데, 요한복음 1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셔서 , 14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므로써 오직 하나님에 대한 유일한 계시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재림의 시기도 문교주는 1920년 자신이 태어난 때를 기점으로 산정하여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한 영인체가 자신에게 임하므로 재림의 사건은 이루어졌으며, 1960년 현재의 부인 한학자와의 결혼을 어린양 혼인잔치로 둔갑하여, 이로써 죄를 씻는 탕감복귀의 역사가 전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재림은 범죄한 인류를 대속하기 위하여 예수가 육체를 입고 오셨고(초림), 그리스도의 재림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맞으시기 위하여 승천하신 몸대로 영광중에 오실 것이다.54) 재림의 시기도 통일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1920년 온 것이 아니고, 그 시기는 다니엘서 9 24절에서 예언한 허물이 마치며 죄가 드러나며 죄악이 영속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성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는 말씀이 다 응해야 되는 것으로, 현재의 시점은 아직도 말세의 과정이며, 다만 성서는 마태복음 24 36절에서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하셨으므로 인간으로서는 알바아니요, 또 알 수도 없는 것이다.  재림의 시기를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붙쳐둔 이유는 무엇보다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55)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심판에 대한 표준과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며 거짓 선지자들의 가증스러움을 심판하기 위함이다.  또한 인간의 망령스러운 행동을 피하기 위하여 재림의 날짜를 비밀리에 붙여둔 것이다.56) 인간은 언제나 육신을 갖고 있는 연약성 때문에 사탄의 미혹으로 강팍하여 재림의 날을 알고서 예수를 믿으면 재림전까지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가 재림의 날을 알고서 예수를 믿으면 재림전까지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가 재림이 임박하여 신앙생활을 할려고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신자라면 항상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같은 진리를 왜곡한채, 통일교는 예수의 위치가 일반 성인의 한사람에 불과하다고 하며 신성과 인성의 기독론에 큰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성서를 벗어난 천체의 비밀, 곧 직통계시라고 속이는 거짓된 남용으로 인해 미혹된 영을 쫓아서, 수많은 영혼들을 그릇된 길에 빠뜨리고 있다.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간의 구원의 길을 열었고, 죽은 예수는 영과 육의 완전한 인격체로 부활 승천하여,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재림하신다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통일교가 주장하고 있는 예수의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영의 부활은 인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그것으로 인해서 인류를 구속하는데 실패했다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더욱이 예수가 알지도 못하는 것 까지도 문교주가 안다는 것은 그 자신이 곧 적그리스도라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둘째로, 이미 언급했듯이 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실패대신에 인간의 육체적 구원을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통일교가 주장하는 인간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탕감복귀의 이유는 아담과 하와로 부터 지은 원죄를 탕감해야 한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통일교는 인류역사를 선과 악 즉, 하나님과 사탄의 줄다리기 투쟁의 역사로 보고 있다.  원리강론에서 중생론(重生)에서 보면 아담과 하와가 창조 이상을 완성하여 인류의 참 부모가 되었다면, 그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은 원죄(原罪)가 없는 선(善)의 자녀가 되어 지상천국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하여 인류의 악(惡)의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악의 자녀들을 번식하여 지상지옥(地上地獄)을 이룬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대로 타락한 인간들은 원죄가 없는 자녀로써 두번 태어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를 낳아 주는 것은 부모가 아니면 안된다.  그러면 타락한 우리들은 원죄가 없는 자녀로 다시 낳아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해줄 수 있는 선의 부모는 누구일까 ?  원죄 있는 악의 부모가 원죄 없는 선의 자녀를 낳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선의 한부모가 하늘로서 강림하셔야 하는데 그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자녀를 낳기 위해서는 아버지 혼자서는 불가능하므로 참 어머니도 계셔야하는데 그 어머니로 오신분이 바로 성신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57) 여기서 그들은 예수의 오신 목적이 악을 제거하고 의의 자녀를 낳기위함이라고 하므로써 그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 목적은 실패했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참아버지와 참어머니가 오셔야 하는바 문교주의 처인 한언학 여인을 우주의 어머니라고 칭하여, 그들의 부부를 통하여 새로운 자녀를 낳아야 하는데 이것이 탕감복귀의 원리요, 죄에서 중생한 의인으로 복귀하는 것이라 한다.58) 따라서 이들은 예수의 부활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특히 육체(肉體)와 영인체(靈人體)로 나누어 예수의 영인체는 부활하여 하늘나라로 갔으나 육체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부활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의 육신은 영원히 죽어서 없어지며, 다만 영인체만 영원불멸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노쇠하면 그 육신은 원래 창조의 본질인 흙으로 돌아가도록 창조되었다고 하여 한 번 흙으로 분해된 육신은 다시 원상태로 부활될 수 없는 반면에, 영계에 영원히 살게되니 영인체는 다시 육신을 입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59)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의 부활에 대해 통일교회 같지않다.  부활(復活)이란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스( s)인데, 그 의미는 앞으로 다시는 죽지 않고 썩지 않을 영체로 다시 살아난다 는 뜻으로, 부활한 후 부터는 썩지도 않으며 영원히 사멸되지 않는 조직체로 구성되어 죽는일이 영원히 없다는 것이다60)( 6:9 고전 15:42 - 54).

 

구약에서 부활의 의미는 이사야서 26 19절에 동사인 하야( ) 살다 , ( ) 일어나다 , 키츠( ) 깨우다 는 의미로 쓰인다.61) 예수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공중재림 하실 때에 죽은 신자의 부활과 살아있는 신자들의 변화된 자들과, 그리고 환란때 순교한 자들까지의 부활을 1차 부활이라 하며62)(  15:20 - 23, 52, 살전 4: 16, 17,  7:14, 20:4), 사도바울은 고린도 전서 15 20절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라고 말씀하므로, 첫열매라는 것은 믿는 자들의 첫 보증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카트(Charles W.Carter)는 해석하고 있다.63) 때에 그리스도의 부활은 물론이요, 이는 곧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의 보증과 약속이 되는 것이다.  통일교의 예수 십자가의 죽음으로 육체적 부활의 실패했다는 주장에 반증으로 뻘콤(Berkhof)은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이야 말로 믿는 신자의 육체와 깊은 신학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 장차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의 부활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이 될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예수의 부활을 통해 죽은자의 부활을 증명하는 것이며 동시에 살아있는 신자들이 장차 영생의 부활에 참여케 될 것을 확신케 한다고했다.64)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원인이며 신자의 부활은 결과이므로 원인은 반드시 결과를 낳게 된다( 11: 25, 살전 4:16 - 17,  20:4 - 6).  2차 부활은 천년시대후 큰 심판 직전에 창조하신 이후로 죽은 모든 惡人의 부활 곧 심판의 부활로써65)(20:13 - 15), 하나님을 믿지않고 죄악을 가지고 죽었던 영혼의 육체와 영의 인격적 부활을 통해서 영원한 불심판을 받게 된다.66) 부활의 상태는 육체는 썩고 욕되고 약한 육의 것이나, 부활한 몸은 썩지 않고 영화롭고 강한 영의 몸인데, 이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물질에서 남녀의 성에서 초월하고, 늙지않고 죽지않는 몸이니, 예수의 부활한 몸과 같은 영광의 몸 곧, 영생의 몸이다.67)   신체적 부활을 믿지않고 영혼의 부활만 믿는 통일교와 같은 무리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와일리(Wiely)는 이를 일축하고 신체적 부활은 성경이 가르쳐준 진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현될 것 68)이라  주장한다( 49:19,  26:19,  37:1 - 14,  12:2 - 3,  5:25 - 26, 28 - 29, 11:25 - 26, 살전 4 :14,  20:12 - 13).

 

성서는 부활한 몸이 현재의 몸과 외형적인 면에서 비슷할 것이며(예수님의 부활 승천시의 모습과 같다), 활동적인 면에서는 강하고 시.공간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는 영광의 몸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예수를 믿고 죽은 영혼이나 살아서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주님이 재림하신는 날 육체와 영이 온전한 인격체로 다시금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는 기독교의 정통적 신앙관을 부정하며, 재림주는 메시아로 오신 예수며, 오실때는 천군과 천사와 나팔소리를 울리며 구름타고 오실 것과, 그러나 그 시와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성경을 완전히 무시하는 신성과 기독론과 완전히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24:30,  13:26,  1:10 - 11 살전 4:4 - 17, 딤후 3:15 - 17참조).

 

세째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한국으로 정하고, 바로 이곳에서 인류의 최종목표인 지상 천하 통일왕국을 단계적으로 이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육적 구속사업의 실패로 인한 또 다른 재림주가 땅에서 일어나 영육이 완성된 구속사업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는 1920년에 이미 한국 땅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69) 이것은 특히 요한계시록 1 7절을 근거로 하여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데로부터 올라온다는 장소를 동방의 여러나라중 한국이라고 하여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자신들이 또 하나의 우상을 만드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교의 역사적 구분은 극단적 세대주의자들 처럼 6천년으로 구분하고, 통일교의 구분된 세대를 아담 - 예수 - 재림주로 이어지는 종적역사를 횡적역사로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5단계로 나누고 있다.  역사적 시대구분은 문교주 재림과 연계하여 보면, 아담과 아브라함까지를 2,000년 즉, 이때는 하나님이 책임지는 행의시대(行義時),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의 2,000년 즉, 예수가 책임지는 신의시대(信義時), 예수에서 재림주까지 2,000년 즉, 성도책임 분담인 대의시대(義時)로 나누며, 재림주는 이땅에 와서 복귀역사를 완성하고 이것은 성약(成約)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며 성약은 곧 그들이 원리강론을 의미한다.70) 특히 문교주가 재림한 날짜인 1920 1월부터 1960년까지 40년간은 종적인 탕감역사로 보고 문씨 41세때 그의 현재부인 한학자와 결혼한 1960 3 1일을 기점으로(이들은 이것이 어린양의 혼인잔치라고 부름) 횡적인 탕감역사 기간이 전개된다고 주장하고 있다.71)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최종목표인 지상천국이 이루어 지며 개성완성과 가정완성과 주관완성의 3단계 과정을 이루어 우주의 부모인 재림 주 내외인 문씨부부를 중심한 하나의 통일된 대가정을 이루어 지상에서 영원히 안락하게 사는 것이 곧 이들이 말하는 지상에 환상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그야말로 꿈에 불과한 낙천적인 생각으로서 이는 성경과 비교할 때에 일고의 비판적 가치도 없다하겠다.  분명히 성서는 메시아인 재림의 주님이 그 시와 때는 예고없이 무시에 부활하신 그 모습 그대로 이땅에 재림하시어 천년동안 믿는 성도들과 왕노릇하며 거하다가 최후의 심판을 통하여 새로운 땅, 신천신지인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20 - 21).

 

 

 

. 구 원 파

 

   A . 기원

 

기독교 복음침례회'는 일명 구원파'로 통하며, 교주는 권신찬이고 그 배후에는 사돈 관계인 유병언씨가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권신찬은 1923 1 13일 경북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에서 부친 박태동과 모친 김분령사이에서 출생했다.  1937년 보통학교를 나와 1940년 통신중학 과정을 중태하고 19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를 졸업했다.  1951 11 30일 목사 안수를 받고 그 이후 1962년 경북노회로부터 이단으로 목사 면직처분을 받기까지 12년간 경북지방의 교회에서만 목회를 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권신찬은 1961 4월 미국인 독립 선교사 딕 욕(Dick York)의 영향으로 복음을 깨달은  유병언씨와 1961년 네들란드 선교사 길기수(Case Glass)의 영향으로 기독교 복음 침례회(이하 구원파'로 칭함) 간판을 가지고 대구에서 시작된 이단의 교회이다.72) 엄밀히 구원파는 자생적 교회는 아니고, 선교사들을 통해 구원을 깨달은  권교주와 유병언에 의해 발생되었고, 1963년 경부터는 선교사들과 관계를 끊고 독자노선을 추구해 오면서 해를 거듭할 수록 성경을 왜곡하므로 이들의 교리가 변질되어 갔다.

 

1966 2월 권교주는 극동방송의 전신인 국제복음주의 방송(HLKX)에 방송목사로 부임하여 은혜의 아침'이라는 프로를 담당했고, 이때 그의 주된 메세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사건을 통한 구원의 사건을 무시한 채, 회개와 믿음 이 빠진 깨달음과 시인 에 의한 다른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청취자들중에 수천명의 사상전환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1969년부터 1982년까지 구원파는 평신도복음침례회  라는 모임을 운영했다.73) 그러나 권씨는 3대째 장로교인으로 8년간 목회하면서 참 평안이 없는 갈등속에 있다가, 복음을 깨달았다'는 경험을 근거로 기존교회의 새벽기도회, 예배형식, 주일성수, 십일조 및 헌금생활, 장로와 집사등의 교회직분등을 비난하면서 율법과 죄책감과 종교의식에서 해방받을 것을 주장하다가 1974 2월 초교파적으로 연대하여 방송국을 통한 복음전파를 중단케 했다.  그 이후로 그는 계속 세력을 확대하여 왔다.

특히 구원파는 권교주와 유병언과의 장인 사위간의 족벌 교권주의와 유씨의 사업체에 교인들의 돈이 들어갔고, 각기 자신의 재산을 바치지 않으면 들림(휴거)을 받을 수 없다는 등 구원을 물질과 결부시켜 이른바 다른복음'을 전하기 시작, 유병언을 예수'라 부르며 유병언의 환상적인 사업학정계획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을 충족하기 위하여 미신적 비신앙적인 방법으로 막대한 금품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혼란이 오고 이단의 시비를 불러 일으키는 교회로 전락했다.

 

 

   B . 구원파의 종말론

 

1989 32명의 집단적 생명을 앗아간 오대양사건'을 전후하여 알려지기 시작한 구원파의 종말론은 오늘의 절박한 말세심판에 대해 위기의식을 신도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쳐 오는 타종파의 이단들과 대동소이하다.  특히 이들의 종말관과 깊이 연관성이 있는 것은 구원관과 직결된다.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구원파의 구원에는 의지적인 회개와 결단이 빠져있고, 사람들을 구원키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이 빠져있다.  구원파에 의하면 예수를 영접하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권교주와 유병언은 3대째 장로교인으로 율법에 얽매인 종교생활을 하다가 각각 정확히 1961 11 18일과 1962 4 7일에 복음깨달았다'고 하면서, 이들의 구원의 원리는 성경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74)  원받으셨습니까 ? 라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들은 10가지 질문을 가지고 3단계의 비교리적 방법으로 접근한다.  먼저는 그들이 기존 교인들을 만나면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 ,완전히 중생했습니까, 지금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 등의 질문을 던져 구원의 확신에 대한 혼란을 가져오게 하고, 2단계로 기존교회의 약점을 들어서(:신자들이 육신적으로 힘겹게 생각되는 새벽기도, 십일조, 성전건축, 직분제도 등) 기성교회를 불신케하고, 3단계로 종말에 관한 그릇된 교화를 통하여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임박성을 강조하여 비윤리적인 공포심과 죄의식을 불러일으킨 다음 구원파의 교리대로 양심의 죄책감으로 부터 해방, 율법의 압박으로 부터의 해방, 종교로 부터의 해방, 임박한 종말의 때로부터 해방을 맛보게 한다.75)  같이 구원파는 성경보다도 그들이 경험했다고 하는 깨달음의 교리 와 기성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만적인 것들을 부각시키고,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 특별히 이스라엘과 중동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교묘히 이용하는 종교집단이다.  구원파의 교리는 다른 이단들과 마찬가지로 대외 선전용과 대내 교육용 교리를 함께 가르치는바 그들이 제시하는 12신조 즉, 성경, 삼위하나님, , 구원, 교회, 재림, 천년왕국, 지옥, 천국등의 주제에 대한 내용은 복음주의 교단과 거의 비슷하다고 하겠다.76)  파는 종말관에 있어서도 구원파가 믿는 믿음과 교리 라는 제언에서 이 세상 끝날은 7년 대환란이 있고, 환란전에 주님의 공중재림이 있으며, 이때 자던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의 몸의 형체로 부활하고, 그 후 살아남은 그리스도인들도 변화함을 입어 함께 공중에서 주님의 영접을 받게됨을 믿는다 77) 라고 하므로써, 기존교회와 거의 대동소이 하다.  천년왕국에 관해서도 그는 계시록 20 4절에서 6절을 근거로하여 그리스도의 지상강림으로 환란은 끝나게 되며 주님의 나라가 건설된다고 하며, 지옥도 계시록 20 11절에서 15절을 통해 천년왕국후에 심판의 부활을 입은 사람들이 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으며, 천국에 대해서도 계시록 21 1절에서 5, 22, 22 1절에서 5절에 근거하여 땅위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거듭났던 성도들이 소망으로 기다렸던 영원한 천국이 하나님께로 부터 도래할 것이며 인간이 가졌던 슬픔이나 이별이나 아무 고통도 없는 영원불멸의 행복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것을 믿는다고 했다.78) 그러나 대동소이한 여기에 바로 이단의 요소의 정체는 도사리고 있다.  겉으로는 성경을 말하고 있으나 또다른 그들이 대내교육용 교리를 가지고 기성의 교회를 혼란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성경보다도 역사적 사건을 구약과 신약의 예언서에 비교하여 억지로 그 내용들을 뜯어 맞추어 종말 심판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게 하므로써 그들의 세력을 확장해 왔다.  그 좋은 근거로써 그들이 발간한 책들을 통해서 세상 심판과 세상 끝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79)

 

구원파는 특히 세상이 멸망할 때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은 일시에 휴거하여 구원받는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기성교회와는 다르게 교회를 중심으로한 주일성수의 신앙생활 대신에 세상과 구별되는 구원파의 집단에 붙어 있는 것 자체가(:오대양 주식회사, 한스농장, 회사내의 간부들은 그들끼리 격리된 집단 생활을 강요) 구원받는 보증이다.  구원파는 역사적 사건들 즉, 1948 5 14일 이스라엘이 독립된 국가로 출발했고, 1967 6일간의 중동전쟁으로 예루살렘을 탈환한 것과 장차 세계정부의 출현 가능성과 적그리스도 666의 출현징조등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어 가는 것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1980년대에 있을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으며,80) 이러한 비밀이 외부적으로 노출되지 않으려고 그들 세계의 철저한 보안을 위해서 자기들에게 쇠뇌교육 의식화 되어진 사람에게만 재림의 시기를 가르쳐 왔다.81) 유병언과 권신찬은 그의 설교집 인류역사와 하나님의 교회 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성령님을 통해서 자기에게만 깨닫게  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계시를 통해 그들은 설교때마다 이스라엘 국가의 회복 및 적그리스도의 666출현, E.C.유럽공동체등을 수시로 언급하면서 구약의 에스겔, 예례미야, 아모스, 스가랴, 다니엘, 그리고 신약에서 공관복음 가운데 마지막 때에 관한 부분, 데살로니가 전.후서, 계시록 등을 인용하면서 역사적인 사건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강조하고, 7년 대환란이 있기전 땅에 있는 몸(여기서는 구원파가 생기기전의 성도들을 제외하면 지금은 구원파 소속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지칭함)만 들림받는 다고 한다.82)  로 그들은 그들 집단만이 구원의 유일한 대상이고, 또 예수의 재림때 휴거될 수 있는 집단이기에 구별하여 살아야 된다는 미명하에 기업을 사칭한 오대양사건, 속세를 떠난 집단농장 등을 운영해 왔다.  그들은 형식에 입각한 예배와 기도는 필요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일, 곧 기업이나 집단생활등을 통해 서로 모여서 사는 것 자체가 기도요 예배라고 속여서 교인들로 하여금 사업체 중심(이들은 이것이 예배행위라고함)적 집단생활을 하도록 했다.  그래서 종교를 허울삼아 기업의 간부들 내지는 직원들(:()삼우, 세모, 오대양, 경기도 안성의 한스농장등)은 어떻게 하던 집단적 생활을 통해 세상과 격리시켜 살아왔던 것이 드러났다.

 

그들은 또한 예수께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면 속히 오시겠다는 마태복음 24장을 적용하여, 이제 복음이 예수께서 예언한 대로 끝까지 다 전하여 졌음으로 속히 그리스도가 오신다고 위기의식과 공포감을 조장하면서, 성경을 신문(新聞)이라고 부르고 세상에 나오는 일간지 내지는 잡지를 구문(聞)이라고 부르면서 성경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긴다.  엄밀히 보면 사람들을 선동하는 의미에서는 신문을 비롯한 세속사를 성경보다 우위에 놓고 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독립이후의 중동사태나 세계적인 위기에 대해서 신문이나 잡지를 스크렙북으로 만들어 전도용지로 사용하며, 임박한 대환란 을 강조하기 위하여 성경(聖)에 대한 신문(新聞)으로써 동등한 권위를 내세우며 위화감을 조성하는 무리가 되었다.83) 그에게 함으로써 교인이 된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구원파 에 붙은 지체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재림시 공중으로 휴거된다고 가르친다.84) 구원파는 예수의 재림과 천년왕국에 대한 가르침이 소속 교인들에게 선민 의식과 집단 우월감 및 안도감을 심어주는 심리적 진정제 역할을 통해 정상적인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C . 구원파의 종말관 비판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구원파의 종말론은 기독교회의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종말관과는 다르다.  사실 종말관에 앞서 구원파의 이단성은 그들이 성서관, 신관, 인간, 구원, 기도와 예배, 교회 및 종말에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구원파는 조직신학과 교회사를 무시하므로 성서에 나타나는 진리를 철저하게 우화적으로, 임의대로 해석하므로써, 하나님이 영이심을 지나치게 강조한 반면에 하나님의 인격성은 거의 언급치 않고, 하나님의 초월성은 강조하나 하나님의 우리 가운데 임재하심을 무시하고, 특히 그들은 하나님은 구원파 교회안에만 거하시지만 개인안에는 거하지도 않고 개인을 지키거나 인도하시는 분도 아니라고 한다.85) 따라서 신자가 구원받아 천국가기 위해서는 개인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오로지 구원파속에 있어야 한다는 비성서적 구원론과 종말론적 천국관을 주장한다.

 

구원파는 오직 구원파 교회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진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이 가르치는 교회의 교리를 통하여 성경을 해석하며, 이와같은 맥락에서 성도들의 교제는 기성의 교회처럼 그리스도안의 신앙의 공동체로서의 모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사업을 논하는 것이 교제요, 친교이며, 기도와 예배라는 것이라하여 기성교회의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인 예배와 기도를 부인한다.  구원파는 종말론에 있어서 절박한 말세 심판에 대해 위기의식을 신도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쳐 이제 이 세상의 종말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들을 따르고 믿는 자들에게는 세상이 멸망할 때 일시에 휴거하여 구원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특히 이단성 있는 교리들은 공통점이 있듯이, 이들도 불신자를 대상으로 하여 직접 전도하기 보다는 기성교회에 다니는 신도를 겨냥하고 이들이 만든 핵심교리를 10가지 문항을 프린트북으로 만들어 가지고 미혹하는 집단이다.  최근의 오대양 사건이나 한스 집단농장 사건등등 사회에서 조차도 심히 지탄을 받으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들의 가장 큰 이단성의 교리는 크게 세가지인데, 즉 구원관과 교회관 그리고 말세관이다.

이미 구원파의 종말관에 대해 앞서 언급한바 그 이단성들을 지적하면,

 

첫째로, 구원파의 재림관은 비성서적이다.  종말에 대해 징조를 말할 때 성서는 다니엘서 9 26절에서 장차 한 왕(적그리스도)의 백성이 와서 성소와 성읍을 훼파하며 , 마태복음 24 32절의 무화과 나무의 잎사귀의 비유 , 데살로니가후서 2 6, 7절에서 막는자(성령)의 옮겨감 등을 통하여 주님의 재림의 징조와 때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구원파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을 강조한 나머지 신구약에 예언하고 있는 종말에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것을,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의 사건과 동일하게 가장해서 세상사의 비관적인 것을 스크렙북을 만든다든지, 혹은 구원파에서 제작한 비성서적인 종말관에 입각한 책들을 통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하므로써, 신자들의 최고의 행복이며 희망이라 하는 재림관을 왜곡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소식이라하여 신문(新聞)이라 하고, 세상에 나오는 일간지 내지는 잡지를 구문(聞)이라고 할 정돌로 중요하게 여기면서 1948 5 14일 이스라엘이 새로운 독립국가로 출범한 것, 1967 6일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완전히 회복한 것, EEC내지는 작금에 일어나는 세계적인 변화를 통한 하나로 통일된 세계정부 실현 가능성 등등을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그들의 저서는 제목만 보더라도 끔찍한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으로(임박한 대환란, 세계독재자와 66, 세계정부와 666, 카운트다운 예수 재림과 휴거, 인류파멸의 징조와 중동사태, 한계에 도달한 인류역사 등) 되어 있고, 성서를 인용은 하되 지극히 일부분만 (구약에서는 에스겔, 예례미야, 아모스,스가랴, 이사야, 다니엘 그리고 신약은 공관복음 중에서도 마지막때 부분, 데살로니가전후서, 요한계시록 정도) 가르치므로써, 구원파 밖에있는 사람들은(기독교를 포함해서) 이들의 말씀을 듣는이에게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키므로 미혹하게 하고, 반면에 구원파에 들어와 그들이 교회의 몸이 되어지면 소속한 그 자체가 휴거의 완전한 보장이기 때문에 예수의 재림과 천년왕국은 이들에게는 선민의식 집단적 우월의식 내지는 안도감을 주는 교묘한 술책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것은 영적인 신앙의 근거인 믿음을 통한 교리와는 다른, 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진리는 믿음을 통한 진리가 아닌 깨달음의 진리이기 때문에 진정한 희망의 기다림이 아닌 두려움과 위기감을 벗어나기 위한 비성경적 술책이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종말에 대한 구약의 예언, 즉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신약과 미래에 도래할 예언적 성취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영한 일이지만, 성경이 단지 깨달음이나 종말에 대한 교과서나 되는 것처럼 예언에 심취되어 맹종하는 것은(:뵈뢰아에 심취하게 되면 성경의 전체성 보다 귀신에 대해 지극히 한부분에 집중하는 것같이) 성경의 전체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태도이며, 마땅히 그리스도인들은 전체적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바라보는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로이든 죤슨은 이러한 구원파와 같은 집단을 지적하면서, 예언적 교훈에 대한 지나친 관심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현재의 세계정세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차츰 이 관심에 마음을 빼앗겨 정복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예언 이외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설교도 하지 않는다.  이 예언적 교훈에 대한 지나친 몰두 이상으로 영혼에 대해 위험한 것은 없다.  러시아, 이집트, 이스라엘 및 그 밖의 나라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에스겔서 37, 38장이나 다니엘서 7 - 12장 그밖의 예언적 관점에서 여러 시기나 경우를 계산하는 데 모든 시간을 소비하며 전생애를 투입하는 일은 쉬울 것이다.  한편, 영적의미에서는 당신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 점점 무관심하고 등한히 될 수 있다.  물론 예언적 교훈은 성경의 중요한 일부이고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장래 세계에서 일어날 사건들에 너무 관심을 가지는 나머지 우리가 지금 살아야 하는 생애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지각해야 할 것이다.  여러가지 점에서 우리들의 일차적인 위험은 균형이나 조화의 감각을 상실하는데 있다. 라고 지적했다.86) 따라서 성경 베드로전서 4 7 - 11절에 말씀하듯이 마지막 때가 될 수록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며 사랑하며 성령의 은사를 받는대로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는 준비된 삶을 다하며, 주님의 오실 약속을 기대하는 성서속의 사람이 도어야 하겠다.

 

둘째로, 이들은 이 세상 마지막때에 천년왕국이 있기전 칠년 대환란이 있으며 대환란전에 주님의 공중재림이 있으며 이때 자던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의 몸의 형체로 부활하고 그 후 살아남은 크리스챤들도 변함을 입어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고 가르친다.  정통교회와 거의 대동소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큰 모순이 있다.  즉 이들은 죽은자나 살아있는 자나 그리스도를 믿으면 다 휴거되는 것처럼 말하지만은 엄밀히 주장하는 것은 구원파가 생기기 전의 성도들을 제외하면 지금은 구원파 소속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라는 몸에 붙어있는 자만이 휴거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포도나무에 구원파를 비유하여 그들의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휴거되므로 그 이후의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어찌하든간에 상관없이 들림받는 다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정통적 종말관인 주의 재림은 자기에게 주어진 맡은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면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것인데(벧후 3:11, 12), 이들은 포도나무를 구원파의 몸인 교회를 치부하므로써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신앙윤리인 개인적인 봉사, 헌금, 선교적 열심, 주일성수를 통한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예배, 기도, 전도 기타 등등의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무시하고, 다만 붙어있기만 하면 휴거되고 천국간다니 얼마나 편리하고 쉬운가 !   그러나 기독교 진리는 그렇지 않다.  구원파와는 달리 휴거라는 일반적 의미는 그리스도의 재림시 그리스도와 영원토록 거하기 위하여 새로운 몸으로 변화를 받아 교회(성도)가 순식간에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공중으로 옮겨 가는 것을 말한다.87) 휴거는 성서에서는 실지로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끌어올린다'라는 말로 데살로니가전서 4 17절에서 말하고 있다.  라틴 볼게이트 성경에서는 끌어 올린다'라는 말을 Rapere'의 동사 Rapio'에서 유래한 것으로 쓰여 있는데, 영어의 휴거 Rapture'의 이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88) 따라서 휴거란 한 장소에서 다른 한 장소로 옮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박창환씨는 그의 저서 헬라어성서사전'에서 휴거의 용어인 헬라어 아르파죠'( )는 신약에서 13회 나오는데 그 의미는 steal carry off, drag away with, snatch, take away'등으로 쓰인다.89) 키틸(G.Kittle)은 그의 저서에서 휴거인 아르파죠'의 뜻은 to take something forcefully(firmly, quickly, rapaciously)'라고 전제하고 그에 대한 신학적 의미와 분석을 하였다.  , 그 의미는 to steal, to a man force, to catch up or away'등으로 사용되고 있다.90) 스트롱(R.Strong)에 의하면 휴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 믿음안에 (구원파에서의 그들의 무리속에 붙어있으면 휴거하는 것과는 상반되게)서 죽은 자들과 살아있는 성도들의 부활된 몸이 갑자기 지상으로부터 공중으로 끌려 올리워 지는 것을 의미한다 고 했다.91)

 

보너트(L.Boettner)에 의하면 휴거란 말은 삼위일체란 말과 같이 성서에는 발견되지 않지만, 그 개념은 바울 서신중 데살로니가전서 4 13 - 17, 고린도전서 15 51 - 53절에서 휴거를 설명하고 있다.  신자는 모두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하여 들림을 받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결합하는 것이요(공중혼인잔치) 살아 있는 신자들의 몸의 변형이 휴거를 의미한다.92) 휴거의 시기와 범위는 현재까지도 신학상의 많은 차이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성결교회 헌장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친히 천년시대 이전에 생각지 않을 때에 주께서 공중에 오셔서 성도들을 영접하실 일과 그 성도들과 함께(7년 대환란이 끝나는 동시에) 지상으로 오신다 93)고 하는바, 분명한 사실은 환란전에 공중으로 들림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같이 기독교 진리는 구원파와는 상반되게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윤리를 지키며 행하는 그 믿음으로 구원받고 그리스도 오실 때 휴거되는 것이지, 무조건 구원파에 붙어있다고 휴거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특히 주의 재림과 휴거, 그리고 천년왕국에 이르기까지 성서에서 말하는 종말론적 윤리의 삶을 사는데 더욱 힘써야 한다.

 

세째로, 그들은 마태복음 24장의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증거되면 그리스도가 약속한대로 속히 오신다고 전제하고, 그것은 이미 다이루어 졌다고 함으로써 재림이 1980년대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94) 그것도 그럴 것이 이미 하나님이 다 하시기 때문에 전도할 필요도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들이 스스로 모순을 안고서 전도의 필요성과 앞서간 믿음의 선친들의 복음전도에 의한 은혜로 땅끝까지 복음이 다 증거되었다는 것을 인증하면서 인지, 불문에 붙이고 다 증거되었으므로 주님이 재림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도행전 1 11절에서도 예수께서 재림하신다고 알려주었으나, 구원파처럼 어림잡아 때와 기간을 알려주어 재림하다고 어디에도 말하지 않고 있다( 24:36,  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파는 이들의 생전에 종말이 오며(엄격하게 말하면 이미 종말이 왔어야 했음) 구원받은 구원파는 한데 모여서 살아야 휴거된다고 하여, 집단 생활의 유도와 막대한 헌금을 저들이 운영하는 기업(세모(), 삼우트레이딩, 한스농장등)에 투자하게 한다.  결국 이들은 개혁주의에서 주장하는(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전천년왕국설 내지는 환란전 휴거설을 믿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말세론의 정황이 성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잘못된 종말론을 가진 이단성 교회임에 틀림없다.

 

 

. 다미 선교회

 

 

   A . 기원

 

다미선교회는 이장림씨의 첫 작품인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책 제목을 줄여서 붙여진 이름이며, 이 무리의 교주는 이장림이다.

이장림씨는 1948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마치고, 감리교신학교를 거쳐서 목사안수를 받고 신광교회에 협동목사로 있으면서 생명의 말씀사에서 성경번역을 하는 것이 그의 직업이다.  그 동안에 많은 원서를 번역했고, 그의 저서로는 종말론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1992년의 열풍'외에 3권의 저작이 있다.  그의 저서가운데 처음의 2(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하늘문이 열린다)이 출판될 때는 교파를 떠나서 대대적으로 관심을 갖고 보았듯이, 가능한 객관적 입장에서 성서를 근거로하여 쓰려는 부분들이 없지않다.  그러나 3, 4(경고의 나팔, 1992년의 열풍)을 출판하면서 성서를 벗어난 전적인 주관적 체험내지는 비계시적 입장으로 돌아서게 되었고, 1991 11 12 -14일까지 서울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1992년에 10 28일 자정'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고 믿는 집단들이 모인 곳에서는 기성의 교회와 목회자들을 사탄과 사탄의 소굴이라고 매도하기 시작한 이단의 교회이며, 이장림씨는 그들을 이끄는 교주이다.   1992 10 28일 자정에 세계 종말이 온다.  휴거되려면 1992 10 28일 자정에 예수가 재림하는 것을 믿으라, 휴거전까지 하나님의 인(印)을 받으라 등의 현수막을 내걸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외쳐대는 소리를 흔히 볼 수 있다.  각각의 제교단을 빙자한 무리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다미선교회와 이씨도 역시 급한 소식 ! 예수 공중재림과 휴거를 준비하라! 1992 10 28일 지상최대의 인간증발사건 발생'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뿌리면서 교계는 물론 세상 사람들 까지도 지장을 받을 정도로 비이성적인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  다미선교회 대표인 이장림씨는 자신 스스로가 밝히듯 건전한 감리교와 성결교계통에서 신학을 하고 10년 이상을 생명의 말씀사에서 성경번역 내지는 그에 관계되는 책들을 번역했던 사람인데, 1988 10 15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책을 출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1990 11 1 1992년의 열풍'의 책을 내기까지 다미씨리즈 4권을 출판하면서 시한부 종말에 관한 내용 즉, 휴거의 시기, 대환란, 적그리스도, 천국의 세계, 지옥의 세계, 미래를 향한 대비, 어린이들이 주종을 이루는 독특한 계시정보에 관한 것을 주내용으로 연재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저작들을 통하여 그들이 종말관이 다 공개되었으나 그들의 가장 중심교리인 1992 10 28일 자정에 예수께서 재림한다는 것을 어느 책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바로 이같이 핵심은 벗어나면서 교묘하게 믿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고 영의 세계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요 이단자들의 술책이라 하니할 수 없다하겠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다미선교회의 종말관은 다미씨리즈 제 4권인 1992년의 열풍'을 중심으로 하여 발취하여 놓은 것이다.

 

고린도전서 2 13절의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는 말씀을 들어서 1992 10월의 주의 재림은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이기 때문에 육에 속한 사람들은 이 비밀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신령한 소리는 오히려 그들에게는(기성의 신도들을 포함하여) 미련하게 보이고 미치광이 짓으로 보여질 것이나, 이같은 신령한 일은 영적감각을 가진 사람만이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95)

 

   B . 다미선교회의 종말론

 

이장림씨의 신학과 신앙의 배경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종말과, 그것중에서도 시한부 종말론에 관련된 비성경관 비이성적인 무분별한 계시관등의 부분적인 것을 제외한 종말론의 전체과정도 복음주의 신앙노선과 거의 대동소이 하다.  전천년설을 중심으로한 환란전 휴거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다른 이단들과 같이 동일이면을 볼 수 있다.  특히 종말론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문제인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에 있어서 성서가 비밀로 예언하는 시간적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큰 물의를 빗고 있는바 그 실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씨는 그의 책들 가운데서 재림의 시기를 확정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확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96)

 

이씨는 처음 쓴 책에서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는 나팔절에 오신다는 콜린데일(Colin Deil)의 주장과, 프랑스의 의사 예언가인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 7 공포의 대왕'이 온다는 것과, 예수의 휴거 전 30일에 천사들이 매일 지구를 향해 나팔을 불 때 주의 재림이 임박한 것을 알 수 있다는 콜린씨의 주장과, 진군의 92년도 북한에서 선교하다 순교한다'는 것등을 예시하면서,97)  2 - 3년을 전후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98)고 확실하게 말하다가, 그의 저서 하늘문이 열린다'에서는 아뭏든 지금으로서는 휴거의 정확한 시기는 모른다.  다만 2천년안에 주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으니 7년 대환란을 뺀 92 - 93년 경에 일어나지 않을까 ? 하고 예상해 보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의 3번째의 경고의 나팔'이라는 책에서 막연한 것을 뛰어넘어 성서의 완전계시를 무시한 채 그 때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마가복음 13 32 - 33절에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는 말씀을 해석하면서, 이씨는 이사야서 9 6절의 그는(예수님)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의 말씀을 근거로 삼위일체되신 예수님이 그 때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예수는 그의 인격가운데 사람의 아들(人性)로써 모르는 것이지, 아버지의 속성인 신성(神性)으로서는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고 해석하므로써, 예수는 분명히 그 때를 아신다는 것이다.99) 더나아가서 인간은 하나님의 시간을 모르도록 되어 있으나 하나님이 계시(示)해 주실때는 그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구약 아모스 8 7절의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단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는 말씀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때의 비밀을 자기 종들에게 알려 준다는 것이다.100) 이와같은 맥락에서 92 10월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늘이 신실한 종들에게 알려준 계시라고 하면서 사도행전 17 30 - 31절에서의 천하의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라고 하셨으므로 종말의 작정한 시기는 '92 10월이 확실하다는 것이다101)(9:27, 11:35,  2:3,  8:15,  3:6 참조)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땅에 거하게 하시며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시고( 17:26), 한번 정하신 것은 변화시키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3:6) 여러가지 성경적 근거를 볼 때 하나님의 재림의 시기는 확정할 수 있다고 한다.102) 그예로써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를 정하셨고( 7:30), 성소가 짓밟힐때를 정하셨으며( 20:10), 바벨론  포로기간을 70년으로 정하셨고( 29 :10), 노아 홍수의 D데이를 7일전에 정하셨고( 7:4), 소돔성 멸망의 때를 정해 아브라함과 롯에게 알리셨고( 18:17, 19:13), 이스라엘 광야 40년을 정하셨고( 14:33 - 34),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때를 7일 전에 정하셨고( 6:1 - 20), 모압이 멸망할 때를 3일내로 정하셨듯이( 16:14) 종말재림의 때를 미리정했다는 것이다.103) 또한종말의 시기를 알 필요가 있는가 ? 라는 질문에서 알 필요가 있고 또 알아야 한다'라고 하면서 성경은 예수님이 오실때에도 노아의 홍수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며, 홍수가 와서 저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같이 오늘날 인류도 다 멸할때 까지 깨닫지 못할 위기가운데 있으므로, 오히려 사도행전 1 7절에서의 너희의 알바 아니요 의 말씀속에서는 그 때와 기한을 알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보다 오히려 때와 기한에 대한 문제가 아버지의 권한에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재림의  시기를 알 수도 있고 알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104) 이라가 주장하고 있는 주의 재림을 알아야만 하는 근거로, 천기를 분별하듯이 시대의 징표나 표적을 보고 때를 분별하라 ( 16:3),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1948)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인자가 문앞에 온 것을 알라( 24:32). 부르짖고 기도하면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시리라( 33:3), 지혜와 계시를 주어 알게하신다( 1:17 - 19), 진리의 영이 오시면 장래일을 알려 주신다( 16:13). 등의 성경적 증언을 통해 하나님의 재림과 휴거의 시기를 정하시고, 신령한 종들에게 선포하게 하시고, 어린 아이들까지도 성령을 받아 장래일까지 알게하신 것으로 보아 종말의 시기를 아는 것은 정상적이고 성경적이라는 것이다.105)

 

만일 92 10월에 예수가 재림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만일이란 생각할 수 조차 없다'고 하면서 성경적 근거를 연구하고, 또한 그것을 토대로 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계시정보를 종합분석하고 나서 92년이 틀림없는 확신을 갖게 해 주었다고 한다.106)  복음 24 42절에서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 44절에서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 누가복음 21 34절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는 말씀들은 신자가 깨어서 예비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생각치 않을때에 갑자기 그 날이 덫과 같이 우리에게 임하여 전혀 예상치 않은 일들을 당하지만, 신자가 겸허한 자세로 이런 경고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조심하여 깨어 있으면 뜻밖에 그 날을 맞지 않아도 되므로, 깨어서 기다리면 분명히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게 된다고 한다.107) 따라서 종말에 그리스도의 오심과 신자들의 휴거는 철저히 준비된 사람들의 것이며, 적당한 기회주의자들은 휴거되지 못하고 고통받는 환란의 도가니에서 끔찍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된다음 부끄러운 구원에 참여하든가 아니면 배교하고 지옥으로 가게된다고 한다.108) 그때 기독교인 이라고 해서 모두 휴거되는 것은 아니며, 기독교인 중에서도 휴거자가 있고 순교자가 있고, 휴거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도 있다는 것이다.  대환란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92 10 28일 자정이라는 휴거일을 믿는자만이 휴거한다.'109) 이는 다른 이단들과 비슷하게 대환란의 시작과 징조가운데서 무화과잎사귀 비유와 E.E.C(유럽공동체)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인류파멸의 심판'이라는 글에서 요한계시록 6 1 - 2절의 나는 어린양이 일곱 봉인가운데 하나를 떼시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내가 들으니 네 생물가운데 하나가 천둥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오너라' 하기로, 내가 보는 순간 내 앞에는 흰말 한마리가 있었고 그위에 탄 사람은 활을 가졌으며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했다.  라는 성서를 근거로 하여, 이것은 7년 대환란 초기에 평화의 왕으로 가장한 적그리스도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E.E.C 유럽공동체에서 나오며,110) 계속해서 그는 92년도를 겨냥하여 유럽합중국을 건설할 꿈을 갖고 있는 EC는 대형 컴퓨터를 설치헤 놓고 전세계인의 신상명세서를 입력시켜 단일 대통령을 세우며 세계정부를 세우는 것이 바로 눈앞에 왔다고 하면서, 이것이 환란 시대의 적그리스도를 예비하는 과정엊으로서의 대환란의 예시적 징조라고 한다.111) 이러한 대환란에 있어서 무엇보다 1992 10 28일 자정이라는 휴거일을 믿는자만이 휴거하며, 휴거자 중에서도 사명자는 두부류로 나누어서 그리스도가 오시는 날까지 휴거메세지를 전하다가 92년 휴거되는 사람과, 휴거이후에도 대환란때 남아서 전하는 사람으로 분류된다고 한다.112) 휴거자는 거의 시간이 없겠지만 환란을 당하며 99년까지 남는 사람은 아직 상당히 시간이 있으므로 환란시대 이삭줍기 추수를 위해서 준비된 사람들이다.113) 환란시대 사명자는 두부류로 나누는데, 첫째는 환란을 끝까지 통과하지 못하고 환란중반기나 그 직후에 순교하는 사람과, 둘째로 환란중반기 까지 살아 남아서 환란을 끝까지 다 통과하고 천년왕국에 들어갈 자로 양분되다.  1991년도 까지 살아 남아서 제일 마지막까지 순교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엄청난 천재지변과 적그리스도의 학정에 살아 남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예비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3년반 까지는 복음을 전하다가 후 3년반 부터는 하나님이 피난처로 인도하여 보호한다는 것이다114)( 7:25,  24: 29 - 31, 21 - 22, 13,  14:11 - 12, 7:9 - 17 참조).  모든 성도가 환란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환란전에 휴거되는 성도가 있는데,115) 주님이 도적같이 오실때에는 지상으로 오시지 않고 공중으로 오시기 때문에 휴거자 이외는 아무도 모르며, 이때를 이장림씨는 휴거라 부르고 있다.116) 이는 성도들은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 7년간 혼인잔치를 벌이게 되며, 모든 족속이 다 아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오시는 것은 주님이 휴거후 7년환란이 끝난다음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으로 오시는 것은 지상재림때라 한다.117)(14:4 - 5, 살전 4:16 - 17참조) 휴거는 은밀하게 일어나는 사건이므로 큰 비밀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이 계시하고 깨닫게 하신 사람외에는 휴거의 비밀을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한다(성경 고전 15:51 - 52).  공중 나팔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 신령한 몸으로 바뀌기 때문에 하늘의 나팔소리가 휴거의 시간을 30일전에 정확하게 알려 줄 것이라고 한다.118) 휴거는 인류 멸망의 서막이라 볼 수 있는 안전하고 평안한 데땅트 때에 있을 것이며(살전 5:3), 이에따라 92 9월 지구촌의 평화축제가 절정에 달하는 바로셀로나 올림픽 직후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는 빛의 자녀들은 휴거의 시기를 알기 때문에 다른이들'(살전 5:4 - 6)과 달리 그리스도가 절대로 도적같이 오지는 않는다.119) 적그리스도가 언제 출현하느냐를 알아보면 이방인 시대가 끝나는 시기를 알 수 있으며, 적그리스도는 다니엘 2장과 7장에 나타난 열발가락 시대의 열뿔 가운데서 나오는 작은 뿔'( 7:8)로 비유되고 있으며, 곧 신흥 로마제국으로 부각하고 있는 EC통합과 함께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120) 적그리스도는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하고 자기 우상을 성전에 세워 황제숭배를 강요할 것이며, EC가 통합되면 옛날 분열되었던 로마의 열발가락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93년부터 성전을 짓기시작하여 예루살렘이 완전히 회복되고 이방인 시대가 끝나게 된다.121)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해진 70이레중 일곱이레가 지났을 때 예루살렘성이 중건되고 62이레가 지났을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사건으로 69이레가 지나고, 마지막 한이레를 남기고 공백기가 생기는데,122)이 기간이 끝나면 마지막 한이레,  7년간의 유대인 시대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70이레의 비밀이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9:24 - 27).  그러므로 이들은 92년 휴거설이 성경적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123) 그러면서 이같이 성경의 예언 메세지가 현실적으로 실현되어 가고 있음을 모른다면 재림의 주를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124) 이것은 사실을 믿으면 휴거되나, 믿지않고 비판하면 성령해방죄에 걸리므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한다.125)

 

 

   C . 다미선교회 종말론 비판

 

1992 10 28일 자정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즉,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맹신자들에게 때가 가까왔으니 수면시간을 줄이라'면사 매일 밤 자정시간에 집회를 갖는 기상천외한 종교집단이 다미선교회'이며 그들 무리의 교주가 이장림씨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한 비밀의 휴거사건의 하실일을 이들 무리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해놓은 때로부터 만 1년 전인 1991 10 28일에는 다미선교회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각종의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대대적인 집회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서 집중적인 전도를 전개하므로써,  정상적 사람들이 볼 때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도식적 방법을 통해서 자행되어지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40여개의 유사한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모여서 92 10 28일 자정에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것을 대대적으로 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예수 재림준비위원회 가 구성되고 91 11 12 - 14일까지 서울의 도심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대대적인 집회를 가진바 있다.  시한부휴거론자에 유혹되어 광신적으로 추종하는 무리들을 원격 조종하고 있는 중앙본부가 바로 다미선교회'이며, 이 이름은 1987 6월에 이장림이가 출판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의 글자를 줄여서 명명한 것이다.  사실 이장림은 감리교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와 1988년부터 생명의 말씀사에서 11년동안 성경을 번역했던 초기 사역에서는 건전한 신앙의 노선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히려 다미씨리즈 1,2 권정도 나올 때는 교계에서도 격찬했던 인물이다.  그 이후 계속적으로 나왔던 책들, 특히 경고의 나팔' 1992년의 열풍'을 쓰면서 계시정보를 보내오는 어린 종들의 이야기를 역어서 환상적인 소설을 쓰면서 모든 교계에서 등을 돌리므로 자칭 고독한 전도자'가 되버렸다.

 

이것은 완전계시인 성서를 경시함에 오는 결과인데, 그들은 예수의 재림때는 계시와 환상 그리고 입신을 통하여 정확하게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재림의 전조들로써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을 통한 무화과나무와 그를 통한 세대의 곡해, 그리고 이단들이 세력을 포섭하기 위해 잘 활용하는 E.C의 통합, 지구의 인구폭발, 핵폭발, 생태계의 파괴, 오존층의 와해, 사회악등의 사태를 들면서 위기감을 조장하며 기존의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세상사람들에게도 정도를 넘어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종말관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행하고 있는 비인격적이고 비이성적인 절박한 공포심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악한세대를 인내하며 성경에서 분부한 말씀을 지켜 행하여 나가면 그리스도께서 오늘 오시던, 내일 오시던 아니면 92년도에 오시던 상관없이 때가 되면 당연히 부활하여 휴거를 통해 공중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며, 불안과 공포로 인한 상막한 종교행위보다는 오히려 오늘의 현실에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므로써 그날은 믿는자들에게 최고의 기쁨과 축제의 날로, 희망과 소망의 날로 기대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다미선교회에 의해 행여나 타성에 젖어 있던 교계의 종말론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하였다면 불행중 다행한 일이지만, 비성경적 사실을 두고 교계를 혼미케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사실인바, 이들이 주장하는 이단성 종말론을 보면 아래와 같이 이단성 단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재림의 징조에 대한 성경해석의 곡해이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특히 미래의 사건인 종말론의 예언적 해석은 주관적인 개인적 사건을 통해서, 이러한 것이 마치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정당화 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것이다.  이씨는 마태복음 24:32 - 33절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있어서 예수님의 재림날짜를 산출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위에 나타나는 말씀은 예수께서 자신의 재림에 대한 징조를 비유로 말씀한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이장림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화과 나무는 오늘의 이스라엘 나라를 뜻하며,126) 따라서 1948 5 14일에 이스라엘이 독립하여 재건한 것을 무화과잎이 돋은 때라고 보고 있다.  그리그 그는 마태복음 24 32절의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고 한 말씀에서 이 세대'를 이스라엘의 독립을 기점으로 1948년도에 태어난 사람들의 일생이 끝나기 전에 이루어 질 것을 단정하고 있다.127)  에서는 일반적으로 무화과나무는 상징적으로는 번영과 평화(왕상 4:25,  4:4,  3:10,  1:7,  27:18), 결실과 소출에 대한 상징( 2:12,  3:17,  2:9)등을 뜻하며, 이는 인간이 타락하기전의 삶을 말하며, 이스라엘 나라와 그리스도의 재림( 13:6 - 9), 무화과나무의 떨어짐과 훼손은 심판( 34:4,  5:17,  2:12,  11:13,  21:19)등으로 쓰이고 있다.128)

 

이같이 무화과 나무는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있으나, 오늘의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산술적 시간을 맞추기 위한 오늘의 이스라엘 내지는 이 세대를 꼭 말한다고는 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독립과 회복이 주의 재림의 징조로 보는 것은 누가복음 21 24절의 성취로 보지만,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끌어내어 적용하는 것은 성서의 의미를 뛰어넘는 것으로 비성경적이다.

둘째로, 그들은 재림의 시기와 복음증거의 마지막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먼저는 예수님이 재림하는 전제의 약속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증거되면 속히 오리라 ( 24:14),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 21:20 - 24),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 24:5, 11), 주의 이름으로 큰 표적과 기이한 능력으로 인하여 미혹케하는 일들이 곧곧에서 나타남( 24:24), 미워하고 사랑이 식어지는 일( 24:10 - 12), 그리고 그 날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자리에 서게되는( 24:15)등의 징조가 나타난다고 했다( 9, 11장 참조).  그 이외도 성경은 자연계의 변화의 징조( 24:7,  21:11, 25, 27), 인간사회가 다원화 되고 크고 빠른 것의 변화가 있을 징조를 말씀해 주고 있다( 12:4,  17:27, 28,  24:27, 28).  그런데 이장림씨는 소위 계시받는 아이의 입장, 특히 진군(본명은 김현진)이라는 아이의 계시를 통해 1992 5 9일에 북한에 가서 그해 8 28일에 순교할 것이바, 그것이 지구상에서의 복음증거의 맨마지막이 될 것이므로 곧 세상의 끝이되며, 연이어 그리스도의 재림이 온다는것이다.129)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장림씨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엄밀히 말하면 땅끝까지의 복음증거의 종착역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 역시 주님의 재림시기의 주권이 아버지에게 있는 비밀인 것처럼 아버지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일 것이다)보다 오히려 진군의 계시(그것이 미혹의 영으로 인한 사탄의 거짓계시의 일종일 수도 있음)에 더 의존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장림은 재림의 시기를 성경은 확정지어 났으며, 그리스도인들이 그 확정된 날을 알아야 하며, 그날을(92 10 28일 자정) 믿고 기다리는 자는 휴거한다고 한다.130) 사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재림은 곧 휴거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장림씨는 여러가지 성경말씀과( 17:26, 30 - 31,  7:30,  29:10,  8:13 - 14,  7:4, 18:17, 19:13,  9:5,  14:33 - 34,  6:1 - 20,  16:14), 92년도 휴거설에 대한 어린종들의 일관된 계시정보등을 통해 종말의 때를 하나님께서 확정하셨고,131) 또한더 나아가서 그 결정은 변경하지 않으시며( 3:6참조), 따라서 그 확정된 날을 알라고 하셨고( 24:37 - 39, 16:3,  3:7, 요엘 2:38,  33:3,  1:17 - 19,  16 :13, 25, 고전 15:51 - 52,  10:25,  10:6 - 7 참조), 그러므로 당연히 영으로 깊이 기도하고 하늘의 계시를 받는 사람에게는 당연히(어린이에게도 성령을 받아 예언하고 있듯이)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다미선교회는 92 10 28일 자정재림설을 믿어야 휴거하고, 믿지않고 부정하면 성령훼방죄에 의해서 정죄된다는 아나무인격의 독선적 주장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장림씨와 다미선교회 스스로 모순의 자기 무덤을 판격이 됐다고 하겠다.  분명히 성경은 재림에 대한 때와 기한은 알바아니며, 이 사실은 천사도 주님자신도 모르는 아버지만의 권한에 있는 것으로( 24:37,  1:7), 모르기 때문에 말세가 임박하고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은 노아의 홍수시대에 불신자들이 멸절했던 것처럼 인자의 오실때도 여전히 불신자들은 죽는 시간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쾌락을 즐기며 죽어가지만, 준비된 신자들은 두사람이 밭갈다가도(잠을 자다가도, 맷돌질을 하다가도) 들림받으며, 다미선교회와 유사한 시한부 종말론들처럼 도둑질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잠을 주려가면서 자정을 통해 철야를 하지않아도 다 주님이 휴거될 때 마땅히 믿는자들을 휴거시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24:40, 41,  17:34).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짜를 아버지만이 알게한 것도 믿는 사람에 대한 인격적 삶을 살며 말세를 항상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한 하나님의 크신 섭리이며, 믿지않는 자에게는 불의 심판을 당연히 받아야하는 하나님의 공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장림씨는 모든 것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계시로만 그의 잘못된 실수를 합리화시키려고 하지만, 정통신학에서 계시와 영감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에게서 완료되었으며, 그 증거로 우리에게 계시의 완벽한 성경을 주신 것이며, 다만 주어진 계시를 잘 알 수 있도록 성령의 조명(illunation)은 지금도 계속되며 기록된 성경의 계시와 영감을 깨닫게 해주는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의 은사인 것이다.  이장림씨는 이렇게 완벽히 계시된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 오히려 성경속에 하나님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우상을 만든다고 성경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완벽히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경시하고 자신을 포함한 어린 아이들의 계시정보에 현혹되어 그것을 더 믿는 비성경적 오류를 범했다.  기독교의 성경관과 그 속에서 나타난 계시관은 이씨가 말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성경은 더 이상 가감할 수 없는 완전한 계시 그 자체이다.  성경은 유능한 인간의 지식을 통해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이사야 34 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화의 입이(친히 하나님 자신의 말씀으로) 이를 명하셨고 그의 神(인간의 방법으로가 아닌)이 이것들을 모우셨음이라 , 디모데후서 3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베드로후서 1 20 - 21절에서 먼저 알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것이 아니니 에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는 말씀을 통해 성경은 입으로 친히 말씀하신 것이며, 또 성경의 완전성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시편 19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며 , 요한계시록 22 18 - 19절에서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할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의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고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성서는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완벽한 계시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계시(Reveration)는 완전한 것이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에서 계시란 (神) 혹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인간에게 드러낸 지식, 또는 초자연적인 수단에 의해서 드러내거나 알려진 어떤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132) 이같이 계시란 드러냈다 는 말인데, 이는 인간이 한때 가지고 있엇으나 당분간 잊어버리고 있는 지식과 관련된 것이 아니며 인간이 자기힘으로 열심히 탐구하여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종류도 아니며, 사단의 미혹으로 인하여 가장한 천사처럼 속여서 인간으로 하여금 무엇인가 보엿다고 주장하는 종류의 것도 아니다.  계시는 인간안에서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밖으로부터 인간자신이 찾을 수있는 능력의 한계밖으로 부터 인간에게 다가오는 지식을 말한다.133)   기독교에 있어서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 보이는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계시되어진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인간이 부지런히 탐구한 최종적인 결과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 자신을 알게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의 표현인 것이다.134) 특히 종말에 관한 계시와 예언은 구약의 다니엘서를 비롯한 소.대선지서와 신약의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 그리고 요한계시록 및 기타 종말 예언에 관계되는 성경구절에서 하나님은 종말에 관한 예언이나 계시의 약속이 재림의 징조 및 성도들의 말세를 사는 윤리에 대하여 완전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이장림씨는 성서의 모든 계시를 다 인정하지 않는다.  지나친 신비주의자들이나 다미선교회는 성서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나님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성경기록을 위하여 주신 성령의 특별한 계시는 중단하셨으나, 환상, 음성, 환각, 꿈 등에 의해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니 개인적인 것이고 공적이고 교회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공적이고 교회적인 계시와 예언은 성경 66권에서 종결된 것이다.  칼빈(John Calvin)은 사도는 일시적인 성경기록의 은사로 보고 선지자는 기록된 성경을 해석하고 전하는 영감받은 자로 본다.  , 이들은 성경에 관한 탁월한 해석자이며, 교회에 직접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특별한 지혜와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들이고 적절한 말씀을 주는 사람들로써, 구약의 예언의 은사를 받은 선지와는 구별한다.135)  므로 구약의 예언을 선포한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시대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어서 기록하게 한 성경 66권의 기록계시의 완료에도 불문하고( 2:20, 3:5), 흔히 계시를 받았다는 이장림씨와 어린이들의 계시정보 및 펄시콜레를 위시한 대부분의 계시 수신자들은 환상, , 환청, 환각등에 의존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상과 같은 것을 주실 수 있으나 개인적이고 사적인 계시는 웨슬레(John Wesley)가 주장한것 처럼 완전 계시인 성경으로 돌아가서 검증해야 하는 것이다.136) 그렇지 않고 성서와 무관한 것은 사단(고후 11:11 - 14)이 가져다 줄 수도 있고, 심리학자며 의사인 프로이드가 주장한 무의식층에 억압된 수많은 잠재의식들의 활동일 수도 있고, 신경이 약할 때 혹은 정신증과 정신 신경증에 의한 신경이상일 수도 있고,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심령계시( 13:1 - 23)일 수도 있다.137) 특히 한국에 있어서 계시와 예언의 남용은 전통적인 무속신앙과 범신론적인 요소에 잘못 뿌리를 둔 개인과 단체가 잘못된 영을 받으므로 이단성 교회(사이비 교회)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예언된 계시는 시간과 환경을 초월하여 분명히 이루어져 왔고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사단에 의해서 내지는 비성경적 계시의 사례들은 잘맞는 것같이 보이나 결국 잘못으로 결론이 종언된다.  다미선교회의 계시도 이와같은 미혹된 사단의 유혹임에 조금도 의심할 이유가 없다.  성경은 갈라디아서 1 8절에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 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 , 또 요한1 4 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고 말씀하므로 영분별을 잘 하도록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이장림씨나 어린아이들의 계시를 더이상 남용하지 말고 성경의 계시안으로 들어와서 확인해 보아야한다.  성경은 복음의 끝이 한국이라고 말씀한 적도 없고 다만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증거되면 이라고 했고, 재림의 시기에 있어서도 천사도 아들도 모르는 일의 비밀을 알려고 하는 자체가 기독론의 무시며 성서의 완전성에 반(反)하는 것이다.

 

세째로, 이장림씨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잘못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림과 더불어 92년도 휴거를 믿는 자만이 휴거하되 몇단계로 나누어서 휴거한다며, 그 중에서도 일부는 그리스도의 공중재림시 휴거하고, 또 한부류는 믿음만 가지고 휴거될 수도 있지만 대환란시 환란을 받으면서 휴거메세지를 전하다 순교하여 휴거되는 자, 또 한부류는 환란때 도피성이 있어서 피신해 있다가 그리스도의 지상재림시 천년왕국에 합류하는 혼합적 휴거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휴거란 환란과 시험의 때를 당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동시에 일제히 주께로 끌려 올라가는 것이다.  이는 예수를 믿고 먼저 돌아가신 분들은 살아서 믿고 있는 자들보다 더 빨리(동시적인 사건이지만 순서적인 입장에서 볼 때) 휴거되어 일제히 휴거되는 것이다( 24:31, 살전 4:17, 살전 1:10, 3:10, 살전 2:7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그들이 정한 시한부 종말론을 믿는 자만이 휴거되고 그것도 순교 사명자는 예수를 잘 믿어도 환란날에 진노의 잔을 마시면서 순교하고 난후 지상재림때 휴거하며, 이들을 가리켜 이삭줍기 추수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라 말하고 있다.138) 그래서 주님 오시는 92 10 28일에 휴거되는 자도 복이지만 99년도 그리스도 지상재림까지 환란을 끝까지 당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성도도 복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수주의적 정통신학에서 말하고 있는 휴거론은 한번으로 모든 휴거가 끝나는 것이며, 따라서 정상적 믿음 생활을 했던 자들은 환란과 시험의 때를 면하여 공중재림 하시는 주님을 만나지만, 예수를 믿지않은 사람과 믿다가 타락한 사람은 대환란때 회개하고 주님을 믿음으로 순교하므로 주님의 지상재림시 부활하여 천년왕국에 동참하게 된다( 24:13, 21 - 22, 29 - 31,  7:9 - 17참조).  따라서 다미선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받은 신자가 하나님의 사명따라서 그들이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휴거일에 휴거되는 신자가 있고, 구원받아도 휴거메세지를 전할 사명자는 7년 대환란을 통과하며 창조이래로 없었던 대환란( 24:21)을 당하므로써 성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는자들은 모두가 일제히 진노(오르게), ( 2:5, 12:19,  6:16, 17) 시험(테레오)의 때를, ( 3:10) 제하여 휴거하게 되는 성서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다.139) 휴거와 대환란의 주장도 전천년설에 입각한 환란전 휴거설을 주장한다해도 그 속에 있는 진리는 비성서적이다.

 

네째로, 마태복음 24 14절의 복음증거의 끝이 북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도 진군의 계시정보에 맹목적으로 교리화 하고 있다.140) 진실은 그의 계시를 공포하면서 92 5 9일에 북한에 들어가 복음을 증거하다가 그해 8 26일 순교한다고 하면서 최후의 종말에 앞서 북한에서 복음의 끝이 온다는 것이다.  사실상 마태복음의 본문은 모든 나라들'이라고했지 한나라라고 하지 않았고, 또 모든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이들만 곡해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대부분의 이단성 종파들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141)

 

. 결    론

 

   A . 요약과 비평

 

 

이상에서 성서를 토대로 전천년설에 입각한 환란전 휴거설의 종말론에 근거하여 세가지 유형의 이단적 종말관을 살펴 보았다.  그 결과 이단성 종말관이 일어나는 공통적인 원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성서를 근거로한 객관성을 벗어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을 통한 계시관, 역사관, 성경관을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하는 것이 그것이다.  성서를 근거로하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고 비공식적인 체험과 계시를 무조건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며 역사속에 오셔서 역사를 이루어가신 분이며 앞으로 미래의 종말의 사건도 역사의 주장자로써 구속사를 주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깨닫고 보다더 내일의 역사를 볼 수 있는 통찰력 또한 필요하다 하겠다.  또 하나님은 인생들과 신자들과 만남을 원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개인적 주관적 내지는 비밀리에 하나님을 만나며 기적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앞날에 대한 일들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계시라고 해도 좋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하여 직접 계시하셨고 그 결과로 기록된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를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록된 계시뿐만 아니라 개인의 꿈과 환상과 환경등을 통해서도 계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므로 지..의의 인격적 삶을 살도록 허락하셨다.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신지식(神知識)을 갖는데는 이성의 역할이란 중요한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데 절대적 중요한 요소이며 미래에 대한 종말관을 갖는데 건전한 지혜를 제공함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알도록 안내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까지나 성서를 벗어난 체험적계시, 전통적 역사, 이성등이 전적인 하나님의 뜻이며 섭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  웨슬레(John Weslsy)도 이상과 같이 그의 신학의 개관은 성서와 계시(체험)와 전통(역사), 그리고 이성이라는 사각(Quadr- ilateral)의 신학적 방법과 종교적 권위를 이해했다.142)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계시적 체험과 역사속에 이루어진 전통적 유산과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하셨고 현재와 미래가운데 섭리하실 의도()을 알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므로 언제나 참과 거짓을(성령의 영으로냐 아니면 사단의 영으로냐)가리기 위해서 반드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여 모든 것의 최고의 자(규준)를 성서에 두었다.143)  같은 관점에서 종말관의 구조적인 틀을 볼 때는(:다미선교회의 제한적인 시간개념을 벗어난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 그리고 7년 대환란과 천년왕국) 거의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도 있으나, 기타 이단성이 있는 무리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 오류들은 너무나 지나친 성경의 경시사상 내지는 부정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아니면 성경에 버금가는 교리서(:구원파는 10가지 핵심교리서'를 가지고, 통일교는 원리강론')을 가지고 성경과 동등내지는 우위에 둠으로서 완전 계시인 성경을 부정하고 있다.  또 이들의 공통점중의 하나는 지나친 개인주의적 내지는 소영웅주의적인 발로에서 자신의 주관적 계시를 통한 체럼을 절대화시켜 버림으로서(:성경의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또하나의 우상을 만든다고 하면서 자신과 어린종들이 받고 있는 계시는 __ 하나님 아버지외는 알 수 없다는 계시까지도 무시하고 __ 성서를 우선하는 계시로 주장하는 다미선교회, 예수의 부활을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 주의 영이 자기에게 임하여 진정한 재림주로 자처하며 하나님과 직통의 핫라인으로 령통한다는 통일교회의 계시관을 보며) 스스로 이단의 교주가 되었다.  또한 이들은 지나친 종말관을 내세우며 임박한 환란을 주지하면서(:심지어 재림날짜까지 정해놓고 그들의 주장을 믿는자만 휴거한다는 다미선교회, 성경을 신약(新約)이라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간지나 주간지의 사건들 - 특히 이스라엘과 관련 있는 것을 중심 - 을 구약(約)이라하여 스크렙북 까지 만들어서 임박한 종말을 전하는 구원파등  교계 내지는 사회를 혼란케 하고 있다.  또한 정통신학에서 주장하고 있는 천국과 지옥의 진리를 부인하며 왕국이 이 땅위에 임하며(: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특히 한국이 종말의 장소가 될 것(:통일교, 박태선, 복음의 끝이 북한이라고 하는 다미선교회 등), 그리고 종말관을 독특하게 주장하는(:영혼수면설을 주장하면서 내세를 부정하는 여호와의 증인, 초림의 주로오신 그리스도의 육체적 구원의 실패로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사람의 몸으로 다시태어 나야한다는 통일교, 부활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구별해서 집단생활을 해야한다는 구원파)등의 이단성의 특성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같이 비성경적 체험, 계시, 전통등의 규명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그리스도인이 현혹되며 실지 이단의 소굴로 빠지는 안타까움을 보게된다.

 

 

   B . 성서적 종말론의 제언

 

이상에서 기독교의 정통교리를 신학적인 면에서 볼 때 , 基督論, 人間論 뿐만 아니라 그외에 經論, , 終末論등의 기독교의 기본적인 정통성을 잃어버리면 이단이 될 우려가 크다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종말론에 있어서 성서에 근거한 성결교회 헌장에서는 종말의 사건을 재림은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던 그 몸대로 다시 오시는 일이니 친히 천년시대 이전에 재림이 절박함을 믿으며 생각지 않을 때 주께서 구별할 것이며 또는 지상에 재림하시므로 거짓 그리스도가 멸망하고 천년왕국을 건설하다. ( 1:9 - 11, 살전 4:14 - 17  24:42, 25:13 살후 2:3 - 8,  25:31,  14,  22:20,  9:9 - 10,  2:18참고)144)   성경을 근거한 정통적 종말관을 잘 제시하고 있는바, 건전한 성서적 종말론은 아래와 같다.

1. 그리스도의 재림은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이루어진다.

 

주께서 공중에 오셔서 신도들을 영접하실 일과 그 성도들과 함께 지상에 재림하실 일을 구별할 것이며 145) 이것이 그리스도는 공중에 재림하고 지상에 재림하는데(살전 4:16 - 17), 특히 이 재림에 대한 장소는 전천년설에 입각한 다양한 휴거설(특히 환란전휴거설과 환란후휴거설에 대한 차이)때문에 디이슨(Henry Thiessen)은 공중의 재림목적과 지상의 재림목적에 대해서 구분하여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자기백성을 자기에게로 영접해 들이기 위하여 공중에 오시며( 14:1 - 3), 또한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행적을 판단하고 상을 주시기위해 오시며( 5:24), 무엇보다 그리스도는 공중재림의 목적을 불법의 비밀을 막고 있던 자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공중에 재림하신다고 했다146)(  2:6 - 8).  그리고 지상재림의 목적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여 지금까지 사람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게 계셨으므로 자신과 휴거된 신자들을 만천하에 계시하시기 위하여 이 땅위에 재림하신다.147) 따라서 그리스도의 종국적인 재림은 그리스도를 향한 신자들,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을 구출하고 축복하기 위함이다.

 

2. 종말에 일어날 부활체는 영혼의 부활이 아닌 육체의 부활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 20절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다 라고 고백하므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하는 것은 믿는자들의 첫 보증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카트(Charles W.Carter)는 해석하고 있다.148)

 

이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부활의 보증이다(고전 15:).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죽은자의 부활을 증명하는 것이며, 살아있는 신자들이 장차 영생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149)  에 와서 신체적 부활을 믿지않는 부류들이 늘고 있다.  감리교 신학대학의 홍성수 교수는 예수의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면서 예수는 과연 육체로 부활했는가 라는 질문에서 인간이 죽어 그 영혼이 하나님과 보다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된다면 그것 자체로써 기독교의 구원은 완성되는 것인데 사람들은 무엇이 모자라는지 하나님과 함께 있던 영혼이 공중이나 지상으로 되돌아와 육체라는 낡은 옷을 덧입는 소위 부활을 어리석게 믿는다고 꼬집으며, 육체적 부활을 부인한다.150)

요한복음 20 19절에서 인간의 육체는 썩고, 욕되고 , 약한 육의 것이나 이 부활한 몸은 썩지 않고 영화로운 강한 영의 몸인데, 이 부활한 몸은 시간과 공간에서 초월하고, 물질에서 초월하고, 남녀의 성에서 초월하고, 늙지 않고, 죽지않는 몸이니, 곧 영생의 몸이다. 라고 했다.  따라서 인간의 신체적 부활은 성경이 가르쳐준 진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현딜 것이다라고 와일리(Wiely)는 주장했다.151)

 

 

3. 성경은 재림의 날짜에 대해서 비밀로 하고 있다.  마태복음 24 36절에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고 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영통한 사람(문선명은 자신이 친히 영통하므로 일만악과 싸워 이겼고 하나님 아버지와 직접 하늘의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도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알바 아닌 것이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초대교회 몬타누스주의에서 비롯하여 안식교회의 창시자 윌리암 밀러 통일교회, 그리고 최근의 다미선교회등이 끝임없이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고 임의로 지극히 주관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짜를 정하여 실패했고, 특히 다미선교회는 앞으로 1년 남짓(1992.10.28.자정) 후에는 그리스도가 재림한다고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  성경은(살전 5:2 - 3,  24:3,  16:15등을 통해서) 재림의 날짜는 알 수 없으나 도적같이 임산부의 산기같이 갑자기 부지중에 오신다고 약속하므로 그 징조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김응조 목사는 재림의 날짜가 하나님 아버지 외에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부쳐둔 이유는 무엇보다 참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별하기 위함이라고 했다.152)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므로 심판에 대한 표준과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며 거짓 선지자들의 가증스러움을 심판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러한 망령되이 행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재림의 날자를 비밀리에 두는 것이다.153) 이는 신자로 하여금 항상 깨어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함이다.

 

 

4.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전에 이루어 질것이다.  이것을 일명 전천년설(The Pre-Millennialism)이라고 부른다.  천년왕국설에 관해서도 학자들마다 다르다.  그 중에 후천년설(The Post- Millennialism)은 복음이 점진적으로 세계를 감화하고 풍부한 영적 축복이 내리고 많은 기간의 배교와 악의 세력과의 무서운 최후의 투쟁이 있고 난 후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고, 부활과 최후의 심판이 있는 것을 주장하는 부류로써, 브라운(D.Brown), 핫지(Archilbald Hodge), 쓰미스(Henry B.Smith), 쉐드(Willian G.Shedd)등이 있다.154) 천년시대가 없다는 무천년설(The Anti-Millennialism)은 요한계시록 20장에 천년'이란 말이 여섯번 나오는데 이를 부인하고 있는 부류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중간에 어떠한 상태로 통과하지 않고 마지막날에 완전하고 왕국을 더 주장하는 것으로 뻘콥(Louis Berkhof), 모리스(Leon Morris), 헉콕크(Michael Wilcock), 콕스(William E.Cox)등이 있다.155) 그러나 성경은 종말이 임박해서 경건하 성도들이 박해와 핍박을 받다가 모든 악의 세력의 근본인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될때 휴거하고, 적그리스도는 거룩한 성전을 훼파하는 동시에 그리스도가 재림하고 동시에 성도들은 부활하고 7년 대환란이 지나므로 지상재림하여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천년왕국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20:1 - 6).  이것은 전천년설로써 성결교회 교리가 지지하고 있으며, 학자로는 랑겔(Langel), 다비(John N.Danby), 스코필드(Cyrus Ingerson Scofield), 펜테코스트(Dwihwt T.Pankcosh), 디이슨(Theissen)등이 있다.156) 따라서 성서를 무시하는 비성서적 계시관을 통해 1992 10 28일 자정에 그리스도의 공중재림 한다는 버팀목하나로 장안을 어지럽게 하는 다미선교회와 이장림씨는 바로 그들이 주장했던 그날이 닥치면 파멸의 날인 것을 알게될 것이며, 그 외의 이단적 종파도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그날에야 자신들의 정체를 알게될 것이다.  미혹하는 영에 속지않고,157) 온전한 종말의 삶을 준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어진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며 그리스도의 오실 때를 인내하며 소망중에 기다리는 지혜로운 신자들이 되어야 겠다.  보다더 많은 시간을 드려서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며 철저한 하나님 말씀에 입각한 신학있는 목회가 이단으로부터 격리되며 보호받는 최상의 길이라 하겠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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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회법제부, 「헌법」 (서울:총회출판부, 1955), p.19.

2) 강근환,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성 ,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1), 3월호, p.34.

3) Ibid., pp. 34 - 40.

4) B.K.카이퍼, 「세계기독교회사」, 김해연역 (서울:성광문화사, 1983), pp.42 - 43.

5) 문상희, 정통과 이단이란 무엇인가 ,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1), 3월호, p.33.

6) 나학진, 이단에 대한 사회윤리적 진단 ,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1) 3월호, p.41.

7) 강근환,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성 ,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1) 3월호, pp.34 - 35.

8) Ibid., pp.36 - 40.

9) 탁명환, 「기독교이단연구」 (서울:한국종교문제연구소, 1989), p.42 - 73.

10) 문상희, 정통과 이단, 교파와 종파란 무엇인가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1) 2월호, p.32.

11) 강근환, op.cit., pp.34 - 40.

12) 문상희, op.cit., p.32.

13) 탁명환, op.cit., p.16.

14) 문상희, 한국 기독교계 신흥종교실태  (기독교연감, 1972), pp.55 - 56.

15) 지명관, 「한국인과 기독교」 (서울:기독교대한교육협회, 1969) p.145.

16) Ibid., pp.145 - 146.재인용.

17 안병무, 묵시문학과 한국교회 , 「신학사상」 30호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80), p.536.

18) 성서백과사전, 문학으로서의 묵시 , 「성서백과 대사전」 (성서교재 간행사, 1980), p.213.

19) Ibid., p.215.

20) 박영관, 「구약총론」 (광국:광국고등성경출판부, 1966), p.2.

21) Ibid., p.3.

22) Donald,A.D.T., The Wesleyan Quadnilateral (Michlgan:Grand Rapids, 1990), p.9.

23) 문상희, op.cit., p.39.

24) 김득렬, 한국예수교전도관소고 , 「현대와 신학」 6집, p.219.

25) 탁명환, op.cit., pp.88 - 92.

26) 지원용, 「한국선교의 과제」 (서울:기독교서회, 1971), p.132.

27) 김태곤, 한국의 샤마니즘 , (중앙일보, 1972.10.9일자).

28) 김광수, 통일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크리스챤라이프, 1972. 2.28일자)

29) 김의한, 기독교와 통일교 (신학지남 42권 2집), p.19.

30) 지원용,  op.cit., p.127.

31) 문상희, op.cit., p.45.

32) 탁명환, op.cit., p.136.

33) 탁명환, op.cit., p.128.

34) 탁명환, op.cit., p.129. 김병문의 기독교근본원리 의 중요 주제는 하나님의 창조사상', 천사장의 횡적사랑에 의한 아담 하와의 타락경위', 성모마리아 세례 요한등 사명담당자들의 책임미완수로 초래된 예수의 십자가의 비극'등이 있다.

35) 박기민, 「한국신흥종교연구」 (부산:혜림사, 1985), p.202.

36) Ibid., p.203.

37) 통일교, 「원리강론」 (서울:통일교협의회, 1966), p.17.

38) Ibid., pp.155 - 157.

39) Ibid., p.524.

40) Ibid., p.538.

41) 탁명환, op.cit., p.136.

42) 목창균, 이단의 종말론과 그 비판 ,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0) 4월호, p.83.

43) Ibid., p.83.

44) Ibid., p.83.

45) 탁명환, op.cit., p.136.

46) Ibid., p.136.

47) Ibid., p.136.

48) 목창균, op.cit., p.84.

49) 탁명환,「기독교이단연구」, op.cit., p.136.

50) 통일교, op.cit., p.17.

51) 총회출판부, 「헌장」 (서울:기독교대한성결교회, 1955), p.19.

52) 이성주, 「조직신학」 3권 (서울:성신대출판부, 1991), p.305.

53) 고전 1:7, 살후 2:7, 마 10:23, 25:31, 막 8:38, 요 21:22.

54) 총회법제부, op.cit., p.19.

55) 김응조, 「말세와 예수의 재림」 (서울:성청사, 1950), p.28.

56) Ibid., p.28.

57) 원리강론, op.cit., pp.227 - 228.

58) 통일교, 「원리해설」 (서울:성화사, 1962), p.221.

59) 목창균, op.cit., pp.83 - 84.

60) 이성극, 「조직신학」 3권, op.cit., p.358.

61) Ibid., p.358.

62) 헌법개정위원회, op.cit., p.32.

63) Charles W.Carter,  The Wesleyan Bible Comentary, Vol.Ⅴ, p.229.

64)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WM.B.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4), p.722.

65) 헌장개정위원회, op.cit., pp.32 - 33.

66) Thiessen, op.cit., p.386.

67) 헌법개정위원회, op.cit., p.33.

68) 이성주, op.cit., p.378. 재인용.

69) 탁명환, op.cit., p.136.

70) Ibid., p.136.

71) Ibid., p.211.

72) 정동섭, 구원파의 이단적 배경 ,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1) 5월호, p.239.

73) 탁명환, op.cit., p.214.

74) 정동섭, op.cit., pp.245 - 246.

75) Ibid., p.246.

76) Ibid., p.242.

77) 권신찬, 구원파가 믿는 믿음의 교리 , 「목회와 신학」 (서울: 두란노서원, 1991) 3월호,  p.67.

78) Ibid., p.67.

79) 대체적 종말심판에 관계되어진 서적들:영혼을 묶는 사설, 세계정부와 666, 불안에서 평안으로, 잠시잠깐 후면, 한계에 도달한 인류역사, 나팔절과 휴거, 임박한 대환란, 인류파멸의 징조와 중도사태, 지구의 일생 등.

80) 정동섭, op.cit., p.261.

81) 탁명환, op.cit., p.224.

82) 정동섭, op.cit., p.261.

83) Ibid., p.261.

84) Ibid., p.262.

85) 정동섭, op.cit., p.264.

86) 정동섭, op.cit., p.263.재인용.

87) 장두만, 대환란과 교회와의 관계 , 「현대종교」 (서울:현대종교사, 1991) 4월호, p.44.

88) Tom McCall and Zola Lvilt, Raptured, Maevest Mouse Pub- lishing, Irving, Callifonia, 1975), p.49.

89) 박창환, 「헬라어 성서 사전」 (서울:대한 기독교 서회, 1965), p.49.

90) Gerhard Kittle, Theological Dictipnary of the N.T.(vol.I) (Wm.B.Zerdmans Publishing Company, Grand Rapids, Michigan, 1968), pp.472 - 473.

91) Joseph H.Thayer, A Greek-English Lexican of the N.T.,(New York:American Book Company, 1889), p.74.재인용

92) Loraine Boettner,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Iillino- is:Publishing Company, 1980, p.159 - 160.

93) 총회출판부, op.cit., p.19.

94) 정동섭, op.cit., p.261.

95) 이장림, 「1992년의 열풍」 (서울:광천, 1991), p.73.

96) Ibid., p.57.

97) 이장림,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서울:다미선교회, 1989), pp.95 - 96.

98) Ibid., p.98.

99) 이장림, 「경고의 나팔」 (서울:광천, 1990), p.62.

100) Ibid., pp.64 - 66.

101) 이장림, 「1992년의 열풍」, op.cit., p.58.

102) Ibid., p.58.

103) Ibid., p.59.

104) Ibid., p.61.

105) Ibid., p.62.

106) Ibid., p.63.

107) 이장림, 「경고의 나팔」, op.cit., pp.68 - 69.

108) 이장림, 「1992년의 열풍」, op.cit., p.64.

109) Ibid., p.45.

110) 이장림,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op.cit., p.87.

111) 이장림, 「하늘문이 열린다」, op.cit., p.80.

112) 이장림, 「1992년의 열풍」, op.cit., p.45.

113) Ibid., p.46.

114) Ibid., p.66.

115) 마 24:29 - 30, 43, 살전 5:2참조.

116) 이장림, op.cit., p.68.

117) Ibid., p.68.

118) Ibid., p.69.

119) Ibid., p.70.

120) Ibid., p.79.

121) Ibid., p.79.

122) 이 공백기를 2000년의 이방인 시대라고 봄.

123) 이장림, op.cit., p.79.

124) Ibid., p.81.

125) 천정웅, 「시한부 종말론과 실현된 종말론」 (서울:말씀의 집, 1991), p.70.

126) 이장림,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서울:그루터기, 1988), PP.44 - 46. 이 책에서 그는 무화과 나무를 오늘의 이스라엘이라고 보면서, 이는 제 3차 세계대전(World War Ⅲ)의 저자 테이러(Charles Taylor)와 비콘(Beacon)주석'의 마태목음 저자 얼(Ralph Earle)등의 신학적 입장을 지지하면서 예로 들고 있다.

127) Ibid., p.46. 여기서 이씨는 성서밖에 있는 예언가(점술가)들의 예를 열거하면서, 프랑스의 유태인으로 태어나 의사의 직업을 하면서 Les siecles'(여러세기란 뜻)라는 책을 쓴 노스트라담무스의 예언중 1999년 7월 종말설과, 일본의 동경대학 로켓트 공학교수인 이토카와 히데오의 1999년 8월 18일 지구폭파설, 미국의 예언가 에드가 케이시의 1998 - 2000년 사이의 지구의 종말설을 인용하여 근접한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 그는 성경 및 종교학자들의 견해들을 인용하여, 세계역사를 6000년간(창조역사의 6일간의 하루를 1000년간으로 보고, 구약 4000년과 신약의 예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를 2000년으로 계산)으로 계산한 이레니우스 저스틴, 터툴리안등의 주장을 산술적으로 인용하여 7년 대환란을 차감한 1992년을 예로 제시한다.

128) 강병훈, 「쉐마 주제별 종합자료사전」 (서울:성서연구사,1990) 15권중 제 5 권, p.61.

129) 이장림, op.cit., p.29.

130) 이장림, 「1992년의 열풍」, op.cit., p.64.

131) Ibid., pp.41 - 51.

132) Leon Morris, 「나는 계시를 믿는다」, 허균역 (서울:생명의 말씀사, 1985), p.10.

133) Ibid., p.10.

134) Ibid., pp.10 - 11.

135) John Calvin, 「신약성경주석」 제 8 권, 존.칼빈성경주석편찬회, (서울:성서교제간행사, 1982), p.369.

136) Donale,A.D.T., The Wesleyan Quadrilateral (Michigan:Grand Rapids, 1990), pp.135 - 136.

137) 천전웅, 이단적 종말신앙과 목회 대처방안 ,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원, 1991), p.83.

138) 이장림, 「1992년의 열풍」, op.cit., p.66.

139) 장두만, 대환란과 교회와의 관계 , 「현대종교」, 1991년 4월호, op.cit., pp.47 - 48.

140) 이장림,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op.cit., p.29.

141) 문선명은 계 7:2, 박태선은 사 41:14, 나운몽은 미 4:1 - 3을 자신들이 편리한대로 성서를 해석한 나머지 한국이 종말의 중심지라 봄.

142) Donald,A.D.T., The Wesleyan Quadrilateral (Michigan:Grand Rapids, 1990), p.91.

143) Ibid., pp.135 - 136.

144) 헌법, 기독교대한성결교회출판부, 1955, p.19.

145) 헌장, op.cit., p.19.

146) Henry C.Thiessen, 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Michigan:Wm.B.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5), p.348.

147) Ibid., p. 355.

148) Chales W. Carter, The Wesleyan Bible Comentary ,Vol.Ⅴ., p.229.

149) Berkhof, Sysematic Theology  (Grand Rapids:Wm.B.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4), p.722.

150) 중앙일보, 1991년 6월 29일자.

151) 이성주, op.cit., p.378.재인용.

152) 김응조, 「말세와 예수의 재림」 (서울:성청사, 1950), p.28.

153) Ibid., p.28.

154) 이성주, op.cit., pp.437 - 438.

155) Ibid., p.441.

156) Ibid., p.441.

157) 갈 1; 6 -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가 혹 하늘로 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은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

요한 1서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