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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존 번연 / 천로역정

하나님아들 2012. 11. 16. 11:52

 

 

 

            존 번연의 초상화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

 

1628년 영국 베드퍼드의 엘스토우에서 땜장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경건서적들과 부인의 영향으로 회심하고, 역사상 길이 남는 설교자가 되었다. 그 당시에 설교를 법으로

금지하였음에도 12년간의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뜨거운 열성으로 복음을 전했으며 또한 약 60권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번연은 설교자요, 복음전도자요, 목사로서의 열심과 근면과 헌신 때문에 '번연 주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의 대표작은 『천로역정』을 비롯하여, 그의 영적 자서전인 『죄인의 괴수에 넘치는 은혜』와

『거룩한 싸움』 등이 있다.

......................................................

 

 "번연, 오늘 당신의 설교는 너무나도 훌륭했소!"
"당신이 굳이 나에게 그것을 상기시켜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강단에서 내려올 때 이미 마귀가 나에게 그것에 관해

속삭였기 때문입니다."

성경 다음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책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그의 삶이 바로

천로역정에 나오는 '크리스챤'과 같았다.

존 번연은 1628년 영국 베드포드(Bedford) 근처의 엘스토우(Elstow)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정직했으나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매우 가난한 형편이었으나, 존 번연은 학교에 가서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는 아버지

밑에서 '땜장이(솥이나 냄비 등을 때우는 사람)' 일을 배웠다.

그는 매우 죄악된 삶을 살았는데, 천로역정의 크리스챤이 무거운 죄짐을 지고 있는 것 같았다. 도박이 그의 생활에서 떠나지

않았고, 언제나 술에 잔뜩 취해있었으며, 입에서는 언제나 욕설이 붙어다녔다.
어느날 그가 여느 때 처럼 이웃 점포의 진열장 앞에 서서 미친 사람을 저주하고 욕설을 퍼붓고 놀리고 있었다. 그 점포 안에

있는 여인이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내가 태어나서 들어보지도 못한 욕설을 다 하시네요! 이 마을의 젊은이들이 당신과 친구가 된다면 전부다 그들의 인생을

망칠 거예요!"

이 말에 충격을 먹은 번연은 많은 시간 동안 고민하고 괴로워하다가 손에 성경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가 25세 되던 1653년에는 베드포드 침례교회의 존 기포드 목사에게서 침례를

받았다.

또 번연은 1656년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했다. 많은 믿는 이들의 신앙을 돌보아 주었으며,

기회가 닿는대로 사람들에게 설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영적인 유익을 얻었다.

심지어 오웬이라는 박사는 번연이 런던에 와서 설교할 때 그의 설교를 종종 듣곤 하였다. 그러자 찰스 2세는 박사의 학식이

있는 사람이 땜장이의 설교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움을 표현했다. 이에 대해 오웬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만일 저에게 그 땜장이의 재능이 있다면 저는 아주 기꺼이 저의 학문을 포기하겠습니다."

번연이 그리스도를 증거한 지 5년째되는 1661년에 그는 불법적인 집회를 인도하고 설교를 했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신앙을 권고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한 두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소. 사람을 모으지 말란

말이요." "한 두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선한 일을 열 사람, 백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것입니까?"

나중에는 그를 박해하는 자들로 인해서, 비밀집회의 주동자요, 세상을 소란케 하는 자이며, 법령을 무시하는 거만하고

반역적인 국가의 모반자라는 죄명이 더해졌다.
그의 작품인 '천로역정'도 감옥에서 쓰여진 것이다. 12년 동안의 기나긴 감옥생활이 끝나고 드디어 석방되었고, 그 후로도 역시

설교와 저술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였다. 석방이 되면서 그의 누명이 풀렸고, 어느 정도 자유로운 집회를 가질 수 있도록 시대적

상황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삶이 바로 천로역정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존 번연은 스노우 힐의 유명한 식료 잡화산인 그의 친구 스트루드윅 씨의 집에서 죽었다. 번연은 번즈 필즈 모지에 있는 그

친구의 지하 납골소에 매장되었다. 그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존 번연, 천로역정의 저자, 1688년 8월 12일 향년 60세.
순례자의 여로(Pilgrim's Progress, 천로역정의 원제)는 이제 여기서 끝나고 그는 죽어 이 땅의 침상에 누웠노라."

이것은 번연의 유언 중 일부이다.  </ 갈보리자료창고>

 

 

초기 생애

 

존 번연은 1628년 잉글랜드의 베드포드에 있는 엘스토우라는 마을에서 가난한 놋쇠 세공사, 즉 떠돌이 땜장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항아리와 주전자 등을 만들기도 하고 수선하기도 하는 사람으로 가난했으나

정직했다.

    번연은 중부의 오지 농촌에서 수많은 빈민 소작농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다. 시골의 그래머 스쿨에서 읽는 법과 쓰는 법을

배웠지만, 가업을 전수받기 위해 10살의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17살까지 아버지 밑에서 땜장이 일을 배운다. 번연의

정신과 상상력은 제도적인 교육보다는 이렇게 어린시절에 받은 영향들로부터 형성되었다. 그는 싸구려 책에 나오는

모험담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그런 책들은 케임브리지 근처 스타워브리지에서 열리는 큰 시장 같은 곳에서 구했다.

(〈천로역정〉에 나오는 '허영의 시장'은 여기서 영감을 얻은 것). 이때 읽은 〈햄프턴의 베비스 Bevis of Hampton〉와

〈그리스도교의 7용사 The Seven Champions of Christendom〉 같은 책에는 중세 기사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일반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번연은 또한 당시 영국 청교도들에게 인기가 있던 여러 가지 책들을 읽었다. 예를 들면 쉬운 말을 사용한 설교집, 일상의

도덕적인 대화록, 하나님의 인도에 관한 감상적인 판단과 행위를 다룬 책들, 보기에 흉측한 엘리자베스 시대의 목판본으로

인쇄된 폭스의 〈순교자열전 Book of Martyrs〉 등이었다. 무엇보다도 번연은 영어 성서에 빠져들었다. 그가 12세 때

'킹 제임스 영역 성서'는 발행된 지 30년밖에 되지 않았었다. 국교도 부모 밑에서 자라났지만 그는 편협한 신앙에 의해

단절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 지방의 방대한 민담과 전승을 접하게 되었다. 총에 맞은 새가 나무에서 곤두박질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정신은 격언들로 채워졌다. 이러한 시각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격언은 모두 훗날 그의 저서들에 담기게 되었다.

번연은 자서전에서 무서운 꿈 때문에 당한 고통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극심한 두려움을 겪은 데에는 병적인 까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청년시절 초기에 종교적인 위기를 겪는 가운데 그의 죄책감은 망상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그를 '모든

형태의 악과 불신에 붙잡아두었던 가장 큰 요인'은 과장이 심한 성향과 관련된 번연 자신의 비정상적인 감수성이었던 것 같다.

 

    1644년 몇 차례 계속해서 불행한 일을 겪으며 이 시골 소년은 가족과 헤어져 세상으로 떠밀려나갔다. 6월에 어머니가 죽었고,

7월에 누이동생 마거릿이 죽었으며, 8월에는 아버지가 3번째 아내를 얻었다. 그리고 내란(청교도 혁명)이 터져 11월에

의회군으로 징집되어 뉴포트의 파그넬에 있는 수비대의 보충병으로 배치되었다. 그곳 사령관은 새뮤얼 루크 경으로 새뮤얼

버틀러의 〈휴디브라스 Hudibras〉에 나오는 똑같은 이름의 장로교인 기사(騎士)처럼 불후의 명성을 갖고 있었다.

번연은 뉴포트에서 1647년 7월까지 있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전투를 치러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한번

'한 지역(아마 레스터셔인 듯함)을 포위 공격하는 임무를 받고 선발되어나갔다가' 바로 앞에 있던 동료가 총에 맞는 일이

생겼는데, 훗날 그는 이때의 일을 회상하며 하나님의 섭리로 살아남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군복무는 무사 평온했지만, 이때 그는 크롬웰 군대 내의 급진적인 소종파들, 설교하는 중대장들, 개인 양심을 제외한

모든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퀘이커교·구도파(求道派 Seekers)·랜터파(Ranters)의 열정적인 종교생활을 접할 수

있었다. 루크가 자기 수비대에 드나드는 이러한 수많은 종교적 선동자와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에 비해, 번연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크롬웰과 그의 초라한 기병들이 갖고 있던 청교도 분파들의 주요사상을 잘 알게 되었다. 그들의 신념에 따르면,

종교적 진리를 위한 투쟁은 각자에게 아무 대가 없이 계시된 은혜에 의지하면서 모든 형태의 공적인 조직을 단죄하는 끈질긴

노력을 뜻했다. 신형군(新形軍 New Model Army)의 경건한 생활모습은 번연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겨놓았다. 그는

이들에게서 받은 인상을 〈거룩한 전쟁〉에서 설교와 훈련에 매진한 크레던스와 보아너게스라는 에마뉴엘 군대의 중대장들을

통해 재현해놓았다.

 

    번연은 1647년 7월(제대)부터 1649년 사이에 결혼했다. 그는 자서전 〈넘치는 은혜〉에서 자기와 자기의 첫째 아내가

'접시나 숟가락 같은 가재도구도 없을 만큼 매우 가난한 상태에서 서로 만났다'고 말한다. 아내는 경건한 가정 출신으로,

번연에게 결혼지참금 대신 아더 덴트의 〈평범한 사람이 하늘에 이르는 좁은 길 The Plain Man's Path-Way to Heaven〉과

루이스 베일리의 〈경건 훈련 The Practice of Piety〉이라는 2권의 책을 주었다. 번연은 첫번째 책에서 신앙 소책자라

할지라도 통렬한 표현들을 사용할 수 있고, 친숙한 격언들을 가지고서도 훈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 부부는 메리라는

눈 먼 딸을 첫아이로 낳고 1650년 7월에 세례를 받게 했다. 번연의 첫째 부인은 그 뒤 엘리자베스·존·토머스를 더 낳고서

1658년에 죽었다. 엘리자베스도 1654년 그곳에 있는 본당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그 무렵 번연은 이미 세례를 받고

'베드포드 분리파 교회'에 가입했다.


 

개종과 목회


    번연의 개종은 결혼한 뒤 몇 해(1650~55)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과정이 자서전에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 '사제'와 '성직복'(이 시기의 성직복은 제네바 가운으로 추측됨)을 경외심 어린 눈으로 보았던 초기의

국교도 시절을 보내면서, 그는 평소에 즐기던 춤, 종치기, 시골 들판에서 벌이는 운동경기 등의 오락들을 마지못해 서서히

포기하고 내면적인 생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뒤 몇 해에 걸쳐 신앙을 버리고 싶을 정도의 괴로운 시험이 닥쳤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시험의 '태풍'이 거의 물리적인 폭력으로 그를 강타했고, 신을 모독하기를 강요하는 음성들이 들려왔으며,

그에게 저주의 위협을 가하는 듯이 보였던 성서 본문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아픈 곳을 찔러댔다'. 마침내 어느 날

아침에는 자신이 이러한 사탄의 음성에 굴복하고 그리스도를 배반해버렸다고 믿기까지 했다. "나는 총에 맞아 나무에서 떨어진

새처럼 쓰러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신질환에 가까운 고립상태에 있던 시절, 그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겪는 정신분열의 모든 특성을 나타내

보인다. 이런 정신분열의 특성은 20세기에 와서야 분석되었지만, 번연은 자기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그 시대 나름의 심리학적

도구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17세기 칼뱅주의 목회신학이었다. 이 목회신학은 영혼의 진정한 필요와 영적 성장의 증거,

하나님의 은총의 계약 등과 같은 용어를 통해 선택과 예정의 냉혹한 교리를 해석하는 신학이었다. 현대 정신분석학자들의

기법과 청교도 설교가들의 기법은 모두 자아를 흠 없는 상태로 회복시킨다는 것을 공동 목표로 하고 있었다. 번연은 영적인

암흑기에서 벗어나면서 점차 자기 죄가 '죽어 마땅한 것이 아님'을 점차 느끼기 시작했고, 두려움을 주는 본문들뿐만 아니라

위로하는 본문들도 있음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이 회복기에 번연은 베드포드 분리파 교회와 이 교회의 강력한 지도자 존

기퍼드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1655년경 이 교회의 정식 교인이 되었다.

 

    베드포드 공동체는 침례에 의한 성인 세례를 실행했으나, 엄격한 침례교도들과는 달리 침례를 교인이 되는 자격으로

고집하지는 않았다. 이들의 입장은 침례교회보다는 오늘날의 회중교회의 입장과 더욱 가까웠다. 이 공동체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거룩한 생활'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성찬식'(open-communion) 교회였다.

번연은 곧 평신도 설교가로서 재능을 나타냈다. 영적인 고민에서 해방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경고하고

위로하는 일에 적임자였으며, 이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위해 나 자신도 쇠사슬에 묶인 채 그들에게 갔고,

그들에게 주의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내 양심에서 얼마 전에 타오르던 불을 담아 갔습니다"라는 그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교인들을 방문하고 권고하는 활동도 활발히 했으나, 1655~60년의 그의 주요활동은 초기 퀘이커교도들과 논쟁을 벌인

일이었다. 번연장이 서는 베드포드셔의 읍들을 찾아다니며 공개 논쟁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몇몇 열린 복음 진리들 Some Gospel Truths Opened〉(1656)·〈몇몇 열린 복음 진리들을 옹호함 A Vindication of

Some Gospel Truths Opened〉(1657)이라는 최초의 저서들을 펴내기도 했다. 개방적인 성찬식을 실시한 침례교도들과

퀘이커교도들은 도시와 시골에 있는 '직공들', 즉 소규모 숙련공들과 기술자들을 자기 교인들로 만들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이 두 교파는 계급에 대한 태도, 대가 없이 은혜로 얻는 구원에 대한 강조,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등에서는 매우 비슷했으나,

전도를 하느라 경쟁을 벌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퀘이커교의 내적 광명의 교리 때문에 서로 분열되었다. 번연의 열렬한 확신은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에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 정통적이고 객관적인 신학으로 표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퀘이커교 설교자 에드워드 버러의 위험할 정도로 모호하고 자기중심적인 신비주의를 맹렬히 비판했다.

 

    찰스 2세의 왕정복고로 분리파 교회들이 예배의 자유를 향유하고, 정부 정책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해오던 20년 세월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번연은 1660년 11월 12일 사우스베드포드셔에 있는 로어삼셀에서 지방 치안판사 앞에 끌려가 과거

엘리자베스 시대에 포고된 법령에 따라 영국국교회와 일치하지 않는 예배를 집행한 혐의로 기소 당했다. 기소당한 뒤 같은

범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지 않아 1661년 1월 순회재판소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주(州) 감옥에 갇혔다. 2번째

아내(1659년에 재혼함)가 순회재판소에 항소하기 위해 여러 차례 용기 있게 노력했지만 번연은 12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넘치는 은혜〉의 초기판본들에 첨부된 전기에 따르면,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긴 레이스'를 만들어 팔아 가족을

부양했다고 한다. 수형조건은 관대한 편이어서 그는 때로 친구나 가족을 찾아가고 모임에서 연설하기 위해 나갈 수 있었다.


 

작품 활동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번연은 영적인 자서전 〈넘치는 은혜〉를 쓰고 출판했다. 자기 영혼의 상태를 정확히 그리고

정직하게 희상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는 주체적인 분석에 적합한 놀라운 산문체를 얻었다. 그는 힘이 넘치는 신체적

이미지가 풍부한 문체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묘사한다. 그것은 자신을 저주하고 있는 것 같은 성서 본문을 "풍차 기둥처럼 내

등을 무겁게 짓눌렀다"고 표현하는 식이다. 그 뒤에 쓴 상상력 넘치는 〈천로역정〉에는 꿈과 같이 음악적이면서 내성적인

문체와 시골의 평범한 생활과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직공 설교가'의 대중적인 설교체가 서로 뒤섞여 있다. 그는 언제나

일상의 경험을 비유의 대상으로 삼았다.

 

    1672년 3월 찰스 2세가 비국교도들에 대해 관용선언을 공포함에 따라 번연은 석방되었다. 베드포드 공동체는 '하나님께

기도로 많이 간구한 뒤' 1월에 이미 그를 자기들의 목사로 선출해놓았고, 새로운 집회장소도 얻어놓았다. 5월에 번연은 25명의

다른 비국교도파 목사들과 함께 베드포드와 주변 마을들에서 설교하도록 허락받았다. 그의 별명 '주교 번연'은 그가

지역에서 탁월한 조직력을 발휘했음을 암시한다. 박해가 다시 시작되자 그는 불법적인 설교를 한 혐의로 다시 감옥에

갇혔다. 2번째 감옥생활은 비록 6개월 이상 지속되지 않았던 듯하나, 어떤 정황에서 그가 투옥되었는가는 첫번째 감옥생활

때보다도 더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를 석방시키기 위한 1677년 6월의 신원보증서가 다행히도 남아 있어 2번째 투옥은 그해

상반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로역정〉은 2번째로 석방된 직후, 즉 1678년 2월에 출판된 것으로 보아 번연은 첫번째

투옥 때 이 책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것은 〈넘치는 은혜〉를 완성한 직후였으며, 이 책에 담겨 있는 내면생활에 대한

검토가 여전히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을 때였다.

 

    〈천로역정〉은 1678년 너새니얼 폰더가 출판했다. 이 우화적인 작품의 첫 부분에는 그리스도교도가 위험과 혼란을 겪으며

하늘의 도성을 향해 순례를 하는 이야기가 '사느냐 죽느냐'처럼 강렬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을 다음과 같은

등장인물과 무대로 나타냈다. 학자인 체하는 세속적인 현자, 마귀 아폴리온, 허영의 시장,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대는 계곡,

독선적인 청년 '무지'(Ignorance), 순례자들이 최후로 죽음의 강을 건너기 전에 쉬는 유쾌한 산 등, 이 모든 등장인물과 배경은

번연의 깊은 영적 성숙에서 나온 것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이고도 날카로운 눈으로 일상생활에서 관찰한 것들이기 때문에

영국인의 상상력과 쉽게 부합될 수 있었다. 이 책은 즉시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근대 계몽주의

교육이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전, 일반 대중의 민간전승을 표현한 최후의 걸작인 듯하다.

 

    번연은 계속해서 베드포드 교회 및 이 교회와 결연을 맺은 동부의 늘어나는 국교회들을 돌보았다. 문학작품에 힘입어

갈수록 명성이 커지자 런던에 있는 회중교회에서도 설교를 하게 되었다. 1672~73년 윌리엄 키핀과 그 외의 런던 침례교도들과

함께 자신의 '개방적인 성찬식'의 원칙들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악인의 삶과 죽음 The Life and Death of Mr. Badman〉(1680)은 우화라기보다는 사실적인 소설에 더욱 가까운 작품으로,

박해의 시대가 끝난 뒤 청교도들이 도시 중간계급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찾기 시작할 당시에 돈과 혼인의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번연의 2번째 우화인 〈거룩한 전쟁〉은 조심스러운 서사시 구조를 이루고 있고, 따라서 〈천로역정〉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내면적 특징은 찾아보기 어렵다. 맨솔의 도시는 마귀의 군대에게 포위를 당하나 에마뉴엘의 군대가 와서 구해주며,

훗날 마귀의 군대가 에마뉴엘의 통치에 대해 여러 차례 공격과 음모를 가함으로써 약화되었다. 이 은유는 타락 때부터

구속(救贖)과 최후의 심판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의 이야기를 재현할 뿐만 아니라 개인별 영혼의 회개와 타락을 묘사한다.

이 은유에는 찰스 2세 때 비국교도들이 당한 박해를 암시하는, 보다 명확한 역사적 차원까지도 담겨 있다.

〈속 천로역정 The Pilgrim's Progress, Second Part〉(1684)은 그리스도인의 아내 크리스티나가 자녀들을 데리고 순례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대체로 전편에 비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좀더 사교적이고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지만, 순례자들에게

'죽음의 강'을 건너도록 부르는 내용의 장엄한 결론부는 아마 번연의 문학에서 압권일 것이다.

번연은 목회자로서 맡은 책임이 컸지만 생애의 마지막 10년 동안 시간을 내어 수많은 교리 및 논쟁서를 펴냈다. 또한 거칠기는

하지만 신앙교훈을 내용으로 하는 훌륭한 시를 썼는데, 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말년의 작품집은 어린이들의 책인

〈소년 소녀들을 위한 책 A Book for Boys and Girls〉(1686)으로서 상징적인 삽화들과 함께 활기찬 시들로 엮어졌다.

 

    제임스 2세 치하에서 비국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 번연은 '내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 번연'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줌으로써 가족을 보호했다(1685. 12). 제임스가 로마 가톨릭교도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기 위해 개신교

비국교도들을 회유하려고 했을 때, 번연은 관직을 제의하는 왕의 대리자 에일즈버리 경의 감언이설을 지혜롭게 물리쳤다.

이와 동시에 그는 자기 교회의 교인들이 재조직된 베드포드 법인에서 자리를 차지하게 해주었다.

번연은 1688년 설교를 위해 여러 지역을 방문하다가 런던에서 죽었다. 런던에 오기 전에 그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벌어진

불화를 무마하려고 심한 비를 맞으며 리딩으로 달려갔다가 열병에 걸렸던 것이다. 죽은 뒤 비국교도들의 전통적인 묘지로

알려진 번힐필즈에 묻혔다.


 

평가


    19세기에 종교적 신앙이 쇠퇴하고 대중적인 교훈서들이 크게 늘어나기 전만 해도 번연의 저서는 성서처럼 모든 영국인

가정에서 찾아볼 수 있었고 모든 일반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문학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18세기 내내

순수문학의 반열에 끼지 못했다. 그의 위대성을 인정한 것은 스위프트와 존슨뿐이었다. 낭만주의 운동이 끝난 뒤에야 선천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로 인정을 받았고, 호메로스나 로버트 번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번연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그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미 발전해 있었던 설교체

산문의 전통과 청교도 문학 장르들이 그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가를 알게 되었다. 비록 예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탁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천로역정〉의 천재성은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 크게 다른 문화 전통에 속한 독자들에게까지

번역서를 통해 꾸준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이 유명한 책이 얼마나 심오한 상징적 진리를 담고 있는가를 입증하는

것이다.

 

http://www.jbch.org/guide/christian/jone.html

http://onnuri.or.kr/web2/sub_blue/people/people31.html

 

<출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교회> 

 

 

 

 

 

천로역정

존 번연 / 유성덕 역 
 
1부
 1. 저자의 수감(收監)과 꿈-크리스챤이 죄를 깨닫고, 다가올 진노에서
  피하고 복음의 인도로 그리스도께로 향한다. 
 2. 크리스챤의 순례 시작-고집장이는 동반거부-온순은 가다가 포기
 3. 크리스챤과 세속 현자의 대화
 4. 크리스찬이 좁은 문에 도착하여 친절한 영접을 받다. 
 5. 크리스챤은 해석자의 집에서 즐겁게 환대를 받는다. 
 (이하생략)
 
2부
 저자의 머리말
 1. 크리스티아나가 그녀의 네 아들과 이웃사람 한 명으로 더불어
  순례를 시작한다. 
 2. 크리스티아나와 자비심과 아이들이 무사히 늪을 지나 좁은 문
  안에서 친절한 영접을 받는다. 
 3. 순례자들이 공격을 받으나 구조되어, 해석자의 집에 들어가 
  대접을 받는다. 
 4. 순례자들은 담대씨의 안내를 받으며 여행을 계속한다. 
 5. 순례자들은 곤고의 산에 올라 사자를 지나서 아름다움의 집에
  도달한다. 
 (이하생략) 
   

 

제1부

 

세상의 황폐한 광야 지대를 두루 다니다가 어떤 곳에 이르니 거기에는 굴이 있었다. 나는 그 굴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한 남자를 보았는데,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 내려가면서 몸을 떨고 울고 있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슬픈 목소리로 “어찌해야 하나?”라고 울부짖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큰 불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이 도시가 잿더미가 될 것이며 구원

받지 못하면 모두가 죽고 말 것인데, 그는 아직도 그 길을 찾지 못했다며 절망적으로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가족들은 모두 놀라며 그에게 광증이 생긴 것으로 짐작했다.

어느 날 그에게 전도자가 찾아와 영문을 물었다. “크리스찬, 당신은 왜 울고 있습니까?“

크리스챤이 대답했다. “이 책을 읽어보니, 나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고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게 되어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자 전도자는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적혀있는 두루마리를 하나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광채가 빛나고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으로 가면 좁은 문이 나타날 것이며 문을 두드리면 누군가 나와서 당신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크리스챤은 앞만 향하여 정신없이 뛰었다. 그러자 가족과 이웃들이 모두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 고집쟁이(Obstinate)와 온순(Pliable)이 급히 따라왔다. 고집쟁이는 이 세상 향락들을 다 버리고

찾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크리스챤에게 물었다. 크리스챤은 성경을 가리키며 결코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으며 쇠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집쟁이는 크리스챤을 따라온 것을 후회하며 온순에게

되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온순은 크리스챤과 동행하여 그것을 지으신 분의 피로 증명된 진리를

찾겠다고 다짐하며 고집쟁이의 권유를 물리쳤다. 그리하여 고집쟁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크리스챤과 온순씨가

오순도순 함께 넓은 평원을 걸어 나가는 것을 나는 꿈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온순이 물었다. “영원히 멸하지 아니할 아름다운 왕국입니다. 그곳에서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그 왕국의 지배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책에 모두 기록해놓았습니다. 우리가 은총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 그분은 조건 없이 마음껏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등에 진 이 무거운 짐 때문에 빨리 걸을

수가 없군요.” 이때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이야기에 팔려 진흙 수렁에 빠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수렁의 이름은

절망의 늪이었다. 크리스챤은 등에 짊어진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진흙 수렁 속으로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광경을 지켜 본 온순은 여태껏 말해준 행복이 겨우 이것이냐고 벌컥 화를 내며 늪가로 기어

올라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때 나는 꿈속에서 도움이라는 남자가 크리스챤에게

다가가더니 그를 구해주는 것을 보았다. 나는 도움에게 다가가 왜 여행자를 위하여 수렁을 고치지 않는가

물었다. 수렁은 1600여 년 동안 하나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메워지지 않았으며 마침내, 하나님이 수렁 한

가운데 커다란 디딤돌을 갖다 놓았지만 그것도 오물과 진흙탕을 토해놓기 때문에 잘 보이질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챤이 외롭게 평원을 걷고 있는데 세속현자가 다가왔다. 그는 크리스챤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 영생을

구하러 떠났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는 터였다. “안녕하시오? 내가 조언하건대 우선 그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시오. 짐을 벗지 않으면 하나님이 베푸는 축복의 은혜도 기쁜 마음으로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세속현자의 말에 크리스챤이 대답했다. “만일 이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질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만 있다면 도중에 어떤 고통과 어려움을 겪게 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부터 그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습니까?” “내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을 읽은 후부터입니다.”

“그럴 줄 알았소. 모든 연약한 인간들에게 일어나기 쉬운 갈등과 오류에 당신도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내가

위험을 피해서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일러드리겠소.”

세속현자는 손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자, 저쪽에 있는 도덕이라는 마을에 합법이라는 신사분이

살고 있습니다. 그분이 도와줄 것입니다. 그가 집에 없다면 그의 아들 예의를 찾으면 됩니다. 그도 역시

아버지 못지 않은 판단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당신의 짐을 쉽게 덜어 줄 것입니다.”

크리스챤이 도덕의 마을로 방향을 바꾸어 언덕을 오르는데 언덕은 가파르기 그지없었다. 그는 다른 길을

찾다가 그만 언덕 위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만났다. 그는 두려움과 무서움에 땀을 흘리며 떨면서

세속현자의 말을 따른 것을 후회하였다. 그때 전도자가 엄숙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길을 바꾸게 된 경위를

물었다. 크리스챤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자세히 말했다. 그러자 전도자는 하나님의 권고를 물리치고

파멸과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세속현자를 협잡꾼이라고 단정하고 자신의 말을 하나님이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커다란 불길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크리스챤이 크게 후회하며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는가 묻자 전도자는 다시는 옆길로 나아가지 말도록 충고했다.

 

얼마 후 크리스챤은 좁은 문에 도착했다. 그 좁은 문에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는 글귀가 써

있었다. 크리스챤이 문을 두드리자 선의란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었다. 문지기는 크리스챤이 여기에 오기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 상관하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주님께서 ‘나는 결코 내쫓지 않을 것이니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크리스챤은 문지기가 가르쳐주는 길을 보며 길을 잃어버리거나 방해물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자 크리스챤이 주저하는 이유를 눈치 챈 문지기는 “그러나 바른 길은 단

하나뿐이며 그 길은 매우 좁고 곧게 뻗어있으니 분간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꿈속에서 크리스챤이 아직도 그의 등에 지워져 있는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선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비록 당신의 짐이 무거울지라도 구원의 장소에 이를

때까지는 참고 그대로 지고 가십시오. 거기에 이르면 저절로 당신의 짐이 등에서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선의 씨가 일러준 대로 해석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해석자는 크리스챤을 반갑게 맞이하며 온통

먼지투성이인 넓은 객실로 인도하였다. 해석자가 하인에게 청소를 시키자 너무도 많은 먼지가 일었다. 그가

소녀에게 물을 뿌리라고 이르자 많던 먼지가 갈아 앉고 이내 말끔히 청소가 되었다. 이윽고 해석자가

말했다. “이 객실은 복음의 달콤한 은혜로 성화된 일이 한 번도 없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먼지는 인간의

원죄를 의미합니다. 처음 이 방을 쓸기 시작한 사람은 율법이고, 물을 뿌린 아가씨는 복음입니다.”

꿈속에서 보니 해석자는 크리스챤을 다른 방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벽난로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물을 끼얹어 불을 끄려고 했으나 불은 점점 더 뜨겁게 타올랐다. 해석자는 그 광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불을 끄려고 노력하는 자는 마귀이고 불은 사람의 마음에 작용하는 은총입니다.” 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해석자는 크리스챤을 벽 뒤로 인도했다. 거기에는 한 사람이 기름통을 들고

끊임없이 불 위에 기름을 끼얹고 있었다. “이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이미 넣어준

은총을 보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은총의 기름을 부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 한번 악마의 속임수에 빠진

영혼에게 그 은총을 유지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당신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감사의 말을 건네고 해석자와 헤어졌다.

 

그때 나는 꿈속에서 크리스챤이 올라가고자 하는 길 양쪽에 높은 울타리가 둘려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울타리

이름은 구원이었다. 크리스챤은 무진 애를 써서 한 언덕바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십자가가 서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무덤이 입을 딱 벌린 채 놓여 있었다. 크리스챤이 십자가 위로 막 올라가려는 순간 그의

어깨로부터 짐이 풀어져 등에서 벗겨지더니 계속 미끄러져 내려와 마침내 무덤의 입구에서 그 속으로 굴러

떨어져 다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크리스챤은 홀가분함과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주께서 괴로움을 당함으로 내게 평안을 주셨고 주께서 목숨을 버리사 내게 영생을 주셨나이다.” 그때 세

사람이 다가와 그에게 “평안할 지어다.”라고 인사하며 죄의 사함을 받았으므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며

새 옷으로 갈아입혀주고 나서 크리스챤의 이마에 표를 달아주었다. 또한 그들은 봉인된 두루마리를 건네며

천국문에 이르렀을 때 그것을 제시하라고 말한 후 떠났다. 크리스챤은 기쁨에 못 이겨 서너 번 껑충껑충 뛰고

나서 노래를 부르며 길을 떠났다.

 

나는 꿈속에서 크리스챤이 산 아래 겸손의 골짜기에서 난관에 봉착한 것을 보았다. 괴물 아볼루온을 만난

것이다. 아볼루온은 자신을 배반한 죄에 용서를 빌고 섬기지 않는다면 심한 벌을 주겠노라고 외쳤다. 그러자

크리스챤은 “나는 이미 네가 아닌 다른 분, 즉 왕 중의 왕이신 분께 몸을 바쳤으니 다시 네게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큰소리로 대항했다. 그러자 아볼루온은 크리스챤이 절망의 늪에서 결심이 흔들렸던 일과 세속의

유혹에 넘어갔던 일 등을 열거하며 주님에게 불충분했기에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대가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빈정댔다. 그러자 크리스챤이 말했다. “네가 한 말이 사실이기는 하나 내가 섬기는 주님께서는 모든 걸

용서하시었다.” 그러자 아볼루온이 벌컥 화를 냈다. “나는 네가 섬기는 그 왕과는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야.

그의 인격, 율법, 그의 백성들까지 모두 미워하고 있어. 그래서 너를 일부러 방해하려고 이렇게 나온 거야.”

이때 아불루온이 전력을 다해서 공격해왔지만 하나님이 도우사 크리스챤은 마귀를 물리칠 수 있었다. 정말

일찍이 보지 못한 가장 치열하고 무시무시한 전투 광경이었다.

전투가 끝나자 크리스챤은 “사자의 입으로부터 나를 구해주시고 마귀 아볼루온과의 싸움에서 나를 도와주신

주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말하고 찬송을 드렸다.

 

계속 길을 가던 크리스챤은 한 언덕에서 믿음이 여행을 재촉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꿈에 보니 그들은

매우 사이좋게 함께 걸어가면서 순례 여행 도중에 그들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대해서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혹시 온순이란 이웃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크리스챤이 물었다.

“네, 들었지요. 그는 도시의 모든 계층으로부터 멸시를 받고 있으며 당신과 함께 떠나기 전보다 일곱 배나 더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답니다. 사람들은 그가 저버린 길을 멸시하면서도 그가 변절자이고 진실하지 못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를 목을 매어야 한다고 합니다.” 믿음이 말했다.

믿음은 곤고산에서 기만의 도시에 살고 있는 첫 사람 아담을 만난 일을 크리스챤에게 이야기했다.

“아담이란 노인은 자기와 함께 살면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자신의 세

딸과 결혼하여 살기를 권했지요. 나는 그의 이마에 쓰여 있는 ‘그의 행위를 살펴보아 노인을 멀리하라’는

글자를 읽고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어요. 그러자 그가 나의 팔을 비틀어 당기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외치며 나를 쫓아오더군요. 그렇지만 마침, 어떤 구원의 손길이 이끌어주어 나는 산 위로

무사히 피했답니다.” 그 말을 들은 크리스챤은 그가 바로 모세라고 일러주었다.

 

믿음은 또 그 산에서 수치를 만났는데 그 철면피는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자였다. 믿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설교를 들으면서 슬피 우는 것도 수치스러운 행동이며,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한숨짓고

괴로워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하더군요. 또한 용서를 빈다거나 돈을 빌리고 돌려주는 것도

수치스럽다고 주장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수치야, 물러가라. 너는 나의 구원을 방해하려는 원수로다.’라고

소리 질러 뿌리쳤지요.” 크리스챤은 그의 용기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광야를 거의 벗어날 무렵 그들은 전도자와 다시 만났다. 크리스챤과 믿음은 전도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이 여기까지 오며 겪은 고난의 이야기를 듣고 난 전도자는 인내로 견디면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라며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전도자는 앞으로 그들이 지나치게 될 도시에서 그들이 겪어야 할 환난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두 사람 모두 또는,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피로써 하늘의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나는 꿈에서 그들이 광야를 벗어나자마자 금세 하나의 마을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마을의 이름은

허영이었다.

이 시장은 오천 년 이래로 존속되고 있었는데 언제나 요술사들, 사기꾼들, 도박꾼들, 바보들, 악한들 등 온갖

쾌락과 악에 젖은 무리들이 술렁거리고 있는 곳이었다. 예수도 천국으로 가기 위하여 이 거리를 통과하였지만

결코 허영에 대해서는 한 푼의 돈도 허비하지 않으신 채로 그 도시를 떠나셨으므로 무사히 천국에 이르신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들 두 순례자들도 천국으로 향하기 위하여 반드시 이 도시를 통과해야 했다.

두 순례자는 의복이며 말씨가 시장 사람들과 판이하게 다른 데다가 그들이 허영의 시장에 놓인 상품을

거들떠보지도 않자 상인들이 불쾌하게 여기며 길을 막으며 비웃었다. 그래도 그들이 대꾸도 하지 않자 시장이

소란해지고 마침내 두 순례자는 심문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순례자들은 자신들은 영원한 본향인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이며, 혹시 상인을 불쾌하게 하였다면 물건을

사지 않고 진리만을 구하겠노라고 대답한 일밖에 없으니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재판관은 그들을 정신병자라고 단정하고 마구 때리고 흙투성이로 만든 후 옥에 가두어 구경거리가 되도록

했다. 그러나 순례자들은 그들에게 퍼부어지는 수치와 경멸을 온유함과 인내로 받아들였다. 이때 그들은

전도자의 말을 떠올리며 고통이 정해진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자신의 최고 행복이라고 여기며 처분을

기다렸다.

다시 재판이 시작되고 질투와 미신 그리고 아첨이라는 증인들이 등장하여 순례자들을 죄인으로 몰아세웠다.

결국 믿음에게는 사형이 선고되고 곧바로 형이 집행되었다. 그때 나는 수많은 군중들 뒤로 마차 한 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의 고통스러운 환난이 끝나자마자 곧장 그를 태워 나팔소리를 울리며 구름 사이를 헤쳐

나가 지름길로 천국문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유예되었던 크리스챤은 얼마 후 감옥을

탈출하여 결국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보니 크리스챤이 홀로 걸어가지 아니하고 한 동행자와 함께 걷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소망이었는데 허영의 시장에서 크리스챤과 믿음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꿋꿋한 언행으로 이를 극복하는

태도를 지켜보고 감동을 받아서 스스로 소망이라는 이름을 짓고 형제로서 언약을 맺은 다음 동행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한 사람이 죽자 또 다른 한 사람이 그의 재 가운데서

일어나 크리스챤의 순례 길에 동행하게 된 것이었다. 소망은 또한 크리스챤에게, 머지않아 허영의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향한 순례의 길에 따라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다시 꿈속에서 보니 두 순례자가 평원의 맞은편에 이르자 여인이 돌기둥으로 변한 것 같은 기둥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비석의 머리에 쓰여 있는 이상한 글자를 한참 해석한 후 크리스챤은 그 글귀가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크리스챤은 아주 적절한 시기에 보게 되었다고 반가워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길을 오던 중 만났던 데마(바울의 제자로 세상을 사랑하여 배교한 자)의 유혹에

빠졌더라면 우리도 저 돌기둥으로 남아서 후세의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소망은 자신이

데마의 유혹에 넘어갈 뻔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봄에 그들이 길을 가다가 쾌적한 강가에 이르렀는데, 다윗 왕은 이 강을 가리켜 ‘하나님의 강’이라고

불렀었다. 그들은 탐스러운 백합화와 각종 열매가 달린 나무들이 늘어선 강가에서 며칠 밤낮을 지내며 여독을

풀었다. 이내 원기를 회복한 그들은 다시 길을 재촉하여 나아갔다. 길은 갈수록 더 험해졌고, 그들은 점차

지쳐갔다. 그 때 그들은 두개의 길을 발견하고 잠시 망설였다. 잠시 후 그들은 그 가운데 편한 길을 택해

가기로 했다. 얼마쯤 걷다보니 앞서가던 헛된 확신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크리스챤은 이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헛된 확신은 그 길이 천성문으로 통하고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크리스챤과

소망은 안심하고 길을 가는데 주위에 어둠이 찾아오자 앞서 가던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헛된 확신은

잘난 체하는 바보들을 잡기 위해 파놓은 웅덩이에 빠져 이미 온몸이 갈가리 찢어진 후였다. 소망이 그 비명을

들으며 크리스챤에게 자신이 다른 길을 택하자고 충고하였으나 그가 귀담아듣지 않은 것을 나무라자,

크리스챤은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소망은 곧 크리스챤을 용서했다.

 

그들은 결국 길을 잘못 든 탓으로 ‘의심의 성’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의 영주인 ‘절망 거인’에게 붙들리게

되어 지하 감옥에 처박혔다가 간신히 탈주한 후 도착한 곳은 기쁨의 산이었다. 그들은 양치기에게 천성까지

거리가 얼마나 남아있는가 물었다. 양지기는 멀어서 못가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 갈 사람들은 다 가더라고

대답했다. 목자들의 이름은 지식, 경험, 경계, 성실이었는데 크리스챤과 소망에게 음식과 따뜻한 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다음날 목자들은 그들을 오류라는 산으로 인도했다. 산 아래에는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목자들은 그 들이

바로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떠드는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말을 듣고 오류에 빠졌던 자들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곳을 지나 그들은 지옥으로 가는 샛길인 조심이라는 산을 지나쳐 청명이라고 불리는 높은 산으로

인도되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장애물 때문에 그들은 망원경으로 사물을 똑똑히

볼 수 없지만, 이를 통해 대문 같은 것과 그곳의 영광을 약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목자들과 헤어져 길을

떠나는 것을 보고 나는 잠을 깨었다.

 

내가 다시 잠들어 꿈에서 보니, 그 두 순례자가 천성으로 가는 큰 길을 따라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산 바로 앞 왼쪽에 기만의 나라라는 곳이 있었다. 그들은 구부러진 오솔길에서 무지라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천성을 향해 가고 있는 길이었다. 크리스챤은 무지가 좁은 문을 통해서 들어오지 않고 구부러진 오솔길을

통해 들어왔으므로 그는 심판의 날에 천국은커녕 도둑이요, 강도라고 책망 받게 될 것이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무지는 자신도 주님의 뜻을 잘 알고 있고, 남들보다 착하게 살았으며 늘 기도하고 금식하고 십일조도

바치고 자선을 베풀었으므로 천국으로 가는 것은 염려 없다고 자신했다. 크리스챤과 소망은 무지가 지혜로운

체 하는 것을 보고 우매자를 일깨워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궁리했다. 곧 소망이 결심을 말했다. “우리가 그냥

앞서 가다가 그가 알아들을 만한 때에 다시 이야기해서 권면합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계속 길을 갔고,

무지는 뒤에 처져 걸어갔다.

 

얼마 후에 그들은 무신론자를 만나게 되었다. 무신론자는 그들이 시온 산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는

우스꽝스러운 여행을 한다며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왜 웃는가를 묻자 무신론자는 그들이 꿈꾸는

곳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존재하지 않는 성을 찾지 말고 자기와 함께 돌아가 즐기자고 권했다.

그러자 크리스챤이 그의 동료 소망에게 말했다. “저 사람의 말이 정말일까요?” 그러자 소망은 기쁨의 산에서

그 성의 문을 보았던 것을 상기시키며 말했다. “내 형제여, 청컨대 그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이룹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그를 떠나갔고, 무신론자는 그들을 비웃으면서 자기

길로 갔다.

 

내가 꿈에 보니, 그들이 마법의 땅으로 접어들고 있었는데, 그곳은 공기를 마시면 자연히 졸립게 되는

곳이었다. 소망이 비틀거리자 크리스챤이 다급하게 말했다. “목자 중 한 사람이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일러준

곳입니다. 잠을 쫓기 위해 좋은 말이나 주고받읍시다.” 소망은 자신이 받은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하여

말하며, 자신은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그분을 보았다고 말했다.

크리스챤은 그 계시를 받은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이를 통해 나는 세상이 아무리 자기 의를

주장해도 이는 저주 받은 상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비록 정의로운 분이시지만

자기에게 나오는 죄인들을 공의롭게 의롭다 하실 수도 있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또 이로 인해 나는 예전의

사악한 생활을 심히 부끄러워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나 자신의 무지를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깨달았고, 거룩한 생활에 대한 사랑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예. 만약 내 몸에 100갤런의 피가 있다면, 이것을 주 예수님을 위해 다 쏟아 부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꿈에서 소망이 고개를 돌려 무지가 뒤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크리스챤에게 말했다. “보세요. 저

멀리 뒤에서 그 젊은 친구가 빈둥거리며 오네요.”

크리스챤이 무지에게 물었다. “지금 하나님과 당신 영혼 사이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무지가 자신감을

세우며 말했다. “하나님과 천국이 있다는 데에 동의하기 때문에 좋으며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과

천국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러자 크리스챤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내 마음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지혜자가 이르기를,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과 생활은 잘 일치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소망은 든든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이죠.”

“누가 당신의 마음과 생활이 잘 일치된다고 말했습니까?” “내 마음이 내게 말해 주었습니다.” 크리스챤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단정적으로 말했다. “내가 도둑인지 아닌지 내 친구에게 물어 보라고 한다더니, 당신

마음이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다구요? 이 문제에 관한 증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할 수 있는 것이요, 다른

것들의 증거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무지는 크리스챤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며 두 순례자에게 먼저 떠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크리스챤이

소망에게 말했다. “자, 나의 친구 소망이여. 우리는 우리끼리 걸어가야 할 것 같소.” 그리하여 내가 꿈에

보니, 그들은 멀찍이 앞서 가고, 무지는 뒤에서 절름거리며 따라갔다. 크리스챤이 다시 자기 동행에게

말했다. “저 불쌍한 사람 때문에 마음이 몹시 상하는군요. 틀림없이 그는 결국 몹쓸 일을 당하게 될 겁니다.”

 

꿈에 내가 보니, 이제 순례자들은 마법의 땅을 벗어나 쁄라(회복된 이스라엘을 상징)땅에 들어갔다. 그곳의

공기는 매우 상쾌했으며, 길은 그 지방을 똑바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곳은 천국의 경계선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가고자 하는 성의 모습이 잘 보였다. 여기서 그들은 포도주의 궁핍을 느끼지 않았다. 이곳엔 모든 것이

풍성했다. 그들은 천상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커다란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거룩한 백성, 주님의 구속을 받은 자, 주께서 찾으신 자’

등으로 불렀다.

 

이제 내가 꿈에 보니, 그들은 천성문이 보이는 곳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다리가 없는 깊은 강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 강을 본 그들은 넋이 빠져버렸다. 그러나 저들과 함께 간 사람들이 말했다.

“당신들은 이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성문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챤은 강이 얼마나

깊은가를 물었다. “당신들이 저곳 임금님을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더 깊어질 수도 있고 더 얕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순례자들은 서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강으로 들어갑시다.”

물로 들어간 크리스챤은 자기 몸이 점점 빠져들자 친구인 소망을 보며 외쳤다. “큰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욘 2 : 3).”

칠흑 같은 어둠과 공포가 크리스챤을 덮었다. 그는 빠져 죽어 천성문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소망이 몇

번씩이나 그를 건져냈지만 그는 이내 가라앉기를 거듭했다. 소망은 그를 위로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면서

말했다. “형제여, 저기 천성문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우릴 영접하려고 서 있군요.”

그러나 크리스챤은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당신이요. 내가 당신을 안 후로 당신은 늘

소망을 갖고 있었지요.” “당신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아, 형제여. 내가 분명히 올바르게 행했다면

지금쯤 그가 일어나사 나를 도와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죄로 인해 그가 나를 올무 가운데 몰아넣으시고

날 떠나셨습니다.”

그에게 소망은 이렇게 말했다. “기운을 내십시오. 환난 때에 그에 의지하여 사는지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당신을 온전케 하십니다.”

그때 크리스챤이 큰 음성으로 외쳤다. “아, 내 눈에 다시 그가 보입니다. 그가 내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라

(사 43 : 20).'"

이에 두 사람은 용기를 가다듬었고, 그 후에 원수는 그들이 강을 건너갈 때까지 돌처럼 잠잠히 있었다.

그리하여 크리스챤은 곧 설 땅을 찾았고, 나머지 강물은 아주 얕아져서 쉽게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천성문으로 나아갔다. 그 성은 높은 산 위에 서 있었지만, 순례자들은 두 사람이 팔로 그들을

잡고 인도한 덕분에 쉽게 그리로 올라갈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강에 그들의 육체의 겉옷을 벗어놓고 왔다.

그들은 강에 들어갈 때는 그 옷을 입고 있었지만, 강에서 나올 때는 옷을 벗고 나왔던 것이다. 천성터는

구름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자신들을 접대해 주는 영광의 동반자들을 만난 그들은 마음이 평안해져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올라갔다. 그들이 빛나는 자들과 나눈 이야기는 그곳의 영광에 관한 이야기였다. 빛나는

자들은 그곳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감히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말했다. “여러분이 가는 곳은 시온 산,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천만

천사와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이 있는 곳입니다(히 12 : 22~23). 당신들은 지금 하나님의 낙원으로 가고

있는데, 거기서 여러분은 생명나무를 볼 것이며 결코 시들지 않는 그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거기 도착하면 흰 옷을 받게 되고 임금님과 매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계 2 : 7, 3 : 4, 22 : 5). 거기서 여러분은 아래 세상에서 보았던 것들, 예를 들면 슬픔과 병고, 괴로움과

죽음을 다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예전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사 65 :16).' 당신들은 이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선지자들과 하나님께서 장차 악에서부터 건져내사 이제 침상에 누워 쉬게도 하시고

그의 의로우심 안에서 걷게 하시는 이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천성문을 향해 나아가는데 보니, 한 무리의 천군들이 그들을 맞으러 나왔다. 두 빛나는 자들이 그

천군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들은 세상에 있을 때 우리 주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들입니다.” 그러자 천군이 말했다. “주께서 우리에게 이들을 모셔오라 명하시기에, 여행을

마친 이분들이 기쁨으로 구속자의 얼굴을 뵙도록 하려고 모셔가는 길입니다.”

그러자 다른 천군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계 19 : 9)." 마침내 순례자들은 천성문 앞에 이르렀다. 그 문 위에는 금으로 이렇게 써 있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 : 14)."

 

내가 꿈에 보니, 그 두 사람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리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의 몸은 변화되었고 의복은

황금 같이 빛났다. 또 사람들이 수금과 면류관을 가져와 그들에게 주었다. 수금은 찬양하는 데 쓰는 것이었고

면류관은 영예의 상징이었다. 대문이 활짝 열려 내가 안을 들여다보니, 성은 마치 태양처럼 빛났다. 또한

거리는 금으로 포장되어 있었고,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와

노래하는 데 쓰는 황금 수금을 들고 있었다. 이 후에 문이 닫혔는데, 그곳을 들여다본 나도 거기 들어가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제2부

 

나는 최근에 볼일이 생겨 다시 크리스챤이 살던 곳에서 1마일쯤 떨어진 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숲 속에 숙소를

정한 나는 잠을 자면서 다시 꿈을 꾸었다.

꿈에 나는 현명이라는 노인과 동행을 하게 되었기에 그와 함께 크리스챤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현명은

크리스챤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가 사는 곳의 왕께서 이미 그에게 궁정 안에 매우 호화롭고

안락한 거처를 하사해 주셔서 모든 이의 재판장이신 왕의 호의와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일부 사람들의

예측인데요. 그 나라의 주관자인 왕의 아들께서 머지않아 이곳으로 오사, 왜 그의 이웃들이 크리스챤을 그리도

박대했는지, 또 그가 순례자가 되고자 함을 알고는 왜 그리도 그를 조롱했는지 혹시 그들이 이유를 댈 수

있으면 그 이유를 알아보실 것이랍니다(유 15). 크리스챤은 지금 왕자님의 사랑을 크게 받고 있기 때문에

왕자님은 그가 순례자가 되었을 때 사람들로부터 당한 불경한 일들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며, 그 모든

일들을 마치 왕자 자신이 당하신 것처럼 판단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크리스챤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왕자님을 사랑했으니 왕자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지요(눅 10 : 16)."

나는 단호히 말했다. “참 잘된 일입니다. 크리스챤이 모든 수고를 그치고 원수의 사정권 밖에서 살게

되었으니 잘됐습니다. 또한 그에 관한 소문이 이 온 지방을 시끄럽게 하였다니 잘됐습니다. 그것이 뒤에 남아

있는 적어도 몇몇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

생각난 김에 여쭤보겠는데요. 그의 아내와 자식들에 관한 소식도 들어보셨습니까? 불쌍한 사람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현명이 답했다. “크리스티아나와 그의 아들들도 크리스챤처럼 순례길을 떠났지요. 마침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봐 두었으니까 당신께 자초지종을 말해드리지요. 내가 보기에 당분간

우리가 동행을 할 것 같으니 잘 되었습니다.”

“크리스티아나는 남편이 안절부절못하면서 신음 소리를 내고 쓰디쓴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에 대해 탄식하던

모습과 더불어, 자기와 함께 가자고 아내와 아들들에게 사랑으로 호소하고 설득하는 남편의 말을 묵살하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 몹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남편의

부르짖음이 그녀의 귀에 가장 슬프게 울려왔답니다. 이에 그녀는 아이들에게 심경을 털어놓고 순례의 길을

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녀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한 사람이 요란하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비밀이라고 밝힌 후 그녀가 높은 곳에 오고 싶어하며 과거 남편에게

완악하게 대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편지를

건넸습니다. 편지에는 그녀도 남편인 크리스챤이 행한 대로 행하기를 바라시는데, 그 길만이 왕의 도성에 와서

영원토록 그와 함께 즐거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크리스티아나가 길을 떠나려는데,

이웃인 겁쟁이 부인과 자비심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겁쟁이 부인은 고집쟁이와 온순의 일, 또한 사자와

아불루온과 죽음의 그림자 등 많은 위험을 그녀의 남편이 겪었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크리스티아나를

말렸습니다. 그리고 허영의 시장에서 당한 위험을 잊지 말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크리스티아나는 “내

이웃이여, 나를 시험하지 마세요.”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무안을 당한 겁쟁이 부인은 자비심에게

돌아가자고 했지만 자비심은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그녀의 마음이 크리스티아나에게 끌렸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녀의 관심이 자기 영혼에 쏠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리하여 크리스티아나는 네 명의 아들과

그 처자, 그리고 자비심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나의 나이 많은 친구는 계속 이야기를 해 나갔다. “크리스티아나의 일행은 남편이 겪었던 절망의

늪을 통과하여 무사히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 자비심(그녀는 아직 젊은 여자였습니다)이 크리스티아나에게

자신도 그녀처럼 좁은 문에서 따뜻하게 영접 받는다는 확실한 소망이 있다면, 절망의 늪 따위가 자신을

실망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크리스티아나는 수다한 고난을 겪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드높은 영광을 얻기 위해 참아야 한다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이때 현명 노인은 나 혼자 꿈을 꾸도록 놓아두고 혼자 떠나갔다. 그리하여 나는 크리스티아나와 자비심과

소년들이 모두 다 좁은 문 앞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크리스티아나는 그의 불쌍한 남편이 했던 대로 거듭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러자 무서운 개의 짖는 소리가 들려와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다. 문지기가

나오자 개의 짖는 소리도 그쳤다. 문지기는 크리스티아나를 알아보더니 그토록 순례자의 생활을 싫어했던

사람이 순례자가 된 것을 매우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문지기는 그녀의 손을 잡아 안으로 인도하였고, 또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막 10 : 14)."고 말하면서 아이들도 인도하였다.

 

그들이 다시 길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두 사나이가 여인에게 곧장 다가와 길을 막으며 말했다.

“당신의 생명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바라는 거요. 응한다면 영원히 여자다운 여자로 만들어

주리다.” 그러자 크리스티아나는 그들이 몸과 영혼을 다 차지하려는 것을 눈치 채고는 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 나왔다. 그러자 악당들은 도망하였고 구조자들은 안내자를 따르게 하지

않은 실수를 탓하며 “주님께서 그의 순례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마련해 놓으신 모든 숙소에는 어떠한 시험도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그들이 해석자의 집에 도착하여 순례를 나서게 된 사정을 설명하자 해석자는 크리스티아나가 남편의 순례에

반대했던 사실을 상기하며 매우 반가워했다. 이튿날 해가 뜰 무렵 그들이 길 떠날 준비를 하자 해석자는

순서를 밟은 후 떠나라며 그들을 목욕탕으로 안내했다. 그들이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한결 더 아름답게

보였다. 해석자는 그들에게 세마포 옷을 선물했다. 그러고 나서 해석자는 담대라는 이름의 남자에게 칼과

방패로 무장을 갖춘 후 그들을 아름다움의 집으로 안내하라고 지시했다. 그들이 길을 떠나자 해석자는

“하나님이 돌보시기를!” 하고 인사했다.

 

계속 길을 가던 그들은 마침내 곤고산 기슭에 이르렀다. 담대는 그들을 샘물로 인도하여 그곳이 예전에

크리스챤이 물을 마셨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샘은 더렵혀져 있었다. “악한 자들이 순례를 방해하기

위해 저지른 악행입니다. 하지만 염려는 없어요. 물은 자연히 맑아질 테니까요.”라고 담대가 일행을

안심시켰다.

그들이 길을 재촉하여 산을 오르는데 자비심과 크리스티아나의 막내아들이 쉬어야겠다며 울기 시작했다.

그들을 담대가 부축하여 간신히 왕자의 정자에 다다랐다. 이때 자비심이 말했다. “고단한 자들에게 휴식은

얼마나 달콤한지요!(마 11 : 28)." 그들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산에 오르던 도중 사자의 공격을 받았으나

담대가 물리쳤으므로 무사히 빠져나와 아름다운 집에 도착하였다.

 

일행이 도착하자 문지기 경계 씨는 크리스티아나가 크리스챤의 아내라는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일행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가 기쁨의 탄성을 터트리며 반가이 맞이했다.

순례자 일행이 이 집에 머무른 지 일 주일쯤 되는 날, 쾌활이라는 남자가 자비심을 찾아왔다. 교양을 약간

갖추기는 했지만 세속에 깊이 물들어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자비심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자비심은 용모가

훌륭하고 매력적이고 부지런한 처녀였다. 자비심은 그녀의 영혼에 거리낌이 되는 일은 피해야 하므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내가 꿈에 보니, 아름다운 집을 나선 그들은 크리스챤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고난과 시험들을 물리치며

고통을 인내하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얼마 후 그들이 한 언덕배기에 이르러, 겸손의 골짜기를 향해

산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골짜기에 도착하자 함께 일행에 합류한 경건이 크리스티아나에게 말했다.

“이곳은 당신 남편이 악한 마귀 아볼루온을 만나 큰 싸움을 벌였던 곳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곧바로

담대가 말했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화를 자초하지 않는다면, 여기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니까요. 이 골짜기는 사나운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누가 여기서 무서운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만 듣고 못된 마귀가 득실거린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여기서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주님께서 이 골짜기에

오두막을 지으신 일이 있었지요. 그는 여기 내려오시는 걸 무척 좋아하셨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풀밭 위를

걷는 것도 좋아하셨습니다. 겸손의 골짜기에는 한적함과 평정만이 있습니다. 여기 오면 묵상하는 데에

방해받을 일이 없지요. 이 골짜기는 순례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습니다. 비록

크리스챤이 여기서 아볼루온을 만나 힘겨운 싸움을 벌이기는 했으나, 그것은 그가 미끄러지며 소란을 피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에 지나간 사람들 중에는 여기서 천사를 만나기도 하고 진주를 발견하기도 하고 생명의

말씀을 얻기도 했습니다(호 2 : 4~5). 또한 주께서는 이 땅을 사랑하며 지나가는 자들을 위해 연금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 돈은 저들이 계속해서 이 길을 지나다니며 용기 있게 순례길을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일정한

절기마다 저들에게 신실하게 지불됩니다.”

 

이제 내가 보니, 계곡을 벗어난 그들은 한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는데,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순례자들을 위한

전망대가 있었다(그곳은 크리스챤이 그의 형제 믿음을 처음 만난 장소였다). 그들은 전망대에 앉아 쉬면서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방금 전 그들을 위협했던 철퇴와 같이 위험한 원수의 손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즐거워하였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동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아래 깊은 잠에 빠져있는 한

늙은 순례자가 있었다. 담대가 살며시 그 노인을 깨웠다. 그러자 정직이라는 노인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을

우둔이라는 마을에서 온 순례자라고 소개했다. 크리스티아나가 자신과 아들을 소개하자 정직은 웃음을 가득

담고 그들에게 무수한 축복을 빌어주었다. “당신의 남편 이름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으니 흡족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의 믿음과 용기와 인내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치 않은 성실성이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보니 그들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어가는데, 정직 씨가 자의 씨(Mr. Self-will)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순례자인척 했지만 그가 좁은 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눈치 챘지요. 그는 다른 사람의 인격이나 주장, 예증 같은 데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요. 그는 제 마음에

내키는 일이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이 순례자들의 공덕뿐 아니라 악덕을

따라도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요. 그 두 가지를 다 행할지라도 틀림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자 담대는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정직이 계속 말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처음에

낙원을 향해 출발할 때는 긍정적으로 ‘그런 곳이 있어’라고 말하다가, 천국에 거의 다 와서는 ‘그런 곳은

없어’하며 돌아서기도 한답니다. 또 자기의 순례길을 막는 자가 나타나면 해치워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떠났다가 거짓된 경고에 놀라 믿음과 순례의 길,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는 소식도 들었지요.”

 

그들은 여행을 계속하다가 주님의 존경받는 제자 가이오가 살고 있는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가이오는

크리스티아나에게 그녀의 시아버님과 시할아버지까지 다 알고 있다며 그녀를 매우 반겨주었다. 소년들이

자비심의 인도로 잠을 자러 올라갔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앉아서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그들과 가이오는

너무나 의기 상통하여 서로 작별의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주님에 대한 이야기, 자신들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노라니까 정직 노인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담대 씨가 수수께끼를 내어 정직 씨의

잠을 깨웠다. “남을 죽이려 하는 자는 먼저 정복을 당해야 하고, 밖에서 살고자 하는 자는 먼저 집 안에서

죽어야 한다.” 정직은 한참 생각한 후 답을 내었다. “죄를 죽이려 하는 자는 먼저 은혜로 정복을 당해야

하고, 살아있음을 남에게 증거하고자 하는 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한다.” 가이오는 옳다면서 자신의

경험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날이 샐 때까지 그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계속 했다. 가족들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자 크리스티아나는 아들

야고보에게 성경을 한 장 읽으라고 명했다. 야고보는 이사야 53장을 읽었는데, 그가 읽기를 마치자 정직 씨가

물었다. “성경 말씀에 왜 구세주께서는 ‘마른 땅’에서 나오는 줄기 같아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

고 했을까요?” 그러자 담대 씨가 말했다. “우선 마른 땅에서 나오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성장하신 당시의

유대 교회가 종교적 활기와 정신을 거의 다 상실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는 말은 불신자들이 그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왕자님의 마음을 들여다볼 눈을 갖지 못한 불신자들은

그의 초라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발견한 보석을 보통 돌인 줄 알고 던져버리는 사람들과

같지요.”

 

순례자들은 길을 가는 도중에 주저 씨를 만나 함께 허영의 도시로 향했다. 거기서 그들은 나손 씨의 집에

머물면서 뜻이 통하는 친구들, 그의 딸인 은혜와 그녀의 친구들인 통회 씨, 거룩 씨, 성도 사랑 씨, 허위 씨,

참회 씨 등을 만나 순례의 어려움과 기쁨을 이야기했다. 그들이 나손 씨의 집에 머무는 동안 괴물 하나가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죽이고,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가서는 새끼들처럼 자기 젖을 빨도록 가르쳤다. 이

괴물은 몸은 용 같고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이 있었다. 그 괴물을 조정하는 자는 어떤 여인이었다.

괴물은 사람들에게 조건을 제시하였는데, 자기 영혼보다 이 세상 삶을 더 사랑하는 자들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에 담대 씨는 나손 씨 댁에 머무는 순례자들을 방문하러 온 선량한 사람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이 짐승과 싸우기로 약속하였다. 담대 씨와 협력자들은 결국 괴물을 물리쳐서 마을에 명성을 날렸고, 아직

물욕에 빠져 있는 많은 사람들도 그들에겐 찬사와 존경을 보냈다.

 

이제 내가 보니 그들은 기쁨의 산에 도착했다. 이곳은 예전에 크리스챤과 소망이 여러 장소를 둘러보며 기분을

전환하던 곳이었다. 목자들은 예전에 크리스챤에게도 말했듯이 기쁨의 산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목자들은 일행을 몇 군데 새로운 장소로 인도하여 경이의 산과 결백의 산, 그리고 자애의 산을 차례차례

보여주었다. 자애의 산에서는 어떤 사람이 옷감 한 필을 앞에 놓고는 자기 주위에 서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겉옷과 속옷을 끊어주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옷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순례자들이 무슨

의미인가 묻자 목자가 말했다. “가난한 자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필접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물을 주는 자는 자신도 물을 얻게 됩니다. 옛날 한 과부가 선지자에게 떡을 만들어

주었지만 그 과부의 밀가루 그릇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습니다(왕상 17 : 16).”

 

기쁨의 산을 출발한 일행은 진리의 용사 씨와 합류하고 마법의 땅을 무사히 지났다. 그 후에 나는 그들이 쁄라

땅에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곳은 밤낮으로 태양이 비치는 곳이었다. 이 땅에서 그들은 자기네 마음과 몸에

거슬리는 것은 하나도 듣지도 않았고 보지도 않았고 만지지도 않았고 냄새 맡지도 않았고 맛보지도 않았다.

이곳에는 이전의 모든 순례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행한 유명한 행적의 역사가 다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그들이 거기에 거하며 좋은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천성으로부터 한 우체부가 순례자 크리스챤의

아내 크리스티아나에게 보내는 중요한 소식을 갖고 왔다는 소리가 마을에 퍼졌다. 우체부의 편지는 이러했다.

“착한 여인이여, 평안할지어다. 주인님께서는 당신을 부르셨고, 열흘 이내에 당신이 불멸의 옷을 입고 그의

앞에 서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크리스티아나는 일행 중 가장 먼저 강을 건너게 되었음을 깨닫고는

안내자인 담대 씨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담대 씨는 축하해주며 여행에 필요한 사항들을 자세히 일러

주었다. 그리고 나서 크리스티아나는 아이들을 불러 축복해 주었다.

 

이제 크리스티아나가 떠나야 할 날이 왔다. 길에는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강

너머에는 크리스티아나를 성문까지 모셔가기 위해 내려온 말과 마차들이 가득하였다. 강가에 다다른 그녀는

환송 나온 여러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보내면서 강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주여, 제가 당신과 함께 거하며 주를 기리기 위해 갑니다.”

강 건너편 넓은 지대에 말과 마차, 나팔 부는 자, 피리 부는 자, 노래하는 자, 현악기 연주하는 자들이 가득

모여 천성의 아름다운 문으로 줄지어 올라가는 순례자들을 환영하는 모습은 영광스럽기 짝이 없었다.

크리스티아나가 데리고 온 네 아들과 그들의 처자는 내가 그곳을 떠나 올 때까지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다.

내가 돌아온 이후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그들은 아직 살아 거기 거하면서 교회를 확장시키고 있다 한다. 만약

내가 또 다시 그 길을 지나갈 기회가 있다면 여기서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을 원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겠다.

그 동안 나의 독자들이여, 안녕!

 

<출처: 행복충전> 

 

 

 

넘치는 은혜

 

“나는 가끔씩 밧줄을 목에 두른 채 사다리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1660년대를 싸늘한 감방에 앉아 보내던 존 번연이 자신이 교수형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기억을 후에

다시 떠올리며 했던 말이다.

번연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전도자와 설교자로서의 소명을 포기할 것을 거절한 연고로 투옥되어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수감자 신세로 보낸다.


다음 세기 복음전도자의 선두에 섰던 존 뉴톤은 그의 생애를 생각하며

‘주께서 유능한 설교자의 입을 다물게 하시면서 넓은 문을 여시는 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유들이 있다.

만약 존 번연이 베드포드 감옥에 갇혀 있지 않고 설교를 계속했었다면 그는 자신의 했던 일의 절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가 그곳에서 쓴 ‘천로역정’은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노인들이 마치 이곳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이생의 일들을 추구하는 것을 보았을 때였고

두 번째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남편, 아내, 자녀의 죽음 등과 같은 손실들을 겪을 때 너무 번민하고 낙담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이 말을 그가 하늘나라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 유명한 설교자로서 일하다가 60세에 그가 쓴 천로역경처럼
‘멸망의 도시’를 떠나 오랫동안 소망해왔던

‘새 예루살렘’을 향해 떠났다. 

 

(< 넘치는 은혜> / 존 번연) 에서

 

 

 

 

  John Bunyan.

 

 

존 번연(John Bunyan)의 구원간증

 

 

땜장이 어린 시절

 

나는 1628년 영국 베드포드 근처 엘스토우 동네 초가 단칸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몹시도 짓궂었습니다. 부모가 가난한 데다 바쁘기까지 해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나는 들에 풀어놓은 망아지와 같았습니다.

되는 대로 일을 저지르고 욕도 하며, 신을 모독하는 말과 거짓말도 예사로 해댔지요.

패륜아, 깡패라는 말이 내게 어울렸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어느새 몸에 배어 동네에서 못된 짓 하기로는 나를 따를 아이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 참으로 다행한 것은 내가 엘스토우의 소학교에 다녔다는 거였습니다.

정식으로 졸업은 하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읽고 쓰는 것은 익힐 수가 있었으니까요.

극빈자에 속하는 내가 읽고 쓸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당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모처럼 배운 것들을 뒤돌아서면 다 잊어버리곤 했지만 말입니다.

가난한 현실은 장차의 벌이를 위해 아버지로부터 땜장이 일을 배워야 했습니다.

장날이면 땜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장터로 나가 장사꾼들과 마술사, 광대들, 건달패들을 구경하였고, 노전에 쌓아놓고 파는

싸구려 책들을 뒤적이며 읽어보곤 했습니다.

그 속에는 중세 기사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이야기 속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엘스토우 소학교에서 글을 익힌 덕분에 나는 이렇게나마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흔히 개구쟁이들이 부모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엉뚱한 짓을 하고, 더러는 위험에 빠지기도 하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들, 산, 강으로 쏘다니다가 수렁에 빠져 죽음 직전을 헤맨 적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그러나 험한 짓을 하는 사람들 마음에 항상 생기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처럼 철부지 나에게 있어서도 생기는 일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못된 짓을 험하게 저지른 날 밤에는 꿈속에서 도깨비와 귀신들이 나를 잡아가려 했고,

가위에 눌렸고, 아무리 발버둥 처도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아직 열 살이 채 못 된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런 무서운 환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주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내가 청년기로 접어드는 15세 때 불행하게도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설상가상으로 누이 마가레트마저

엘스토우 공동묘지에 어머니와 나란히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나는 슬픔과 허망함에 비통해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런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도 못되어 새 아내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때 나는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고통과 슬픔을 잊고자  16세 되는 생일을 기다려 크롬웰 군대에 자진 입대하여 집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군대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성경을 대했습니다.

크롬웰은 군인들에게 하나님이 자기편에 서셨다는 확신을 갖도록 해주기 위해 군인 수첩 성경을 편찬 배부했어요.

군규율은 극도로 엄격했고 나는 평범한 사병으로 3년간 복무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나는 또 한 번의 죽음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건 정말이지 엄청나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떤 싸움터에서 내가 출전할 순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부대의 병사가 대신 출전하겠다고 나갔습니다.

나간 병사는 보초를 서다가 머리에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동료대신 살아남은 나는 정말이지 예고 없이 닥치는 죽음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버지의 권유로 곧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의 신부 메리는 후리후리하고 강한 인상의 용모에 착하고 신앙심이 깊은 처녀였습니다.

메리와의 결혼 생활은 나를 차분하고 안정된 행복으로 몰아갔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결혼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1650년에 첫딸 메리가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고, 그후 엘리자베드, 존, 토마스가 차례로 태어났습니다. 그중에서도 나는 맹인

메리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나의 장인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으며 또 매우 가난하였는데 아내는 장인으로부터 지참금조로 「평범한 사람이 신앙에

이르는 길」과 「신앙의 실천」이라는 두 권의 책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 이 책은 나를 영국의 성공회 쪽으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제멋대로 살았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으며, 오히려 교회성물이나 예식에 매혹되어 그런 형식을 숭배하는

미신에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죄에 관한 것이나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말이죠.

그러나 양심은 살아있어서 송사는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너무 큰 죄인이라서 그리스도는 절대로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미 때는 늦었다고 생각하고 절망의 수렁에 빠진 나는 자포자기하여 한 달 이상을 꿀맛 같은 죄로 잔득

배를 불렸습니다.

나는 곧잘 남을 저주하는 욕을 했습니다.

‘모가지가 부러져라’라든가 ‘골통이 깨져라’ 같은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나는 양심에 아무 거리낌도 없이 마구 해댔습니다.

이런 나를 보면서 나의 아내의 얼굴은 하루도 눈물 자국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집 근처 가게 앞에서 미친 듯이 몹쓸 욕을 지껄이고 있는데 갑자기 가게 아주머니가 나오면서 나를 향해,

“아이구!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녀석 같으니라구! 너같이 몹쓸 놈은 처음 보았어! 이러다가 동네 애들 다 망치겠네.”

하면서 내게 욕설을 마구 퍼붓는게 아니겠어요?

그 아주머니도 동네에서 언행이 거칠기로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런 아주머니한테서까지 그런 욕을 먹는다는 게

너무 수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주머니의 욕설에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 사건은 충격이었습니다.

그 충격적인 일로 인해 나는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부드럽고 점잖게 말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어떤 가난한 신자를 사귀어 그와 함께 성경 읽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기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애써 선하게 되려고, 그렇게도 좋아하는 종치기와 춤추기, 사냥, 운동 등을 접고 내면세계에 조금씩 초점을

맞추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변해가는 동안 가족들은 물론 동네에서도 칭찬이 자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칭찬을 듣기 시작하자 칭찬의 끈이 끊어질까봐 계율들을 어기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나는 처음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그런 노력은 애석하게도 그리스도의 선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의만 내세우려고 애쓰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변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땜질할 일이 생겨 베드포드로 가게 되었습니다.

베드포드로 가게 된 것은 정말이지 내 인생에 있어서 몇 안 되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그 집 길목에 이르렀을 때 나는 서너 명의 여인들이 집 문가에서 햇볕을 쪼이며 하나님에 대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들은 생활에 미치는 하나님의 손길, 자신들의 부끄러운 상태에 대한 깨달음 같은 말을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통해 사랑으로 그들의 영혼에 찾아오신 일이며, 사탄의 꾀임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받았으며

얼마나 자신들이 위선적인 선을 행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이제는 의를 행하는 것이 꺼려지고 싫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나는 물론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기쁜 나머지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죠.

그렇게 맑은 웃음을 띄운 얼굴을 나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나의 신앙이 완전히 무위 상태인 것과 내가 거듭나지 못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나는 그들과 사귀었습니다.

그러나 사귀면 사귈수록 실은 나는 초조해 졌고 조그만 일에도 양심의 송사를 받아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 후부터 나는 시종일관 영원이나 천국에 관한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새로운 눈으로 성경을 대하게 되었고, 베드포드의 가난한 여인들의 행복한 모습은 환상이 되어 나의 눈앞에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 때문에 그들에게 갈 수 없음을 생각하고 외로워졌습니다.

 

그 외로움이 계속되는 동안 내 속에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선택되어 있는 존재인가? 만일 은혜 받을 시기가 지나갔으면 어떻게 하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예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라는 유혹의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길을 걷는 도중에도 정신이 멍해져 몇 번이나 쓰러질 뻔하였는데 그러는 중에 나는 성경의 많은 구절 속에서 숨은 이치들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는 두려운 구절만 있는 게 아니고 위로의 구절도 있다는 걸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나는 오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광에 참여할 자는 이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에 의해 부르심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마음속으로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었는지 모릅니다.

도저히 붓으로는 나타낼 수 없을 만큼. 나는 거듭나는 상태의 영광을 알았기에 어떻게든 참여하지 않고는 못 배기었습니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편16:6)”라는 말씀을 실감하며, 온 세상을

주고라도 거듭남의 경지와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나는 베드포드의 여인들에게 심경을 털어놓게 되었고 그들의 목사 기포드는 나를 그들이 모여 예배를 보는

베드포드의 독립교회로 인도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기포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기포드는 어떤 사람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로 인해 나의 죄의식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나의 악한 마음은 빛 가운데 드러났고, 나의 내부에서는 육욕과 타락이, 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악한 생각과 욕망을 잉태하여

미쳐 날뛰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고, 죄성이 가득한 나는 영원한 벌을 받게 되는 율법아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양심은 예민해졌고, 바늘 한 개, 지푸라기 하나도 손대려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도 조심했고, 겁에 질려 움찔 거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뭇 마음속에서는 죄와 부정이 콸콸 솟구쳤고, 부정의 상태와 은총의 상태는 도저히 양립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의 틈새로 마귀는 나에게

너는 구원을 얻기 어려운 마음을 가진 자가 되었다’고 속삭였고 나는 몇 년을 두고 이런 생각 속에서 고민하였습니다.

나는 차라리 짐승과, 새와 물고기가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죄나 지옥 같은 걸 모를 거였기 때문이었죠.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인간처럼 슬픈 존재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버림받은 죄인의 괴수

 

하지만 은혜의 날은 멀기만 했습니다.

나는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못해 심신의 병까지 얻고 말았습니다.

기다림의 틈새로 또 다른 유혹이 밀려 왔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신 것을 한탄했고, 때때로 성경을 의심하고 싶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기포드 목사는 나의 신앙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흔히 얽매이기 쉬운 과거 생활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교인들을 해방시키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경건한 옛 사람들의 경험을 알고 싶어서 골몰하던 중, 책장이 뭉그러질 정도로 고물이 된 마르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주석을 보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속엔 현자 자신이 겪는 상태가 깊이 다루어져 있었습니다.

마치 내 심정으로부터 시작한 글인 듯싶었죠.

나는 내가 겪는 시련들이 악마, 죽음, 지옥 뿐 아니라 모세의 율법에도 크게 관련되었다는 것을 그 책을 통하여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너무도 부족해서 주에게서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곧 들기 시작했습니다.

장자의 권리를 판 에서처럼, 축복을 거절당한 듯한 괴로움에 끊임없이 허덕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고 있을 때,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허물을 사하여 주신다’라는 말씀이 나의 마음을 두들겼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추구하는 나의 마음 한 쪽에선

‘여러분이 아는 거처럼 에서는 축복받기를 원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성구가 치고나왔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끼리 싸움이 붙었습니다.

말씀에서 말씀으로 치고받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고 사는 것조차 싫어졌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지 못했던 것은 죽는 것은 현실보다 더 무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바라보이는 파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나는 내 죄가 다윗의 간음이나 살인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책감에 실려 오는 무서운 생각. 나는 내가 원하는 축복을 거절당하는 환상을 지울 수가 없었고, 예수를 판 가룟

유다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생각나는 성경 구절 하나가 강하게 나를 붙잡아 세웠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이사야44:22).’ 나는 도망치던 발을 멈추고 되돌아보았습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그러나.... 그 강한 은혜의 말씀이 나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축복을 받고자 했으나 버림받았고, 눈물을 흘리며 구했으나 기회 얻지 못했다.’는 말씀 때문에 모든 것이 다시 어둠에

가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거절당했노라!”

성령을 훼방한 죄는 사하심을 못 받고...”

이런 불쌍한 상태로 나는 어느 거리를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만약 이 죄가 성령을 거스리는 죄와 틀리다면 하나님, 알려 주소서’ 하고.

그러자 그때 다시 마음의 소리가 들렸고, 그것은 정녕 상쾌한 아침의 대화였습니다.

“너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을 거부한 일이 있는가?”

“없습니다.”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바를 거역하지 말라”

그것은 나의 마음을 꽉 붙드는 위엄이며 질책이기도 했고 미친 듯이 용솟음치는 허망한 생각을 진정시키는 계시였습니다.

나의 영혼은 평온해졌고, 희망이 가슴에 꽉 차올랐습니다.

천국 문 옆에 바로 지옥문이 있어 어떻게든 천국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의 앞을 가로막는 유혹의 힘이

천국 문 옆에까지 있다는 걸 나는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를 깊이 느끼게 되었고,

성경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진지하게 읽게 되었습니다.

 

 

넘치는 은총 (1644년)

 

그러나 갈아지지 않은 밭에 뿌려진 씨는 뿌리를 내리는 데에도 그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유혹자는 여전히 나에게 절망적인 음성으로 속삭였습니다.

넌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 못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니까 말야’하고 말했습니다.

주의 능력을 맛보면서도 나는 나의 죄만 들여다보았고, 죄는 항상 절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수많은 싸움이 다시 마음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나와 같은 가련한 인간을 하나님은 어떻게 권면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요11:4)’는 말씀이 곧 따라와 질문을 물리쳤습니다.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우리를 구원하사...(딤후1:9)’

‘제게 죽음을 허락하소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이런 긴 변론이 끝나갈 즈음 나의 심신은 다시 쾌유되었고, 그리고 마음속에 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단호하고도 절박한 생각.

그러자 의심케 하는 미혹의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까지 읽었던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의 말씀.

천만 천사들의 총회....라는 구절이 불현듯 가슴이 떠오르면서 나는 처음으로 의심의 그늘이 없는 온전한 기쁨을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저주의 늪을 빠져나와 은혜의 골짜기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어려서 몇 번이나 죽음에 던져질 뻔한 것을

건지셨던 하나님은 이제야 나에게 완전한 생명을 선물하셨습니다. 나는 마침내 생명책에 새로이 기록된 이름을

얻었습니다.

나는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되었고 기쁨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1655년.

나의 가장 친한 신앙 친구인 기포드 목사가 세상을 떠나자

나는 베드포드 교회 교회의 요청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인간의 죄와 그 죄가 불러들일 무서운 징벌에 대해 외쳤습니다.

비천한 땜장이 집사의 호소력 있는 웅변은 사람들이 듣기에 쉽고 안정감을 주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베드포드 부근 곳곳에서 수백명이 복음을 듣기 위해 찾아왔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1659년. 영국은 크롬웰이 죽고 의회가 해산되었습니다.

새로 등극한 챨스2세는 성공회(국교)와 청교간의 화해를 모색했으나 청교도들이 예배 의식을 달리 함으로써 행정

책임자들과의 사이에 금이 가게 되었습니다.

청교도 목사들은 영국 국교에서 축출되고 국교 예배가 아닌 사사로운 집회는 모두 금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집회를 해산하지 않을 때는 구속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성공회 명령에 순응할 수 없었습니다.

예배들일 장소를 잃은 사람들은 가정에서 모이기도 하고, 마굿간 또는 길섶 등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찾아주시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서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660.11.12일.

한 농가에서 설교를 시작하려던 중 문이 열리면서 지방행정관의 부하가 나에게 체포영장과 수갑을 들이밀었고, 그 길로

나는 베드포드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온기 없는 불결한 짚바닥, 음산한 공기, 어둡고 초만원이기까지 한 감방.

12년간의 감옥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곳에서 <천로역정>등 몇 권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죄를 많이 짓고 살았던 나의 과거는 말씀을 붙잡고 강건하게 서는 일이 무척 힘들었었고, 그 미혹하는 목소리를

되새기며 나는 순례자의 길 곳곳에 있는 함정에 대해 적었습니다.

두 목소리 사이에서 헤매던 나의 싸움은 이렇게 해서 불멸의 책으로 승화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존 번연(John Bunyan)

영국의 침례교 평신도 설교자, 작가.

영국. 1628년~1688년 . 베드퍼드의 엘스토우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남.

1644년 거듭남을 경험.

저서 : 《천로역정》,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거룩한 싸움》

 

<참고>

*성ː―공회(聖公會) 기독교 신교의 한 파. 영국 국교회의 전통과 조직을 같이하는 교회의 총칭.

*청―교도(淸敎徒) 16세기 후반, 영국 교회에 반항하여 일어난 프로테스탄트의 한 종단(宗團). 또는 그 교도. 퓨리턴.

http://www.holybible.or.kr/  

 

<출처: 산위에서 부는 바람>

 

 

 

출처 : 믿음의 문학
글쓴이 : 靑野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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