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철학, 경제, 과학, 문화, 예술, 건강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이 어떻게 법을 지키라고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깊었습니다. 또한 헬라인들은 소트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유명한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새로운 철학들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뛰어난 문화, 예술, 스포츠 등에 열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4대 성인 중에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그러합니까? 그렇치 않다면 예수님이 그들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비록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셨으며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왜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로 결단을 한것입니까? 그리고 그는 왜 교회가 십자가 복음을 말하지 않음으로 무기력해진다는 것을 엄중하게 경고한 것입니까? 그 시대와는 다르게 지금 교회와 성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왜 고백하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솔로몬의 교훈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사람입니다. 여인들을 사랑했고, 부와권덕을 누리며 살았고, 쾌락과 명예를 좇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그런 그가 내린 결론은 이세상의 허무와 헛됨' 이었습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 되도다"는 것입니다(전1:2). 세상의 헛됨과 인생의 허무와 절망을 알때, 참된 희망은 예수를 아는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관심을 같고 대단하다고 여긴 지식들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무의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만을 탐구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솔로몬과 바울의 모습은 실제로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사실입니다. 세상의 과거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막강한 제국들이 줄줄이 사라지고, 세계 치안의 안전을 장담하던 강대국들이 테러를 잠재우지 못했고, 아프리카의 고통을 줄여준다던 교육투자도 큰 성과 없이 기아과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실정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찾던 모든 철학, 군사, 경제, 문화. 교육, 스포츠 등은 인류가 절실하게 찾는 문제에 답을 주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무익하고 공허함만 남겼습니다. 오히려 혼란과 절망만 남겼습니다. 이제 참된 소망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대해 진지한 탐구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말씀인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을 확실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제1강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성육신)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한 결과 나타난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신적 자리에서 육신의 몸인 인간으로 오셨음을 의미하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리스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체' 이십니다. 여기서 본체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 능력, 권세에 있어서 동일한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성육신(incarnation)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땅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땅에 오신 메시아 이십니다. ♣ 성육신 성육신은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고 태어나신 것을 말한다. 성육신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것이며, 성령에 의해 탄생된 초자연적 사건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7문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곧 그의 강생하심인데 또한 비천한 지위에 나셔서 율법 아래 복종하시고 금생에 여러 가지 비참함과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받으시고 묻히셔서 얼마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신 것이다"라고 했다. 빌립보서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세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들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서입니다(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②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하시기 위해서입니다(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③ 아버지를 드러내시기 위해서입니다(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④ 신령한 대제사장의 사명을 위해서입니다(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⑤ 인간을 죄에서 구하시기 위해서입니다(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⑥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서입니다(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⑦ 사람들의 모델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요일2: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어거스틴은 신자에게 필요한 성품으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들도 자신을 비워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낮아지신 주님의 검손을 따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높임으로 주님의 겸손을 실천한 사람입니다(빌립보서 2:3, 이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모든 일에 겸손이 없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를 세울 수 없습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가 만연한 공동체는 다툼과 분열로 깨지게 됩니다. 겸손은 개인적 인격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고 하나 되게 하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제2강 그리스도의 인격(인격과 신격)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가지신 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는 '참사람이며 참하나님' 이십니다. 이 참된 인성과 참된 신성이라는 두 본성이 한 인격 안에서 혼합이나 혼돈되거나, 분리나 분열되지 않고 하나로 결합되었습니다. 그분은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완전한 인간(인성)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시기에 완전한 하나님(신성)이십니다. 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교회사를 통해서 이단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인하고 왜곡하였습니다. 이단들은 예수의 신-인(God-man)이심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다가 빗나갔습니다. 신비로운 그리스도를 인간이 다 알 수 있다면 믿을만한 가치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이성과 지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고 자기 멋대로 평가를 합니다. 그 결과 성경 말씀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지 못함으로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이단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해 많은 오해가 생겨나 이단들이 교회를 매우 혼란케 했다.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단지 뛰어난 인간으로만 이해한 사람들(아리우스)과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만 인정한 사람들(아폴리나리우스), 신성과 인성의 한 몸 안에 언격하게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사람들(네스토리우스: 예수는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다,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어 새로운 인격으로 존재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유티케스: 예수는 어떤 때는 인간이다가 어떤 때는 신이다)이 있었다. 인성으로써 그리스도가 참 사람이신 증거는 그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다는 것과(마1:18-23), 인간적 욕구와(요19:28, 막11:12), 인간적 감정(요11:35)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인간이셨기에 목마르고, 배고프고,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는 참인간의 대표성을 가지고 구원을 베푸십니다(롬 5:17-19), 그분의 인성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이해하고 본을 삼게 됩니다(요13:15), 동시에 예수님은 참된 신성을 가지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예수님은 육신으로 이 땅에 거하시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 은혜, 진리가 충만한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하나님과 일체성을 가지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는 두 인격으로 구별되시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까지 설명하실 수 있는 말씀으로 인성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1:1, 14:10), 또한 예수님은 죄가 없으셔서 사람을 구원할 완벽한 신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히 9:26). 제3강 그리스도의 직분(선지자, 제사장, 왕) 그리스도는 선지자(prophet), 제사장(priest), 왕(king)의 직분을 행하십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삼중직' 이라고 부릅니다(시2:6, 사9:6-7. 히4:14-15, 계19:16). 예수님은 선지자의 임무를 수행하십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들에게 전해주시는 사명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가르침, 권면, 훈계, 약속, 책망의 형태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주심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들에게 알리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요14:26, 15:15, 히1:1-2). 또한 성령님을 통해 우리늘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감동을 받도록 지금도 일하시는 선지자 예수님이십니다(벧전 4: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예수님은 제사장 직분을 가지십니다. 우리들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날마다 나가서 항상 간구하시며 중보사역을 행하십니다(사53:6, 12, 막10:45, 롬3:25, 갈3:13, 히2:17, 9:28). 또한 예수님은 우리가 자신의 이름을 힘입어 기도하고 봉사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우십니다(요17:15, 17, 히4:16, 벧전2:4-5),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나라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고, 보호하시고, 어떤 환난 속에서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히2:18, 4:15). 히브리서 4:14-15,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계신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십니까? ① 예수님은 우리 죄를 단번에 속죄하시고 영원한 구원을 이루십니다(히9:12. 26-28, 7:27, 10:10. 벧전3:18). ② 예수님은 지속적으로 우리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중보하십니다(사53:12. 롬8:34. 히7:25) ③ 예수님은 마귀의 끈질긴 비난으로부터 우리들을 밤낮으로 보호하십니다(눅22:31-32, 롬8:34, 계12:11). ④ 예수님은 연약한 우리들에게 큰 위로를 해주십니다(히2:16. 18. 4:12-14, 16) 또한 예수님은 왕의 직분을 행하십니다. 비록 육신으로 이 땅에 계셨지만 우리는 왕이신 그리스도에게 철저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시고 모든 원수에게서 보호하십니다.(시110:1, 사33:22, 행2:35-36, 고전15:25, 계19:11). 그리고 예수님은 원수들이 완전히 패하고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일하십니다(고전15:25-26, 54). 왕이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골1:18),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왕이십니다(행2:22, 엡1:20-(929 에베소서 1:20-22, 20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제4강 그리스도의 사역(십자가와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진수를 가르쳐주기 때무에기독교 진리의 핵심입니다. 십자가는 우발적이고 인위적 사건이 아니라 완벽하게 예언된 말씀입니다(민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시22편,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서 철저하게 진행된 하나님의 완전한 자기 계시입니다(고전2:7-8,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래서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은혜, 사랑, 계시, 진리, 영광, 구원 등,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신자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신앙의 절정, 믿음의 극치, 최고의 가치로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신자들이 십자가를 절대적 가지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예수님이 거기서 이루신 일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와 허물을 짊어지시기 위해 하나님에게 처절한 저주와 버림을 당하시고(신27:26, 시22:1-6. 갈3:19), 하나님의 희생양이 되시고(레16:5-6, 민21:5-9. 눅24:26), 세상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사6:2-3, 고후5:21, 갈3:13, 골2:9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에게 쏟아진 처절한 아픔을 표현한 언어들은 예수님이 단지 고통 속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온 몸으로 받으셨다는 것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 결과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하나님의 진노를 은혜로 바꿔놓으신 것입니다(민6:24-26). 이처럼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를 끔찍하게 싫어하신다는 사실(겔22:18-22. 미1:4, 나1:4, 시22:14)과 자기 백성을 맹렬하게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습니다(요15:25, 롬1:30, 요일4:10). 이 사실은 십자가의 구원만이 절대적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부활은 교회와 주일을 세운 중요한 사건이다. 주일성수에 대한 초대교회 교부들의 증거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그날을 기념하는 것이 교회에 매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 교회는 주님이 부활하신 날에 떡을 떼고 성찬을 나누며 예배를 드리는 등 기쁨과 축제의 예배를 하나님께드렸다. 로마 제국의 지방장관 소 플루니가트라안 황제에게 보낸 문헌에 의하면,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점으로 유대교에서 분리한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을 피해 이른 새벽 함께 모여 성찬을 거행하고 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기독교의 독자적인 전동을 잇기 시작했다. 2세기 중엽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는 "우리 모두는 주의 날(the day of the sun) 함께 모였다."고 전하며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성수가 당시에 널리 실천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3세기 초엽에 초대교부 터둘리안도 안식일 전통대신 주일을 예배드리는 거룩한 날이라고 주장했다. 주일의 전통은 정치적인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부활 후 초대교회에서 시작한 거룩한 날이다. 부활의 사건은 십자가와 더불어 기독교 신앙의 핵심진리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교회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초대교회가 외친 승리의 찬가입니다. 부활은 성도를 규정하고, 교회가 세워지고, 주일을 지키는 정확한 근거입니다. 고린도전서 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면 사람들은 어찌지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사복음서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 후 첫째 날에 죽음에서 부활한 것을 제자들이 눈으로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따라 초대교회 신앙 공동체가 그날을 승리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특별히 지켰습니다. 더 나아가,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부활하신 주님이 그 날에 승리의 부활을 기념하시고 신약교회의 태동을 선언하신 의미가 있습니다. 이 주일 날에 사도들과 성도들은 주일 아침과 저녁에 모여 거룩한 성만찬과 성도의 교제에 힘썼던 것입니다(행 20:5-2. 16, 고전 ♣ 권세 "권세"는 권위, 권리, 권력을 뜻하는 헬라어 '엑수시아' (exousia)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를 받으셨다(마28:18). 하늘과 땅의 표현은 예수님의 권위와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적 공간적 의미를 말한다. 그리스도는 승천을 통해 피조 세계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는 권세를 부여받으셨으며 그 권세는 무힌하며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부활의 신앙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희망이 있다는 것과 우리도 다시 산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롬6:8).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이기셨기에 우리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단순한 기독교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실제적인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10-12,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인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복음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종교적 가르침이거나 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십자가 복음은 우리들의 삶에 실제적인 행복과 만족과 희망을 주는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의 근거와 확신을 줍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알고 믿고 체험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새 생명을 주어 세상의 절망과 좌절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믿음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제5강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승천과 통치) 그리스도의 승천은 단지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만을 말하는 사소한 교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나라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가르침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사역의 마지막은 십자가와 부활 뿐만 아니라 재림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예수님의 승천을 통해 이루어 졌습니다. 승천은 복음을 선포하는데 필수적 신앙인 '그리스도의 주권' 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만유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주권을 직접 수여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행2:36, 시110:4, 히5:6). 그분이 주신 주권은 절대적 권위와 함께합니다. 마태복음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리스도의 승천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시다."는 분명한 신앙과 복음전파의 고백이 가능하도록 만들이 줍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군게 확신해야 할 절대적 진리이며 분별성을 가지도록 삶에 영향력을 주는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절대적 주권(시2:1-6)은 복음에 반대하면서도 문제 없이 살아가는 대적자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이 지금 즉시 손을 내밀어 불경한 자들을 처단하지 않으시더라도, 그분이 지금 그들을 비웃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세상과 사람의 운명이 승천하신 그리스도에게 달렸다는 것을 진리로 확신될 때 신자는 세상에 진정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진리를 확실하게 믿지 않으면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삶 속에서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에베소서 4:9-10,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승천은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서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의 자리에 앉으셨다는 대관식입니다. 그리고 대관식을 통해 온 우주를 다스리는 권세를 갖게 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높아지심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구원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온 땅에 성취되는 충만한 세계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입니다. - 참조 : '평신도 신학' / 21C 목회연구소 |
'주 예수 그리스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의 생애와 성령의 역할 (0) | 2022.10.25 |
---|---|
그리스도의 본성 (0) | 2022.10.25 |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의 의미와 중요성 (0) | 2022.10.22 |
구약에 나타나신 그리스도 (0) | 2022.10.22 |
예수님의 칠대신비 (0) | 2022.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