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좀먹는 노인" 총살…"이젠 현실같다"는 섬뜩한 이 영화
입력2022.10.11.
“고령층이 일본 경제를 좀먹고, 젊은 세대에게 커다란 부담감을 지우고 있다. 노인들은 분명 우리 사회에 부담이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 젊은 남성이 이같은 주장을 남긴 뒤 노인들을 총기로 살해한다. 유사한 노인 혐오 범죄가 잇따르자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에게 스스로 죽음을 택할 권리를 부여하는 법안을 제정한다. 이른바 ‘플랜75’ 정책으로, 국민이 죽음을 신청하면 정부가 존엄사 절차를 시행해준다. 이 제도를 택하는 노인에게는 ‘위로금’ 명목으로 10만엔(약 98만원)도 지급한다. 공무원들은 공원을 돌며 정책을 홍보하고, TV 공익 광고에선 “언제 죽을지 결정할 수 있어서 좋다”며 웃는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현실인지 상상인지 분간이 어려운 위 풍경은 다행히 영화 속 이야기다. 지난 6월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플랜75’(Plan75)는 이같은 섬뜩한 상상을 담아내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일본과 한국 모두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고령화 문제를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인 하야카와 치에(46) 감독은 “약자에 대해 관용이 점차 사라져가는 일본 사회에 대한 분노감 때문에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약자에 관용 잃어가는 사회에 분노”
하야카와 감독은 약자에 대한 관용을 잃어가는 일본 사회를 직접 체감했던 계기로 2016년 가나가와현에서 벌어진 장애인 살해 사건을 꼽았다. 당시 중증 장애인 19명을 무참히 살해했던 범인은 “장애인은 해악만 끼친다”, “일본이 장애인을 안락사할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등의 주장을 늘어놔 충격을 줬다.
하야카와 감독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느낀 게 영화를 만드는 동기가 됐다”며 “가까운 미래에 실제 ‘플랜75’와 같은 제도가 생겨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4년 전, 이 영화의 단편 버전을 처음 만들었을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설마 일어나겠어’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코로나19를 겪은 뒤에는 ‘진짜 현실 같다’는 반응이 많아졌어요. ‘플랜75’ 같은 제도가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많았고요.”
“국가에 순종적인 日 사회, 이대론 안된다는 위기감”
하야카와 감독은 “일본인은 ‘국가가 정한 것은 바꿀 수 없다’는 국민성을 갖고 있다”며 “전쟁을 했던 일본의 역사를 통해 이같은 분위기가 이어져온 것 같지만,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영화 속 인물이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는, 흔치 않은 연출을 영화에서 두 차례 활용한 감독은 “한 번은 이 위기가 닥쳐오는 걸 직감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고, 또 한 번은 관객들을 향해 ‘당신들도 이 시스템에 가담하고 있는 방관자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화는 미래를 비관적으로 그리는 것을 통해 역설적으로 이런 미래를 막을 수 있다는 희망 또한 보여준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정책을 홍보하던 젊은 공무원이 가족의 죽음 앞에서 회의감을 느끼거나, 죽음을 앞둔 노인들을 상담하는 콜센터 직원이 자신의 일이 지닌 비인간성을 깨닫는 장면 등에 ‘이런 미래는 옳지 않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녹아있다.
하야카와 감독은 “고령화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영화지만, 고령화뿐 아니라 빈곤층,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영화로, 조금 더 큰 틀에서 봐주면 좋겠다”며 “지금 사회는 ‘개인의 문제는 각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약자들이 혼자 고통받지 않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인간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내면을 그리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하야카와 감독은 ‘플랜75’를 관람할 한국 관객에게도 “이 영화는 여백이 많은 영화이기 때문에 어떤 것을 느낄지는 관객의 몫”이라며 “논리가 아닌 감정으로, 자유롭게 느껴 달라”는 당부를 전했다.
“흑백 논리가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사회이지만, 분명히 나눌 수 없는 회색 지대가 사실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답을 명확히 내릴 수 없는, 모호한 문제를 소중히 여기는 영화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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