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이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우리의 죽음

하나님아들 2022. 1. 24. 22:39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우리의 죽음

 

 

김헌수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교의학)

 

한 사회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장례’이다. 죽음에 대한 이해는 삶에 대한 이해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죽음과 장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은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한 점에서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성찰도 도움이 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하여 성경과 요리문답이 가르치는 것을 공부하면 더욱 큰 유익을 얻는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6주일에서는 사도신경 네 번째 항목 중에 “죽으시고 장사되셨고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고 말하는 부분에 관하여서 가르친다. 먼저 40문에서는 그분이 죽으신 이유에 대해서, 41문에서는 장사되심의 의미에 대하여서 이야기한 후, 42문과 43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이 우리의 죽음과 현재 생활에 주는 유익에 대하여서 각각 말하고, 44문은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구절에 대하여서 이야기한다. 이렇게 우리의 요리문답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을 이야기할 때에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에 초점을 맞추어서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유: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가 요구하기 때문에 (40문)

 

 40문에서는 “그리스도는 왜 ‘죽으시기’까지 낮아져야 했습니까?” 하고 묻고는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 때문에 우리의 죗값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 이외에는 달리 치를 길이 없습니다” 하고 답한다. 우리의 죗값을 아드님에게서 찾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는 사실을 이미 제5-6주일에서 배웠지만, 40문에서는 ‘공의’만이 아니라 ‘진리’를 덧붙여서 말한다. 대속의 죽음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진리’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낮아지셨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구약에서 가르친 진리의 말씀대로 그 길을 가셨다. 칼을 들어서 예수님을 보호하려던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마 26:53-54) 하시면서 스스로 죽기까지 낮아지셨다.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의 의미 (41문)

 

41문: 그리스도는 왜 “장사”되셨습니까?

답: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은

그가 진정으로 죽으셨음을 확증합니다.

 

사람의 세계에서 장사되는 것은 죽음을 확정하는 의미가 있다. 관에 있을 때에는 얼굴이라도 볼 수 있지만, 땅에 묻히면 정말로 죽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래서 시신이 땅에 묻힐 때에 유족들은 더 큰 슬픔을 느끼고 오열하기도 한다.

예수님의 장사에 대하여서는 사복음서가 모두 기록하고 있는데, 그만큼 그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요셉이다. 그는 니고데모와 함께 몰약과 침향 섞은 것 백 근쯤을 가지고 고귀한 장례를 치렀고, 아무도 사용한 적이 없는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묻었다. 이것으로써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하는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사 53:9).

 예수님의 죽으심은 원수들에 의해서도 확정되었다. 로마 군인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서 그의 죽으심을 분명히 확인하였고,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빌라도에게 그 무덤을 인봉할 것을 요구했으며,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물어서 확인하고 그 무덤을 인봉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을 공적으로 확정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재판을 받으신 것도 공적(公的)으로 정죄된 일인 것처럼, 그분의 무덤에는 빌라도의 인(印)이 있어서 그의 죽으심에 대하여 공적으로 인을 쳤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우리의 죽음: 신자가 죽을 때에 받는 유익 (42문)

 

42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는데

우리도 왜 여전히 죽어야 합니까?

답: 우리의 죽음은

자기 죗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며,

단지 죄짓는 것을 그치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42문의 질문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지닌 효력에 대한 직접적인 반문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셨으면 우리는 죽을 필요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이 질문의 배경에 깔려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속이 온전하다면, 예수님을 믿는 신자는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서 42문은 세 가지로 가르친다.

첫째, 신자의 죽음은 자신의 죗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값을 완전히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가 죽는 것은 죗값을 치르는 것과는 무관하다. 그리스도의 공로가 조금이라도 부족해서 나의 죽음으로 죗값을 얼마라도 갚는 것이 아니다.

 둘째, 요리문답에서는 신자가 죽음으로써 죄 짓는 것을 그치게 된다고 고백한다. 이 말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의 삶을 현실적으로 잘 표현하는 구절이다. 예수를 믿었으니까 이제 신자의 삶은 죄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죄와 계속 싸우는 생활을 하다가 이제 죽음으로써 그 싸움을 마치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으로 고백한다. 여기에는 죄와 싸우는 신자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갈 때에 그날 하루 동안 지은 죄를 회개하고 누우면서 동시에 새날을 소망한다. 마찬가지로 신자는 신자의 죽음을 죄와의 싸움이 끝나는 것으로 이해하고서 부활의 소망을 안고 자는 것이다.

셋째,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효를 덧입기 때문에, 그러한 신자는 죽을 때에 하나님과의 교제에 들어간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신자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게 된다. 그 비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낙원은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진 곳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간 곳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비난하던 강도들 중에서 한 사람을 구원하여 내시고, 그가 죽은 후에 음부가 아닌 낙원으로 갈 것이라 말씀하시고서 친히 그곳으로 데리고 가셨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는 신자를 낙원으로 데리고 가신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받는 또 다른 유익: 신자가 이 세상에서 받는 유익 (43문)

 

43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와 죽으심에서

우리가 받는 또 다른 유익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공효(功效)로

우리의 옛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죽고 장사되며,

그럼으로써 육신의 악한 소욕(所欲)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우리 자신을

그분께 감사의 제물로 드리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로 말미암은 유익은 신자가 죽은 이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도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결과 (1) 죄책이 면제되고, (2)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이 되며, 또한 (3) 감사의 제물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주는 세 가지 유익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세 가지 주제와 비슷하다.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바르게 알고 거기에서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감사의 제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내세뿐 아니라 현세에서도 이처럼 신자의 삶 전체에 유익을 준다.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44문)

 

44문: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말이

왜 덧붙여져 있습니까?

답: 내가 큰 고통과 중대한 시험을 당할 때에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옥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확신하고

거기에서 풍성한 위로를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그의 모든 고난을 통하여

특히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아픔과 공포와

지옥의 고통을 친히 당하심으로써

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구절은 주후 약 390년경으로 추정되는 소위 「아퀼레이안 고백서」(the Aquileian Form)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사도신경 공인본에 포함되었다. 그러니까 고대 교회에서부터 여러 가지로 논의가 된 구절이다. 번역자가 분명하지 않은 한국 개신교의 사도신경 본문에는 판본에 따라 이 구절이 포함되기도 하였으나 현재에는 빠져 있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는데,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음부’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음부’라는 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곳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음부는 단순히 죽어서 있는 곳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고통을 당하는 곳이었다(눅 16:23). 둘째로 음부는 무덤, 혹은 죽은 자들이 거하는 곳을 가리킨다(창 42:38; 시 16:10). 이 경우에 ‘음부’라는 말은 죽음의 권세와 밀접히 연결되어 사용되었다(계 1:18). 셋째, 음부라는 말이 상징적으로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시편의 시인이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시 18:5-6) 하고 말하거나,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시 116:3)라고 이야기할 때에, 여기서 음부의 고통은 실제로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을 떠올릴 만한 큰 고통을 의미한다.

‘음부’에 대한 이해에 따라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구절에 대한 이해도 세 가지로 구분이 된다. 첫째, 로마 교회에서는 음부를 지옥으로 해석하여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그분의 몸이 무덤에 있는 동안에 그 영혼은 지옥에 내려가셨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셔서 그곳에서 형벌을 받으신 일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신 목적을 지옥의 변방(limbus patrum, 선조 림보)에 있는 구약의 성도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설명한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으신 그날에 낙원으로 가실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고(눅 23:43), 또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시고서 운명하셨다(눅 23:46).

둘째는 이 구절을 ‘무덤에 묻히신 일’로 이해하는 것인데,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50문이 이러한 해석을 취한다.

 

50문: 그의 죽음 이후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답: 그의 죽음 이후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그가 묻히신 것과

제3일까지 죽은 자의 상태와 사망의 세력 아래 계속 있은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는 “그가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하는 표현을 무덤에 묻히셨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장사되셨다’는 말에도 무덤에 묻히셨다는 뜻이 이미 포함되는데, 짧은 사도신경에서 동어반복적인 표현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점에서 반론이 제기된다.

셋째, 칼빈은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표현을 상징적으로 이해하여서 주께서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다는 뜻으로 해석하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그 전통에 서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모든 고난을 통하여”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으며, “특히 십자가에서” 그러한 고통을 받으셨다.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고민하고 슬퍼하셨으며(마 26:37), 세 제자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 막 14:34) 하고 말씀하셨다. 누구보다도 십자가의 고난과 진노의 의미를 바르게 아셨던 주님은 그 고통을 두려워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다 파악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지옥의 고난을 겪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준다. 그 신비함을 다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거기에서 우리에게 위로가 임하는 것도 사실이다. 칼빈은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고백이 주는 유익을 이렇게 요약한다.

 

만일 누구든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이 조문을

사도신경에 포함시키는 데 여전히 주저한다면,

이 조문이 우리의 구속의 요약에서 참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이 조문이 제외될 경우에 그리스도의 죽음의 은덕의 대부분이 상실된다는 사실이

곧바로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칼빈, ?기독교강요?, 2권 16장 8절

 

 

출처: 「월드뷰」, 2017년 2월호, 53-57쪽.

독립개신교회  성은교회 

'구원 이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4  (0) 2022.07.06
구원의 서정(序程)  (0) 2022.05.15
예수님 십자가 Cross  (0) 2022.01.24
구원에 관한 아홉 가지 용어들  (0) 2021.12.05
구원의 세가지 진리 칭의, 성화, 영화  (0) 2021.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