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形象)
序 論
인간의 본질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점에 있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계시요 하나님의 완전하신 덕을 반영하는 거울 이지만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요 가장 높고 부요한 신적 계시이다.
창세기 첫장에서 우리는 인간 창조의 유독성(惟獨性)을 발견 한다. 하나님 께서 다른 동물들을 창조 하실때는 '각기 그 종류 대로' 만드 셨으나(21,24,25절), 유독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 하셨다.
창1:26에서 보는 바와 같이 26절의 주동사는 복수 이다. 많은 학자 들이 이 복수에 관하여 다양한 해석을 시도 보편적으로 삼위 일체를 함의(含意) 하는 것으로 석의 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26절은 또한 인간 창조에 앞서 신적 협의(協議)가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 하기도 하는데 이점은 인간 창조의 유독성을 다시금 드러 낸다. 왜냐 하면 다른 아무 피조물에게서도 인간 창조시 나타난 것과 같은 표현을 결코 발견 할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서의 인간에 관해 잠시 고찰해 봄으로써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목표로 하는 우리의 삶에 도움을 얻고자 한다.
本 論
1. [形象](셀렘,ࠎࠌࠕ )과 [貌樣](데무드, ࠛࠂࠍࠃ )]의 성경적 용어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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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 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1:26).
위의 본문 에서 [形象](셀렘,ࠎࠌࠕ )과 [貌樣](데무드, ࠛࠂࠍࠃ )]이라는 말이 교대로 사용 되어 있다. 이 사실에 대하여 형상과 모양을 별개의 개념으로 구분 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그것은 공허한 일이다.
히브리 원문을 보면 '형상'과 '모양'이란 두 표현 사이에 아무런 접속사가 없다. 그러나 칠십인경과 라틴 벌게이트 역(Vulgata)에서는 και와 et라는 접속사가 첨가 되어 있다. 그래서 '형상'과 '모양'이 전혀 다른 별개의 내용을 가리키는것이 아니냐 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 본문에 나타난 데로는 '형상'과 '모양'이란 두 표현 사이에 아무런 본질적 차이를 발견할수 없다. 이와 같은 점은 본문과 더불어 다른곳에 나타난 관련 귀절들의 용례(用例)를 살펴 보면 더욱 분명히 드러 난다. 창1:26에서는 [形象](셀렘,ࠎࠌࠕ )과 [貌樣](데무드, ࠛࠂࠍࠃ )]이란 용어가 둘다 사용 되었으나, 27절 에서는 단지 [形象](셀렘,ࠎࠌࠕ )이란 단어만 사용 되었고 반면 창5:1에서는 [貌樣](데무드, ࠛࠂࠍࠃ )]이란 용어만 사용 되었다. 그리고 창5:3에서는 두 용어가 다시금 사용 되었으나 1:26과는 역순(逆順)으로 표현 되었다. 그리고 9:6에서는 다시금 '형상'이란 말만 사용 되었다. 만일에 인간 존재의 상이한 국면들을 묘사 하기 위하여 이 두 용어들이 사용 되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살펴 본바와 같이 이 두 용어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교호적(交互的)으로 사용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용어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말할수 없다. 칼빈도 기독교 강요에서 그와 같은 용법은 히브리 인들의 관습 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즉 히브리 인들의 어법에는 반복이 많이 사용 되고 있는데 한가지 사실을 표현하기 위하여 종종 두 낱말을 쓸때 가 있는데 이를 연구법(parallelism, 聯句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용어가 비록 일반적인 의미에서 유사어로 사용 되었다고 할찌라도 양자 사이에 개념의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형상'에 해당하는 히브리말 [形象](셀렘,ࠎࠌࠕ )는 "새기다"(to carve)혹은 "탁마(琢磨)하다"(to cut)는 의미를 가진 어근 으로 부터 유래 되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동물이나 인간을 조각한 모양을 묘사 하기 위하여 사용 되었다고 할수 있고 '모양'에 해다되는 [貌樣](데무드, ࠛࠂࠍࠃ )라는 말은 "비슷하다"(to be like)는 의미를 가진 어근으로 부터 파생 되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의 '모양'이란 말은 형상이 닮았다는 사실을 강조 하고 있다고 할수 있다. 이와 같이 '형상'이란 말이 강조 하는 바는 하나님은 원형이시고(dearchetype)인간은 그 모형(de ectype)이라는 사실이요 '모양' 이란 말은 그 상(象)이 모든 면에 있어서 원형과 일치 한다는 것을 강조 한다. 따라서 두 용어의 연구법(parallelism, 聯句法)적 용례로 부터 추론 할수 있는 사실은 것은 그와 같은 표현 양식을 통해서 인간이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란 관념이 드러 난다는 점이다.
2. 성경 신학적 관점(본문의 문맥을 통해서 나타난)을 통해서본 [形象](셀렘,ࠎࠌࠕ )과 [貌樣](데무드, ࠛࠂࠍࠃ )]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의 의미
26절과 27절은 인간 창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이 두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계획과 목적을 세우신 사실(26절)과 사람을 만드신 사실(27절)을 언급하고 있다.
먼저 26절을 원어를 직역해서 살펴 본다면 아래와 같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다
우리가 만들자
사람을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처럼
그리고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
그 바다의 고기를, 그리고
그 하늘의 새를, 그리고
그 육축을, 그리고
그 땅 모두를, 그리고
그 땅위에서 기는 모두를(26절)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른 동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지으려는 목적은 어디에 있었는가? 이 목적은 26절 후반절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후반절은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로 시작 된다. 즉 [다스리게] 하는것이 사람을 지은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다스리게 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다섯개의 목적어가 나열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이제껏 엿새동안 지음받은모든 동식물을 총 망라한 표현이다. 이러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 하셨다. 이 사실은 27절이 잘 말해 주고 있는데 이를 직역 하여 보면
a.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 하셨다 그 사람을
b. 그의 형상대로
b.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a. 그분께서 창조 하셨다 그를 (상반절)
남성과 여성(으로)
그분께서 창조 하셨다 그들을 (하반절)
26-27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과정에 대해서 알만한 단서는 찾을수가 없다. 그런 단서는 창세기2:7에 가서야 발견할수 있는데 반면 창2:7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려는 계획과 목적등 여기서 알수 있는 내용이 생략 되어 있다. 이렇듯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그 내용에 차이가 생기는것은 기록자가 말하려는 의도 또는 촛점이나 강조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7절에서 강조 하고자 하는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누가 사람을 창조 하셨으며, 둘볁: 지음 받은 사람은 어떠한 존재 인가 하는점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창조 하셨다'는 언급을 세 번씩이나 되풀이 함으로써 사람을 창조한 분은 바로 하나님 이시라는 사실을 크게 강조 하고 있다. 그 다음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지음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부각 시키고 있다.따라서 우리가 사람의 존재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얻으려면 무엇 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의미를 파악해야 할것이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으나 문맥에 가장 알맞는 것을 살펴 보고자 한다. 우선 이 표현은 사람에게만 적용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본문에서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지을수 있는 독특한 차이점을 찾은 다음 그것을 이 표현과 연관 시켜 본다면 차이점은 단 한가지 인데 그것은 인간은 "다스리느"존재로 지어 졌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다스리는역활"과 연관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지으셨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세우셨다느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이문맥에서는 이런 의미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6절에서도 살펴본 바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지으시려는 목적은 만물을 다스리게 하려 하심이었다. 이러한 문맥적 이해가 타당 하다는것을 입증해 줄만한 성경 안팎의 증거들이 있다.
고대 근동 에서는 '신(神)의 형상'이라는 표현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였다. 왕이 가진 권위와 그의 통치는 신의 권위와 통치를 대신하는것으로 간주 되었고 이런 의미에서 왕은 신의 권력을 그대로 소유 하고 있는 이른바 신의 복사본(copy)인 것이다. 그리고 복사본(複寫本)이란 원형을 본뜬 것이므로 '형상'(image)이라는 표현으로 나타 내었다.
따라서 '신의 형상' 이라는 표현은 다름아닌 '왕'을 지칭하는 것이다. 일차 독자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는신은 하나님 이시다. 그렇다면 일차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표현은 '왕'이라는 개념으로 이해 되기에 충분하다. 온 세상에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다스림을 나타낼 형상 으로서 사람을 창조 하셔서 그로 하여금 세상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 께서는 자신의 다스림을 나타 내시려고 인간(남자와 여자)을 왕으로 세우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뜻데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데로 다스림 으로써 그분의 다스림을 피조물 세계에 반영 하도록 지음 받은 것이다.
이제까지의 논술을 몇가지의 성경적인 증거를 통하여 입증한다면
첫째 증거는: '다스리다'는 동사 "라다"(radah)의 쓰임을 통해서 이다.
이 동사는 구약 성경의 여러곳에 나타 나느데 '다스리다'라는 의미로 쓰일 경우에는 특이 하게도 왕의 다스리는 행위를 묘사 하고 있다(왕상4:24; 사14:6; 겔34:4; 시72:8; 110:2). 따라서 이 동사가 창세기 1:26, 28에서 선택된 것은 아담의 다스리는 행위가 통치의 행위 임을 시사 하는것이다.
두 번째 증거는: 성경 전체에 비추어 볼때 아담은 분명히 왕의 역활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들수 있다.
우리가 아느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세가지 직임(職任)은 왕직, 제사장직, 선지자직이다. 이것은 두번째 아담으로서 갖는 직임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리스도 께서 이 세 직임을 행하시는것은 첫 사람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서 그런 직임을 행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인류의 대표로서 그 직임을 맡아 행하셨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를 가리켜 두째 아담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고찰을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점을 살펴 점을 살펴 보았으나 어떤 점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는지 창조 기사 가운데 정확히 나타나 있다고 확언(確言) 할수는없지만 그럼 에도 불구 하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유사성(類似性)을 어느 정도 발견 할수 있다고 보는데 창1:26에서 볼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피조물에 대한 통치(dominium)를 인간 속에 나타나는 신(神)형상 발현(發顯)의 한 국면으로 추론 할수 있는것이다.
3. 조직신학 관점(성경 전체적인 흐름을 통해서 나타난)을 통해서본 [形象](셀렘,ࠎࠌࠕ )과 [貌樣](데무드, ࠛࠂࠍࠃ )]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의 의미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각 교파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로마 교회와, 루터파, 의 견해를 간략하게 고찰한후 개혁파 교회의 견해는 여러 신학자들(죤칼빈, 칼바르트, 에밀 부룬너, 벌 카워)의 의견을 검토해본후 박형룡 박사의 교의 신학에 있는 내용을 빌어서 조직신학 관점에서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관하여 논술 하고자 한다. 하지만 본인이 신학적 지식의 짧음으로 인하여 여러 신학자들의 깊은 사상을 올바른 관점(저자의 의도와 논술 목적)에서 제대로 이해 했는가? 하는 문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음을 시인한다.
1) 로마 교회의 견해
로마 교회는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자연적 하나님의 형상(Imago Dei)과 초 자연적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구분한다.
① 자연적인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 하실때 영혼의 영성, 의지의 자유, 육체의 불사성(不死性)같은 어떤 자연적인 은사들을 인간에게 주셨는데 이것들이 자연적인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이라고 한다.
②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인간은 위에서 말한 자연적 은사를 통해서 자연적 의(義)를 소유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식욕, 정욕등 열등한 성향이 있으며 이것들은 그 자체가 죄는 아니나 죄를 위한 기회 또는 연료가 되기 쉬우므로 하나님은 이것을 방지 하기 위하여 초 자연적인 은사를 덧붙여 주셨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주어진 은사 곧 초자연적인 은사로 말미암아 [原義]가 주어 졌으니 이것이 곧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이라고 한다. 로마 교회는 이와 같은 주장으로 말미암아 범죄후의 인간 상태를 본래 창조된 대로의 인간은 원의(原義)가 없었으나 또한 죄도 없었고 다만 죄의 결과를 낳기 쉬운 경향을 가진 것 뿐이었는데 범죄후 인간은 다만 원의가 상실 되었을 뿐이어서 범죄한 인간은 창조된 때와 같은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범죄후 인간의 전적 부패 교리를 부정하게 되는것이다. 이러한 로마 교회의 견해는 타락의 원인 설명이 곤란하며 범죄후 인간 상태의 심각성을 간과(看過)할 위험이 있다.
2) 루터파의 견해
루터파의 견해는 일반적으로 사람안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좁은 의미에서 제한 하여 이것을 사람의 [原始的 義]와 동일시[同一視]하며 이것이 타락을 통하여 전적으로 잃어 졌다고 결론한다. 즉 루터파는 [靈的 特質](Spiritual qualities)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이라고 말한다. 이때 [靈的 特質]이란 참 지식(知識)과 의(義)와 성(聖)을 가리키며 이것은 또한 [原始的 義]라고 불리워 진다.
결국 루터파의 [原始的 義]는 로마 교회의 그것과 같은 개념으로 보아서 틀림 없다. 이렇게 볼때 루터파가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로마 교회가 범죄후에 잃어 버렸다고 말하는바 [原始的 義]만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잃어 버린 후에도 범죄한 인간이 동물과 똑같은 상태로 저너락 되지 아니한 이유를 설명할수가 없게 되다.
3) 개혁파 교회의 견해
① 죤 칼빈(John Calvin)의 견해.
위대한 종교 개혁자 죤 칼빈(1506-1564)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론에 대한 이해를 고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던지는데 인간 안에 어느곳에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발견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자리 잡고 있는 좌소는 인간의 영혼속이다"라고 말하면서도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과 광채가 빛나지 않는곳은, 심지어 육체를 포함하여 인간속의 어느 곳에도 없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오는 세상에서 온전히 회복 될때에 영혼 뿐만 아니라 육체도 온전히 회복 될것이라고 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원래적으로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아담이 부여 받은 순결성은 이 단어로(하나님의 형상(Imago Dei))표현 된다. 라고 하면서 골로새서3:10과 에베소서4:24에 근거하여 칼빈은 결론 짓기를 인간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원래 참된 지식, 의로움, 거룩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타락 하기 전에는 인간은 완전한 상태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소유 하고 있었으나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엄청난 파괴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칼빈에게 있어서 타락한 인류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그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철저하게 도말되었다(utterly defaced), 파괴 되었다(destrroyed)고 종종 말하므로 타락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취하는것 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연구 해보면 타락한 인간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안에 있다고 주장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칼빈은 그의 독자들에게 그들이 미워하는 자들 마저도 사랑하라고 권하면서 그 이유를 "그 사람의 악한 의도를 생각할것이 아니라 그들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쳐다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수 있는데 인간의 타락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끼친 영향력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그는"하나님의 형사어이 전적으로 사라져 버리거나 파괴된것이 아니라고 인정 하더라도 죄로 인한 오염이 너무나도 심하여 이제 남아 있는것은 끔찍하게 기형적이된 형상일 뿐이다"고 했다.
이렇게 부패하고 오염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성령의 역사와 하난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새롭게 되어 질수 있으며,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완전히 회복되어 지는 때는 장차 오는 삶이 도래 할때 비로서 완성된다.
② 칼 바르트(Karl Barth)의 견해
이제 우리는 최근의 신 신학자 이며 신 정통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워 지는 칼 바르트(1886-1968)의 견해를 살펴 보려고 한다. 칼 바르트에게 있어서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이성과 지성속에서 발견 되지 않는다. 그는 창 1:27을 주해 하면서 "위의 본문이 너무도 명백하게 가르치는 내용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의 형상과 모습은 인간 존재가 대면(confrontation)속에 있다느것을 암시 한다. 인간과 인간 즉 남자와 여자 사이의 연결은 대면의 관계를 말한다."
바르트는 이러한 대면적 관계를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러한 동일한 대면적 관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도 존재 하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을 살도록 규정 지어 졌다는 사실은 인간의 피조적 존재는 만남의 존재라는 사실 - "나"와 "너", "남자"와 "여자"사이의 - 속에 분명한 상응점을 갖고 있다. 바로 이러한 대면 속에 인간됨이 있으며 이러한 인간됨 속에 인간의 창조주를 닮은 모습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류 역사속에서 인간이 실제로 정결한 상태에서 부패된 상태로 전락 하게된 인류 타락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 "타락"후에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상실될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타락의 역사성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순전히 관계성으로만 이해 하려는 바르트의 입장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미친 타락의 엄청난 영향력과 그 형상의 갱신의 절실한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런 점에서 바르트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론은 성경적 인간론과는 많은 거리가 있다.
③ 에밀 부른너(Emil Brunner)의 견해
바르트와 동시대 인물이며소위 변증법적 신학을 대표하는 에밀 부룬너(1889-1966)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론을 고찰 하는것이 유익하리라 본다. 바르트 처럼 부룬너도 아담의 역사적 실존성과 인간 타락의 역사성을 배격한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관계성의 모든 영역,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 하나님과의 교제의 가능성속에서 발견 되어 진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자신을 스스로 영화 롭게 하기를 원하시고 자신을 나누워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에 대하여 감사와 반응적 사랑으로 반응하는 피조물이 되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사랑은 부룬너의 인간이해와 인간 존재 목적 이해의 중심부에 놓여있는개념이다. 또
한 구약 성경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지음 받았다"는 뜻은 인간은 결코 상실할수 없는 그 무엇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죄를 지었을 때도 인간은 그것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러한 사실은 신약 성경의 두귀절(고전11:7; 약3:9)에서도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도 실제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이라는 점을 강조 한다. 그러나 부룬너의 이러한 견해에는 몇가지 심각한 의문이 제기 되는데
첫째: 타락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부룬너는 결국 첫 아담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배격하는 것이며 따라서 제2아담이신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제기 하게 된다는 점이다.
둘째: 타락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그의 입장은 결국 그가 주장하고 있는 창조와 죄 사이의 구분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도록 한다. 세째: 인간의 죄악성 에도 불구 하고 형식적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그대로 유지 되었다고 주장하는등의 몇가지 문제점을 갖는다.
④ 박형룡(朴亨龍)박사의 견해
개혁파 여러 교회는 칼빈의 발자취에 따라 다른 교파들보다 훨씬더 포괄적인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관념을 가진다. 즉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독점적으로 사람의 이성적 성질(理性的 性質)로 구성된다는 견해와 이것이 전혀 그의 창조주의 도덕적 일치(道德的 一致)로 구성된다는 견해 사이의 중간적 입장을 취하여 둘을 다 포함한다.
그러므로 위의 여러 견해들을 종합하고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 몇가지 개혁파 입장에서본 사람안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관하여 요약 할수 있는데
a. 인격 혹은 영혼에서
즉 그의 단순성, 영성, 불현성, 불사성 등의 품질들과 지(知), 정(情), 의(義)등의 심력(心力)들과 자의식및 자결성의 권능에서 자연적 신형상이 나타났다.
b. 원의(原義)에서
사람이 창조 되었을때 참된 지식, 의, 거룩을 나타낸 그 본성(本性)과 지성적 도덕적 완의(完義)혹은 원의에서(엡4:24; 골3;10)도덕적 신형상이 나타났다.
c. 신체에서
그 물질적 실체에서가 아니라 영혼의 영생에 참여 하는 적당한 기관과 하등 피조물계에 주권을 행사하는 기구로서의 신체에서 외면적 신형상이 나타났다.
d. 지상 주권에서
사람의 지상 주권에서(시8:5-6;계5:10) 권위적 신형상이 나타 났다.
⑤ 하문호 교수의 견해
하문호 교수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관하여 말하기를
a.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한마디로 말해서 범죄후에 잃어 버린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으로서 [참 지식, 義, 聖)(엡4:24; 골3:10)등을 말한다.
b.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범죄 후에도 아직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으로서 다른 동물들 에게서 발견 할수 없는 理性,과 知識과 良心, 그리고 만물 통치권등 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통하여 영적 생명을 가진 결과로 이너간은 다음과 같은 동물이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소유 하게 되었는데 바로 인간은 영생의 가능성을 가진 특권을 누리게 되었고, 하나님과 교통할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으며, 만물을 주관하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
4. 타락한 인간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다.
어떤 이들은 인간이 죄악으로 타락 했을때 전적으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상실하였고 더이상 신(神)형상의 소유자로 볼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창5:1은 그와 같은 주장에 대하여 아무런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다. 사실 본문은 타락한 이후에 일어난 사건의 기록임에도 불구 하고 아담에 대하여 여전히 하나님의 모양으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진술하고 있다. 만일 그 당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전적으로 상실되어 버蓡린 상태라고 한다면 본문은 아마도 그와 같이 깃술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인간의 타락 으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더럽혀 졌다(Cf. 창6:5; 롬7:18)고는 생각 할수 있으나 타락 이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전적으로 상실해 버렸다고 주장할수는 없다. 만일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것은 성경 본문이 말하지 아니하는 것을 주장하는 격이 되고 만다.
창5:3에서는 1:26의 용례와 같이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으나 어순은 역(逆)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또다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담의 아들인 셋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과 모양으로 지음 받았다고 진술되어 있지 아니하고 단지 아담이 그의 모양을 따라 그의 형상대로 출생한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고만 기술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타락 후에 비록 죄로 말미암아 부패(腐敗)되고 오염(汚染) 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고 할수 있다면, 아담의 아들인 셋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이라고 추론 할수 있다. 그러므로 이 귀절들은 타락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전적으로 잃어 버렸다는 주장에 대하여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범죄한 이후에도 인간이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사실은 창세기 9장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 난다. 1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은 다시 반복된다. 그리고 이제 동물들이 인간을 두려워 할것이라는 사실이 계시 되어 지고(2절), 인간은 동물의 고기를 먹을수 있도록 허락 되었다(3절).
그러나 피채로 먹는 행위는 금지 되어 지고(4절) 또한 사람을 죽인 동물이나 사람을 살해한 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생면의 피를 요구 하신다(5절).
이와같은 맥락 속에서 우리가 다룰 주제와 깊은 연관을 가진 6절이 나타나게 된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피를 흘릴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사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즉 살인이 죽음 으로써 처벌 되어질 만큼 가중한 죄로 지목 되는이유는 살해된 자가 하나님을 반영하는 존재 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 사람을 죽였다고 할때 그 행위는 단순히 한 사람의 생명을 손상 시키는 정도에 머무르는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도전 하는셈이 되는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파멸시키는 행위는 발鱁로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 하신 창조주에 대한 범죄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이 귀절들은 타락한 인간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함의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이러한 신(神)형상과 관련된 신약의 중요한 귀절 가운데 하나는 야고보3:9절 말씀이다. 야고보는 우리의 혀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죄의 문제를 취급 하는중 동일한 문맥에서 혀는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또한 사람을 저주 하기도 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사실이 인간의 죄악된 자기 모순 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왜 이와 같은 일들이 상호 모순 된다고 말할수 있는가? 본문은 그 이유를 분명히 제시한다. 즉 우리가 저주하는 바로 그 대상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음받은 피조물들 이기 때문에 사람을 저주 한다는것은 사실에 있어서 그들을 자신의 모양 대로 창조 하신 하나님을 저주 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연구 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하여 특별히 주목 해야 할점은 "지음 받음"으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의 시상이다. 이 동사는 " ---이 되다." 혹은 "만들어 지다"는 의미를 가진 γινομαι의 완료형 분사 γεγονοται로서 헬라어의 완료 시제는 "결과가 계속 되어 지는 과거 행위"를 묘사 하는데 사용된다. 따라서 본문의 내용은 "인간은 과거 어느 시점에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지은바 되었고 지금도 여저너히 그 모양 속에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와 같이 야고보 3:9은 우리가 저주하는 인간이 비록 죄로 인하여 오염(汚染) 되었다 해도 - 전적 부패로 표현 될수 있을 만큼 - 신(神)형상이 전적으로 제거 되어지지는 아니하였고 여전히 하나님의 모양 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함의 하고 있다.
結 論
신약의 여러 귀절들은 타락 이후의 인간에 대하여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로의 회복이 요청 되는 존재로 묘사 하고 있으며(엡4:22-24, 골3:9-10), 또한 그와 같은 귀절들은 인간의 영적이며 도덕적인 갱신(更新)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이루워져 가는 점진적 과정임을 시사 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신약이 가리키는바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의 목적은 우리가 더욱 더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요 혹은 더욱더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닮는것이다(롬8:29; 고후3:18; 골3:9-10; 엡4:22-24).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우리 안에 회복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신 형상이 우리속에 왜곡 되어 있음을 의미 하는 것이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타락한 인간 일찌라도 인간이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가운데 있다는 것을 성경이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또다른 국면은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을 옳바로 반영하지 못한다는사실이다. 왜곡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정적인(statisch)성질의 것이 아니라 동적인(dynamisch) 것이며 우리가 향해 나가야할 종말적인 목표라고 할수 있다. 우리는 아직 마땅히 되어 져야할 완성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에 의하여 점점 하나님을 온전히 반영할수 있도록 변화 되고 있는 중이며 미래에 언젠가는 온전히 하나님을 반영하게 될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螱의 형상 에로의 갱신은 우선적으로 구속의 과정 속에서 성령의 내적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워지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의 노력을 함의 하는 것으로 신약에 나타나 있다.
즉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새롭게 되는일은 직설적(indicative)으로 묘사될 뿐 아니라(골3:10), 동시에 명령적(imperative)인 요구로 나타낱다(엡4:24; 5:1).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회복은 은사일 뿐 아니라 중요한 성도의 과제이다. 그러면서 성경은 성화의 최종 목적은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데 -물론 신인 합일(神人 合一)의 의미는 아니지만-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반영하게 된다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이신 그리스도와 같이 온전히 될것이라는 표현인데 이를 종말론적 언어로서 묘사하고 있다(고전15:49; 요일3:2).
參 考 文 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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