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공부를 할 분들을 위한 제언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는 신학을 공부하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줄고 교회의 회원이 감소하면, 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은 것에 대해서 진정 감사해야 한다. 문제는 과연 어떤 태도로 어떻게 공부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다.
신학을 공부하는 분들 중에는 신학을 하여 목회자가 되기 위해 하시는 분들이 있고, 아직은 드물지만 교회의 여러 직임을(장로·집사·교사 등등의 직임 등을) 잘 감당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기 원하는 분들이 있다. 전자가 통상적이지만, 후자의 관심이 증가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이 두류의 사람에 대해 다 말씀드리겠지만, 이번에는 신학 공부를 하여 목회자가 되는 것이 자신에 대한 주님의 부르심(소명)이라는 의식을 가진 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한다.
그런 내적 소명감을 가진 분들은 먼저 주님께서 그런 소명감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려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주관적 느낌을 가지고 있을 때 일단 자신이 속해 있는 성도들이 과연 그 일에 대해 진심으로 동의하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우리의 내적 소명(內召, inner calling)을 인치시기 때문이다. 이를 전통적으로는 외적인 소명(外召, outter calling)이라고 불러 왔다.
그러므로 한 교회의 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잘 하여 그 교회의 교우들이 이런 분들이 다음 세대의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가 하는 것이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진학하는 일의 선결 과제이다. 만일에 같이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께서 부르시는 것이 아니고 혼자 주관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경우에는 신앙생활을 더 하면서 계속해서 노력하여 그런 반응이 나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해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진심으로 그 일을 추천하며 동의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저 어떤 집회에 참석했더니 어떤 분이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하는 것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과연 내가 신앙생활을 잘 감당하고 있는 그 공동체의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추천하는가가 가장 중요한(crucial) 문제다.
그것이 분명해졌으면 이제는 바르게 신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고등학교만을 마친 분들은 다양한 전공을 하면서 대학과정을 마치는 것이 선결과제다. (신학교에 속한 대학 과정을 할 수도 있지만, 꼭 신학교에 속한 학부를 다녀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4년 동안 대학 공부를 충실히 한 후에는 다양한 교양을 지니고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준비된 사람으로서 이제 신학을 바르게 공부하려고 해야 한다. 물론 이미 대학을 마친 분들은 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도록 진학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도 신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목회 사역에로 나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매우 안타깝게도) 그렇게 부추기는 사람들이나 신학교가 많이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전인과 연혼을 돌보는 목회를 생각하는 분들은 먼저 바른 신학을 바르고 정당하게 배우는 데 생명을 바쳐야만 한다. 대개는 대학 졸업자들을 3년 동안 (주 4일) 교육시키는 목회학 석사 과정(M. Div.)이 목회자가 되는 기본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대학 과정을 하지도 않고, 또 주 1~2일에 신학 공부를 하여 단기에 신학을 마칠 수 있다고 하는 모든 유혹들을 다 버려야 한다. 대개 그런 말을 하는 곳은 바르게 신학을 가르치는 곳이 아님을 누구나가 인정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변에서 가장 성경에 충실하게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와 교수님들이 어디 있는가를 잘 찾아야 한다. 우리의 신학이 형성되는 일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목회학 석사(M. Div.) 과정을 어디서 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 과정 동안 내가 성경에 충실한 신학을 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평생의 활동을 좌우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외적인 여건을 따라서 신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바르게 선택하는 것인지를 늘 주께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우리들 주변이 성경에 가르침에 가장 충실하게 신학을 가르치는 분들이 과연 어디에 있고, 과연 어떤 책들을 읽으면서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대개 신학교를 가려고 하는 분들이 그것을 판단해서 결정할만한 분별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개 신학교에 진학해서 몇 년을 지내고 공부를 제대로 하게 되면 그런 분별력이 생기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런 분별력이 없이 신학교를 마치는 경우도 많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주변에 가장 신실하고 성경에 충실하신 분들의 여러 조언을 구하는 것도 매우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주님께 기도하면서 과연 어디서 공부하는 것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될 것인가를 묻고, 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지켜 주시도록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신학교와 신학 교수님들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다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요술지팡이처럼 사용되지 않도록 매우 주의하여 주님의 뜻을 묻고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일단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면서도 주변의 여러 신학자들의 책과 사상을 폭 넓게 검토해가면서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신학 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디 신학을 공부하시려고 하시는 분들이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바르게 생각하며 바른 신학 공부를 하여 가기 원한다
좀 더 폭 넓은 관점에서 신학 공부를 하려고 하시는 분들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앞으로 목회를 하려는 소명감을 가지고 신학 공부를 시작하시려는 분들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성경적 신학을 바르게 공부하려는 각오로 성경적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하에서 언급될 모든 것들은 다 바른 신학, 성경적 신학을 공부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적 신학을 공부하려고 마음먹었으면 우리는 우리의 존재 전체를 가지고 신학을 공부하며 그렇게 배운 성경적 가르침 그대로 살아가려고 해야 합니다. 신학 공부는 그저 성경이나 신학적 지식만 늘이거나 머리만 가지고 하는 공부가 아닙니다. 물론 신학을 정확하고도 바르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신학은 우리의 존재 전체로 하는 공부입니다. 즉, 우리의 인격 전체로 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니체는 “피로 글을 쓰라”고 말하고 자신의 존재 전체를 기울여서 글을 쓰고 사상을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물며 참이신 하나님과 그의 경륜(經綸, oikonomia) 전체를 탐구하는 일인 신학을 어찌 우리의 존재의 일부분만을 가지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존재 전체를 다 던져 넣고 공부하려고 해야 합니다.
특히 신학에 대한 기본을 익히는 목회학 석사(M. Div.) 과정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평생에 이만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참으로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선생님이며 한국교회를 참으로 성경적이며 기도하는 교회로 세우기 위해 애쓰시던 박윤선 목사님께서 생전에 늘 강조하신 바와 같이 우리들은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정신으로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공부하다가 죽었다는 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하시던 스승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야 말로 우리의 존재 전체를 던져 넣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학교 시절은 사상과 생활 감정과 의지 등을 모두 성경적 신앙에 근거한 바르고 성경적인 방향으로 변혁하는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존재 전체가 좀 더 성경적인 방향으로 변혁되는 기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 개혁 시대의 성경적 신학을 공부하던 이들이 추구한 바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교회의 개혁을 위해 먼저 자신들의 사상과 인격 전체의 변혁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적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그 인격이 성경적인 사람으로, 그 세계관이 참된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뀌어 이 세상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에서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대답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신학을 공부하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만일에 사상과 기본적 인격과 생활 감정과 삶의 태도와 생활 방식이 성경이 말하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경적 신학을 제대로 배운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항상 성경적 교회를 위해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교회를 잘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신학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들의 교회가 참으로 성경적인 방향으로 가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 공부를 하면서 항상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고, 성경적 예배가 어떤 것이며, 성경적 목회가 어떤 것인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면서 공부해 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적 가르침을 도외시한 채 현실과 그 속에서 말하는 성공적인 사역에만 신경을 쓰며 그것을 향해 매진해가는 모습들을 보면 매우 안타깝습니다. 오늘날 신학생들의 관심과 대화의 내용이 내일의 한국교회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학을 공부하려고 하시는 분들은 항상 다음 세대의 교회, 내일의 한국교회를 생각하면서 지금 교회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성경적인 모습에로 이끌어 갈수 있을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면서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신학 공부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신학은 그저 하나님과 그의 경륜을 탐구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 탐구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 앞에 있음을 의식하면서 신학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며, 결국 우리의 믿음을 좀 더 성경적이고 바른 모습으로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 교회에서 파송 받아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목회자 후보생들을 흔히 ‘신학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신학생들에게는 아주 적절한 말이요, 동시에 아주 황송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고귀한 명칭을 듣는 이들은 과연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이제부터 아주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겠지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중심으로 해서 진정한 신학생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신학하는 이들은 무엇보다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교회의 신실한 교인’이어야만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거창한 말은 신학생 됨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학생 되기 이전과 이후에도 그렇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 됨과 교회의 지체됨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것보다도 바른 교회의 신실한 교우 역할을 하는 것이 신학생들에게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특히 이 땅에서는 개혁 신학을 말해주는 일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성경과 개혁 신학에서 말하던 개혁 교회가 존재하는 일이 드물다. 그 때문에, 무엇보다 먼저 바른 개혁 교회의 일원으로 그 회원 역할을 하는 일이 신학생 됨의 선결 과제로 있어야 한다.
교회의 교우(지체) 역할을 신실하게 하면서 교회와 함께 성장하고 전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如實)히 알 수 있어야 한다. 성경에는 개개인 성도들이라는 현대적 개념은 낯선 것이다. 온 교회가 함께 성장해가는 유기적 교회의 모습이 친숙히 알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다. 따라서 교회와 함께, 교회의 일원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을 받고, 그 지체로 성장해간 경험을 가진 이들만이 개혁 교회를 바르게 섬기는 일을 감당할 수 있다.
신학교 진학 시 대다수 교인의 의사를 물어보라
또한 동료 교우들이 당신을 과연 다음 세대를 감당할 목회자 후보생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점검을 받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신학생들 대부분은 신학교 오기 전에 여러 사람들로부터 여러 번 신학교에 가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교회 생활을 같이 하는 가운데 대다수 교우들이 일치된 의견인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혹시 그런 경험이 없었던 분들은 신학교에 들어 와서 소위 교육 전도사로 사역하는 기간 동안에 주변에 있는 분들로부터 냉정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 또 자신의 성품과 사역을 평가하고 앞으로 목회자가 되기에 적절한 사람인지 마음속 깊이 새겨보아야 한다. 후에 목사 청빙을 받을 때뿐만이 아니라, 신학생 되는 일의 시초와 그 과정에서도 우리의 성품과 사역을 대다수의 교우들이 어떻게 평가하는 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과연 신학생들을 다음 세대의 목회자다운 존재로 평가하고 있는가? 함께 교회 생활을 하는 교우들이 우리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교회의 바른 지체의 한 사람으로, 여겨야만 우리는 앞으로 교회를 섬겨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죽도록 공부하라
둘째로, 신학하는 사람은 참으로 신학하는(doing theology, theologieren) 사람이어야 한다.
교회의 추천을 받고 신학하는 사람은 ‘죽도록’(죽기까지) 신학적 공부를 연마해야 한다. 목사는 평생 공부하는 사람이다. 신학생은 성경과 모든 신학의 내용을 다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그것을 하기에는 3년, 혹은 7년의 과정이 너무 짧다!), 앞으로 평생 성경을 공부해갈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을 배우는 사람이다. 따라서 신학생 때만 공부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평생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준비를 학교에 있는 기간 동안에 힘써서 해야만 한다.
목회학 석사(M. Div.) 과정에서 다루는 과목들은 가장 기본적인 과목들이다. 이는 신학 내의 모든 학문 분과의 기초를 놓는 과정으로서, 어떤 과목은 이 목회학 석사(M. Div.) 과정에서만 공부할 수 있는 것도 많다. 그러므로 신학생들은 모든 과목에 대해서 평생 고찰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태도와 연구하는 마음으로 공부해야 한다. 그러니 어떤 과목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물론 학교와 교수님들도 그런 태도로 신학생들을 지도해주셔야 한다). 모든 과목을 골고루 잘 준비해서 평생 성경과 개혁 신학을 공부를 해야 한다.
특히 헬라어·히브리어를 잘 연마해서 앞으로 평생 바른 성경 주해에 근거한 쉽고도 유익한 설교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직 신학적 토대를 분명히 해서 개혁 신학의 틀에서 벗어나는 사고와 설교를 하지 않도록 하고, 교회사를 잘 살펴서 과거의 어떤 이단들이 말하고 행동한 바를 모르거나 알면서 따라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토대를 잘 마련한 후에는 전통적 신학 분과 중 1, 2분과를 선정해서 앞으로 평생 그 분야에 대한 아마추어 전문가로서의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
신학하는 사람은 참으로 신학하는 사람(비전문적 의미에서라도 theologian)이어야 한다. 신학생들을 장차 목사가 되어 교회 안에서는 신학과 성경의 전문가로 섬기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교회의 선생님(doctor ecclesiae)들인 교수님들과 함께하는 것이므로 평생 같이 연구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겠지만, 개개의 교회 안에서는 목사님들은 성경과 신학과 2000년 기독교 역사의 대변인과 전문가로서 파송 받는다는 의식을 가지고 모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거룩한 자가 되어라
셋째로, 신학생은 흔히 또 사람들이 언급하듯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 거룩한 사람’(divine)이어야 한다.
물론 신약적 개념에서, 종교 개혁적 개념에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다 거룩한 사람들이며, 신령한 자들이다. 이렇게 성경적으로 보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신령한 자들이므로, 신학생이 되고 목회자가 되는 이들도 당연히 거룩하고 신령한 자여야 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과 구별된 의미에서의 신령한 자가 아니라, 모든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신령한 자(pneumatikos), 즉 그 안에 성령이 계셔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어야만 한다.
개신교에서는 목회자와 성도들에 대한 이중 기준(double standards)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한도로 거룩하고 신령한 자들이 될 것을 요구하고(성화에의 요구),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 일은 우리의 노력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자연스럽게 우리를 성숙시켜주시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는 실상을 잘 알고, 그런 실제 가운데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는 신령한 자로서의 삶만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태이기 때문이다.
참다운 교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
마지막으로, 신학생들은 교회를 위해 성경이 말하는 참다운 교회의 모습을 항상 확인하고, 제시하며, 그 모습을 이루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가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진정 교회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른 신학은 근본적으로 교회를 위한 신학(theology for the church)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학생들의 모든 생각과 말에서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대한 비판을 위한 비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의 교회를 위해 교회가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신학생들은 교회의 바른 모습(正姿)을 찾아 제시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한다. 그리하여 이전의 신실한 개혁자들처럼 교회로 교회되게 하며, 바른 교회를 세워가는 일꾼(minister,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세대의 신학생들이 나누는 말이 다음 세대의 교회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오늘날 신학생들은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오늘날 신학생들이 추구하는 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가? 그 교회의 모습은 과연 개혁 신학적 교회 이해에 충실한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드리는 말씀을 맺고자 한다.
이승구/ 국제신학대학교대학원 교수/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3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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