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종에 대한 정의
1. 하나님의 종에 대한 정의.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섭리 역사에 부름 받아 세워지고 사용되어진 모든 존재들에 대한 총칭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섭리 사역을 진행하기 위하여 부름 받아 세워진 하나님의 섭리적 도구들이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명칭은 하나님께서 <내 종>이라고 불러주신 것 외에 하나님의 사역에 부름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겸손을 표하여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의 종, 또는 주의 종이라고 고백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하나님의 종에 대한 호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하의 신분으로 성육신하셨으며 하나님을 위해 스스로 고난 받으셨던 것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고난 받은 자에 대한 명예와 영광의 호칭이 되기도 하였다.
2. 하나님의 종의 명칭.
성경은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의 종> <주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등등으로 명칭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 중에 <하나님의 종> <주의 종>은 합당한 명칭인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는 명칭은 합당한 명칭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정립한다.
1) 하나님의 종. 주의 종.
하나님의 종이란 명칭은 성부 하나님의 종임을 말한다. 삼위일체 하나님 신학에서 모든 주권은 성부 하나님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모든 것의 주권주이신 성부 하나님의 종이다. 주의 종이라는 명칭은 주<主> 하나님의 종임을 말한다. 따라서 주의 종이란 곧 모든 것의 주권주이신 성부 하나님의 종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종.
하나님의 종, 주의 종에 대한 주권<主權>은 성부 하나님께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종, 주의 종들은 성부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종, 주의 종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은 바울 사도가 즐겨 사용한 명칭이다.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 것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직접 선택되어 세워졌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세운 12사도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인식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은 특히 당시의 사람들이 바울이 사울로서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에 앞장섰던 인물임을 주장할 때마다 그리고 12사도들이 바울과 지신들의 사도성을 구별하려고 할 때마다 변증해야 할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바울은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직접 세워진 사도가 분명하였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사도 신분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직접 세워진 것임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변증하고 강조하였던 것이다. 한편 바울 사도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한 또 다른 이유는 그에게 아직 삼위일체 하나님 신학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성경은 12사도를 사도라고 선포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제자>로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 역시 그들을 자신의 종으로 부르지 않고 <제자>라고 부르거나 심지어는 <형제>라고 호칭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 주의 종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종이다.
3)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는 명칭도 같은 차원에서 정립된다. 사도<使徒>라는 명칭은 <파견된 자> <사자>라는 히브리어 <살리아-????>에서 유래되었고, 헬라어의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의 동의어이다. 사도에 대한 가장 정확한 신학적 의미는 <전권이 위탁된 자-요13:16;히3:1>이다. 따라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메시야>로부터 <전권이 위탁된 자-하나님의 종, 주의 종>이 아니라 주권주이신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이 위탁된 자-하나님의 종, 주의 종>이라고 정립하는 것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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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리는 바울 사도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는 명칭으로 표현한 것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의 사도성이 그가 말한 바대로 사람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워진 것임을 보증하시기 위하여 그러한 표현을 허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 주의 종>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에 대한 신학적 정립은 훗날의 주의 신실한 종들에 맡기셨던 것이다.
3. 하나님 종의 구분.
1) 영역적 구분.
하나님의 종은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국가, 민족, 사회, 군대, 등등을 포함하며 그들은 또한 반드시 선한 자들만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들까지도 포함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12부족이 형성되는 과정에 크게 일조하였던 애굽이나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바벨론, 앗수르, 등등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선포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선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들어 쓰신다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사단도 하나님의 종에 속한다.
2) 신분적 구분.
영역적 구분에 의한 하나님의 종들은 피조 세계 전체이며 악한 자들까지를 포함하지만 신분적 구분에 의한 하나님의 종들은 사람들로 제한되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신학적, 신앙적, 사명적, 인격적으로 충성, 헌신하는 자들에게로 특별히 제한된다. 그러나 이러한 차원의 하나님 종들에게는 신분적, 계급적, 직분적, 직무적. 서열이나 우열이 없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뻐하심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은 신분, 직분, 직무에 관계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종들이며 그들 사이에는 신분적, 계급적, 직분적, 직무적. 서열이나 우열이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무에 따르는 직분적, 직무적, 질서가 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지휘 계통과 법규와 규례가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교회적 지휘 계통과 법규와 규례에 절대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4. 하나님 종의 신분.
하나님의 종은 현존하는 모든 자들 중에 최고, 최상의 영광과 존귀와 명예를 갖춘 존재이지만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 앞에 철저하게 도구적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종<엘리에셀-창24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의 신분<빌2:6-8>을 통하여 하나님 종들의 신분과 직무 수행에 대한 규례를 세워주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엘리에셀의 교훈을 전제로 하여 다음과 같은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1)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보다 우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보다 앞서가거나 하나님보다 더한 예우를 받으려고 하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하나님의 종은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위치를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하와는 하나님과 같은 위치를 욕심내어 범죄 함으로서 인류를 죄악에 몰아넣었다. 엘리에셀이 주인인 아브라함에게 철저하게 순종한 것과 성자 하나님께서 비하의 신분으로 강림하신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지켜야 할 본분에 대한 전통적 규례이다.
(2)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섭리보다 우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섭리대로 일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일하거나 자신의 뜻을 더욱 고집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우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거나 하나님이 받으실 경배와 찬양을 가로챈다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자신은 철저하게 종의 본분을 지켰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드리는 종의 본분과 위치를 지켜야 한다.
(4)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기쁨보다 우선할 수 없다.
하나님 종들의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이 전제된 기쁨이어야 한다.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대죄를 범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기뻐하므로 하나님께서 나의 기쁨을 통하여 기뻐하신다면 순서가 바뀐 것이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후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나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5)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보다 우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세우지 아니하고 자신의 나라와 자신의 의를 세운다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일이 중단되거나 지연된다면 그는 하나님께 대죄를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우는 사명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우는 일에 걸림돌이 되어서도 안 된다.
2) 교회와의 관계에서.
(1)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교회보다 우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종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교회보다 우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종들은 교회의 안녕과 평화와 질서를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충성된 종이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고 포기해야 한다. 만약에 자신이 억울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교회의 안녕과 평화와 질서를 위해서라면 그 모든 억울함과 수모를 감내해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은 억울함과 수모를 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2)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자녀보다 우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최고 최상의 존귀한 직분자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종의 신분임을 명심해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지 하나님 종의 성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종들을 세우신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은 원리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홀대한다거나 착취한다거나 핍박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죄를 범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자들을 양의 탈을 쓴<이리-마7:15;요10:12>라고 선포하였다.
5. 하나님 종의 권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직무와 관련된 법적 행정적 권위를 부여하셨다.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종들의 권위에 절대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여한 종들의 권위는 곧 하나님의 법과 질서와 규례에 자신이 먼저 절대 순종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명을 이행할 때에 비로소 그에게 부여된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6. 하나님 종의 자격.
하나님의 종은 직분과 직무에 따라서 때로는 세상적 학문, 직업, 경제적 능력 등등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다. 반면에 하나님의 종들은 성경 <딤전 3장>이 요구하는 바에 충실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다음과 같은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1) 신학적으로 온전해야 한다.
2) 신앙적으로 온전해야 한다.
3) 인격적으로 온전해야 한다.
4) 사명적으로 온전해야 한다.
5) 윤리적, 도덕적으로 온전해야 한다.
6) 제반법규와 질서를 충실히 지켜야 한다.
7. 하나님 종의 위상.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하나님의 종이다. 따라서 그들은 최고의 명예와 영광을 갖춘 자들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무자 모든 직분자들보다 존귀하고 거룩하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위상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과 질서와 규례에 절대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명을 이행할 때에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고 존경받을 수 있다. 하나님 종들이 하나님의 법과 질서와 규례에 절대 순종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거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명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하나님의 종이 아니며 따라서 그는 존귀하지도 않고 거룩하지도 않으며 예우 받을 이유도 없다.
8. 하나님 종의 삶.
하나님의 종들은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는 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섬기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 양편으로부터 신뢰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존귀히 여기시어 막중한 책무를 부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신뢰받는 삶을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존귀하게 여기어 그들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신뢰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자신을 섬기는 존재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는 존귀한 자들로 여기어 그들에게서 신학, 신앙, 인격, 사명, 등등의 기독교 근본원리들을 배우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직분과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기본적인 삶이 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요구되는 신학적, 신앙적, 인격적, 사명적, 삶은 다음과 같다.
1) 정직한 삶.
(1)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 어떠한 문제에서도 오직 진실과 진리적인 언어 행동을 하며 거짓되고 위선적인 언어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종이 거짓과 위선적이면 그 책임이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아가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악이 되며 사람들이 그를 신뢰할 수 없게 됨으로 직분과 직무 수행을 할 수 없게 된다.
(2)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광과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가로채어 자신이 받지 않는 반면에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어 하나님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는다.
(3)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것과 이웃의 것을 탐내어 자신의 것으로 착복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거나 기만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을 착복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것을 욕심내어 착복하거나 착취하지 않는다.
(4) 하나님의 종들은 동역자들의 영광과 공로를 가로채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의 공로와 영광을 동역자들과 함께 나누며 오히려 그들의 것으로 양보한다.
2) 근면한 삶.
하나님의 종들은 맡은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임무의 크고 작음이나 어려움 등등에 관계없이 항상 최선을 다한다. 새롭고 진취적인 것을 계발하며 역동적인 결과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한다. 하나님께서는 나태하고 게으른 자들을 매우 싫어하시며 자신의 본분과 사명을 자각하지 못하고 잠자는 자들과 깨어 기도하지 않는 자들을 책망하셨다<마25:13; 26:39-43>.
3) 성실과 성심의 삶.
하나님의 종들의 성실과 성심적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과 형식적 삶을 책망하셨고 사두개인들의 이중적 신앙을 경고하셨다<마12:1-,마15:1-,마23:1->. 하나님께서는 확실하고 분명한 것을 기뻐하시어 적극적인 것을 즐거워하시고 미지근한 것과 희미한 것을 싫어하신다<마11:17-18; 6:24>.
4) 충성의 삶.
하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을 기뻐하신다.<마8:21-22;10:38-> 엘리에셀의 충성<창24장>은 하나님 종들의 충성에 대한 표본이다. 따라서 하나님 종들의 삶은 오직 하나<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다. 목화자들이 안식년 제도를 도입하여 6년 사역한 후 7년째에는 안식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 6년 사역하고 7년째에는 안식한 하나님의 종은 단 한명도 없었다. 하나님의 종들은 오직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죽기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명적 삶을 살았다. 성경에는 하나님 종들의 안식년 제도를 전혀 말하지 않는다. 안식년 제도란 토지에 대한 제도이지 사람에 대한 제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도 없는 목회자의 안식년 제도를 누리고 즐기는 자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기 유익을 도모하는 악한 자들이다.
5) 청렴결백의 삶.
하나님의 종들은 모든 일에 청렴결백하여 하나님께 부여받은 사역을 진행하는데 스스로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이 청렴결백하지 못하고 비 진리적인 입장이 되면 지도자로서의 위상이 무너짐으로서 부여받은 사명을 진행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종은 오직 <아닌 것은 아니다>하고 <옳은 것은 옳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6) 검소 검약의 삶.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하고 안내하는 자들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배운다. 하나님의 종들이 현세적인 부귀영화와 쾌락 등등에 심취하면 성도들은 그러한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현세에 대한 모든 욕망들을 절제하면서 검소하고 검약한 삶을 살아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해야 한다.
7) 지혜와 순결의 삶.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종들을 향하여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10:16>고 가르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은 하나님 종들의 사역 현장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사단의 역사 때문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며 특히 하나님의 종들을 무차별 공격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지혜롭게 사명을 진행하여 사단의 올무에 걸리지 않아야 하며, 순결한 삶을 살아 사단의 궤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은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그리고 방심하지 않기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하여 영적 무장을 해야 한다.
8) 담대와 과감의 삶.
하나님 종들이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거나 평온한 길이 아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때로는 가파른 험산 준령이고 때로는 길 없는 심산유곡이며 때로는 산더미 같은 파도가 덮쳐오는 망망대해이며 때로는 폭풍한설 몰아치는 허허벌판인가하면 때로는 폭양이 내려쬐고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다. 도처에 사이비 이단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사단의 흉계가 틈을 노리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고 단 한번의 실수로 형설의 공이 졸지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이러한 각종 위험적 요소들 앞에 굴복하거나 위축당할 수 없다. 하나님의 종들은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제압하고 굴복시키어 다스리면서 자신의 사명을 진행함으로서 하나님 종다운 멋진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승리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멋진 승리를 전제로 하여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삼하2:7, 대상22:13, 마10:19-20; 28:20, 요16:33, 딤후4:7-8, 요일5:4-5>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항상 강하고 담대한 지도력을 발휘하며 과감하고 용맹한 지휘력을 행사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보장하신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9) 희생과 순종의 삶.
하나님께 부여받은 사명을 진행하는 것은 결코 쉽고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것에는 철저한 자기희생과 절대적인 순종이 수반되는 것이다. 자신의 희생을 거부하고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는 자에게 아름다운 승리는 없으며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 멋진 승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승리는 오직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간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잠4:27; 딤후4:7-8>
10) 사랑과 용서의 삶.
하나님은 사랑과 용서의 원천이시다. 기독교의 원리가 사랑과 용서인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용서의 원천이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베드로를 통하여 모든 하나님의 종들에게 명령하신 목회 원리가 사랑이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곧 사랑과 용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사랑과 용서의 사역을 진행해야 하며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아 신학과 신앙이 일치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
11) 화해와 단결의 삶.
하나님의 종들은 모든 영역,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화해와 단결로 인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화해와 단결을 기뻐하시며 대결과 분열을 싫어하신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과 화목하신 것과 이미 구약시대부터 화목제를 제정하시어 사회적인 화목을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화목과 단결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자녀로 삼아주시고 그들에게 교회라는 조직 사회를 부여하신 것은 자녀들이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화목하고 단결하여 하나님의 은혜 안에 평안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들의 사역적 현장과 삶을 화해와 단결의 것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12) 섬김의 삶.
하나님 종들은 자신의 일상적 삶 자체가 곧 섬김의 삶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까지<요13:4-9> 섬김의 삶을 살면서 제자들에게 섬김의 도<道>를 명령하셨던 것<마23:11-12>은 하나님의 종들이 섬김을 위하여 부름 받고 세워졌기 때문이다. 현대 기독교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입으로는 섬김을 말하면서도 온갖 섬김을 요구하면서 심지어 보이는 목사를 섬기는 것이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하는 것은 참으로 악한 것이다.
9. 하나님의 종에 대한 현대교회의 오류.
현대 기독교는 오랫동안 신학 부재의 지도자들에 의하여 인도되어 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에 대하여 오류에 빠져 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데 그중에 특히 심각한 것이 목사에 대한 오류이다. 목사에 대한 성도들의 오류는 신학적으로는 심히 무식한 반면에 목사의 직분에 대해서는 특별한 권위 의식을 갖은 목사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높여 가르치면서 성도들의 절대적 순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정립되어진 오류이며 비 진리이다.
1) 목사의 직분에 대한 오류.
(1) 목사의 3직론.
목사의 3직론이란 목사들에게 그리스도의 3직 <선지자직> <왕직> <제사장직>이 위임되었다는 것이다. 목사들에게 그리스도의 3직이 위임되었다는 것은 성경에 없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도 전혀 전례가 없고 교회 헌법에도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의 3직론은 많은 현대 기독교 목사들에 의하여 주장되고 있으며 일부 신학교에서조차 공공연하게 강의되고 있다.
① 목사의 선지자 직.
선지자는 현재의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백성들에게 고지하거나 또는 미래적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백성들에게 고지하기 위하여 세움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었다. 선지자들은 본래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무와 직분을 예표 하였다. 선지자들은 주로 구약시대에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나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는 선지자들의 활동이 거의 없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등장한 선지자는 세례요한으로서 그는 신약시대 최초의 선지자였다. 신약시대 선지자는 세례요한 이외에 뚜렷한 인물이 없었고 사도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그들의 직무가 점점 소멸됨에 따라 선지자 직분 자체가 종료되었다. 선지자들의 직무와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직무와 직분을 예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선지자의 원형인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셨고 또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시가 성경을 통하여 완전하게 정립되었으므로 선지자의 직무가 자연적으로 종료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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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와 계시가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이 선지자 직분을 행사한다는 것은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반면에 목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가르치고 전파하는 자로서 선지자 직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이러한 직무는 목사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모든 하나님의 종들이 수행하는 선지자 직무이다. 따라서 목사들이 선지자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결코 선지자 직분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분을 목사들이 위임받았다는 주장은 거짓이고 사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무는 인간 선지자 직무와 다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분은 인간 선지자 직분과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무와 직분은 오직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 목사가 감히 행사할 수 있는 차원의 선지자 직분과 직무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분을 목사들이 위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분과 직무를 무시하고 가로채는 악행이다.
② 왕.
성경이 말하는 왕 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일반적 국가 통치자들의 왕 직이고 다른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영적 통치권인 왕 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현존하는 영역 전체를 총괄하기 때문에 성경은 그의 왕 직을 <만왕의 왕>으로 선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에게 주어진 고유 권세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 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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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 직을 위임받아 행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 직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거나 또는 목사의 통치권을 예수 그리스도의 왕 직과 같은 차원으로 높이고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용서받지 못할 대죄이며 악행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자들은 언제인가는 통일교의 문선명이나 전도관의 박태선처럼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최후의 심판을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③ 제사장.
제사장은 구약 시대에 인간들의 제사를 대신하여 드리는 직분자였다. 따라서 제사장은 제사장의 원형으로서 영원하고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예표하는 직분자들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인류에 대한 완전하고 영원한 대속죄제를 드렸을 때에 지금까지의 모든 속죄제사가 종결되었고 따라서 구약시대 제사장 제도는 종료되었다. 이제 모든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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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위임받아 여전히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과 직무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거나 또는 목사의 권위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과 같은 차원으로 높이고자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주장은 아직도 기독교에 제사장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하고 완전한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 대속죄제를 완성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그것은 용서받지 못할 대죄이며 악행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자들은 언제인가는 통일교의 문선명이나 전도관의 박태선처럼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하심을 대신하여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사자.
많은 사람들이 목사를 <하나님의 사자>라고 말한다. 이러한 자들은 목사에게 구약시대<하나님의 사자>의 권위를 부여한다. 저들은 특히 목사가 설교할 때에 목사 자신은 다만 도구로 사용되어질 뿐이며 실제로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목사의 설교는 인간 목사의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목사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나님의 대표자라고 주장하면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대표자인 목사에게 절대 순종해야 하며 목사가 아무리 잘못한다 해도 목사의 잘못은 오직 하나님만 말씀하실 수 있으며 성도들은 다만 위하여 기도만할 뿐 목사의 잘못에 대하여 일체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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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주장들은 로마 카토릭의 교황 무오설을 흉내내는 것으로서 어리석고 교만한 것이며 목사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와 동등하게 하려는 것으로서 용서받지 못할 대죄이며 악행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자들은 언제인가는 통일교의 문선명이나 전도관의 박태선처럼 자신들이 곧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2) 목사의 직무에 대한 오류.
현대 기독교에서 많은 자들이 목사에게 교회의 전권이 위임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자들은 목사에게 모든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있으며 목사의 최종 결정권은 당회, 제직회, 공동회의 <교회총회>의 결정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 진리와 오류들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목사의 파행과 불법으로 인하여 갈등과 분란을 겪고 있으며 심지어는 법정 투쟁까지 벌이는 가운데 교회가 사분오열되고 있다.
3) 장로에 대한 오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장로의 직분과 직무에 대해 오류와 오해하고 있는바 그중에 대표적인 사례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장로는 평신도를 대표한다는 주장.
많은 자들이 목사가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전제 하에 장로는 평신도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저들의 주장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목사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이고 장로는 교회를 대표하는 것이므로 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며 장로는 교회의 운영과 치리에 전념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저들은 그러한 신학적 의미에서 목사의 하나님 대표권과 장로의 평신도 대표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저들의 주장은 단지 목사의 권위를 높이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장로의 권위를 약화시키려는 파렴치한 수작에 불과하다. 저들은 편의에 따라 어떤 때는 목사가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때는 목사가 교회를 대표한다고 주장함으로서 스스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2) 장로는 목사를 보좌한다는 주장.
많은 자들이 장로의 직분과 직무가 목사를 보좌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들의 주장은 <출17:12>의 아론과 훌에 대한 기사를 근거로 한다. 그러나 출애굽기 전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아론과 훌의 직무 수행은 모세를 보좌한 것이 아니라 모세와 협력하는 것이었으며, 특히 성경에 나오는 장로들은 제사장이나 목사와 같은 목회자들을 보좌하는 직분자들이 아니라 교회의 구심점이었으며 지도자들이었다. 장로들을 목회의 보좌역으로 강등시킨 자들은 로마 카토릭의 교권주의자들이었다. 로마 카토릭은 교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하여 장로들의 직무와 직분을 제한하였고 나중에는 아예 폐지시켜 버렸다. 기독교에 장로 제도를 부활시킨 것은 16세기 기독교 개혁자들이었다. 특히 칼빈주의자들을 비롯한 의회주의자들은 기독교에 장로 제도를 부활시켰고 장로들에 의한 <의회주의 교회 정치제도>를 수립하였다. 개혁주의자들은 모세를 통한 장로정치 제도와 <딤전5:17>의 다스리는 장로들과 말씀 가르치는 장로들의 구분을 근거로 하여 목사와 장로들의 직무를 구분하였다. 즉 다스리는 장로들은 현재의 장로들로서 교회를 치리 운영하는 직무자들이며 가르치는 장로들은 현재의 목사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직무자들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 목사들은 이와 같은 개혁주의자들의 교회조직 원리를 완전히 무시하였고 성경의 원리도 자신들 마음대로 뜯어 고쳐 버렸다. 저들은 장로들을 평가 절하시켜 목사들의 보좌관으로 전락시켰고 나아가서는 장로 직분에 대한 생사여탈권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목사에게 있는 것으로 바꿔버렸다. 이제 현대 개혁주의 교회의 장로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담임 목사들의 종으로 전락되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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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사역적 기능
목회자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역할 때에 그는 기능적 차원에서 하나의 도구이며 특히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통로-Pipe-Line> 역할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를 통로로 하여 말씀, 계시, 섭리, 명령, 등등을 공급하며 사랑, 은혜, 강복, 등등을 공급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자신이 오직 통로 역할을 담당한다는 원리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자신을 통해서 공급되고 전달되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자신이 공급하는 것으로 내세워서도 안 되며, 자신의 공로를 내세워서도 안 된다. 반면에 통로가 녹슬면 녹물이 나오듯이 목회자<통로-Pipe-Line>가 부패하면 오염, 오류, 왜곡, 변질된 신학과 신앙과 인격과 사명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공급된다. 그리고 통로가 심히 부패하여 망가지면 물이 새듯이 목회자가 심히 부패하여 망가지면 하나님께 드려진 교회 재정이 새어 나간다. 따라서 목회자는 자신<통로>을 항상 청결하게 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오염, 오류, 왜곡, 변질되어 공급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하나님께 드려진 교회 재정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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