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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이냐 주일이냐

하나님아들 2021. 9. 5. 23:38
안식일이냐 주일이냐

안식일과 주일에 대한 논쟁은 안식교를 비롯한 이단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지만,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명쾌하고 설득력있는 답변은 찾아보기 힘들다. 분명한 논리 전개와 논지의 전달을 위해, 먼저 주일의 기원과 그 의미를 성경적,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안식일 논쟁의 핵심 쟁점들을 다루고자 한다. (안식일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는 안식일 논쟁(1)을 참고하라.)

주일의 기원 

신약에는 문자적으로 ‘주의 날’을 뜻하는 ‘헤메라 (투)퀴리우’(고전 1:8;살전5:2;벧후3:10)와 ‘주님께 속한 날’을 뜻하는 ‘퀴리아케 헤메라’(계1:10)가 등장한다. 흔히 계1:10에 등장하는 ‘퀴리아케’를 주일이라고 부른다. 원래 ‘퀴리아케’는 매월 첫째날을 로마황제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던 로마제국의 관습과 용어를 그대로 차용하여, 매주의 첫째날을 만왕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날로 기념하기 위해 초대교회가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 따르면, 초대교회는 안식후 첫날에 모여 성찬을 행하고, 복음을 강론하며, 헌금을 했다.(행20:7;고전 16:20) 또한 1세기 말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에 ‘퀴리아케’가 사용된 것은 주일을 기념하던 초대교회의 관습에 성서적 권위를 부여한다. 2세기 문서 디다케(14:1), 사도 요한의 제자 이그나티우스의 서신, 바나바서신, 디오그네투스 서신 등 초대교회의 문서들과 플리니 총독이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서신(109년) 등 비기독교 문서들도 초대교회의 주일예배가 보편적이었음을 증거한다. 따라서 바울시대부터 초대교회의 공식적인 모임으로 관습적으로 지켜오던 주일예배가 1세기 말에 ‘주님께 속한 날’이라는 뜻의 ‘퀴리아케(주의 날)’로 불리며 이미 공식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의 기독교 문서들과 비기독교 문서들은 이러한 사실을 강력히 지지한다. 

그런데 ‘퀴리아케’는 신약성서에 1회 사용되지만, 구약의 ‘여호와의 날’(욤 야훼)에 상응하는 ‘헤메라 퀴리우’(주의 날), ‘헤메라 크리스투’(그리스도의 날), ‘테우 헤메라’(하나님의 날) 등은10여 회 등장한다. 이는 성경이 매주일(퀴리아케, 主日)보다 여호와의 심판이 임하는 날이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온 세상을 심판하실 날(헤메라 퀴리우)을 훨씬 더 중요시함을 암시한다. 

주일의 의미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주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교부 이그나티우스(AD. 50-117)는 주일을 ‘부활의 날’, ‘기쁨의 날’이라고 설명했다. 주일은 안식후 첫날에 부활하신 주님을 기념하고,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날이다. 따라서 주일은 부활의 생명과 기쁨이 충만한 축제의 날이다. 순교자 저스틴(AD. 100-165)은 주일을 ‘창조의 첫날’이라고 불렀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죄와 타락으로 사망 가운데 신음하는 인류와 우주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속하신 날, 즉 새창조를 시작하신 날이다. 그러므로 주일은 새창조가 시작된 날, 부활의 새생명이 시작된 날이다. 셋째, 주일은 새언약과 관련된 날이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새언약(십자가)을 기념하는 날로 새언약의 효력이 시작된 첫날, 즉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을 택하여 공식적인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안식일이 모세언약의 표징이었던 것과는 달리, 주일은 강제적 준수계명이 없는 새언약의 기념일로 자리잡았다. 넷째,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이 안식을 ‘모든 날’에 누릴 수 있도록 훈련하는 날이다. 그리스도의 안식을 맛봄으로 진정한 영육간의 쉼을 경험하고,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고, 새생명으로 충만해지며, 선한 일과 봉사를 힘쓰는 날이다. 마지막으로 주일(퀴리아케)은 ‘주님오실 날’(헤메라 퀴리우)을 준비하는 출발점이자, 초림 예수를 기념하며 재림 예수를 소망하는 날이다. 주일에 우리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마음과 태도를 새롭게하여 천국과 주님 다시오심에 대한 소망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 모든 의미들을 관통하는 것은 주일이 종말(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준비하는 시작이요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안식일이 주일로 대체되었는가? 

안식일 논쟁의 핵심에 존재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성서적인 답은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내포한다. 신약의 종말론적 안식이 안식일 계명을 성취하고 완성했다는 점에서 안식일 계명은 폐기되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안식으로 대체되었다.(안식일 논쟁(1) 참조)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은 명백하게 비성서적이다. 이것은 복음을 율법으로, 그리스도를 모세로, 완전한 것을 불완전한 것으로 대체하는 반역이다. 하드리안 황제의 박해(132년),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교령(321년), 니케아공의회(325년), 라이디게아공의회(364년) 등 초대교회와 로마카톨릭의 변절 때문에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다는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망각한 억지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안식일이 주일로 대체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주일과 영원한 안식은 동일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주일을 지키는 것(혹은 기념하는 것)과 종말론적 안식을 누리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명백하게 구분된다. 종말론적 안식이 목적, 목표, 완성, 지향점, 실체라면, 주일은 수단,출발점, 부분, 계기, 그림자(골2:17)이다. 안식일은 주일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으로 대체된 것이다. 따라서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과 같은 특권적 지위를 지닌 날이 아니며, 한 날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모든 날이 거룩하다(롬14:5). 신약에서 특권적 지위를 지닌 구별된 날은 오직 ‘주의 날’, ‘그리스도의 날’, ‘하나님의 날’로 불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종말론적 안식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 논점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은 안식일이 폐기되었음을 긍정하는 동시에, 주일을 안식일처럼 준수하는 것, 즉 안식일을 주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칼빈은 주일예배를 교회의 편의와 질서를 위한 것으로 못박고 주일의 율법적 준수를 비판했지만, 동시에 안식일의 준수가 훨씬 더 위험하다고 명시했다.(기독교강요 2권 8장)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은 모든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의식법이나 안식법도 완성된것이다.

신약의 성도들은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일을 복음으로 지켜야하며 거룩하게 지켜야 하며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며 지켜야 한다.

주일을 성경 말씀대로 지키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