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
- 신약성경을 중심으로
일부 기독교를 거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교회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 있어서 교회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가? 예수 믿고 구원을 얻으면 되는 것이지, 굳이 교회를 나가야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종교개혁자 칼빈은 일찍이 교회를 ‘신자들의 어머니’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나는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역사 속의 교회가 흠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흠이 있다는 이유로, 교회를 무가치한 존재로 여긴다면 그것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번 과에서는 신양성경에 나타난 교회를 통해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배우게 될 것입니다.
1. 에클레시아(ejkklhsiva)로서의 교회
역사상 최초의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행 2장)이후 생긴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교회라고 하는 새로운 단어를 ‘에클레시아’라는 기존의 헬라어 사용하여 기록했습니다. 이 단어는 당시 그리스-로마시대의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시민들의 모임(민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신약성경이 ‘교회’를 명명할 때 굳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지 않고 기존의 친숙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복음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로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에클레시아가 다 교회일 수는 없습니다. 민회는 민회이지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교회와 세상의 에클레시아를 구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그것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하나님의 에클레시아’ 또는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 라고 부른 것이었습니다.
고전 1:2) 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롬 16:16) 16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러나 오늘날은 굳이 ‘하나님의’ 라고 하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에클레시아는 교회를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소금이 녹아드는 것처럼 소리 없이 기독교가 세상의 문화를 바꾼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회 변혁은 이렇게 소리 없이 하는 것이지, 광장에 나가서 요란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사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1)모이는 공동체
에클레시아의 원래의 의미는 “모인 사람들의 무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두 세 사람이라도 일단 모여야 교회가 성립됩니다.
마 18:20) 20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히 10:25) 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면 교회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이 선포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이웃과 사회를 섬기는 구체적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로 모이지 않는 신앙은 사적인 신앙, 개인적인 신앙이 되어서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회의에 빠져 차츰 불신앙으로 변하게 됩니다. 따라서 에클레시아로서의 교회는 항상 모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에클레시아는 단순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2)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
①익명의 교회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사람들의 모임인가? 교회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도르트 죌레(D. Sölle)라고 하는 여성신학자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지 않아도 교회가 가능하다고 하는 소위 ‘익명의 교회’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죌레에 따르면 비록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임일지라도, 그곳에 사랑과, 선행과, 가난한 사람들을 귀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면, 거기에도 교회가, 즉 익명의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사랑도 없고, 선행도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귀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도 없는 기존의 수많은 교회들에게 커다란 도전을 주는 중요한 이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성경적인 이론이 아닙니다. 만일 이 이론이 맞다면, 수많은 자선단체나, 심지어 선한 행위를 하는 다른 종교단체까지도 교회가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물론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선한 모임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모임들을 모두 교회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②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공동체
신약성경이 교회에 대해 언급할 때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생각했습니다. 자선단체는 자선단체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고전 1:2) 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그렇다면 사람들이 모여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다 교회가 되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3)교회는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 공동체
교회는 모이는 것 못지않게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흩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 28:19 -20)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①교회와 주유소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신 것은 그들이 일주일 내내 교회에 모여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구원하고, 섬기고, 변화시키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마치 주유소와 같습니다. 누구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나면, 시내로 나가서 도로를 달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영적인 충전을 얻었으면 세상으로 나가야지 자꾸 교회 주변만 서성거려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세상의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교회가 가나안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나가’가 되는데, 한국 교회가 바로 그런 ‘안나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성도들을 매일 교회로 끌어 모을 줄만 알았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가르치지는 것은 게을리 했습니다.
②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교회는 성도들을 훈련시켜 신학교로 파송하는 기관이 아니라, 세상의 일터로 파송하는 기관입니다. 성경은 성전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의 이야기보다, 세상에서 일하는 신실한 평신도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요셉이나 다니엘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의 정치인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교넬료나 백부장과 같은 믿음 좋은 군인들과, 삭개오와 같은 세리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누가는 신실한 의사였고, 바울은 이방 세계에 꼭 필요한 천막 기술자였습니다. 물론 마리아와 같은 가정주부도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교회 밖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사명을 가진 존재입니다. 교회는 주님에 의해 처음부터 세상 속으로 파송된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요 17:18)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그렇다면 교회가 이 세상 끝까지 나아가기만 하면 참된 교회가 되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4)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종말론적 공동체
에클레시아로서의 교회는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 너머의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종말론적 공동체입니다. 이는 교회가 단순히 기독교를 믿어 현실세계에 안주하고, 현세에서 성공하기만을 바라는 자들의 모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역사의 종말에 오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또한 현재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종말론적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①초대교회의 박해를 이긴 종말론적 신앙
초대교회가 로마시대의 그 참혹한 박해와 시련을 어떻게 참고 견뎌낼 수 있었는가? 당시 성도들은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불 속에 던져 넣어지고, 짐승의 밥이 되고, 투옥과, 매 맞음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종말론적 소망이 있었기에, 그 모든 박해를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②오늘날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종말론적 신앙
종말론적 신앙이란 박해 받는 상황 속에 현재의 고난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끝이 있으며, 그리고 고난 뒤에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굳게 믿는 소망의 신앙을 말합니다.
롬 8:17 - 18) 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는 과거의 뜨거운 종말론적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더 이상 박해를 받는 처지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호령하는 부와 권력과 명예를 누리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불필요하게 주님이 오시기를 소망하기보다, 오히려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현실적인 신앙에 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역동성을 상실하고 급속히 보수화되어, 사회를 변화시킬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진정한 에클레시아로서의 교회임을 보여주려면,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간직한 종말론적 공동체로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신약성경이 교회에 대해 말하는 중요한 표상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에 의해 사용된 독특한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1)하나 된 교회
이는 먼저 교회의 하나 됨을 말합니다.
고전 12:12 - 13) 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교회가 하나이어야 하는 이유는, 교회가 믿는 주님이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교회는 크게 로마 카톨릭, 동방정교, 성공회, 개신교 등으로 나누어져 있고, 개신교 안에서도 수많은 분파가 있습니다. 장로교회, 감리교회, 루터교회, 침례교회, 오순절교회, 성결교회, 구세군교회 등 그 명칭을 기억할 수도 없을 정도의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장로교회도 분열이 되어 우리나라의 경우 통합, 합동, 기장, 고신, 대신 등 수없이 많은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교회는 왜 하나 됨을 상실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①교회의 죄로 인한 수치이다 : 칼 바르트
칼 바르트에 따르면 교회가 분열된 것은 교회가 한 분이신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다른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교회들이 단순한 지역적인 차이나 형식적인 제도상의 차이가 아니라, 신앙고백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은, 교회가 인간의 이기심이 전하는 말이나, 자기의 교파의 유익을 위한 말, 또는 인간적인 죄악의 말을 듣고 따르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는 것입니다. 바르트는 교회의 일치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모두가 겸손히 회개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합니다.
②불가피한 현실 : 아브라함 카이퍼
그러나 아브라함 카이퍼에 따르면 교회가 다수로 존재하는 것은, 결코 진리가 다수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고전 13:9 - 12) 9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2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많은 경우에 교파는 단지 민족적 특징이나 지역의 역사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라틴 민족이 많은 서유럽에는 로만 가톨릭이 우세한 반면, 헬라 민족이 많은 동유럽에는 동방정교가 우세합니다. 한편 영국은 성공회와 감리교가, 독일은 루터교가,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는 장로교가, 미국이나 남미 쪽은 침례교가 각각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교회로의 나누어짐이 긍정적인 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교파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타 교파를 수용하고, 서로 배움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고, 또 끊임없는 자기 혁신이 가능함으로 부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교파든 자기 교리만을 절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마치 내가 선택한 하나의 복음서만 옳고, 나머지는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그치지 않는 것은 교회의 분파가 주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의 공명심과 이해득실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명분이 무엇이든 간에 인간의 욕심 때문에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명백한 죄입니다.
2)평등한 공동체
또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등’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는 계급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도 기능의 차이이지 계급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모든 지체들이 평등하다면, 특정한 인종이나 지역이나 성이나 사회적 신분의 사람들이 교회를 지배하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이 사회와 세상의 모든 차이가 무시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여자나 남자나, 사장이나 노동자나, 장군이나 사병이나, 교회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형제와 자매들입니다. 교회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장벽을 넘어서는 공동체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나뉘어져 파벌 싸움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행위입니다. 교회는 오히려 낮고 천하고 약하고 작은 자들을 섬기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갈 3:28) 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막 9:35) 35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다양한 공동체
그러나 교회 공동체의 평등은 획일적인 평등이 아니라 다양성을 전제로 한 평등입니다. 우리 몸이 눈과 코와 입과 손과 발 등 다양한 지체로 구성되어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 12:17 - 고전 12:22) 17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18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20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22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은사를 평가 절하한다거나 시기해서는 안 될뿐더러 자신의 은사만을 자랑해서도 안 됩니다.
4)자라나는 교회
한편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자라나는 교회입니다. 이는 먼저 외적 성장을 말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얼마만큼 성장해야 하는가? 무한대로 성장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의 모든 성장은 나눔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식물은 열매를 통해 성장을 나누고, 동물들도 출산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다음 세대와 나눕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의 성장은 독식하는 성장이 아니라 성장의 열매를 이웃과 함께, 지역 사회와 함께 나누는 성장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교회를 분립하여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교회가 내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성장만 하고 성숙하지 않는 교회는 결코 그런 나눔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기적인 교회로 세상에서 지탄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디까지 성숙해야 하는가?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도록 성숙해야 합니다.
엡 4:15)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5)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합하는 교회
이것은 특히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개념입니다.
엡 1:10) 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골 1:20) 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고후 10:4 - 5) 4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이 우주적 형태를 가지며 모든 피조물을 포괄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은 지역교회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도 교회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역사, 그리고 호흡하는 모든 생명체와 지구와 우주의 모든 환경에 이르기까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되어야 함을 증거 하기 위해 부름 받은 공동체입니다.
3. 성령의 전
신약성경은 또한 교회가 하나님의 집, 특별히 성령의 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6:19)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교회가 성령의 전이라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1)교회는 성령의 피조물
첫째로 교회는 인간의 결단이나 의지에 의해서 생긴 인위적인 기관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창조된 하나님의 기관임을 말합니다.
고전 3:16 - 17) 16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엡 2:20 - 22)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의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2)성령의 은사로 섬기는 공동체
둘째로, 성령은 교회에 은사를 주시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반드시 은사를 통해 교회를 교회되게 하시고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게 하십니다.
①은사의 종류
성령의 은사는 기적, 병 고침, 방언, 예언, 환상과 같은 특별한 현상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믿음, 가르침, 자선, 봉사, 심지어 독신생활과 결혼생활도 성령의 은사입니다.(고전 7:7) 이러한 “성령의 능력”으로서의 은사는 특별한 사람에게 제한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고전 12:8 - 11) 8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②가장 중요한 은사(고전 13장)
그러나 모든 은사 중에 가장 중요한 은사가 사랑의 은사임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③은사를 주신 이의 목적
또한 우리가 각자가 받은 은사가 무엇이든지 그 은사는 반드시 자기의 영광과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섬기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에 씌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은사를 주신 이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벧전 4:10) 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3)성령의 능력 안에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징조
신약성서의 교회는 예언자들의 예언이 성취되는 여러 중요한 증거들을 목격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인종적, 성적, 계급적 분리가 철폐되고 나그네도 환영을 받으며,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사라집니다. 성령의 능력과 인도함을 받는 가운데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되며, 하나님의 새로운 인간성의 첫 징조가 되고, 영광스러운 새 시대의 ‘첫 열매’가 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는 아닙니다. 교회에 대한 이러한 종말론적인 상징들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징조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일부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우리는 신약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표상들을 중심으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에클레시아로서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시대의 모든 교회들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보다 더 교회다워지고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로서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교회란! 예배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어쓴 교회론 -박일민 (0) | 2021.05.25 |
---|---|
성경적 예배의 표준 - 초대교회 예배 (0) | 2021.05.07 |
찬송의 내용/엡5:19 (0) | 2021.02.06 |
교회의 본질은 무엇일까? (0) | 2021.01.22 |
교회력 (0) | 2021.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