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란 무엇인가
* 한국교회와 복음주의 운동
목 차
1.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제 1 항
I. 보수주의로서의 복음주의 .........................
II. 하나되게 하는 복음주의 ..........................
III.복음주의의 장래 .................................
IV. 맺음말 ..........................................
2. 복음주의,근본주의,개혁주의 비교 ..................제 2 항
I. 복음주의 ........................................
II. 근본주의 ........................................제 3 항
III.개혁주의 ........................................제 4/5 항
V. 맺는말 ..........................................제 5 항
3.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복음주의 운동 ................제 6 항
I. 복음과 역사 .....................................
II. 1907년 대 부흥운동 ..............................제 7 항
III.복음주의 사회개혁운동 ...........................
IV. 반 권력 저항운동 ................................
V. 순수 기독교 신앙운동 ............................
VI. 맺음말 ..........................................
4.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비교(I) ..................제 8 항
I. 들어가는 말 .....................................
II. 19세기의 복음주의와 WCC 결성과정 ................
III.'Missil Die'와 교회의 사회참여 ..................
IV. 복음주의,에큐메니칼 사회참여 비판 ...............제 9 항
V. 맺는말 ..........................................
5.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비교 (II) ................제 10 항
I. 비교의 어려움 ...................................
II. 경향(tendency)의 차이 ...........................제 11 항
III.비교에서 얻는 교훈 ..............................
6. 자유주의에서 본 복음주의 운동 ....................제 12 항
= 한국 신학의 세가지 흐름 = .........................
=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것이다 = ......................
= 틀에 박힌 성경해석 = ..............................
= 잘못된 선민사상에 물든 교회지상주의 = .............
= 정교분리와 정권을 위한 '기도회'= ..................
= 교회는 자본주의의 시녀인가? = .....................
7. 한국교회 성장과 복음주의 .........................제 13 항
I. 활발한 한국교회 성장 연구 .......................
II. 복음주의가 교회 성장에 미친 영향 ................
III.복음주의 입장이 끼친 부작용 .....................제 14 항
IV.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방향 .......................
8. 한국복음주의 운동의 전망과 과제 .................제 14 항
= 복음주의 신앙이란? = ..............................제 15 항
= 한국교회와 복음주의 신앙 = ........................
= 한국복음주의협의회와 복음주의 연합운동 = ..........
= 한국복음주의 운동의 문제점 = ......................
= 해결해야 할 문제들 = ..............................
=주력해야 할 과업들 = ...............................
= 복음주의 운동의 전망 = ............................
1.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방 선 기 목사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 안에서 복음주의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말이 복음주의 신학, 복음주의 선교, 복음주의 사회참여 등으로 사용
되면서 복음주의는 한국 기독교 안에 있는 특정한 신학적인 흐름을 설명
해 주는 용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복음주의란 말은 그동안 교회 내에
있었던 전통적인 신학적인 용어에 비해서 훨씬 다양하게, 다른 표현으로
하면 "헐렁하게"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이 복음주의의 물결은 교단의
담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지역교회가 아닌 여러 선교단체를 포용하는 커
다란 흐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를 바로 이해하고 한국교회의 장래를 바로 내다보기 위해
서는 이 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로 특징지어지는 다양한 운동의 실체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이 복음주의를 언급할 때
의하는 바에 대해서 좀더 심각하게 살펴보고 그것이 오늘 한국교회에 어
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
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한다.
I. 보수주의로서의 복음주의
나는 어려서부터 보수신학을 신봉하는 교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신앙
은 당연히 보수적인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부터 면면히
이어내려온 신앙을 변질시키지 않고 보수하는 것이 바른 기독교인의 자
세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 보수주의란 용어가 신학에만 국한
되지 않는 이념적인 용어임을 깨닫게 되면서 나의 신앙을 보수주의란 용
어로 표현하는데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보수주의의 의미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의미의 보
수라기보다는 과거의 전통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전통주의:Traditio
nalism) 이나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유지하려는 노력 (현상유지주의:
Startus-Quoism) 으로 이해될 때 그 보수주의는 예수님을 비롯해서 성경
에 나타난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의 주의가 아님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성경에 나타난 그들의 말이나 행동은 결코 "보수주의적"은 아니었기 때문
이다.
또한 보수주의에 반대하는 흐름으로서 진보주의, 혹은 자유주의 신학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신학은 보수주의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한번쯤 대안으로 생각해봄직한 길이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과거의 전통
에 묶이기를 원치 않는 젊은이들은 진보나 자유라는 말에 훨씬 매력을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요즈음 보수주의 교회에서 자라난 젊은인들 가운
데 자유주의 신학에 매력을 느껴 그런 책들에 심취되는 모습을 종종 보
게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글너데 "진보적"이나 "자유주의"로 묘사되는 교회나 신학을 살펴보면
어딘가 모르게 내가 지녀왔던 신앙과 다름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들도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똑같이 성경을 인용하지만 무언
가 내 속에 있는 확신과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보적인 신앙을 가
진 사람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
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기보다는..."라고 말끝을 흐린다든가 또
성경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중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의하기 보
다는 ..." 식으로 말을 맺는 것을 들을때면 내가 가지고 있던 신앙과의
분명한 편차를 느낄 수 있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에수 그리스도를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
나님의 아들로 믿는 나로서는 자유주의 신학에 발랄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나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자처할 수밖에 없
었다. 그러던 차에 복음주의(Evangelicalism)란 용어를 듣게 되었다.
복음주의로 정의되는 신앙은 바로 지금까지 내가 믿어왔던 그 십자가의
신앙이요, 구원의 신앙이요, 은혜의 신앙이요, 성경적인 신앙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복음주의는 보수주의란 말에서 나는 부정적인 냄새가 없었다.
보수주의의 신앙은 항상 보주적이어야 하는데 비해 복음주의 신앙은 성
경에 관해서는 한없이 보수적이면서 때로 어떤 이슈에 대해서는 성경적
으로 되기 위해 얼마든지 진보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보수주의 교회에
서 자란 나는 이와같이 내 신앙을 복음주의로 재정리 하면서 오늘 우리
한국의 보수즈의 교회도 이와같이 재정리의 과정을 겪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경과 성경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복음이 진리에 대
해서는 과거 자유주의의 물결에 대항했던 근본주의자들처럼 철저하게 보
수적인 신앙이 오늘 현실사회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보수라는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는 신앙을 갖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II. 하나되게 하는 복음주의
일단 나의 신앙을 복음주의 신앙으로 정의하게 되면서 따르는 문제
는 지금까지 내가 속해 있던 교회 신학과의 관계였다. 나 자신이 개혁주
의를 가르치는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왔고 또 신학을 공부하는 과정
에서 개혁주의 신앙이 가장 성경적인 신앙이라고 확신했던 터라 다시한번
내 신앙, 내 신학의 위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내 신앙을 복음주의
로 정의한다면 내가 확신하는 개혁신앙은 이 복음주의 신앙과 어떤 관계
를 맺게 되는가? 이렇게 자신에게 물으면서 해답을 찾던 중 복음주의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다. 복음주의라는 용어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교회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은 복음주의를 17-18세기 독일 경
건주의자들의 신앙이나 이에 뒤따르는 영국이나 미국의 대 부흥운동에
나타난 신앙적인 흐름으로 보는데 비해, 반틸(Cornelius Van Til) 같은
조직신한자는 복음주의를 개혁주의 신학과 항상 대조되는 신학인 알미니
안주의(Arminianism)와 동일시하고 있다.
사실 복음주의가 이렇게만 정의된다면 내가 이 신앙을 개혁주의 신앙과
함께 공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세계교회가 현장에서 사
용되는 복음주의는 그 의미가 새롭게 정의되고 있는 것 같다. 특별히 로
잔회의 이후로 사용되고 있는 복음주의란 용어는 교회사의 한 흐름이나
어느 한 교파에 국한되기 않는 넓은 신앙의 조류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정의된 복음주의 안에는 개혁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함게 공생하
며 카리스마 운동까지도 포함된다.
이렇게 본다면 복음주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초로 한 다양한 신학의
조류를 하나되게 하는 새로운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개인적으로 개혁신앙을 가지고 있는 복음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감리교신자든 순복음교회 신자든 복음주의 신앙을 함께 나누면서
그들이 가진 신학과 나의 개혁주의 신학과의 대화를 시도할 수가 있다.
이제 복음주의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여러가지 신학적 전통의 차이는 분
열을 낳는 신학적인 논쟁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숨겨진 비밀을
차지 위해 필요한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교회가 다 개혁신
앙을 가져야 된다고 주장하거나 개혁신앙이 아닌 신앙을 무시하고 싶지
는 않다, 다만 한국교회으 교단들이나 그 교단에 속해있는 교회가 어떤
신학적인 전통을 가졌든지 복음주의로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III. 복음주의의 장래
지금 세계 기독교에서는 교회의 일치를 주장하는 에큐메리칼 운동
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 같다. 이에 비하면 복음주의 운동은
상대적으로약하다. 더구나 아직 복음주의에 속하는 사람들이 연합운동에
익숙치 않으므로 약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1966년에 있었던 베를린대회
나 1974년의 로잔대회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되었던 국제적인 모임들은
이러한 약점을 극복해보려는 복음주의자들의 노력이라 볼 수 있다.
비록 아직은 그 운동이나 기구의 크기 자체는 상대적으로 작을지 모르지
만 교파를 초월하면서 그리스도 아네서 성경말씀으로 하나되자고 하는 운
동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또 다른 종류의 교회일치 운동 혹은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역시 현재의 에큐메니칼 운동과는 분명한 거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지금 세계교회협의회(WCC)에 가입한 교회나 사람들
가운데 복음주의자들이 있기를 하지만 역시 현재의 세계 기독교는 크
게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로 양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계 기독교의 대부분의 교파가 이 두 주류로 나누어지고 있다.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는 물론 심지어는 로마 가톨릭까지도 그렇다. 그래서 때
로는 교파가 주는 친밀도보다는 양 주류가 주는 친밀도가 더 강해서 복
음주의적인 장로교가 에큐메니칼에 속한 장로교보다는 같은 복음주의에
속한 타교파- 감리교, 침례교 심지어는 로마 가톨릭을 포함해서- 와 더
욱 가깝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위해 나의 개인적인 체험을 예로 들어본다.
미국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학교로 알려져 있는 어느 신학교 교수 한
분과 이야기 하는 중에 그가 자신을 개혁주의 신학자로 인정하는 것을
보고 놀란적이 있다 그러면서 장로교 출신으로 개혁주의을 말하는 이
교수의 신학이 똑같이 장로교 출신으로 똑같이 개혁주의를 말하는 나의
신앙과 무언가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그의 신앙이 내가 가진
복음주의 신앙과 분명한 거리가 있기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미국 남부에 있는 침례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면서 세례의 방법이나 교회
정치에있어서 내가 자란 장로교와 분명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신앙의 동
질성을 쉽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 기억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신앙이 복
음주의 신앙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런 예를 보다라도 이제 교회는
교파의 차이보다는복음주의 신앙과의 연계성 여부에 따라 나누어질 수밖
에 없는 것 같다.
이와같이 에큐메니칼 운동과 복음주의 운동으로 양분된 현상은 세계적
인 현상으로 우리 한국교회도 예외가 되지 않으며 어떻게 보면 그 정도
가 좀더 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한국교회협의회(KNCC) 에 가입된
교단들과 이에 가입하지 않은 대다수의 복음주의적인 교단과의 갈등은
때로 믿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믿지 않는 이들로부터는 조소를
받게 될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연합이라는 미명하에 자기확신을 포기하고 하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
각한다. 그러나 복음주의 신앙을 고정된 공식을 가진 교리적인 신앙으로
생각해서 대화의 문을 닫아버려서도 안될 것이다.
복음주의는 에큐메니칼의 도전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한편 이들과 열린 대
화를 나눌수가 있어야 한다. 때로는 대화를 넘어서서 협력해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이루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복음주의는 바로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다른 교회와 세상을 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세가 있
있을 때 복음주의의 신앙이 한국교회을 바로 이끄는 역할까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IV. 맺음말
미국에서 주류가 되는 교회(mainline churches)는 으레 비복음주의적
인 교회들을 말한다. 미국에서의 복음주의자는 이제 막 세력을 얻어가고
군소교단들의 움직임에 불과했다. 1976년에 그간 복음주의 교회가 계속적
으로 성장해온 것을 의식해서 그 해를 "복음주의자의해"라고 불렀던 것은
이러한 미국교회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보겠다.
이에 비해 한국교회는 역사적으로 볼때 복음주의적인 신앙이 우선되었으
며 자유주의 신학의 유입으로 많이 다양화된 현재에도 여전히 복음주의
교단이 숫적으로 볼 때 비복음주의인 교단을 압도하고 있다. 또한 어떤
교단이나 교회는 에큐메니칼의 입장을 견지한다 해도 그 안에 있는 많은
성도들의 신앙은 복음주의적인 신앙임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의 장래는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기독교 지도자들이나 그들이 이
끄는 움직임보다는 오히려 숨어있는 대다수의 복음주의자들에게 달려있
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한국교회에서 복음주의를 자처하는 성도들이나
교회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확인함과 동시
에 맡겨진 사명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특집에서는 먼저 복음주의에 대한 정의를 이와 유사한 개념
과 대비해서 다시 한번 내려보려고 한다. 사용하는 용어들로 부터 우선
분명하게 구별하면서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신복윤).
이어서 그러한 복음주의가 한국교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복음주의 신앙자체는 국경을 초월하
겠지먀는 복음주의가 차지하는 위치는 나라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복음주의 운동을 훑어보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필
요한 일일 것이다. (박건택)
복음주의는 앞서 말했듯이 현재의 에큐메니칼 운동과 대조되어 설명될
수밖에 없다. 이 대조는 특별히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성경관의 문제
와 사회참여에 대한 견해를 통해서 찾아보기가 쉽다. 이런 노력은 현재
한국교회 내의 복음주의 운동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권성수,이형기). 한발 더 나아가면 상대방의 눈에 비친 복음주의자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복음주의자들의 일그러진 모습
이 복음주의의 전모나 실상은 아닐지 모르나 이를 통해 자신들이 미쳐
발견하지 못한 면들을 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정배) 그렇게 될 때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운동에 대해서 좀더 솔직하게 겸손하게 평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홍순우) 앞으로의 복음주의 운동의 전망에 대해서 무언
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김명혁).
2. 복음주의,근본주의,개혁주의 비교
이 글에서는 복음주의, 근본주의,개혁주의 등 몇몇 운동들의 용어, 역사
적 배경, 사상적 특징들을 돌아보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활동상황, 평가,
그리고 한국교회와 관계등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I. 복음주의
1. 복음주의의 발단
근본주의가 20세기 초 미국에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생긴 신
학이라고 한다면, 복음주의(Evangelicalism)는 17세기 이후 독일 루터교회
의 '죽은 전통'에 불만을 품은 경건주의운동에서 파생된 운동이다.
종교개혁 이후 독일교회에는 점점 신앙의 고정화 현상이 나타나 교리적
정통주의가 만연케 되자, 슈페너(P.Spener 1635-1705)와 후랑케(Francke,
1663-1727)를 중심으로 종교적 정열과 내적 생명을 되살리려는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나 독일교회에 커다란 각성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기독
교는 생활이요 체험이다"라는 표어를 가지고 성경의 생활화를 강조하였다.
이들의 경건주의 운동이 바로 독일과 영국,그리고 기타 유럽의 복음주의
의 모체가 된 것이다 (복음주의, 신학사전, 개혁주의 신행협회PP.204-205)
복음적이란 용어는 복음에 기초하려는 모든 개신교 교회에 붙여졌다.
'복음주의'란 말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도 적용되고, 영국에서는 웨
슬리파 감리교회에도 사용되었다.
이렇게 사용된 복음주의는 기독교회 기본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한편,
성경의 권위와 완전영감설을 강조하고, 의식적 예배보다는 설교의 우위성
을 주장하며, 로마 가톨릭에 대해서는 짙은 회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2. 복음주의의 역사
위에서 말한대로 복음주의는 17세기 이후에 생긴 운동이지만, 그러나
초대교회의 신경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초대교회는 그것을 성경
의 교훈과 관련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고 변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복음주의 신학은 이 시대의 사상과 손을 잡고 다음 내용들을 확인하였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참된 계시이며, 그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음성으로 말씀하신다는 것,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요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라는 것,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구속적으로
역사속에 들어오셨다는 것,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시라는 것, 죄의 권세
와 심판은 모든 인류에게 다같이 실재한다는 것, 하나님은 자비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먼저 찾
아오셨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는 것, 역사의 완
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일반적 부활, 최후의 심판, 천국과 지옥으
로 이루어 진다는 것 등이다.
복음주의 신학은 또한 초기 중세교회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캔터베리
의 안셀름(Anselm)이 주장한 속죄론에서 만족설을 비중있게 취하였으며,
끌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가 주장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하여도
강조하였다.
특히 복음주의 신학은 종교개혁의 특징들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다.
복음주의는 철저하게 성경 중심성을 강조하고, 특별히 설교와 관련하여
성경의 능력은 성경으로 말미암아 온다는 것, 교리와 생활의 모든 문제
에 대하여 성경은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성령
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그것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널리 보급해야 할 필
요성이 있다는 것 등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복음주의는 또한 이신칭의교리를 강조하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은 인
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자기계시를 신뢰함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복음주의는 역시 교회는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를 직접적으로, 개인적으로, 또는 항상 가까이 나아가는 모
든 신자들로 구성된다는 것을 기쁘게 고백하였다.
종교개혁은 제도화된 여러 구조들과 민족주의적 충동의 결과로 나타났으
며, 이 속에서 복음주의 신학의 다양성이 발생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성
례의 본질, 개인의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의 작정의 위치, 천년 왕국의 시
기, 교회의 정치형태, 성경영감의 정확한 성격, 구원의 확신에 도달하는
방법, 문화와 국가에 대한 관계 등에 대하여 이해의 차이가 있었다. 오늘
의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이런 문제들 가운데 대부분은 약간 이차적인 중요
성을 가진 문제로 생각될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복음주의 신학은 또한 대략 18세기 중엽에 일어난 복음주의적 각성운동
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이때 복음주의는 위대하고 표준적인 전
통신학을 재차 확인하고, 크리스챤 삶의 신학에 특별한 역점을 두었다.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나 회심의 성질에 대한 논의는,비록 회심의 시간에
대한 차이는 있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식과 이에 따르는 성질의 변화 문제와 함께 계속 전면에 나타났다.
성화의 수단과 그 가증성도 역시 강조되었는데, 성화의 시간과 성취에
대하여 약간의 차이가 다시 한번 있었다. 공동의 영적 삶의 신학이 또한
강조되었는데, 교회의 갱신과 세계의 복음화, 그리고 사회의 개선을 강조
했다.
1980년대에 와서 복음주의 신학은 크리스챤 삶의 신학에서 벗어나 진지
한 성경해석 작업과 이를 반영하는 사상을 통하여 다시 한번 중세 초기
와 종교개혁 시대처럼 정통신학의 유산을 활기차게 선택하려는 증거를
보였다. 그러나 불해하게도 바로 그 당시에 복음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
학과 충돌하고 있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옛 계몽주의 운동의 합리주의와 신지식(신지식)에 이르
는 다리로서 인간의 자각을 강조하는 후기 칸트 철학의 결합이었으며, 이
신학은 낭만주의 시대에 호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배경 가운데서 복
음주의 신학은 그 새로운 견해들과 타협함으로 약화되거나 후퇴하는 경향
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 침체를 변화하려는 노력도 일어나고 있었다.
이들은 정통신학의 정수를 옹호하는데 눈부신 활약을 하면서도, 자주 그
당시 사상의 많은 부분을 버리고, 크리스챤 삶의 신학에 대한 독특한 복음
주의적인 강조점을 약화시켰다. 따라서 모든 신학의 최종적인 형성을 종교
개혁 시대의 신앙 고백에 끼워놓은 인상을 주었다.
이때 복음주의 신학의 빛을 희미하게나마 비추어 주던 학파가 있는데 바
로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ayper) 이후에 나타난 화란학파(the Dutch
School) 이다. 이들은 정통신학의 전통을 확인하고, 모든 부분에서 크리
스챤 삶의 신학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 깨닫고 있었으며, 동시에 많은 문
제들에 접근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에 자유주의 신학의 압력은 계속증대되고, 복음주의는 약화
되었기 때문에, 더욱 더 방어적인 복음주의 신학이 근본주의 형태로 나타
났다. 그 가장 중요한 보루는, 교회와 사회가 파멸을 향하여 돌진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천년왕국설이었다. 그리스도교는'현재'의 문제에 대해
서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미래'에 두고 있었다.
20세기 중반에는 복음주의 신학 안에 어떤 활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
학자들이 진지하고 학문적인 성경해석 방법의 접그네 공헌하였도, 미국 학
자들은 조직신학, 변증학, 윤리학 같은 조직신학의 보조학문 영역에서 열
심히 연구하였다. 화란학파와 메노나이트파(Mennonites)는 중요한 여러 종
류의 출발점부터 사회적 행동의 신학들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오순절파의 카리스마 운동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교회를 통해 강하게 그리고 초자연적으로 나타나신다는 성령의 신
학을 선언하였다.
3. 영적신학
마지막으로, 복음주의신학은 영적신학(Spiritual Theology) 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위대한 신학 전통의 일부분의 삶의 신학의 방법을 소유하
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아있는'정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은 신학의 중심일뿐만 아니라, 명상하고 기도하며 연구해야 할 대상이다.
신학연구의 목표는 신학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학문적인 만족에 대한 유록은 극복되어야 한다. 즉 신학은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과 결산의 날이 가깝다는 자각에서 행해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복음주의
신학의 작업 전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다.
4. 한국교회와 복음주의
한국교회는일반적으로 '복음주의적'이다. 복음주의는 요약해서 말한
다면, 경건주의에 개혁주의가 가미된 운동이라고 하겠다. 복음주의자는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대원칙에 따라 살아
가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복음주의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복음주의는 현재 여러 교파에 속해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활발하
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회장:전호진,총무:박형용) 가 있
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김준곤,총무:김명혁)가 있고, 복음주의사
상. 신앙, 사업 확장에 힘쓰고 있다. 비록 사상과 교파의 배경은 다르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복음의 정열을 가지고, 경건하게 주님
을 섬기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복음주의자라고 한다면, 한국복음주의 운
동은 소망스러운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경계할 것은 복음
주의가 경건주의에 흐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최근 미국
의 복음주의 신학에 비해 유럽의 복음주의 신학이 약세에 있는 것은 경건
주의 운동의 영향 때문이다. 경건주의가 내세운 생활위주의 기독교는 얼마
안가서 교리적으로 이질화의 염려가 있다.
II. 근본주의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독일과 영국에서 일어난 자유주의는
19세기말 미국에서 강한 세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성경의 객관적계
시와 정확무오한 권위에 정면 도전하고, 그리스도의 처녀탄생, 그리스
도의 신성 대속교리, 육체부활 등에 대하여 회의를 느꼈다. 모세오경
의 저작권, 구약의 연대적 순서, 복음서 기록의 정확성, 바울신서의 저
작권 등을 의심하게 시작했다. 신학적인 공격만이 아니라, 과학적인
공격도 아울러 퍼부었다. 다읜 진화론이 인류와 세계에 대한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견해를 불신하는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부패하고 타락
한 존재가 아니라, 완성을 향하여 진보하여 가는 것으로 해석하기 시작
했다.
이와같은 비평에 대하여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 즉 초자연적인 복음의
변화와 전파를 위하여 일어난 것이 곧 근분주의(Fundamentalism)운동이
었다. 그러나 신학적인 배경은 다양하여, 이 운동에는 칼빈주의자, 알
미니안파, 침례교도, 장로교도, 그리고 세대주의들이 한데 뭉쳐 있었는
데 그들은 20세기 초까지 공동의 적인 자유주의를 대항헤서 싸웠다.
1. '근본주의'라는 말
'근본주의'라는 말은 1920년 침례교기관지[The Watchman Examiner]
의 편집인 커티리 로우즈(Curtis Lee Laws 1868-1946)가 북침례교 총회
안의 반현대주의자들을 가리켜 사용한데서 비롯된다. 이 용어는 현대주
의 신학과 현대문화의 세속화 양상에 대항하여 싸우는 복음주의 개신교
도들을 총체적으로 넓은 의미에서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예를 들
자면, 이 용어는 첫째로 복음주의적 개신교도들에게요, 둘째는 반현대
주의자들에게다. 그들은 전통적, 초자연적, 성경적인 기독교의 원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앞에서도 말한 바 있는 반현대
주의자나 혹은 세속화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이 용
어는 넓은 의미에서도 사용되고, 좁은 의미에서도 사용되기 때문에 그
묘사는 다소 복잡하다.
때때로 이 말은 일반적으로 어떤 종교상의 반현대주의자를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혹은 근본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남미에서 흔히 볼 수 있
는대로, 복음적 부흥운동에서 도를 지나치거나 반지성주의적인 사람들을
가리켜 막연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이 말을 그렇게 사용하게 될 때, 근
본주의와 부흥운동을 혼동하게 되고, 따라서 부흥운동가들의 뿌리와 밀
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몇몇 운동들과 혼동을 초래하게 된다.
예르들면, 19세기 후반기에 일어난 '성결운동'은 완전무죄생활로 인도
하시는 성경의 역사에 대한 체험을 강조하였다. 20세기 초에 일어난 '
오순절 운동'은 영적능력을 극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들은
반현대주의자인 근본주의자들의 호전성을 채택하였기 때문에 근본주의적
이 되었다. 그러나 이운동들은 교회와 관계에서는 독립성을 유지하는 경
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 모든 운동들의 공동 기원을 19세기 미국 부흥운동의 다양한
유산에 두고 있는 것이 확실하며, 그래서 그들은 보통 근본주의자로 불
려졌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부흥운동가들이었다.
영국에서 근본주의라는 말은 더 넓은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근본주의는 성경의 고등한 견해와 근본적인 주장들을 가지는 복음주의적
보수주의를 가리켜 사용되었다. 예를들면, 제임스 팩커(J.I.Packer)는 이
런 의미에서 그의 저서 [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London,
1958)에서 근본주의를 변호했으며, 제임스 바르(James Barr)는 [Fundamen
talism](London)라는 저서에서 근본주의운동을 비판하면서 보수주의적 복
음주의의 대부분의 분파들을 하나로 묶어 말하였다.
한편 미국에서는 근본주의가 호전적인 반현대주의적 백인 복음주의자들을
가리켜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미국의 혹은 복음주의자들은 흔히 스타
일에서느니 부흥사이고, 교리면에서는 근본주의이며, 윤리면에 있어서는
반현대주의에 속한다.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근본주의자'라고 부르지 않
는다.
2. 근본주의의 역사와 특징
근본주의 운동의 특징들은 그 역사에서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다. 에네
스트 샌딘(Ernest R. Samdeen) 은 그의 중요한 연구서[The Roots of Funda
mentalism:British and American Millenarianism 1800-1930] (Chicago,
1970)서 근본주의의 주요한 근원은 다비(J.N.Darby)와 그밖의 사람들의 저
작에서 볼 수 있는 천년기전 재림예언운동이라고 지적하였다. 비록 영국
에서 이 운동이 전통적인 교회를 떠난 플리머스 형제단(The Plymouth Br
ethren)을 만들어내기는 하였으나, 19세기 후반 미국의 장로교와 침례교
같은 중요한 교파 안에서도 근본주의의 표현들이 나타났다.
세대주의(Dispinsationalism)가 이 운동의 특징이었으며, 스코필드(C.i
Scofield)의 관주성경(Reference Bible)은 거의 정경처럼 인정되었다.
또한 미국의 많은 세대주의자들은 영국의 케직사경회의 온건한 성결운동
의 교리를 채택하였다. 세대주의는 이 시대에 교회의 파멸을 예고하면서
20세기 초의 공격적인 현대주의 신학의 발생에 대하여 투쟁할 것을 고무
하였다.
특히 현대주의가 강했던 미국에는 현대주의에 대항하여 신앙의 근본원리
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세대주의자들이 많이 있었다. 북장로교에서는, 보수
주의자 프린스톤 신학교의 지성적인 지도자들 챨스 핫지(Charles Hodge,)
A.A. 핫지 (A.A.Hodge),워필드(B.B.Warfield), 메이첸(J.G.Machen)에 의
해 강하게 유지되었다.
보수주의적 장로교인들은 우선 근본교리를 옹호하는 전략을 전개하였다.
특히 1909년부터 1915년까지 12권으로 된 근본주의 총서[근본원리들(The
Fundamentals)] 이 출판되어 전통적인 교리들이 옹호되었다. 이 총서는
라이만 스튜어드(Lyman Stward)와 밀턴 스튜어드(Milton Steward) 형제
가 희사한 25만불과 무디기념교회 딕슨(A.C.Dixon) 목사의 편집으로 이
루어졌고, 집필자들은 당시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미국과 영국의 보수주의
신학자들이었으며, 전국적으로 300만권 이상이 무료로 배부되었다.
[(George M. Marseden,Fundamentalism and American Culture, Oxford
University Press,1980,P.118).
이 총서는 성경의 축자영감과 무오성을 강조하는 20편의 논문들을 중심
으로,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을 변호하는 총 90편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
다. 많은 근본주의 단체들이 비록 한가지도 표준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근본주의적'교리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가장 공통된 요점은 성경의 무
오성. 그리스도의 신성, 동정녀 탄생, 대리속죄.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이었다.
1920년대에. 현대주의자들을 대항하여 열심히 싸운 근본주의자들은 주요
한 북장로교와 침례교 교단들 안에서 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은 규모의 근본주의 논쟁들이 다른 교파들 안에서도 발생하였으며, 보
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이와 비슷한 분열들이 미국과 캐나다
에 있는 교회 안에서 발생하기도 하였다. 한편 근본주의자들은 제1차 세
계대전 후의 도덕적 부패를 공격합과 동시에, 교회와 문화의 부패도 공격
하였다. 윌리엄 브리이언(William J.Bryan,1860-1925) 이 주도한 바 있는
미국공립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금지운동은 그러한 관심사의 주요한 표현
이었다.
그런데 1925년 테네시주 데이튼(Dayton)시의 고등학교 생물교사인 존 스
코우프스(John Scopes)는 이 법을 어기고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100
불 벌금형의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근본주의자들은, 진화론 교육의 보
급은 미국인의 생활에서 성경의 권위을 손상시키며, 도덕적 상대주의를 조
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어싸.
그리고 공산주의, 로마교회, 술, 담배, 춤 도박과 극장구경도 근본주의자
들이 공격하는 또 다른 중요한 표적들이었다. 이러한 투쟁속에서 근본주
의자들이 공격하는 또다른 중요한 표적들이었다. 이러한 투쟁속에서 근본
주의는 미국의 남북부전역과 그밖의 영어권 나라들, 그리고 그들의 선교
지역에서, 여러가지 전통을 가진 반현대주의 크리스챤들의 연합으로 성장
하였다. 그 연합의 중심에 미국의 세대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근본
주의는 다른 전통들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았다.
1930년대에 와서 근본주의는 어떤 특수한 교회적인 표현을 취하기 시작
하였다. 가장 효과적인 근본주의자들은 점차로 현대주의자들이 들어있는
단체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교회나 교파로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
분이 침례교도와 세대주의자들이었다. 분리주의가 참된 신앙의 시금석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20년대의 호전적 반현대주의자들의 광범한 연합으니 1940년
대에 와서는 분열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에서 한 주요한 집단으니 호전성
을 완화하고, 중요한 교파들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집
단은 해롤드 J. 오켄가(Harold John Ockenga), 칼F.H.헨리(Carl F.H.
Henry)에드원드J.카넬(Edward J. Carnell)과 같은 대변자들이 주로 이끌
어왔으며, 그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을 '신복음주의자(Neo-Evangelicals)'
라고 불렀다. 그들이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의 협력을 얻은 것은 복
음주의적 전 근본주의자들의 발전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다.
한편 존 R.라이스(John.R.Rice, 1895-1980), 밥 존스(Bob Jones,1883-
1968), 그리고 칼 맥킨타이어(Carl Mcintire 1906-)와 같은 호전적인
분리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이 참된 '근본주의자'라고 주장하였다. 초기의
근본주의 운동과 달라진 이 분리주의적 근본주의 운동을 미국 웨스트민스
터신학교 간하배(Harvie Conn)교수는 '신근본주의'라고 불렀다.(Contemp
orary World Theology,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1977
.P.120)
1960년대 이후의 미국의 '근본주의'는 이소수의 분리주의적 근본주의자들
이 아니라, 넓은 복음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넓은 복음주의에는 전 근
본주의자들과 여러가지 전통의 성경을 믿는 크리스챤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2980년대에 침례교의 근본주의자인데 제리 포웰(Jerry Fawell)의
Moral Majority의 시작과 함계, 미국인의 공적생활에서 전통주의적 크리스
챤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근본주의자들의 정치적 관심은 1920년대
에서 처럼 다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근본주의적 예언 해석에 중요한 이
스라엘을 위하여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다.
3. 근본주의와 한국교회
한국장로교회는 처음부터 청교도적 개혁주의를 선교자들에게서 전수
받았다. 그러나 역사가 흐는 동안에 이 청교도적 개혁주의 전통속에는
경건주의, 신비주의, 세대주의와 함께 근본주의 등, 성경사상에 미흡한
요소들이 들어와 사상적 혼한을 가져왔다. 특히 근본주의적 요소를 한국
장로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일반 은총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다.그리하여 지금까지 개혁주의적 한국장로교회는 세상학문에 대한 노력
을 강조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반지식주의에 흐르는 경향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계시종교와 과학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칼빈은 계시종교를 알게될 때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바로 알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영원적인 것만이 아니라, 시간적인 것도 하나님께서 지으
신 것으로 믿고 아룰러 존중하며 강조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또한 잘못된 경건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왔다는 것도 근
본주의의 영향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크리스챤이 하나님 앞에서 경
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음 마땅하나, 그것이 '경건생활'이 못되고, 경건
주의에 빠지게 될 때, 형식주의가 되고 율법주의가 된다. 경건주의는 어
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경에 없는 생활표준을 세우고. 그 표준이
마치 성경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는 논쟁을 일으켜 덕을 세우지
못하게 된다.
4.근본주의의 대한 평가
근본주의가 초자연주의를 강조하고, 성경의 권위, 처녀탄생,그리스도의
신성, 대속교리, 부활, 재림 등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으리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나, 거기서 몇가지 약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유감스
러운 일이다.
첫째로, 근본주의는 하나님의 주권교리를 강조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주
권은 다른 모든 교리를 싸고 도는 중심 태양이다. 하나님은 우주의 절대
적인 최고의 통치자이시며, 작정과 창조와 섭리와 구속에서 주권적으로 일
하시는 것이다.
둘째로 근본주의의 약점은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깊이 보지 못하는 점
이다. 구약시대의 신자들 가운데는 율법으로 구원을 얻고, 신약시대의 신
자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은
다같이 은혜언약에 속하는 구원방법의 계시이다. 구약이 은혜의 약속에 대
해 계약이라고 한다면, 신약은 그 성취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양자는
연속성과 통일성을 갖는 것이다.
셋째로, 근본주의의 약점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일반은총(자연은총)에 대
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세속 학문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여 마침내는 반지식주의로 흘러 가고 말았다.
넷째로, 근본주의는 개인의 종교경험을 강조하는 경건주의적 경향을 보이
면서 기독교의 사회적, 문화적 명령을 무시한다. 종교는 개인의 기도생활
과 성경공부, 그리고 교회출석에 국한되고, 경제학이나 사회학, 그리고 자
연과학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하여는 무관한 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문화
과학은 성경신학에 의하여 지도받지 못하고 오히려 한정되고 제약을 받는
다.
다섯째로, 초기 근본주의와 후기(신)근본주의가 다같이 복음을 전파하고
옹호하려는 열심은 대단하나, 옹호하려는 면이 전파하려는 면보다 더 우세
하다. 적극적 자세에서 부정적 자세로, 당당한 싸움에서 사사로운 다툼으
로 은혜로움과 예절에서 비난의 언어로, 그리고 운동에서 인물로 그 호전
성을 나타낸다 (간하배,현대신학 해설,P,165).
III.개혁주의
'개혁'이라는 말은 본래 16세기 로마 카톨릭교회의 오류와 폐단에
대항하여 일어난 교회들의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이다.그러
므로 개혁이라는 말은 더 넓은 의미에서 종교개혁의 모든 교회에 적용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교회생활과 개인생활에서 한결같
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 것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은
매우 제한된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루터의 사상에서 그 자체를 구별
짓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개혁주의라는 용어는 칼빈주의라는 말로 불
리워지기도 한다.
1. 개혁주의의 사상적 특징
개헉주의는 칼빈으로부터 전해진 사상체계이다. 창시한 것은 아니
라 하더라도 이 사상 체계의 중요한 해설가이다. 칼빈의 신학사상은 개
혁운동에 이바지한 다른 위대한 지도자들의 사상과 함께 어거스틴 사상
의 부흥이요,어거스틴의 사상은 그보다 몇세기 전의 바울사상의 부흥이
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사상들을 조직적으로 설명하고, 특수하게 적용하여 현대를 위하여
제시한 사람이 바로 칼빈이다. 이때부터 이 사상체계를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라 부른다(H.Henry Meeter,The basic Ideas of Calvinism,
Grand Rapids:Vaker Book House, 1975,P.29).
개혁주의는 신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사상체계
이다. 여기에는 신학과 함께 정치, 사회,과학, 예술 등에 대한 사상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사상체계는 인생관, 우주관, 세게관을 제공
한다.(상게서 P.30). 개혁주의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상적 특징을 가
진다.
(1) 성경관
개혁주의에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성경관이다. 미국 칼빈신학교의
클로스터 교수(Fred H.Klooster)는 그의 논문에서 개혁주의의 독특성을
성경관(sola and tota scriptura)에서 찾았다(The Uniqueness of Refo
rmed Theology:A Preliminary Attempt at Descriptionn,Grand Rapids:
The Reformed Ecumenical Synod,1979).
종교개혁은 성경의 권위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새롭게 강조하였다. 종
교개혁은 부패한 교권제도의 횡포를 버리고, 그 자체의 기초를 하나님
의 말씀과 동등하게 취급되었던 교회 전통의 권위를 거절하였다. 그리고
새로 발견한 진리에서 활기를 찾아,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라는
것, 그 말씀이 죄인을 부르시는 수단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권위로
그들을 다스리시며 순종케 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성경의 영감과 무오에 관한 문제로 광범위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말씀을 주셨는
지는 정확하게 상세하게 알지 못한다. 사실 하나님은 성경의 어떤 부
분을 우리에게 주시되, 다른 부분과는 다르게 주셨다. 예를 들면, 십
계명은 하나님 자신으리 손으로 쓰시는 방법으로 주셨는가 하면, 복음
서들은 목격자들을 사용하여 영감으로 회상케하여 쓰도록 하였다. 누가
는 역사를 조사하는 특별한 방법으로 누가복음을 기록하였다. 성경 저
자의 인간성과 개성이 영감의 과정에서 성령에 의하여 충분히 인정되고
고려되었다는 것도 완전히 명백하다.
그러나 이사야와 아모스는 전혀 다른 문체와 다른 배경에서 각각 다른
책들을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과 요한은 비슷하게 그들 자신의 마
음의 특성들을 보여 주었으며,진리를 각각 다른 견지에서 표현하였다.
그들은 놀랍도록 서로 다른 문체로 쓰고, 예리하고 고상하게 나타내면서
도 다같이 그들 자신의 독특한 지성과 경험을 가지고 기록하였던 것이다.
개혁파 전통에서는 영감의 방법이나, 성경의 여러가지 특성의 의미에
관한 기술적인 정의보다는 오히려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더 많이 강조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성경에 접근하면, 성경을 설명하기 위
해 사용한 형용사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성경은 권위가 있으되, 궁극적이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책이다. 성경
은 잘못이 있을 수도 없고, 잘못을 범할 수도 없으며, 우리를 나쁜 길로
인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을 의지하고, 전적으로 신
뢰하며,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죽기 위하여 아라야 할 모든 것들을 바로
이 성경에서 찾는다(Inst. I.7,8,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 인간의 구원,신앙,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이
모든 계획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필요한 중요성
에 따라 그것들을 성경에서 추론할 수 있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나
인간의 전통이나를 불문하고, 성경에는 어떤 것이라도 다른 무엇을
첨가해서는 안된다"(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I/6). 그
러므로 성경이 말할 때 우리는 이에 순종하고 성경이 진리를 증언할
때,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그 진리에 굴복한다.
그러나 어떤 근거에서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성경의 신학자라 불리우는 칼빈은 이에 대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움을 우리에게 주었다. 칼빈의 열차에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서가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특수한 책이라고 믿으며, 여기서 감동을 받는다. 여
러 세기를 걸쳐서 기록되었으나, 그 비상한 통일성, 위엄있는 문체,
영광스러운 기록과 그 성취,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속에서 경건한 감
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우리를 확신시키고 설득하며 순종하게 하는 것은 그 중의 하
나도 아니며, 그렇다고해서 그 전체도 아니다. 오히려 성경 권위의 확
고한 근거는 칼빈이 지칠 줄 모르게 주장했던 성령의 증거인 것이다.
우리가 셩경을 믿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아는 것은 성령께서 증거해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때, 즉 성경의 권위와 성령의 증거를
분리시킬 때, 우리는 즉시 영적으로 싸늘해지는 위험에 처하게 되고,마
침내는 비생간적이며 무의미하게 되는 빈약한 논쟁의 희생물이 되고 말
것이다 (Inst 9.7.1.7.5,I.8.13참조) 칼빈은 또한 "하나님이 교리의 저
자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하기 전에는 교리에 대한 신앙이 수립되
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Inst,1.7.4)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개혁주의는 66권의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임을 믿는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경은 정확무오
한 객관적 권위르리 지닌 하나님의 말씀일 수밖에 없고, 그러므로 신앙
과 행위의 규범이 된다.(딤후3:16,17). 개혁주의는 로마 가톨릭처럼 성
경의 권위르리 교회 밑에 두고, 교회가 없이는 성경이 존재할 수 없으나
성경으니 없어도 교회는 존재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성경
이 처음에는 불성문계시로 있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논리적으로나 성경
이 교회보다 앞선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 문제이다(엡2:20).
개헉주의는 성경을 종교적 신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에
따라 교회의 씨앗(종자)으로 삼기위해 주신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
는다. 개혁주의는 또한 신정통주의자들처럼, 계시의 객관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에 따르면 계시는 성경과 동일시될 수 없고, 성경은 계시의
증거요 표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자체가 아니며, 성경의 진술들은 계시 자체가 아니
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계시를 객관화하는 것이요
형체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계시는 하나님과 사람이 상봉하지 않는 한 계
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칼바르트의 성경관 비판에 대하여
는 Colin Brown,Karl Barth and the Christian Message, PP.54-62:Klaas
Runia, Karl Barth's Doctrine of Holy Scripture를 참조) 개혁주의는 신
복음주의자들처럼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분리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감은
믿으면서도 무오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영감은 믿으면서도 무오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무오하다고 해야할 것
이다.
이와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신적 권위르리 가
지며, 그 독자적 신빙성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하여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교회나 신부에 의존할 필
요없이 충분히 섭취할 수 잇다. 로마 가톨릭에 따르면, 성경은 흐려지고
손상되어서 신앙과 행위의 문제까지도 교회가 해석해 줄 필요가 있다고 주
장하나, 우리는 성경의 명백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그들의 견해에 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의 충족성, 혹은 완전성을 주장한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으니 개인과 교호의 영적. 도덕적 욕구를 위해서 충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전을 성경과 동등하게, 혹으니 그 이상으로 우월한 권위를
갖게하는 로마 교회의 입장을 우리는 전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2) 하나님의 주권사상
개혁주의의 특징은 하나님의 주권사상이다. 개혁주의는 항상 하나님
사상을 그 중심으로 하고있다. 감리교가 죄인의 구원, 침례교가 중생의 신
비, 루터교가 이신득구, 모라비안이 그리스도의 상처,희랍정교가 성령의
신비, 로마 교회가 교회의 보편성을 각각 강조한다고 하면,개혁주의는 하
나님 사상을 강조한다.
개혁주의는 인간의 회심이나 칭의와 같은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
하지 않고, 하나님이 차지하셔야 할 당연한 권리를 차지하시도록 하는 사
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Pressly, Mason W., Calvinsm and Science,Article
Ev.Repertoire,1891,P.662.quoted from H.Hemey Mater,The Basic Ideas of
Calvinism,1975,P.32,33) 개혁주의자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
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11:36) 이라는 말씀을 생활원리로 하고 실현하려 애쓴다.
개혁주의의 중심사상이 바로 하나님 사상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많은 연구
가들이 서로 일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으로하는 사상체
계를 이루고자 할 때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지배, 즉 "하나님의 절
대적 주권"이라는 술어를 필연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
대적 주권이라는 말이 하나님과 우주와의 관계를 가장 잘 지적해 주는 술
어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은 , 자연계와 도덕적 세계를 지배하시는 하나
님의 절대적 대권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하나님은 자연계에서와 마찬가지
로 진리, 도덕, 과학, 사랑 등의 여러 면에서도 법칙과 질서에 따라 다스
리신다고 개혁주의자는 믿고 있다.
위필드(B.B.Warfield)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칼빈주의자는 모든
현상 배후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며, 이 현상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본다. 그리고 기도하는 태도로 전생애를 살아가며, 구원문제 있어서
는 자아의존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이다."
(Calvin as a Thelolgian and Calvinism Today,PP.23.24).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개혁주의 첫째가는 대교리로써 다른 모든 교리들의
중심 태양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우주의 최고 절대적인 통치자라고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작정,창조,심리, 구속에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신다.
(3) 불가항력적 은혜
개혁주의의 셋째 특징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이다. 개혁주의의
구원이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임을 믿는다. 즉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
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되며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죄인 안에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실 때 아무도 그 역사에 저
항할 수 없다는 것이 개혁주의자들의 신념이다.
하나님이 주권사상을 가지다보면, 구원의 문제도 자연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서만 해결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교리는 칼빈주
의 5대 강령이다. 즉 인간의 전적부패,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불가항
력적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등이다. 이 교리들은 구원은 사람의 공로
나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임을 강조한다.
개혁주의는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이며 (창6:5,렘179,시51:5,롬
3:10),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영적 선을 행할 수 없
다고 주장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존재이므로, 자신
의 힘으로는 예수를 믿을 능력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이어서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창세 전에 선택하셨다.(엡1:4). 이 선택은 선행을 조건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한 은혜의 선택이다.
그리고 성자는 성부의 택함을 받은 조인들을 위하여 인간 되시고, 그들
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속을 완성하신다. 이것은 피택자에
국한된 구속이다(마1:21,요10:14,행20:28). 제한속죄가 아니면 하나님의
선택은 무의미하다.
칼빈은 이 선택교리에 대하여 다른 칼빈주의자들보다 더 신중하였다. 그
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의 높였고, 구원과 관련하여서도 높였지
만, 그가 기독교 강요에서 구원의 문제를 다루기까지는 선택교리를 충분
히 논하지 않았다(Inst.III.21-24).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이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죄인들을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는
피택자에게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을 적용시키는 성령의 중생시키시는
역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구원의 국면을 우리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말로 표현한다. 어거스틴은 이 말을 처음으로 사
용하였고 또한 즐겨 사용하였다.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뜻은, 성령께
서 죄인을 구원하시는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삼위일체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은 죄인을 구원하
시는데 다같이 참여하신다. 성부 하나님만은 만세 전에 구원할 자를 미
리 선택하셔서, 그의 백성을 성자 하나님에게 주시고, 성자 하나님은 때
가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의 구속을 완성하신다. 그리고 성령께
서는, 위에서 말한대로, 선택된 죄인들에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적용하
여 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한 죄인을 구원하시는데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은혜인가!
(4) 하나님나라와 세상에 대한 견해
개혁주의의 넷째 특징은 하나님나라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하여 적
극적이며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하나님나라와 세
상과의 관계에 대한 견해는 늘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개혁파 신학자들이
라고 해서 모두가 다 똑같은 '문화적 명령'에 대한 인식을 가진 것은 아
니었다.
그럼에도 개혁파의 신학적 전통은 최선을 다하여 세계의 형태와 문화에
대하여 큰 관심을 표시해 왔다. 물론 세상과 일치한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세상을 변혁시킨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였다.
우리는 이 사실이 칼빈에게서 아주 강하게 나타났음을 보게 된다. 제네
바에 있어서 칼빈의 관심은 복음선포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넓은 것이었다.(칼빈의 이 관심에 대하여는 W.Fred Graham, The Construc
tive Revolutonary:John Calvin and His Socio-Economic Inpact,Richmond
:John Knox Press,1971)를 읽을 것).확실히 복음의 선포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와 국가의 생활 전반에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개혁주의는 사회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문화적 명령'에 대한 높은
인식을 갖고 있다. 문화적 명령에 대하여 논할 때, 기본적으로 지적되는
성경귀절은 창세기 1:28절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
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귀절은 생활의 모든 방면과 경험의 모든 국면을 하나님의 주권에 종
속시키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그것을 요구할 책임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살고있는 상황에 대하여도 우리는 관심을 가진다. 배고픈
자가 배부름을 얻고, 목마른 자가 시원함을 얻으며, 핍박받는 자가 보호
를 받고, 궁핍한 자가 만족함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개혁주의자는 다음 말씀과 같이 매우 강한 신앙을 고백한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를 자신 밖의 어떤 세력에도 내어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개혁주의자는 믿는다. 이것이 바로 일반사회에서 사회악과 하나님의 율법
에 대한 위범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 없다는 이유가 된다.
우리는 임신중절의 그 무서운 악,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도덕적 부패,권
력에 짓밟힌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 약하고 무력한 사람들에 대한 핍박
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이다. 분명히 선포와 개인의 중생에서 분리되어서
는 안된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든가, 복음을 증거하지 않거나, 영향력
을 행사하지 않거나, 비전을 가지지 않거나, 또는 부흥과 개혁이 늦어지
는데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교훈적 의지를 수행하도록 부름받지 않은
자처럼 생각한다든가 하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만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속해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마치 하
나님에 대해 자신의 의무를 혼자 수행할 수 있는 것처럼 크리스챤이 의무
를 혼자 수행할 수 있는 것처럼 크리스챤이 자기 혼자만 살아가는 개인
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의 삶에서 타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그 특성이 악하고, 또한 세상에 악한 자안에 처해 있으나(요일5:
19), 우리는 세상을 대항하여 싸우는데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개혁주의 신자들은 폭군에게 도전했고 또한 그들을 넘어뜨렸다.
낫소의 윌리암,오렌지공,존 낙스, 존 파임,올리버 크롬웰,리쳐드 카메룬,
스코틀랜드의 언약론자들, 그리고 존 위더스푼(William of Nassau, the
Prince of Orange, John Knox, John Pym, Oliver Cromwell, Richard
Cameron, the Scottish Covenantes and John Witherspoon) 등 이 모든 사
람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유산이며, 이 세상에서 어떻게 크리스챤으로 살아가며,
어떻게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우게 된 것
이다. 우리는 어두움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폭군의 광포도 우리에게
공포를 주지 못한다. 우리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니 어째서 무
서워하겠는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이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
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계11:15)하게 될 그날으리 향
하여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다.
2. 한국교회와 개혁주의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은 정확히 말해서 유럽의 칼빈주의(개혁주의)와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 사상이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구현된 신학이다.
이 신학은 칼빈주의적 영미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전래되어 한
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표준을 교의와
규례의 표준으로 채용함으로써 청교도적 개혁주의 신학의 교회가 된 것
이다. (박형룡,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 신학지남,제43권 3집,1976
P.11 참조).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를 출발점으로 하고, 칼빈주의 5대교리,문
화적 명령, 그리스도인의 삶 등으로 전재된 개혁주의, 여기에 독특한 신
학적 특징들이 가미되어 이루어진 청교도주의 등이 한국장로교 신학의 전
통이 된 것이다.
1885년 4월 5일 미국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G.Underwood) 목사가
한국에 온 이래 1938년까지의 한국교회는 매우 강한 개혁주의적 입장을 견
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자유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
였고, 1938년 9월에는 신사참배 결의라는 일대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1945
년 해방을 맞으면서 한국장로교회는 대열을 재정비하고 개혁주의 수호와
발전을 위해 박차를 가하였으나, 6.25동란, WCC 운동, 교단의 분열 등 원
하지 않은 일들이 계속 발생하여 개혁주의 신학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
래하였다.
"한국에서 칼빈연구 100년"(이상규,개혁주의 신행협회,1985)에서 볼 수
있는 대로, 1924년 칼빈이 저서 번역, 칼빈에 관한 저술, 논문 등을 모두
합쳐 240편밖에 나오지 않은 사실을 미루어 보더라도, 스스로의 노력도
부족해거니와 외적 여건에도 상당한 지배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후 칼빈 주석 전질과 기독교 강요가 번역되고 칼빈에 관한 저
서, 논문들이 상당한 양으로 출판, 또는 각 신학지에 게재된 것을 보면
아직도 한국교회가 개혁주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II. 맺는말
복음주의, 근본주의, 개혁주의 비교
우리는 위에서 복음주의, 근본주의, 개혁주의등 3대 신학운동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복음주의가 17세기 이후 독일에서 루터 교회의 '죽은 전통'
에 불만하여 생긴 경건주의 운동에서 파생된 운동이며, 근본주의가 20세
기 초 미국에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생긴 신학운동이라고 한
다면, 개혁주의는 바울, 어거스틴을 거쳐 16세기 칼빈에 의하여 체계화
된 사상운동이다.
복음주의가 경건을 강조하고, 근본주의가 근본교리들(성경의 무오성,
그리스도의 신성,동정녀의 탄생, 대속교리,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을
주장하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인간의 구원을 더 강조한다면,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이 근본원리에 따라 모든 문제들(정치,경제,
사회, 문화,예술, 신학)을 풀어 나가려고 노력한다.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운동이 다 귀중한 운동이나, 성경이 말하는대로의
교리적 균형을 중대시하고 있는것이다.(딤전1:9,6:3,딤후1:13).
우리 한국교회는 앞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며, 하
나님의 문화적 명령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지고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
건설에 힘쓰는 운동에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3.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복음주의 운동
I. 복음과 역사
복음이 시작된 곳에서부터 확산되어 가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보
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복음은 우선 기존 사회의 가치질서를
파괴한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복음)은 당시 사회적 통념(로마의 세속통
념과 유대의 종교적 통념을 뒤집는 것이었다. 이것은 반정치적이자 반종
교적으로 나타났으며 때론 반사회적이자 반문화적이었다.
복음은 그 시작된 땅에서 배척되었다. 사마리아와 로마의 땅끝까지 뻗
어 갔던 복음은 가는 곳마다 전복지(suversif)성격을 드러냇고 따라서
일종의 가치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삶의 가치도 달랐지만 죽음의 가치
도 달랐다. 로마사회는 근본적으로 뿌리가 흔들렸고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위해선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왔다. 우리는 이미 이
콘스탄틴주의(constantinisme) 의 역사를 알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복음이 자나간 곳마다 황폐화 현상이 뒤따랐다는 사실이
다.(마24:15).
기독교의 복음은 옛 신앙들, 종교들, 가치들, 문화들을 파괴했고,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진리로 대체했다.
그런데 이렇게 세워진 진리가 다시 황폐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황폐는 이중적으로 보인다.
첫번째로 온 것은 외부세력에 의한 것인데 이슬람의 출현이 대표적이다.
소아시아와 북 아프리카 교회들은 이렇게 사라져갔다. 동방교회는 이슬
람의 계속되는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다음으로 이슬람 세력과 동방 기
독교권의 고립적 태도에 의해 생겨난 서유럽 기독교권에서는 이 진리가
서서히 무너니고 파괴되었다.하나님이 죽었다고 선포될 때, 예수가 더이
상 구속주나 구세주가 되지 못할 때, 이것은 진정 황폐이고 황무지인 것
이다. 우리는 이 사실들을 복음이 전파되어간 과정을 따라 성지순례를
해 봄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는가를 알아보기에는 주제가 너무 크다. 다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모든 내적 황폐의 원인이 교회에도 있다는 사실
이다. 물론 복음을 간직하고 교회로 하여금 참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게
하는 거짓 영의 역할이 있다. 참과 거짓은 섞일 수 없다. 그러나 교회사
에서 때로 교회가 거짓을 진리로 착각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 착각의 원인은 복음의 진리가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
이는 역사적 상황(시간과 공간) 이 변하기 때문이다.
복음은 언제나 이런 착각과 왜곡에 반발하는 흐름을 형성시켜 놓았다.
그러나 이런 반발하는 흐름들을 형성시켜 놓았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순간적이고 이내 새로운 역사적 상황이 전개되며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
를 그 상황에 고착시키고 말았다. 이 고착이 경직되어 새로운 복음운동
이 일어날 때까지 말이다. 한국교회사도 본질적으로 이 세계교회사의 순
환적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
II. 1907년 대 부흥운동
한국교회사에서 먼저 다뤄야 할 복음(주의) 운동은 1907년 말씀을
통한 회개운동이다. 복음의 활동은 흔히 신약의 초대교회와 같은 현상
을 일으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처음 메시지와 성령강림 후 말씀을 통한
회개사건은 정확히 일치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살면서 기존가치와 다른 가치관을 형성하게된다.
이러한 운동이말로 가장 원초적인 복음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교회사
를 살펴보면 새로 태어나는 교회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이런 운동들이
있었고 또한 알맹이 없이 텅빈 외형적 교회의 죽은 그루터기에서 새 순
이 돋을 때면 언제나 이런 운동들이 있었다. 이것이 요약할 수 있는
1907년 대부흥운동의 내용이다.
여기서는 교회사 방법론이 문제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친일 선교사들과
교회지도자들의 교회 비민족화 의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국가, 어느 교단 선교사냐도 문제되지 않는다, 단순히 순수한 영적, 도
덕적 운동이라고 말하기에도 뭔가 미흡한데가 있다. 이런 운동은 기존
사회를 두집는 전복적 혁명(무력적이 아닌) 운동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우선 복음은 비록 민족 (또는 부족)의 언어로 나타나긴 해도 본질상 민
족적(또는 부족) 의 언어로 나타나신 해도 본질상 민족적 차원을 넘어선
다. 특히 종교적 민족주의야말로 복음에 가장 유해한 영적 세력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진정한 복음운동은 무엇보다도 먼저 종교적 민족주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요구한다. 나아가 여기서 기독교 애국주의자
들과 종교적 민족주의자자들과 종교적 민족주의자들을 분간할 수 있기란
매우 힘들다.
어쨌드니 1907년 대부흥운동은 "야심있는 정치지도자들" 이 기독교를 민
족주의에 결부시키려는 계획을 여지없이 무산시키고 말았다. 기독교 애국
주의 역시 복음의 급진성에 비추어 볼 때 그리 큰 의의를 갖지 못한다.
복음의 급진적 삶이란 조국도 외국처럼, 외국도 조국처럼 사는 자들이다.
침략하는 자나 침략당하는 자가 모두 하나님 앞에 회개할 자들이다. 하나
님나라는 임하는 양식이 다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 사랑하는 그곳
에 임한다.
결국 1907년 대부흥운동은 그 배경과 관계없이, 때론 그 결과와도 관계
없이, 정권이나 교회 유지를 위해 친일적 태도를 견지한 입장이나, 종교
적 민족주의(혹은 기독교 애국주의)의 경향을 가졌던 입장과는 전혀 다르
며 반 정치적인 제3의 길을 보인 것이다.
이 운동은 1903년 원산에서 시작되었다. 교파를 초월한 사경회를 통해 성
령은 활동을 시작했다. 남감리회 소속 하디(R.A.Hardie) 선교사는 이 운동
에 불을 붙인 사람이 되었다.
원산의 불길은 1904년 평양으로 번졌고 1906년엔 평양, 서울, 목포에서
사경회가 열렸다.
당시 성령은 유사한 복음운동을 영국의 웨일즈, 인도의 카시아에서도 일
으키셨다.
1906년 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마침내 1907년 초, 차가운 평양의 겨울 공
기를 녹이는 큰 불길로 타올랐다. 1월6일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장로의
설교에서 16일 수요기도회까지 참석자들은 새로운 성령체험을 한 것이다.
당시 평양 부흥회의 주도 인물이었던 블레어(W.N.Blair:방위량)의 말을
옮겨 보자.
"그때 일은 형용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결코 혼란이 아니었고 영과 성
의 엄청난 조화였다고나 할까. 걷잡을 새 없이 터져나오는 기도의 맥이
온 영혼들에게 통하여 폭팔되는 감격이었다. 나에게는 그 기도가 마치 큰
폭포소리처럼 들렸고 또 그 기도소리가 바다의 파도처럼 하나님의 보좌에
부딛히고 울려퍼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여럿이 외쳤던 소리였건만
기필코 하나였다. 그것은 유일하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경험, 한 분이신
아버지께로 들림을 받는 체험이었다."
이러한 불길은 전국적으로 퍼졌고 심지어 중국에 까지 그 영향을 끼쳤다.
사실 교회가 복음이 제시하는 길을 가기 위해선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않았더라면 초대 성
도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복음의 길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20
세기 초반 이 땅에 또 다른 오순절 역사를 일으키셨다. 당신의 백성들이
복음에 따라 살아가도록, 그리고 그런 삶의 양태를 통해 당신의 나라가
임하도록.
바로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사회개혁운동을 이해해야 할 것
이다. 뒷날의 한국교회는 성령의 능력만을 구하고(1907년 대 부흥의 향수
에 젖어서) 사회개혁을 그것과 연결시키지 못한채 이원론의 양상을 보이
고 말았는데,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튼 복음운동의 올바
른 확산은 아니다.
III. 복음주의 사회개혁운동
복음에는 이론과 실천에 분리되지 않는다. 믿음과 행위는 나눠지지 않는
다. 다만 순서에 따라 이론이 먼저 오나 그 이론도 언제나 실천을 통해 판
단된다. 비록 어떤 역사적 정황이 이런 이론을 다소간 왜곡시켜 그 자리에
맞는 실천으로 어쩔수 없이(또는 기꺼이) 탈바꿈 시킨다해도 이론은 이론으
로 남는다(그것도 실천과 분리되지 않으채).
서구 기독교문명(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이 한국으로 하여금 기독교를 받
아들이게 하는 원인이 될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도 흔히 기독교 국가들이
잘산다고는 말은 듣는다(이때도 일본은 여전히 예외다). 이것은 선교사들의
선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종교적 공백시기의 한국사회에 희망처럼
비친 것 또한 사실이다. 여러가지로 개혁이 절실했던 19세기말 근대조선사
회에 이 일을 주도해나간 이들은 선교사들이었다. 이들 초기선교사들은 대
부분 복음주의를 표방한 이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사회개혁 방법도 복음
적이다.
데니스(James S.Dennis), 네비우스(John L.Nevius), 헐버트(Homer B.Hul
bert)등 한국선교에 영향을 끼친 선교사들의 사회운동원리는 한결같이 개
인구원을 통해 도덕의 변화와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곧 개인의
인격적 변화없이 사회의 구조가 향상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 개인 변화의 집단적 절정을 우리는 1907년 대부흥운동에서 살폈다.
선교사들의 이런 원리는 1907년의 경험을 지나 1913년에와서 기독교 전
반에 대한 이론으로 확립된다. 민경배 교수가 "조선 교회 사회운동에 대한
신학적 매니페스토"라고 까지 부른 기독교 9개조항을 열거해 보자.
1. 하나님의 성결함과 인애함과 지혜와 능력을 얻고자 하여,
2. 자기 죄를 깊이 깨닫고 온전히 회개하고,
3. 온전한 마음과 힘으로 그리스도를 구주와 및 중보자로 신앙하며,
4. 자기 죄를 사하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이 불붙듯하여 그 결과는 기
쁨과, 화평과,인내와, 겸손과, 진실함고, 존절함의 아름다운 덕행이 드러나
고, 5. 마음 가운데 충만한 이 정신이 밖으로 생활에 발표되어 이웃사람
사랑하기를 자기 몸과 같이 온전히 하나님의 일에 헌신주의를 힘쓰며,
6. 이 내부에 있는 정신과 외부에 드러난 생활은 곧 우리 믿음의 근본이니
점점 그리스도의 모범을 좇아 완전한 지경에 이르고, 7. 이 종교는 둔세주
의를 가진 종교가 아니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활동하는 종교가
아니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활동하는 종교가 되며, 8. 이 종교
는 개인이나 국민의 성격에 대하여 비상한 적합력과 팽창성이 있고, 9.불
완전한 이 세상의 진보는 죄악의 결과를 이루되, 기독교의 목적으니 하나
님 나라를 완전히 성립함에 있느리라."
이에 반해 "외국 사제들의 지지를 받은 서학도(천주교)들의 겁탈과 폭력
때문"에 일어난 1894년의 동학 봉기란든가, 기독교 국가들에게서 복음의 내
용들은 빼놓고 외형적 문명(특히 식민정책)만을 받아들인 일본의 조선 개
화작업은 참된 복음의 내면적 힘을 통해 사회개혁을 진행시킨다는 복음주
의와 무관하다.
특히 일본식 급진 개화작업은 비복음적이다. 민비시해, 아관파천,단발령
등의 태도는 한 민족의 기본적 자유권을 박탈하는 범죄행위이다. 물론 탈
봉건적 근대지향의 사회개혁이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정작 있어야할 사랑과
구원이 없었다. 사랑과 구원이 전제되지 않은 개혁은 침략이요 착취며 이기
주의다. 여기에 대한 기독교의 사회개혁은 개인구원의 급진적 갱신을 통한
사회의 점진적 변화였다. 이것이 실로 초기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살았던
삶의 형태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이있다. 복음주의 개혁운동도 기존 권
력(비록 일제 권력에 대항하는 꺼져가는 민족의 합법적 권력이었다. 하더
라도)에 의지하여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태극기와 십자가가 나란히 교회
와 사회개혁 훈련 현장에 걸려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서구 콘스탄틴주의의
재현이었다. 기독교가 갖는 사회개혁의 의지는 좋았지만 그것을 통해 기독
교 국가를 지향하려는 유혹을 받았던 것이다. 이런 유혹은 오랫동안 경험
한 것이고 초기 선교사들과 한국의 민족주의자, 혹은 애국주의자들의 마음
에도 들어 있었다.
IV. 반 권력 저항운동
최근에 일부 교회사가들은 기독교 민족주의 입장에서 3.1운동을 보려하고
있다. 민경배 교수는 "교회가 3.1운동에 참여했을 때는 정의의 실현과 인
도주의 정책 반영이 그 목표가 아니라" 교회의 "운명을 다 걸면서까지 추
구한 것은 민족의 독립, 그것이었다.." 고 했다.
그는 선교사들의 정치적 중립을 이해하면서도 역사와 민족의 먼 장래까지
보지 못하고 현재의 정세만 본 흠을 꼬집었다. 그들은 결국 "총독부에 적
대하느니 보다는 오히려 협조하도록"권면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복음을
말하면서도 친일적인 태도를 보인 선교사들이 있었지만 교회는 민족독립
의 "영속적인 희망"을 품고 그 성취의 정열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신한촌의 조선독립선언서는 이를 증명해 준다.
"현금 조선세어 기독교는 거의 국민적 종교로서 의의를 갖게 되었다. 자유
를 갈망하는 조선 국미을 위한 기독교의 가치는 위대하다... 조선 국민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낙담하는 일이 없이 용감히 그 중한 십자가르리 지
지하여 우리의 독립 자유행복을 위하여는 전력을 기울여 분투하기를 명확
히 언명한다."
김형석은 민경배의 입장보다도 더욱 "한국기독교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
를 소극적으로 수동적인 면보다는 능동적으로 주체적인 면에서 이해"하고
전국적인 운동의 참여 인원이나 주도적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다른 종교
들을 압도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콘스탄틴주의 이후 민족적 복음과 관련해서 볼 때 이런 해석으니 복음운
동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 상태에서 복음이 잉태하는 조국애라고 하
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자유를 수호하려는데 있기 때문이다. 칼빈의 제
네바도 가톨릭의 신성동맹의 위헙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 하지만
결국은 복음의 복음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는 참상을 가져오지 않았던
가? 물론 일본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수의 손길을 뻗친 것은 아니다.
게다가 3.1운동은 비폭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콘스탄틴주의 이전의 관점에서보면 일제의 권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당시 민족독립운동으로 일어난 3.1운동에 한국교회가 가담했다.
해서 민족적 교회로 능동적 해석을 할 경우 당시의 진실된 복음적 입장
은 사라질 것이다. 실로 3.1운동의 복음(주의)적 참여는 민족운동(물론
어느정도까지 같이 활동한다)으로서가 아니라 반권력 저항운동으로서 이
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1907년 대부흥운동을 보여준 제도의 길이었
다.
사실 역사는 민족의 이름으로 민족의 기본 자유를 해치는 권력이 얼마
든지 등장했왔음을 보인다. 이때 민족의 의미는 크게 상실한다. 민족적
복음이 무슨 소용있겠는가? 기독교가 권력을 쥐고 복음의 이름으로 개개
인이 자유를 박탈함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해방 이후 한국사
회는 기독교 국가가 되진 않았다. 다만 이승만과 4.19를 비교하며 어느
쪽을 더 복음적이라고 말하겠는가?
이런 점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삶의 패턴을 재조명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서남동은 예수와 교회사, 그리고 한국교회를 연결지으면서 예수가 결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나 에센파의 입장이 아니며 열혈당과의 관계도
선명치 못하다고 말한 뒤 오직 민중의 입장에 있었다고 단언한다. 이렇
게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성경과 교회사를 관통한뒤, 한국역사의 민중
운동사를 나열한다. 그리고느니 이 두 이야기를 합류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실천 (성경도 열매를 통해 나무를 안다고 했다)을 중요
히 여긴 나머지 이론을 왜국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예수는 민중과
자주 어울렸으나 그들을 의지한다거나 그들의 힘을 규합한다거나 그들을
위해 투쟁을 했던 일이 없다."이는 저가 그들의 마음을 아심일러라."
그러나 민중신학의 반권력 저항의 태도에는 복음적 요소가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회는 3.1독립운동에 복음적 참여가 가능했던 것처럼 이제 반
민족적, 반민주적 둑재 권력에 대한 저항운동에 복음적인 참여가 가능하
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3.1운동,4.19민중해방운동
등 이 자체는 결코 복음(주의)운동이라고 말할 수 없고 그런 운동들이
시작과 과정에 반권력운동으로서의 복음운동들이 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
이다.
V. 순수 기독교 신앙운동
예수는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달렸다(비록 빌라도가 손을 씻었다하더라
도). 그러나 예수 자신은 세속 정치와 무관하게 십자가를 졌고 자신을 따
르려는 모든 이들에게 모범을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운동을 시작했
다. 모든 대부흥운동과 사회개혁 운동, 그리고 반권력 저항운동들은 이
십자가의 의미 속에서만 의의를 갖는다.
신사참배를 놓고 교회가 취한 태도를 실로 반 복음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요람이자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평
양에서 제27차 장로회 총회는 일제의 협박에 못이겨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말았다.(감리교회는 훨씬 전에 고개숙였다).
하지만 교회 지도계층의 이런 고통스런 결정과는 달리 예수의 이름 때문
에 죽음을 당하기를 결정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진실된 의미의
'복음운동'이란 말은 이 죽은 이들의 영혼들만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집단적 변절에 대해 주기철 목사는 목메인 말을 했다.
"사람에게 쓸려 버리우는 (예수님의)고독한 자취를 우리도 밟아야 하고..
이 핏자국에 엎디어 이 몸을 십자가의 제단에 드려야 합니다." 그는 1944
4.22.예수의 뒤를 따랐다.
이렇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좇는 자의 수가 정확히 얼마인지
알 길이 없다. 몇몇 스타들을 제외하면 그들은 언제나 무명이다. 반신사
참배로 생명을 건 이들은 무슨 운동을 벌이기 보다 자신들의 삶이 어떠해
야 하는지를 안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산사람들이다. 그리고 아무 말
도 없다. 정작 운동을 말하는 이들은 이들을 역사에서 밀어내고 만다. 훗
날 일부 교회가 반신사 참배의 일로 잘난에 했을 때 더이상 복음적인 것은
상실되고 만다.
VI. 맺음말
복음(주의) 운동은 언제나 운동일 뿐이지 결코 형체화되는 것이 아니다.
1907년의 대부흥운동이 교회의 프로그램으로 고착된다해서 그것이 복음
운동이라 말할 수 없고 오히려 그 경직된 프로그램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
으로 나타난다. 복음(주의) 사회개혁이란 본질적으로 없는지 모른다. 오직
상대적으로 복음에 가까운 구조를 선택할 뿐이지 모른다. 반 권력 저항운
동이 끈질긴 권력집착 운동이 되거나 할 때 그것은 더이상 복음적이지 않
다.
참된 복음(주의)운동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그리
스도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일지
도 모른다.
4.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비교(I)
I.들어가는 말
유럽에서는 '에큐메니칼'에 대립되는 말로서 '에반젤리칼(복음주의)'
이란 말이 사용되며, 미국에선 근본주의 계통의 복음주의가 '에큐메니칼'
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본래 한국교회는 '성경주의(biblicism)'에 가까운 복음주의(?) 전통을
이어 오다가 에큐메니칼과 세계교회협의회(WCC) 의 도전을 받았다. 그
결과로 오늘의 한국교회이 교단들 가운데 6개 교단(아마도 8개교단이 될
것이지만)은 한국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하였고, 나머지 교단들은 WCC
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적어도 장로교 안에서만해도 고려파와
총회신학 쪽은 KNCC에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통합측과 기장측만이 가입
하고 있다. 특히, 장로교 합동측과 통합측은 1950년대 말에 WCC 가입문
제로 교단분열의 쓰라린 경험을 하기도 했다(사실은 다른 이유들이 분열
의 결정적인 원인이었지만).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에큐메니칼과
WCC의 문제가 한국교회이 분열의 씨앗으로 등장한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
라 하겠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유럽과
미국의 이분법적 구도를 한국교회에 그대로 옮겨 놓을 필요가 있는가?"
"WCC 와 KNCC에 가입하고 참여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성경과 복음을 강조
하는 장로교 통합측은 모든 복음주의 계통의 교회들과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단순한 흑백논리로 서로를 몰이해하고 헐뜯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일반적으로 복음주의쪽이 에큐메니칼측을 더욱더 비난한다고 가정할 때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선교'와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한
개념 규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1952년 '하나님의 선교'(Missi
io Dei)' 란 개념이 등장하면서부터 WCC 의 선교개념에 변화가 오기 시작
했고, 그후 1968년 웁살라의 WCC 와 1973년 방콕대회(CWME)에서 교회의
사회참여가 절정에 도달했으며,이에 대한 반응으로 복음주의계통의 세계
대회들이 등장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선교와 사회참여 문제는 충분
히 논의의 초점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종교개혁에서 비록되었고,18세기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을
이어 받은 19세기의 복음주의 선교활동이 어떻게 WCC(1948)형성과정에 기
여했나를 살피고, WCC의 모든 분과보고서와 "신앙과 직제"의 전통이 비
록 신정통주의 색채를 띠고 있더라도 복음주의계통의 신앙과 신학에 어
떤 공통점을 갖는가를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삶과 사업"(1925)에서
비롯되었고 IMC의 역사를 통하여 강조되었으며, 1952년 '하나님 선교'
에서 참예화되기 시작한 WCC 의 교회의 사회참여 전통이 복음주의 계통
의 "프랑크푸르트 선언"(1970), "로잔 언약"(1974), "마닐라 선언"(1989)
에 나타난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어떻게 연결되는 가를 논하려고 한다.
WCC계통의 문서들과 복음주의 계통의 문서들에서 우리는 어떠한 접촉점
과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 두진영의 문서에서 우리는 굳이 나뉘
어야 할 이유만을 찾을 것인가?
II. 19세기의 복음주의와 WCC 결성과정
19세기는 기독교의 본질을 위협하는 독일의 개신교 자유주의와 유럽과
미국의 자유주의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역사를 통하여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복음주의 선교활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그래서 라
토렛 교회사가 1815년부터 1차세계대전이 일어났던 1914년까지를 "...
기독교가 일찍이 알지못했던 위대한 세기"라 할 때, 그의 초점이 주로
개신교의 확장에 있었다. 이같은 19세기 복음주의 선교활동은 18세기 영
미 계통의 복음주의 부흥을 거쳐 16세기의 종교개혁 전통에로 소급되며
초대교회의 복음선교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20세기 볼세비키 혁명(1917), 이태리의 파시즘(1919), 독일의
나치즘(1933) 미치 1,2차 세계대전에도 불구하고 19세기의 복음주의 선
교에 힘입어 에큐메니칼 운동과 세계교회협의회(WCC) 의 역사가 전개되
는 세기이다. 이미 19세기 중엽부터 교파 안의 연합은동, 교파와 교파
사이의 연합운동 및 선교단체 사이의 연합과 협동이 일어났고, 선교의
현장에서 교파들의 연합과 사귐이 절실히 요구되어 왔다. 그리하여 19
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린 세계 선교대회(WCC) 는 이미 제8차에 해당하는
세계선교대회였다. 이처럼 19세기 복음주의의 선교 활동에 따른 기독교
의 확장은 교회들의 사귐과 일치, 선교와 사회참여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1921년엔 국제선교협의회(IMC) 가 등장하고 1923년 옥스포드
에서 열린 IMC 는 교리의 통일을 통하여 교회의 일치를 꿈꾸던 고대
에큐메니칼공의회들(니케아의 삼위일체, 칼케돈의 기독론 등)과는 달리
교리와 신학을 초월하는 '복음선교'에 초점을 모았다. 1923년 옥스포드
의 IMC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들 가운데 존재하는 교리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유익한 선교협
의를 방해하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모였을 때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일
체감을 느낄 수가 있었던 바, 이는 성령의 역사이다.
진실로 WMC와 IMC 야말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주도 역할을 했으니,
특히 IMC는 세계선교의 세력들을 한데 묶는 역할을 했고, 신생 피선교 교
회들을 성장시켜 서양교회들의 동역자가 되게함으로써 기독교연합운동에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이처럼 19세기의 복음주의 선교활동의 영향력은
20세기의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 의 역사로 이어진다.
한편 1925년엔 죄더불름(Sodeerblum)의 주도 아래 스톡홀름에서 "삶과 사
업(Life and Work)" 이 교회, 공동체 및 국가에 관한 대회로 열렸는데, 이
대회는 교회가 교리나 신학을 초월하여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하는 사회
윤리를 강조하였다. 바야흐로 세계교회는 19세기의 복음주의로부터 20세
기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하지만 이상의 WMC,
IMC및 "삶과 사업"이 교리와 신학을 소홀히 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자 "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가 1927년 로잔과 1937년 에딘버러에서 차
례로 열렸다.
그리하여 1938년엔 "삶과 사업"과 "신앙과 직제"가 합류하여 WCC결성을
위한 준비모임이 되었고 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8년엔 암스텔담에서 WCC
가 열렸다. 본 WCC의 헌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교회들의 사귐"이라 하여 하나의 세계적인 초대형 교회
를 구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파들과 교회들이 자신의 교파적 정체
성을 그대로 유지함녀서 최소한의 신앙적 공통분모를 가지고 사귐을 갖고
함께 일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상의 WCC형성과정에서 19세기 복음주의전통이 WCC와 IMC 의
통로를 통해서 어떻게 20세기로 이어지는가를 보았다. 나아가 "삶과 사
업"이 등장하고 교회의 사회참여가 강조되기 시작한 것도 보았다.
사실 1949년 암스텔담의 WCC,1954년에 에반스톤의 WCC,1961년 뉴델리의
WCC,1968년 1968년 웁살라의 WCC,1974년 나이로비의 WCC 및 1983년 벵쿠
버의 WCC등 각 분과보고서를 검토해보면, 복음과 교회의 정체성이 항상
교회의 사회 참여와 긴장관계에 있는 것을 우리는 본다(참조:"WCC에 나
타난 교회와 사회", [교회와 신학],20집 1988;"WCC에 나타난 교회의 사
회 참여", [장신논단],제4집,1988). 물론 이 역대 WCC에 나탄난 복음과
교회에 관한 신학적인 주장들이 신정통치주의 신학에 많이 의존하고 있
으나 19세기 복음주의와 16세기의 종교개혁신학과 단절된 것은 아니다.
III. 'Missil Die'와 교회의 사회참여
그런데 이러한 선교개념이 1948년 암스텔담의 WCC까지는 19세기 복음
주의 전통과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신정통주의로 나갔으나, 1954년 에반
스톤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ie)'가 등장한 이후로는 선교의 개념이
교회의 사회참여로 선회하면서 1968년 웁살라에 이르러선 교회의 사회참
여가 절정에 도달하였다. 그러자 1960년대부터 열리기 시작한 복음주의
교회들의 세계대회들이 에큐메니칼 교회들의 선교개념과 사회참여에 크게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1952년 윌링겐의 IMC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 의해서 WCC의 성격 규정
에 큰 영향을 주었다. 즉, 선교가 교파를 확장시키고, 교회를 성장시키고
교회를 장으로 하는데서 ' 이 세상을 선교의 장으로 하는 하나님의 선교'
로 돌아섰으니, 선교의 주체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선교의 주체
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선교의 범위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의 세계에 대한 기독교의 참여까지 확장되었다. 아마도 우리는 이것을 '
탈(탈)교회중심적 선교'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호겐다이크는 '하나님-교회-세상'에서 ' 하나님-세상-교회'로 나
갔고, 지금까지의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
개입과 역사와 사회개혁에 초점을 맞추는, 선교의 중심적 시야를 강조하는
신학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1952년 IMC의 보고서 가운데 "교회와 이
세상의 연대성"이란 주제가 들어있는데, 이 보고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교회란 이 세계 속에 있으며, 이 교회의 주님께서 자신을 이 세상과
동일시하셨듯이 교회도 그렇게 해야 한다... 교회는 이 세계 솟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들에 대한 확실한 징표들을 분별
해야 한다.
1952년 윌링겐의 'Missio Dei' 는 1961년 뉴델리에서 꽃 피어나고, 1968
년 웁살라에서 절정에 달하여 교회의 사회참여가 첨예화되었으니, 19세기
복음주의적 선교의 열정은 식어졌고, 종교개혁-신종교개혁적 복음과 교회
의 정체성마저도 위협을 받기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제3차 뉴델리 WCC에
선 IMC가 WCC에 합류하여 'Missio Dei'가 WCC 차원에서 강조되었다.
우리는 교회의 사회참여가 첨예화되었던 1968년 웁살라 WCC 의 분과보고
서를 잠시 검토하고 이어서 교회의 사회참여가 극치를 이루었던 방콕대회
(CWME,세계선교와 복음전도대회)의 문서을 일별하고자 한다.
웁살라 보고서는 (1) 정부,기업체,노동계,군대같은 힘들의 중심들 (2)
정의사회를 추구하는 혁명들 (3) 정의사회와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대
학가의 항거들 (4)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5) 교육에 갈급한 교외와 시
골지역 (6) 선진국과 발전도상국들 사이의 관계 (7) 선교의 전투장으로서
의 교회 등을 선교를 위한 우선 상황으로 열거하고 있으며, 선교의 전위
적 성격으로 강조하였다.
과연 교회는 가난한 자들, 보호받지 못하는 자들, 권태로운 자들 편에
서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깊숙히 파고 들어가
그들의 문제들과 삶의 구조에 참여하고 있는가? 교회는 불신자들과 더불
어 시대의 징표들을 분별하면서 그리고 새 인류의 도래를 기대하면서 역
사와 동행하는 가?
하지만 웁살라 보고서는 기독교의 본질 요소인 복음, 예배, 교회의 보편
성과 일치 및 새인간성에 기초하여 교회의 선교 과제를 제시하였다. 특히
1968년 웁살라는 1960년대의 비인간화에 맞서는 새 인간성에 역점을 두면
서 위의 선교 과자들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 보고서는 1960년대 비인간화
의 상황에 대응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새인간","하나님의 형상" " 새 인
간의 회복자", "인간의 원형"으로 제시한다.
성육신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새인간이
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성부를 영화롭게 하셨을
때 하나님의 형상이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전적으로 주어졌고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참여
하셨고, 동시에 절대적으로 이세상으로부터 자유하시고, 그는 세상속으로
파고드는 진리였고 고난과 죽음을 승리적으로 용납하셨으니 우리는 여기
에서 인간의 소외가 극복되었고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의 아들들의 신분
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의 부활에서 새창조는 동터올
랐고 역사의 목적이 활실해졌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새인류의 머리로서 차
차 모든 것을 총괄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1968년 웁살라는 위와같은 기독론적 초석 위에서 새인간성의
가능성을 제시하는바, 다음의 인용에서 우리는 '성령','말씀','신앙',
중생','새사람'이라는 용어들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새 인간성이란 단순히 우리가 도달해야 할 하나의 목표가 아니
라 하나님의 선물들 가운데 하나로서 신앙의 응답에 의해서 우리는 이것
을 받는다. 성령께서는 여러 다양한 결단의 순간들에 있어서 인간들에
게 이 선물을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함으로써 인간을 살
피고 회심케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복음전도에 있어서 우리가 할 일
은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반응할 수 있는 기회들을 인간에게 갖
다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생이다.
1973년 방콕의 CWME 역시 1968년 웁살라의 두 기둥을 가지고 있다.
이같은 두 얼굴은 모든 WCC 분과보고서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방콕
대회에선 복음주의자들의 참여로 '복음과 교회'라는 기두이 더 튼튼해
지는 감이 있으면서도 몰트만 등의 주장에 의하여 '사회구원'이 첨예
화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1968년 웁살라의 '인간화'에 이어 1973년 방콕
은 '사회구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구원이란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착취에 항거하여 경제적 정의를 위해
서 투쟁하는 것이다. 구원이란 인권에 대한 정치적 억압에 항거하여 인
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구원이란 인간소외에 항거하여
소외된 무리와 연대감을 갖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구원이란 개인
의 삶 속에서도 사리고 있는 절망에 항거하여 희망을 불러 일으키기 위
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위의 사회구원은 다음과 같은 '복음주의' 계통의 개인구원과
긴장관계에 있는 것을 방콕문서는 보여준다.
구원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개인들의 죄와 죄의 모든결과로부터 해
방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
를 통하여 이 세상을 이 세상의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케 하시는 작업
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어나기 위하여는 교회가 먼저 갱신되어야 하고
성장해야한다.
IV. 복음주의,에큐메니칼 사회참여 비판
우리는 1968년 웁살라와 1973년 방콕에서 두 기둥을 보는 동시에 교회의
사회참여가 과격해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복음주의 세계대회들이 에
큐메니칼 교회들의 선교와 사회참여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60년
대 후반부터였다. 1960년대는 케네디와 킹목사의 암살, 신막스주의, 학생
운동, 월남전쟁 등으로 얼룩진 격동의 시기로서 이같은 맥락 속에서CWME
(1963년,멕시코),1966년 제네바대회, 1986년 베이루트 대회 및 SODEPAX
(Society,Development and Peace)가 열렸고 급기야 1968년 웁살라의WCC
가 열렸던 것이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1960년대의 상황과 에큐메니칼에 대응하여 여러 복
음주의 세계대회들이 열렸던 것이다. 예컨대, 1966년 베를린에서 열린
복음전도 세계대회는 같은해 WCC의 제네바대회, "교회와 사회를 위한 세
계대회:현대의 기술혁명과 사회혁명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대회
에 대응하여 열린 것이다. 이 복음주의 세계대회는 1968년 싱가폴,1969년
미네아폴리스, 1969년 싱가폴,1969년 미네아폴리스, 1969년 보고타, 1971
년 암스텔담에로 각각 이어졌으며, 1974년 로잔에서 모인 세계 복음전도를
위한 국제대회는 1973년 방콕대회에 반응으로 1980년 싱가폴로 이어졌고,
1989년 마닐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1973년 "시카고 선언",1975
년의 "하트포드 호소",1977년의 "시카고 부름"역시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
되어야 하며, 1970년에 나온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1975년의 "기독교선
교에 대한 서울선언"역시 같은 흐름 속에 있다하겠다.
우리는 선교와 교회의 사회 참여에 관한 복음주의 입장을 파악하게 위하
여 여기에서 "프랑크푸르트 선언"(1970), "로잔 언약"(1974) 및 "마닐라
선언"(1989)을 검토하려고 한다.
1. 프랑프푸르트 선언
"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선교에서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7대 요소를
말하는바 제1항목에선 '복음'과'성경'을 초석으로 하는 복음전도를 선언
했고, 제2항목은 1968년 웁살라의 '인간화'을 비판했고, 제4항목은 복음
과 복음의 적용에 관련하여 교회의 본질 기능을 언급하면서 만인구원을
배격하고 선교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취된 영원한 구원을 그의 교회와 완
전한 권위로 부어받은 사자들이 설교와 성례와 봉사를 통하여 증거하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은 모든 인류를 위하여 단회적으로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개인들에게 구원을 적용시키는 일은 우선 결단을 요구하는 선포
와 신자로 사랑의 봉사를 하도록 하는 세례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신앙
이 회개와 세례를 통하여 영생에 이르듯 불신앙도 구원의 요청의 거부를
통하여 저주에 이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속에서 모든 시대의 모
든 사람들이 이미 중생했고, 이미 그와 화목했다는 보편주의 사상에 반대
한다. 그 사상은 하나님의 역사적 구원 활동에 대한 지식이나 그것에 대
한 신앙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이런 오류를 통하여 복음화의 위탁명령이
그 완전한 힘과 시급성을 상실한다. 그로 인하여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자기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하여 치명적인 안전감에 유혹되어 빠지게된
다.(김명혁,[현대교회의 동향],P 413). 끝으로 제5항목은 "선교적 선포
는 도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게 하며 그 교회는 그 사회적
환경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서 규정된 새로운 실체로 드러나야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1968년 웁살라의 교회의 사회참여 강조에 대응하고 있다.
2. 로잔언약
"로잔언약"(1974)도 15항목 가운데 제5항목인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에서 방콕 대회의 "오늘날의 구원(Salvation Today)"에 대응하는
교회의 사회책임을 제시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창조자요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사회 속에 일으키시는 정의와 화해의 역사에 대
한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며 남성들과 여성들을 온갖 억압으로부터 자유
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에 참여해야 한다. 남성들과 여성들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각 개인은 인종,종교, 피부색,
문화.계층, 성 및 연령에 관계없이 본래적인 존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
에 누구나 존경을 받아야 하고 섬김을 받아야 하고 결코 착취를 당해선
안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여기에서 복음전도와 사회적 관심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여겨 사회참여를 소홀히 해 온 사실을 참회한다. 비록
인간들 상호간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고, 사회적 행동이 복음
전도는 아니고, 정치적 행방이 구원은 아니지만 우리는 복음전도와 정치
사회적 참여가 모두 우리 기독교인들의 의무임을 믿는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복음주의 교회의 사회참여는 제2항의 "성경의 권
위와 능력",제3항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 제4항은"복음전도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성경대로 죽은 자들로
부터 살아나셔서 그는 다스리시는 주님으로서 회개하고 믿는 모든 사람
들에게 사죄와 성령의 자유케 하시는 은사를 베풀어주신다"고 하였다.
우리는 여기세어 '성경''복음','구원','복음전도'에 기초한 교회의 사회
참여를 본다.
3. 마닐라 선언
끝으로 "마닐라 선언"(1989)을 읽어보자. 이 선언문은 12항목 가운데
제4항목인 "복음과 사회적 책임"에서 "로잔언약"(1974)에 이어 복음주의의
사회참여를 촉구하는데, 복음 전도와 더불어 심지어는 구조악에 대응하는
교회의 사회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복음전도가 우선이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복음이기 때문이다. 이 복음전
도의 목적은 모든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받아들이 수
있는 기회를 갖게하는데에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
셨을 뿐만 아니라 자비와 능력의 행위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보여 주셨다... 우리 역시 겸허한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설교하고 가
르쳐야 하고, 나아가서 병든 자들을 돌보고, 장애자들롸 불이익을 당하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하고, 억압 받는 자들을 구출해 내야 한다. 우리는 은
사와 소명과 맥락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복음과 선행을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하나님 나라의 선포는 필연적으로 이 하나님 나라와 양립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하여 예언자적 심판을 가한다. 악들 중에서 우리는 제도화된 폭력
을 포함한 모든 파괴적 폭력을 반대하고, 정치적 부패, 온갖 종류의 인간
착취와 환경착취, 임신중절, 마약 및 인권남용 등을 반대한다. 우리는 또
한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관심하면서 우리들 자신이 세계의 틀 안에서 빚
더미에 짓눌려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수백만
의 인간들이 비인간적인 조건에 의하여 학대받고 있음을 본다.
우리가 사회적행동에 계속 참여할 때 기독교화된 사회를 하나님의 나라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적 복음이 사회적 행동을 불가피
하게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으리 인식해야 한다. 진정한 선교는 항상 성육
신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세계 속으로 겸손히 파고
들어가서 이들의 사회적 현실, 이들의 슬픔과 고통, 이들의 억압적 권세
에 항거하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관심과 비전이 협소하여서 개인적이든 공적이든, 지역적이
든 세계적이든,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하지 못
한 것을 회개한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단호히 순종해야 하겠다.
"마닐라 선언" 역시 제2항에서 "오늘을 위한 복음",제3항에서 "예수 그리
스도의 유일성"을 선언했고, 특히 제1항에선 "우리 인간의 곤경"을 다룸
으로써 지금까지의 복음주의 선언문들이나 성명서들 가운데에서 가장 분
명하게 인간의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특히, 전12항목을 둘ㅍ로 나누어
전복음(1-5)과 전교회(6-12)로 이분하였는데, 전자는 역사적, 사회적,문
화적 차원의 갱신까지 함축하고 있다. 즉, "복음이란 악의 권세로부터의
하나님의 구원,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확립 및 그의 목적에 위배되는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승리에 대한 기쁜 속이다." 그리고 제2항목인 "
오늘을 위한 복음"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물론 영적으로 가
난한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복음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 누가의 강조에
부딪히며, 이것이 오늘날 세계도처에서 착취당하고, 고난당하고, 억압당
하고 있는 세계 인구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우리들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성경은 또한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들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자비를 구해야 한다.
복음은 이 두가지 종류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다. 영적으로 빈곤한 이
들은 그들의 경제적 여건이 어떻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릅을 꿇고 구원
의 선물을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V. 맺는말
오늘날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노선과 에큐메니칼 노선이 서로 대립, 갈등
을 경험하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장
로교만 해도 고려파와 총회신학 측은 에큐메니칼을 거부하고 있고, 한국
신학계통은 에큐메니칼의 좌측을 걸어가고 있고, 필자가 몸 담고 있는 통
합측은 복음주의 노선으로 나가면서도 건전한 에큐메니칼을 지향하려 하
고 있다. 물론 한국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한 교단들의 교회 가운데도
에큐메니칼의 부정적 측면들을 비판하는 교회들이 있고, 복음주의를 지향
하는 교단들의 교회 가운데도 에큐메니칼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는 교회
들도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논한 WCC의 분과보고서와 WCC의 지나
침에 대한 복음주의 교회들의 반응에서 우리는 이 두 진영 사이에 대립
갈등만을 발견하는가 아니면 어떤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는가?
우리는 종교개혁 전통이 18세기 영미 계통의 복음주의 부흥운동을 거쳐
19세기의 복음선교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고,1910년의WMC 이후 1921년과
1923년의 IMC의 역사를 통해서 1927년 로잔의 "신앙적 직제"로 이어져
1948년부터는 종교개혁전통과 19세기의 복음주의전통 보다는 신정통주의
신학의 노선이 자리잡기 시작하였지만, 우선 우리는 종교신학과 19세기의
복음주의 전통이 신정통주의적 복음주의와 결코 단절하는 관계를 갖고 있
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1927년 이래 "신앙과 직제"의 역사는 신앙과 신학 차원에서
의 에큐메니칼을 지향해 온바 1975년 나이로비의 WCC 가 세례,성만찬,직
제의 관한 "신앙과 직제"문서 제73호를 인정한 이래, 1982년엔 'BEM
(Beptism, Eucharist and Ministry;세례,성만찬 및 직제)'문서를 낳았고,
1983년 벵쿠버의 WCC이후론 "성경과 초대교회에 나타난 사도적 신앙"에
관하여 계속 연구케하고 있다. 그래서 역대 "신앙과 직제"문서들에 나타
난 사도적 신앙"(여기에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사도신조 등을 취
급한다)으로 표현된 WCC 의 신앙과 신학은 신정통주의적 경향으로 나감에
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전통과 19세기 복음주의와는 물론 세계교회의 신앙
내용과도 기본적인 연속선 위에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WCC (1948)의 형성과정에서 IMC (1921년과 1923년)와
"삶과 사업" (1925)의 역사가 이미 교리와 신학을 초월하는 사회윤리 차
원의 교회의 사회참여를 강조하고 있음을 보았고, 1952년 윌링겐의 IMC
가 주장한 '하나님의 선교'이래로 WCC 의 '선교'개념이 점차 복음주의의
복음전도 개념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교회의 사회참여가 1968년 웁살라의 WCC와 1973년 방콕대회(CW
ME)에서 절절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WCC 의 모든 분과보고서는 북음과 교회 그리고 교회의 사회참
여라고 하는 두개이 기둥을 뚜렷이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
는바 심지어 1968년 웁살라와 1973년 방콕에서조차 이 두 기둥이 긴장
가운데 버티고 있는 것을 지적하였다. 적어도 우리는 이같은 WCC 의 두
얼굴에도 불구하고 "복음과 교회"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기둥이 (비록
신정통주의적이긴 하지만) 종교개혁전통과 19세기의 복음주의전통으로부
터 결코 단절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이후 1960년대 WCC 의 선교개념과 교회의 과격한
사회참여에 대응하여 등장한 복음주의 교회들의 세계대회들을 나열했고,
특히 "프랑크푸르트 선언" (1970) "로잔 언약"(1974), "마닐라 선언"(19
89)에 나타난 성경과 복음, 복음전도의 개념 및 교회의 사회참여에 관하
여 인용하였다. 일찍이 1968년 웁살라 WCC 의 분과보고서는 교회의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이 세계의 필요 앞에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실제적으로 이단이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위의 3개의 복음주의 문서들은
결코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닐
라 선언"에 와선 교회의 사회적 행동이 매우 강조되고 있으며, 심지어 교
회가 구조악에 대응하는 사회적 행동까지 해야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주의 교회들은 WCC로부터 결코 '이단'이란 정죄를 받기에 합
당치 않다. 뿐만 아니라 위 세 문서에 나타난 복음과 복음전도의 개념 그
리고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부분이 "신앙과 직제"의 전통, 나아가선WCC
의 "복음과 교회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기둥과 결코 불연속선상에 있지 않
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하였다.
우리는 복음주의 진영과 에큐메니칼 진영이 상화 비판적으로, 서로 보완
적으로 그리고 상부상조하면서 오늘의 20세기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복음주의는 에큐메니칼이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경향에서 현
대사회의 구조악을 바로 보아야 하고 에큐메니칼의 '탈교회중심주의적'사
회침투에서 무엇인가 배워야 한다. 동시에 에큐메니칼 측은 무엇인가 배워
야 한다. 동시에 에큐메니칼 측은 성경, 복음, 교회 등 기독교의 본질적
정체성을 고수하는 복음주의 계통에서 자신의 정체성 위기의 극복 가능성
을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무엇이 서로 다른가를 찾아내려고 애쓰기보다 무엇이
서로 같은가를 강조하면서 피차간에 신앙의 형제됨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은 유럽에서 기원했고, 미국을 거처 우
리나라에 들어왔는데, 한국의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대립은 미국 '근본
주의'와 '자유주의' 대립의 한국적 재판인 인상을 준다. 하지만 한국의
'복음주의'는 사실상'성서주의(biblicism)'에 가깝기 때문에, 종교개혁적
이고 신정통주의적 복음주의가 진정한 복음주의이며 이 북음주의는 wcc
의 "신앙과 직제"의 전통과도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하겠다.
5.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비교 (II)
어떤 주제를 놓고 글을 쓸 때에 과녁을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 글
전체의 각 부분이 정해진 과녁을 만점 짜리로 쏘는 것이 되어야 필자의
의도가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글의 과녁이 분명
하지 않거나 과녁이 여러개일 경우, 왔다 갔다 하는 글이 되고 의사전
달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과녁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복싱경기로 비유를 바꾸어 말한다면 "그림자와 싸우는 복싱(shadow bo
xing)" 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쓰는 이 글이야 말로 "그림자 복
싱" 이 될 가증성이 너무 높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복음주의 계통에
속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우리 입장을 곡해했고"라는 반응을 보일 가
능성이 있을 것이 미리 내다보인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것은 이 글이 이 방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조그만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경해석이라고 할 때 단순히 성경의 의미를 주해하는 차원만
이 아니라, 현대의 해석자가 당시의 성경 본문을 현대 세계의 용어로
해석하는 차원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성경해석에 있어서는 해석자
가 전제가 해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
안해서 필자는 우선 양자 비교의 어려움을 소개하고 그럼에도 양자 사
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해석학적 전제를 포함한 면에서 밝힌 후, 이런
비교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I. 비교의 어려움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성경해석상의 비교가 어려운 것은 우선 양
자의 정의가 어렵게 때문이다.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모두가 가톨릭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즉 양자가 프로테스탄트 안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
다. 그렇다면 개신교 안에서 양자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위필드(B.B
Warfield)는 [구원의 계획(The Plan of Salvation) ]에서 이방종교와
기독교교를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로 구분하고, 기독교 안에서 가톨릭
과 개신교를 사제주의와 비사제주의로 구분한 다음 비사제주의를 전체
적으로 복음주의라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개신교 안에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은 구분이 될 수 없다. 윤성범 교수는 "복음주의 신학과 프
로테스탄트신학은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고, 프로테스탄트권 안에서
복음주의라 할 때는 정통주의와 자유주의의 두 극단을 극복한 중간노선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윤성범 교수식으로 보아도
에큐메니칼은 복음주의 속에 포괄될 수 있다.
위필드와 윤성범의 정의에서는 복음주의라는 것이 개신교 전체를 포괄
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에큐메니칼이라는 말도 가톨
릭을 제외한 개신교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큐메니칼이란 말은 본래 헬라어로 '전세계'(행17:31),'로마 제국'
(눅2:1),혹은 이 둘 가운데 하나 (행11:28)를 의미하는 '오이쿠메네'
에서 유래된 말이다. 에큐메니칼은 이렇게 어원상 포괄성을 지닌 말
이다. 에큐메니칼의 포괄성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도자였던 비서트
후프트가 지적한 대로, 에큐메니칼이 사용된 역사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이 말은 (1) 사람이 살고 있는 전지구(2)
모든 로마 제국 (이상은 헬라.로마세계와 신약의 용법)(3)모든 교회
(4) 교회의 세계적인 선교 (5) 교회의 세계적인 선교 (6) 둘 또는 그
이상의 교회 사이에서의 일치 (7) 기독교의 일치 의식이나 일치 욕망
의 표현 (이상은 현대적 의미)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에큐메니
칼은 어원상으로나 그 지도자의 분석에 따른 역사적 용법에 있어서
개신교의 복음주의자들까지 포괄할 수 있는 용어이다.
이제까지 살펴 본 대로는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이 각기 서로를 포괄
할 수 있는 용어로 사용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말스덴(George Marsden)에 따르면, 1920년대부터 미국에서 현대주의
운동으로부터 전통상으로 편협성과 분파성을 띠게 되자 이것을 극복하
기 위하여 후에 나타난 것이 복음주의 운동이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
면 복음주의는 개신교의 현대주의 운동에 대항하여 싸운 운동이라는
점에서 개신교 안의 한 그룹으로 좁게 규정된다.
이 글의 제목이 성경해석에 있어서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비교
인 이상, 개신교 안에서 이 두 그룹의 구분은 구분은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서로 포괄적인 개념으로는 전개될 수 없고, 바로 위에
서 지적한 말스덴의 분석을 어느 정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
더라도 "복음주의 성경해석은 이러한 것이다", "에큐메니칼의 성경해
석은 이러한 것이다"고 선을 긋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이
워낙 포곽적이기 때문이다.
양자의 비교가 어려운 것은 한국에서 세계교회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es)에 가입한 교단(기장,예장 통합,기감)과 가입하지 않은
교단을 놓고 비교해 보면 금방 드러난다.WCC에 가입한 교단을 에큐메
니칼로 보고 그 교단을 놓고 비교해 보면 금방 드러난다.WCC에 가입한
교단을 에큐메니칼로 보고 그 교단 내부를 살펴보라. 가령 예장 통합
측이 WCC에 가입하고 있는데, 통합측 장신에는 복음주의자들이 없는가?
장신 교수들 가운데는 한국복음주의신학회에 가입한 교수들 중에도 자
신을 복음주의 계통에 포함시킬 교수들이 적지 않으리라고 본다.
WCC 에 가입한 기장을 보라. 안병무 교수의 '민중신학'이 기장 안에 있
는가하면, 같은 신학교와 같은 교단의 배경을 가진 이화선 박사 (한신
출신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박사 학위 취득하고 서독에서 목회)는,"
민중신학이 기장 내에 '독버섯'처럼 침투하여 성서적 신앙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 한신의 전경연 교수와 동감하면서 민중신학을
비판하고 있다. 기장의 성경해석이 서로 비판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데, 기장, 기감, 예장 통합을 포괄하여 "에큐메니칼의 성경해석은 이
렇다"고 하나의 선을 긋고, 그것을 복음주의의 성경해석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성경주석에 있어서, 이상근 목사는 통합측이니까 에큐메니칼이고 박윤
선 목사는 WCC에 가입하지 않은 교단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복음주의자
이며, 이들의 성경해석의 차이는 이러이러하다고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들의 성경주석을 분석해보면, 서로 비교될 수 있는 점들이 상당히 발
견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이 한
사람은 에큐메니칼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비에큐메니칼 내지
복음주의자이기 때문에 발생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성경해석상의 차이점을 직접 비교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쉽게 이해될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성경해석자의 전제가 성경해석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흔히 비판하는 대로 에큐메니칼은 용공적 전제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에큐메니칼의 성경해석을 규정할 수 있겠는가? 흔히 에큐메니칼이 용공
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실상 WCC는 공산주의 형명게릴라들에게 자금
을 지원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의도에 있어서는)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자들을 구호하기 위해 인도적 사업으로 지원한 것이라는 점도 고려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WCC는 암스텔담 총회에서 막스주의와
그 전체주의을 비판하였고, 1954년 에반스톤 총회에서 공산주의와 자유
방임적 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한 점도 고려되어야할 것이다. 물론
WCC 안에 공산주의자들도 있고, 용공도 있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도
공존하고 있는 이상, 에큐메니칼은 용공이라는 획일점에서도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성경해석을 비교한다는 것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II.경향(tendency)의 차이
이상에서 밝힌 대로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성경해석을 비교하기란
심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특별히 양자를 구별짓는 획일적인 선을 긋
는다는 것은 어려움의 차원이 아니라, 불가능의 차원으로 보인다.
에큐메니칼에 대한 논쟁이 한창일 때, 에큐메티칼에 대한 논쟁이 한창
일 때,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의 차이는 칼과 낫의 차이라는 농담도 나
왔다. 에큐메니칼이라는 말이 길어서 맨끝의 '칼' 만 떼어내고, 복음주
의협회의 영어 약자 NAE(National Assocition of Evangelicals)가'낫'
과 비슷하게 발음이 된다 해서 그런 농담이 나왔다고 한다.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성경해석이 '칼'과 '낫'의 차이처럼 선명하다면 양자 비
교에 문제가 없겠지만, 그러나 위에서 본 대로 분명한 선을 긋는 식의
비교는 불가하다고 본다. 다만 한국에서 WCC에 가담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의 "성경해석의 주류적 흐름"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경향성
의 차이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성경관
성경해석은 '성경이 어떠한 책인가'하는 분석에 따라 그 방법과 내
용이 달라진다. 성경관에 있어서는 복음주의 안에서도 스펙트럼을 그릴
수 있을정도로 다양한 시각이 있고, 에큐메니칼 안에서도 그렇다고 본
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인정하
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고 에큐메니칼은 성경의 영감과 유오를 인정하
는 경향이 있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문자까지도 영감된 것으로 성경
의 절대무오를 수호하는 경향이 있고, 에큐메니칼은 성경의 영감을 인정
하면서도 성경의 목적과 사상의 영감은 주장하고 문자와 형태의 영감은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박형룡 박사와 김재준 박사의 성경관 논쟁을 보라. 전자를 문자적 영감
을 주장하고 후자는 역동적 영감을 주장함녀서 교단의 분열로 나아가는
논쟁을 벌였다. 후자는 전자를 보고 '정통교리'의 깃발 아래 성경의 역
동성르 약화시킨다고 비판했고, 전자는 후자를 소위 '학문의 자율성'이
라는 칼로 성경을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논쟁은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서 직접적이든 혹은 간접적이든(각
기 제 글을 쓰지만, 서로 비판적인 시각으로 씀) 계속된다고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한신의 김이곤 교수는 박형룡 교수와 김재준 교수
의 성경관 논쟁 이후의 한국교회 상황을 이렇게 지적했다. "그 후 그 대
립은 교리라는 토치카(tochka)를 구축하여 휴전선을 긋고, 마치 그것이 '
대립된 두 이념'인 것처럼 고정화하고 사실화 시킴으로써 전자는 신조제
일주의적 성향을 띠고 '정통교리'라는 깃발 아래 집결되었고, 후자는
학문적 우월감이라는 야심을 안고 '호헌'의 기치 아래 모여졌으며 그리고
는 각기 제 갈길을 조금도 유감없이 걸어가 버렸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
는 김이곤 교수가 박형룡과 김재준의 논쟁을 상당히 공평하게 평가하려
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여전히 성경무오라는 교리
를" 성서자신의 소리를 막는" "기독교 신앙의 대 원수"로 봄으로써 성경
의 절대권위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경
향이 에큐메니칼의 주류적 입장이라는 것을 부인할 자가 많지 않을 것
이다.
복음주의 성경관과 에큐메니칼의 성경관을 개관하였거니와 이들이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요컨대 복음주의 성경관은 한국교회에 신
앙과 생활의 절대기준을 제공해 주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성경관
의 형식적 수호에 치중하다가 성경의 생명적 내용과 삶에의 포괄적 적
실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약점이 있다. 반면, 에큐메니칼의 성경관은
학문의 발전을 자극하고 삶과의 관련성에 관심을 돌린 장점이 있으나
신앙과 생활의 절대기준의 뿌리를 뽑아버림으로써 한국교회를 상대주의와
혼합주의 그리고 주관주의의 늪으로 빠뜨린 단점이 있다.
2. 역사비평(historical-critical method)
이제까지 말한 성경관의 차이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역사비평에 관
한 태도의 차이와 관련되어 있다. 박형룡과 김재준의 성경관 논쟁은 사
실 모세오경에 관한 김재준의 '문서설(documentary hypothesis)'도입을
축으로 해서 벌어졌던 논쟁이었고 역사비평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 수용
적 태도와의 갈등이었다.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성경해석법에 있어서 이러한 갈등은 한국교회
역사에 계속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역사비평이란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과 세계를 창조하신 후 철수하시고 이 세상이 자연법칙대
로 돌아가도록 하셨다는 자연신론과, 만물의 척도는 인간 (이성과 경험)
이라는 것을 내세웠던 계몽사조의 영향을 받아 성경도 다른 책과 다를
바 없이 이성에 의해 비판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전개되는 성경해석
방법이다. 이러한 역사 비평에 대해 대체로 복음주의들은 비판적인 태도
를 지니고 있고, 에큐메니칼은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비평에 대한 이런 서로 반대되는 입장이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복음주의는 성경의 본문을 '이성비판'의 칼로 부터 보호함
으로써 한국교회에 해석할 수 있고 설교할 수 있는 본문을 남겨 주었다
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역시비평에 대해 수비적 자세만을 위하여 그
것이 제기한 문제들을 학문적으로 다루지 못함으로써 성경해석학을 발전
시키지 못한 단점이 있다. 반면에 에큐메니칼은 '인간'이 계시되신 '하
나님'을 인간이성 법정의 '피고석'에 세워놓고 마구 취조하고 심문한
'독신적 오만'에 빠졌으나, '잠자는 경비견'과 같은 복음주의로 하여금
깨어서 성경본문을 연구하도록 자극한 점은 있다.
3. 성경본문(text) 과 삶과 맥락(context)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성경해석은 또한 성경본문과 삶의 맥락 면
에서도 차이점을 보인다.대체로 전자를 성경본문을 강조하고 후자는 삶
의 맥락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는 어떻게 하든지 성경본문에 충
실하고자 하는 관심을 보이고, 후자는 성경 본문보다는 그것을 적용하
는 삶의 맥락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은 이렇
게 각기 강조점과 관심사의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차이점은 서
로가 다루는 이슈의 폭 면에서도 두드러진다. 관심의 폭이 어떻게 다른
가를 보기 위해 [신학지남]과[기독교사상]의 목차를 비교해 보면, 전자
는 주로 성경 및 정통신학과 직결된 주제들을 다루는 경향이 있으나, 후
자는 민주, 민족, 민중, 평화, 해방,이념, 통일, 공해, 빈부 등 현실적
인 삶과 직결된 주제들을 다루는 경향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취급하는 이슈들에 있어서 복음주의는 좁고 에큐메니칼은 넓은
면이 있는 반면에, 그것들을 다루는 깊이에 있어서는 에큐메니칼은 구태
여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없는 얕은 차원에 머물러 있고 복음주의는 기
독교의 독특성을 살리는 깊은 차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에큐메니칼은 성경을 적용하는 장으로서의 삶을 강조하면서,
현대의 삶이 기준이 되어 성경본문을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였고, 복음주
의는 성경의 메시지를 삶의 현장으로 옮겨놓지 못한 오류를 범하였다.
전자는 삶의 변혁에 관심을 가졌으나 '알맹이 빠진 기독교'로서는 삶을
변혁시킬 수 없다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후자는 삶의로부터 이탈함으
로써 '말 아래 둔 등불'이 되고 말았다.
복음주의의 대표적인 주석으로는 박윤선의 [성경주석]을 들 수 있고,
성경해석의 교리적 틀을 제공한 것으로는 이러한 책들이 앞서 지적한
대로 성경과 정통신학의 '텍스트'에 충실하려고 애쓴 작품들임에는 틀
림이 없다. 그리고 한국교회 신앙을 성경의 토대 위에 든든히 세운것
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아픈현실'에 성경을 얼마
나 실제적으로 침투시켜 그것을 성경적으로 치료했는가하는 질문을 던
질 때 자신있게 "예"라고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 아닌가 한다.
에큐메니칼 쪽에서 성경을 현실에 토착시키려는 성경해석적 시도로서는
안병무의 민중신학과 윤성범의 토착화신학(문화신학)을 들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한다. 전자는 한국의 '아픈'정치현실에 성경을 적용하려했고, 후
자는 한국의 토속문화와 기독교를 접목시키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는 한국교회의 '중병을 않는 한국 사회 현실'에 관심
을 돌리게 하고,또한 사회 운동 차원에서 민주화에 기여한 면이 없지 않
으나 '민중'을 이념화함으로써 예수님을 '민중의 혁명가'로 변질시켰고,
교회와 세상의 구분을 철폐하고 하나님 나라를 정치적인 공동체로 전락
시켰으며 (요6장과 정면충돌),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와 역사적 부활을
왜곡하는 오류를 범했다. 한편, 윤성범의 한국인의 종교심성에 대해 관
심을 가지게 한 면이 있으나, 단군신화를 삼위일체의 표시로 부고, '성
성)'을 '신'의 근본개념뿐만 아니라 모든 대립과 투쟁의 해결개념"으로
봄으로써 "대범한 혼합주의"에 빠졌다.
III. 비교에서 얻는 교훈
이제까지 필자는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을 성경해석 면에서 비교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제시한 후, 경향에 있어서 서로의 차이점을 성경관 역사
비평, '텍스트'와 컨텍스트'측면에서 지적해 보았따. 이렇게 함으로써
이미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암되었지만, 그것을 다시 요약하여 제
시해 보고자 한다.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서 알게 모르게 품고있는
경직된 폐쇄성과 독선성이라 하면, 흔히 복음주의가 에큐메니칼에 대해
서 가지는 태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에큐메니칼도 복음주의에 대해
서 동일한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와 아울러 근거 없
는 오해에 '근거한' 속단을 서로 피해야 한다.
성경관에 있어서 복음주의는 성경의 절대권위를 사수하되, 형식적 무오
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무오와 삶에이 적실성이 있는 무오를 학문 및 실
천적으로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에큐메니칼은 학문적 자율성과 현실
적 적용성을 주장하면서 스스로 빠져든 상대주의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성경의 절대권위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역사비평 면에서 복음주의는 성령이 100%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100% 사람의 글이라고 보는 워필드의'동류설(concurrent theory)' 을 따
르면서, 사람의 글이기 때문에 '글'의 학문적 분석이 성경해석에 필요하
다는 면에서 역사비평의 자극을 받아 좀더 깊은 해석방법 모색에 힘을 써
야 할 것이다. 에큐메니칼은 역사비평의 전제(인간이성이 계시의 판단권
을 가지고 있다는)를 포기하고, 성경이 100%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차원
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텍스트'와 컨텍스트'면에서, 복음주의는 성경의 지평으로 현대인의 삶
의 지평을 변혁시키는 면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현실의 '아픔
'을 품고 같이 아파하면서 복음의 핵심(십자가와 부활)으로 그것을 치료
하는 '사람의 해석학'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에큐메니칼은 무의식 가운
데 현대의 지평으로 성경의 지평에 충실하도록 방향 전환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첫머리에서 이 글이 '그림자 복싱'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명했는데 워낙 방대하고 복잡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필연적으로 나타
나지 않았나하는 우려가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이 방향의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데 일조가 되었으리라 생각하면서 복음주의에 속한 한 신
학도로서 최근의 복음주의가 위에서 제시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고 에큐메니칼도 성경적 입장으로 돌아아 '진정한 복음주의적 보편성
'을 지니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하는 희망을 걸어본다.
6. 자유주의에서 본 복음주의 운동
감신대 교수 : 이 정 배
필자가 [목회와 신학]으로 부터 청탁받은 주제는 "자유주의에서 본 복음
주의"이다. 여기에서 편집자가 정하고 있는 자유주의란 19세기 유럽 신학
의 인본주의 흐름이 아니고 20세기 말 미국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 (과정
신학)의 경향성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유주의란 여기에서는 세계기
독교협의회 (WCC) 산하의 한국 에큐메니칼 신학운동의 사조를 말하고 있
는 것이다. 반면에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복음주의란 개념은 독일지역 등
에서 가톨릭 신앙에 대한 개신교적 입장 표명의 의미로 수용되고 있는 것
과는 달리 근본주의 또는 기존 보수주의의 맥락에서 정의될 수 있을 것
이다. 또한 이러한 복음주의 사조 속에는 제자훈련이나 성령운동을 근본
으로 하는 교회들도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물론 어떤 특정
신학사조와 어느 교단의 기본 방향성 사이에 내적 일치의 상황을 말하기
는 아주 어렵다. 특정교파나 교단이 자유주의 신학노선이든지 또는 보수
주의적 사조이든지 가운데 하나를 근간으로 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 한국 신학의 세가지 흐름 =
실제로 한국신학의 흐름을 다음 세가지의 입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가부장적이며 부권적인 정신풍토와의 연관 속에서 성부이신
하나님이 초월성 객관성 또는 절대 타자성을 강조하는 장로교 계통의 입
장이 있다.
그리고 휴머니즘의 강조 또는 역사적 현실분석의 빛에서 초월적 신의 역
사적 현실분석의 빛에서 초월적 신의 역사적 융화를 비중잇게 말하는 성
자 중심의 신학사조(기장 및 장로교)가 있다. 마지막으로 모성적 감성을
가지고 은혜체험을 강조하면서 성령중심의 신학운동을하는 기존교단들이
존재하고 있다. 물론 이런 식이 유형화 작업이 절대타당한 것은 아니지
만- 개개교단 속에서 점차 이러한 세가지 유형들이 복합적으로 자리잡
아 가고 있기에 -어누정도 기존 교단들의 신학적 입장을 대변해 준 것으
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성자의 신학적 관심을 표명하는 교단들은 본지
가 규정하고 있는 바 에큐메니칼 운동을 주도해가는 자유주의 노선을 견
지해 가고 있으며, 성부 중심의 신학사조를 띠는 장로교단 일부 혹은 성
령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크고작은 여러 교단들은 모두가 에큐메니칼 운
동을 반대하는 이른바 보수주의 복음주의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지를 통하여 필자에게 주어진 주제는 한국교회 안에 공존하는
이러한 두 신학사조들 사이의 교리적 차이, 신학적 문제점 등에 대한
학문적 토론의 영역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신학사조를 개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여러 교회(신앙)들의-때로는 이율배반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 사회적 표현양상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해 보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감리교 신학자로서 자유주의(에큐메니칼)의 시각에서
복음주의 (보수주의) 신앙의 사회적 표현양상들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
해 보고자 한다.
=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것이다 =
임박한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믿었던 초대기독교 신앙인들은 그의 지연
으로 말미암아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때에 사도행전의 기자인 누가
는 이 땅위에 세워진 교회존재를 부각시키면서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시
작과 등가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역설하였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교
회에 대한 최상의 신학적 해석을 첨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누가의 신학적 관심을 성실하게 따르려 한다해도
적어도 우리는 가시적인 기존교회를 언제나 다가울 역사 초월적 하나님
나라의 빛에 상대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라는 내용
풍부한 신학적 표상의 빛과 현세계의 진행과정을 염려스럽게 지켜보고
가시적인 기존교회이 가야할 방향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성서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 사상은,아니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나라 사상은 구약의 희년법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인간 한 개인
의 도덕적이며 영적인 변화상태로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모순 되어진 사
회적 생산관계의 재정립 뿐만 아니라 파괴되어진 전자연(땅)의 회복의 차
원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 기자들은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하나님나라가 하늘로부터 정해
진 시간에 갑작스럽게 도래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러나 유독 예수는
당대의 묵시문학가들과 달리 더욱 임박한 종말을 선포한 세례요한과도 달
리 천구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작년에 필자는 숭실대학 기독교문화념구소에서 주최하는 심포지움에 참
여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 그곳에 참석한 분들은 복음주의 혹은 근본주의
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신학자, 목사 그리고 교회 장로들이었다. 특별히
생태계의 위기 문제를 강력하게 주장했을 때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한 자유주의 신학자가 이 모임에 나타나서 하나님 중심의 절대신
앙을 흔들어 놓고 있다는 식이었다.
이러한 느낌은 서울에서 열렸던 정의평화 창조 질서 보전(Justice, Pea
ce and Integration of Creation) 대회를 치르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함께 모여 인류에게 당면한 종말적 징후-분배문제
불균형의 극대화, 핵무기 그리고 환경파괴-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
인가를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임었건만 이 세계대회에 대해 보여준 교회의
관심은 특별히 복음주의 혹은 근본주의 사조를 표방하는 교회들의 관심은
너무도 냉담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러한 모임 자체가 절대적 하
나님에 대한 불신앙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이 해
야할 일은 지금의 문제상황에 대해 절망과 초조감을 나타내 보이기 보다
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이 말을
틀리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절박한 위기감을 가지고 신앙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정치적이며 윤리적 차원에서 복음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는 시도들에 대해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과연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예수의 선포는 오늘 우리들에게 무
었을 의미할까?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 형상(Imago Dei) 이란 말을 가지
고 인간의 신적출처 및 속성의 의미로서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 개념이 하나님과 함꼐하고 인간의 미래적 목적에 대한 역동적 논술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신학적 이해속에서 우리는 결코 몇몇 복음주의나 근
본(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처럼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틀에 박힌 성경해석 =
다음으로 필자가 종종 복음주의(근본주의)자들과 함께 만나게 될 때 경험
하는 것은 절대적 신앙이란 이름으로 스스로 용납되어지는 반지성주의 혹
은 현대적 의미의 바리새주의적 경향이다. 성서는 그 자체로 신학적 문서
이다. 창세기만 하더라도 1장과 2장이 각기 다른 신학자에 의해서 쓰여진
본문들이다. 이것을 문자영감설, 성서무오설-이러한 입장으니 종교개혁
이후 구정통주의라고 불리우는 개신교 전통속에서 생겨난 것이다.-에 의
지하여 부정하는 것은 실제로 불행한 일이 되고 만다. 자료설을 인정한다
고 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필자가 3년가까이 우성감리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확증한 사실
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런 시도를 통해서 우리는 지성의 침묵을 강요당하
는 불쌍한 현대신앙인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인간의 생득적 능력을 - 이성 및 감성- 포기하는
것은 종교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 예
를 들어보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는 도상에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이셨다는 성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위의 본문은 제사장문서(P문서)에 속한 부분이다. P 문서는 하
나님께서 자연을 지배하시고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능력을 고백하
려는 신학적 목적을 가지고 쓰여진 것이다. 실상 메추라기 사건은 계절
적 이동을 하는 도상에서 지쳐 쓰러져 있는 메추라기를 손쉽게 잡을 수
있었던 경우이며 또한 만나사건은 하늘에서 내린 이슬과 나무가지의 진
액이 함께 엉켜져서 먹거리로 만들어진 경우였다. 바로 P 문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이런 자연 사건을 다스리고 주재하신다는 자신의 신학적 고
백을 피력한 것이었다. 이것은 신앙고백의 문제이다. 더욱이 P 문서 기
자는 하나님께서 이런 자연 사건을 다스리고 주재하신다는 자신의 신학
적 고백을 피력한 것이었다. 이것은 신앙고백의 문제이다. 더욱이 P 문
서는 지성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맥략에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창조와 진화를 양자택일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보수적 창
조과학적 신앙태도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진화
론이란 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생성되었는가 하는 "어떻게" 의 물
음의 영역속에 있는 것이며 창조신앙이란 이 세계가 "왜" 존재하는가,
어떤 것이고 무는 아닌가 하는 물음과 관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
로 "왜"의문제나 "어떻게"의 문제는 각자 물음의 영역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하는 이유로 상호 배척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진화론은 이 세계의 "왜" 의 물음에 대해 답하지 못한다. 반면에 '창조
론'은 그것이 이미 신학적(신앙고백적) 문서에 기초되어 있기에 "어떻
게"의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책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러한 두 물음은 인간의 당면문제와 미래적 발전을 위해서 상호 보충되
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성서의 창조본문을 마치 과학 교과
서로 읽어 나가려는 신앙인들을 보면서 놀라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러한 반지성적인 신앙열정은 때로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또는
같은 기독교 안에서도 다른 교파에 속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율법주의와
(바리새주의) 종종 연결되어 나타나기도 한다."예수=천당" "부다=지옥"
이라는 이야기는 오히려 옛말이 되었고 이제는 자신의 교리와 조금 다
르다고 하는 이유로-이것은 특별히 연옥설 및 조상숭배에 대해 관용적
이해를 갖고 있는 천주교에 대한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태도인데- 다른
교파를 이단시하는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심지어 보수 지향적인
어느 큰 교회에서는 다른 교파에서 세례받은것 조차도 인정하지 않으며
자기 교회에서 일정기간 교육을 받은뒤 다시 세례를 베푼다고 하는 이
야기도 들리는 지경이고 보면 그들의 태도가 얼마나 율법주의적인지 알
수 있다.
예수계서 심지어 하나님은 의인뿐만 아니라 악인에게도 햇빛과 비를 내
리신다고 말씀하셨고 너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라고 했으며 바리새
인들의 의로움보다 커야만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역설하셨다. 그러나
오늘 자신의 신앙을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록 너와 나를 나누
고 우리를 형성하지 못하는, 이를 학문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종교의 사
회 통합적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교리의 영역은 인식(율법)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 인식을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
의 고백 신조적 갈등문제 때문에 비롯된 30년 전쟁(1618-1648) 의 종료
수 유럽대륙에서는 교리중심의 정통주의(근본주의)사조가 급격하게 퇴조
하고 머리의 종교가 아닌 마음의 종교로서의 경건주의 운동이 전개되었음
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잘못된 선민사상에 물든 교회지상주의 =
이와 연관 속에서 우리는 교회내적으로 팽배해지고 있는 이기주의 혹은
교회지상주의의 실태를 지적해야 되겠다. 이것은 물론 어떤 특정 교단 및
특정교회의 경우에만은 아니겠으나 다른 교단에 비해 많은 성도를 가지고
있는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보수교단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
이다. 지금까지 도시의 기성 교회들은 부에 편승하여 중산층을 자신의 주
된 선교대상으로 삼는데 정성을 쏟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요사이는 더
욱 '무슨 무슨' 선교원' '무슨'모임, '무슨 회' 등의 이름으로 기성교회
에 마음을 못 붙이는 비교적 여유있는 계층들을 모아 제자훈련 영성훈련
등을 시키는 사례도 눈에 띈다.
이런 노력들은 긍정적인 측면을 도외시 할 수 없겠으나 생각해 보아야 할
측면도 없지 않다. 즉 중산층이라는 사회적 계층에 속한 교인들은 그 속성
상 강한 지적 욕구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더욱 자신의 삶을 견고하
게 하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에 때로는 아주 비합리적인 모습을 갖고
있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종교적 신앙과 인간의 이기심이 묘하게 조화되
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은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인간 심
리에 호소하는 목회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현상 이면
에는 선택론(예정론)에 근거한 교회에 대한 잘못된 신학적 이해가 자리잡
고 있음을 우리는 눈여겨 보아야 한다.
구약성서를 보면 하나님은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그 분의 자유에 따라 택하여 주셨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언제나 그것
자체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즉 '무엇을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선택개념을 자
기 목적지인 완결체계를 지니는 선택개념을 자기 목적지인 완결체계를 지
니는 배타적 선민사상으로 변질시켜 나갔다.
오늘날 새로운 이스라엘의 의미로서 받아들여지는 교회도 배타적인 선민
사상처럼 자기 목적지인 선택개념으로 이해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현실의 교회는 그렇기에 보여지는 현상처럼, 하
나님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결국 교회지상주의를 가시화 시키고 있는 것이
다. 즉 이곳 저곳에서 교회들이 기도원 수양관 부지를 경쟁적으로 마련한
다든지, 노인복지시설이나 근로자 복지 시설을 세우려고 한다든지 또는 주
택문제가 심각하여 전세금을 내지 못해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끊고 있는
데도 교회주변의 집을 사들여 일주일에 한번 이용할 목적으로 주차장으로
만들고 있는 경우든지, 330만명이나 되는 절대빈곤층이 존재하는데도 여전
히 아시아에서 제일 큰 교회를 짓겠다든지 재료를 어디에서 수입하여 지었
다느니 하며 자랑하는 것들은 아무리 변명을 해도 교회지상주의의 표명으
로만 생각된다.
= 정교분리와 정권을 위한 '기도회'=
이러한 교회중심적 이타주의(교회지상주의)는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며 수정되어야 할 측면을 많이 지니고 있다. 성서는
우리들에게 '선한사마리아'인이 되라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더욱 본질적
으로는 끊임없이 강도가 나타나고 있는 삶의 현장인 여리고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묻고 있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필자는 다시금 처음 관점으로 돌아가서 한국적 현실을 인지하
는 복음주의적 종교지도자들의 근본 입장을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겠다.
우리민족은 군사정권 아래서 민주화를 열망하며 그의 실현으리 위해 많
은 수고를 감당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현실 과제에 직면해서 한
국교회는 마치 히틀러 정권때의 독일 고백교회와 독일 기독교 연합이 각
각 다른 입장표명을 하였던 것처럼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하였다. 즉 보수
주의 내지는 복음주의적 신학노선을 가는 교회들은 조찬기도회 등의 형
식으로 정권의 유지와 안녕을 빌어 주었고 반대로 NCC 에 가맹한 진취적
교회들은 반독재투쟁을 재야단체와의 연계 속에서 이끌어갔다.
이러한 서로 다른 입장표명 속에서 보수교단측은 종교와 정치의 분립을
강조하여 종교인의 정치참여를 인정치 않았고 반대로 자유주의 신학노선
측은 현실망각의 종교를 아편으로 규정하게끔 된 것이다. 그러나 기존정
권을 위해 기도하고 복을 빌어주는 것은 정치행위가 될 수 없다는 말인
가? 그것은 모두 이데올로기 비판적이든지 또한 이데올로기 긍정적인 시
각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모두가 다 정치적 태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과 정치적 인간이 따로 존재할 수 있는 것
은 더더욱 아니다. 얼마 전전민족을 놀라게 하였던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건에 대한 교회들의 태도를 앞서 언급한 한국교회의 현실태를 잘 반
영해 주고 있다.
= 교회는 자본주의의 시녀인가? =
문익환목사를 공산주의자로 몰고가는 교회 목사들이 없는가 하면 그런
사람이 어찌 '목사'냐고 목사직 자체의 실격을 거론하며 흥분하는 '목
사님'들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비판자들이 모두가 반공 이
데올로기에 길들여져 있었다고 한다면 문익환목사는 오로지 이데올로기
비판적인 그리스도 정신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살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보수신학을 실천하고 있는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의 반공의식은 6.26경험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복
음과 이데올로기를 적어도 구분할 줄 알아야 했고 더욱 이데올로기 비판
적인 복음의 능력을 소화해 내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그들은 오히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자본주의와 기독교가 공존
하고 있는 현상만큼 불가사의 한 일이 없다고 보는 도르테 죌레와 같은 말
에 귀 기울이며 더욱 철저하게 자본주의의 시녀로 되어가고 기독교 정신과
그의 추종자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예언자성을 갖추어야만 되었
갖추어야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복음주의를 표방하든지 보수주의를 표방하든지 간에 대형
교회촌을 이루고 있는 강남지역들은 얼추잡아 25% 정도의 기독교인들로 구
성되어 있다고 한다. 어느 학지에 따르면 적어도 한 지역에 기독교 인구의
비율이 30% 가까이 되는 경우에 그 지역의 문화는 완전히 자신들의 기독교
정신에 따라 바꾸어 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오늘날 강남지역은 기독교 정신을 몰락시키는 자본주의 그
것도 철저하게 배격되어야할 퇴폐적이고 소비지향적인 자본주의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오늘 우리가 정통주의, 근본주의 더욱
복음주의라는 가장 이상적인 신학적 노선을 따라 교회생활, 신앙생활을 하
고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가인과는 다른 삶의 정조(Ethos)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즉 대지에 뿌려진 피의 순환법칙을 과감히 끊고 살아야 한다는 그리
스도의 부름을 실제로 삶속에서 살고 있다고 고백할 수 없다면-이것은 자유
주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되어져야 하는 물음이다-
우리는 여전히 원죄에 허덕이는 인간의 모습 그 이상이 아닐 것이다.
필자는 나름대로 지난 3년동안 목회하면서 교회의 현장을 느껴볼 수 있었
다. 이론대로 적용될 수 있는 곳은 결코 아니었다. 자유주의 신학노선을 기
본으로 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교회관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교회적으로 수용되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체험했다.
이른바 민중교회도 그 존재이유 및 성립배경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교회가
그렇게만 되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오히려 복음적으로 잘 다스려
지고 양육된 교회구성원들이야말로 한국의 미래, 교회의 장래를 위해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확신해 본다. 열심으로 기도하는 사람,
매일 성서를 읽고 자신의 삶을 되새겨 보는 사람, 믿음의지반을 갖고 흔들
림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서 많이 나올 때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임의로 불기 때문이다.
7. 한국교회 성장과 복음주의
장충단성결교회:홍순우 목사
한국교회는 2000년 기독교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크게 성장
한 모범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인도같은 나라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도마가 가서 선교를 시작했다고 믿는데, 그 나라의 기
독교인 수는 전체 인구의 2% 정도일 뿐 나머지는 힌두교 아니면 모슬렘교
그리고 잡다한 종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인도가 이렇게 선교를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시작했건만, 그것도 예수님이 친히 택하셔서 3년
동안이나 주님의 행적을 보고 그 행적에 동참하고 교훈을 받은 사도에
의한 선교임에도 오늘날에는 힌두교외 모슬렘교의 아성이 되고 말았다.
이런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인도가 낳은 세계선교의 젊은 기수 모빈 칸(Mobin Kahn)박사가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인도 사람들은 복음을 받을 줄만 알앗지 줄줄 몰라서
결과적으로는 받은 것도 다 뺏기고 말았다."
이에 비하면 인도보다 거의 1900년이나 뒤늦게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
교회는 오늘의 기적을 만들어냈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인 것 같다.
I. 활발한 한국교회 성장 연구
오늘날 많은 선교학자들과 교회 성장 연구팀들이 한국 교회 성장의 사례
를 예리하게 분석하하고평가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특별히 20세기에 접어
들면서 교회의 물량적 수적 성장에 대해 거의 체념하다시피 할 바로 그때
"그게 아니요"하고 아무리 세상이 현실적 육체적 괘락을 추구한다고 할지
라도 교회는 성장해야 하고 성장 가능하다는 성경적 신학적 실제 이론을
정립한 운동이 일어났다. 주역들은 맥가브란(D.McGarvran) 과 피터 와그
너(Peter Wagner)같은 풀러 신학교의 이른바 교회성장학파였다.
풀러신학교 지하도서관 3층에 꽉 차있는 것은 교회성장에 대한 학위논
문들과 교회성장에 관한 신학적 실패 이론서들이다. 전세계에서 풀러신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수천명이나 된다. 뿐만 아니라 거기
서 공부하고 나간 사람마다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
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교회의 성장을 가능케 한 요인은 분명히 복음주의의 입장을 고
수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도 성립이 될 듯하다. 왜냐하면 한국교회 성장에
있어서 직접 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준 것이 교회성장학파이기 때문이다.
또한 1885년 한반도에 처음 상륙해서 선교 활동을 펼쳤던 언더우드나
아펜젤러같은 선교사도 19세기 미국을 휩쓸었던 대부흥운동에서 영향과
감화를 받은 젊은이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한반도에서 펼친 선교활동이
너무나 복음주의적이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20세기초 한국이 일본 군국주의 세력에게 강제로 합병당했을 때
민족의 비애를 위로하고 격려한 것 역시 복음주의적 메시지였다. 망국민
의 한을 풀고 동시에 강대국인 유럽과 미국의 힘을 의존하려는 마음이 기
독교의 복음을 수용하므로 애국 독립 자유를 누리려는 성향이 교회를 성
장시켰다고 볼 수 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반세기에 가까운 압박의 질곡에서 벗어난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38선 이북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바람에 '동양
의 예루살렘'이라 자타가 인정하던 평양, 선천 등지의 교회가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것이 한국교회 성장의 두번째 계기라 할 수 있다.
고향 교회를 떠나 있는 재산을 다 놔두고 원한의 38선을 넘어온 크리스
챤들은 십중팔구는 열성적인 신앙의 소유자들이었다. 남한에 있는 교회
의 미온적이요 양반적이며 점잖은 신앙성향에다가 북쪽의 이른바 '열심
쟁이'들이 어울리면서 한국교회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었다.
한국교회 성장의 세번째 계기는 6.25를 통한 미국의 원조에서 비롯됐
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
에 있고, 장.감,성.침 등 각 교파에서도 세계적인 규모의 교회들이 모두
한국에 있다고 자랑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복받은 나라요, 한국 사람은 종교성이 풍부
한 백성이다. 한국 사람은 신앙생활도 극성스럽게 열성이다. 열심기도,
열심전도, 열심모임, 열심헌금등은 세계 어느 나라 교회도 한국교회를
능가하지 못할 것 같다. 특별히 한국교회의 새벽기도, 철야기도 그리고
40일 금식기도 등 기도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교회도 감히 흉내조차
내기 힘들만큼 적극적인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마음껏 자랑하고 또 다른 나라 교회에 수출 이식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교역자들이 자기네 방법
으로 한다 하여 신사적이고 지성적인 목회를 주장하고 시도했으나 안돼
서 한국에 있는 기도원을 찾아와 금식하며 한국식 방법을 배워간다.
그래서 배운대로 일본에 가서 적용한 일본교회는 크게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교포가 70만명있는데 미국에서 이민
교회가 크게 성장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미국인 교회 건물을
빌려서 오후에 예배를 드리다가 나중에는 그 교회건물을 사서 주인이되
고 있다. 미국인 교인은 갈수록 줄고 한국인 교인은 갈수록 늘어나니
당연한 결과하 하겠다.
거대한 중국대륙과 경제대국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이름조차 알려
지지 않았던 한국이 이렇게 뜨거운 교회성장의 열기를 내뿜어 오늘날
복음의 수출국이 될 줄은 누가 꿈이나 꾸었겠는가. 1세기 전에 있었던
예수를 믿는 다는 고백으로 곧 목이 잘리는 무서운 박해의 역사와는
너무나 대조가 된다.
II. 복음주의가 교회 성장에 미친 영향
지금 한국은 한 건물 안에 교회가 둘셋 있고 국회의사당 안에 채플(
Chapel)이 있고 국가조찬기도회가 해마다 열리는 복받은 나라가 됐다.
이같은 교회성장을 가져온 그 배경에는 부흥사들의 복음주의적 메시지
선포가 주효했으며, 복음주의적 목회자 등의 복음주의적 메시지 선포에
도 기인한다는 사실으니 많은 학위논문이나 통계조사에서 입증되고 있다.
켈리(Dean M.Kelley) 가 펴낸 [Why Canservative Churches are Growing]
이라느니 책에서 보면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을 하고
있지만 자유주의 입장에 있는 교회는 급격히 감소 추세에 있음을 통계와
도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 왜 자유주의 경향을 취하는 교회가 계속 감소일로에 있느냐 하
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자유주의 입장에 있느 교회는 진리관이나 가치관에서 절대주의가
아닌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가령 '이 계명을 어기면 절대로 안된다.
멸망한다'가 아니라 ' 그 계명에 얽매여 노예가 되기보다는 자유롭고 융
통성있게 믿어도 좋다'라고 매우 관대하고 관용하는 메시지를 선포한다.
둘째, 자유주의 입장에 있는 교회는 규율상의 강력한 통제나 엄격한 지
도를 배척하고 다양성을 용납한다. 자유주의 노선 그대로 신앙의 자율적
인 강조하고 강력한 통제나 억압, 압박감을 철저히 배제한다. 그래서 백
인백색의 다양성을 바람직한 것으로 내 세운다. 즉 카리스카적인 신앙
제약에서의 탈피를 높이 평가한다.
셋째, 자유주의 입장에 있는 교회는 다른 종교와도 융합하고 대화를
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그 자세의 본질은 목표달성을 위한 적
극적이고 열성적인 면이 없고 다분히 미온적 태도로 나타남이 특징이다.
또한 행동 결단에 있어서 자기 중심적이고 개인 위주에 치우쳐서 자기
포기와 의존적인 것을 배격한다. 그래서 개인의 책임소재를 통감하고 의
존적인 신앙을 유치하게 여긴다.
그 다음에는 전도, 구령에서도 전혀 소극적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선교
에 모든 것을 떠맡기고 사회정의를 앞세우며 개인의 멸망이나 교회의
침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상의 분석을 볼 때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입장을 고수하는 교회가 그
교세면에서 점점 감소하고 있음은 필연적 결과인 같다.
그런가 하면 대조적으로 20세기 후반기인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부흥성
장을 거듭하고 있는 보수주의 혹은 복음주의 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간?
그것은 우선 메시지에서 존재와 고난 등에 관해 분명하고 엄격히 설파하
는 특색을 가진다. 가령 인간 존재의 최고최대의 목적과 의미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데에 메시지의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고난의 의미
도 합력하여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시기
위한 서곡(prelude)이요, 가면을 쓰고 찾아온 하나님의 축복(blessing
disguise)이라고 단정적이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그리고 믿어야 할 진리와 설정된 목표의 달성이나 순종에 있어서 희생적
인 응답(restonse) 을 하고 있다. 따라서 세워진 지도자와 공동체 규율에
대한 열열한 충성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어떠한 장애나 핍박 가운데도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를 받는다는(고전9:16) 성경말씀을 액면 그대
로 수용하고 순종하려는 열심이 역력하다.
켈리는 이상의 몇 가지 요인들이 교회를 성장케도 하고 교회를 텅텅 비
게도 한다는 논리를 타당한 근거와 이론을 통해 전개하고 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교단적 차원으로는 감소일로에 있는 자유
주의 색깔의 교단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그 교단에 속한 어떤 개교회 혹은
몇몇 지교회는 이상하게도 계속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연유를 자
세히 살펴보면 목회자가 복음주의적인 설교를 하고 전도를 권장하고 경건
한 신앙생활을 강조하고 복음의 원색적인 설파를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 그 반대로 성장하는 교단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어떤 지교회는 부흥
이 안되어 교인들이 떠나 빈자리가 많아지는 경우도 없지 않으니, 그 이
유를 보면 그럴만한 타당한 근거가 그 밑에 깔려있음이 어김없이 발견된
다.
페리(Lloyd M.Perry)와 스트러바(John R.Strubhar) 공저인 [Evangelis
tic Preaching] 첫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주의적 설교는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과 그 역사하심이 있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교회가 성장
한다 할때, 그 성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했다.
그래서 레이 앤더슨(Ray Anderson)이 편저한[Theological Foundation
of Miristry]에서 모든 목회는 하나님의 목회(All minstry is God's
ministry)"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당신은 교회도 희망은 있다 (Hope for Your Church)]의 저자 헤롤드
펫켓(Harold L.Fickett)은 열 가지 교회 성장 원리를 지적하면서 그리
스도의 중심(Christ Centered) 의 목회, 성경중심 (Biblicals Based)
의 목회, 전도하는 교회(Evangelistic)를 역설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대목인 "주께서 나의 사역에서 손을 떼신다고 하면 나의 언행 전부는
당장 이가봇이 되고 말 것이다"는 주장은 복음주의적 교회 성장을 가능
케 하는 요체라고 할 수 있다.
홀리스 그린(Hollis L. Green)이 쓴 [Why Chuuches Die]라는 책에도 이
런 말이 나온다.
"설교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사람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
게 선포하는 것이다." 오늘날 죽어가는 교회, 교인이 감소일로에 있는 교
회는 그 강단에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성령의 감화) 받은 설교자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선포되지 않은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그 뒤로 전개되고 있다.
이상의 모든 근거에 의해 한국교회 성장요인을 조명해 본다면, 그동안
우리의 선배 그리고 우리 모든 목회자들이 복음주의적 말씀 선포와 목회
사역을 해왔다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III. 복음주의 입장이 끼친 부작용
복음주의적 입장을 잘 지켜 한국교회를 오늘의 성장까지 이르게 한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성장을 가져온 사실 자체에 잘못된것은 없는가?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비난과 규탄의 표적이 될 만큼 썩어서 냄새나는
일이 있지는 않은가? 즉 '성장에 수반하는 아픔'이 있지는 않은가? 우
리는 여기서 이 물음을 물어야 할 것이다. "물음이 없는 곳에는 대답도
없다 (Ohne Frage Keine Antworte)"리고 했다.
중세교회가 그렇게 절대적 권위와 힘을 가지고 세계 (영계와 세속사회)
을 호령하고 그 교세는 막강했으나 그 안에 그릇되고 부패하는 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진작에 발견해서 손을 썼어야 했다.
중세교회가 썩고 썩어서 냄새가 날 때까지 놔두었음이 후세의 비판을 받
아 마땅한 일이라면, 오늘 한국교회의 부패현상이 무엇인지 우리는 겸허
하고 솔직하게 묻고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
아픈 일이나 그 아픔은 더 큰 아픔, 아니 치명상을 미리 막는 축복의 결
단이 될 것이다.
한국 복음주의 교회들의 취약점이 무엇인가? 왜 불신사회의 규탄을 받고
있는가?
1. 지나친 개교회주의
첫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지나친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일 것이다.
한반도에 정착한 한국민족의 5000년 역사는 수난의 역사였다. 강대국들의
힘의 각축상이 되고 싸움터의 비애를 겪지 않는 날이 극히 적었다.
그 결과는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약삭빠른 습성이 몸에 배어서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같다. 난리가 났다하면 나라와 민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나가서 싸우려는 생각은 전혀 없고 어디로 피난가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리고 그 피난처는 자기만 남에게 가르쳐 주지 않
고 숨기는 습성 있다.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도 이런 습성을 자극할 때 쉽게 복음이 수용되는
토양이 우리의 실상인 것 같다. "이 세상은 죄와 저주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니냐?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 믿으면 천국의 영생복락을 보장
받는다"는 단순한 메시지 속에 담겨져 있는 도피성, 피난처 의식이 이
나라의 복음주의 교회 밑바닥에 깔려있는 취약점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곧 민족 공동체와 혹은 사회의 유기적 생명체 의식이 박약하고 이기주의
적 인생관 혹은 경쟁적 가치관을 낳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복음주의적 교회가 크게 성장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내 교회, 내 성
공, 내 교회의 성장, 나와 내 가족이 중심이 되고 있다고 할 때, 교회는
성장할지 모르나 그것이 지나친 경쟁심리를 유발하고 더 나아가서는 추
태까지 낳게 된다.
뿐만 아니라 복음주의적 교회가 성장한다할 때. 그 교회를 성장시킨 교
역자들 속에 도사리고 있는 우월감과 오만성은 이기주의, 자기 중심주의
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즉 내가 목회를 잘해서 이렇게 자긍심이 노출
될 때 그 신앙 인격의 모순성과 천박성을 여지없이 폭로한다.
참으로 바람직한 복음주의적 목회자는 크게 승리하고서도 오히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해야 할 일을 하는데 주께서 여기까지 도와주셨습니다."
라는 겸비한 자세를 갖는다.
2. 분파주의와 싸움
어떤 사람이 "어린 아이가 싸우며 크듯이 한국교회도 싸우고 분열하
면서도 컸다."고 말했다는데, 그 말에 수긍이 가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자유주의적 교회가 비교적 관대하고 너그럽다면, 보수적 복음주의적 교
회의 특징으니 좀 관대하지 못하고 독선적이고 아집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신앙척도에 맞지 않으면 결연히 핏대를 올리고 고함을 지르고
"마귀새끼"니 "이단"이니를 남발하기 일쑤다. 그래서 총체적으로 볼 때
자유주의적 교회보다는 보수주의적 교회가 더 잘 싸우고 분열도 더 잘하
는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보수를 강조하는 교회일수록 분규가 많고 분열이 더 많았
음이 한국교회의 특징이다. 이 특징이 한국교회를 성장시켰다고 긍정적
인 평가를 하지만, 엄격히 따지자면 싸움과 분파, 분열이 오기를 발동
시켜서 일종의 적개심 혹은 복수심 같은 심리현상으로 극성스러운 열심
을 유발해서 교회 성장이라는 열매를 다는 일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가령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소년이 부자나 많이 배운 이들에 대한 야릇
한 경쟁심리로 와신상담 끝에 성공을 하고 마는 격이 아닌지 모르겠다.
결과론적으로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동기 그 자체가 순수하고 고상하지
못하면 그 후유증이 쓴물이 되는 법이다. 한국교회에 문제가 많은 것은
바로 이 쓴 물이 스며드는 데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3. '어용'이라는 불명예
한국의 지난 수십년은 불행한 정치적 현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
다. 자유당 정권이 3.15 부정선거를 저지할 때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입
을 다물고 있었다. 물론 바른 소리 한 이들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를 제안하고 감행한 장본인들 가운데 대부분이 기독교인었다.
그리고 그 장본인들은 격려하고 협력하고 축복해 준 교회지도자들이 얼마
나 많았는가? 그래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젊은 세대들은 기독교와 자
유당 정권을 한뿌리로 간주하고 매도했다. 이는 한국교회사에 큰 오점으
로 남을 일이다.
그후 군인정치가 계속되는 동안도 분명 잘못된 일이 많았음을 천하가 다
인정하는 데도 그 잘못을 책망하지 못하고 동조.예찬.축복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이 일에 대해 쓴 웃음이 절로 나는 실책이었음을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이런 실수는 역시 자유주의적 교회지도자보다는 복음주의적 지도자들에
게 많았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범죄한 다윗왕을 책망해서
회개케 한 나단 선지 노릇을 게을리한 것을 참회해야 할 것이다.
4. 공명심의 취약성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 교회가 잘 갈라진다할 때, 그 원인으로 일차
적으로 신앙의 독단성을 보면 그 아래 깔린 의도는 아무래도 공명심의 발
동이 아니겠는가 싶다. 교권 장악, 감투의 분배, 이권의 공정분배 등이
싸움과 분열을 낳는 요인이 되어온 것을 숨길 수 없는 치부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짜 박사학위 문제는 보수적 교
회 지도자에게 공명심이 크게 작용한다는 좋은 예가 된다 하겠다.
IV.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방향
끝으로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바람직한 방향을 생각해 보려 한다.
첫째는, 한국 복음주의 교회가 앞으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심(social concern) 을 외면하지 말하야 한다. 1917년 10월 제정 러
시아와 함께 러시아정교회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은 교회 밖에서 추
위 떨고 굶주리는 절대다수의 눈물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귀족화 되어가고 있다. 경쟁적으로 초호화판을 지향한
다. 이는 분명한 위험신호이다. 교역자들이 대우 많이 받는 경쟁을 하고
있다. 대우 많이 받는 것으로 자기 목회 성공의 척도를 삼고 목에다 힘
주는 일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며, 주님을 실망시키는 일이다.
교회 예산의 상당한 액수를 사회의 복지 향상을 위해 책정해야 한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 심심치 않게 돌아다니는 루머(romor)가 있는데, 그
것은 젊은 학생들이 한국에서 큰 교회 열을 골라서 화염병을 던지겠다는
것이다.거기에 꼽힌 교회는 대체로 복음주의적 교회들이라고 한다.
화염병을 던지겠다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첫째는 불의를 행하는 정치지
도자에게 한 마디의 바른 말도 못하고 무조건 동조 협력하고 예찬하고
축복기도 해주는 것이다. 하며, 둘째는 그 막대한 교회예산을 초호화판
교회를 만드는 것과, 성직자인 목사가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비위
에 거슬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루머가 루머에 그치고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신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 차려야 한다.
우리들의 교회가 귀족회의로 변하고 중산층의 대변인이나 그들을 옹호
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면, 정부가 재벌들과 유착해서 재벌들의 비
위를 맞추고 그들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일삼느라 춥고 배고파하
는 많은 사람들을 외면하는 잘못을 책망해야 하는 예언자적 기능을 상
실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참으로 잘 자라났다. 세계 교회가 부러워하고 도움
의 손을 벌리고 한국교회를 본받고 배우려 하는 이런 추세에서 우리가
목회를 하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게 되기까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그들의 피를
대할 때 부끄럽지 않은 한국교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옷깃을 여며야
하겠다.
8. 한국복음주의 운동의 전망과 과제
합동신학교 교장:김명혁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복음주의 신앙의 기초 위에 서서 힘있게 발전해
왔다. 간하배 교수가 지적한대로 한국교회가 선교사들로 부터 물려받은
신앙은 한마디로 요약해서 "보수적 복음주의"신앙이라고 하겠다. 물론
그 가운데는 칼빈주의의 요소도 있고 근본주의나 세대주의의 요소도 있
지만, 그러나 그것을 다 포함해서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신앙"을 물려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 복음주의 신앙이란? =
복음주의 신앙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우리는 복음주의 신앙은 그 뿌리
를 한편으로는 종교 개혁의 전통에 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미에서 일
어난 대각성운동의 전통에 두고 있는 신앙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그 특성을 좀더 자세하게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복음주의 신앙이란 "그 신앙의 역사적 기원 및 발전과 관련하여 이해할
때 개혁자들의 배타적인 모토들인 '성경만''은혜만' '믿음만' '하나님께
만 영광'을 내세우며, 부흥운동에서 중점적으로 강조된 그리스도의 대속
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체험과 아울러, 20세기 후반에 복음주의 운동이
뒤늦게 강조하기 시작한 사회 봉사의 책임을 강조하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현대 자유주의 신학과 비교하여 이해할 때 하나님의 초월
성과 절대주권, 성경의 영감과 절대 권위, 인간의 전적 타락, 에수 그리
스도의 신성과 대속의 죽음,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 중생과
성화, 말씀 선포와 선교의 사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하나님
날의 종말론적 완성 등을 주창하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현
대교회의 동향],P.242).
= 한국교회와 복음주의 신앙 =
한국교회는 초장기부터 이와같은 복음주의 신앙의 전통 위에 서서 그 특
성을 개발하면서 발전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말씀과 기도를 강조하고,
또 전도를 강조하는 전통을 이루어왔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복음주의 교회로 시작했고 복음주의 교회로 자라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새삼스럽게 '복음주의 운동을 누가 시작했다'고 말
하는 것보다는 한국교회가 시초부터 복음주의 신앙을 선양하고 복음주의
운동을 일으켜온 교회였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안에는 성경의 권위를 비판하는 자유주의 신학도 함께
소개되었다.이미 초창기부터 박형룡과 김재준 사이에 성경관에 대한 논쟁
이 일어났다. 그래서 한국교회 안에는 성경을 비판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형성되었고, 교회의 주요 관심을 전도나 교회 설립이나 구제, 봉사보다는
급진적인 사회, 정치 참여에 두는 정치신학운동도 차츰 일어나게 되었다.
이와같은 자유주의 또는 급진주의 신학운동이 일어난 것과 아울러 한국
교회 안에는 초창기부터 신비주의, 또는 이단운동도 더불어 일어나게 되
었다. 특히 60년대 이후부터는 나운몽파,박태선파,문선명파를 비롯한 갖
가지 이단운동이 일어났고, 또한 병 고침과 현세의 죽음 등을 강조하는 기
복신앙이 널리 성행하였다. 그래서 점차 초기의 한국교회가 물려받은 순수
한 복음주의 신앙은 자유주의 신학, 급진주의 정치신학, 이단운동, 신비주
의 운동, 기복신앙을 이질적인 요소로 변질되어 갔다.
= 한국복음주의협의회와 복음주의 연합운동 =
그래서 한국교회 안에 참된 복음주의 신앙운동이 새롭게 일어나야 한다는
소리가 일어났고, 변질된 신앙을 수정하고 본래의 참된 복음주의 신앙운동
을 되살려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났다. 또한 사분오열된 한국교회를 복음
신앙으로 한데 묶어야 한다는 복음주의 연합운동의 필요성을 말하게 되었
다.
이같은 상황에서 1980년 초 한국복음주의협의회(1981년5월 창립)를 중심
으로한 복음주의 연합운동이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국
복음주의 연합운동이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국복음주의
협의회는 지난 10여년동안 한국교회 안에서 바른 신앙운동을 시도해왔다.
한국복음주의 협의회가 계속해온 활동은 다음과 같다. 그 사역을 성격별
로 기술하며 *한국교회 안에 바른 신앙과 바른 생활운동을 펴나아가고
*국내외로 구제 봉사사역을 수행하고 *국내외 선교사역을 격려하고 *대사
회 및 대정부 성명을 발표하고 *국내 교회간의 연합을 도모하며 국제적
유대와 교류를 강화하는 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행사별로 기술하면 첫째, 1년에 10여차례 매달 둘째 월요일 아침
회원교회들을 순방하며 월례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가져왔다. 평균 60-
70명이 함께 모여 먼저 30분 동안 정해진 주제를 가지고 한 두 사람이 발
표하고 토론하는 발표회를 갖고 나머지 30분 동안은 회원 교회가 제공하
는 조찬을 들며 회원들끼리 교제를 나눈다.
둘째, 1985년부터 매월 2월 둘째주간에 '케직사경회'를 개최하여 성경강
해, 영적 각성,윤리실천 및 선교헌신을 중요시하는 건전한 사경회 운동을
선양해오고 있다. 지난 1989년 2월 소망교회에서 제5회 케직사경회를 가
졌는데, 지금까지 죠지 던컨 (George Duncan),한경직,박윤선,이상근, 폴
리즈(Parl Rees), 필립 핵킹(Philip Hacking) ,김창인,모리 야마, 제임스
보이스(Thomas Wang)목사 등이 강사로 봉사했고, 평균 2,000여명의 목회
자 몇 평신도가 참여해오고 있다.
셋째, 1년에 1,2회 공개신학 강좌 또는 대회를 개최하여 바른 신앙의 방
향을 제하고 기도운동, 사회운동, 선교운동 등을 선양해왔다. 1984년 6월
로잔위원회와 공동으로 세계교회 기도성회를, 같은해 6월 11일 피터 바이
엘하우스(Peter Beyerhaus) 박사를 강사로 "현대 선교신학의 동향과 복음
주의 신학의 방향"이란 주제로 제1회 공개신학강좌를 개최했다. 1985년
10월 14일엔 리차드 가핀(Richard Gaffin)박사를 강사로 "현대교회의 성령
운동에 대한 평가"란 주제의 제2회 공개신학강좌를, 1986년 3월엔 "단군
신화는 민족화합의 원리가 될수 있는가?" 라는 주제로 이금도,한철하,김
광수,박종렬,이만열 등의 강사로 제3회 공개신학강좌를, 그리고 1986년
3월에는 게르하르트 마이어(Gerhard Maier)박사를 강사로 "예수 그리스도
의 독특성"이란 주제의 제 4회 공개신학강좌를 개최했다.
또한 1986년 10월 토마스 왕, 조슈아 쭈타다(Joshua Tsutada), 프란시스
순드라라즈(Francis Sunderaraj), 어거스틴 벤서(Agrstin Vencer), 크리
스 마란티카(Chris Marantika), 존 리차드(John Richard) 등을 강사로 "
아세아의 복음화와 그 문제들"이란 주제의 선교대회를 가졌고, 1987년
3월 한철하,조종남,김명혁 등을 강사로 "복음주의 운동이란 무엇인가?"
주제로 공개세미나를 개최했으며 같은해 스미스 (Harold Smith)씨를 강
사로 "미국 복음주의 운동의 방향"이란 주제의 공개 신학강좌를 개최했
다. 1987년 10월에는 알브레흐트 페터스(Albrecht Pesters)박사와 브루
스 니콜스(Bruce Micholls) 박사를 강사로 "사회참여"를 주제로 한 공개
신학강좌를,1989년 3월에는 손봉호,김명혁,이성배,이종윤 등을 강사로
"남북통일과 북한선교"란 주제의 공개 강좌를 개최했다.
넷째, 국내 극빈자와 장애자들을 위한 "사랑의 손길" 운동을 펴고 있으며,
서부 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와 방글라데시를 돕는 "국제 구제"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위의 두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세 나라 가운데
하나로, 부르키나 파소는 극심한 가뭄과 기근으로 사람.동물,수목들이 말
라죽어가고 잇으며, 방글라데시는 극심한 홍수의 재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지난해 이 나라에 10만불 이상의 구제를 했고, 현재
10만여 불을 방글라데시의 CSS (Christiam Service Society)에 보내어 안
과진료소를 세울 계획이며, 올해엔 영야사와 안과의사를 각각 한사람씩
보낼 예정이다.
다섯째, 지난 수년동안 다음과 같은 대사회적, 대정부적 성명을 발표하여
복음주의의 입장을 천명했다. 1985년 4월 "주일성수에 대한 우리의 입장"
1986년 5월 "현시국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제언",1987년 11월 "공정한
선거를 위한 복음주의자들의 입장",1988년 3월 "KNCC의 통일론에 대한
복음주의 입장"을 발표했고, 1989년 1월 "일왕 히로히토 장례식에 관한
공개서한"을 일본 수상과 한국 국무총리에게 각각 보냈다. 또한 1989년
11월 7일에는 8개 기독교단체와 함께 "문선명 사교집단 대학인가를 즉각
취소하라"성명을 내기도 했다.
여섯째, 중국 및 북한선교사역을 협력해서 추진하기 위한 목적과 아시아
교회들의 유대 및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1989년 12월 4일부터 7일
까지 서울에서 "아시아 선교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복음주의 연합운동은 한국교회 안에 절실히 요청되는 운동이다. 신앙이
변질되어가고 있으며 개인주의 또는 개교회주의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사회로부터 실추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교
회의 저력을 하나로 묶어 선교의 사역을 힘있게 수행하기 위해서도 복음
주의 연합운동은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격려를 기다리는 세
계교회에 올바른 도움의 손길을 펴기 위해서도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연합
전선을 더욱 공구히 구축해야 할 것이다.
= 한국복음주의 운동의 문제점 =
한국복음주의협의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국복음주의 운동에 나타난
문제들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교회주의 또느니 대교회주의의 문제이다. 이것은 복음주의 연합
운동을 펴나가는데 장래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교회 안에 바람직한
복음주의 연합운동을 펴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한국교회를 고
질적인 문제인 개교회주의를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지난 10여년동안 몇
몇 대교회의 목회자들을 포함한 200여개 교회의 목회자들이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고 한국교회 안에 바른 신앙, 바른 생활, 바른 사회운동을 연합으
로 펴나아가며 기쁨을 누려온 곳이 사실이만 아직까지 개교회주의와 대
교회주의는 그대로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신자
들은 내 교회가 주관하는 집회나 사업에는 열심을 나타내고 있으나 한국
교회의 이름이나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집회나 사역에는 관심도 열심
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교회주의가 아닌 '보편적 교
회관'을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보편적
교회관이 정립될 때 한국교회 안에 바람직한 복음주의 연합운동이 힘있
게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둘째, 세속주의의 문제이다. 이것은 대부분 세계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당면하고 있는 공동된 문제이다. 대부분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급성장을
하면서 물질의 부요함을 누리게 되었고, 그 결과 세속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교회 건물이 화려해지고 교역자의 생활이 부요해졌으며, 교회
조직이 전문화되었고, 교회 행사나 모임들이 거창해지고 사치스러졌다.
교인들의 생활 전반이 소박함과 절제와 검소의 성격을 띠기보다는, 평
안과 안일과 부요함의 성격을 드러냈다. 한국 초대교회에서 볼 수 있었
던 주일성수나 경건의 모습은 사라져보리고 물질의 부요와 향락을 추구
하는 세속화의 경향이 복음주의 교회 안에 만연하고 있다. 자유주의 교
회는 물론 급성장하는 소위 복음주의 교회들도 교인들이 주일성수를 어
기고 사사로운 일을 즐기는 것을 묵인하거나 격려하기 위해 어떤 교회
들은 7시에 아침예배를 고안하기도 했고 주일 저녁예배를 아예 폐지하
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토요예배로 주일예배를 대치하기도 했다.
또한 교인들이 투기,탈세,폭리를 자행하거나 행락업소에 종사하는 것을
묵인하기에 이르렀다. 복음주의 교회의 교역자들과 교인들이 돈과 이성
문제로 타락하는 일들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복음주의 교회 안에 나타나는 이와같은 세속화의 경향은 복음주의 교회
들이 부분적으로 나마 '번영의 신학'을 수용한 까닭이라고 하겠다.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로버트 슐러나 순복음교회가 주장하는 적극적 사고
나 번영의 신학을 이론으로는 비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있다. 목회를 마치 기업운영하듯 하고 있으며 신자들로 하여금
고난과 수고를 회피하고 물질의 부요함과 사업의 성공을 추구하는 '세속
적'신자들로 만들어 버렸다.
= 해결해야 할 문제들 =
복음주의 운동을 힘있게 펴나가기 위해 한국교회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
인 문제들은 복음주의 신학의 정립과 복음 전파와 사회참여와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정립이라고 하겠다.
첫재,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신하깅 무엇인지를 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음주의 신앙의 두 뿌리가 되는 종교 개혁의 전통과
대각성운동의 전통에 대한 깊은 연구와 배움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두 전
통에 대한 역사를 연구하는 것과 두 전통을 이룩한 신앙의 인물들의 글
을 읽고 배우는 일이 필요하다. 또한 복음주의 신학이 강조하고 주장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바로 배우고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교회 안에
만연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신앙운동들 가운데 비복음주의적 요소들이 무
엇인지를 밝혀 분석하고 가려내는 것이 필요하다. 복음주의 신앙이 개혁
주의 신앙을 포함하는, 보다 폭넓은 신앙이자만 자유주의나 급지주의 또
는 배타적 분파주의와 구별되는 하나의 포괄적이면서 성경적인 신앙임을
분명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복음전파와 사화참여의 관계에 대한 바른 신학이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급진주의 교회들이 교회의 사회, 정치적 참여를 우선으로 강조했고
보수주의 교회들이 교회의 전도 및 교회 설립사역을 무엇보다 강조해 온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나 1974년부터 시작한 로잔운동은 이 둘의
관계를 복음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정립하려고 시도해오고 있다.
1981년에 조직된 한국복음주의 협의회도 과업 가운데 하나를 복음전파와
사회 참여와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정립으로 삼고 있다. 그것으니 하나
의 일반적 원리를 진술함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상황 가운
데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실천함으로 점차 이루어질 수 있는 복잡하
고 어려운 문제라고 하겠다. 물론 복음주의 신앙은 먼저 사람과 하나님과
의 관계의 회복을 위한 복음 전파를 중요시하면서도 사람과 사람과의 관
계의 회복을 취급하는 사회 및 정치 참여의 사역을 동시 불가분적으로 중
요시한다.
=주력해야 할 과업들 =
한국교회 안에 복음주의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영적 각성운동을 새
롭게 일으키고, 윤리 실천 및 봉사운동을 선양하며, 협력 및 연합 운동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첫째, 교회 역사를 돌이켜볼 때 복음의 신앙 운동과 교회 갱신운동 및
사회변혁 운동은 거의 예외없이 영적 각성운동의 결과로 이루어졌다고 하
겠다. 영미의 대각성 운동과 한국에 있어서 1907년의 부흥운동이 그와같
은 결과를 초래했다. 오늘의 한국교회 안에 올바른 복음운동과 교회 갱신
및 사회 변혁운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영적 각성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감정과 은사현상에 치중하는 오순절식의 각성운동을 주장
할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감정이나 은산현상을 주장할 필요는 없으나 ᆄ 그렇다고 감정이나 은사현상을 경시하고 비판하는 교리적이고 윤리적인
각성운동만을 주장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영
적 각성운동은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감정 및 은사현상을 수용하는 동시
에, 반드시 가치관과 생활의 변화를 수반하는 전인적 각성운동이어야 하다.
둘째, 윤리 실천 및 봉사운동을 선양해나가야 한다. 교회 역사를 돌이켜
볼 대, 영적 각성 운동은 반드시 생활의 변화와 사회 봉사를 수반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 일각에서 일어나는 일부 영적 은사운동은 삶의 변
화와 사회 봉사를 수반하지 않고 이기적인 행복 추구로 귀착하는 경향을
띠며 심지어는 생활의 모순을 초래하기까지 한다. 급성장해서 부요하게
된 한국교회는 지금 무엇보다 복음에 합당한 검소, 절제 및 희생과 봉사의
삶을 배우고 실천할 때라고 하겠다. 개인의 탐욕과 사치,향락을 극복하고
이웃과 함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여야 할 때이다. 국내의 극빈자와 국외
의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과 사랑의 손길을 펴야할 때이다.
셋째, 협력 및 연합운동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와
복음주의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다양성
을 인정하는 조화의 정신을 선양하여 협력과 연합운동을 구체적으로 모색하
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예를들면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과 같은
범교회적 사회운동에 모든 교회가 적극 참여함으로 협력및 연합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복음주의 운동의 전망 =
세계 교회의 동향을 고려할 때 복음주의 운동의 전망은 밝다고 하겠다.
그 주요 이유는 자유주의 또는 급진주의 교회가 현저하게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교회 수가 감소하고 있는 미국 북장로교 총회가 최근
"전도하자"는 표어를 내건 것은 교회가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복
음주의 신앙을 채택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성장하는 교회는 거의 대부분 복음주의 교회이다.
그럼에도 성장하는 세계 복음주의 교회들은 오늘날 심각한 위기에 봉착
하고 있다. 성장하는 대부분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물량주의와 대교회주
의에 사로잡혀 있고, 권위주의의 자만심에 붙잡혀 잇으며, 점차 세속주의
에 따른 물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복음주의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가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복음주의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는 이
와같은 위기상황을 겸허하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과감하게 극복할 수 있다
면 복음주의 교회의 앞날은 밝을 것이고 만약 이를 극복하는데 실패한다
면 그 앞날은 매우 어둡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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