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 시대의 앞날을 염려하며 교육학 박사가 현장에서 제시한 교육혁명이다. 내 안에서 시작된 진정한 변화가 인생을 바꾼다! 성품으로 자신, 가정, 배우자, 자녀, 이웃, 사회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물결, 성품 이노베이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이영숙 지음 |
성품으로 새롭게 시작하기
새로운 지평을 여는 문, 감사
감사의 위력
사람들은 새로운 것들을 지향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도 끊임없이 새로움을 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감사가 없으면 새로운 시작도 없습니다. 성품으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바로 감사라고 하는 성품이 필요합니다. 감사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출입문입니다. 감사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문을 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디모데전서 4:4). 저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허락되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삶 속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진정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실 어느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 바꾸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분이 주신 모든 것이 선하여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게 없다고 하십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감사를 어떻게 가르칠까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사실 마음속으로만 고맙다고 느끼는 것은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는 행동입니다. 내가 선택해서 취하는 또 다른 의지의 결단입니다.
시작과 끝이 있는 인생에서 꼭 필요한 성품 - 감사
인생이 소중한 것은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끝을 보여주신다는 사실이 저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끝이 좋은 인생이 크리스천의 인생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마지막이 좋아야 다 좋은 것입니다. 저는 다니엘을 부러워합니다. 사실 다니엘의 인생은 험난합니다. 유다에서 귀족의 자녀로 행복하게 자라다가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갑니다. 역사학자들은 그 당시 다니엘의 나이를 17살이나 20살 안팎인 것으로 추측합니다. 어린 다니엘에게는 자신에게 일어난 인생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뜻을 정하여(다니엘 1:8) 하나님께 순결할 것을 결심합니다. 이런 분별력의 성품들이 기초가 되어 다니엘은 그의 안에 늘 거룩한 영을 모시고 일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왕이 4번이나 바뀌는 시대적 혼란 속에서도 지혜와 명철로 존귀하게 살다가 자신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 천사로부터 듣게 됩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다니엘12:13).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말씀입니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말씀이 꼭 다니엘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요한 계시록을 묵상하며 읽다가 굉장히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많은 환난과 어려움을 겪고 난 후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어린양의 보혈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은 모여서 유리 바다의 축제를 엽니다.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유리 바다의 찬양집회가 저 천국에서 열릴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5:2-3 참조).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가리켜 고해(苦海)와 같다고 말합니다. 살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낙심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속에서 환난의 목표가 무엇인지 직시하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허락하신 이유와 의미를 생각해보면 고통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성품으로 나 사랑하기
기쁨으로 나 사랑하기
저는 요즘 미국 최대 한인여성 사이트(
www.missyusa.com |
)에서 자녀교육 칼럼과 자녀교육 상담을 해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고민들이 올라오는데, 그 중에서 자신감 없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상담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 자신감이 없어요. 어떻게 하면 자신감을 길러 줄까요?” “우리 아이는 나이가 어린데도 굉장히 우울해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못합니다. 눈도 못 마주치고 수줍어서 말도 못합니다. 날마다 엄마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며 숨기 일쑤죠. 어떻게 해야 자신감 있는 아이가 될까요?” “우리 아이는 참 자신감이 없어요. 매사에 소극적이고 의욕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자신감 있고 적극적인 아이가 될까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답 글을 올립니다. “자신감 없다는 아이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답입니다. 부모님께서 시간을 따로 내서 그 아이에게 일대일로 시간을 투자하세요. 하루에 10분이라도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그 아이가 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 아이인지, 가정에서 얼마나 귀한 아이인지 알려주고 함께 놀아주세요. 그러면 아이는 변할 것입니다. 자신감이 생기고 적극적이고 의욕 있는 아이가 될 것입니다.”
자신감의 근원
왜 사랑이 답일까요? 자신감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나 자신, 곧 자존감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 자존감이 차곡차곡 쌓인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서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하고 엄청난 존재인지 아는 데서부터 모든 기쁨도 시작됩니다. 기쁨이 충만한 아이가 매사에 의욕적이 되고, 두려움 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소속감이 없고, 거절감이 강하고,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뭐라고 할까’ 싶어 늘 두려워하고, 야단맞아 늘 의기소침해 있고, 어떻게 하면 엄마 마음에 들까 고민하던 아이는 학교에 가서도 아이들에게 "NO!"라고 말을 못합니다. ‘내가 싫다고 하면 아이들이 싫어할 거야!’라고 지레 생각하고, 항상 자기 마음속에 있는 소원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는 사람이 됩니다. 사실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른이 된 후에도 그런 모습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품을 다하여 나 자신을 사랑하기가 참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긍정적인 태도로 나 사랑하기 긍정의 법칙
좋은 나무 성품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긍정의 법칙’입니다. '내가 지금 ~한 것만도 속상한데 ~해서 내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 한번 지금 속상하신 그 상황을 공란에 넣어 문장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올라와 보니 돈이 없어졌습니다. 기분이 심히 나빠져 그 다음 강의 시간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이 공식을 사용해서 내 마음을 다스릴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돈을 잃어버린 것만도 속상하고 기분 나쁜데 이 사람 저 사람 의심하면서 강의도 안 하고 있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진정되었고 계속 강의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주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 때 긍정적인 단계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 1단계 : STOP! 행동하기 전에 잠깐 모든 걸 다 멈추세요.
․ 2단계 : THINK! 여러 가지 방법과 행동을 생각해봅니다.
․ 3단계 : CHOOSE! 가장 긍정적인 것을 선택합니다.
아이들은 가르치는 대로 쉽게 잘 배웁니다. 분당의 어느 좋은 나무 성품학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유치원 자유놀이 시간에 두 아이가 놀잇감을 가지고 싸움을 했답니다. 선생님이 개입할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아이의 커다란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답니다. “잠깐만! 우리 배웠잖아. 긍정적인 태도. 싸우지 말고 멈춰. 그리고 생각해 봐. 어떤 게 가장 좋은 행동인지 선택해.” “맞아, 맞아. 우리 배웠지. 네가 먼저 해. 나는 이거 하다가 너 다음에 할게” 하더랍니다.
성품으로 가정 사랑하기
가정은 인내학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에베소서 4:2-3). 가정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매우 많습니다. 다들 가슴에 묻어 둔 이야기들이 한아름일 것이며, 가슴 속 응어리들도 많을 것입니다. 가정 얘기 하나로 책 한 권은 족히 나오고도 남습니다. 가정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가정은 인내가 필요한 학교입니다. 저는 ‘가정은 인내학교’라는 말로 초두를 열기 원합니다. 인내가 부족하십니까? 저희 좋은 나무 성품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인내를 가르칩니다. 저는 성품 교육 책을 쓸 때 인내와 절제에 대한 부분을 다루기가 제일 어려웠습니다. 제 자신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인내와 절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내와 절제라는 성품이 없으면 가정생활이 아주 고단하고 힘이 듭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야고보서 1:4). 이 말씀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명하신 것은 그분의 선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이란 우리를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것으로,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사랑스러운 당부이지 결코 짐이나 부담이나 올무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내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은 인내학교입니다. 인내가 없으면, 우리는 성품을 구비하지 못하여 부족해지고 허술해져서 온전한 존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인내가 무엇일까요? 인내란 ‘좋은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불평 없이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정의는 아이들도 쉽게 잘 외웁니다. 인내를 가르치고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좋은 나무 성품학교의 한 여자아이가 치과에 이를 치료하러 갔다가 갑자기 “인내, 인내, 인내”라고 했습니다. 치과 선생님이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하고 물었습니다. “저 인내하는 중이에요.” “너 인내가 뭔지 알아?” “인내란 좋은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불평 없이 참고 기다리는 거예요.” “너 어느 유치원 다니니?” “좋은 나무 성품학교 밀알 유치원이요.” 그날 치과가 아주 떠들썩했답니다.
인내의 동물 - 나비
하나님이 만드신 동물 중에 인내의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봄이 되면 휘황찬란하게 날아다니는 나비입니다. 나비, 참 아름답죠? 그 색깔이 찬란하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때까지 나비는 말할 수 없는 인내의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알의 시기를 거치고 나면 애벌레로, 애벌레를 거쳐 번데기로,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됩니다. 애벌레가 허물을 벗기까지 참고 인내하는 탈바꿈의 과정을 4번 정도 거쳐야 한다니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한 번 허물을 벗을 때마다 애벌레는 몸도 커지고, 색도 달라지고, 무늬도 달라집니다. 허물을 다 벗고 난 뒤에는 딱딱한 번데기가 됩니다. 번데기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나비가 되기 위해 참고 기다립니다. 그리고 고치를 뚫고 나와, 젖어 있는 몸을 말리고 예쁜 나비가 됩니다. 이러한 인내의 과정을 2달에서 1년까지 겪게 됩니다. 애벌레로 언제 잡혀 먹힐지 모르는 두려움과, 4번이나 허물을 벗으며 성장해야 하는 고통을, 나비는 불평하지 않고 참고 기다리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 딱딱한 번데기 껍질 속에 온 몸을 가둬두는 암흑의 시대를 거쳐, 드디어 아름다운 나비로 온 땅을 날아다니며 고운 자태를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는 인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고치에서 나오는 나비의 모습을 바라보기가 너무 안타까워서 지켜보던 사람이 가위로 고치를 조금 잘라 나오기 편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치에서 나온 나비는 결코 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나비는 고통을 참는 인내가 없이는 날지 못합니다. 우리도 인내를 통하여 찬란하게 이 땅을 날아갈 수 있는 힘을 공급 받습니다.
인내의 법칙
인내를 잘 배울 수 있는 인내의 법칙 'S.T.A.R'가 있습니다.
․ Stop :잠시 하던 행동을 멈춥니다.
․ Think :자기가 하려던 행동이나 방법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집니다.
․ Action Right :올바르게 행동합니다.
이것은 일명 별 따는 법칙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스타를 좋아합니다. 유치원 졸업하면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다들 스타가 되고 싶답니다. 옛날에는 대통령이 된다고 하거나 검사, 의사 된다고 하는 애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애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몇몇 아이들만 의사가 되겠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공부하기 어려운 줄 아는지 다 연예인 되겠답니다. 개그맨 되겠다고 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모든 애들이 스타 되기를 원하는데, 그 스타보다 더 멋진, 참된 스타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스타법칙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잠시 하던 행동을 멈추고 내가 하려던 행동이 반짝반짝 빛나는지, 가장 좋은 행동인지 생각해봅니다. 그런 후에 올바르게 선택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자녀들을 진정한 스타가 되게 하는 법칙입니다.
가정은 배려학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19:19).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게 바로 배려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누가복음6:31). 이 말씀을 그대로 적용하면 배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배려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배려의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이 배려의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대에 진실로 풍요로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성품이 배려입니다. 가정은 배려를 배우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배려가 너무도 없습니다. 이는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만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면서 우리에게 계속 배려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창세기 9:7). 이는 하나님이 우리이게 주신 명령입니다. 우리에게는 땅에서 번성하고 땅을 지키고 충만하게 보살필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환경을 마구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되돌려 받고 있기도 합니다. 환경을 배려해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삶을 배워 나간다면 세상은 배려하는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배려의 유익
배려의 성품을 가진 사람은 관찰력을 얻게 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어? 저 사람 얼굴이 왜 저렇게 슬퍼 보이지? 무슨 일 있나?” 하고 자연스럽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여보, 나 아파” 했는데도 “병원에 가” 하고 만다면, 배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 좋은 것 같아. 무슨 일이야?” 하고 먼저 걱정해 주는 것이 사랑이고 관심입니다. 먼저 “여보, 오늘 얼굴 안색이 좀 안 좋네. 무슨 일 있었어?” 라고 해 주면 세심하게 배려 받는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주위를 관찰할 수 있는 관찰력이 필요합니다. “저 사람 무슨 일일까? 얼굴이 안 좋네. 어디 아픈가?” 하며 늘 주위를 살펴서,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고, 그것을 기쁨으로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에 그치고 말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해주면 좋을 텐데 쑥스러워서 못 하겠어’ 하면서 말입니다. 생각했으면 한 걸음 나아가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 주는 것이 진정한 배려입니다.
성품으로 배우자 사랑하기
책임감으로 배우자 사랑하기
사탄은 가정을 공격합니다. 여성들에게 가정을 뛰쳐나와서 자기 위치를 찾으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이라는 우선순위는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귀중한 것입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뭔가 특별한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을 인내와 배려로 온전하게 보존하고 보호했으며, 가정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나눠주고 살다가 온 것으로 칭찬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들을 맡긴다”며 복을 주시고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책임감이 주는 유익
책임감의 성품을 가지면 얻게 되는 유익들이 많습니다.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큰 리더가 되며 신뢰를 얻게 됩니다. 내가 매일 하는 작은 일들은 미래에 더 큰 책임을 맡을 준비가 되는 셈입니다. 현재의 작은 일을 충실히 해 내는 습관이 바로 책임감 있는 성품 리더가 되는 밑거름입니다. 사람들은 책임감 있는 이를 신뢰하고 따릅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은 그가 속한 공동체에 기쁨과 행복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분별력을 갖게 되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위험한 일들과 유혹들에 노출될 때가 많은데, 분별력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여 결과적으로 우리를 보호합니다.
역기능 가정과 순기능 가정
책임감 문제를 다루다 보면 순기능 가정과 역기능 가정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조실부모한 가정을 역기능 가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자기 위치를 찾지 못하는 가정이 역기능 가정입니다. 가정은 엄마와 아빠로부터 시작됩니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둘이 한 몸을 이루면서부터 가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 여자와 한 자녀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위치가 저만큼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끼어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역기능 가정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가정의 모습들이 무너집니다. 요즘 젊은 어머니들은 어떤 말을 하는지 아십니까? 슈퍼마켓에서 우유 살 때 남편에게 줄 우유는 아무거나 집는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먹일 우유는 꼼꼼히 이것저것 살펴본답니다. 이거 먹으면 머리가 더 좋아지는지 성분을 비교해 가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엄마에게 남편보다 아이들의 위치가 더 우선시되어 있는 이런 모습이 바로 역기능 가정의 모습입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에베소서 4:32). 인자하게 대하세요. 이것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당부라고 생각합니다. 자존심 때문에 역기능 가정이 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너무 이기려 들지 말고, 서로 인자하게 대하십시오. 서로 불쌍히 여기세요. 불쌍한 눈으로 보면 바가지 긁을 것도 없어집니다. 집 안에서 바가지 긁지 않아도 내 배우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얼마나 죽을힘을 쏟듯 전력투구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무엇 하러 집 안에서 또 힘들어 합니까? 용서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어떻게 용서하셨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피 흘리게 하여 용서하신 그런 사랑을 베풀어 주셨기에,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버젓이 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사랑을 생각해보면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절제로 배우자 사랑하기
“자기의 마음을 제어(절제)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언25:2). 절제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자를 더욱 사랑하며 아름다운 가정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이 절제의 성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기 마음 가는대로,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행동하고 다닌다면 가정이 온전하게 세워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절제의 반대는 방종이 되는 것입니다. 절제에 대해서는 명언도 많습니다. 그만큼 절제라는 성품이 인생에서 중요하고 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자신을 절제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 루시우스 세네카
․ 절제는 최대의 승리다. - 플라톤
․ 절제란 단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꾸준한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 레프 톨스토이
․ 나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남에게도 이기는 것이다. - 칼 힐티
․ 자기 자신을 절제하는 사람은 그가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 것만큼 쉽게 슬픔을 이겨낼 수 있다. - 오스카 와일드
성품으로 자녀를 사랑하기
자녀에게 경청과 순종 가르치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요? 당연히 모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랑은 자녀를 풍성하게 살려내는가 하면, 어떤 사랑은 지나쳐서 자녀를 억압하고 짐스럽게 하고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자녀를 사랑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 이것이 부모들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은 대개 어른들을 대상으로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우리 부모들에게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이 어느 때에 노여울까를 생각해 보면서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은 자제해야 합니다.
부모의 권위를 회복하는 성공 노하우
첫째, 자녀와의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부모가 바쁘기 때문에 권위가 자꾸 사라지는 것입니다. 권위는 아빠가 바쁘다는 핑계로 미안함을 물질로 보상하려다가 권위는 사라지고 물질만능주의가 아이를 지배하게 됩니다. 물질로 아이를 만족시키려 하지 마십시오. 시간을 내주십시오.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 때 자녀들은 부모님이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놀이를 시작해보세요. 아이는 자신을 즐거워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그 사람의 말을 따르려 하게 됩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와 감정 공감이 이루어집니다.
둘째, 자신의 부모님께 순종하는 모델링을 보여주십시오. 셋째, 부부 간의 화목함이 우선입니다. 부부끼리 서로 싸우고 헐뜯는 가정에서는 순종하는 자녀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배우자의 허물을 자녀에게 말하지 마세요. 부모의 권위가 떨어집니다. 무조건 “엄마에게 말해봐”가 아니고 “아빠가 엄마랑 의논해서 알려줄게”, “엄마 생각은 이런데 아빠 생각은 어떤지 여쭈어 보자” 하면서 서로가 존경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자녀는 더 잘 순종을 배우게 됩니다. 넷째, 나쁜 행동은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 주십시오. 아이가 무례하고 버릇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그 순간이 바로 아이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설명하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강하고 분명한 몸짓과 말로써 가르쳐 줍니다. “그건 올바른 행동이 아니야. 그러니까 다시 바르게 해 보렴” 하고 말입니다. 부모님의 권위에 일부러 불순종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즉시 그 태도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다섯째, 욕구를 언어로 표현하게 하십시오. 사랑은 표현한 만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혜로 자녀 훈계하기 훈계란?
훈계란 ‘자녀가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가 가르치고 수정하고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훈계의 목적은 좋은 성품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좋은 성품 자녀 키우기, 좋은 성품 지도자 세우기’가 저희 좋은 나무 성품학교의 슬로건입니다. 좋은 성품으로 자녀를 키우기 위한 부모들의 역할은 훈계입니다. 훈계할 수 없다면, 혹은 하더라도 잘못한다면 우리 자녀들이 좋은 성품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를 훈계하십니까?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히브리서 12:6).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채찍질하고 사랑하는 자를 훈계하신다고 했습니다. 부모도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훈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될 때 결과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하는 자를 훈계하실까요?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히브리서 12:10).
훈계의 단계
훈계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훈계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잘못하는 것을 보는 즉시 때리게 되면, 앞으로도 그냥 그런 상황은 모면하고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갑자기 아이를 때리거나 벌을 주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1단계는 지도하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 성품학교에서 12가지 주제로 성품들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것이 훈계입니다. 사실 가르침이 훈계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세상 살아가는 힘을 가르쳐 주는 것이 1단계입니다. 1단계에서는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합니다. 직접 본을 보이거나 말로 가르치거나 명령함으로써 아이를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매일 일어나는 사건이나 상황 속에서 부모의 가치나 기준을 나눌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고, 아이를 지도하고 가르칠 시간을 따로 떼어둘 수도 있습니다.
2단계에서는 가르친 바를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습관을 들이게 하고 지도 받은 영역에 숙달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자꾸만 적용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지식을 더하고 잘못된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며, 아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평가합니다. 3단계에서는 교정을 합니다. 앞서 행해진 지도나 훈련이 통하지 않을 때, 다시 말해 해도 해도 안 될 때 쓰는 방편입니다. 교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직접적이고 단호하게 한마디 해 줄 수도 있고, 우리가 잘 아는 방법인 매(체벌)를 들 수도 있습니다. 타임아웃(time-out) 아니 무시(소멸)해 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교정만이 훈계의 전부는 아닙니다. 잘했을 때는 칭찬도 해 주고 격려도 해 주고 상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그때그때 단계에 맞게 아이를 이끌어 주는 것이 올바른 훈계입니다.
성품으로 이웃 사랑하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약의 새로운 쉐마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 네 이웃을 그냥 사랑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첫 번째로 사랑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나 자신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기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원리를 참으로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네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17세 때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주 어릴 적부터 교회에 나가며 교인들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제 맘속에 아주 큰 갈등이 생겼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이면 울고, 금식이 자랑이고, 화장도 안 하고 멋도 안 부리고, 날마다 이 세상과 나는 간 곳 없으며 이 세상을 초개와 같이 버린다고 노래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이 세상을 참 하찮게 보고, 이 세상 고난과 고행을 저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슬프게 세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그런 모습들이 참 싫었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만 주님을 잘 믿는 사람처럼 살려면 무척 힘들 것 같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삶이 자신을 포기하는 삶으로 보여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 점점 더 깊이 만나 본 하나님은 너무도 인격적이어서, 내 안에 소망을 두시고 내 생각과 소원에 관심을 기울이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빛과 같이 참으로 풍성하게 살기 원하시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굉장한 깨달음이었습니다.
배려와 존중
하나님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 생명의 삶을 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배려와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웃들과 살아갈 때 반드시 필요한 성품이 배려와 존중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그들은 우리를 가리켜 진짜 크리스천이라고 부르며 감동 받을 것입니다. 배려란 무엇입니까? 배려는 ‘나와 상대방 그리고 환경에 대하여 사랑과 관심을 갖고 잘 관찰하여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존중은 ‘나와 상대방을 공손하고 소중하게 대함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여 높여 주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배려하고 존중해야 할 대상은 나와 내 이웃은 물론 환경도 포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28)고 하신 대로 이 땅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환경을 다스릴 만물의 영장으로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보살펴야 하고 내 이웃을 보살펴 주어야 함은 물론 환경도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배려의 동물 - 다람쥐
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 가운데 배려의 동물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다람쥐는 땅속에서 겨울을 날 때 도토리를 가져다가 겨우내 먹고 잡니다. 땅 속에 깊고 깊은 터널을 판 다음 그 안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옆에는 작은 구멍을 파서 먹이 저장 창고로 이용합니다. 저장 창고에는 도토리 같은 열매를 넣어둡니다. 겨울잠을 자다가 배가 고프면 먹이를 먹고 다시 잠이 들기를 반복합니다. 그런데 다람쥐는 자기가 모아 두었던 도토리를 다 먹어 버리지 않고 참나무를 위해 몇 개 남깁니다. 땅속에 있는 도토리는 한 겨울에 얼지도 마르지도 않고 있다가 봄이 오면 싹을 내고 새로운 참나무로 자라게 됩니다. 이는 자신에게 먹이를 주어 건강히 겨울을 날 수 있게 하는 참나무에게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다람쥐의 배려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참 부끄럽지 않습니까? 우리는 자기 것은 다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전부 먹어치우지 않습니까? 이런 모든 것들을 볼 때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 속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깃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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