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영!! 혼!! 육!!

[스크랩] 믿는 자의 회개기도 통회자복...펌

하나님아들 2012. 9. 26. 23:26

믿는 자의 회개기도 통회자복

시51:1-19

여기 이 내용은 존번연의 영들의 전쟁과 마틴 로이드존스목사님의 십자가의 구속과

워치만니의 영에속한사람 에관한 일부분의 글들을 복음적 관점에서 풀어서 글을 썼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말씀으로 인해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여 주의 십자가앞으로 나아가 주의 긍휼하심을 입고 주의 보혈을 은총에 힘입어 각자 마음에 피뿌림을 입어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로 이제는 주께서 우리죄를 사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기억지도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보혈의 의로 의롭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새사람이 되어 거듭났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내안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다시금 죄를 짓게 하는 유혹으로 끌려들어가 다시금 육체로 하여금 죄를 범하며 그 죄로 하여금 양심의 고통으로 심각한 죄책감과 심판의 두려움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처럼 내가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여 주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주의 긍휼하심을 입고 주의 보혈을 은총에 힘입어 내 마음에 피뿌림을 입어 죄 사함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 육신가운데 다시금 일어나고 있는 죄의 소욕으로 인해 죄를 다시 경험하고 맙니다.

이와같이 주의 보혈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금 고의든 실수든 죄를 범했을때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합니까?

주님의 보혈로 의롭고 거룩한자가 되어 죄가 없는 의인이 되었음을 새언약의 법으로 인침을 받았는데 어떻게 다시 죄에빠져 이전과 같은 죄에 눌린 비참한 모습이 되어야 합니까?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여기에는 영적원리를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겉의 육체가 아니라 육체 안에 있는 나의 영혼이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벧전 1 :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약 5 :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히 10 :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눅 21 : 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 12 :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마 10 :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겔 18 :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사 53 :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잠 8 : 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시 116 :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시 6 :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욥 33 : 28]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구원받으면 내가 구원받았지 보이지도 않는 영혼이 구원받았는지 어떻게 알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란 존재는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를 모르면 우리는 항상 내가 구원받았다는 이 감격적인 은혜를 육체를 통해 확인할려고 하고 느낄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육체를 통해서는 이러한 구원의 은혜의 직접적인 경험을 가질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육체는 진정한 나를 보호하고 있는 집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육체는 죄를 가지고 태어났을때나 죄사함 받아 구원 받았을때나 죄를 지을 때나 착한 일을 할 때나 항상 그대로 입니다.

마치 어떤 집 하나가 지어져 있는데 해가뜨나 달이뜨나 비가올때나 눈이 올때나 도둑이 들때나 손님이 올때나 늘 한결같이 그대로이듯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육체는 내 마음안에서 무엇을 원하고 지시하든 그 마음의 원함과 욕구대로 그대로 수용하고 행동하는 도구일뿐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즐거우면 육체가 웃고 내마음이 슬프면 육체도 울고 내 마음이 아프면 육체도 고통스러워하고 내 마음이 힘들면 육체도 짜증을 냅니다.

내가 구원받아 기쁘면 육체도 펄쩍펄쩍뛰고 내가 죄를 지으면 육체도 조용히 자숙하며 엎드려 기도하는게 내 육체의 모습입니다.

이 육체는 나의 일부분이지만 마음안에서의 영혼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도구일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때 십자가앞으로 이끌어가 죄사함받게하신것은 내 겉의 육체를 불쌍히 보고 구원하신것이 아니라 이 육체를 움직이고 있는 마음의 세계 즉 영혼의 잠자고 있음을 불쌍히 보시고 구원했다는게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그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게 되었고 주님의 부활하심따라 우리의 죽은몸도(영혼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즉 이와같은 모든 성경의 말씀 즉 죄로인해 우리를 주와 함께 못박음, 피뿌림을 입음, 죽음에서 다시 살아남,...... 이모든 것은 겉의 우리육체로서는 아무런 변화나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속에서 감사하고 기쁨으로 받아드리는데 이것은 바로 내 마음이 이를 믿고 받아들일때 이루어지는 과정인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인간의 구성과 진정한 나에 대한 이부분을 자세하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을 만드실때 흙으로 만들었습니다.(육)

그러나 생기가 들어가기 까지는 아무 의미가 없는 죽은 것이었습니다.

흙으로 지은 사람의 코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어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생령을 다른 말로 생혼 즉 영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영혼과 육(이분법) 혹은 영,혼,육(삼분법)으로 되어있습니다.

저는 좀더 세부적으로 삼분법을 가지고 이야기 해보겠씁니다.

나란 존재는 이처럼 영,혼,육 이 세가지가 함께 어우러진 가운데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진정한 나는 무엇일까요?

이 겉의 육체는 나의 영혼을 담은 그릇이며 나의 몸을 가리는 옷과 같은 것이며 내가 보호받고 살아가는 집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에 이 육체는 진정한 나를 보호하고 있는 벽돌로 지은 집 일 뿐입니다.

이육체는 나의 존재를 알리는 집의 명패와 같은 것입니다.

그다음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담당하고 있는 혼이 있습니다.

이 혼은 집안의 거실과 같은 곳에서 여러 생각들을 가진 각각의 자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곳으로 이해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거실은 모든 가족들이 함께 모여 하루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다과를 먹고 TV를 보며 정보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 즐거워합니다.

가족들끼리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면 이웃 주위로 부터 이가정은 좋은 가정이다.

이집은 사랑이 충만한 은혜로운 집이야 하면서 부러워 합니다.

이처럼 집안에 가정을 어떻게 이루고 사느냐에 따라 이집은 좋은 가정 저집은 나쁜가정으로 여기게 되듯이

우리의 혼이 영에 의해 지시를 받게 될때는 의의 도구로, 육에 의해 지시를 받게 될때는 죄의 도구로 나타나기 때문에 영의 이끌림이나 육의 이끌림에 따라서 그 혼은 그 즉시로 반응하기에 혼은 그사람의 인격으로 드러나게 되어 이사람은 좋은 사람 저사람은 나쁜사람등등으로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혼은 우리의 인격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렇다면 영은 무엇입니까?

영은 집안으로 본다면 아이들이 들어올수 없는 부부만이 함께 거하는 안방의 위치입니다.

집안을 이끌어가는 모든 계획들이 이곳에서 나오며, 어른으로서 어린 자녀들에게 여러가지로 지키고 행해야 할 규칙들을 정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일을 위해 쉼을 얻는 곳입니다.

(이뜻은 영의 뜻을 혼에게 전달하고 혼은 육체를 통해 혼적기능인 자유의지를 가지고 이루는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자신의 혼이 영의 뜻이나 지시를 거부하여 독단적으로 육의 원함대로 움직이면 이는 마치 부모없이 아이들만 자기 원함대로 살고자 하는 모양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격은 형편없어질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육체속에 있는 진정한 나는 하나님으로 부터 생기를 부음받은 생령 혹은 생혼, 즉 영혼이 진정한 나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영혼은 내 육체안에서 깊은곳에 거하여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겉의 눈으로 아무리 살펴본다 하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자신의 깨어짐과 십자가에 함께 못박힘과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거듭났음은 내 영혼의 역사이지 내 육체의 역사는 아닌 것입니다. 육체는 항상 그대로입니다.

이 사실을 알수 있는것은 우리 영혼을 담은 마음의 세계를 통해서 입니다.

내 마음이 영혼의 세계의 느낌을 그대로 육신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볼수는 없지만 알고 느낄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영혼이 담겨있는데 그 영혼들 역시 각각의 기능이 있습니다.

영에서는 직관,양심,영교라는 세부분으로 되어있습니다.

 

혼에서는 혼적기능인 지,정,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든지. 혹은 죄를 지어 고통을 느낀다는것은 이렇듯 제일 깊은곳 마음의 세계인 영의 양심에서 먼저 반응하여 그 다음 혼의 세계인 지정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우리의 영은 우리가 태어날때 부터 아담의 죄를 이어받은 허물로 로 활동할수 없는 죽어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나면 영은 잠자고 있는 상태에 있고 육체는 나이에 따라 점점 자라나지만 혼은 육체가 자라면서 보고느끼는 가운데 지정의가 형성되고 교육을 통해 성숙하게 되어서 인격이 형성되고 도덕적인간으로 바뀌게 되는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영접하기전의 자연인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복음의 말씀을 목사님이나 전도자를 통해 듣게되거나 접하게 되면 내안에 죄로인해 잠자고 있던 영혼이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어떤때는 굳이 복음의 말씀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도의 헌신적인 봉사나 교회의 모습을 통해서도 영혼이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반응을 일으켜 그곳으로 마음이 가게 하는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게될때 영은 점점 자신의 위기의식을 깨닫습니다.

양심으로 하여금 죄를 지은 죄책감을 가지게 되면(영의 양심적 기능) 아 지금껏 내가 죄인이었구나... 하고 자신이 무엇을 하든 멸망받을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혼의 지식적 기능)

지금까지는 혼과 육만이 살아있는 나의 존재인줄 알았는데 어느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비로서 잠자고 있는 나의 영이 반응을 일으켜 지옥으로 갈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것입니다.(죄를 깨달음)

이제 영은 더이상 그러한 곳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생명을 얻기 위하여 혼과 육에게 방향을 전환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치 고향으로 귀환하듯 골고다의 십자가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주님앞으로 나아갑니다.(회개=방향전환=돌이킴)

(시편42편)

이런 과정속에서 혼과 육체는 어찌할바 모릅니다.

이런 경험을 한번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영혼의 절규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 영이 죄악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생명을 향해 십자가로 나아가는 과정이기에 혼과육은 혼돈되면서도 함께 끌려갈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씀이 자신의 마음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영에 의해 그때부터 오랜기간동안 교회나 집회에서 말씀을 듣는가운데 기도(회개)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갈구할때 주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영접)

이처럼 진정한 나의 존재인 내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을 일으켜 하나님의 어떤 불가항력적인 이끄심으로 인해 나의 존재를 이루는 혼과 육까지도 함께 십자가 앞으로 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뜻은 회개하는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랍게도 그 십자가에는 주님의 못박히심뿐만 아니라 자신도 주님과 함께 못박힘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이나 5:24절 처럼 주님께서 우리를 십자가에 함께 못박혀 죽게하였다가 다시 살리신 것도 겉의 육체를 못박은 것이 아닌 나의 타락한 옛몸 즉 죄로 더렵혀진 영혼을 못 박은 것입니다.

영혼이 말씀에 반응하여 생명을 위해 몸부림치며 나를 십자가로 이끌어갈때 그 십자가앞에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내영혼은 이미 주님과 함께 못박혀 있는 상태를 보게 되는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 아래서 절규하며 죄로인해 멸망받아 지옥으로 갈수 밖에 없는 나를 불쌍히여겨달라고 통회할때 주님은 나를 긍휼히여겨서 십자가의 보혈의 피뿌림을 내 맘에 완전히 적셔 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것은 실제적으로 우리가 육신의 모습을 통해 보는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내부세계에서 일어나는 영적 변화인것입니다.

우리는 이모든것이 이루어진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1. 죄를 범할때 외적인 상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죄사함받아 내 영혼이 새로태어나 하나님의 거듭난 자녀가 되었지만 아직도 세상죄악이 관영한 이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육신은 눈,코,귀,입,손,발로 하여금 보고듣고 만지고 느끼고 하는가운데 다시금 이전의 세상으로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로 발전되는것입니다.

믿고난후 한동안은 영의 강력한 힘에 의해 혼도 영에 굴복당하고 육체도 한동안 영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적인 일을 잘밥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육신은 세상을 통해 보여지는 모든것에 반응하여 다시금 그곳으로 끌려들어가는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 동안은 내 육체는 주의 은혜를 입은 영혼의 명령에 가지않고 행동하지 않다가도 변화되지 않은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에 의해 이전과 같은 그러한 모습들이 하나둘씩 되풀이 되고있는것을 발견합니다.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나태한 마음이 생기면 육신의 정욕에 이끌려서 믿음으로 바뀌게 된 혼의 지,정,의가 다시금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가 원하는데로 같이 죄로 빠지는 행동을 하게 되는것입니다.

(참고: 육신은 혼의 생각, 감정 의지에 대한 최종적 실행도구 입니다.

그래서 우리마음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육체에게 명령하여 의를 행하기도하고 죄를 범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혼의 지,정,의는 중립입니다.

영으로 강한 이끌림 받으면 하나님의 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선하게 사용되어지지만 육신의 이끌림을 강하게 받으면 죄의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나쁘게 사용되어 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혼은 영과 육사이에 있어서 어느쪽 부분이 강하게 작용하느냐에 따라서 혼에게 강하게 이끌림을 주는 쪽에 따라서 그 방면으로 더 깊이 생각하고 더깊이 느끼고 꼭 이루고자하는 의지로 순간적으로 발전되어 다시금 육체로 행동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래서 영이 강하게 활동하면 혼은 의로운 판단을 하여 육신을 의의 도구로 사용되어 지지만,

육신의 정욕이 강하게 활동하면 혼은 그 즉시로 육의 원함을 알아서 죄의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은 육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 중심적의 를 형성시킵니다.

그리고 육체는 혼이 판단하는 바에 따라서 그것이 무엇이든 혼의 판단에 따라 그 즉시 하고자 하는 의지로 그것을 이룰려고 육체가 행동하는 것입니다.

어떤때는 혼의 그 지식과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영이나 육의 원함에 따라 그 즉시로 이루어져서 육체가 행동하기도 하지만, 어떤때는 영이나 육의 명령에 오랜 생각가운데 좀더 지식과 옳은 감정을 통해 천천히 의지로 발전하여 육체로 행동 할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혼은 항상 중립입니다.

영이 강하게 역사하면 영적 사람이 되는것이고 육이 강하게 역사하면 육적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혼은 이 두 사이에 있어서 힘이 강한 쪽에게 끌려가 그곳에 맞는 의를 형성시키고 행동하게 합니다.

그래서 처음 우리가 예수믿고 영이 회복되어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할때는 영이 굉장히 힘을 내어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자신의 육신이 바깥외부세상과 항상 접촉하는가운데 또다시 그 삶에 차차 길들여지면 육신의 원함이 강해져서 영과의 충돌이 일어나게 됩니다.

한동안은 드러나는 허물로 갈등과 가책을 느낍니다만 점점 습관화 되거나 길들여지게 되면 다시금 자기 육신을 합리화 시키는데 까지 이르러 육신의 정욕이 하나님의 영의 의지를 꺾어서 혼을 통해 그일을 수행하는데 거리낌없이 나아가게 됩니다.

혼은 마치 카멜레온처럼 영이 강하게 역사하면 하나님의 의의 생각과 지식과 의지로 육체를 명령하여 의의도구가 되게합니다만

자신의 육신의 강하게 역사하면 혼은 그즉시로 육의 원함에 맞추어 그 일을 경험하고 일어날일에 대한 대비책도 합리화 될수 있도록 그 즉시 만든뒤 육신의 원함에 따라 의지를 행사하여 육신을 죄의 도구로 나아가게끔 지시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못박은것은 우리의 옛몸(자신의 육체가 아닌 옛자아, 그리스도를 믿기전의 나의 혼적기능들을 말함니다.)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은 우리의 육체가 못박은 것이 아닌 나의 존재를 이루는 그리스도를 알기전의 상태인 마음 혹은 영혼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는 혼적기능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혼적기능들이 나의 인격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과 육은 혼을 사이에 두고 서로 줄다리기를 합니다.

영이 강하면 혼은 영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고 육신의 소욕이 강하면 혼은 육의 원함에 따라 불의를 저지르고 맙니다.

그리스도를 믿고난뒤 얼마지나지 않아 영과 육은 혼을 사이에 두고 굉장한 싸움을 합니다.

나란 존재는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면 하지말아야 되고 내 육체의 만족이나 주변을 생각해보면 함께 할수 밖에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는 것입니다.(롬7:21-25)

하고싶다... 먹고싶다.... 가고싶다......누리고 싶다 .....갖고싶다.....이런 모든 욕구들이 처음 얼마동안은 영과 육이 혼의 의지를 놓고 싸우다가 그 기세가 영쪽으로 기울면 시험에 이기는 자가 되지만 육쪽으로 기울면 혼의 의지가 즉시 지시를 하여 육체로 하여금 죄로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내 영은 주의 은혜로 다시금 살아났지만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린지도 얼마되지 않아 이처럼 세상임금의 왕인 사단마귀가 다시금 세상의 화려함을 이용하여 그것을 보고 경험하는 바깥의 제일 연약한 육체를 이용하여 육신은 다시 세상에 반응하는 도구가 되어 혼의 기능인 의지로 하여금 욕구를 강하게 일으켜 결국 육신으로 행동하도록 지시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를 통해 죄와 허물을 다시금 내고 마는 것입니다.

내안이 성령이 충만하여 영이 강해져있을때는 우리가 이 모든 유혹에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이길수 있지만 우리가 잠시라도 영을 하나님의 뜻으로 부터 멀어지게 한다든지 하면(기도,찬송,말씀 중지하면) 바로 사단마귀가 우리 마음에 어떤 육체의 만족을 이루는 감각적 생각들을 강하게 불어넣어 혼의 의지로 행동하게 해서 또다시 우리가 넘어지도록 만드는것입니다.

사단마귀는 육과 혼의 기능을 잘알고 있습니다.

육은 항상 보고듣고말하는것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육의 본능적 만족을 위해 채워진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단은 항상 새롭고 화려한 것을 보여줍니다.

혼은 그 무엇이든 영이든 육이든 어떤 명령을 전달받으면 바로 듣고, 느끼고, 알아서 그 원함대로 즉시 실행하고자 하는 것을 알있기때문에 사단은 혼에게 다가가서는 육의 소욕대로 움직이도록 교묘하게 지시를 합니다

그래서 사단마귀는 영적존재로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속임으로 우리 혼에게 우리 육신이 원하는 그러한 죄의 생각들을 끊임없이 불어넣어 줌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만족을 누리도록 우리를 죄악가운데로 끌어 들이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난후에는 사단마귀는 냉정하게 태도를 바꾸어서 네가 죄를 범했다고 고발하면서 그 책임을 네가 져라고 우리를 다시금 멸망의 정죄에 빠뜨리게 하고 주를 떠나도록 끊임없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는 영원한 속죄제사입니다.

 

우리는 육체는 쓰이는 도구일 뿐입니다.

사단마귀는 어떤 생각으로 하여금 육체의 만족을 위해 의지를 행사하도록 우리 혼안에 까지 파고들어 시험합니다.

주님은 이 모든 것도 다 잘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단한번의 속죄제사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신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고 거듭나서도 우리 육신은 항상 바깥 세상과 가장 가까운곳에서 접하는 부분이라 넘어질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배후에는 항상 사단마귀가 조종하고 괴롭히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생각할때는 분명히 내가 내 의지를 가지고 나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내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 짓는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죄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세상 임금인 사단에 의해서 저질러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죄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사단마귀임을 분명히 선을 긋고 있는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은혜의 법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노릇하는 자녀가 아니라 주의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로인해 또다시 죄의 속박에 묶여 심판받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범한 죄를 처리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죄를 범하고 난뒤 다시금 밀려오는 죄의 고통에 머리는 무겁고 숨은 멎을 지경입니다.

주님을 알기전 지은 모든 죄는 자랑은 아닐지라도 내삶의 중요한 한자리였고 짜릿한 쾌감이었는데 주님을 알고난뒤 범한 죄들은 우리의 마음을 그전 보다 아프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령님은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것 간습니다.

사단은 이런 연약한 나를 보고는 연신 네가 죄를 범했으니 네가 당하라고 비웃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하나님앞에서 이자가 죄를 범했다고 계속 참소합니다.

힘이 약한 나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사단이 참소한대로 그냥 당할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혹시 또다시 지옥이라는 멸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마치 어린아이 하나가 성냥을 가지고 있다가 친구가 왔을때 성냥을 건네면서 불장난 해보자고 꼬드깁니다.

성냥을 받아든 아이는 재밋겠다 싶어 불을 붙여 불장난 하고 놀다가 그만 불이크게번져 집한채를 태웠습니다.

누가 그랬니 하고 소방관이 묻자 "얘가 그랬어요""아니야 네가 하자고 그랬잔아" 하고 책임을 떠미는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책임은 면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나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죄를 범했다고 하면 네가 당하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너는 너의 입술로 정죄를 받게되어 그죄에 대한 책임을 나는 물을것이다.

그러나 이 죄는 네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으며 세상이 창조되기전에도 있었다.

너는 죄를 이길수 없는 자이다.

너는 원래부터 죄를 이길수 없는 자이기 때문에 죄에 대한 그 책임도 네 몫이 아니다.

네몫이 아니기 때문에 네가 그 죄에 대하여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단의 말에 속지말라.

그는 거짓의 아비이다.

그 역시 (타락한) 영이기때문에 인간의 눈에는 사단마귀의 본 실체를 볼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너희들이 볼수 있도록 물질계속에서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영광스럽게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매력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어 너희들의 연약한 부분 을 파고든다.

그런데 사단은 마치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네가 그렇게 하고싶어서 하는것처럼 행동하게 한다.

그리고 그일이 사단의 뜻대로 성사되면 사단은 그때 본색을 드러내어 그에대한 댓가를 죄책감과 고통을 주어 자신을 정죄하고 스스로 하나님을 거부하도록 온갖 두려움을 안겨준다."

흙으로 지음받은 너희들로서는 이 죄를 해결할수가 없기에 너희들을 위한 죄의 해결을 위해 내가 육신을 입고 이땅에 내려온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다 무너뜨리고 해결했다.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은 나의 백성들이며 나의 자녀들로서 신분이 바뀌게 되는것이다.

나는 너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당한 모든것은 네가 나를 믿는 순간 모두 나의 것이 되었다.

너의 죄뿐만 아니라 너의 연약함까지도 내가 받았기에

어떠한 죄라도 네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것은 없다.

너의 모든 죄와 허물과 연약함은 바로 십자가에 못박은 내안에 있다.

내가 너의 모든것을 가졌으니 나만 바라보아라

사단이 아무리 참소해도 너의 모든것을 가져간 나만 바라봐라

너자신을 바라보면 너는 사단이 너에게 참소하는 죄로 넘어진다.

끝까지 나만 바라봐라.

여러분 우리가 비록 또다시 사단마귀의 유혹에 넘어지더라도 주님의 보혈의 구속의 은혜를 무가치하게 업신여기고 성령을 거역하지않는 이상,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이미 사해놓으신 십자가만을 바라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네 육체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연약하고 무가치한것인가를 알고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을수 있도록 마음을 내려놓아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자가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회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사실을 믿고 자신의 연약함과 무가치함과 어리섞음을 자백함으로서 회복이 이루어 지는것입니다.

자연인이 하나님앞으로 나아와 죄를 자복하여 용서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는 회개기도이고,

믿는자가 죄를 범하여 주님께로 나아와 하나님이 자녀로서 눈물로 회복을 구하는 기도는 자백기도입니다.

앞의 부분은 사단의 자녀로 죄인임을 알아 죄의 용서를 바라는 회개기도라면, 뒤의 부분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죄로인해 자신의 무익한 존재를 알아 긍휼을 입어 회복을 바라는 회개기도입니다.

교회에서는 보통 통상적으로 이 두가지 다 죄를 범하여 하나님앞에 나아올때 회개하라,....회개했다 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면 믿는자인 우리가 죄를 범하면 주님이 다 책임 지신다고 했으니 우리는 아무 책임이 없습니까?

죄를 짓는게 내가 아니라면 나는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죄사함은 우리를 사단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그 신분이 옮기워진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와 같은 죄의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을지라도 나를 대신하여 주님이 그일을 대속하신것을 믿고 받아드림으로서 우리는 그 믿음의 의의 법에 의해서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의롭게 옮기워진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자녀로 신분이 바뀌었을 지라도 우리의 육체는 세상에서 계속 내혼의 의지와 결탁하여 매순간 죄와 허물을 드러냅니다.

물론 나는 사단의 자녀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서 죄에 대한 심판은 이미 완전히 끝이났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죄로인해 심판받을 이유는 없는것입니다.

 

그러나 죄로인한 징계는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내영으로 주님의 성령의 지시를 받지 아니하고 악한 영의 지시와 육체의 유혹에 따라 움직여서 죄를 범하였으니 그에 따른 육체의 징계가 있는것입니다.

 

그 징계는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죄가 얼마나 무섭고 더러운지 영혼의 고통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죄를 멀리하고 돌이킬수 있도록 회개하며 우리 입술로 자복하도록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믿음으로 다시금 세우기 위해 연단과 시험을 통해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여러가지 연단을 주십니다.

 

그래서 고통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자임을 알게되어 자기의지를 꺾고 주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사실상 주님을 영접한뒤 하나님자녀로서의 회개는 매일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일 전쟁터와 같은 악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믿는자의 회개는 다시금 범죄목록을 열거하여 범죄한 일을 입으로 아뢰것만이 아닌 자신이 이 죄로 인해 얼마나 무익하고 보잘것없는 슬프고 고통가운데 임자임을 자백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알게 됩니다.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참고 견딤을 배우게 됩니다. 자신의 의지를 무가치하게 여기도록 이끄십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도록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을 회개한다고들 말하는 것이죠....

그러나 정확한 의미에서 회개는 자연인이 사단의 죄악의 길에서 살아온 근본 죄인의 신분에서 돌이켜 하나님이 날위하여 세우신 골고다의 십자가의 주님앞까지 가서 긍휼함을 입는게 회개입니다.

나의 근본죄악된 존재가 하나님의 은혜의 길로 나서는 그 순간입니다.

이것을 죄에대한 돌이킴이라고 하는것입니다.

그러나 회개와 죄 사함을 통해 신분이 바뀌어지게 되면 또다시 드러나는 죄로인해 죄 사함을 구하는 회개는 옳지않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분을 얻고자 나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주님을 믿어 믿음으로 의롭게되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은 회개라는 말이 아니라 아들의 신분을 가지고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아뢴다하는 뜻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자복한다 혹은 시인한다라고 하는것입니다.

믿는 자가 죄를 범하여서 죄를 통회하는 기도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의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은 변하지 않지만 그 범죄로 인해 다시금 죄를 멸하시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질수 없기 때문에 그 즉시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익하고 어리섞은 자인가를 알아 나는 이렇듯 넘어질수 밖에 없는 자임을 회개(자복)하며 십자가만을 바라보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죄를 범할때 내적인 상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때 우리 마음안에서는 즉각적으로 영의 기능에서 이사실을 혼에게 알려주고 그다음 마지막으로 우리 육신에게 마음의 고통을 전달합니다.

죄에서 건짐을 받은 우리 영혼이 또다시 육신의 소욕에 따라 혼의 의지가 반응하여 다시금 범죄를 저지릅니다.

이때 우리 육신과 의지는 자기의 원하는 바를 이루어서 목적을 달성했지만 우리의 영은 양심에 의해 계속 고통을 받습니다.

이때 우리안에 내주하신 성령은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나의 영에게 말씀과 하나님의 거룩을 전달하여 우리의 영으로 하여금 이일을 중지할수있도록 혼의 의지와 육체의 소욕을 물리치게끔 압박을 가합니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영은 육체의 소욕에 따라 허물과 범죄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는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영과육의 힘겨루기에서 육의 소욕이 강하면 혼의 지정의는 바로 강한 쪽으로 붙어서 그일을 성사하도록 의지를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유의지를 그대로 남겨 두셨기 때문에 그냥 지켜 볼뿐입니다.

막을 유일한 방책이 있다면 강한 영적인사람이 되어 육의 소욕을 죽이거나 무가치하게 여기도록 성령충만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혼의 자유의지는 흙으로 지음받은 육의 원함에 더 강하게 나타날때는 그 즉시로 반응하기 때문에 우리안에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히 채워지지 아니하면 이 육체는 결국 이루고자 하는 자기의의 욕구를 채우는 도구로 행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영은 점점 그 힘이 약해져서 하나님의 말씀과 이끄심을 받을수 없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육신의 죄로인해 다시금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어 고통을 당하고 영혼의 버려짐을 당할수가 있게 되는것입니다.

이래서 내 영혼이 죄를 범했다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통해 만족을 이룰려고 죄를 범하지만 갈증만 더하지 이룰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더한층 허무와 공허감에 빠지게 됩니다.

마음의 세계는 그 무엇도 채울수 없는 우주와 같은 깊은 넓은 세계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자신의 만족을 채우고자 육신을 통해 경험해도 남은 것은 허무와 좌절뿐입니다.

이때 사단은 조금 더 강한 육신의 유혹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육신은 즉각적으로 그곳을 향해 반응합니다.

그러나 그역시 결국 만족이 없는 공허감만 더하여 모든 것이 허무할 뿐입니다.

사단은 이처럼 자기가 타겟을 삼은 그사람을 육신을 위해살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치도록 끊임없이 죄의 소욕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음성을 더 확실하게 듣는 사람은 영접한 이후 자기의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주를 믿어 거듭난자라면 일단 육신에 관한 모든것을 거부합니다.

물론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육신의 유혹을 받습니다.

사단은 속임의 마술사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들에게 더많은 유혹을 합니다.

그러기때문에 아무리 신앙이 깊고 거듭난자라도 겉의 육신은 다른사람과 똑같이 되어있기에 항상 그도 육신과 싸웁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싸우면 필히 패할것을 알기 때문에 육은 내려놓고 영으로 늘 주님을 앞세웁니다.

내 육신의 강한 의지를 주님께 맡기기만 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주님이 싸운다는것을 알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 육으로 보여지는 모든 세상일에 무의미하게 여겨지고 싫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단은 아까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속임의 마술사 이기때문에 그어느 누구라도 각 사람에게 마음의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골라 사람을 넘어뜨리게 하기 때문에 당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다윗의 범죄)

우리가 인간의 육체를 입고 있는 이상은 죽을때까지 자신의 약함을 통해 사단에게 공격당하고 때로는 넘어져 주님앞에 다시금 죄를 자복하는 그러한 생활들이 반복되는것입니다.

통회자복

그러면 과연 죄로인해 넘어진 내 영혼은 다시금 이전과 같은 엄청난 고통속에 어찌할바 몰라 방황할때 그 즉시 회개해야 할터인데 하나님의 아들로서 회개를 할려고 하니 그것이 아니다라고 하니 어찌해야 합니까?

정말 회개는 단 한번이며 믿는자의 죄용서함을 구하는 회개는 주님이 용납될수 없는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구원파는 이점을 가지고 공격해 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단 한번에 영원히 사하였기 때문에 믿는자가 다시금 회개를 한다는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속의 은혜를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렸다고 말입니다.

만약 다시금 회개가 이루어진다면 죄를지을때마다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런 고통을 계속겪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죄의삯은 사망이고 이 사망에서 벗어날려면 피가 아니고서는 죄사함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는 그 사람의 생명이기때문에 필히 죄의 삯은 반드시 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두번세번 수천 수만번 인간이 죄지을때 마다 내려와서 피흘려 죽는 수고를 감당할수 없기에 단 한번의 영원의 제사로 죄에 대해서 만큼은 마침표를 찍어 놓았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여기에 아니다라고 반박할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자연인이 죄인됨을 알아 죄에서의 돌이킴이라고 하여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단의 종노릇한데서 하나님의 의의길로 돌이킴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 회개가 이루어져야만이 죄사함을 받을수 있는 십자가앞으로 우리가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회개자체는 죄사함을 이루어 신분이 바뀌어지는게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회개는 죄사함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를 죄용서함 받는 차원에서만 쓸 수있는 단어가 아니라 자신의 무가치함과 십자가를 바라보는 차원에서도 쓸수 있는 언어인 것입니다.

만약 구원파에서만 요구하는 회개를 정한 이원칙에만 묶어 버리면 우리는 말의 토씨하나하나를 하나님 뜻에 물어봐야하는 영적인 고통이 따라옵니다.

하나님 제가 믿지만 회개할려고 하는데 이회개가 잘못된 것인지....혹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거부한 믿음 없는 소리인지.....

자복은 합니다만 단지 자복만 하다보니 죄를 미워하고 돌이키는 의미가 없는 것같아 어찌해야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어찌해야 할까요....

하는 이런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 고통을 느낍니다만 어찌해야 바른 회개기도가 되는지 알지 못해 중언부언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명사로서 쓰이게 될때 근본 죄인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리에서 옮기워지는 것을 말합니다만(명사:회개)

회개가 동사로서 쓰이게 될때는 근본죄인의 자리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도 계속 죄를 시인하여 죄를 멀리하고 돌아서는것을 의미하는것입니다.(동사: 회개하다 회개한다 회개하라.......이런 용어는 믿는자들도 쓸수있게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자의 회개는 처음 자연인이 사단의 자녀 신분에서 사단의 그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로 돌이켜 주예수의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가 허물로 인해 회개를 할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에게 나아가 자신의 연약함과 어리섞음을 통회하고 그 죄를 미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의 보혈에 의해 영원히 죄사함받았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받아들인자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두번다시 심판받지 아니하는 영원한 십자가의 은혜의 법을 가졌습니다.(칭의)

그렇다면 믿는자가 다시 범죄하여 회개할때에는 용서를 구하여 다시금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달라는 회개가 아닌 자신의 죄로인해 주님이 슬퍼하시고 내가 이렇게 무익한자란 것을 알아 그죄를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어지도록 자기믿음의 의지를 굴복시키는 회개라는 것을 다 알아야합니다.(롬14:23) (롬13:13-14)

이런 의미를 분명히 안다면 이제 회개를 한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구분이 가게 되는것입니다. 불신자의 회개는 말그대로 회개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회개는 자복이라는 의미가 분명히 담겨있는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말"이라는 단어속에 달리는 말과 말하는 말이 있고 "눈"이라는 단어속에 겨울에 내리는 눈과 보는눈이 있듯이 말입니다.

물론 교육을 통해 회개와 자백을 정확하게 구분지어 놓지않으면 신앙의 혼선과 약점이 분명히 있겠지만 우리는 지금껏 마음으로 이러한 사실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죄는 죽을때까지 따라오는것이지만 죄를 싫어하고 미워할수 있도록 하나님 자녀로서의 회개라는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신앙을 지켜왔던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인의 회개든 믿는자의 자복이든 우리가 범한 죄를 일일이 열거하고 고백하는 것이 회개의 정신은 아닙니다.

우리는 생각나는 죄도 있지만 생각나지 않은 죄는 더 많습니다.

만약우리에게 1억개의 죄가 생각나서 1억개의 죄를 열거하며 회개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주님은 그 외에도 죄가 또 있다고 말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죽기 바로 직전에 어릴 때 지은 죄가 생각났다고 합시다.

어떻게 그런 죄를 회개합니까?

그러므로 회개는 나의 전생애가 죄인이었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죄로 뒤덮여졌기에 나의 전부를 회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이들은 주님의 특별한 은혜로 영화스크린처럼 죄가 다 보여 주더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죄의 더러움과 추악함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무가치함을 알게 해주시기 위해서 주님의 특별은혜로 보여주신 것이라 보아집니다.

그런데 어떤이들은 그간증을 듣고는 그렇게 해야 회개가 다되는줄로 알고 주님의 보혈의 은혜를 입기 보다는 죄가 생각나도록 기도만 하는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죄를 자욱한 안개로 까지 묘사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죄를 열거하면서 일일히 회개한다고 하겠습니까?

머리카락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고계시는 하나님앞에 우리가 행한 모든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시139:1-10)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한다는 것은 이렇듯 이런 죄 저런 죄 를 범했으니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그런 회개자복의 기도는 아닙니다.

사막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내 죄를 열거한다면 우리는 평생을 걸려도 다 고백하지 못합니다. 그냥 나는 행악의 종자요 사단의 종노릇한 죄인중의 괴수였습니다.

벌레만도 못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 범한 죄를 일일이 열거하는 회개보다 훨씬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까?

생각나는 죄만도 엄청난데 생각나지 않는 마음의 죄는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면 믿는 자의 회개기도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나는 이렇듯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연약하고 어리석은 육체로 하여금 범죄하여 항상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자신을 시인하고 무익한자 임을 자백하라는 것입니다.(요일 1:9)

우리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죄악으로 가득찬 존재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고 의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나의 영혼이 죄사함받음으로 인해 얻어진 신분의 변화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늘 세상의 악한자의 소굴에서 제일먼저 먼저 접하는게 우리의 육신입니다.

그러므로 이 육신을 통해 항상 악한 영의 이끌림으로 하여금 죄와 허물은 내 생명이 다하는날 까지 경험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시인하고 자백하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자신의 무능력과 어리석음과 내 힘으로 할 수 없기에 자백을 통하여 회개하고 주님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육의 소욕을 부인하고 성령을 좇아 이끌림을 받아 살아가는 자가 될 수 있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길에서 하나님의 길로 옮겨 주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회개는 단 한번이지만 믿는 자가 다시금 범죄하여 그 죄악을 깨닫고 다시금 주님 앞에 나아와 자백하는 회개는 일생을 통해 경험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의 의지로서는 죄에 대하여 이제는 믿음의 의를 가지고 주안에서 삶속에서 습관적이든 고의적이든 그 죄 속에 머물러 있는 그 모든 죄에 대하여는 단호히 배격하며 돌이킬 수 있도록 주안에서 선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죄는 내가 이겨내거나 고칠수 있는 문제는 하나도 없지만 우리는 사단의 길에서 하나님의 의의길로 돌아서는 결단을 가지는 모습만큼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지금껏 남몰래 지은 모든 습관적이고 고의적인 죄들을 멀리할 수 있는 의의결단을 믿음 안에서 주님의 이끌림을 받아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안한다고 안 할수 없지만 자백을 통해서 영이 회복하고 죄에 관하여는 주님께서 그일을 이룰 수 있도록 내 의지를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자가 세상죄악이 주안에서 멸하였지만 자기 성품에 따라 부분적으로 일어나는 죄에 대해서 미워하고 돌이키는 회개를 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계2장,3장)

결론

자연인의 회개는 돌이킴이지만 믿는자의 회개는 회복인것입니다.

피로 맺어진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변함이 없듯이 주님의 피로 맺어진 주님과 우리사이는 변함이 없지만 죄로인해 멀어진것을 다시금 자백이라는 과정을 통해 회복되어지는것입니다.

예수 보혈의 구원의 능력은 모든 죄를 사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에 나를 죄악에서 건져 구원하셨다라는 이 믿음에 추호도 의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기는 주님을 믿었다 하지만 잘못된 구원관을 가짐으로 온전한 회개를 하지못하여 그 신앙이 이론과 지식에만 머물러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영적 심각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사람은 다시금 처음부터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회개의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피 뿌림을 받지 못한 자연인과 같은 상태이기때문에 내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경험해야 진정한 회개가 나올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을 믿고 의지한다는것은 자기의가 다빠진 주님의 의로 채워진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자랑이나 자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일에 관심이나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죄에 대해서 경계하나 실수로 범 할때 그 즉시로 주님 앞으로 달려가 자복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될 때 그는 성화된 삶을 통해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로 한걸음씩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의 회개에 관한 성경구절

욥42:6(믿는자의 회개)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겔18:30(믿는자의 회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하니하리라

눅17:3(믿는 자의 회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17:4(믿는 자의 회개)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히6:6(타락한자의 회개)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12:17(타락한자의 회개)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딤후2:25(그리스도인의 회개)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고후7:9-10(그리스도인의 회개)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12:21(그리스도인의 회개)

또 내가 다시 갈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

벧후3:9(그리스도인의 회개)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계2:5(그리스도인의 회개)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16(그리스도인의 회개)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2:21(그리스도인의 회개)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 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계3:3(그리스도인의 회개)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계3:19(그리스도인의 회개)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글쓴이 십자가생명...옮기는 글.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 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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