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 종교개혁
요시야(Josiah)의 부친 아몬은 24세에 죽었다.(21 : 19, 23). 그러므로 결국 요시야가 태어난 때는 아몬의 16세였던 셈이 된다. 한편 요시야는유다 최후의 선왕(善王)으로서 31년간(B.C. 640-609)을 통치하였다. 그는 다윗을 본받아 여호와 신앙에 전념하였는바 죄악으로 더럽혀진 나라를 정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그도 유다를 구원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으며 그 자신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성급히 애굽과의 싸움에 참전하여 전사(戰死)하였으니(23 : 29, 30)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수 없다.
•요시야의 어머니, 여디다
'여디다'는 솔로몬의 다른 이름인 '여디디야'(Je-didiah)의 여성형 이름이며 뜻은 '사랑하는 자'이다(삼하 12 : 24, 25). 그러나 정작 '여디다'(Jedidah)에 관해서 알 수 있는 바는 달리 없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왕
*왕하 22: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본절에서는 요시야의 통치의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요시야의 경건에 대한 평가는 여호사밧(대하 17 : 3) 및 히스기야에 대한 평가와 동등하다(18 : 3). 때문에 후대 사가 (史家)들은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이세 사람을 가리켜 유다의 3대 성군(聖君)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요시아는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곧 모든 인간 삶의 유일한 정도(正道)인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생각하며 판단했다는 뜻이다(신 5 : 32;28 : 14).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이 점에 있어서도 서로 일치한다(18: 6).
"곧 저(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왕하 18:6)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야의 선한 행위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돌이키지 못했다는 사실(23:26, 27)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하 34 : 3-7에 따르면 요시야는 이미 그의 통치 12년에 한 차례 종교 개혁을 단행하여 모든 우상들을 파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유다 역사상 가장 철저하고도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26세 되던 해인 바로 이 통치 18년째의 일이다.
• 즉위 18년에 큰 개혁을 이루다
"요시야왕 십 팔년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전에 보내며 가로되"(왕하 22:3)
한편 요시야 왕 18년은 B.C. 621년경이다. 이때는 앗술바니팔 왕의 죽음(B.C.626년)으로 인해 앗수르 제국이 이미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시기이다. 그러므로 요시야는 대외적인면에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대내적으로 오로지 종교 개혁에 정신을 쏟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요시야 12년에도 종교 개혁이있었으나(대하 34 : 1-7), 왕하 기자는 보다 대대적인 종교 개혁이 시행되었던 요시야 18년을 더욱더 중요시여기고 있다. 이유는 요시야는 공적(公的)인 예배의 완전한 개혁을 성취한 후 사적(私的)으로 개인들의 가정에서 행해지던 모든 미신과 우상 숭배를 폐지하는 일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서기관 사반을 성전에 보냈다. 백성이 여호와의 전에 드린 은을 계수하도록 보낸 것이다.
여기 '드린 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여 하나님께 바치거나 아니면 율법의 규정(출 30 : 13, 14 ;레 27 : 2-8; 민 18 : 15, 16)에 따라 바쳤던 헌금을 가리킨다. 한편 선왕(先王) 요아스는 이러한 헌금을 모아 성전을 수리하는 데에 사용하였다(12 : 4-16). 본장에서의 요시야의 행위(3-7절) 역시 앞서 요아스의 그 같은 정책을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계수하여'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템'은 '마치다'라는 뜻이다. 즉, 이것은 새로운 용도에 지불할 목적으로 돈을 정리한 것을 가리킨다. 70인역 (LXX)에는 이 단어를 '스프라기손'으로번역하고 있는데 '인봉하다'(seal) 라는 뜻이다. 탈굼역(The Targums)이나 New English Bible도 동일한 뜻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돈을 자루에 넣어 묶는다는 뜻이다(12: 10).
한편, '사반'이라는 이름의 뜻은'오소리' 이다. 당시 이러한 이름(겔 8 : 11)은 그렇게 희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Hobbs). 한편 렘 26 : 24에 보면 사반(Shaphan)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호하였다고 하며, 또 사반의 아들 그마랴도 여호야김 왕 시대에 상당한 귀족이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렘 36 : 12,25). 그리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 가운데 중요한 인물이었다(렘 40 : 5-41 : 10). 그러므로 사반의 가문(家門)은 비교적 명문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당시 서기관은 여호와포의 전에 바치는 세금들을 관리할 정도로 대단한 중책의 위치에 있었으니(4절 ; 12 : 10) 그 가세(家勢)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평행 구절인 대하 34 : 8에 따르면 당시 사반 이외에도 부윤마아세야와 다른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가 함께 활동하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시 서기관 사반에게 성전의 재정을 관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과 왕 사이에서 연락하는 매개자(煤介者)의 임무도 있었다.
당시의 대제사장은 힐기야였다. 여기에 언급되 힐기야(Hilkiah)가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학자들 간에 견해가 다양하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힐기야'란 이름이 여럿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 에스라의 족보에 나오는 살룸의 아들 힐기야(스 7: 1, 2)를 들 수 있는데 그는 대상 6: 13에 나오는 대제사장들의 명단에도 동일하게 살룸의 아들로 나온다. 2) 다음으로 베냐민 땅 아나돗(대상 6: 60) 출신의 선지자 에레미야의 아버지 역시 힐기야이다(렘 1: 1). 3 그밖에도 레위 족속 암시의 아들 힐기야(대상 6: 45, 46), 스룹바벨과 함께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제사장 힐기야(느 12: 1, 7)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본절에 등장하는 힐기야는 예루살렘 성전을 직접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렘 24장을 보면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현하고있다. 따라서 본절의 대제사장 힐기야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아버지 라는 견해는 받아들일 수 없다. 대체적 으로 학자들은 본절의 힐기야가 살룸의 아들 힐기야인 것으로 추정한다.
•전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다
*왕하 22:5/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여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에게 주어 전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되
왕하 12 : 6에 보면 "요아스 왕 이십 삼 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오히려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는 언급이 나온다. 이는 그동안 유다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관심, 열정이 식었던 결과이다. 그러나 요아스에 이어 이제 요시야 때에 이르러 성전 수축이 재개된 이후로 얼마 동안은 매년 성전 수리 작업이 시행되었을 것이다. 본절에 언급된 성전 수축(修築)작업 과정은 앞서 요아스 당시의 작업 과정과 거의 다를 바 없다.
•율법책을 발견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힐기야가 발견한 이율법책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견해가 다양하다.
1) 신명기서뿐이라는 견해. 이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문서 비평가 들이 많은데 이것을 근거로 하여 신명기 후기 저작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자기 신학적 틀을 정한뒤 그 틀 속에서 모든 결론을 유추해 내고 있으므로 신빙성이없다.
2) 모세의 계명과 규례집의 한 부분이라는 견해.
3)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라는 견해.
4) 그러나 본절에서 '율법 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세페르 하토라'는 대개 모세 오경 전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신 17: 18; 수 1 : 8; 8: 31; 24: 26; 느 8: 1 등). 따라서 일반적으로 요세푸스나 유대인들이 생각하듯이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은 모세 오경 전부라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한편 이 율법책은 신 31: 26에서 보듯이 언약궤 옆에 비치해 두었던 성전용 율법서로서 제사장들에 의해 수시로 읽혀지던 것이다(신 31 : 12, 26). 그런데 므낫세 당시의 극심한 배교(背敎) 현상(212 : 1-9)에 불안을 느낀 누군가가 이 율법서를 보존하기 위하여 성전 모퉁이에 감추어 두었던 것 같다.
"여러분은 아이들을 포함한 백성의 모든 남녀와 여러분의 성에 사는 외국인을 모두 불러모아 그 법을 듣고 배우게 하여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게 하십시오."(신명기 31:12)
*왕의 앞에서 읽으매
이처럼 서기관 사반이 율법책을 '읽었다'는 말은 이미 8절에서도 나온다. 그런데 이때 사반이 읽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길이 없다. 추측컨대 아마도 그는 왕에게 충격을 주는 중요한 부분 몇 군데를 읽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자신의 옷을 찢으며 통회하였기 때문이다(11절). 또 23: 2과 비교해 볼 때도 이때 만큼은 사반이 책 전체를 읽은 것 같지는 않다.
*왕이...그 옷을 찢다
사반이 읽어 준 율법책의 내용은 아마도 이전에 읽은 어떤 책이나 교훈보다도 요시야의 마음에 더 깊은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13절에 비추어 볼 때 사반이 읽은 내용 중에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멀리 할 경우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리라는 말씀(신 28 : 15-68)도 있었던 것같다. 그러므로 요시야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음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옷을 찢는 것은 하나님을 떠났던 자들이 다시금 돌이켜 마음을 찢고 회개함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사반의 아들 아히감/ 아히감(Ahi-kam)이란 이름의 뜻은 '내 형제가 일어났다'이다. 그는 여호야김 때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호해 준 사람이며(렘 26 : 24), 예루살렘 멸망후 포로로 끌려간 그다랴의 부친이다(렘 39 : 14;40 : 7).
*악볼/ '악볼'(Achbor)이란 이름의 뜻은 '들쥐'이다. 앞서 '사반'이란 이름 또한 '오소리'란 뜻이었는바 이처럼 이름의 뜻이 동물을 지칭하는 경우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선 드물지 않았던 것 같다. 3절 주석 참조. 한편 악볼이 왕의 전권대사(全權大使)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토록 세움받았다는 사실 이외에는 그나그의 아비미가야(Micaiah)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바가 없다. 대신 악볼의 아들 엘라단이 여호야김 왕에 의해 애굽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기록이있다(렘 26 : 22). 한편 병행 구절인 대하 34 : 20에는 악볼이 '미가의 아들 압돈' 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아마 잘못된 기록일 것이다.
*왕의 시신 이사야/ '아사야'(Asaiah)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세우셨다'이다. 그시신 (侍臣), 곧 왕의 수발을 받드는 신하였다.
• 나와 백성과 온유다를 위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왕하 22: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
요시야 왕은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그말씀을 먼저 자기에게 적용하였다. 11절에서 옷을 찢은 그의 행위가 이것을 잘 보여 준다. 신 28: 15-68과 레 26: 16-19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심판은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백성들에게 미친다. 따라서 히스기야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무릎 끊은 것은 일국(一國)의 최고 통치자로서 마땅한 자세가 아닐수 없다. 한편 여기에서 '온 유다'는 나라와 국민, 땅을 다 포함하는 말로서 '백성'이라는 말과는 약간 의미상 차이가 있다.
요시야 왕은 출 20:5에 나오는 계명의 말씀처럼 자신의 부친이나 조상들의 죄가 자기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았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죄에 대한 심판이 자손에게로 연기된 것(20:19)과 므낫세때에 내린 유다 멸앙의 예언(21 : 10-15)에 대해 인식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유다 왕들의 반복된 배교 행위로 인하여 축적된 죄의 결과, 이제 멸망의 심판이 불가피하게 되었으므로 그 같은 심판에 대한 요시야의 두려움은 더욱더 심각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다
"그래서 그들은 여자 예언자 훌다를 찾아갔는데 그녀는 할하스의 손자이며 디과의 아들인 예복 담당자 살룸의 아내로 예루살렘의 둘째 구역에 살고 있었다. 그들이 찾아온 사연을 말하자 훌다는 왕에게 돌아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라고 일러 주었다. “나는 네가 읽은 그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과 그 주민을 벌하겠다. 그들은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으며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로 나를 노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분노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열왕기하 22:14-17)
이미 언급한 대로 요시야가 이때 읽은 성경 중에는 신명기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실상 신 27, 28장에는 하나님의 말씀 순종 여하에 따른 축복과 저주의 언약이 언급되어 있다. 본절에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케 한 원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언급되어 있다.
1) 하나님을 버림
이처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불순종했다는 뜻이다. 이는 곧 모든 죄악의 첫발걸음이자 죄악의 근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서는 어떠한 의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함께 나올 수 없는 이치와 같다(약 3: 11). 그래서 율법서의 상당 부분(신 12 : 19;29 : 25-28)과 예가서의 많은 부분(삿 10: 13; 삼상 8: 8; 렘 1 : 16 등)이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에 관해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 우상 숭배에 빠짐
즉, 유다 백성들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 것"(롬 1 : 23)이다.한편 하나님께서 떠난 자는 이처럼 자연히 우상 숭배에 빠니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하나님 안에서 살든지 하나님을 떠나 다른 무엇을 섬기든지 무엇을 꼭 의존해야만 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마 6: 24; 눅 16: 13).
3) 적극적인 범죄
유다 백성처럼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없고 다른 것으로 채워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기 마련이다(창 4: 7, 8; 삼상 18: 10등). 왜냐하면 악인은 항상 독을 머금고 있으면서 (잠 10: 6,11) 악을 더듬어 찾음으로 더욱더 사악한 길로 스스로를 재촉하기 때문이다(잠 11: 27).
이곳을 향하여 발한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 유다에 대한 심판이 연기되기 시작한 것은 8 : 19에서부터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심판을 연기 하신 것은 당신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오래 참으심 에서였다(겔 33: 11; 벧후 3: 9).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요나에 의해 니느웨에 경고와 회개의 메시지가 선포된 사건에서 볼 수 있다(욘 3: 1-10). 그러나 그 같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은 계속 죄악 가운데서 행하였으니(21: 1-9)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게 된 지경에 까지 이르렀고 어떠한 회개에 의해서라도 만회(挽回)할 수 없게 된 것이다(대하 36: 16).
이사야의 회개와 개혁으로 심판이 연기되어 요시야의 눈으로 보지 않았을 뿐이다. 창 21 : 16이나 44 : 34에서 보듯이 어떠한 참혹한 상황을 눈으로 보지 않게 되는 것은 참으로 크신 하나님의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다. 히스기야와 마찬가지로(20 : 9-11) 요시야 왕도 그 같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이제 자기 백성들의 참람한 상황을 보지 않고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 요시야의 개혁 내용
*왕하 23:1/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왕조 시대에 장로들은 어떤 지파의 우두머리이거나 전통이 깊은 가계(家系)의 가장으로서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한 성이나 나라의 중대사가 있을때 종종 장로들의 회동(會同)이 있었던 것이다(10 : 1, 5). 한편 본절에서 요시야가 유다 전지역의 장로들을 불러 모은 것은 앞서 성전 수리시 발견된 율법책의 말씀(22 : 8-11)을 그들과 온 백성에 게 들려주기 위함이었다(2절).
1)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는다
22 : 8에서는 '언약책'이 '율법책'으로 나와 있다. '언약'(베리트)과 '율법'(토라)은 신명기적인 글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 되는 단어이긴 하지만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본절에서 저자가 역대기 저자와 마찬가지로(대하 34 : 30) '언약책' 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다음두 가지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언약'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 동시에 이제 그언약을 재확립하려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함이다(출 24 : 7).왕이 대 위에 서서 - 여기서 '대 위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알 하모드'로서 문자적으로는 '그 기둥 옆에' 로 해석된다. 그러나 대하 6 : 13을 보면 여기서 말하는 '대'(column)란 기둥처럼 생긴 사열대 임을 알 수 있다.
2)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운다
출 24 : 7을 보면 모세가 "언약서를 가져 백성들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본절에 기록된 상황과 매우 유사한 것이다.
4) 마음을 다하고...율례를 지키게 하다
이는 신명기가 가르치고 있는 근본 교훈이다. 즉, 쉐마 본문(신 6 : 4-9)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과 힘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곧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전적인 헌신과 사랑을 의미하는 바 율법의 제일가는 계명이다(마 22 : 37, 38). 때문에 요시야도 백성들 앞에서 무엇보다 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5) 바알과 아세라 등을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다
유다가 앗수르의 지배를 받을 당시, 즉 므낫세와 아몬의 시대(B. C. 697-640)에는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포함한 온갖 가나안 우상들이 범람했다(21 : 1-7, 21). 그러나 요시야 시대에 이르러 앗수르의 여향력이 쇠퇴하자 이제 요시야는 유다의 자주성(自主性)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그같은 이방의 우상을 척결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 애굽인들이나 가나안족 등은 해와 달, 별들을 우주에 거하는 여러 신들의 분신(分身)으로 보고 숭배하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체에 불과하는바 성경은 그것들에 대한 숭배 해위를 엄급하고 있다(신 4 : 19).
*기드론(Kidron)은 다윗성 동쪽에 있는 계곡이다. 길이는 약 5km로서 예루살렘 성벽과 감람 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기드론 계곡은 예루살렘 성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으니 우상 숭배에 쓰인 모든 기명들을 끌어내어 불태위 버리기에 적절한 곳이었을 것이다. 아사왕도 바로 이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시냇가에서 우상을 불태운 적이 있다(왕상 15 : 13).
6) 그 재를 벧엘로 가져 가게 하다
벧엘(Bethel)은 북이스라엘이 왕국 분열 시대부터 금송아지를 세웠던 우상 숭배의 본거지이다(왕상 12 : 27-33). 요시야가 파괴하여 불사른 우상의 재를 이 벧엘로 가져가게 한것은 아마 이로써 북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 되었던 우상 숭배를 영원히 종식 시키고자 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을 것이다.
7)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다
여기서 '제사장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케마림'은 특별히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다. 이러한 용례는 호 10 : 5과 습 1 : 4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반듯시 바알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는 므낫세와 같은 유다 왕들에 의해 산당의 제단에서 분향하도록 임명된 제사장들을 가리킨다. 한편 성경에서 여호와의 참된 제사장을 가리키는 단어는 대개 '코헨'이다(8절;왕상 2 : 27;창 14 : 18;출 19 : 22;레 1 : 5;신 18 : 3).
*열 두 궁성: 여기거 '궁성'(마잘로트)의 문자적인 의미는 '저택들', '머무는 장소들'이다. 아람(수리아)에서 이는 하늘의 12성좌(星座)를 가리키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천체들이 차지하고 있는 하늘의 전영역을 가리킨다(Bahr).
*아세라 상: 므낫세는 하나님께 회개한 후 자신이 여호와의 전에 세웠던 아세라 목상(21 : 3, 7)을 제거했었다(대하 33 : 15). 그러나 그 후 그의 아들 아몬에 의해 다시 아세라 목상이 세워졌다(대하 33 : 22). 이제 요시야는 바로 그 우상을 다시금 작파(作破)하고 있는 것이다. 요시야는 이것들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묘지에 뿌렸다. 이로 보아 아세라(Asherah) 상 (像)은 나무로 만든 후 그 위에 도금(鍍金)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와같이 우상을 부수어 가루로 만드는 행위는 출 32 : 20에서 모세가 금송아지를 없앨 때 사용했던 방법이다. 그리고 아사 왕도 태후 마아가의 우상을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제거했었다(왕상 15 : 13).
한편 고대로부터 기드론 골짜기(4절)에는 히브리인들의 공동 묘지가 있었는데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묘지는 보통 부정한 곳으로 간주되었다(민 19 : 16). 그러므로 요시야가 이곳에 우상의 가루를 뿌렸다는 것은 곧 우상이 부정한 것임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요시야는 이와같이 부정한 것을 무덤에 없애버림으로써 다시는 백성들 가운데서 그러한 가증스런 이들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겔 37 : 1-14;사 14 : 19)
8) 성전에 있던 미동의 집을 헐다
'미동'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하카데쉼'은 남창(男娼)들을 가리킨다(신 23 : 17;왕상 14 : 24 ; 15 : 12 ; 22 : 46). 이들은 고대 근동 지방의 우상 숭배 의식때, 그곳 여제사장들과 의식상의 성관계를 맺거나 그렇지 않으면 남색(homosexuality)하는자들의 상대 역활을 하였다. 그런데 율법상 남색행위는 사형에 해당되는 추행으로 금지되어 있었다(레 18 : 22 ; 20 :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의 전 부근에 이 미동(美童)의 집을 만들어 주고 우상을 숭배하며 남색을 즐겼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들이 패역해졌다는 의미이다.
그곳에서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다. 여기서 '여인' 은 아세라(Asherah)의 여사제들을 가리킨다. 앞서의 미동들은 항상 이여사제들과 함께 거처하였다(Rawlinson). 한편 이 여인들은 휘장을 만들어 우상을 꾸미거나 우상 신전을 장식하며 그곳에서 행음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겔 16 : 16 이하에 잘 나타나 있다.
9)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다(왕하 23:8)
*왕하 23:8/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부윤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편에 있었더라
본절은 이제 요시야의 왕의 개혁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에로 확산되었음을 보여 준다. 요시야는 각도처에 흩어져 있는 산당들에서 더이상 불법한 우상 숭배 의식이 시행될 수 없도록 모든 제사장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았다. 즉, 이는 각 산당에서 이루어지던 우상 숭배를 청산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예루살렘 중앙 성전에서 거국적(擧國的)으로 유월절을 지키기위한 것이었다.(21-23절).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게바(Geba)는 오늘날의 '야바'(Jaba)에 해당되며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몇 마일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이곳은 본래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는데 훗날 레위 지파의 기업이 되었다(수 21 : 17;대상 6 :60). 한편 이곳은 벧엘과도 인접했으며 오히려 벧엘보다도 더 우상 숭배가 극심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Rawlinson). 다음으로 브엘세바(Beersheba)는 유다의 최남단에 위치한 성읍이다(삿 20 : 1;삼상 3 : 20). 그런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곳 역시 게바와 동일하게 우상 숭배가 성행했었다고 하다(Y. Yadin).
10) 성문의 산당들을 헐다
여기서 성문은 예루살렘 성문을 가리킨다. 이곳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공 집회 장소로 사용되던넓은 장소이다. 그런데 이곳에까지 산당이 세워졌음을 볼 때 므낫세와 아몬 당시 얼마나 우상 숭배가 극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편 혹자는 이 산당이 이방인들이 기도하며 예물을 드리도록 하기 위해 세위졌다고 한다(Bahr). 그러나 그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11)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단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다(9절)
산당에서 예배를 집행했던 제사장들이 이처럼 그들의 직무를 거의 박탈당했다. 요시야가 산당의 제사장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아 이러한 징계를 가했던 것은 아마 1 우상 숭배를 하지 않은 제사장들의 사기를 드높임과 동시에 2 사이비적(似而非的)인 예배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형제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 율법에 따르면 개인적인 결함으로 제사장의 자격을 잃은 자들은 예배에 참여할 수는 없었으나 하나님의 전에 바친 성물만은 먹을수 있었다.(레 21 : 21-23). 본절에서 직무를 정지당한 제사장들이 다른 제사장들과 더불어 식사에만은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12)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벱을 더럽게 하다(10절)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약칭하여 '힌놈의 골짜기'(Hinnom Valley)로도 불리운다(수 15 : 8;18 16). 이곳은 예루살렘 성밖, 서쪽에서 남쪽으로 둘려 있는 계곡이다. 다음으로 도벱(Topheth)은 이 힌놈의 골짜기 가운데 하시드 문 근처의 토기장이 밭 부근에 위치한 산당이다(렘 7 : 31,32). 이 일대는 본래 가나안 사람들이 신성시 하던 곳인데 후에 타락한 유대인들에 의하여 바알과 몰록을 숭배하는 우상의 중심지가 되었다(렘 32 : 35).
도벱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토페트'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학자들 간에 해석이 매우 다양하다.
ㄱ) '북'이라는 뜻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에서 아이들을 불에 태울 때 북소리를 크게 울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아니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Rawlinson, Matthew He-nry).
ㄴ) '침뱉음'이라고 보기도 하는데(Keil) 그곳은 경건한 사람들의 혐오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욥 17 : 6).
ㄷ) '용광로'라는 뜻으로 보는 이도 있는데, 그것은 그곳에서 몰록을 숭배할 때 아이들을 불로 태웠기 때문이라고 한다(사 30 : 33).
13)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불태우다(23:11)
태양신에 대한 숭배는 이미 오래 전에 애굽에서 유행했었다. 그리고 B.C. 8세기경 아람어로 기록된 진질리(Zinjirli)비문에도 태양신인 샤마쉬(Sha-mash)와 관련이 있는 레쿠벨(Rekubel) 신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그 비문에 태양이 바알하닷과 함께 숭배된 것으로 나와 있는 바 앗수르인들 역시 가나안 사람들처럼 태양 숭배와 우상 숭배를 병행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성경이 대개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태양상'에 대하여 어급하고 있음도 그러한 연유에서일 것이다(레 26 : 30; 대하 14 :5; 34: 4, 7; 사 17 : 8; 27 : 9; 겔 6 : 4, 6).
태양 수레는 태양을 숭배하는 의식을 해할 때 행군용으로 사용되던 것이다. 요시야는 이와 같이 천체 숭배나 우상 숭배에 의하여 더럽혀진 물건이나 동물들을 모조리 제거하였다(4, 6, 15절).
태양에게 말을 바치는 관급은 고대 여러 민족들 가운데 행해졌다(J. Austel). 그런데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말과 마차가 함께 드려지던 의식은 바사(Persia) 시대에 유행했다(풀핏주석).
한편, 이 말들은...시종 나단멜렉의 집 결에 있던 것이다. 나단멜렉(Nathan-Melech)의 집은 성전의 물품들과 기명(器皿)들을 저장해 두는 성전 창고들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성전의 많은 창고들이 때로는 사람들의 거처로도 사용되었기때문이다(느 13 : 7). 그리고 그 창고들 가운데 일부는 마굿간으로도 사용되었다.
14)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단들을 헐다
'아하스의 다락방'이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본절 전후 문맥이성전 내에 설치된 우상 숭배의 기명들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봐서 성전 경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혹자는 보다 더 상세하게 그 다락방이 문쪽에 있는 성전 마당의 건물들 중 하나인 다락방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 건물은 아하스가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및 낭실(廊室)을 제하였을 때(16 : 18) 세워졌던 것으로 추측된다(Keil). 왜냐하면 렘 35 : 4에 따르면 그 문에 있는 건물은 다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유다 열왕' 이 우상을 위한 단들을 다락 지붕에 세웠다고 했는데 그것은 곧 아하스가 세운 다락방의 단들이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18 : 1-6)에 의하여 제거된 후 므낫세와 아몬에 의해 다시 복구된 사실을 의미하다(21장). 그 단들이 요시야 당시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은 예레미야와 스바냐의 증거에 의해 알 수 있다(렘 19 : 13;습 1 : 5).
*므낫세가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운 단들을 헐다
왕하 21 : 5에 따르면 므낫세는 성전 뜰에 하늘의 일월 성신(日月星辰)을 위한 단을 쌓은 것으로 나와 있다. 이에 관해서는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므낫세가 회개할 때에 이단들을 성전 마당에서 제거하긴 하였으나(대하 33 : 15) 부수지 않고 단지 성밖에 던져 두기만 했었다.그래서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그단을 다시 본래 위치에 쉽게 세위둘 수 있었을 것이다(대하 33 : 22).
15) 멸망산 우편에 세운 산당을 더럽게 하다
멸망산은 예루살렘 앞, 감람산 남쪽 끝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오늘날의 '실완'(Silwan)이라는 아랍 마을에 해당되는 곳이다. 과거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면서 우상 숭배에 빠져 이곳에 모압, 암몬 등 여러 이방인들의 신들을 모시는 산당을 세웠다(왕상 11 : 5, 7, 33). 그러므로 그 후 이곳은 히브리인 들이 죽은 자들의 뼈를 버리는 등 대단히 부정한 곳으로 간주되었다.
요시야의 이러한 행위는 곧 율법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즉, 신 7: 5;12 : 3;16 : 21, 22에서는 이와 같은 것들을 모두 제거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이 해골로 그곳에 채웠더라: 민 19 : 16-19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죽은 사람의 시신(屍身)에 닿는 것은 곧 '부정함' 을 뜻한다. 따라서 요시야가 이와같이 행한 것은 우상의 신과 그 신들을 섬겼던 자들을 모독하기 위함이었다고 하겠다.
16)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헐다
*왕하 23:15/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이제 요시야의 개혁은 베냐민 땅인 벧엘에 까지 확산되었다. 여기서 요시야가 북방국 이스라엘 땅이었던 벧엘에까지 개혁을 확산 시켰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이곳 베냐민 땅은 과거 유다 왕국에 소속된 적이 여러번 있었기 때문이다(대하 11 : 12). 그리고 당시 앗수르는 쇠퇴기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식민지인 이스라엘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여로보암(Jeroboam, B.C. 930-910) 시대부터 벧엘은 송아지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이곳에 다른 이방의 우상들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다. 다만 추측컨대 17 : 24-4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방인들의 이주에 의해서 송아지 숭배와 우상 숭배가 혼합된 것이 아니가 생각된다.
*산당은 일반적으로 '높은 장소'를 지칭하며 영어에서도 단지 high place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혹자는 단지 높은 장소인 그곳을 불살랐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본절의 후반부를 성서 편집자의 편집에 의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오늘날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과거 그곳에는 대리석으로된 제단과 함께 부수적인 건물들이 있었음이 판명되었다. 그런데 그건물들은 본절에 언급되어 있듯 요시야가 불사르고 돌이나 금속으로 된 것은 모두 빻아서 가루로 만들었던 것이다.
*산에 있는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다가 단 위에 불살라 - 이처럼 요시야가 묘실에서 뼈를 가져다가 단 위에서 불사른 것은 벧엘의 단을 모독케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혹자는 15절에서 이미 단이 파괴되었는데 어떻게 단 위에서 뼈들을 불사를 수 있었는가를 의문시 한다. 그러나 이미 잘게 부수어진 단 위에 그 뼈들을 태윙다고 본다면 충분히 본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절에 기록된 요시야의 행위는 왕상 13 : 2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예언했던 대로의 성취하기 위해 의식적(意識的)으로 그처럼 행동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요시야가 이러한 예언에 대해서 안 것도 실상 이 일을 행한 이후이다(17절).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요시야를 통해 그 같은 예언이 실제적으로 실현되었던 것이다. 사실 왕상 13 : 2을 보면 약 300여년 전에 이미 '요시야'라는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 그가 벧엘의 단을 더럽힐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왕하 23:17/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성읍 사람들이 고하되 왕께서 벧엘의 단에 향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여기에서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이란 과거 여로보암 당시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및 심판을 선포하기 위해 유다에서 벧엘로 나아왔던 무명(無名)의 선지자를 가리킨다(왕상 13 : 20-26). 그러자 노선지자가 그 시신을 거두어 자기 묘실에 장사지내 주었는데(왕상 13 : 27-32) 본절에서 말하는 묘실은 바로 이 묘실을 가리킨다.
*사마리야에서 온 선지자: 북왕국의 새로운 수도(首都)인 사마라아(Samaria) 성이 세워진 것은 오므리 시대이다(왕상 16 : 24). 이후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통용되었다. 한편 본절의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란 왕상 13장에 나타나는 '벧엘에 사는 한 늙은 선지자' 를 가리킨다. 그런데 본절에서 요시야가 유다에서 온 선지자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를 그 묘실에 그대로 두게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예우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요시야는 과거에 노선지자가 했던 말(왕상 13 : 31, 32)을 기억하고선 그 말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들의 뼈를 훼손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17) 사마리아 각 성읍...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하다
대하 34 : 6, 7에는 요시야가 통치 제 12년에 종교 개혁을 단행했던 사마리아가 각 성읍, 즉 이스라엘 각성읍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것은 곧 므낫세, 에브라임, 시므온, 납달리 및 사면 황폐한 성읍들이다. 그런데 당시 앗수르의 식민지 치하에 있던 사마리아 왕국에 대해 요시야가 무슨 권한 권한으로 이러한 종교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단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앗수르가 앗술바니팔(Ashurbanipal, B.C. 669-626) 왕이 죽은 후 메대와 바벨론으로부터 협공을 당할 정도로 국력이 급격히 쇠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시야는 앗수르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사마리아 땅까지 쉽게 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 혹자는 요시야가 사마리아 땅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고도 한다(Ewald). 아무튼 요시야가 유다 백성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북쪽 이스라엘 지역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도 세금을 부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봐서(대하 34 : 9) 당시 요시야의 행정력이 사마리아 땅까지 미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풀핏주석).
18)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단 위에서 죽이다
산당 제사장들의 이 같은 죽음 역시 이미 왕상 13 : 2에서 예언한 대로이다. 유다에서와는 달리 이스라엘 산당의 제사장들은 여로보암 통치 이래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 들이었다(왕상 12 : 31). 그래서 이스라엘 산당의 제사장들은 유다 산당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정직(停職) 조처(9절)를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죽임을 당했느데 이것은 율법에 의한 것이다. 즉, 모세 율법은 레위 지파 중 아론 자손만이 제사장직을 맡도록 규정하고 있으니(출 28 : 1)이를 어기고 스스로 제사장으로 행세하는자들은 당연히 제거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요시야가 불법 제사장들을 제거한 행위는 바알 제사장들을 죽였던 예후(10장)와 여호야다(11 : 17-19)의 전통과도 연결된다.
19) 유월절을 지키다
*왕하 23:21/ 왕이 뭇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본절로부터 23절에 기록된 유월절 기사는 평행 구절인 대하 35 : 1-19에 비해 매우 간략하다. 역대기의 기록에 의하면 요시야에 의해 시행된 유월절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1) 유다 백성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참여했다는 점이다(대하 35 : 18). 2( 모세의 율법이 명하는 모든 의식들이 적법하게 준수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그 유월절이 율법에 적법했다는 것은 신명기의 내용 뿐만 아니라(신 16 : 1-18) 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출애굽기에 기록된 유월절 규례까지 지켰다는 뜻이다(출 12 : 3-20 ; 13 : 5-10). 따라서 앞서 힐기야 제사장이 발견한 율법책(22 : 8)은 모세 5경 전부를 포함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Rawlinson).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 부터...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과거 히스기야 시대에도 유월절은 시행되었으나 그 때에는 율법에서 명하는 유월절 규례와 어긋나는 점이 많았다. 예를 들면 1 율법이 정한 때에 시행되지 않았고(대하 30 : 2, 3), 2 규정된 정결 의식을 행하지 않은 채 유월절 양을 먹은 점(대하 30 : 18)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때 요시야 때에 행한 유월절은 실로 뜻깊은 것이다. 본절의 '이렇게'라는 부사 역시 지금까지 요시야와 같이 율법의 규정대로 완전하게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음을 강조해 준다. 한편 이외에도 요시야가 행한 유월절의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1 거국적인 차원에서 시행되었다는 점(대하 35 : 18), 2 예루살렘에서 실시되었다는 점(대하 35 : 1), 3 역대기 제사장들의 역할을 활성화시켰다는 점(대하 35 : 2, 10-14)등이다.
*드라빔: 이것은 고대에서부터 이스라엘을 포함한 근동 각지의 사람들이 각자 가정에서 섬기던 신이다(창 31 : 19). 이는 사사시대나(삿 18 : 14) 왕조 시대에도 매우 성행하였으며(삼상 19 : 13) 심지어 포로 귀환 이후에도 숭배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슥 10 2).
• 요시아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자가 없더라(24:25)
이스라엘 열왕들 중에 요시야만큼 온전하게 율법을 준행한 자가 없었다란 의미이다. 그런데 본서 저자는 앞서 히스기야 왕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하게 평가한 적이 있다(18 : 5).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 평가 내용을 분석해 보면 1 히스기야가 어느 왕보다도 하나님을 의뢰하였다면 2 요시야는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함에 있어서 열왕들보다 더 완전했다라는 의미로 구분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가는 다시 '그 조상 다윗과 같이' 정직히 행했다는 공통된 평가로 요약될 수 있다(18 : 3 ; 22 : 2). 따라서 본서 저자는 히스기야나 요시야가 다른 열왕들에 비해 하나님 보시기에 더 정직하게 행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위해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는 평을 첨부했던 것이다. 18 : 5주석 참조. 한편 본절에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라는 표현은 신 6 : 5에 기록된 쉐마(Shema) 본문에 의거한 평가이다. 3절 주석 참조. 그리고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이란 표현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누차 당부했던 말들(왕상 2 : 1, 3 ; 6 : 11-13;8 : 25, 26; 9 : 1-9) 속에서도 여러번 나타나는데 이것은 율법 준수에 대한 요시야의 철저한 면을 보여 준다. 한편 구약 외경서 가운데 하나인 집회서 49 : 4에는 다윗과 히스기야와 요시야를 제외한 모두 유다의 왕들이 범죄하므로 멸망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풀핏주석).
• 그러나...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다
요시야가 행한 많은 개혁과 선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유다를 멸망시키고자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본문에 보면 그 이유는 선왕(先王) '므낫세의 죄' 때문이었다고 한다(21 : 1-16 ; 24 : 3 ; 렘 15 : 4). 여기서 '므낫세의 죄'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유다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모든 죄를 통틀어 가리키는 표현임과 동시에 유다가 필연코 멸망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과거 북왕국 이스라엘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로 인해 멸망한 것과 같다(17 : 21-23).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은 멸망으로 예정된 어떤 백성이 그 죄악에서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 심판의 뜻을 돌이키신다고 약속하신 말씀과 서로 상반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렘 29 : 12-14).그러나 이 두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이 조화될 수 있다. 1 이것은 허다한 결함 투성이의 이스라엘을 폐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이스라엘을 다시금 일으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기인한 것이다(렘 31 : 31-34 ; 겔 37 : 25-28 ; 마 3 : 9 ; 롬 9 : 6-8 ; 갈 6 : 15, 16). 2 요시야 왕의 완벽한 순종 행위와는 달리 유다 백성들의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므낫세 때의 구습(舊習)을 쫓아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불가피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레미야서와 스바냐의 예언서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렘 2-13, 16-19장 ; 습 1장).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심판을 연기하거나 돌이키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오래 참으심을 무시하고 계속 죄에 거하는자들에 대해서는 아모리 족속을 위시한 가나안 족속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셨듯이(21 : 11 ; 창 15 : 16 ; 왕상 21 : 26)그 땅에서 쫓아내거나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더 크게 타오르기 전에 죄에서 돌이키는 결단을 보여야 하겠다.
•내가...버리리라
이처럼 본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 성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유다의 범죄가 이스라엘의 범죄와 동일하다고 판단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범죄를 이방인들의 범죄와 동일한 것으로 규정했던 17 : 8, 15절의 말씀과 연결된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백성을 전적인 은혜 가운데 택정하사 당신의 눈동자같이 아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신 32 : 8-10).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택하신 유다와 예루살렘을(19 : 34 ; 21 : 7) 버리시겠다고 하신 것이다(렘 6 : 30). 이것은 포로 이전 시기 유다인들의 죄악상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출처: https://mybiblenotes.tistory.com/457?category=884687 [묵상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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