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성수 : 성경적, 역사 신학적 고찰」을 읽고
M.Div 1914068 장민석
1. 들어가며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진지도 100년의 역사가 지났다. 교회는 수많은 시간을 거치며 성장하였고, 교회는 이 땅의 정치와 무관하지 않게 성장하였다. 특별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한국교회는 이 땅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역사의 한줄기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대면하였다. 최근에 한국교회는 이런 일들을 또 마주하게 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이다. 이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매우 강하며, 협소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안될 만큼 전염성이 심하다. 이에 대하여 예배로 모이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다양한 의견과 답변이 제시되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한국 교회 역사 가운데,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왜냐하면 예배로 모이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시간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속한 고신교회를 비롯한 대다수의 한국교회들은 전국의 교회들에게 예배지침을 내려주었다. 왜냐하면 이번 결정에 따라 한국교회는 앞으로 이와 같은 경우에 대하여 좋은 본보기 혹은 나쁜 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양낙흥 교수님의 “주일성수 : 성경적, 역사 신학적 고찰”은 시의 적절한 해답을 제공한다. 본서는 성경이 말하는 안식일과 주일의 개념, 안식일과 주일의 역사적인 접근, 특별히 4계명에 대한 칼빈과 청교도의 신학적 입장을 확실히 보여준다. 서평을 작성하는 필자는 본서를 통하여 코로나 사태에 대한 한국교회의 단면적인 예를 언급하고, 본서를 따라 저자의 탁월한 현답에 대한 간략한 서평을 하겠다.
2. 한국 장로교회의 주일에 관하여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SNS(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과 언론은 뜨겁다. 저명한 신학자들과 유명 인사들은 이에 대한 현답을 제시하려 한다. 이에 대하여 크게 2가지의 모습이 있는데, 첫 번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심하더라도 한 장소에 예배로 모이는 것을 폐하지 말자는 입장과 두 번째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심하므로 공공신학의 관점에서 이웃사랑을 위하여 영상예배로 대체하자는 의견이다. 실제로 앞의 두 입장에 따라 예배를 진행하는 교회가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몇몇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도 예배로 모이는 것과 모이지 않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며, 서로간의 의견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실제로 서로 간의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실제적인 예를 들자면, A 교회는 코로나-19에도 예배로 모일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설교시간 중 예배로 모이는 것에 대한 당위를 주장하며, 대형 교회가 예배로 모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비난 어조로 언급한다. 또한 루터의 탁상담화의 예를 들며 ‘당시 흑사병과 같은 질병이 무섭지만, 이로 인하여 말씀과 예배를 경홀히 여기는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라!’고 전하였다고 한다. 이렇게만 끝나지 않고, ‘여러분! 죽으면 더 좋은 곳 갑니다. 물론 죽으면 고통스럽지만, 죽으면 더 좋은 곳 가는 거 아닌가요?’라는 식의 말을 강단에서 외친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 번째 루터의 탁상담화는 얼마나 권위 있는 논증이기에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았는가? 두 번째 루터의 탁상담화의 내용은 과연 목사님이 주장하는 내용의 문맥에서 나온 이야기인가? 과연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을 경험하고도 저렇게 단면적인 부분만을 언급하였던 것인가? 라는 질문들이었다. 또한 죽으면 좋은 곳에 간다고 주장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독약과 치료약을 주신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런 주장은 어불성설이며, 강단에서 조심하지 못하는 처사이다.
흑사병에 대한 루터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1 사람들이 음식과 옷, 은신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모든 기아와 추위로부터 보존하고 싶다면, 음식과 옷 없이도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믿음을 대담하게 선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자살 행위라고 말한다. 또한 루터는 자신들의 이웃들에게 이와 같은 행동은 좋지 못하니, 약을 사용하고 당신을 도울 수 있는 물약을 챙길 것을 권면한다. 또한 집, 마당 거리를 소독하고 사람과 장소를 피할 것을 요청한다. 루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을 말하였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신뢰할 것을 권면합니다.
루터의 책을 자세히 보면, A 교회의 목사가 주장하는 내용과 맥락이 전혀 다르다. 즉, 자신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역사적인 내용도 자신의 주장에 맞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정확한 맥락과 근거하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의 맥락에 맞추어 모든 일을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안식일과 주일에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간극
안식일과 주일에 관한 신학적 입장은 고대교회사부터 시작하여 중세를 거쳤다. 특별히 본서는 칼빈과 청교도들의 입장을 정리하여, 4계명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공통점과 차이점을 간명하게 정리하였다.
칼빈은 안식일에서 주일로의 변환을 계시적이거나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고려에 의한 것이라 말한다. 그는 초대 교부들이 안식일의 모형적 성격은 폐지되었음을 감지하였다. 또한 그는 안식일에서 주일로의 전환은 이중의 목적을 위한 것이라 여겼는데, 첫 번째는 안식일에 대한 유대인들의 미신을 제거하는 일이다. 두 번째 교회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다. 이 점에선 로마교회의 율법주의적 주일 성수에 반발하여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칼빈은 크리스고인들이 꼭 일요일에 예배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는 특정한 날의 ‘미신화’를 결단코 용납하지 않는 태도였다. 다만, 최소 초대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신중히 고려한 결과이며, 최소 일주일에 하루는 예배와 묵상을 위하여 떼어 놓는 일이라 생각하였다. 그에게 제 4계명의 대부분의 요소는 의식법적, 모형적 요소로 간주되었고, 제 4계명의 실체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안식의 차원이라 하였다. 이 안식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 안에 역사하며, 하나님의 일들을 묵상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2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17세기 청교도들이 등장하여 엄격한 주일 성수를 주장하였다. 이들은 제 4계명은 창조의 규례이며, 자연적이고 영속적이며 도덕적인 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을 가진다고 한다. 이에 청교도안식일 창시자 바운드는 청교도들의 성경 해석법은 사도적 말씀뿐 아니라 그들의 행실도 우리에게 규범적이며 구속력이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주일을 범하는 것이 만악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청교도 중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성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이성으로도 하나님의 계시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에드워즈의 안식일 이해는 두 가지 명제를 통하여 제시하고 증명한다. 첫 번째 이레 가운데 하루의 리듬이 계시적이라는 점이다. 십계명은 지속적이기에 제 4계명도 지속된다 여겼고, 이를 부분적 의식법이 아닌 문자적으로도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매주 첫 날에 대한 개념이다. 그는 여러 사실로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의도적으로 이레의 첫 날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는 매주일의 첫 날이 신약의 ‘주의 날’로 불린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는 교회의 전통으로 지켜졌고, 이레의 첫 날을 안식일로 지키라는 명시적인 명령이 없다 한들 자신의 논지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3
본서는 안식일과 주일에 관한 신학적 입장은 두 가지로 정리되는 것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칼빈의 신학적인 입장이고 두 번째는 청교도들의 주장이다. 각각의 신학적인 입장은 전자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후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잘 반영되어 있지만, 실천적인 부분에서는 둘 다 일치한다. 저자는 두 입장의 장단점을 적절히 정리하였고, 제 4계명에 대한 전인적인 해석을 통하여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이 취할 입장을 적절히 제시하였다.
4. 코로나 사태에 대한 한국교회의 적절한 답변
본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혼란에 처한 시국에 적절한 답변을 한국교회에게 제시한다. 저자 사견에 치우지지 아니하고, 고대로부터 교회역사의 가장 중요한 토막들을 잘 정리하여, 작금의 사태에 주일을 어떻게 섬길 것인지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제시하였다. 특별히 전인적 안식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성도들이 안식을 취하여야 하는 것은 우리 개인만을 위함이 아님을 보여준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한국교회 역사 가운데,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교회의 결정이 앞으로 생길 일들에 대한 좋은 본보기 혹은 나쁜 예가 될 것이다. 또한 교회의 올바른 결정으로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과 세상 모든 이들에게도 어떤 이미지로 비추어질 시간이다. 성경을 단면적으로 해석하지 아니하고,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현재의 좋은 판단으로 이끌어내어야 한다. 공공신학과 성경신학적인 입장을 균형있게 취하여 작금의 사태에 가장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에 저자의 본서는 코로나-19에 당면한 우리에게 적절한 현답을 주며, 과거의 현재를 잇는 중요한 가교 역할이다.
1. Martin Luther, Martin Luther’s Basic Theological Writings, William R. Russell and Timothy F. Lull, Third Edition. (Minneapoils, MN: Fortress Press, 2012), 475-487.
2. 양낙흥, 「주일성수 : 성경적 역사 신학적 고찰」, (서울:생명의말씀사, 2004), 119-121.
3. 양낙흥, 「주일성수 : 성경적 역사 신학적 고찰」, 132-162.
[출처] 「주일성수 : 성경적, 역사 신학적 고찰」을 읽고|작성자 민돌이
'신학논문 소논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 성장의 원리(1) - 본질, 역사, 성경, 신학 (0) | 2020.08.27 |
---|---|
한국 장로교회를 향한 선지자적 외침. (0) | 2020.08.27 |
요한 서문에 나타난 로고스 연구 (0) | 2020.08.21 |
여성목사 안수에 관한 연구 (A Study on Women Ordination)- 임태우 교수 (동아신학연구원 교수) (0) | 2020.06.17 |
교회 개척 사역에 대한 옹호오종향 목사 (0) | 2020.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