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이르는 길 메타노이아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4:17)
From that time on Jesus began to preach,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 (Mt4:17)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일성은 “회개하라(Μετανοεῖτε)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입니다. 세례요한과 제자들의 주된 메시지도 “회개하라”입니다. 회개는 천국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또한 회개는 천국에 이르는 길입니다. 회개가 없으면 천국도 없습니다.
회개의 헬라어 원어는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입니다. 메타노이아는 전치사 메타(meta, μετά)와 노이아(noia,νοια)가 합성된 말입니다.
메타(meta, μετά)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를 초월한’, ‘~의 뒤에’, ‘~의 이면에’, ‘~의 본질적인’, ‘더 높은’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노이아(noia, νοια)’는 ‘마음’, ‘생각’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회개는 원어적으로 보면 ‘마음을 돌이키다’, ‘마음 위에 마음’, ‘한 차원 위에서 마음을 보고 돌이키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실 회개라는 말은 메타노이아의 의미를 충분히 담지 못합니다. 그래서 메타노이아를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메타노이아와 연관된 대표적인 개념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메타피직스(meta-physics)
메타가 들어간 대표적인 단어가 메타피직스(meta-physics)입니다. 메타피직스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 ~ BC 322)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메타피직스를 자연과학을 넘어서 근원적인 것을 추구하는 제일의 철학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메타피직스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 합니다. 형이상학은 형체를 초월한 영역에 관한 학문이라는 뜻으로, 철학(哲學)을 일컫는 말입니다. 반대로 형이하학(形而下學)은 형체를 갖추고 있는 사물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써 주로 자연과학을 말합니다.
보이는 물질 이상을 추구했던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메타피직스로 헬레니즘 문화의 사상적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 메타포(metaphor)
메타포는 우리나라 말로는 보통 은유, 상징 등으로 번역되지만 원어의 정확한 뜻은 아닙니다. 메타포(metaphor)는 meta + phor로 이루어진 말로써 meta는 change 헬라어 어근 phor는 carry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metaphor는 ‘언어의 의미를 바꾸어서 나르다’라는 뜻이 됩니다.
문학에서 메타포를 이해하고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이사야는 인류가 배출한 최고의 메타포 대가였습니다. 그는 자연 사물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메타포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이사야의 메시지는 그 울림이 오늘날까지 전달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로 인도하며 천국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사40:6-8)
* 메타인지(metacognition)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상위인지라고도 하는데 ‘인식에 대한 인식’, ‘생각에 대한 생각’, ‘자기 성찰 능력’등 다양한 정의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메타인지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가 결코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고유의 능력이라고도 하며 인간이 개발한 최고의 학습법이라고도 합니다. 메타인지의 세계는 인간의 능력이 얼마만큼 펼쳐질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천재들을 신비롭게 생각하며 부럽게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도 한번쯤은 천재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인류는 끊임없는 천재들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천재들을 연구하면서 그들을 배워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천재의 사고 체계의 비밀을 메타인지에서 찾기도 합니다. 천재치고 인지와 사고가 능력이 남다르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메타피직스, 메타포, 메타인지를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 개념들은 너무 놀랍고 위대해서 사람 기죽이기 딱 좋은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메타라는 개념은 한마디로 말하면 천재들이 필수적으로 겸비한 사고체계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타노이아는 메타피직스, 메타포, 메타인지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메타노이아는 메타인지와, 메타포, 메타피직스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메타노이아의 개념 안에 메타인지와, 메타포, 메타피직스가 포함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메타인지와 메타포, 메타피직스는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가능하지만 천국으로는 통하지 않고 반면에 메타노이아는 성령의 사람들만 가능하고 천국으로 통한다는 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메타라는 초월적인 사고를 세상 것을 얻는데 사용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메타노이아로 천국의 문을 여셨습니다. 메타노이아는 천국으로 안내하는 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천국을 얻을만한 인지와 사고를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없는 인간의 인식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인본주의의 한계를 벗어 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을 보내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나 자신에 대해서 계시하시고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알게 하십니다. 성령을 받은 신자는 이 세상 천재들이 깨닫지 못하는 천국에 대해 눈이 열리고 인식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주실 뿐만 아니라 천국이 무엇인지 더 잘 깨닫게 하기 위해서 메타포로 이루어진 수많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대표적인 메타포가 씨 뿌리는 비유인데 이 비유는 회개하고 천국에 이르는 가장 기본이 되는 비유입니다. 씨 뿌림의 메타포를 인지하고 이해하면 회개가 쉬워지고 천국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씨 뿌림의 메타포를 인지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길가 밭이나 돌밭 또는 가시떨기 밭에 머물다가 결국은 멸망당하고 맙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하는 메타노이아는 좋은 밭이 되어 백배의 결실을 이루는 것입니다.
회개가 어려운 이유는 천국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메타노이아의 최종목적은 돌이키는 것입니다. 돌이키지 않는 회개는 메타노이아가 아닙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집나간 탕자는 먹을 것이 떨어지고 돼지만도 못한 신세가 되었을 때, 곧 주려 죽는 절박한 때 메타인지와 더불어 메타노이아가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뛰어넘어 아버지의 집을 기억하고, 아버지의 인자하심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눅15:18-20)
회개는 먼저 아버지 집이 생각나고 일어나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타노이아입니다.
성경에서 회개의 모델이라 할만 한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요?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메타포에 능한 시인이었습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 23편은 하나님과 신자와의 관계를 한편의 그림으로 그린 가장 완벽한 메타포입니다. 이보다 더 완벽한 그림은 찾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번은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는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이 선지자 나단을 보내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이때 나단은 가난한 사람의 양을 잡아 손님을 대접한 부자의 비유를 말하였습니다. 다윗이 그는 죽을 자라고 하니 나단이 그가 바로 당신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바로 알아듣고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회개하였습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직접 회개하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비유를 말하였을 뿐인데 다윗은 회개하였습니다. 만약 나단이 다윗에게 직접 ‘회개하시오’라고 말했으면 죽음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세례요한이 헤롯왕의 죄를 직접 지적하자 헤롯은 회개하기는커녕 그를 죽일 기회를 엿보다가 헤로디아의 요구를 핑계 삼아 요한을 목을 베고 말았습니다. 죄를 직접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게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행동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이 이해가 되고, 초월적인 사고가 작동되어야 가능한 영역입니다. 즉 성령이 도우셔야 메타노이아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메타노이아는 성령의 지도 아래서 메타인지, 메타포, 메타피직스가 동시에 운용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메타노이아는 단회적인 돌이킴이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초월적 사고체계라는 것입니다.
죄에서 돌이켜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거의 대부분 메타포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한 말씀을 기초로 보이지 않는 형이상의 세계인 자신의 내면을 제3자의 관점, 즉 메타인지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돌이켜 천국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천수만 가지 메타포로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은 무한대한 메타포가 전개되고 펼쳐지는 길입니다. 또한 항상 메타노이아로 귀결되며 천국에 도달하는 길입니다. 천국은 육적인 세계를 초월하고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는 신령한 세계요 계시의 세계입니다.
청중에게 큰 소리로 “회개하라~”, “회개하시오~” 이렇게 외친다고 메타노이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큰소리가 회개에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대부분은 메타포를 이해하는 계시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메타포를 이해하면서 메타인지를 하게 되고 메타피직스를 넘어 메타노이아의 단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메타노이아는 천국에 이르는 길입니다. 천국에 이르지 못하는 회개는 진정한 메타노이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과 행적은 그 목적이 메타노이아를 통해서 천국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말씀의 씨앗을 받는 모든 사람이 회개 곧 메타노이아를 작동시켜 천국에 이르도록 초월적으로 도우십니다.
초월적인 도우심이 주님의 몫이라면 메타노이아를 작동시켜 천국을 얻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메타포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면 바로 돌이키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상 얼마나 더 부드럽게 회개를 촉구할 수 있겠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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