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 남기는 99가지 신앙상식
(피터홍 생애의 주요 간증을 포함한 자서전적 저서)
63. 삼위일체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BC 427~347)은 신은 하나라는 ‘이디아의 세계’를 깨닫고 고대 희랍의 지혜서인 ‘국가론(신국론)’을 저술하였으나, 그 하나의 신이 누군지는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 비단 플라톤뿐만 아니라 질서정연하게 창조된 대자연을 보고 누구나 창조주, 즉 전지전능하신 초월적 성부 하나님의 존재와 그 권능을 깨닫고 인정하고 발견할 수는 있다(일반은총).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구원의 성자 하나님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는 없다. 그분은 오직 사랑의 중보자(Bond of Love)이신 은혜의 성령님의 도우심(역사하심, 찾아오심)만으로 만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예배를 통해, 설교를 통해 그분을 조금씩 알고 깨닫고 한 걸음씩 다가가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특별은총).
그러나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어렵기에 2천 년 이상 기독교인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은 누구신가?”이다.
「62. 하나님은 누구신가?」와 특히 「63. 삼위일체론」은 기독교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상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유럽과 미국서 공부한 젊은 정통 복음주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강해를 중심으로 이해하기 쉽게 초기 서양교회의 대표적인 그림들과 성경을 통하여 그 해답을 찾아가보도록 하자!
< 삼위일체에 대한 3가지 초점 >
1. 초대교회에서는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2. 성서에 기록된 삼위일체는?
3. 삼위일체의 진정한 의미는?
‘삼위일체 교리’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성경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며, 2세기 중반에 신학자들에 의해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삼위일체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터툴리안(터툴리아누스 Tertullianus, AD 155~223)은 최초로 ‘Trinita = Trinity =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초대 기독교의 교부이자 신학자이다.
* 터툴리안의 삼위일체 공식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인격이 하나의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
연극(희극)이 발달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필요한 배역들을 고용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당시 여자 배우를 구하기 힘든 시기였다. 그래서 역할에 따라 한 배우가 가면을 바꿔 쓰고 연극을 하였다. 즉, 한 명의 배우가 가면을 바꿔 쓰면서 여러 역할을 연기했다.
그래서 터툴리안은 이러한 연극의 1인 3역을 이용하여 ‘가면론’까지 만들어 삼위일체론을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러한 터툴리안의 설명방식은 ‘초대교회 이단’으로 오해될 수 있고, 또한 완벽한 설명방식은 아니었기에 당시 성경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설명이 가능하지 않았다.
고딕성당의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한 창문 문양
고딕성당의 창문을 보면, 둥근 원 안에 똑같은 사이즈의 세 사람 모양의 정교하게 새겨진 형상이 있는데,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각의 인격을 의미하는 ‘교회창문 문양’이다. 바깥의 빛이 이 유리창을 통과해 들어온다. 빛은 하나이지만 이 창을 통과할 때는 세 개로 나눠지고, 통과된 빛은 다시 하나로 된다. 삼위일체를 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기에 이 유리창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삼위일체를 굳이 알아야 하는가? 예수님 잘 믿고 구원만 받으면 되지... 그냥 믿어!” ㅋ
예배 때마다 예배 시작의 영광송에서 "성부, 성자와 성령..."과 예배 마지막의 축도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를 하지만, 우리가 삼위일체에 대한 설교를 들은 적은 거의 없다.
< 초대교회에서는 삼위일체론을 왜 중요시 했나? >
아래는 초대교회 교부들이 많이 인용했던 성경구절이다.
롬 8:15-1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우리는 삼위일체에 대해 “어려워! 골치 아파!”라고 하지만, 1~4세기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들의 삶 전체를 건 목숨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나왔으며, 유대교는 아주 강한(하 엘로힘, the God) 유일신을 믿는 믿음에서 나왔기에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자는 돌로 쳐죽였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사람에게 예배하기 시작했다. 유일신을 믿는, 또한 구약성경(율법)만 믿는 유대교의 입장에서는 성부 외에 성자와 성령을 같은 하나님으로 보는 기독교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여기서 기독교는 아래 두 가지 비난에 시달리게 된다.
* 기독교에 대한 유대교의 비판
1.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2.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 기독교의 절심함’은 바로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의 신이 아니다”라는 진리를 목숨을 걸고 설명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설명방식이 쉽지 않았던 ‘삼위일체론 교리’는 늘 큰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기독교 내부와 외부에서 잘못 이해되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이 발생하였다.
한 예로, 이슬람의 코란(꾸란)에 언급된 삼위일체에 대한 내용을 보면, “하나님과 선지들을 믿되 삼위일체설을 말하지 말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정확한 의미는 “3명의 신을 믿지 말라!”라는 뜻이다. 즉, 이슬람에서 바라보는 기독교는 유일신 신앙을 왜곡시킨 ‘3신(세 개의 신)을 믿는 종교’라고 이해하고 있다.
* 삼위일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 성경!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삼위일체의 흔적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이 세례받으시는 내용을 보면...
막 1:10-11 (한 구절 속에 삼위가 모두 언급)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성부) 사랑하는 아들(성자)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그림에 나타난 성부, 성자, 성령의 특징
그래서 서방교회에서는 성령을 표현할 때 비둘기 모양을 사용하고 있다. 서방교회 안의 유리창 그림을 보면 성부, 성자, 성령의 특징을 알 수 있는데, 성부는 할아버지이신데 왼손에 창조세계를 의미하는 천구를 잡고 계시며, 오른손으로는 축복하는 모습이다. 성자는 십자가를 매고 있다. 즉, 창조주 하나님(성부)과 구원자 하나님(성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비둘기 형태의 성령은 두 분 사이의 사랑의 연합(Bond of Love)을 한다.
* 삼위일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세례와 예배형식
1. 세례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이름’, 각각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각각의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 각각의 정체성이 이 한 구절에 나타나 있다. 세례를 통하여 삼위일체 신앙이 생활 속으로 밀접하게 작용하게 되었다.
2. 축도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하나님이 천상에만 계시는 것이 아닌,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는 예인 ‘세례와 축도’를 통하여 삼위일체는 신학자들의 교리문제가 아닌 기독교인들에게 깊숙이 뿌리박힌 실제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교회생활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루이스 벌코프(뻘콥)의 ‘조직신학’ 중에서
“삼위일체는 신비다... 인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없다. 삼위일체는 각 분의 관계와 세상에 드러나는 방식에서 어느 정도 이해될 수는 있으나, 그 본질적 본성에 있어서는 알려질 수 없다. 교회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설명하려 한 적이 없다. 교회는 삼위일체론이 도전을 받을 때, 이 위험을 없애고자 하는 선에서(방식으로, 방어적인 선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만들고자 했을 뿐이다”
1. 성부: 창조하시는 하나님
2. 성자: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3. 성령: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나눠졌던 것을 하나로 연합시키시는 하나님
Louis Berkhof 루이스 벌코프(뻘콥): 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칼빈주의 세계적인 신학자(1873-1957년)이며, 어릴 적 미국으로 이주하여 기독교 개혁교회를 다녔다. 자라서 칼빈신학교와 프린스턴 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었다. 그 후 1906년 칼빈신학교 교수가 되었고, 그 후 30년 동안 조직신학을 가르쳤는데, 당시 개혁주의 설교가들 중 그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당시 찰스 하지(Charlse Hodge, 1797~1878)나 워필드(B.B. Warfield)와 같은 미국 내 칼빈주의 신학자와도 교류가 있었으나 이보다는 네덜란드 칼빈주의자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 1837~1920)나 헤르만 바빙크(H. Bavinck)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표적 저서로는 「Reformed Dogmatics(전3권, 1932년)」가 있다. 이 책은 「Manual of Reformed Doctrine, 기독교 신학개론(1933년)」이라는 요약본으로도 발행되어 오늘날까지 거의 모든 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1+1=2는 쉽지만 1+1+1=1은 어려운 추상적 개념! 셋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셋이 되는 경험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방울 3개가 합쳐지면 하나가 된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해에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다.
* 삼위일체의 핵심
“종의 영에 불과한 인간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가 되었다”
삼위일체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물리적으로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된 신학자들의 삼위일체에 대한 논리적 설명의 노력의 예들을 보자!
* 삼위일체에 대한 ‘어거스틴’의 해석방식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관찰하는 것, 즉 인간에게 나타난 삼위일체의 흔적을 찾는 방식은 ‘사랑’이다”
사랑의 성립요건(사랑이 존재하는 방식)에는 ‘나와 대상’이 필요하다. 즉,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이 필요하다. 서로 사랑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은 함께 있는 것이다.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어거스틴의 방식: 사랑의 상징으로 성부, 성자, 성령 중 굳이 꼭 한 분을 꼽는다면? 성령님은 사랑의 접착제(Bond of Love)시다!
막 1:10-11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부 = 사랑하는 분, 성자 = 사랑받는 분, 성령 = 사랑의 접착제, 즉 이 세 분은 모두 사랑이라는 하나의 공동체)
* 성령이 하시는 Bond of Love 관계
1. 성부와 성자의 관계: 성자가 고통당하며 죽을 때, 성령이 사랑의 끈(접착제, 고리)으로 성부와 성자를 연결시켜주심
2.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 성령이 사랑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연결시켜주심으로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가 됨
3. 성도들의 관계: 교회는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므로 성령이 사랑의 끈으로 성도들을 서로서로 묶어 형제자매가 되게 하심
* 어거스틴이 말하는 삼위일체의 진정한 의미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같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우리도 하나가 될 수 있다!
「삼위일체」 - 안드레이 루블료프(1410년 作) -
안드레이 루블료프(Andrey Rublyohv, 1360~1430,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생~사망한 중세 성상 화가) 作 ‘삼위일체’의 이콘(icon) - 위 그림은 러시아 정교회 동방교구에서 발달한 예배용 성화이다.
1. 좌측 성부 - 파란색 속옷을 입으심(천상에 계심으로). 성부는 성령을 보고 계심
2. 가운데 성자 - 성자는 파란색과 붉은색 옷을 입으심. 신학적 이유: 파란색은 하늘을 의미하고, 붉은색은 흙과 생명(피)를 의미. 즉, 예수님의 의상은 성육신을 의미. 성자의 눈길은 성부를 보고 계심: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다는 뜻. 양고기를 집어 드시려는 오른손 두 손가락은 신성과 인성을 의미. 성자 앞 양고기는 성자의 희생을 상징
3. 우측 성령 - 파란색 옷과 녹색 겉옷을 입으심. 녹색은 지상의 대자연을 의미(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라으이 접착제). 성령은 양고기를 보고 계심. 우리에게 성자의 희생을 보라고 하심을 뜻. 성령의 역할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어린양)을 우리에게 알려(해석해)주시는 일. 성령의 오른손 손가락은 무엇을 향하고 있나? 제단의 네모 구멍을 가리키고 있다. 구멍: 우리가 들어가야 할 자리, 순교자의 제단 구멍. 예전의 천주교와 성공회 교회에는 제단이 있었는데, 제단 정면 중앙부에 순교자의 유물을 넣어두던 제단 구멍이 있었다. 즉, 오른손의 지시는 성삼위가 계신 자리에 우리를 초대하시는 모습이다.
* 성령의 역할
1.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해석해(알려)주심
2. 우리 대신 간구하시고 하나님과 연결해 주심
이콘(icon) 학자들은 위 그림을 이렇게 해석한다. 성부의 눈과 성령을 연결시키고, 성자의 손과 우리가 앉아야 할 자리(순교자의 자리, 제단 구멍)를 연결하면 십자가가 된다. 즉, 삼위일체의 신비가 드러나는 곳 = 십자가! 성령의 초대에 우리가 앉아야 할 자리도 십자가!
눅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 1932~)의 ‘삼위일체 신학’
“하나가 셋과 같다거나 셋이 하나와 같다는 식의 숫자 놀음으로는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없다. 삼위일체는 산수와 전혀 상관이 없다.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으로 스스로를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그분께 관계적으로 응답하는 법을 배우는 방식이다” (주의: 유진 피터슨은 약간 신비주의 위험성이 있는 신학자이기에 그가 번역한 ‘메시지 성경’은 읽지 않는 것이 좋음)
*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삼위일체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하여는 성경의 마지막 책이자 성경 전체의 대결론 부분인 요한계시록에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모든 편지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있다. 요한계시록의 발신자는 성부 하나님이시며(계 1:1),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시 밧모섬에 유배되었던 사도 요한에게 계시로 보여주신 것을 당시 로마 황제인 도미티안(Domitian)이 암살된 후 석방된 사도 요한이 에베소로 돌아와 오랜 기간 묵상하며 작성한 편지다.
그리고 이 편지의 수신자는 소아시아 지방의 일곱 교회로부터 마지막 때까지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며, 발신 목적은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일곱 영 = 완전한 영, 살리시는 영: 7은 완전수)과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과 위로와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다(계 1:5).
계 1:1 (머리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계 1:4-6 (문안인사)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일곱 영 = 성령)
계 1:13-16 (성자 예수님의 모습)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위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무시무시 기괴하기 짝이 없다. 만약 문자 그대로 읽는다면 위로는커녕 즉시 도망가야 한다. 그래서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만약 유대인이라면 위 예수님의 모습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다. 구약의 이사야서와 다니엘서 등 묵시문학(기원 전후 민족적 수난과 종교적 박해 속에 기록된 유대교기독교의 종말론적 색체가 짙은 일련의 문학)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수가 없다. 묵시문학은 바벨론과 로마 등의 제국에 의해 압제당한 유대민족이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은어와 그림 등의 상징들로 가득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단들은 다 자기가 구세주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구루무(크림) 바른 흰머리를 반듯이 빗고, 구두를 빤짝빤짝하게 닦고나서 “이것이 바로 구세주의 머리와 주석 같은 발이다”라고 얘기한다. 구더기에 물려 죽은 유병언처럼... ㅋㅋ
그래서 이단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묵시문학에 대한 전 이해(全 理解: 온전한 이해)가 꼭 필요한 것이다.
단 7:9 (성부 하나님의 모습)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위 당시,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몰랐다. 그러나 초대교회 유대인 성도들은 다니엘 7:9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요한계시록 1:13-16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므로 “아!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같은 급이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당시엔 아직 삼위일체 교리가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이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후에 차차 삼위일체 하나님을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 결 론 >
삼위일체론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사귐 속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이자, 아직 그 초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헤매는 인간들을 위한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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