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은 ‘부르신’·사명은 ‘맡겨진’ 임무
소명은 ‘부르신’·사명은 ‘맡겨진’ 임무
사명과 소명의 차이
* 목적이 있어서 부르신 것을 소명, 목적이 있으셔서 보내신 것이 사명입니다 * 사명과 소명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소명 소명이란 ‘클레시스’라는 말로서 ‘부르다, 소환하다. 등의 의미로서 하나님을 떠난 피조물들을 부르시는 것이 소명입니다 이때 하나님께 무미건조하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이 부르심에는 목적이 잇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서 창조의 목적을 회복하여(구원의 목적) 살아가도록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소명의식이란 성도가 시간과 장소, 환경등에 관계 없이 부르심의 목적대로 창조의 목적대로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소명의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명 (Vocation) 소명은 기독교 신학에서 두 가지의 의미로 쓰여 왔는데, 하나는 회개와 신앙에의 부르심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에서 이웃에 대하여 봉사하라는 부르심이다. 여기서는 후자의 소명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는데, 특히 일상 속의 노동의 위치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구약은 전체적으로 일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자주 창세기 3장 14-19절의 일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해석되고 있긴 하지만, 아담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그 이전의 창세기의 기술이나, 혹은 정직한 노동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으로 표현되고 있는 구약의 여러 구절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구약의 긍정적인 언사들은 일상적인 일에 대한 구약 성경의 적극적인 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도 히브리 사상적인 내용을 담지하고 있는 한에 있어서 일을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게으름은 저주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신약 속에는 일상적인 노동에 대한 신학적인 반성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 중요한 이유는, 신약의 대부분이 임박한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면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에는 성스러운 일과 속된 일을 매우 엄격히 구분하였다. 전자는 수도원의 생활이나 사제들의 생활과 관련이 있고, 후자는 교회와 관계없는 일들을 포함한다. 교회 밖의 소명도 그것이 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죄악을 제한하는 자연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의의가 낮게 평가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역시 가장 진실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교회 안에서만이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금욕적인 수도원의 생활은 성생활과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결혼생활보다는 더 높은 차원의 소명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세에는 평신도들이 일상적인 생활을ㄹ 통하여 이웃을 섬기는 것에 대한 뚜렷한 신학적 반성이 없었다. 이러한 중세의 보편적인 종합이 수도원의 생활과 사제의 생활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일상적인 일을 낮게 평가하였는가는 토론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렇다고 시인하는 반면, 어떤 신학자들은 중세의 종합이 가지고 있었던 유기체적인 사회 사상 때문에, 농부로부터 왕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그 유기체의 건강을 위하여 꼭 필요한 존재로 평가되었었다고 주장한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사회사상가들은 개혁자들이 혁명적인 사회사상을 낳게 해 준 독특한 개념을 서방세계에 제공하였다고 하는 데에 동의한다. 개혁자들은, 성스러운 일과 속된 일 사이의 구분을 없앴으며, 또한 더 나아가서 속된 일이 금욕적이고, 수도원적이며, 사제적인 일들 보다 더 하나님의 눈을 기쁘시게 하는 유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루터의 견해는, 사람의 '인격'과 그의 '직분'을 구분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전자는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관계를 가리키고, 후자는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그의 역할이나 직업이나 지위를 가지고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지켜야 한다. 이 지위들(예를 들어, 남편, 아내, 사업가, 목동 등)은 자연법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이 지위가 가지고 있는 의무에 충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 된다. 루터의 이 견해가 가지고 있는 의의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1) 교회적인, 또는 종교적인 일로부터 그 특수한 공적을 빼앗는 것, 오히려 그것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일상생활을 소홀히 하게 할 때에는 그 종교적인 일들을 무책임한 것으로 비판하는것. (2) 모든 유용한 세속의 소명들이 긍정적인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 것.어떤 역사가들은 루터의 견해가 다소 반동적이라고 믿는다. 이는 어떤 지위에서 태어났던지 간에 그는 그 지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종교적인재가를 해주었다는 것이다. 칼빈도 역시 세속적인 일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을 발전시켰으며, 또한 한 소명이 다른 소명에 비해 유용하다는 생각을 비판하였다. 더 나아가서 칼빈은, 세상에서의 성공이 하나님의 선택을 지시해 주는 표시로 보았기 때문에, 근대 자본주의의 '노동 윤리'를 자극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이론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세속적인 일을 하나님에 대한 봉사로 평가하는 것이 서구사회에 어떤 동력을 제공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의 기술과 대량생산의 체계가 발전하면서, 보통의 노동자들이 일상화된 지겨운 노동에 시달리고, 또한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 대한 봉사라고 여겨질 수 있느냐 하는 데 대한 의문이 계속 증가되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노동자들은 고용주들에 의하여 생산을 위한 단순한 소모적인 도구로 전락되고 말았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사상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윤리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중엽의 영국의기독교 사회주의와, 약간 후의 미국에서의 사회복음 운동, 그리고 교황 레오 13세와 피우스 11세 등이 이 도전에 대하여 응답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종교개혁의 정신에 충실하다고 믿는 근본주의자들은 이 새로운 자본주의적 질서에서 생기는 불의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방어적인 자세를 고수한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은 개혁 운동 이후에도 계속해서 신학자들과 윤리학자들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소명 개념을 현대 세계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다. 그들은 재산권, 국가의 기능, 노동자와 경영자의 권리와 의무, 결혼, 전쟁 등의 문제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다. 로마 가톨릭은 자연법 이론의 테두리 안에서, 그리고 개신교는 상대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보편적인 선이라는 다소 실용주의적인 어휘들을 가지고 이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사명 [행20:2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명하면 굉장히 힘들고, 특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명하면 목회자의 길, 전도자의 길, 순교자의 길, 등을 먼저 머리에 떠올리고 그 길에 대해 막연한 중압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명이라는 단어는 개역 성경을 포함, 몇몇 성경사본에 (diakoniva/디아코니아) 을 사명으로 1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디아코니아'라는 단어는 다른 구절에서 봉사하다, 섬기다, 관리하다라는 등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사명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맡기신 구체적인 일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목회자로서 일, 학생으로서의 일, 직장인으로서 일, 주부로서의 일, 자녀로서 일. 이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간 모델이 있는데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셉입니다 그는 어느 장소, 환경, 등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소명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주변을 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때 우리가 타인들보다는 조금은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기를 원하실 때도 있습니다. 혹은 지금까지의 삶을 방식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만이 사명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있고 하는 자리에서 소명을 잃지 않고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사명자의 길이요, 사명자의 자리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명은 시간, 장소, 방법, 등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사명과 소명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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