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제자들의 소명

하나님아들 2020. 6. 8. 23:55

가장 소중한 것, 사람

막 3:13-19

 

 

 

 

1.제자들의 선택

예수께서는 그분의 생애와 사역에, 매우 중요한 순간에 도달하셨다.

그동안 사람들을 가르치고 병을 고치시면서, 갈릴리 지역을 순회하셨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대단히 실제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자신이 떠난 후에도, 이 일을 영속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해결책은, 사람이었다.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세우셨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며,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예수 팀이었다.

 

2.제자들의 사명

부름 받은 제자들의 사명은, 이중적이다.

(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첫째, 함께(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함께(메타) 있게 하시고의 헬라어, 동사(에이미)의 의미는?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되어, 계속해서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을 뜻한다.

 

참된 제자는, 주님과 동거하는 자여야 한다.

그분과 함께 기거하며 수종 드는 가운데, 인격, 삶의 방식, 고난이나 각종인생 문제의 대처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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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의미하는가?

, 훈련이다.

예수께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제자들 훈련에 할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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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았고, 그 분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이 열 둘 이 강한 훈련을 받았고, 사명자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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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과정을, 무시하려 한다.

제자도를 거치는 것 없이, 베드로나 요한의 권세를 가지고 싶어 한다.

이 열 둘에게는 가르침과 기도와 실습과, 무엇보다도 성숙할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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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전파하기 전에, 먼저 예수에 대해 알아야 한다.

'월리암스'(Williams) "예수와 교제하는 것이, 예수를 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므로 선행되어야 한다"고 갈파했던 것이다.

 

동거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훈련의 중요성, 훈련받지 않으면 거의 쓸모없다. 제자가 아니라 군중에 불과하다.

)진 에드워드의 세 왕 이야기 사울 왕, 다윗 왕, 다윗의 아들, 압살롬 얘기다.

세 왕이 특징을 설명할 때, 사울과 압살롬은 깨어짐의 학교를 입학한 적도 없고 졸업한 적도 없다.

그러나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도, 10여 년 간이나 지옥 같은, 고난의 훈련과정을 거쳤다.

깨어짐의 학교를 거쳤기에 다윗은 남다른 왕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둘째, 파송(또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기 위함)

예수께서 제자를 선택하신 최종 목적은, ‘보내기’(파송)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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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란 어떤 사람인가?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세상 안에서 선포하는 자들이다.

 

보내사에 해당하는 아포스텔레, ‘사도에 해당하는 아포스톨로스의 동사형이다.

세상으로 보내어지지 않고, 교회에 머물기 만 하는 자들은 주의 참된 제자가 아니다.

 

제자도의 끝이며, 완성이 선교다.

)선교 없으면, 우롱하는 것이요 일종의 기만이다.

)항구를 떠나지 않은 배를, 배라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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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임재에 가까이 가는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고 귀신을 내쫓기 위해, 보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나 귀하다.

)훈련(머무는 것)과 헌신(나가는 것)에 균형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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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기독인들이, ‘예수와 함께 있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교회에서, 회의나 교제, 위원회, 기도에 지나치게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

복음을 전파하고 실제 현장에 나가는 일에는, 훨씬 더 적은 시간을 들인다.

그래서 성도들이, 야성을 잃어버렸다.

 

3.어떤 제자가 될 것인가?

제자의 선택은, 주님의 주권적인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이것이다.

제자 선택의 기준이, 보편적이고 세상적인 기준과는 매우 달랐다.

 

어떻게 달랐을까?

16절 이하에, 나오는 제자들의 리스트를 보라.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 빌립...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무엇을 느끼는가?

 

예수께서 발탁하신, 제자들의 공통점이 있다.

누구하나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세상적으로 내세울만한,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천대받고 멸시받던 세리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평범한 사람도, 주님 손에 잡히면 쓰임 받을 수 있다.

보통 사람도, 얼마든지 비범한 일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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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붙여주셨던 이름에도, 그것들이 잘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들에게 이름을 주셨다.

시몬의 잠재력을 보시고,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요한의 아들 시몬, 평범하고 우유부단하며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시몬의 현주소였다.

 

예수님은 그의 안에 있는, 잠재력을 보시고 이름을 바꿔주셨다.

새 이름 게바’(헬라어:베드로), 아람어로 , 반석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시몬이, ‘반석 같은 사람 순교하는 믿음의 거인으로 변화될 것을 아시고,

그 이름을 반석으로 불러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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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가능성)를 보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이다

나를 따르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나의 제자가 되어 상상하지도 못한 충만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민족을 변화시키는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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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절에, 야고보 요한의 두 형제에 대해서도 나온다.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고기 잡는 어부였다.

그들은 우레의 아들이란,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받았다.

화내고 판단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은 언뜻 비추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을 환대하지 않는 사마리아의 마을을 향해, ‘하늘에서 불을 내려 태워버리기를 원하던사람이었다(9:52-56).

예수께서, 적절한 이름을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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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주의 손에 잡히자, 복음 전하는 사도로 거듭났다.

초대교회를 세우는, 사도의 생애를 살게 되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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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약점 투성이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들을 마음껏 사용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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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이름, 맨 끝에 누가 나오는가?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가룟 유다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있다.

한 마디로, 자기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다.

 

똑똑했지만, 아주 비판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었다.

돈에 밝고, 욕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약점에 무너졌고, 자기 스승을 은 30에 팔아먹은 파렴치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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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가룟 유다를, 비교해 보자.

두 사람이 똑같이 실패했고, 똑같이 시험에 들었다.

베드로는 일어났고, 유다는 배신자의 자리에서 비극적인 생애를 마무리 짖게 된다.

 

그 차이가 뭘까?

베드로에게는, 회개가 있었다.

 

자기 약점을 직면하면서, 눈물로 회개하고 다시 일어섰다.

그때 그의 실패, 그의 약점은, 더 이상 문제 되지 않았다.

베드로는 약점을 극복했지만, 유다는 넘어서지 못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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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가진 약점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고 누구든 쓰임 받을 수 있다.

 

결론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사람이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이냐? 사랑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냐? 지금 접하고 있는 사람이다.’

톨스토이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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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이다.’ (허드슨 테일러)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계신다.’(이 엠 바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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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크게 사람은 두 종류다.

 

첫째, 막 사는, 무모한 삶이다.

마치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삶이다.

목표가 없다. 비전도 없다.

살기 위해 살고, 먹기 위해 살고, 죽지 않기 위해 산다.

남이 먹기에 나도 먹는다.

 

늘 쫓기는 삶이다.

세상에 일에, 공부에, 돈에....

자신의 삶을 다른 무엇인가에 내어주는, 어리석은 삶이다.

인생의 주도권에 빼앗긴 채, 휘둘리고 끌려 다니며 사는 인생이다.

사는 게 아니다.

 

둘째, 부름 받은, 소명의 삶이다.

가장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짧고 소중한 인생을, 보람 있게 살기 원하는가?

우리는, 소명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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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다.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는, 각자의 일을 가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어부였다.

마태는 당시 사람들에게, 정죄 받던 로마의 세리였다.

다른 제자들 역시, 눈에 뛰는 사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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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세계 역사는, 열두 제자(예수 팀)에 의해 완전히 바뀌었다.

기독교를 핍박했던 로마가, 제자들과 그 제자들에 의해 기독교 국가가 된다.

세계역사가, 바뀐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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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무엇일까?

부르심에 반응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부르심(소명)을 깨닫고, 훈련받고(준비), 자신을 던진 것(헌신)이다.

)제자들, 바울 모두 예외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도, 주님의 기대를 따라 소명의 삶을 살면 된다.

그 삶에는 놀라운, 능력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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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 것인가?

소명 따라, 살 것인가?

결단하라. )빌 하이벨스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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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전략이다.

이걸 무력화시키는 것이 사단의 전략인데, 막 살도록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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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Jean Grenier)의 말이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보다, 해야 할 일을 할 때 더 행복하다.'

 

기도시간>

다 이렇게 사는 거지, 인생이 뭐 별 것 있겠는가?

그렇게 말하면서, 사단의 전략에 넘어가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