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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 여성의 한에 대한 상담과 치유

하나님아들 2012. 9. 24. 19:44

내적치유 : 한국 여성의 한에 대한 상담과 치유

 

 

­가족치료이론과 목회상담학 입장을 중심으로­

김 영 애 (한국 심리상담연구소 소장)

 

 

1. 시작하는 말

 

어느 날 한 여인이 그림자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문지방을 넘어서는 그 여인은 마치 통과의례를 치르는 듯한 경건함까지 내비치었다. 가녀린 어깨와 까칠한 머리, 바랜 듯한 얼굴빛은 그대로 인생의 무게였으며 그녀가 힘겹게 드러내 놓은 이야기는 바로 한국 여인의 한이었다.

 

믿음의 집안에서 자란 이 여인은 젊고 푸르른 시절에 지금의 남편과 만났다. 마냥 착해 보이는 심성에 끌려 불신의 시집 식구들을 구원하겠다는 사명감과 믿음만 가지며는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여인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찢어지게 힘든 가난과 청상과부로 젊은 세월을 홀로 지낸 시어머니의 증오뿐이었다. 믿는 자라고 더욱 핍박하는 시어머니에게 순종하여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원망하면서 아이와 함께 집밖으로 쫓겨나기를 수십 번, 아이들은 마당 한 가운데 내 던져진 밥을 철없이 주워 먹으며 커갔다. 술에 취하거나 아니면 허공만 쳐다보는 남편을 바라보며 자기 자신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던 세월이지만 잘 자라 주는 아이들이 한 가닥 희망이었다.

 

이렇게 무섭던 시어머니도 세월은 어쩌지 못하여 두 달 전에 세상을 하직하였다. 28년의 시집살이, 14년간의 중풍으로 지독하게 괴롭히던 시어머니의 사라짐은 남편에게 남겨진 것은 효자상이라는 표창장 한 장이었고 이 여인에게 남겨진 것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남편, 조울증 환자가 되어 버린 큰아들, 자기 여동생을 강간한 둘째 아들, 집안과는 아무 관계없는 사람같이 되어 버린 셋째 아들, 그리고 성폭력 경험으로 고통에 못 이겨 자살을 기도한 딸이다. 한없이 귀중하던 이들의 고통은 비수가 되어 마음에 꽂히고, 몸까지 병들어 버린 이 여인은 허허롭게 허공을 쳐다보며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흐느끼고 있었다.

 

이 여인의 이야기는 지금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우리 이웃 아낙들의 이야기이며, 목회현장에서 자주 만나는 한국 여인의 삶의 소리이다. 이 여인의 삶은 바로 한의 삶이며, 바로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 아니 우리 모든 한국 여인네들의 한의 이야기이다.

 

이 가족을 살펴보면 시어머니는 전통적인 유교 윤리관으로 인하여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데서 오는 한을 품고 자신의 분노를 며느리에게 풀고, 아들은 이러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성격적으로 불건강하게 성장하였기 때문에 술중독자가 되었다. 부인은 신체장애형병을 앓고 있으며, 아이들 역시 병들어 큰아들은 조울증을 앓고, 작은아들과 딸, 셋째 아들 모두 심리적 병을 앓게 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시어머니의 전통적 세계관과 새로운 기독교 세계관이 만나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 가족을 어떻게 치유 할 것인가? 그저 기도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여 문제해결 받자고 이야기 할 것인가? 실제로 이 여인이 받은 상담은 목사님의 순종하라는 말씀과 기도하라는 말씀, 전도사님이 작정 기도하자는 말씀, 권사님의 금식기도 충고, 다른 집사님의 사탄의 역사라고 하는 말들뿐이었다. 결국 이 여인은 신앙으로 문제해결을 얻기보다 더 큰 갈등과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온 것이다. 그러면 목회자는 이 여인을 어떻게 온전하게 치유할 수 있을까? 이제는 과거와 달리 더 이상 영적치유 만으로 사람들을 온전히 치유하기는 힘들며 상담기술에 대한 지식과 훈련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회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러한 구체적인 상담이론에 대한 소개에 앞서 이 가족의 문제에 있어서 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 가족의 문제의 시작은 시어머니에게 있는 것 같지만 시어머니 역시 가부장 유교 윤리의 희생자일 뿐이다. 결국 역사적으로 많은 한국 여성의 한을 생성하게 한 것은 가부장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족제도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러한 가부장 제도가 역사적으로 강화되었나를 살펴보고, 이러한 가족제도를 강화시킨 효 사상을 가족치료이론과 비교하여 보고자 한다. 또한 한국 기독교가 여성들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를 알아보고 더불어 이들 한국 여성들의 한을 목회현장에서 치유하기 위한 방법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2. 가운데 말

 

1) 한국 여성의 한과 가부장 가족제도

 

가부장제도 특히 한국의 가족구조는 한국 여성의 한의 원인을 제공하여 왔다. 이러한 가부장 제도는 처음부터 우리들의 삶의 양식이 아니었으며, 적어도 이조 초기까지는 원래의 여성과 남성에 대한 평등한 자유로움이 남아 있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고고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거하면 한반도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왔으며, 이 당시의 사회제도와 가족구조는 다른 지역의 구석기시대의 집단과 마찬가지로 여성중심의 사회였다고 추측된다. 이러한 여성 중심의 구석기시대를 이어 신석기 시대에서부터 남성중심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는데 어떻게 여성중심사회에서 남성중심사회로 변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론은 매우 다양하다. 대개는 경제체제의 변화를 원인으로 이해하는데 먼저 후기 신석기 사회가 농업혁명으로 좀 더 복잡한 사회구조로 변화되었는데 이 때 가부장 제도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가설이다. 예를 들어 엥겔(Friedrich Engels)은 초기의 사회는 공유사회로서 가정과 사회의 역할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았으며, 남녀 구별 없이 재산을 공유하였고 정치적, 경제적 분야에서 남녀가 같은 권리를 가졌지만, 사유재산의 축적은 남성과 여성의 활동 영역을 구분 지었고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계급제도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가부장 제도는 초기 국가 형태를 지닌 한반도에 뿌리내리기 시작하여 삼국시대를 거쳐, 신라, 고려, 조선시대로 이어진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무력으로 고려왕조를 뺏었기 때문에 하늘의 뜻, 즉 우주의 법칙을 거슬린 왕조로서 완전한 정당성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조선은 처음부터 위태로운 출발을 함으로써 강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또한 사대부 계층의 비대화는 정통성 없는 왕조 대신 사대부 자신들의 가문에 충성을 바치는 가족 중심의 정치세력을 형성하게 하였으므로 신유학의 가족 중심의 윤리관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사대부 층의 윤리관은 사대부의 세력이 커질수록 평민들에게도 퍼지게 되었으며 왕에 대한 충성보다 부모에 대한 孝가 더 절대적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결국 가족의 중요성은 신유학으로 인하여 강화되었지만, 부자 상속제가 도입되었고, 새 생명의 창조과정을 담당하던 신성한 가족은 남자의 가문을 이을 수 있는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아들 생산가족이 되었다. 남자의 가문을 순수하게 지키기 위해 여성의 결혼 전후의 정절이 요구되었으며, 가족들은 모두 어떤 일정한 질서에 따라 서열이 정해졌다. 즉 여자와 어린이 특히 여자 어린이는 서열의 맨 아래에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희생되는 이러한 제도도 어느 정도의 권리를 여성에게 줌으로써 오히려 여성들에 의해서 이 제도가 지켜지는 모순을 낳게 되었다. 예를 들어 본부인은 첩들과는 다른 위치와 권리를 부여받는 대신 남편의 여러 첩을 인정하여야 했다. 孝를 강조하는 윤리는 여자도 나이가 들게 되면 시어머니로서 며느리로부터 어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이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조직을 유지시키고자 하였다. 또 사회윤리를 내면화한 여성들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아들을 낳아 가문을 잇고자 하였다. 아들을 낳으므로 시집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고, 아들을 통하여 자기성취와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아들이 있으면 제사 드릴 자손이 있게 되어 죽은 후의 삶도 영향을 받게 되므로 여성들 스스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되었다. 즉 남성에게 있어서는 제사는 자신의 가문을 계속 유지시키는 것이며, 여성에게 있어서는 적어도 죽은 후에나마 어느 정도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여성의 정절을 국가적으로 찬양하며, 효부의 집안을 포상하는 등 효부 제도를 만들어 만듦으로써 이러한 윤리관을 내면화한 여자는 물론,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던 여성들까지도 강제로 정절을 지킬 것을 요구 당하였으며 때로는 집안의 명예를 위해서는 여성의 목숨까지 요구 당하기도 하였다.

 

처음에 든 사례에서도 꽃 같은 나이에 홀로 된 시어머니는 재혼이라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집안 망하게 한 며느리라는 눈총을 받아 가며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아들 하나만 믿고 고달픈 삶을 견디었던 것이다. 또한 며느리는 잃어버린 자신의 삶에 남은 것은 남편에게 돌아온 효자 표창장 하나와 망가진 자신과 가족들뿐이었으니, 아직도 이러한 효부제도는 우리들 주위에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남성중심의 사회는 모든 구조가 남성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짜여 있기 때문에 가족제도, 윤리관 특히 성윤리, 사회 역할, 더 나아가 종교까지도 이중구조로 되어 있으며, 여성들은 남성들의 상층구조를 떠받들기 위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외부적 환경은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남성주의의 가족구조, 사회구조는 한국여성의 심리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어 일반적인 한국인의 한과는 또 다른 차원의 한을 여성들은 형성하게 된다. 삶의 의미는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이루는데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의 건강한 관계 즉 자신에 대한 존중심,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심, 자연에 대한 존중심, 신 존재에 대한 경외심 등이 이루어질 때 인간은 인간다워지며 이 모든 관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가부장 사회에서는 여성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생득적 조건 하나만으로 진정한 존중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며 공허감에 빠지게 된다.

 

2) 가족치료이론과 孝사상

 

가족치료이론은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그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그가 속한 집단 즉 가족집단의 문제로 보는 상담학 이론이다. 무엇보다 가족치료 이론에서 중요한 개념은 모든 가족들은 서로 간에 적당한 분리와 결집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역기능의 가족이 되며, 자녀들은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별도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화가 잘된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자아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과 자신의 감정 구분도 분명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확대 해석하여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빨아들이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의 감정에 휘말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의 요구에 더 잘 반응할 수가 있다. 즉 독립적이며 동시에 건강하게 의존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사례의 가족은 이분화가 건강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기능의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이 가족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의 사회와 가족제도는 여성들로 하여금 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의존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사회에 존재하는 그 자체가 개체성이 건강하게 형성될 수 없다.

 

분화가 덜 된 가족에서는 삼각관계(triangle)가 심하게 일어나는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아들과 시어머니, 며느리간의 삼각관계는 하나의 사회-역사적 문제라고 까지 여겨져 왔다. 시어머니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아들에게 자신의 삶의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며느리와의 삼각관계는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인의 세계관으로 인하여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심리적 경계선(boundary)이 서구사회의 구성원보다 약하다. 심리적 경계선이 약한 것이 항상 단점이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을 느끼게 하고 인간답게 사는 맛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선이 약하기 때문에 어떤 긴장이 가족 간에 존재할 때는 감정의 확산 (fusion)이 더욱 강하게 생기며 삼각관계 등이 더 잘 발달된다. 결국 가족들은 건강하지 못한 가족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 역기능적인 역할을 하게 되며 심리적으로 병들게 된다. 따라서 한국여성들의 지나친 의존심, 자아 경계선의 확산, 개체성의 약화 등에 대해서는 역기능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이 따라야 하며, 이러한 여성들의 특징을 여성 개인의 혹은 그 가족만의 역기능적 소산이라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가족의 역동성은 세대를 통하여 전달된다. 이러한 개념은 특히 가족의 연속성을 중요시하는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조상숭배사상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으며, 조상숭배를 거부하던 기독교도 예배 형식을 취한 조상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알 수 있다. 이 조상숭배사상은 부모와 자식 간의 연대감을 효 사상으로 강화시켜 왔으며 바로 이러한 효사상은 가족 역동성 전달을 강화시켰다. 부모와 자녀간의 엄격한 경계선과 부모의 권위는 강조되었으며, 권위는 항상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내려오는 하향 지향적인 것으로 자녀의 개체성과 인격은 거의 무시되어 왔다. 이러한 효사상은 자녀를 자신들의 소유물로 혹은 자신들의 신경증적 욕구의 해소대상으로 삼아 온 많은 부모들의 잘못을 합리화하여 주었다. 그러나 효사상은 상호존중이 가능할 때라야 하나의 덕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치료 이론가인 Boszormenyi-Nagy는 가족 간의 관계성에 보이지 않는 충성심(invisible loyalty)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가족집단과 더불어 사회 집단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가족을 유지하는 가장 큰 힘은 가족 간의 충성심으로써 충성심은 감정이나 지식보다 윤리적 의무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충성심과 더불어 의무, 공평, 정의가 가족 구성원 사이에 존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의무를 수행하지 않을 때는 죄의식을 느끼게 되며, 수치감, 죄의식은 의무감 다음으로 가족을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 결국 가족은 충성심으로 이루어진 조직이지만 죄의식이라는 규제 장치에 의존하게 된다. 孝 사상은 바로 부모에 대한 충성심과 의무를 강화한 것이며, 또한 孝는 사회를 떠받드는 기본윤리로써 이것을 이행하지 못하는 자녀는 개인적인 차원의 죄의식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비난과 수치를 감수하여야 한다.

 

충성심 이행은 가족은 물론 사회조직 전체를 서로 붙들어 매어 주는 질긴 보이지 않는 실과 같다. 각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의 주고받음에 따라 가계부를 적고 있으며, 투자된 것과 받은 것, 혹은 감정적으로 뺏긴 것들이 모두 이 보이지 않는 가계부에 적히게 되며 이 가계부의 수지를 맞추고자 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 따라서 가족 간에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충성심의 끈이 있고, 관계성의 패턴이 의무감의 크고 작음에 따라 형성된다. 이러한 패턴을 이루는 관계성의 바탕에 가장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혈연 관계성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아들에게 의무가 있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실존적으로 빚을 지고 있다. 이러한 혈연관계는 아무리 없애고자 하여도 없앨 수 없는 관계이며 결혼을 통해서 확대되고 상호 교환에 따르는 가계부가 형성되게 된다. 그러나 가계부의 수지가 안 맡기가 쉬운데 이 경우에 부모는 자신들의 자녀, 손자, 그 후의 후손 세대들과 동일시를 하므로 그들의 앞날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희생과 좌절감이 비록 지금 채워지지 않아도 채워지리라 믿게 되므로 갈등을 해결한다. 이러한 설명은 혈연 중심의 한국 가족을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중요시하여야 할 것은 자손을 통하여 자신의 생명이 연장된다고 믿는 사상과 조상숭배사상으로 인하여 전통적 한국가족은 충성과 의무감의 수지 타산을 공평하게 이루고자 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가부장 가족제도는 가장이 가장 중요한 인물로써 조상에 대한 충성심을 바치고, 자신은 자식들로부터 孝의 충성심을 받지만 자녀와 배우자에게 주어야 할 의무에는 주고-받음이 공평하지 못하였다. 위의 사례에서 시어머니는 가부장 사회에서 자기의 삶을 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적자의 인생을 살았으며, 그 원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여 다음 세대에 전달되지 않도록 하기보다 적자를 자기 세대에 보상받고자 하였다. 이러한 어머니의 욕구가 정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孝라는 윤리관에 매여서 부인과 자녀를 돌보고 사랑하여야 할 의무와 충성을 충분히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인간관계의 관계성 내에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갈등이 일게 된다. 주고받음이 상호적인 것이어야 하는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불의가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 근친강간은 공평과 정의가 결여된 불의가 가족 내에 일어나는 것으로써 심한 갈등을 형성한다. 위의 가정에서도 시어머니의 폭력과 불의, 남편의 무능력으로 인하여 자식과 배우자에게 의무를 충실히 하지 못하였을 때 생겨나는 불의는 그대로 작은아들에게 넘겨져 여동생을 강간하게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불의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관계성의 불공평성이며 불의다. 부부간의 이러한 공평과 정의의 결여는 역기능 가족을 생산하고, 역기능 가족은 또한 역기능적인 사회를 형성하며 역으로 이러한 사회는 가족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건강한 가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분화 혹은 분리를 이루어야 하는데 이는 원가족(family of origin)에 대한 충성심과 자신 혹은 자신의 핵가족에 대한 의무감이 잘 형평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孝 사상은 본래적으로 부모와 자식 간에 공평한 주고받음을 강화하기 위한 윤리관이었지만, 가부장 가족구조에서는 의무감이나 죄의식을 일으킴으로써 가장과 남성에게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상처 입은 여성과 어린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주고받음에 대한 형평을 잃은 가계부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적자의 가계부를 메우기 위해서 여성들은 그들의 자녀를 통해서, 며느리를 학대함으로써 적자를 메우려고 하거나, 아니면 한을 껴안고 사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 간의 보이지 않는 충성심을 서로 주고받음에 있어서 정의가 이루어질 때 그 가족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으며, 그 사회가 건강할 수 있다.

 

 

3) 기독교와 한국여성의 한

 

조선말기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가톨릭과 개신교가 한국 땅에 다다르게 된다. 문화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매우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성서의 세계와 한국의 풍속과 비슷한 점이 많았으며, 성서의 억압받는 유대민족의 상황과 그 당시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원하는 ▥▥한국사회의 상황이 비슷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로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전달해 주는 자들로 여기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복음이 말하는 내세 즉 천당은 억눌린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였으며, 선교사들의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에 대한 진정한 열정은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켰으며, 특히 한 많은 한국 여성들에게 기독교는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다.

 

인간의 존엄성을 외치는 기독교 사상은 한국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을 억누르는 일본의 억압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서 일본에 대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저항을 무마하고자 하였다. 이에 선교사들은 정치와 복음을 분리하여 영적인 것만 강조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영적구원을 강조한 1907년의 엄청난 개신교의 부흥은 이후 한국 기독교의 방향 설정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후 한국기독교는 성령 충만의 종교체험을 중요시하게 되므로 현실에 대한 비판과 참여 대신 현실을 도피하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기독교는 초월적인 세계에 열렸었기 때문에 현실의 삶을 중요시하며, 가족을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특성은 지나치게 강화되어 미신화 되었다. 특히 선교사들이 교파에 따라 한국을 몇 개의 선교지로 분할하는 바람에 한국인의 지역적 감정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기독교를 지역 파벌주의, 더 나아가 권력주의로 변질시키는데 한 몫 하다.

 

특히 이 당시의 선교사들은 보수주의적 신학과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문화가 우월하다는 의식이 있었다. 따라서 선교지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지속하기 위해서 능력 있는 학자나 교회 지도자들 키우기를 주저하였으며, 토착화된 신학을 성립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국기독교는 건강하게 성장하는 대신 성서무오류설과 교회 지도자에 대한 절대 복종을 강조하게 됨으로써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부장적 가치관과 권위주의가 더욱 더 강화되었다. 김천배가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서는 안 되며, 여성의 위치에 대한 해석도 다르게 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배척당하였으며, 교회는 더욱 더 기존의 권위주의와 성서 무오류 설을 강화하였다. 결과적으로 희생과 순종을 강조하는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은 가부장적 이념을 신성화하였다. 또한 영적세계에 지나치게 관심을 쏟으므로 여성들로 하여금 영적 도취에 빠져 사회적 현실에 대해 눈을 감게 하였다. 초기의 선교사들까지도 한국 기독교 여성들로 하여금 유교의 윤리관과 전통을 지킬 것을 강조하였다. 죤스는 한국여성들이 집안일과 더불어 직물 짜기, 농사일, 공장일 등 모든 것을 혼자 다하기 때문에 집안의 실제적 가장으로서 그들의 위치가 매우 높다고 엉뚱하게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좀 더 창조적으로 한민족의 세계관에 뿌리를 내리기보다 무비판적으로 미신화 하는 경향이 심화되었다. 예를 들면, 모든 인간을 존중하기 때문에 예의를 중요시하는 성향은 경직성을 띄게 되었고, 신에 대한 경건 심은 교회의 모든 것을 신격화하여 지나친 경건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겸손의 덕목 때문에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가 다르게 나타나는 체면 문화의 영향으로 기독교인들은 더욱 이중적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으며, 조상과 자신이 거주하는 땅을 신성한 장소로 경외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땅에 대한 애착심은 오히려 파벌주의를 낳고 이 파벌주의는 기독교의 분파를 부채질하였다. 남의 것을 존중하는 가치관은 지나친 사대주의를 낳게 됨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도 창조적 비판 과정을 거치지 못하였다. 인간과 인간과의 친밀한 관계성으로 인한 열정적이고 솔직한 기질과 영의 세계에 대하여 열린 자세는 신앙의 감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 또한 관계성이 지나쳐 의존적이기 쉬운 성향이 가부장 사회의 계급사회와 맞물려 권위주의에 쉽게 순응하게 만들고 또 초월적 힘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창조의 과정인 남녀의 결합의 결과로 이루는 가정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은 유교의 가문주의와 더불어 매우 이기적인 가족 행복만을 추구하게 하였다. 인간의 내재적 신성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이 세상 삶을 중요시하는 세계관은 가족주의와 더불어 현세의 복을 받는 데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결국 가장 순수한 기독교가 되기 위하여 자신의 문화를 거부한 기독교가 자기이해와 성찰력 부족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 자라 온 미신화 된 무속신앙과 분별하기 힘들 정도로 미신적으로 무속화 되어 버렸다. 결국 기독교가 한국 기독교 여성의 한 많은 삶에 새로운 빛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자들에게나 억눌린 여성들에게 진정한 빛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령체험의 지나친 강조는 종교체험이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이드의 비판과 같이 사람들을 더욱 의존적이 되게 하며, 현실을 직시하고 대면할 의지를 약화시키는 부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무속에서 무당들이 여성들의 고통과 갈등의 원인을 조상신이나 악귀 등 외부에 투사함으로써, 일시적인 내적 갈등을 해소시켜 주는 기능을 하지만 그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원인제거를 시도하거나 고통을 주는 자신의 삶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키워 주지는 못하였다. 결국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살 수 있는 힘을 얻도록 하지 못하였으며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월적 능력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여성을 더욱 더 의존적으로 만들었다. 결국 오랜 세월 동안 무속의 종교적 체험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의 삶에서 한국 여성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위한 자기비판이나,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적 의식, 또 공동체의 역사 창조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함양시키기보다 가족들의 안녕만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여성으로서 남아 있게 하였다.

 

이 사례의 며느리도 시어머니의 가치관이나 종교에 대한 이해보다는 전통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시어머니를 은근히 무시하였고, 안 믿는 자들을 구원하여야 한다는 메시야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무조건적인 보수신앙으로 대결구도를 형성함으로써 기독교가 가르치는 화해보다는 갈등을 더 유발시키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특히 경직된 교회생활로 인하여 시어머니로부터 더 많은 증오를 가지도록 하였으며, 남편의 음주에 대한 정확한 지식도 부족하여 술중독자의 의존자(co-dependent)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남편의 중독증을 더 심화시켰고, 신앙에만 매달리는 어머니로부터 사랑의 결핍을 느낀 아이들은 더 심하게 병들고 말았다. 이러한 신앙은 결국 근본적인 치유가 불가능함으로써 영적 진공상태로 빠지게 되며,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심한 회의에 빠지게 하였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억눌린 자들의 해방을 외치며 이 나라에 발을 디디고 굳게 뿌리 내리고 있지만 사회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더욱 강화하여 여성들로 하여금 신앙 안에서 더욱 더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가 진정으로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억눌린 자 특히 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지 않으면 기독교는 한 많은 한국 여성들에게 마약과 같은 역할을 피할 수 없다.

 

 

3. 마지막 이야기-한국 여성의 한,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한은 한국인의 에토스이며, 정서이며, 아픔이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충만히 살 수 없기 때문에 한을 더 깊이 느낄 수밖에 없다. 처음에 소개한 사례의 시어머니는 한의 뭉치이며, 그 시어머니의 한은 며느리에게 대물림이 되고 있으며, 또 자녀들에게 옮겨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의 한은 가족 전부에게 옮겨가고, 그 가족의 한은 사회 전체로 옮겨간다. 그러나 사회의 한은 가족에게, 가족 각 개인 구성원에게 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어디에서 끊어야 할 것인가? 우리의 조상들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 왔으며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굿과 가족상담

 

고대 한국인들은 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관계성의 조화를 중시하였으며, 특히 신과의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제의들을 지냈다. 이러한 제의들을 굿이라고 불렀으며 대개 공동체 굿과 개인 굿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공동체 굿은 신으로부터 새로운 창조의 힘을 충만히 부여받기 위해 또 집단의 안녕과 외부의 침략과 재해로부터 보호를 기원하기 위해 행하였으며, 개인 굿은 개인의 안녕, 복, 건강 등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 행하는 것이다. 공동체 굿을 다시 두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는데 하나는 종교적인 마을 굿이며, 다른 하나는 민속적 굿 놀이로 나눌 수 있다. 민속적 굿 놀이는 공동체 노동을 위한 두레와 민중예술 형태인 탈춤과 놀이로 다시 나눌 수 있다.

 

두 가지 굿 중 개인 굿은 전통적 사회에서 행해지는 개인 상담과 가족치료 상담의 기능을 맡아 왔다. 사람들은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무당에게 풀어 놓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통한 감정해소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를 객관화시킬 수 있으므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된다. 또 무당이 자신들의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해결 즉 굿을 행할 것을 제시해 줌으로써 신경증적인 병, 심리적인 불안감에서 발생하는 신체장애형병, 혹은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병이 치유될 가능성이 있다. 더 나아가 굿판에서 신의 대리자로서 가족관계의 갈등 등을 현재 가족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조상들까지 포함하여 새로운 관계형성을 촉구하기 때문에 가족치료자의 역할을 통해 가족 간의 문제해결도 가능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신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을 더욱 신뢰하였으며, 바로 이 신뢰성은 치유의 효과를 더해 주었다. 이와 같이 전통사회의 무당은 개인상담, 가족상담, 영적 상담까지 맡아 왔다.

 

이러한 특징은 현대의 목회상담에도 적용된다. 무당이 상담자에 대한 파악을 매우 짧은 시간 내에 행하는 것과 같이 빠른 시간 내에 상대방이 갖고 있는 문제를 예민하게 파악할 수 있는 관심과 기술이 목회자에게도 필요하다. 또한 굿에서와 같이 긴 기간 동안의 상담보다 개인 상담이던 가족 상담이던 짧은 기간의 상담(brief therapy)이 한국인 심성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의존적 성격 경향으로 인하여 지시적(directive)이며 구조화(structured)된 상담이 많은 경우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목회자는 개인상담기술과 더불어 가족 상담에 익숙하여야 한다. 무당은 가족 간의 갈등을 눈치 채고 굿판에서 고부간의 갈등 등을 풀어 준다. 조상의 넋을 담은 넋두리를 통하여 잘못하고 있는 가족 구성원을 야단도 치고 서로 화해도 시킴으로써 가족들을 치유한다. 대체로 굿판에는 남성들이 참여하지 않지만 될 수 있으면 굿이 끝나기 전에 그 집안의 가장까지도 신의 권위로 불러들여 가장으로 하여금 그 집안과 조상에 대한 정당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즉 무당은 가족 전체의 치유를 추구한다. 이들의 신적 권위로 인하여 남성들의 저항을 줄일 수 있다. 목회자도 그들의 신적권위로 인하여 일반상담 가들이 접근하기 힘든 가족전체와 남성들까지도 상담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 전체의 치유에 대한 더 큰 책임을 지고 있다.

 

무당은 이들의 갈등의 원인을 조상 탓 등으로 돌리기 때문에 죄의식이나 수치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굿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조상과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인식은 자신의 문제나 삶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즉 수치심의 우리 문화(shame culture)에서 가족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도 상담 받는 가족들 혹은 교인 가족들이 될 수 있으면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상황설정과 상담과정을 성장 지향적으로 재구성(reframing)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무당의 굿은 집안의 위기상황, 발달과정에 따르는 문제들을 잘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굿을 통하여 신이나 조상이 돕고 있다는 지지를 느끼고, 이러한 고통들이 인간 삶의 전체 발달과정 중에 나타나는 어려움이라는 인식을 하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도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들을 상담할 수 있는 상담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교인들이 삶의 위기나 발달과정에 따르는 위기에 처하였을 때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예방적, 교육적 상담을 통하여 교인들의 상처만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설교, 예배, 교육, 속회, 성장 집단들을 잘 지도함으로써 포괄적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목회를 시도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교인들을 전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일반상담방법론, 알코올중독, 성폭력, 근친강간 등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상담 방법론을 목회자 자신들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무당의 굿이나 상담이 문제의 원인을 조상이나 신의 트집으로 투사하는 것은 가족 구성원들로 하여금 책임을 소유하지 않게 하며, 따라서 행동변화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더 나아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감정풀이에 머물고 또다시 현실에 적응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도 무당의 개인 굿 혹은 상담의 부정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목회자도 사회의 역기능-여성의 문제-에 대한 의식화가 되어 있지 않는 경우에는 이러한 개인 굿의 부정적 측면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목회자는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비판(critical reflection)을 하여야 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심리적 문제까지도 재검토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무당의 개인 굿과 더불어 우리 민족은 얼마 전 까지도 많은 공동체 굿을 행하였다. 공동체 굿도 개인 굿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굿을 통해 잘못된 사회 구성원, 자연, 또 신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함으로써 풍요를 보장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굿판에서는 풍요를 상징하는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놀이에 신나게 참여함으로써 억눌렸던 감정들이 풀리게 된다. 노동을 위한 공동체 굿과 함께 민중 예술로 발달한 여러 가지 무당의 놀이, 인형놀이, 탈춤 등이 있다. 이러한 놀이들은 모두 삶의 갈등을 그리고, 놀이를 통한 신과의 연합을 경험함으로써 삶이 변화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놀이 중 탈춤이 무속의 종교 제의가 가지고 있는 구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데 특히 봉산탈춤은 그 대표적 예라고 볼 수 있다.

 

봉산탈춤은 먼저 무속적 세계관을 노래하며, 인간은 신이 인간을 창조한 그대로의 벌거벗은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존재로 살아야 하며, 인간의 性 또한 자연스러운 것으로 신과 하나가 되는 성스러운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잘못된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즉 신의 창조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성성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노래하고 있다. 꽃이 나비를 부르듯 신은 인간을 사랑의 손길로 부르고, 인간은 꽃에 이끌리는 나비와 같이 자연스럽게 신에게로 이끌리는데 이 둘은 서로를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봉산탈춤은 무속의 종교적 제의의 요소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계급 사회에 대한 비판이 중요한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 굿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은 사회의 모순을 뒤엎고 새로운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집단적 한풀이라고 할 수 있다. 봉산탈춤에서 마지막에 탈을 태우는 행위는 이러한 사회에 내재하는 악의 힘을 소멸하고자 하는 상징적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살펴볼 때 공동체 굿은 개인 굿에서 하지 못하는 사회적 비판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굿도 공동체의 응어리를 일시적으로 풀어 주는 기능을 하는데 그치고 더 나아가 어떤 변화를 위한 힘의 결집은 못하고 만다. 양반들이 자신들의 지배체제에 대한 반란일 수 있는 이러한 놀이들을 허용한 것은 억압당하고 있는 민중들이 이러한 놀이를 통하여 응어리진 한의 힘을 분산시킴으로써 사회구조를 지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목회상담은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할까? 오늘날의 목회상담 혹은 목회는 무속의 공동체 굿이 민중의 한을 다루었으나 구조적 변화를 위한 힘의 결집을 이루지 못한 것과는 달리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한, 한의 근원, 궁극적 삶의 모습에 대한 의식화를 꾀하여야 하며, 이러한 의식화를 통하여 새로운 변혁을 이룰 수 있는 힘의 결집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구성원들의 의식화를 통한 자발적 참여와 노력으로 가능하며 공동체의 지도자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이러한 과정을 감당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다시 말해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부장 사회가 잃어버린 여성성과 여성신성을 회복하여야 하고, 자연과 인간과의 새로운 상호의존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하며, 구성원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의 재창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목회상담은 구성원들이 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하는 것들 간의 조화로운 관계성 안에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치유자로서의 목회자의 역할

 

상담자가 한 가족의 구조적 변화를 유도할 때 사회의 역기능구조에 적응하도록 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치유가 힘들게 된다. 처음에 든 사례에서 이 가족의 치유를 단지 가족 내의 구조적 변화를 사회적 고정관념에 의거하여 유도한다면 며느리의 건강은 물론 그 가족 구성원 전체의 진정한 건강회복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목회자는 역기능적 사회구조에 대한 의식화가 필요하고 이러한 모순을 고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자신의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된 가부장 사회의 가치관에 대한 의식화가 필요하다.

 

전통적 사회에서 한 많은 여성들의 한풀이는 여성 무당들이 담당하여 왔듯이 여성들의 상처 치유는 누구보다 의식화된 여성들이 맡아야 할 것이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들은 모두 한을 경험하게 되며, 바로 여성들의 동질적인 삶의 경험이 여성치유 자들로 하여금 남성 치유 자들 보다 더 깊은 공감을 가지고 다른 여성들의 한을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안수는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한국교회의 과제이며, 여성 전도사들의 전문적 상담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또한 남성 목회자 역시 무엇보다 여성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해는 피상적인 인식적 차원의 이해가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적 내면까지 깊숙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는 전통적 무속이 사회에 대한 의식화, 새로운 세계의 창조력 결집의 부족으로 인하여 기복 신앙에만 치우친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목회자는 여성들의 한의 진정한 치유를 시도하여야 한다. 상담자는 진정으로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모든 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여성들의 건강을 보살핌으로써 여성으로 하여금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함으로써 건강한 가족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들이 구성하는 사회 전체를 새롭게 재구성 건설 할 수 있어야 하며, 이들이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때 건강한 신앙도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상담이론들을 도입할 때에는 이러한 이론들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관을 여성의 관점에서 점검한 다음에 도입하여야 하고, 또한 문화적 차이에 대한 비판을 한 다음에 우리의 문화에 맞게 토착화를 하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목회자는 개인 가족의 치유와 더불어 그 가족이 존재하는 사회와 자연의 치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때로는 목회자로 하여금 살을 깎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하는데 이는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신학적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야만 가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시대적 요청이며 목회자의 예언자적 사명이며, 동시에 자신의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이며, 더 나아가 여성은 물론 교인 전부의 참된 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4. 끝맺는 이야기

 

한국여성의 한은 억눌린 삶에서 나오는 고통의 소리이며 삶의 탄식이다. 이들은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괴로움과 더불어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그 자체로 이미 더 심한 삶의 짐을 지게 된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의 삶은 한 덩어리였으며, 그 한은 그들의 삶만 멍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이 살을 비비며 살 수 밖에 없었던 남성들에게도 옮겨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남성들도 남성중심사회에서 형성된 잘못된 남성우월의식으로 인하여 건강한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한국 여성의 한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차원의 치료만으로는 온전한 치료가 불가능하다. 가족과 사회가 뿌리내리고 있는 가치체계에 대한 비판이 없이는 아무리 개인 가족을 치료한다 하더라도 사회의 역기능구조에 적응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역기능가족을 만드는 것뿐이다. 따라서 전인적 치유를 추구하는 목회도 사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가부장 가치관에 뿌리 내리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냉철한 비판도 꼭 거쳐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는 가부장제이며, 가부장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서로의 힘을 북돋음으로써 자신의 힘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힘을 빼앗음으로써 나의 힘을 키우려고 하는데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랑을 주고받아야 할 가족 간에도 존재하고, 사회, 국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도 존재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개인가족의 치유와 더불어 근본적 가치체계에 도전하여 사회, 국가, 인간과 자연과의 깨어진 관계의 치유도 감당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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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w1207
글쓴이 : Daum Ki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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