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치유!!! 신유!!!

사도들은 어떻게 치유하였는가?

하나님아들 2020. 4. 10. 16:21

사도들은 어떻게 치유하였는가?

 

 

앞에서 본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병고침의 은사에 대한 기준을 세우셨다. 오늘날 신유 은사자들이 예수님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으로 이 일을 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로부터 병고침의 은사를 받고 그것을 사용한 사도들과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 은사를 사용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열두 제자 모두에게 병고침의 은사를 주셨다(눅 9:1-2).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이 은사를 70명의 제자들에게도 주어둘씩 보내 복음을 전하고 병자들을 고치게 하였다(눅 10:1-9). 그 외에 신약성경의 어디에 누가 신유 능력을 가졌는가? 그렇다. 바나바(행 15:12), 빌립(8:7), 그리고 스데반(6:8)과 같은 사도들의 동역자 몇 명이 그 은사를 받았었다. 그러나 그 은사가 교회에서 무작위로 시행된 적은 결코 없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열두제자에게(바울을 포함하여), 70명의 제자에게, 그리고 사도들과 밀접한 동역자들에게만 주어진 은사였다.

사도행전 3장은 신유 은사가 사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복음을 선포하는데 있어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를 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는데 어떤 앉은뱅이가 구걸을 하였다. 베드로는 그에게 응답하여 말하기를 자기에게는 돈이 없지만 자기에게 있는 것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했다(행 3:6).

그러자 그 사람은 벌떡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고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이 여러 해 동안 성전 문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베드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그들이 본 것에 대해 놀라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행한 기적은 결코 베드로나 요한 자신들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베드로의 설교가 그 청중들에게 얼마만큼 충격적인 것이었으며 또 그 치유의 기적이 얼마만큼 효과적이었던가를 이해해야만 한다. 베드로는 지금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가 만약 그저 걸어 다니면서 단순히 그들에게 설교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볓달 전에 여러분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를 믿으십시오”라고 말이다.

그 메시지가 1세기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고 놀라운 것이었는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자기들의 메시아가 일개 잡범들과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유대인들은 대개 그들의 메시아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그 미운 로마인들의 속박을 제거하기 위해 권능과 영광 중에 오시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베드로가 그 앉은뱅이를 고치는 것과 같은 그런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바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무서워하였다. 사도행전 4:4에 의하면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라고 했다.

오순절 때 교회가 시작되었다. 새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도들로 하여금 그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도록 기적적인 능력을 주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치유 기적에 나타난 여섯 가지 특징이 사도들의 치유 기적에도 똑같이 나타난다.

첫째, 사도들은 말씀이나 안수함으로 치유했다

사도행전 9:32-35에 보면 베드로는 중풍병으로 8년간 누워 있던 애니아라는 사람을 고쳤다. 베드로가 말한 것은 오직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애니아가 즉시 나았다(34절).

사도행전 28장에 보면 바울이 멜리데라는 섬에서 안수하여 병자를 낫게 하였다. 멜리데의 지도자 중 하나인 보블리오는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영접하였다. 보블리오의 부친은 심한 열병과 이질로 누워있었다.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였다(8절).

둘째, 사도들은 즉시 치유했다

성전 문에 있던 앉은뱅이는 즉시 일어나서 뛰고 걷고 하나님을 찬양했다(행 3:2-8). 다른 치료나 안정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불구였던 그 남자는 즉시 치료되었다.

셋째, 사도들은 완전히 고쳤다

사도행전 3장의 앉은뱅이의 경우에서 뿐만 아니라 9장 애니아의 치유에서도 이것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9:34은 의미 심장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완전하게 하신다.”(개역성경에는 “낫게 하시니”로 되어 있다) 예수님의 치유와 마찬가지로 사도들의 치유는 완전하다. 점점 좋아진다거나, 증세가 재발한다거나, 혹은 조금씩 나아진다는 그런 경우는 없다.

넷째, 사도들은 각 사람을 모두 고칠 수 있었다

사도행전 5:12-16을 보면 사도들은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고 사람들은 그들을 칭송했다. 그들은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기까지 했다고 성경은 기록하였다. 그리고 근방의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병든 사람을 데려왔는데 “다 나음을 얻느니라”(행 5:16)고 했다.

사도행전 28:9에 보면 바울이 보블리오의 부친을 낫게 한 후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았다”라고 했다. 어느 누구도 고침받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다섯째, 사도들은 기관상의 질병을 낫게 했다

그들은 기능상의 장애를, 혹은 가벼운 증세나 심리적인 문제로 인한 질병을 치료한 것이 아니었다. 성전 문 앞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는 40세쯤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나면서부터 불구였다. 보블리오의 부친은 이질, 즉 전염에 의한 기관상의 질병에 거린 사람이었다.

끝으로, 사도들은 죽은 사람을 살렸다

사도행전 9:36-42에 베드로가 도르가를 어떻게 살렸는지에 대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42절을 잘 보면,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역시 우리는 여기에서 기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의 메시지를 믿게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20:9-12에 보면 유두고라는 청년이 떨어져서 죽었는데 바울이 그를 다시 살렸다.

오늘날 많은 주장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이와 같은 여섯 가지 특징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끝으로 한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성경에 의하면 기적적인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은사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신유 은사자들은 결코 수시로 그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럴 수도 없다. 그들은 성경적인 병고침의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고 주님께서 하신다”라고 말함으로써 교묘하게 어려움을 면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실수에 대한 비난은 그 은사자가 아니고 하나님이 받게 된다.

존 맥아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