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치유!!! 신유!!!

하나님은 지금도 병을 고치시는가?

하나님아들 2020. 4. 10. 16:18

하나님은 지금도 병을 고치시는가?

 

호바트 프리먼(Hobart Freeman)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아마비를 치료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다리 한 쪽은 여전히 작아서 특별히 제작된 신발을 신어야 했으며 걸을 때마다 매우 힘들어 했다. 프리먼은 목사였다. 그는 침례교에서 사역을 시작했고 정통 교리에 입각한 훌륭한 저서, 「구약선지서 개론(A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에 프리먼은 신유의 기적에 매료되어 은사주의 운동에 휩쓸리더니, 점점 더 엉뚱한 방향으로 가 버렸다. 그는 인디아나 주의 클레이풀(Claypool)에 신앙 공동체로 알려진 자신의 교회를 세웠는데, 그 성도가 2,000명에 이르렀다. 그 집회는 프리먼이 영광의 창고(The Glory Barn)라고 이름 붙인 건물에서 열렸는데, 회원이 아니면 절대로 그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다.

프리먼과 신앙 공동체 회원들은 현대 의술이 고대 마술과 사교에서 나온 것으로 믿으며, 따라서 의학적인 치료를 아주 경멸했다. 프리먼은 의사의 치료를 받는 것은 곧 마귀의 세력에 빠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프리먼의 공동체에 속한 산모들은 병원 분만실이 아니라 그 교회가 후원하는 산파들의 도움으로 집에서 출산해야 한다고 한다. 이 가르침에 순종하려다 많은 산모와 아기들이 목숨을 잃었다. 몇 년 동안 적어도 90명 정도의 회원들이 치료만 받으면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이었지만 죽어갔다. 전세계에서 프리먼의 가르침대로 따랐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신앙 공동체에 속한 어떤 부모는 15살 된 딸을 병원에서 치료만 받으면 충분히 고칠 수 있었던 병이었는데 죽게 해서 결국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어 10년 간 감옥살이를 했다. 츠리먼 자신도 이 재판에서 살인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1984년 12월 8일, 프리먼은 다리 종양 합병증에 의한 폐와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호바트 프리먼은 자신의 잘못된 신학 때문에, 소아마비로 인해 그의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는 누가 그의 육체적인 결함과 그의 가르침이 모순된다고 지적하면, “내가 나를 치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분명한 약점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그는 자신을 죽이고 있는 그 질병을 치료하기를 끝까지 거부했다. 현대 의학은 충분히 그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었다. 결국 프리먼은 자신의 가르침의 희생양이 되었다.

소위 신유 은사자라는 사람들 가운데 치료를 받지 않아 죽은 사람은 프리먼 뿐만이 아니다. 윌리엄 브랜험(William Branham)은 2차 대전 후에 신유 은사를 복고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지금까지 은사주의 운동 내에서 가장 진기한 신유의 기적들을 행한 사람으로 꼽히는데, 1965년 6세의 나이에 교통 사고로 엿새 동안 앓다가 결국 죽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부활시키실 것이라고 믿었지만 결코 부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천막 전도자이자 신유 은사자로 유명한 알렌(A.A. Allen) 역시 다른 사람들은 치료하면서도 자신은 수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알콜 중독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1967년에 간경화로 죽었다. 캐서린 쿨만(Kathryn Kuhlman)은 년 심장 질환으로 죽었는데, 그녀는 20년 동안 심장병을 앓았었다. 루스 카터 스태풀턴(Ruth Carter Stapleton)은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누이로서, 그녀 역시 신유 은사자였는데 신유에 대한 그녀의 신념 때문에 암 치료를 거부했으며 결국 1983년에 그 병 때문에 죽었다.

존 윔버(John Wimber)도 만성적인 심장 질환을 앓고 있다. 그의 책「능력 치유」(power Healing)는 “존 윔버의 개인 노트”(A Persomal Note from John Wimber)라는 글로부터 시작한다.

1985년 10월, 3주간 영국에 있으면서 런던, 브리튼, 그리고 쉐필드의 집회를 인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았다. 단지 나 한 사람만을 빼고.

지난 2년 동안 나는 4-5개월마다 찾아오는 가슴앓이로 고생했다. 나는 심장 쪽이 의심스러웠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도, 심지어는 내 아내 캐롤조차도 내 상태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데 영국에서 더 이상 그녀에게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산책할 때 이따금씩 가슴이 아파서 갑자기 멈춰 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잦은 여행으로 피로해 있었다. 의사들은 내게 심장마비 증세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종합 진단을 받아 보니 역시 내가 염려했던 대로였다. 심장이 극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진단 결과에 의하면 내 심장은 제대로 뛸 수조차 없었고 고혈압으로 인한 합병증까지 있었다. 비만과 과로에다 이런 병까지 앓게 되었으니, 언제 죽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존 윔버는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브라함이 그의 아이를 기다린 것같이 자기도 치료되기를 기다려야 하며, 동시에 자기 주치의의 지시대로 따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 윔버는 치료를 받아 병이 호전되었는데,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점차 치료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믿었다. “지금 내가 완전히 치료되어 더 이상 문제가 없다고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사실이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고 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윔버는 솔직하게 시인했다. 신유의 기적을 베풀고 다니는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스스로 신유를 필요로 하는가? 신유 은사자 찰스 캅스(Charles Capps)의 딸이자 자신도 신유 은사자인 아넷트 캅스(Annette Capps)는 자신의 책, 「당신의 몸과 감정의 재앙을 역전시키라」(Reverse the Curse in Your Body and Emotions)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했다.

사람들은 소위 “신유 은사자”들이 나중에 병들거나 죽게 된다는 사실 때문에 시험에 들곤 한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여 다른 모든 사람들이 치료되는데, 왜 그 자신들은 병들어 죽는가?”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집회 중에 일어난 그 신유의 기적들이 성령의 특별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 믿고 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신유의 은사를 받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전도자라도, 자기 몸이 치료받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유의 은사는 그 사역을 하고 있는 당사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몇 해 동안 사역을 하면서 나를 통해 신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나 자신의 치료를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스스로 믿고 구해야만 했다. 나 자신이 병에 걸려 힘들게 지내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은 나를 통해 치료받은 경우가 허다했다. 나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해야 했던 것이다.

그녀의 결론은 정말 놀랍다. 만약 신유 은사자가 병들었다면 그것은 자신의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유의 은사에 대한 견해는 신유 은사자마다 각각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병을 치료하시기를 원하신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때때로 우리의 질병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병이 죄 때문에 생긴다고 하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영적으로 매우 건강한 사람이 왜 육신의 병에 걸리는가를 설명하려고 애쓴다. 어떤 사람은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비상한 신유의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서 믿음의 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들을 사용하셨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직접 안찰하거나 기름을 바르는데 어떤 사람들은 단지 치료될 것을 선포하고 “기도하기만 해도 낫는다”라고 한다.

오랄 로버츠(Oral Roberts)는 한때 하나님께서 자기더러 큰 병원을 짓고 일반적인 의술과 신유의 기적을 병용해 사람들을 고치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자, 하나님께서 병원 문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나는 최근에 거기에 가 보았다. 기도하는 손이 새겨진 조각상이 우뚝 세워져 있었는데 실제로 건물은 텅 비었고 잡초만 무성했었다. 그것은 성취되지 못한 신유의 약속에 대한 기념비였다.

병고침과 은사주의 운동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대 오순절 운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찰스 팍스 파햄(Charls Fox Parham)은 신유의 기적이야말로 모든 참 신자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그 신념을 근거로 오순절 신앙의 모든 체계를 수립했다. 에이미 셈플 맥퍼슨, E.W.케년, 윌리엄 브랜험, 캐서린 쿨만, 오랄 로버츠, 케네스 하긴, 케네스 코퍼랜드, 프레드 프라이스, 제리 셰빌, 찰스 캅스, 노블 에이스, 로버트 틸턴, 베니 힌, 그리고 래리 리, 이 모든 사람들이 집회 때마다 신유를 내세운다. 신유의 은사를 로마 카톨릭 전통의 연장으로 보는 카톨릭의 은사주의자들, 즉 존 베르톨루치(John Bertolucci) 신부와 프란시스 맥넛(Francis MacNutt) 역시 마찬가지이다. 존 윔버를 위시해서 제 3의 물결 지도자들 역시 병고침을 주 종목으로 삼고 있다.

신유 은사자들의 주장과 방법들은 정말 엉뚱하기 짝이 없다. 몇 해 전에 어떤 신유 은사자로부터 “기적의 기도 손수건”이라는 것을 받았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의 글도 함께 있었다.

오늘 저녁 이 기적의 기도 손수건을 베개 밑에 두고 주무십시오. 아니면 몸에 지니거나 당신이 좋아하는 곳에 두십시오. 아픈 곳이 있으면 거기에 덮으십시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그 손수건을 녹색 봉투에 넣어 내게 보내십시오. 이 손수건을 가지고 있지 말고 꼭 보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것을 들고 밤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기적 같은 능력이 강같이 흐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유익하고, 당신의 필요에 합당한, 특별한 기적을 준비하셨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기도 손수건을 보낸 사람은 자기 방식에 대해 성경적인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특별한 기적을 행하셨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 19:12).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받은 능력은 특별한 것이었다.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그 밖의 다른 사람이 손수건을 보내 신유의 기적을 행했다는 말이 없다.

케네스 하긴(Kenneth Hagin)은 내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이상한 방법을 쓰는 어떤 신유 은사자에 대해 말했다.

그는 항상 각 사람들에게 침을 바르곤 했다. 손에 침을 뱉아 사람들에게 바르는 것이 그의 일이다…… 만약 누가 머리가 아프면 손에 침을 뱉아 이마에 바른다. 배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손에 침을 뱉아 옷과 배에 바른다. 모류에 문제가 있으면 손에 침을 뱉아 무릎에 문지른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치료된다.

그 밖에도 다른 많은 희한한 광경들이 매일 기독교 TV 방송에 나오고 있다. 오랄 로버츠(Oral Roverts)는 “믿음의 씨 헌금”을 바치라고 한다. 이것은 신유의 기적에 대한 착수금이라고 한다. 로버트 틸턴(Robert Tilton) 역시 그에게 돈을 보내는 사람은 특별한 병고침의 역사가 일어나며, 재물의 축복도 받을 수 있다고 약속한다. 돈이 많으면 많을 수록 기적도 더 크다고 한다.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은 카메라를 들여다보면서 누군가의 거실을 보고 있다고 한다. 그는 그 순간에 거기서 치료받고 있는 사람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설명한다. 베니 힌(Benny Hinn)은 최근에 신유 은사자이자 트리니티 방송국의 대담 진행자인 폴 크로우치(Paul Crouch)를 치료해 주었다고 한다. 베니 힌이 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기름을 뿌리자, 크로우치가 앞에 나와서 수년 동안 앓던 이명증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간증했다. 신유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들은 믿기 어려울만큼 환성적인데다,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다. 하지만 진짜 기적이라고 여길 만한 증거는 없다. 내가 참석한 곳마다 신유의 기적들에 대해 회의를 갖게 했을 뿐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은사들을 지금도 주시는가? 시시콜콜한 병고침은 도대체 무엇인가? 온통 혼란과 회의, 모슨만 가득할 뿐이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성령의 은사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에베소서 4장에 은사받은 자의 종류에 대해 나와 있다. 사도, 선짖,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그리고 교사이다.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첫 번째 선물이다. 둘째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은사로서 지혜와 지식, 예언(권위 있는 선포), 가르침, 권면, 믿음(혹은 기도), 분별, 구제, 다스림, 긍휼이 여기에 해당한다(롬 12:3-8; 고전 12:8-10, 28). 셋째는 표적을 위한 일시적인 은사들로서 성경이 기록되기 전에 초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 그 진실성과 확실성을 보증하기 위한 목적에서 몇몇 신자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들을 가리킨다. 예언(계시적 예언), 기적, 신유, 방언, 그리고 방언 통역 등이 일시적 표적 은사에 해당한다. 표적 은사의 목적은 단 한 가지이다. 즉 사도들에게 신임장을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으로 기록된 후에는 이 표적 은사들은 더 이상 필요치 않으므로 이제 이 은사들은 끝났다.

 

무엇이 성경적인 기적의 은사였는가?

기적과 병고침은 모두 하나님의 계시를 확증하기 위해 주어진 특별한 표적 은사들이다. 기적은 병고침을 포함하고, 신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치료했다는 것 자체가 지거이므로, 이 두 가지 은사는 어떤 의미에서 중복된 것이다.

가장 위대한 기적을 행한 사람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께서는 근본적으로 세 가지 형태의 기적을 행하셨다. 병고치심(최고의 신유 기적이라 할 수 있는 죽은자를 살리시는 것을 포함하여), 귀신을 쫓아내심(그 결과 병이 나음), 그리고 자연의 기적(오병이어, 바다를 잠잠케 하심, 물 위를 걸으심)이다. 복음서에는 이와 같은 예수님의 기적들로 가득 차 있다. 요한은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라고 했다(요 21:25). 이 모든 기적들은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하신 자기주장이 진실 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표적들이다(요 2:11; 5:36; 20:30-31; 행 2:22).

그리스도의 사역이 끝난 후에는 사도들이 그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성경에 기록하는 일을 맡았다. 그들의 사역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신약 어디에서도 예수님 외에 누가 자연의 기적을 행했다는 말은 없다. 사도들도차도 오병이어의 기적이나, 바다를 잠잠케 하거나 물 위를 걷는 기적을 행하지 못했다(베드로가 한 번 물위를 걷기는 했지만, 그때는 예수님께서 곁에서 그를 도와주셨다. 그 외에는 베드로가 그런 체험을 다시 하지 못했다).

기적에 관한 논의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은사Ⅰ 5장 참조), 기적을 행하는 증력은 오직 사도들과 그들의 동역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었다. 마태복음 10:1에서 예수께서는 단지 열두 제자들에게만 이런 능력을 주셨다.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성령이 강림하고 교회 시대가 시작되었어도 사도들은 여전히 이 초 자연적인 두 은사를 행했다. 사도들의 기적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보였던 그 기적들을 연상케 한다.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12).

그 당시 기적들은 오직 사도들에게만 제한된 것이었다. 비록 사도들에게 위임받아 기적을 행한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예를 들면 빌립<행8:6-7>의 경우), 기적의 은사가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막 16:20; 히 2:3-4). 위펄드(B.B.Warfield)가 기적의 은사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초대 기독교인들이 모두 기적의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 사도 시대에 있어서 기적을 행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던 것도 아니다. 기적들은 교회를 세움에 있어서 사도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받은, 믿을 만한 대리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 기능은 오직 사도 시대의 교회에만 해당하는 것이므로, 사도 시대가 끝나면서 자연히 이 은사도 사라졌다.

기적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 뒤나미스(dunamis)의 문자적인 의미는 “힘”이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118번 TM였고, 동사로는 209번 쓰였다. 이 단어는 고린도전서 12:10에 “기적을 행함” (문자적으로는 “강한 역사를 이루는 힘”, 개역성경에는 “능력을 행함”으로 되어있음- 역자 주)이라는 표현과 같이 기적 은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뒤나미스(dunamis)는 복음서에서 “능력”이라는 말로 번역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능력”의 은사를 가리키는 것인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모범을 통해 우리는 그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 중에 사탄을 대적하셨고, 그의 뒤나미스 즉 그의 능력으로 귀신을 물리치셨다(눅 4:13-14). 예수께서는 그의 “능력”으로 여러차례 귀신을 쫓아내셨다(마 8,9,12; 막 5,6,7; 눅 9장). 어떤 경우에든지 예수께서 사탄의 나라를 쳐부수기 위하여 능력의 은사를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능력”의 은사는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사도들과 빌립이 바로 이런 일을 했다(행 19:12; 8:6-7).

따라서 사도들의 기적은 병고침과 귀신 쫓아내는 것에만 해당한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병고침과 귀신 쫓아내는 것 외에 자연에 대한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전례가 없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그런 주장들은 기적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 그 목적은 새 계시를 성경으로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귀신을 쫓는 사람을 찾아다녀야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린도후서 2:1011, 에베소서 6:11-18, 디모데후서 2:25-26, 야고보서 4:7, 그리고 베드로전서 5:7-9의 말씀대로만 따라 하면 된다. 이 성경 말씀들은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잘 가르쳐 주고 있다.

기적의 은사가 병고침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질병이 사탄이나 귀신 때문에 생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질병-범우주적인 문제

에덴동산의 타락 이후 질병은 인류에게 끔찍한 현실이었다. 수천년 동안 아담 이후 인류는 질병과 고통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왔으며, 어느 누구도 질병과 죽음의 고통을 피하지 못했다. 오직 에녹과 엘리야만이 죽음을 면하였다(창 5:24; 왕하 2:11). 오직 예수님만이 죽음을 이기고 영광중에 부활하셨다. 이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다 일정한 수명 동안만 살 뿐이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었다. 어떤 이는 병으로, 어떤 이는 다쳐서, 또 어떤 이는 노쇠하여 죽었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병고침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예외일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나더러 내게 주어진 은사 이상의 영적 은사를 하나 더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병고침의 은사를 구하겠다. 내가 병을 고칠 수 있기를 바란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눈물 흘리는 부모와 함께 있은 적도 있었다. 불치의 암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친구를 위해 기도한 적도 있었다. 한 젊은이가 중환자실에서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을 때, 나는 손도 쓰지 못하고 그저 서 있기만 한 때도 있었다. 십대의 청소년들이 교통 사고로 죽는 것을 보기도 했다. 병실의 기구들을 통해 살아 있다는 표시만 보일 뿐 혼수 상태로 누워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내 친한 친구가 심장 이식 수술의 실패로 결국 생명을 잃은 것도 목격했다. 수술 때문에 아주 고통스러워하는 친구들을 만난 때도 있었다. 질병이나 부상으로 영원히 불구가 된 사람들도 알고 있다. 선천적으로 심장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도 보았다. 절개 수술이나 사고로 신체 일부를 절단한 사람들을 도와준 적도 있었다 이런 일들을 당할 때 오직 내가 원하는 것은, 말 한 마디로, 한번 만지기만 해서, 단번의 명령으로 이들을 치료f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신유의 은사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보람있는 일이겠는지를 생각해 보라!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저 만지기만 하면 그들이 낫는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놀랍겠는가! 신유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다 모아서 질병 투성이인 이 세상에 파송한다면 정말 기막힌 일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사람들 사이를 다니면서 암 환자, 결핵 환자, 에이즈 감염자,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의 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으련만.

왜 신유 은사자들은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가?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정말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먼저 가까운 병원과 요양소에 가서 이 일을 시작하고 점점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계속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은사주의자들이 종종 주장하는 것처럼 그런 기적들이 불신자들을 믿게 하기 위한 기사의 이적이라고 한다면 이 일이야말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최상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신유 은사자들은 좀처럼 자신들의 집회 장소나 TV 방송국의 스튜디오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일정한 장소에서 각본대로 정해진 절차대로만 그 은사를 사용한다.

왜 병원에서 그 은사를 사용했다는 말이 들리지 않을까? 신유 은사자들이 인도나 방글라데시의 길거리에서 그 은사를 행한다면 오죽 좋겠는가? 왜 그들은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나환자촌이나 에이즈 환자 수용소에 가지 않는가?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그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유의 은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 나타낸 일시적인 기적 은사이다. 일단 그것이 입증되었으므로 신유의 은사도 그친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는 하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신다(마 10:28). 우리는 비록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들을 다 치료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복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본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사도들의 경우에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신유의 기적을 여러 번 행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사람들이 그들을 가두고 핍박하며 심지어는 죽이지 않았는가? 구원은 결코 체험이나 육체적인 치료를 목격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오직 복음을 듣고 믿음에서 생기는 것이다(롬 10:17).

그런데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단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이교도들 안에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 카톨릭 교회가 치유의 능력을 주장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나 베드로의 유골, 십자가의 조각들, 심지어는 마리아의 젖병 따위로 사람들을 치유한다고 선전했다. 루데(Lourdes)라는 사람은 프랑스의 한 카톨릭 성당에서 기적적인 치유가 엄청나게 일어난 현장을 직접 보았다고 한다. 유고슬라비아의 머듀고르(Medjugorje)에 의하면 적어도 10년 동안 천오백만 명 이상이 치유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1981년에 동정녀 마리아가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나타나면서 기적과 신유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동양의 심령 치료사들은 “피 흘리지 않는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그들은 단지 병든 부위 위에서 손을 움직이고 주문을 외면 사람이 낫는다고 한다.

심지어 주술사나 무당들도 죽은 사람을 살린다고 말한다. 마술사들은 치료할 때 기적이 나타나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교묘한 마술을 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의 창시자인 메리 베이커 에디(Mary Baker Eddy)는 텔레파시로 사람을 치료한 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탄은 항상 신유의 기적을 모방함으로써 사람들을 조종한다. 한때 강신술사였다가 지금은 기독교로 개종한 라파엘 가슨(Raphael Gas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사탄의 힘에 의해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나는 강신술사들의 ‘치유 집회’에서 일어난 놀라운 치유의 기적들을 분명히 본 적이 있다.”

일부 기독교에서, 특히 오순절파와 은사주의자들이 치유의 능력을 주장한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켜 보라. 어떤 누군가가, 비록 녹화된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당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자기 부인이 어느 목사에게서 기적같이 암 치료를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부인은 어떠신가요?”

“그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아니, 죽다니요? 병고침을 받은 지 얼마만에요?”

“일년만에요.”'

이런 이야기들이 이 운동에는 허다하다. 케네스 하긴은 귀머거리였다가 신유 집회에서 완전히 치료받았다고 하는 어떤 목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집회가 끝날 무렵이 되자 그는 다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다시 보청기를 켰다”

은사주의 TV프로그램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기적과 신유에 심취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잘 알려진 은사주의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떤 목사는 신유의 은사가 다음과 같이 역사한다고 했다. “아침 예배 때 주께서 내게 어떤 신유의 기적이 일어날 것인지를 말씀하신다. 암 환자가 세 명 고침 받을 것이다. 한 명의 요통 환자, 그리고 두 명의 두통 환자도 고쳐질 것이다. 나는 이것을 회중들에게 발표하고는 누구든지 믿음을 가지고 저녁 때 오면 그 밤에 고침 받을 수 있다고 말해준다.”

 

신유 은사자와 병고침에 대한 정밀 분석

비록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방법론과 활동들이 비성경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들이 그들의 집회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입신”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고침받았다고 소리치면서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서서 기도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신유 은사자들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많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신유 은사자들이 증거라고 인요하는 것들은 검증할 수 없는 것들뿐이다. 그것은 다만 추측하거나 주관적인 견해에 불과하다. 윌리엄 놀런(William Nolen)은 복음주의자가 아니고 의사였는데 이 사람이 신유 은사자들의 주장을 시험해 보았다. 그는 「신유:기적을 찾는 의사」(Healing:A Doctor in Search of Miracle)라는 책을 썼다. 그 책에는 은사주의자들의 신유 은사에 관한 부분이 있다. 그는 특히 캐서린 쿨만(Kathryn Kuhlman)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다. 놀런은 어떤 신유 집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묘사하고 있다.

집회는 끝났다. 겨우 다섯 시인데 마지막 찬송 연주와 함께 집회가 끝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단상에 올라가 자기가 고침받았다는 것을 간증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쿨만은 단상을 떠났고 회중들도 모두 돌아갔다.

쿨만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돌아가기 전에 나는 잠시 동안 환자들이 방치해 둔 휠체어를 바라보았다. 심한 고질병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때까지도 휠체어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신장암이 척추와 엉덩이까지 퍼진 사람, 빌린 휠체어를 타고 단상에 와서 청중들에게 고침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내 도움을 받아 객석에 돌아갔던 그 사람도 휠체어에 누워 있었다. 그의 치유는 너무도 짧은 발작적인 것이었다.

나는 통로에 서서 좌절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서, 절뚝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는 부모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쿨만이 여기에 있었다면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집회 기간 동안 “책임감, 막중한 책임감”에 대해, 즉 치유 받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그녀가 얼마나 가슴 아파하는지에 대해 두 번 정도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과연 그녀가 얼마나 자주 그들을 보았는지 의심스럽다. 과연 그녀는 점액낭염과 관절염 때문에, 마른 다리 때문에, 혹은 정박아 자녀 때문에, 간암 때문에 겪는 고통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기쁨을 알까?

나는 그녀가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정말 알고 있을까 궁금하다. 나는 그녀가 알고 있으리라고 믿을 수 없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의학적인 치료 과정을 잘 알지 못한다. 먼저 우리 몸 자체의 치유 능력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캐서린 쿨만은 종종 “내가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나를 통해 치료하신다”라고 말한다. 추측건대, 쿨만이 이 말을 반복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 만약 그 환자에게서 진전의 기미가 없으면 비난 받는 것은 캐서린 쿨만이 아니라 성령이다. 둘째, 그녀는 병고침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그래서 일단 책임 소재를 성령으로 돌려놓음으로써 만약 누군가 그녀의 치유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쉽게 대답할 수 있게 했다. “난 몰라요. 성령이 모든 일을 할 뿐이죠.”

놀런 박사는 계속해서 설명하기를, 신유 은사자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치료를 하지 않고 병증세가 완화되고 있다고 말만 해주는 것으로도 환자를 점점 나아지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치료는 어떤 기적에서 온 것이 아니라 단지 그 환자 자신의 자율적인 신경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놀런은 또 말하기를, 모든 치유자들 즉 신유 은사자들과 일반 의사들이 이런 암시 효과를 어느 정도 이용한다고 설명한다. 놀런은 고백하기를 환자에게 약을 주거나 주사를 놓을 때 종종 그 환자에게 24시간 혹은 48시간 이내에 좋아질 것이라고 말해 준다고 한다. 그러면 그 환자는 그 불확실한 메시지 때문에 상태가 더 좋아진다고 한다. 널런이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면 많은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특히 기능적인 질병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놀런 박사는 기능상의 질병과 기관상의 질병의 중요한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능상의 질병이란 기관은 멀쩡한데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기관상의 질병은 그 기관 자체가 병들었거나, 상처가 남거나, 물리적으로 손상되었거나 혹은 아예 기관 자체가 죽은 경우를 말한다. 전염병, 심장마비, 담석증, 탈장, 디스크, 각종 암, 골절, 선천적 불구, 열상 따위가 바로 이 기관상의 질병에 해당한다. 놀런은 신유 은사자라고 해도 이러한 기관상의 질병은 치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어떤 잡지 기사에서 놀런은 쿨만이 정신에 관련된 “신경성 질환”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간단히 말해서 팔이 아픈 것은 기능상의 질병이다. 그러나 팔이 말랐거나 아예 없다면 그것은 기관상의 질병이다. 팔이 아프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경성 질환이다. 놀런은 이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치유 기적에 대한 이야기들을 잘 살펴보라. 담석증이나 심장병, 암, 혹은 그밖의 다른 심각한 기관상의 질병을 치료했다는 사람들에 대한 자료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확신하건대 위통, 가슴앓이, 호흡 곤란 따위를 앓던 사람들이 잠시 나아진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유 은사자들과 신자들이 이 일시적인 증세를 그 병이 치료된 증거라고 간증하는 것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환자가 내려가는 것을 잘 주시해서 보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 “치유”라는 것은 결국 항상 일시적인 증세의 변화일 뿐이다. 병의 근원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이다.

신유 은사자들이 심각한 기관상의 질병을 치료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따금 환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가져오게 한다. 때때로 그들은 환자들의 생명을 건질 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도움까지도 받지 못하게 만든다.

몇 해 전에 지금 이 장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설교한 적이 있는데, 설교가 끝난 후 어떤 젊은 남자가 내게 와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의 설교가 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저는 언젠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다치고 그 뒤로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답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는 나는 치유되었으며 내 두통이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두통이 다시 있게 되자 나는 마치 내가 하나님의 치유 은혜를 받지 못한 것처럼 죄책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나는 의사에게 가지도 않았었는데 오늘 아침 당신의 설교 덕분에 그 죄책감에서 해방되었고 이제 의사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어떤 의사가 그 두통이 기관상의 문제에서 생긴 것임을 알아내고는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증거들은 무엇인가?

 

분명히 신유 은사자들을 믿는 사람들은 놀런 박사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는 복음주의자도 아니고 또 기적을 빋지 않으려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연구는 객관적일까? 놀런 박사는 쿨만에게 그녀가 “치료된 것”을 보았다는 암 환자들의 명단을 자기에게 보내게 했다. 여기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다음과 같다.

나는 그녀가 보내준 명단에 있는 사람 중 8명에게 편지를 썼다. 협조 요청에 응한 사람은 쿨만에게서 전립선 암을 고침받았다는 사람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경우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줬다. 전립선 암은 호르몬 치료에 잘 듣는다. 만약 그것이 넓게 퍼졌다 하더라도 방사선 치료를 하면 좋은 효과가 있다. 이 사람은 수술도 받고 방사선 치료와 호르몬 치료를 다 받았다. 그리고 그는 캐서린 쿨만에게도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치료된 것이, 혹은 차도가 있는 것이 쿨만 덕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 본 사람은 누구라도 보통 사람이건 의사건 어떤 치료가 그의 생명을 실제로 연장시켰는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만약 쿨만이 성령께서 자신을 통해 암을 “치료”하신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그녀는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놀런 박사는 계속해서 그녀가 보내준 명단을 보고는 캐서린 쿨만에게서 치료를 받았다고 하는 82명에 대해 조사를 했다. 82명 중 23명만이 그의 요청에 응하면서 면접했다. 모든 조사를 마친 후 놀런은 소위 치료라고 하는 것들 중에 단 한가지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캐서린 쿨만은 의학적인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이다. 나는 그녀가 사기꾼이거나 협잡꾼이라고 아니면 의도적으로 부정직한 사람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수천 명의 환자들이 자신의 집회에 와서 자신의 사역을 통해 기관상의 질병을 치료 받았다는 것을 진지하게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조사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나는 그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모질게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문제는 무지함에 있다는 것이다. 쿨만은 신경성 질환과 기관성 질환의 차이를 전혀 모른다. 비록 그녀가 최면술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녀는 최면술과 암시 효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녀는 자율신경계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시 말해 그녀가 이것들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다면,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감추는 법을 배웠음이 분명하다.

한 가지 다른 가능성이 있다면, 쿨만은 자기가 한 일이 보기보다는 그다지 기적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사역의 효과를 위협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감정적으로든 지적으로든 모두 부인하도록 스스로 자신을 타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신기한 란디”(The Amazing Randi)로 잘 알려진 전문 마술가 제임스 란디(James Randi)는 신유 은사자들의 주장을 조사한 책을 썼다. 란디는 1986년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에서 텔레비전 방송 설교가인 피터 팝업(Peter Popoff)의 속임수를 폭로했던 장본인이다(팝업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청중에 대한 “지식의 말씀”을 받는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이야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가 감춰진 이어폰을 통해 그의 아내가 알려 준 정보를 말한 것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는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적은 쪽지와 안내소에서 받은 기록들을 그에게 읽어주었던 것이다).

란디는 공개적으로 기독교를 부인했다. 그렇지만 그의 조사는 아주 철저하고 또 정당한 것 같다. 그는 몇 번 신유 은사자들에게 “직접적이고 실증할 수 있는 진짜 신유의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만약 내가 기꺼히 인정할 수 있는 기적적인 치료가 한건이라도 일어난다면 나는 이 책에서 적어도 한 가지 기적은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그 어떤 신유 은사자도 자연적인 회복이나 심리적인 차도, 혹은 속임수로 설명할 수 없는, 그리고 의학적으로 분명히 규명할 수 있는 치료의 기적을 단 한건도 베풀지 못했다. 란디의 결론이 무엇이었겠는가?

“결국 오늘날 신유 은사라는 것은 항상 그랬듯이 단순히 마술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설교자들이 신유 은사는 마술과 다르다고 열심히 외쳐도, 그 행사들은 마술의 요건과 딱 들어맞는다. 마술의 요소들을 다 갖추었으니 그것은 마술이다.”

물론 신유 은사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모호하게 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기들이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실을 부인한다. 그들은 “나는 치유할 수 없어요. 성령께서 하시지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온갖 흥행술과 허세, 각종 속임수를 동원해 그것을 부인한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치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왜 그들의 집회에 희망에 부푼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이 모이는가? 또 왜 그들의 집회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는가?

우리가 들은 그 병고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들 중에 진짜도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디에서 부서진 뼈들이 고쳐진 적이 있는가? 신유 은사자가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의 찢어진 얼굴을, 혹은 깨진 머리를 치유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갈비뼈 절단 수술을 받은 사람이 뼈가 다시 생겨나고, 한때 마비 증세를 일으켰던 사람이 이제는 정상적으로 활동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단지 우리가 본 것은 대부분 상상의 질병과 상상의 치료인 것 같다.

오늘날 자칭 신유 은사자라고 하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자기가 행하였다고 주장하는 기적들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들은 대부분 뻔한 속임수를 쓴다. 또 그들이 보여준 소위 치료라는 것들은 매우 의심쩍은 것들이다. 그런데 수천 명의 지성인들이 그들의 집회에 계속 가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병이 들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병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며 평소에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극단적인 행동까지도 하게 한다. 명석하고 지적이며 분별력 있는 사람들을 비(非)이성적으로 변하게 한다. 사탄은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탄은 이렇게 말한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욥 2:4).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불치의 병이나 기관상의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아픈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신경성 질환을 앓거나 약간의 기능상의 문제를 갖고 있을 뿐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의심이 많아서 기적이라고 믿는 것들을 봄으로써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해 이 집회 저 집회를 돌아다녀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다는 데 있다. 실제로 누구의 믿음도 강해지지 않고, 또 누구의 질병도 치료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낙심한 채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는 데 실패했거나 혹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은사주의자들과 비은사주의자들 모두가 병고침에 대해들은 말 때문에 혼란과 죄책감, 그리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죄 때문에, 믿음이 부족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냉담하게 대한다고 느낄 때 그들이 겪은 병의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신유 은사자들은 지금도 신유의 은사가 있는데 사람들이 병고침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들의 잘못이든지 아니면 하나님 탓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유 은사자들의 뒤끝은 항상 개운치 못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으로 치유하신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가? 그렇다고 믿는다. 일부 거짓이 있다고 해서 초자연적인 치유의 기적들을 모두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나는 극적인 기적이나 하나님의 즉각적인 간섭은 매우 드물다고 믿는다.

그런 것들은 결코 신유의 대리자인 양 행동하는 은사주의자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진정한 병고침은 기도의 결과이며, 그것들은 대부분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차도를 보인다. 이따금 하나님은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급작스럽게 병자를 회복시키는 경우도 있다. 때때로 하나님은 의학적인 예측을 뒤집고,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게 병자를 회복시키신다. 그런 병고침은 기도의 응답이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며,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신유의 은사,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 병고치는 사역을 위해 특별히 기름 부음 받았다는 것,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전형적인 신유 기술들은 사도 시대 이후에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은 치유하신다.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그리고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치유하신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 시대에 있었던 병고침과 오늘날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서, 이상한 것들을 우편으로 배달해서, 그리고 대륙을 횡단하는 부흥사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병고침과는 큰 차이가 있다. 성경을 읽어보면 그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존 맥아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