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절기이야기
나팔절이야기
유대인들에게 절기란 우리의 교회력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주교는 교회력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교회력은 있으나 교회력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절기란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모든 삶의 기준입니다.
유대인들의 모든 삶은 절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절기는 곧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절기를 지키는 모든 절차와 의식에 말씀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모든 역사가 절기에 담겨 전해지고 그 의미가 반복되어 교육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유대인의 달력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절기와 절기의 의식과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절기에 따라 읽는 말씀이 정해져 있어 매년 성경 일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유대인들의 달력은 음력입니다.
우리의 음력과 비슷하지만 그들의 음력이 우리의 음력보다 정확합니다.
그들은 달이 한 번 지구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정확하게 29일 12시간 48분이라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러면 일 년이 354일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윤달을 두었습니다.
19년 중에 7달의 윤달을 두었습니다.(윤달이 있는 해: 3-6-8-11-14-17-19, 3년마다 윤 달이 있는 우리의 음력과 다릅니다.)
(윤달은 항상 아달월에 맞춥니다.)
그래서 음력을 사용하지만 양력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이슬람의 경우에도 음력을 사용하지만 그들의 달력인 회음력에는 윤달이 없어 계절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달력으로 2008년은 5765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신 날이 0년 1월 1일입니다.
유대인의 달력은 민간력과 종교력이 있어 종교력으로 1월 1일은 민간력 7월 1일입니다.
유대인들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 그 달을 새해의 첫달로 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설날은 양력으로는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 사이에 오게 됩니다.
그들은 새해를 나팔절이라는 절기로 맞이합니다.
나팔절은 새해의 첫 열흘간을 말합니다.
그 처음 이틀을 '로쉬 하샤나'라고 하는데 이는 새해의 첫날(a head of the year)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은 새해의 첫 열흘을 회개의 날로 지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열흘째가 '욤 키푸르'라고 부르는 대속죄일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는 민간력으로 지켜지기 때문에 그들의 새해가 7월 1일이 되는 것입니다.
나팔절에는 안식일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세번 나팔이 울립니다.
'트키아'(길게 불고 한 옥타브 올라가는 것) -시작
'슈바림'(세 개의 잛은 음으로 부는 것) -중간
'트루아'(아홉 개의 빠르고 날카로운 음) -끝을 알림가 그것인데 날마다 세 번의 나팔이 다 울리기 전에 회개를 해야 합니다.
나팔 소리가 극적인 효과를 더해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팔의 기원은 모리아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에 수풀에 걸린 양을 주셨는데 나팔은 그 양의 뿔을 상징합니다.
나팔을 통해 그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팔은 왕의 대관식 때(기름을 부을 때), 각종 절기 때 그리고 전장터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희년의 나팔소리는 해방의 나팔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희년의 나팔 소리는 실제로 역사적으로는 거의 울려퍼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히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때 그 나팔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회개는 우리에게 매우 교훈적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회개의 기도문을 읽으며 회개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회개한 후에 반드시 자신이 잘못한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나팔절 기간 안에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물론 금전적으로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회개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는 말로만 회개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화해와 배상이 사람들 간에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신약성경의 기사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삭개오의 이야기라든지, 예물을 드리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라는 내용들은 이런 유대교 전통과 관련지어 바라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들의 회개가 절대 피상적인 회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회개는 반드시 현실적으로 책임지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 있어 그리스도인들의 회개가 좀더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날인 '욤 키푸르'(대속죄의 날)는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생명책이 닫히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그날까지 회개하지 못하면 죄는 영원히 기록되어 용서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래서(생명책에서 삭제되었기에) 회개를 한 후에는 원수같이 지내던 사람들과도 전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은 없어졌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원수같던 사람들이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까?
의아해 할 정도로 그들은 나팔절이 끝난 후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이 역시 우리가 배워야 할 값진 교훈일 것입니다.
마지막 날(섣달 그믐) 자정이 지나면 유대인들은 모두 회당으로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그들이 걸어서 회당에 모두 모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분 정도입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모여 삽니다.
안식일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인, 대략 900미터 이내에 살기 때문입니다.
(900미터는 2000규빗입니다.-일 규빗은 팔꿈치로부터 손끝까지의 길이인데 대략 45센티 정도입니다.)
안식일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2000규빗이기 때문에 모든 유대인들은 회당으로부터 900미터 이내에 집을 삽니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당은 나라에 따라 그 모양이 다릅니다.
회당이 있는 나라의 건축 양식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그 모양은 옛 양식 그대로 모두 똑같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할라'라고 부르는 빵을 '샤나 토바'(good year)라고 부르는 단지에 담긴
꿀이나 사과잼을 찍어 먹으면서 새해가 그렇게 달콤하기를 기원합니다.
'할라'빵의 모양은 사다리 모양, 새 모양, 왕관 모양과 같이 특별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사다리는 하늘에 상달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을 상징하고, 새 모양은 새와 같은 미물들에게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이고, 왕관 모양은 하나님의 영원한 왕 되심을 인정함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새해 첫날 오후에는 '타슐리히'라는 의식을 행하는데,
흐르는 물가에 모여서 주머니에 있는 먼지나 빵가루를 털어버립니다.
'타슐리히'는 "너는 던져버리라."는 뜻으로 죄를 완전히 떠나보낸다는 의미입니다.
'욤 키푸르' 예배 후에는 구제의 헌금을 합니다.
여러가지 목적이 적혀 있는 접시들이 놓여있는 데 각자 필요한 곳에 헌금을 합니다.
용서받았다는 표시로 자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세상을 받치는 세 개의 기둥이 있다고 믿습니다.
첫 번째 기둥은 토라(말씀)입니다.
두 번째 기둥은 예배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기둥은 선한 행위 곧 자선입니다.
이 세 기둥 가운데 어느 하나가 없거나 모자라면 세상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욤 키푸르' 예배때에는 요나서가 낭독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 모두에게 임하신다는 것을 새해를 맞으며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 또한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은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열흘 동안 계속되어지는 나팔절의 의미는
용서를 경험한 후 첫 날을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날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날들을 결코 낭비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는 헌신의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모든 삶은 헌신의 삶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팔절 하나만을 간단히 살펴보아도 세계 역사 속에 왜 그렇게 많은 유대인들이 등장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에게 어떤 축복이 임하는가를 그들을 통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초막절이야기
유대인의 3대 절기는 초막절, 오순절, 유월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일 년에 세번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했다는 것은 이 세 절기의 방문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세 절기 모두 방문했습니다.
그러다가 오순절이 좀 쇠퇴하고, 디아스포라들이 많아지면서 일 년에 세 절기 가운데 한 번을 방문해도 좋다로 다소 약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번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는 성전에 헌금을 보냄으로써 면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막절은 사실 나팔절에 이어지는 새해의 절기라 할만큼 연속성이 있습니다.
나팔절 마지막 예배가 끝나고 나오면서 사람들은 초막을 짓기 시작합니다.
초막을 히브리어로 '쑤카'라고 하는데 복수형이 되면 '쑤코트'가 됩니다.
그래서 초막절을 '쑤코트'라고 부릅니다.
5일간 초막을 짓고 일주일간 초막절 절기를 지킵니다.
그래서 사실상 유대인들의 새해 업무는 22일이 지난 23일에야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막절은 유대인들이 출애굽한 후에 40년 간의 광야 생활을 잊지 않기 위해 지키는 절기입니다.
광야에서 집을 짓지 못하고 간단하게 나뭇가지로 초막을 엮어 살던 그 시절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초막절을 장막절이라고도 하고,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장막은 초막과 비슷하니까 이해할 수 있는데 수장절이란 말은 무슨 말인가 이해하기 힘듭니다.
수장절이란 곡물을 수확해서 저장해 놓는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을 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곳은 수확의 계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수확부터 할 수 있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 처음 경험한 것이 수확이었으니, 그 수확물을 걷어놓고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모든 것을 준비해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장절이라는 이름이 더해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초막절은 40년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 의미와 수확의 기쁨을 감사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초막은 그곳에 누우면 반드시 하늘이 보이도록 지붕을 나뭇가지로 덮습니다.
마당이 있는 사람은 마당에 마당이 없는 집은 옥상에 초막을 짓습니다.
이스라엘의 아파트는 어디든 큰 방 두 개 정도 크기의 베란다가 있습니다.
그곳에 초막을 짓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보여야 하므로 이스라엘의 아파트는 위로 올라갈수록 베란다 크기만큼 평수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아파트는 멀리서 보면 계단처럼 생겼습니다.(얼마나 비경제적입니까?)
이렇게 아파트를 지을 때에도 절기를 지킬 수 있도록 설계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철저히 생활화 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초막이 지어지면 어머니와 아이들은 초막을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과일과 꽃으로 기쁘게 장식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주일간을 생활합니다.
모든 생활을 다 그 안에서 하는데 설거지와 용변만 그곳에서 하지 않습니다.
초막 안에는 축제 기간 동안 먹을 양식이 들어 있으며 초막은 존경하는 마음과 존엄으로 다루어집니다.
초막 안 테이블 위에는 멋진 테이블보를 깔아놓고 그 위에는 갓 구어낸 맛있는 빵이 놓여집니다.
그리고 다른 절기와 마찬가지로 초와 촛대가 놓여집니다.
어머니가 그 초를 밝힘으로 초막절이 시작됩니다.(모두가 존중됩니다.)
아버지의 기도와 축복의 의식이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 하라"(레23:39-43)는 말씀에 따라 그들은 '에트로그'와 '룰라브'를 준비합니다. '
에트로그'는 맛있는 나무 열매이고, '룰라브'는 네 가지 나무로 된 다발입니다.
초막절 행사기간 동안 '룰라브'를 계속 흔드는 동작이 반복됩니다.
'룰라브' 끝이 에트로그에 닿도록 해서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기도 합니다.
또한 '룰라브'를 흔드는 것은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의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계절 상으로 그때 비가 내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초막절 7일 동안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마다 '룰라브'를 흔들며 기도를 합니다.
초막절을 해설한 탈무드는 두껍고 커다란 책 두 권입니다.
그만큼 엄청나게 많은 의미가 초막절에 담겨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대인들의 초막절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저 수박 겉핥기 정도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중에 룰라브에 대한 해설만도 31페이지로 되어있는데 이를 우리말로 번역해 놓으면 약 200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해당합니다.
'룰라브'가 네 가지 나뭇가지로 되어있는 이유는 매우 다양합니다.
그중 두 가지만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에트로그' 나무 열매는 사람의 심장 모양을 하고 있는데 사람은 심장없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룰라브는 사람의 척추와 같고, 은매화나무는 사람의 눈, 버드나무 잎새들은 사람의 입술과 같습니다.
이것들을 다 모으면 사람과 같이 되는데 이는 하나님께 감사할 때 영혼과 육체로 찬양하여야 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신명기 6장 5절의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실천이라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네 가지 나뭇가지가 종류별로 유다백성들을 상징합니다.
에트로그 나무 열매는 맛이 좋고 향도 좋은 식물입니다.
룰라브에서 나는 대추야자 열매는 맛은 있지만 향은 없습니다.
은매화나무 열매는 향기는 좋지만 맛이 없습니다.
버드나무 열매는 맛도 향기도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유대인의 네 종류의 특징을 나타냅니다.
어떤 사람은 토라의 지식과 선한 행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맛과 향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토라는 알고 있지만 선한 행실은 없으며,
어떤 사람들은 선한 행실은 있지만 토라는 알지 못하며,
어떤 사람은 토라도 알지 못하고 선한 행실도 없습니다.
이 모든 유대인들이 하나로 묶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철저한 공동체!!!)
또한 그 '룰라브'를 흔들면서 유대인들은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토라의 지식과 선한 행실을 가지겠다고 다짐하는 결단의 시간이 되겠지요.
초막절 첫날에는 예배가 두 번 열리는데
두번째 예배가 끝나면 법궤가 열리고 사람들이 회당 주위를 도는 것을 시작으로 복도와 회당 안을 행진합니다.
이때 가장 앞에 선 사람이 찬양을 선창하면 뒤따르는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 부릅니다.
"호산나 구원 찬양"으로 시편 113편에서 128편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찬양입니다.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던 시절의 초막절 예배의식으로 '씸 하트 베이트 하소예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단에 물을 붓는 의식이었는데 이는 '물을 따르는 기쁨'이라는 뜻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 하시면 기쁨이 흘러 넘치게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사용되는 물은 랍비가 직접 항아리를 들고 실로암 못에 가서 떠오게 됩니다.
이 물이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나와서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을 찬양했습니다.
위에 소개한 바로 그 찬양입니다.
우리가 이 의식을 염두에 두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7장에서 하신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명절 끝날(초막절)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라."(37-38)
위 예수님의 말씀에 등장하는 명절 끝날은 초막절의 마지막 날을 의미하는데 '호산나 라바'(위대한 도움)라고 불렀습니다.
이날에 아이들은 종려나무잎과 버드나무 그리고 은매화나무로 반지와 팔찌와 활과 장식품을 만듭니다.
'호산나 라바'의 밤 정각 열두시에 하늘이 열린다고 생각하였고 그 순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기도 하였습니다.
(절기에 즐거움을 더해주므로 더욱 인상 깊고 기쁜 절기가 되게 합니다.)
그리고 초막절 마지막 행사로 버드나무 가지를 의자나 벽에 두드렸는데 이는 죄를 완전히 털어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죄에 대해 민감했습니다.)
초막절이 일주일간 지속되지만 유대인의 날이 저녁에 시작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9일간 지속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에트로그'와 '룰라브'를 치웁니다.
그리고 토라의 행진이라 하여 토라의 마지막 부분인 신명기 마지막 절을 읽고 다시 창세기 1장 1절을 읽습니다.
돌고 도는 토라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새로운 세계가 열렸으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한 해를 살아가자는 의미입니다.
초막절 기간 동안에는 전도서를 읽는데 이는 조상들의 광야생활을 기억하면서
오늘날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을 감사드리면서도
이 세상에서의 모든 것이 결국 헛되다는 것을 잊지말라는 의미입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네 삶이 끝나기 전에 여호와를 기억하라는 전도서의 교훈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절기의 의미는 절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조명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더하거나 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경외심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무익한 종들일 뿐입니다.
만일 내가 아직도 하나님께 무언가 드릴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철저한 오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절기는 절기 자체보다는 절기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유래한 추수감사절도 따지고 보면 유대인들의 초막절의 의미를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방황의 시절과 고난의 시절을 기억하고,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곡물을 수확한 기쁨을 감사하는 그들의 정신이 처음 미국에 도착한 필그림들에게 그대로 전해진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초막절 다음날인 1월 23일을 '씸 하트 토라'라고 하는데 이는 '토라 안에서의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해 업무의 첫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날을 '씸 하트 토라'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감명 깊은 교훈이라 하겠습니다.
유월절이야기
유월절은 이스라엘 최고의 절기로 하나님께서 종되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신 자유와 구원의 축제일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출애굽 전야(니산월 14일)에 '이집트 땅을 치실 때'
사람이든 가축이든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것들을 그냥 '넘어간 것'(pass over) 또는 살려두신 것을 기억하며
그 모든 일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로부 터 구해내셔서 자유를 주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령하신 대로 집집마다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하나님의 자녀임을 표시했습니다.
이스라엘과 개혁파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7일 동안 기념하며, 다른 곳에서는 8일 동안 기념합니다.
물론 니산월 15~22일의 7일간 누룩을 넣지 않은 빵( 무교병)인 '마짜'를 먹기 때문에 무교절이라고도 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이 애굽의 고센 지방에서 머물게 되며,
요셉이 죽은 후 요셉을 모르는 바로에 의해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기록을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의미없이 이 부분을 읽어나가지만 사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생활을 통해 이스라엘이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발전된 문명을 접하게 하셨습니다.
전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하시고 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스라엘이 전 세계를 능가하는 구별된 제사장 나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가 들어있습니다.
유월절은 가족끼리 특별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포쉘'이라는 구별된 음식을 먹었습니다.
잘 알고 있는 바 대로 그것은 삶은 양고기와 무교병 그리고 쓴나물 등입니다.
음식마다 부여된 상징적인 의미를 되새기면서 먹습니다.
그 식사에는 기도와 전승의 내용을 암송하는 의식도 포함됩다.
회당에서는 안식일에 예배의 한 순서로 〈아가서〉(솔로몬의 노래)를 낭독합니다.
유월절은 유대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을 회상하며 큰 즐거움을 누리는 절기이지만,
엄격하게 식사법을 지켜야 하고, 절기의 시작과 끝에는 특별한 규정에 따라서 노동을 제한하였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최고의 절기인 동시에 어린아이들의 절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중심이 됩니다.
유월절이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집안 대청소가 실시됩니다.
어머니가 청소를 말끔히 마치면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책상밑이나 집안 후미진 곳을 검사합니다.
누룩이 들어 있는 유교병 가루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가루라도 말끔하게 청소하는 것이 유월절을 준비하는 첫 시작인 셈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런 태도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추호라도 소홀한 점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그러한 태도는 유월절 음식과 그릇 등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특별히 유월절 첫 이틀간 먹는 무교병은 ''마짜슈므라'라고 하는데
이 무교병은 특별히 추수할 때부터 구별하여 거두어 들여 따로 잘 보관해 둔 밀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탈무드에 기록된 방식 그대로 물의 비율을 맞추어서 반죽하고 정확하게 구어냅니다.
그것을 유월절을 위해 특별히 보관해 둔 그릇에 담아 먹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제기가 따로 있는 것처럼 그들도 유월절에 사용하는 그릇을 따로 보관해 둡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그들이 절기를 준비하며 지키는 가를 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짜'를 만드는 법은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밀가루 비율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반죽한 후에 빗같이 생긴 것으로 구멍을 내었습니다.
빵이 부풀어오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오늘날은 새모양이나 왕관 모양의 구멍이 생기는 기구를 사용합니다.)
무교병이라도 구울 때 빵이 부풀어 오르게 되는 그것을 방지 하기 위해서 구멍을 뚫어놓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부풀어 오르지 않은 모습, 눌러도 찌그러들지 않는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순전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한 그들의 열망을 담은 행동이라 하겠습니다.(정직과 겸손)
그만큼 그들은 하나님의 알곡이 되기 위해 이렇게 작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가장 무거운 우라늄을 농축한 플루토늄을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가공할만한 폭발력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서 잠깐 탈무드에 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탈무드란 토라의 원리를 실생활과 문화에 적용하는 일종의 해석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무교병을 먹으라는 말씀은 있지만 무교병의 제조 방법에 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무교병의 제조방법은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의 경우도 동일한 방식이 적용됩니다.
성경 말씀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되어 있습니다.(출 20:8)
그리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그 구체적인 내용이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9가지의 구체적인 항목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밝혀 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놓고도 행여 잘못될까 하는 마음에 울타리 율법이라는 것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거울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거울을 보는 것은 39가지 안식일에 할 수 없는 일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울을 보다가 새치를 발견해서 그 새치를 뽑으면 그것은 안식일에 할 수 없는 일에 해당합니다.(우리가 보기에는 엉뚱한, 새치를 뽑으면 안 된다는 항목이 들어있다는 사실에서 그들이 얼마나 철저히 자신들의 모든 삶을 돌아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거울을 보다 무심코 새치를 뽑게 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안식일에 거울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울타리 율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철저히 율법을 지키는 가를 이와 같은 예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탈무드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다른 문화 속에서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경을 이해하기 쉽게 재해석하여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탈무드는 '미쉬나'와 '게마라'라는 것을 합쳐 놓은 것입니다.
'미쉬나'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토라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그리고 '게마라'는 그 '미쉬나'가 과연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지를 토론한 내용입니다.
처음에는 '미쉬나'만 탈무드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쉬나'와 '게마라'를 합쳐서 탈무드가 되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그들은 '마오트 힛딤'이라고 하는 기금 모으기 운동을 행합니다.
유월절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모으는 기금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강제나 압박도 없습니다.
유월절 해방과 구원의 기쁨으로 그들은 기꺼이 자발적으로 이 기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합니다.
이 기금 모으기는 지금까지 계속 행해지고 있는 유월절의 전통입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절기가 되기 위한 공동체적 배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항상 이 공동체의 정신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악은 '개교회주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를 떠나서는 도무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개교회주의가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서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 기복신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경을 인용하여 거들먹거리며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만 잘 믿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은혜 받기 위해서는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어불성설입니다.
그런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가족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성령의 역사는 항상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마오트 힛딤'과 같은 운동이 한국 교회에도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유월절 기간동안 그들은 '하가다'라고 하는 책자를 식구마다 가지고 그것을 읽습니다.
'하가다'는 유월절과 관계된 성경의 모든 내용을 따로 모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그것을 읽으며 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노예시절 먹었던 고난의 빵을 생각하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감사합니다.
또한 아직도 자신들이 매여 있는 것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하가다'는 자신들의 2000년 전 언어인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어 더욱 실감나게 과거를 돌아보며 오늘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유월절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시작됩니다.
왜 이날밤은 다른 날 밤과 다른지에 관한 4가지 질문입니다.
첫번째로, 다른 날 밤에는 누룩을 넣은 빵을 먹어도 되는데 왜 오늘 밤은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어야 되나요?
두 번째로, 왜 다른 날 밤에는 모든 나물을 다 먹을 수 있는데 오늘 밤에는 오직 쓴 나물만을 먹어야 하나요?
세 번째로, 다른날 밤에는 야채를 아무것에도 찍어먹지 않는데 왜 오늘 밤에는 야채를 두 번씩이나 찍어 먹어야 하나요?(유월절에는 야채를 소금물에 두 번 찍어 먹습니다.)
네 번째로, 다른 날 밤에는 다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왜 오늘 밤은 기대어 있어야 하나요?(기대는 것은 자유를 즐기는 자세임)
이런 아이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고 출애굽의 전 여정에 관하여 아버지가 차근차근 자세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대개 저녁 6시에 시작하여 새벽 세 시 정도에 끝나게 됩니다.(무려 9시간에 걸친 설교? 가정 예배?)
그리고 그것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유월절 만찬을 시작하게 됩니다.(그 인내 그리고 반복을 통해 깊어지는 감사)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유월절은 아이들의 절기라고 부를 만큼
아이들에게 자신의 조상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시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일에 촛점이 맞춰집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철저히 교육하고 아이들은 다시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철저히 교육할 수 있도록
반복하고 반복해서 유월절의 모든것을 가르치고 전달합니다.
그래서 유대인 아이들은 자기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과거에 조상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킨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자신들을 해방시켜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고 또 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의 신앙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고 발전되어 철저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cf. 유대인들은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유대교인이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가족이 유대인 회당에 다니지 않으면 유대인 학교에 입학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메시아닉 주이시'의 경우도 대부분 혼자 그리스도인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유월절과 관련하여 꼭 기억해야 할 성경의 내용이 있습니다.
모세의 소명 장면입니다.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 것을 보고 다가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신발을 벗으라."(출 3:5)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신발을 벗으라는 것의 의미는 이제까지 모세가 배우고 익힌 인생의 모든 경험을 벗어버리라는 의미였습니다.
참고로 '이력서'라는 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직장에 입사할 때 쓰게 되는 이력서란 신발 '이(履)', 지낼 '력(歷)', 글 '서(書)'입니다.
한마디로 이력서란 신발이 다녔던 기록이라는 말입니다.
신발이 다녔던 기록이란 삶의 모든 여정을 말합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배운 온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 왕자로서의 교육,
그리고 광야생활을 통해 배운 시련과 고독의 교육까지 자기 인생의 모든 경험을 벗어야 했습니다.
이어지는 사건을 통해 그 사실이 보다 더 확실하게 밝혀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뱀으로 변한 지팡이의 꼬리를 잡으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뱀이란 머리를 잡아야지 꼬리를 잡으면 물리게 되어 있습니다.
광야생활을 통해 수도 없이 뱀을 만나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꼬리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말씀하시더라도 그대로 순종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버린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뱀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우리가 신발을 벗을 때에라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40년의 유랑생활 역시 그들의 신발을 벗어버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유월절이란 그렇게 신발을 벗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대를 이어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신고 있는 신을 벗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신을 벗었는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이렇게 40년 광야생활을 지나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부터 닛산월 15일 전날 밤에 시작하는 유월절을 오늘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어린 양의 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하는 그림자였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할 사명을
그리스도인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명을 완수하려 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복음을 살아야 하는가를
오늘의 유월절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기도하면서 새롭게 결단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참 자유를 지닌 자유인으로서 말입니다.
오순절이야기
'샤브오트'라고 부르는 오순절은 3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토라를 주신 것을 기념하는 의미.
2. 이스라엘이 들에서 밀을 추수하는 것을 기념하는 의미
3. 거룩한 땅에서 첫 과일이 익어가는 것을 기념하는 의미의 세 가지가 그것입니다.
첫 번째로 오순절은 모세에게 토라를 주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랍비들은 오순절을 이스라엘 절기 가운데 가장 즐거운 절기로 여깁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이 얻은 자유를 결론지어 주는 절기가 유월절로부터 50일 후 오는 오순절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오순절에 시내산에서 하나님 백성의 삶의 원리가 되는
열 마디 말씀(십계명)을 받음으로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십계명을 열 마디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열 마디 말씀이 명령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이 담긴 말씀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열 마디 말씀은 유대교의 토대를 이룰 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의 도덕법과 성문법의 원리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 법의 근간이 되었는데 그 법의 정신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오순절을 토라의 절기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오순절을 '쯔만 마탄 토라트뉴'라고 하는데 이 말의 의미는 '우리의 토라를 받은 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오순절에 유대인들은 출애굽기를 읽는 것을 즐기고 그중에서 특별히 열 마디 말씀을 읽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열 마디 말씀을 읽으면서 그들이 배우는 교훈은 모든 법의 기본 정신인 사랑입니다.
열 마디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모든 일을 탐심으로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열 마디 말씀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라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보호 속에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열 마디 말씀이 새겨진 돌판을 두 개를 주셨습니다.(십계명을 두 돌판에 나누어 새겨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당시 고대 근동의 증인이 둘 이상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의 열 마디 말씀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철저히 지켰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두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한 존경받는 선한 랍비가 있었습니다.
그 랍비가 어떤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증인이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랍비는 자신이 분명 돈을 빌려주었고 꼭 돌려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제자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되니 말은 하지 말고 그 한 명의 증인을 따라 그냥 법정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해달라고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제자는 스승인 랍비를 향해 "제가 그곳에 들어가서 아무 말 하지 않더라도 결국 그것은 증인이 되는 것인데
이는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제자는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또 한 이야기는 이보다 더욱 심각합니다. 한 어머니에게 다섯 아들이 있었습니다.
포로였던 그들은 그 나라의 신상에게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왕 앞에 불려왔습니다.
왕은 한 아들씩 불러서 신상에게 절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들들은 어머니를 쳐다보았지만 어머니는 절하지 말고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네 아들이 죽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살짜리 막내아들이 불려나왔습니다.
왕은 타협안을 내놓았습니다. 자신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전을 하나 바닥에 떨어 뜨릴테니 막내아들이 그것을 주으면 멀리서 보는 사람들이 절한 것으로 알테니
그러면 계명을 어기지 않는 것이고 막내 아들을 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타협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결국 그렇게 하는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결국 막내아들과 어머니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열 마디 말씀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들은 그 열 마디 말씀을 지키는 것이 그들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안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토라를 따라 사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믿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의 행복도 존재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두 번째로 오순절은 이스라엘이 들에서 밀을 추수하는 것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보리를 먼저 추수하고 밀은 나중에 추수하였습니다.
오순절 다음날부터 그들은 수확한 보리를 한 오멜씩을 성전에 감사의 의미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다음날부터 오메르 세기를 시작하는데 49일간을 세고나면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을 '하그 카찌르'라고 하는데 이는 '추수의 축제'라는 의미입니다.
성공적인 추수는 다가오는 한 해의 풍성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오순절은 그 추수를 기념하는 즐거움의 절기입니다.
세 번째로 거룩한 땅에서 첫과일이 익어가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오순절을 '하그 하 비쿠림'이라고 하는데 이는 '첫 번째 과실들의 절기'라는 의미입니다.
과일이 익기 시작하면 그 첫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의 의미로 드렸습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기독교의 풍습은 여기에서 온 것입니다.)
첫 번째 열매를 '비쿠림'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첫 번째로 익은 열매가 보이면 그 과일의 주위를 실로 묶어 구별하여 두었다가 다 익으면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일곱 종류의 첫 과일들을 모든 농부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의미로 드립니다.
그 일곱 과일이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곡물이었던 밀과 보리를 들 수 있습니다.
밀과 보리는 이스라엘의 강우량이 가장 많은 겨울에 재배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기후와 관련이 있습니다.
보리를 먼저 수확하고 밀을 나중에 수확하였습니다.
오순절에 룻기를 읽는데 이는 룻기의 내용이 보리 수확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포도를 드렸습니다.
갈멜산이 포도의 주산지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탐하기 위해 열두 사람을 보냈을 때 포도를 나무에 달아 어께에 메고 올 정도로 엄청나게 큰 포도가 달립니다.
갈멜이란 포도라는 의미입니다.
갈멜산은 많은 비와 풍부한 햇살 덕에 그런 좋은 포도가 나온다고 합니다.
네 번째로 무화과를 드렸습니다.
무화과는 사막에 사는 부족들에 의해 이스라엘에 전해졌습니다.
토라는 하나의 무화과로 비유되는데 이는 무화과는 버리는 것이 하나도없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는 껍질과 씨앗까지 모두 다 먹습니다.
토라 안의 모든 말씀이 바로 무화과와 같이 버릴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길을 가다 무화과 나무를 보면 무화과 나무를 축복한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로 석류입니다.
석류는 과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에 꽃이 피기 때문에 꽃으로 오순절에 드리는 곡식의 다발을 장식합니다.
석류가 익으면 쥬스를 만들거나 옷의 염료나 잉크를 만드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제사장의 옷들을 화려하게 물들이고 장식하는데 석류는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여섯 번째가 올리브입니다.
올리브 기름은 성전의 불을 밝히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올리브 열매가 달리는 감람나무는 잎이 촘촘하여 그늘을 제공해 주고 감람나무 가지는 평화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비둘기가 물고 온 것이 바로 이 감람나무 잎인데 거기서 평화의 의미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로 대추야자가 있습니다.
대추야자는 촉촉하고 즙이 많은 매우 달콤한 열매입니다.
미드라쉬에서는 이스라엘을 대추야자에 비유합니다.
"의인은 대추야자처럼 무성해질 것이니 그 열매는 먹을 것이요,
그 가지는 초가의 지붕으로 만들어질 것이며 그 섬유질은 로프를 만들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도 그와 같을 것이다.
어떤 이는 토라를 어떤 이는 미드라쉬를 어떤 이는 탈무드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과실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과실들을 바구니에 담아 성전으로 행진을 하였는데 오늘도 그 관습은 계속 되어지고 있습니다.
오순절에는 그들의 집을 식물들과 꽃으로 장식하는데
이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열 마디 말씀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시내산이 푸르고 울창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오순절에는 룻기가 읽혀지는데 이는 신앙과 헌신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추수때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다윗왕은 룻의 후손이고 유대인들은 다윗이 오순절에 태어났으며 오순절에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순절에 이스라엘 아이들의 성인식이 거행됩니다.
그리고 '아그타부트'라고 하는 오순절에 회당에서 드리는 특별한 기도가 있습니다.
이는 자녀들에게 토라를 주셨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송입니다.
토라라는 단어를 숫자로 읽으면 613인데 이는 토라의 숫자와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얽어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기 위함입니다.
더 큰 기쁨을 주시기 위해 토라를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토라를 저절로 지켜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는 특히 치즈와 같은 낙농식품을 많이 먹는데 오순절에는 가축을 잡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순절에 우유와 꿀을 먹는데 그 이유는 토라가 우유와 마찬가지로 양식이며 그 맛이 꿀같이 달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오순절은 '안녕'(bye)이라는 인사를 하지 않고 '좀 더 있다 다시 보자'(see you again)라는 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나는 데
이는 일 년의 모든 절기가 끝나고 이제 다시 처음부터 절기가 다시 시작됨을 상기시키는 인사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일 년 전체의 절기를 간단히 소개하고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1. 티슈리 : 양력으로 9월과 10월 사이, 1-2일 '로쉬 하샤나'(The head of the year) 10일 '욤 키푸르' 이 기간이 나팔절, 15일 부터 일주일 '쑤코트' 초막절, 23일 '씸하트 토라'(토라의 속으로)
2, 해쉬반 : 노아가 방주 들어간 날(2월17) 나온날(다음해 2월27 ) 음력이어서 꼭 365일임
3.키슬레이브 : 15일 부터 일주일 '하누카' 더럽혀진 성전이 회복된 것을 기념하는 날(9개의 가지를 가진 촛대를 밖에 장식해 놓는데 이 기간이 크리스마스 대강절기간과 겹치기 때문에 유대인들도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함)로 나무 열매를 먹으며 지냄
4. 테베트
5. 슈바트 : '나무들의 설날' 나무를 위한 기금을 모아 전 세계로 보냄, 비가 많이 오는 계절
6. 아달 : '부림절' 에스더서에 나온 내용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는 날, 윤달은 항상 아달월에 놓음
7. 닛산월 : 유월절(7월 14일) 일주일간 무교절, 종교력으로는 일월에 해당함
8. 이야르 : '라그바오메르' 유월절 다음날부터 보리를 한 오멜씩 담아 성전에 드리는데 33일째 되는 날로 가장 최근에 생긴 절기이기 때문에 성경의 기록에는 없음.(전쟁이 나서 부모가 죽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이스라엘에 '예시바'라는 학교가 생겨났습니다. 예수님 당시 랍비 아키바의 학교가 예루살렘에 있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전염병이 그 학교 앞에서 딱 멈췄던 사실을 기념하는 축제의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염병을 멈추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뻐하는 절기로 가장 나중에 생겨난 젊은 절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절기입니다.)
9. 시반 :'샤브오트'(오순절) 오멜을 세기 시작한지 50일째 되는 날
10. 타무쯔
11. 아브 : '티샤브 아브' 아브월 9일로 금식의 절기임(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날)
12. 엘룰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유대인들은 절기를 통해 말씀을 배우고 회상하며 삶 속에 실천하며 가르칩니다.
신명기 6:7절 말씀("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을 이들은 가르치지 말고 보여주라고 말합니다.
'보고 따라하도록 하는 것이 가르침이다'라는 탈무드의 가르침에 따라 그들은 절기를 지킴으로 이것을 실천합니다.
이들에게서 확인하는 바와 같이 믿음은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특히 아이들은 부모의 믿음을 등 뒤에서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개신교 최대의 약점은 말의 종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들을 지켰다."라는 말이 표현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절기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유대인의 모든 삶은 절기와 함께 시작하고 절기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부럽습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 백성된 그들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절기에 대해 이렇게 조금 공부하고서도 유대인들에 대한 인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너무 쉽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라는 말을 경멸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충분히 자숙하고 계시가 진전된 만큼 더욱 성숙한 새이스라엘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샬롬!!(샬롬은 진정한 하나님 백성들만의 참된 인사입니다. 그 의미가 새롭게 마음에 새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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