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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기본

하나님아들 2020. 3. 31. 16:35

예배의 기본
 

 

예배의 기본 개념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찾고 원하시는 참된 예배가 되기 때문이다. 본 장에서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에 나타난 예배의 기본 개념들을 찾아보자.

 

.예배의 주체이신 하나님

1.예배의 주체

예배의 주체는 인간 자신이 아니다 라는 점을 먼저 강조한다. 타락이후 조상 대대로 내려온 그 유전과 전통, 관습에 길들여져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외시키는 경향이 많다. 즉 우리의 자유 의지와 자기만의 이익 추구, 그리고 자신의 편리함만을 쫓아 예배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성질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그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예배는 타종교처럼 인간이 신에게 봉헌한다는 개념이 전혀 없다. 이러한 개념들은 인간이 그 예배의 주체가 되어 인간의 공력(功力)에 의한 예배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인간으로 하여금 예배를 하도록 주장하시기 때문이다.

 

기독교 예배란 그 기본 개념이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심으로 보다 본질적이다.

첫째, 전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예배이며

둘째,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가 선행되는 예배이다.

 

그러므로 인간 편에서는 단순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뿐이다.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타락이후 전적으로 죽어있기 때문이다.

 

2.예배의 객체

2:1-3은 창조의 주체(1)를 강조하심과 동시에 그 창조 개념에 입각한 안식의 개념(3)을 명확히 하셨다. 즉 천지간의 전 피조물은 안식이라는 구별된 의미 안에서 하나님께 바쳐진 것임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안식()은 하나님 주체의 날로 인간 편에서는 그 날을 축하하며 지켜야만 하는 객체로서의 의무를 이미 부여한 것이다.

 

특히, 이 말씀이 인간이 창조되고 타락한 이후에는 레23:1-3에서 더 뚜렷하고 명확하게 규정되어진다. “일곱째 날```, 성회```, 여호와의 안식일”. 특히 레위기 입법의 기본 원리는 말하다”(dibber) 라는 동사를 수없이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언급임을 강조함으로,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안식일에 드려지는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그 객체는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강조한 억제책(抑制策)이다.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예배의 부르심을 받은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신 성령 안에서 참 신앙의 응답만이 있을 뿐이다.

 

.예배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1.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14:6-7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only Way)이심을 명확히 하셨다. 즉 성부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사이의 중보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말씀이다.

 

삼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창조의 행위등 모든 것을 함께 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그 근거는 창2:1-3으로 창조개념에 의한 예배의 규정에서 이미 나타났다. 그리고 누누이 강조하지만 하나님은 삼위 한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행위 속에는 삼위 하나님께서 동시적으로 동작하신다.) 인간의 타락과 그에 따른 자신의 거룩한 속죄의 죽음까지도 이미 작정하셨고, 인간 타락 이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작정에 필연적으로 응()하셨으며10), 부활하신 이후에는 이미 작정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 그림자로 나타났던 구약 예배의 불완전한 모든 요소가 폐지됨과 동시에 그 성취 자요 그 완성 자로서 예배의 주체가 되셨다(5:5-6, 6:20, 7:3,21-22).

 

따라서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유일한 길, 그 오직 하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 중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타락하여 죄로 더러워진 인간을 흠이 없고 순전하게 하는 그 중보에 의하여 비로소 하나님과 직접 교제(communication)하고 만남(meeting)이 있는 진정한 예배를 가능케 하셨다. 그러므로 예배에 있어서의 객체인 인간은 성령의 감동으로 인도되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구속의 은혜에 의하여 참 예배가 되는 산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12:1).

 

2.예배의 완성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9: 전체는 그리스도 희생의 완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신약 예배의 그림자요 모형인 구약의 제사와 제물에 대하여 구약의 그 불 완전성을 먼저 규명하고(1-10), 신약 제물의 완전성을 논하면서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인 것(11-22)과 그 제사가 단번으로 영원히 바쳐진 것(23-28)임을 입증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구약의 불완전성의 규명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한 새언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옛 언약의 인간 제사장의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속죄의 제사가 새 언약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하고 완전한 구속의 역사가 성취됨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예배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

 

구약이 신약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 같이 구약의 제사는 신약 예배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며 제사와 예배의 핵심인 희생의 속죄를 흠없고 죄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히 드리심으로 예배의 완성을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임재(18:20)와 그 중보 되심(요일2:1)과 그리스도께서 보내주신 성령의 인도(5:18, 3:16, 고전14:26, 13:2)이다.

 

.영적 예배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신약의 예배는 영적인 예배이다(4:24). 이것은 완성된 예배의 그 본질적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예배는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영적인 예배에도 어떤 형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것은 형식과 의식인데 이것은 인간 주체의 형식과 의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주체의 형식과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서문에서 영적 예배의 본질을 말하였기 때문에 본 장에서는 성경에 나타나는 영적 예배의 형태를 살펴보기로 한다.

 

1.영적 예배의 형식

예배가 영적이라고 하는 것은 예배의 형식(形式)이나 의식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신약의 예배는 구약의 예배와 비교하여 그 형식이나 의식이 간소화 하기는 했으나, 형식이나 의식의 전면적인 부정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 이 말의 참 뜻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한 내적 진리를 동반하는 형식과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즉 영적 진리 안에서의 형식과 의식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초한 영적 진리를 가리키는 어떤 형식과 의식은 참된 예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적 예배에는 형식(form)이 필요하다. 형식이란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외형 또는 격식인데, 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추상 인식에 의한 사물의 발현이나 방법이 아니다. 내적으로 위선이 없고 거짓이 없으며 참된 예배를 지향하는 그 외형과 격식으로 분명하고 명확한 성경 적인 방법의 형식(form)이다.

 

2.영적 예배의 의식

영적 예배에는 또한 반드시 의식(儀式)이 필요하다. 이 의식은 참된 예배를 위한 예의나 의례를 말하는 것으로 본질적 공동체 예배에 있어서 질서 있게 하는 한가지 방법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서로 서로 합하고 돕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참된 예배에로의 질서 있는 접근 방법이다.

 

이러한 형식과 의식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나아가며 경건한 태도로 질서 있게 그리고 예의 바르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3.형식과 의식에 있어서의 주의 할 점

앞에서 언급한대로 영적인 진리 안에서의 형식과 의식이라는 점을 항상 앞세워 기도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여야 하나, 자칫 그리 치기 쉬운 경향이 많다. 다음에 몇 가지 주의할 점을 열거한다.

 

1)예배자의 자발성을 억제하여서는 안된다.

2)전통을 유지하기 위한 위선에 주의해야 한다.

3)참된 예배를 위한 형식과 의식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

 

.공동체적 예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 기뻐하시는 자들이 서로 모여 공동체적으로 예배하는 행위이다. 여기에서 공동체적이다 라는 뜻은 그리스도인들의 개인적 행위의 집약 또는 개인적 교회의 행위라는 틀을 벗어나 하나님께서 불러모은 무리( 18.gif (1635 bytes))인 그 백성들의 공동체적 노력을 의미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다음 몇 가지 형태가 있다.

 

1.회중에 의한 공동체

한 교회에서 같은 찬송, 같은 설교를 부르고 들으며 또 같이 기도하며 봉사하는데서 회중은 서로 하나가 된다. 이와 같이 한 교회 안에서 공동체적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 그 원리이며 기초이다.

 

2.교파에 의한 공동체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교회들은 둘이 아니요 서로 하나이다. 하나님도 하나요 성경도 하나요 교회도 하나로서 서로 같은 공동체이다. 같은 신앙고백과 같은 신조아래 교권이나 기타 정치적 이유 등으로 교파가 분리되는 것은 그리스도로 하나된 몸을 찢는 비극이다. 그러므로 같은 신앙고백 같은 신조아래 모이는 교회들은 하루 속히 서로 하나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3.우리들의 교회라는 의미의 공동체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 하나된 이 세상의 모든 교회나 교파는 지상에서뿐만 아니라 천상 교회와도 일치됨을 나타낸다. 그리고 지상의 유형 교회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분열이 있을지라도 천상의 무형 교회와는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소규모의 공동체로부터 출발한 하나님이 불러모은 무리는 미래적으로 틀림없이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그대로 맞이할 것이다. 우리들의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그 백성들의 준비요 그 기초이다.

 

.예배의 질서

고전 14:40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하였다. 절제(고전11:22, 13:5, 14:30)와 질서(고전11:3, 12:19, 14:27)는 영적 예배에 있어서 필히 갖추워야할 이대 요소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소를 통해 교회의 신령한 덕을 세우며 또 신령한 은혜로 풍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화평과 질서의 하나님이심으로 그리스도인들도 절제와 질서로 조화하는 것이 참된 신앙의 표현이다.

 

1.아름다운 예배

영적인 예배는 진리 안에서 내적으로 아름다운 예배이다. 즉 신앙인의 내면적 세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 말씀으로 인하여 극히 아름다운 향기를 나타낼 때 그 예배는 아름다움이 충만하게 된다. 2:2-9에는 교회 안에서 사회적 신분을 초월한 이웃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 그리스도인의 내면적 아름다움의 그 구체적 실 예라 하겠다. 그리스도인의 겉모습은 절제와 질서로 인하여 비록 초라하고 수수할지라도 그 내면의 영적 아름다움이 충만할 때는 그 어떤 아름다움도 비할 수 없는 것이다.

 

2.기쁨의 예배

100:1-4에서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갈지어다”(2)라고 하였다. 그리고 4절에서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시로서 품위 높고 아름다운 예배에로의 인도함이다. 특히 여호와를 섬기라는 말은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든 장소에서는 감사한 마음으로 들어가고 나오라는 것이다.

 

3.절제와 질서의 예배

고전14:40의 말씀은 교회 내에서 신자 상호간에 발생하기 쉬운 신령한 세계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영적 세계의 무질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혼돈 시키고 분열시키며 파괴시키기까지 한다. 영적 은사를 사모함은 간절해야겠으나 그 은사를 소유함은 조용하며 성령의 인도대로 절제와 질서를 지켜야 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질서 있게 창조하시고 이를 질서 있게 관장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이 섭리에 조화하여 아름다운 예배를 드려야 한다.

 

.성경적 예배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은 성경으로부터 나온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것은 자연 계시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니 자연계시가 있다 해도 그것을 말과 글로서 인간에게 확실하게 전달해 주는 것은 오히려 성경의 기록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 인간에게 주셨다. 그리고 이 특별 계시로 주신 성경 안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는 수많은 방법들이 같이 주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일찍이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4:12) 라고 하였다. 또 예수님께서는 마5:18에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는 신적 권위의 그 진술과 그 선언으로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그 진실성을 확인하여 강조하시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 많은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평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이 말은 부정적인 의미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도무지 인정치 않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을는지도 모른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비평은 전문화 된 학문으로까지 자리를 굳히고 7대 부분11)으로 세분화하여 성경을 비평하여 왔다. 그 결과 성경 비평은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 오히려 고무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하고, 성경 비평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구조 속에서 도리어 긍정적인 반응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큰 힘을 갖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의 정신 세계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다. 이 말씀 가운데 나타나는 참된 예배의 의미를 되새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태도로 전환해야 한다.(성경적 예배에 대하여는 이미 언급되어져 있다. 여기에서는 그 예배의 기초가 되는 성경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자유케 하는 예배

8: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하였다. 또 고후 3:17에 는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이 자유란 진리를 터득함으로 오는 영적 해방이요 완전한 자유이다. 즉 함축성이 무한한 위대한 원칙으로 인간 정신 세계의 근본을 바르게 정립시켜 주는 위대한 말씀이다.

 

일반적인 무신론의 세계에도 각기 그 진리가 있다. 법의 세계에서는 진리, 정의, 공평을 부르짖는다. 철학의 세계에서는 이성적, 합리적으로 진리를 찾고자 한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과학적 이론과 그 증명으로 진리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한 진리들은 인간을 진정으로 해방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악법도 법이다 라고 하지 않는가?

 

일반적인 진리 탐구의 모든 것들은 보편적인 무지에서의 해방이지 더 근원적이며 진정한 죄에서의 해방이 되지 못한다. 곧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멍에요 속박이다. 타락한 인간군()의 그 소속에서의 종살이의 상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든 멍에와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사 자유함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5:1). 인간의 타락한 유전과 전통, 그 관습에 따라서 인간 자신들이 스스로 추구하는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먼저 사랑하시되 대신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놀라운 구속의 은혜로부터의 자유함인 것이다. 이것은 이미 언급한대로 자유함에 근본이요 본질이다. 이 자유함에 근본과 본질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실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자유라 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이 자유 함을 근본으로 하여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탐구하면 진정한 그 완성을 성취케 한다. 인간을 자유케 하는 예배, 그것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떠나서도 그리스도인의 실제 삶 속에서 이루어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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