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가증한 것 (마태24:15) -김경래교수
마태복음 제24장 (마가복음 제13장, 누가복음 제21장에 해당)은 전체적으로 예언적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그중 15-28절 (마가13:14-23; 누가21:20-24에 해당)의 말씀은, 중복적으로 성취될 가능성을 포함하면서도, 우선은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대환난을 언급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 역사적 환난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태24:15). 마가복음의 병행구절에는 (마가13: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이라고 적혀있다. 한편 누가는 종교적 관점을 탈피하고 군사적 관점을 취하면서 이를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누가21:20)고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함락되는 일은 주후 70년에 처음으로 있었다. 이 해에 그 성전마저도 불에 소실되었다. 따라서 마태24:15-28은 주후 70년에 처음으로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이며, 다니엘이 예언한 바와 예수께서 예언한 바는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일까?
우리말 개역 성경의 마태24:15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번역한 이 표현에 해당하는 문구는 다니엘서의 세 곳에서 발견된다. 다니엘9:27에서는 ‘미운 물건’ (‘쉬쿠침 메쇼멤’ םמשׁמ םיצוקשׁ, 표준 새번역에서는 ‘흉측한 우상’)으로 약간 달리 번역되었다. 다니엘11:31 (‘하쉬쿠츠 메쇼멤’ םמושׁמ ץוקשׁה)과 12:11 (‘쉬쿠츠 쇼멤’ םמשׁ ץוקשׁ)에서는 동일한 표현이 단수형으로 나타나는데, 거기서 개역은 각각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과 ‘멸망케 할 미운 물건’으로 번역하고 있다.
먼저 다니엘9:24부터 시작되어 9:27에서 끝을 맺는 ‘칠십 이레’에 대한 기사는 우리말 개역 성경에서 크게 잘못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개역 성경의 치명적인 실수는 25절에서 발견된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라는 개역의 번역문은 오역으로서, 표준 새번역에서처럼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리고 예순두 이레 동안 예루살렘이 재건되어서.....”로 번역하여야 옳다.
다니엘9:24-27의 ‘일흔 이레’에 대한 해석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 부분을 일반적으로 메시야와 연관시켜 해석하기를 좋아한다. 24절에서 언급한 바, ‘일흔 이레’가 지난 후에야 이루어지게 되는 상황, 곧 “반역이 그치고, 죄가 끝나고, 속죄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영원한 의를 세우시고, 이상과 예언이 응하는” 일은 (이사야40:2 참조) 다분히 메시야의 도래와 더불어 이루어질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기름부음을 받은 자’나 ‘왕’을 메시야와 연관시키려는 의도 때문에 개역에서 보는 것처럼 본문의 수치를 억지로 조합하는 치명적인 오역까지 생긴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다니엘9:24-27에 대한 서로 다른 여러 해석을 설명하기보다는, 이제까지 15년 가까이 자신의 전재산과 열정을 쏟아가며 성경 연대기 연구에만 몰두해온 미국인 학자 Eugene Faulstich의 해석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History, Harmony & Daniel - A New Computerized Evaluation, Spencer, 1988).
폴스팈에 의하면 (p. 106), 다니엘9:24-27의 일흔 이레, 곧 490년은 고레스가 유대인 귀환과 예루살렘 중건을 명한 칙령이 공포된 해 (고레스 원년)인 주전 551년에 시작된다 (대하36:22-23; 에스라1:1-4; 이사야44:28 참조). 이때부터 ‘통치자인 메시야’ (개역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으로 번역됨)까지 일곱 이레가 소요된다 (25절). 여기 ‘메시야’(חישׁמ)와 ‘통치자’ (‘나기드’ דיגנ) 모두 정관사 없이 등장한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여러 ‘메시야’나 ‘통치자’중 하나로 이해할 수 있고 또 이 경우에는 그렇게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 주전 551년서부터 일곱 이레, 즉 49년이 되는 해는 주전 502년이 된다. 폴스팈의 연대 계산에 의하면 이 해에 느헤미야가 하나니의 보고를 듣고 예루살렘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느헤미야1:1-2 참조).
그 다음 예순 두 이레 안에 예루살렘 성은 중건되고 거리와 해자도 모두 이룰 것
이다 (25 하반절). 그리고 ‘그 예순 두 이레’ (히브리어 성경에 정관사가 있음) 후에 ‘다른 메시야’ (히브리어 성경에 정관사가 없음)가 끊어져 없어진다 (26절). 폴스팈은 (p. 107) 다시 주전 502년으로부터 62이레, 곧 434년이 되는 해인 주전 68년에 대제사장 힐카누스가 대제사장직에서 물러난 일을 가지고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14권 1장 2절) 이 구절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반 이레, 곧 3년 반 후인 주전 64년에 예루살렘성과 그 성전이 로마의 폼페이에게 함락되고 성전 제사는 멈추게 된다 (유대고대사 14권 4장 3절). 주전 61년 유대인의 정권은 로마에 의하여 완전히 끝나고 만다. 이 해가 바로 다니엘의 일흔 이레가 끝나는 시점이다 (폴스팈, p.110). 그리고 주전 64년 이후로 예루살렘과 성전에 들어오게 된 이 ‘멸망의 가증한 것’ (로마군)은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훼멸되기까지 (주후 70년) 성전에 머물 것이다 (폴스팈, p.144).
다니엘11:21-45은 시리아의 통치자 안티오쿠스 4세 (주전 175-164)에 대한 예언임이 분명하다. 에피파네스라고도 불리는 그는 유대인의 성전과 제단을 더럽히고 유대인을 혹독하게 박해한 일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런 일들은 마카비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마카비1서 1:10-64; 마카비2서 5:11-18; 6:1-11). 그중 마카비1서 1:54 (“백 사십오년 기슬레월 십오일에 그들은 제단 위에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세웠고.....”)에서 다니엘의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주전 167년 안티오쿠스 4세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에 제우스를 위해 제단을 세웠는데, 마카비서는 이를 다니엘 예언 (11:31)의 성취로 본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요세푸스 역시 같은 입장을 취한다 (유대고대사 12권 2장 6절).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표현은 다니엘12:11에 세 번 째로 등장한다. 폴스팈은 다니엘9::27에서처럼 여기서도 또 다시 이 표현을 ‘로마 군대’로 이해한다 (p. 139). 그리고 그는 다니엘12:11-12의 예언을 주후 66년에서 70년 사이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두고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한다 (p. 140).
이상의 해석을 종합하여 볼 때, 다니엘서에 세 번 언급된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표현은 모두 예루살렘 성전에 있어서는 아니되는 외국 군대 내지는 그들이 세운 이방신의 제단을 가리킨다. 11:31에 언급된 바는 마카비서와 요세푸스의 기록을 통해서 보는대로 이미 주전 167년에 성취되었고, 9:27에 언급된 바는 주전 64년에 한 번 성취되고 주후 70년까지 계속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12:11에 언급된 바는 주후 66-70년 사이에 성취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 표현을 다니엘서에서 빌어오시면서 앞으로 40년 후 (주후 70년)에 있을 역사적 대사건을 예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누가가 마태24:15 (=마가13:14)의 병행구절에서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누가21:20)고 묘사한 점 역시 이상의 해석이 옳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고 하겠다. 덧붙여서 이러한 예언은 얼마든지 중복적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다니엘로부터 인용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표현 자체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찰해보기로 하자. 먼저 히브리어 성경에 모두 28회 나오는 ‘쉬쿠츠’ (ץוקשׁ)는 ‘가증함’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호세아9:10; 나훔3:6; 에스겔5:11; 11:18), 이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우상 내지 이방신 숭배와 관련된 것을 비꼬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신명기29:17; 왕상11:5, 7; 왕하23:13, 24; 대하15:8; 에스겔7:20; 11:21; 20:3, 7, 8; 37:23; 이사야66:3; 예레미야4:1; 7:30; 13:27; 16:18; 32:34; 스가랴9:7). 히브리어 어근 ‘샤맘’ (םמשׁ)은 ‘황폐화하다, 버려지다’ 또는 ‘파멸시키다’,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결과로서 ‘놀라게 하다’ 등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다니엘에 나타나는 이 두 단어의 결합 형태들은 (9:27의 ‘쉬쿠침 메쇼멤’ םמשׁמ םיצוקשׁ, 11:31의 ‘하쉬쿠츠 메쇼멤’ םמושׁמ ץוקשׁה, 12:11의 ‘쉬쿠츠 쇼멤’ םמשׁ ץוקשׁ) 모두다 같은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무언가 ‘매우 혐오스러운 것’을 가리킨다. 로마 군대 뿐 아니라 어느 누구든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더럽히고 모독하는 모든 세력은 ‘가장 혐오스러운 존재’로 불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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